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깨달으며, 참으로 행복한 삶을 찾아서...
http://blog.yes24.com/sunnyson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고서(古書)
+ 깨달으며, 내일 죽을 것처럼 살며, 이웃을 사랑하며,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며...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1월 스타지수 : 별5,111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www.myinglife.co.kr
naver블로그myinglife
살며 ......
사랑하며 .....
배우며 .....
깨달으며 .....
지난 삶 이야기
매일 책을 읽으며
아이들의 꿈을 찾아서
고서의 행복론
고서의 독서담
투자 공부를 하며
건강하게 살자!
딸과 함께 쓰는 알고리즘연구소 공부일기
지난 책 이야기 2
보다 영화... 영화관에서
보다 영화... 집이나 어디서나
보고 싶은 책들
유익한 글 메모
유익한 정보들
올바른 정보와 지식
틈새독서
오늘의 트위터
이 책 어떼요?
추천 도서 - 건강
출판사 소개
Philosophy Thought Wisdom and Over
단명장의
공지영 전작
The Right to Write
(글쓰기,책쓰기)
책나눔 이벤트 릴레이
시쓰는 밤 - 그대 그리워 하며...
노래하는 시인 - 시인들의 시
행복 완전 정복
Episodes
Written before
Data and Infos
-- Mission in 2014 --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이 책을 읽었었나?
영화를 보다
집에서 dvd로 영화를 보다
지난 독후감
아이들 독서록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촌철살인
파사현정
근학체화
Wisdom in English
[Writing in English]
함께쓰는 블로그
기본 카테고리
함께 대화를 나눠요!
PhilosophyThoughtWisdom in English
태그
이인삼각달리기 공수부대 FTA협정 자연농법 유기농법 비료 몸살감기 금강불괴지신 책나눔릴레이 프랭키
2014 / 06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최근 댓글
wkf qhrh rkqklskje 
아이고ㅠㅠ사랑하는 .. 
잘 지내시죠 ?ㅋㅋㅋ.. 
글 쓴 시간: 2015. 2... 
고서님~~ 오래된 글이.. 
새로운 글
오늘 265 | 전체 1222094
2005-03-04 개설

2014-06 의 전체보기
이런 아름다운 사랑 또 있을까? | 영화를 보다 2014-06-29 17:00
http://blog.yes24.com/document/7726460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영화]노트북

닉 카사베츠
미국 | 2016년 10월

영화     구매하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은 어떤 것일까?

 

 


 

막 글을 쓰려고 컴 앞에 앉았는데, 아내 전화에서 익숙한 벨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잠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분 앞에 서면 나는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어떻게 아침은 먹었어? 성당에서 미사드리고 와 *옥 생각하며 울다가 자네한테 전화하는거야."

 

우시면서 말씀을 하신다. 뭐라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금니를 꽉 물고 눈물을 삼키고 짧게 대답을 했다.

 

"예~"

 

아침에 일어나 간신히 식빵에 쨈 발라 먹었을 뿐이다. 먹는다는 거, 전쟁보다도 더 어렵다. 혼자 있을 땐 더욱 그렇다. 딸아인 친구에게 놀러갔고, 아들은 출근을 했다.

 

어제 저녁 비빔국수를 해 먹으려고 재료를 다 사다 놓고도 막상 하려니 귀찮았다. 아들 돌아오면 같이 해먹을까 싶어 귀찮기도 하여 미뤄두었다. 10시가 훨씬 더 지나 아들이 귀가를 했다.

 

"비빔 국수 할 건데 먹을 거야?"

 

"아니, 나 비빔국수 싫어해!"

 

혼자 해 먹기는 너무나 번거로울 것 같아 하지 않았다. 밤 12시가 지나서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먹고 말았다.

 

밥도 누군가 함께 먹을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먹는 밥, 건강을 위해서라도 해먹자, 살려면 먹어야 하는데 기왕이면 맛있게 잘 해먹자, 마음 먹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것으로 끝이다.

 

딸 먼저 보내고 얼마나 가슴 아프실지를 생각하면 목이 메어오고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물이 흐르고 만다.

 

이런 삶은 아마도 가장 아름답지 못한 삶일 것이리라.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백년해로하는 삶일 게다. 자식들 다 키워 출가시켜놓고 부부가 서로 아끼며 오래 오래 함께 사는 게 가장 행복할 것이다. 그래야 죽을 때도 여한이 없이 평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삶은 어쨌든 불행하다고 할 밖에...

 

몇해 전인가 인간극장인지 하는 프로에서 시골에 사시는 두 부부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90세 넘으셨고, 할머니는 80대 말인가 했는데 노부부가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었다. 자식들은 다 문제없이 잘 살고 부모께 효도 잘 하고, 손주들까지도 조부모를 공경하는데, 두 노부부 또한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며 사는데 저렇게 살아야지 참으로 행복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때, 아 나도 저런 삶을 살아야지 하고 마음 속에 담아 두었었다. 행복한 삶은 바로 이런 삶이어야 한다고. 누구나 누릴 수 없는 삶이지만 모두가 누리고 싶은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삶이란, 성공하지 못해도, 부유하지는 못해도, 명예가 없다고 해도 부부가 진실로 사랑하는 삶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또한 가장 행복한 삶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삶을, 기독교에서는 천국가는 삶을 이야기 한다. 해탈을 할 때까지 환생을 해야하며, 이를 얼마든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윤회설. 이 지상에서의 삶은 끝나지만 아름다운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천국설.

 

나는 모두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의 생은 단 한번 뿐이고, 내세는 없다고. 설령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지상에서 천국과 같은 삶을 살지 못한다면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고. 주어진 생을 최선을 다해 가장 아름답게 사는 것이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을 한다. 내세가 있다면 그건 그때 가서 누리면 되고, 다시 태어난다고 하면 그 때 가서 또 아름다운 삶을 살면 되니까. 오로지 이 생에서 해탈을 해야하고, 이 땅에서 천국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고 싶다.

 

여기 그런 삶을 살다가 이들이 있다. (음,,, 이게 실화였구나!)


 

 

때론 현실에서의 삶이 영화 같고, 영화 속의 삶이 더 실제와 같다.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그건 영화속이야기일 뿐이야, 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가 더 Real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 이야기가 바로 그렇지 않을까?

 

역시 무슨 다큐 프로에서 본 이야기인데, 아내가 죽었지만, 죽은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한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는 진짜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였다. 매일 묘지에 출.퇴근하며 아내와 대화를 나누다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남자. 대상이 없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정신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누구도 할 수 없는 그만의 아름다운 이야기.

 

이런 믿지 못할 사랑 이야기 보다 아름다운 사랑은 없을까?

 

노트북,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자신들의 삶을 진솔하게 써놓은 소설 같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노트북, 노트북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왜 어려서 수도 없이 쓴 노트, 혹은 노트북이 자꾸만 컴퓨터의 노트북으로 연상되는지 영화가 영화제목과 잘 매치가 되지 않는 것 같아 약간 혼란스러웠다.)

 

젊은 두 남녀는 우연과 필연으로 짜여진 삶 속에서 드라마틱하게 만나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노아는 친구와 함께 놀이공원에 같다가, 여러친구들과 놀이기구를 타면 신나게 놀고 있는 엘라를 보게 된다. 첫눈에 내 여자다 싶었나 보다. 인사를 나누려고 시도를 했지만, 가볍게 거절당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뒤를 계속 쫓는다. 둥굴게 생긴 크게 돌아가는 놀이기구에 그녀가 다른 남자와 앉아 있는 걸 보고 뛰어올라가, 그녀에게 협박한다.

 

"나와 사귈래 말래? 거절하면 한손 마져 놓는다!"

 

두 남녀 사이에 앉았다가, 높이 있는 봉을 두손으로 잡았다가 한손을 놓고는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일순 놀이기구 근처의 모든 시선이 쏠린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Yes한다. 그러나 그의 바지를 끌어내려 놓는 센스를 보여준다. 이렇게 그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해 무모한 용기를 발휘한다.

 

그녀에게 프로포즐 할까 말까 망설이는 청춘들이여, 그에게 한 수 배워봄은 어떨지?

 

그 뒤로도 남자는 여자에게 계속 치근덕 거린다. 마침내 여자는 솔직, 단순, 진솔해보이는 그에게 서서히 끌리게 되고, 자신의 삶을 확 바꾸는 어떤 터닝포인트에 서게 된다.

 

성공을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부모님이 잘 짜준 일정에서 벗어날 모험을 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둘이 걸으며 심야 데이트를 한다. 그는 시골의 순박한 아이들이 하는 위험한 놀이를 한다. 사거리길 한가운데 벌떡 드러눕는다. 그녀에게도 모든 생각 버리고 야성에 따라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그녀는 자신의 본성을 발휘할 기회를 얻는다. 그의 설득에 힘입어, 그 옆에 나란히 누웠고, 대화를 나눈다. 그 때 갑자기 차가 질주에 해 오며 깜짝 놀란 그들은 보도로 뛰어 오른다. 뜻밖에도 그녀는 크게 깔깔거리며 웃는다. 잘 짜여진 공부 스케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free 생각하고 행동할 천성의 불씨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그 길거리에서 그들은 춤을 춘다.

 

 

그 후 그들은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첫사랑의 달콤함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가 일하는 목재소에도 찾아오고,

 

 

강가에 놀러가서도 사랑을 나눈다.

 

그녀는 새처럼 날고 싶어 나는 새라고 외친다. 그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요구한다. 그녀를 따라서 그는 나는 새라고 답한다. 그 때, 그는 마음 속으로 그녀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고, 무엇이든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에 방해물이 등장한다. 아주 커다란 벽처럼. 엘라의 부모는 상류 귀족사회의 일원이다. 부유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집안이다. 그런데 그의 배경은 너무나 보잘 것 없다. 가난한데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도 없다. 집안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딸이 시골 촌놈하고 사랑에 빠진 것을 알고, 부모는 그녀를 그에게서 떼어놓으려 한다. 그녀는 데이트를 하고 몰래 집으로 들어가려다 현관 앞에 있는 아빠를 만나 깜짝 놀란다. 아빠가 남자 친구를 소개시켜달라며 초대를 하라고 한다.

 

그는 그 자리에서 개망신을 당한다.

 

시간당 48센트를 벌어 열심히 저축한다고 하지만, 그는 그들 모두에게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미안하다고 용서를 빈다.

 

그날의 일을 잊은 채 그들은 더욱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는 어느날 그녀를 다 허물어져가는 폐가가 된 고가로 데려간다. 거기서 그들은 미래의 대화를 나눈다. 그는 그 집을 사서, 그녀를 위한 집으로 만들겠다고 약속을 한다. 파란 색의 외벽, 거실, 또 밖이 훤하게 내려다 보이는 화실을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감동을 한다.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허락하게 된다.

 

둘은 드디어 서로의 육체를 원하게 되고 사랑의 관계를 가지려 한다. 하지만 첫번째 포옹에서 그들은 육체적 결합에 실패하고 만다. 그녀가 망설였기 때문이다. 미안하다고 하는 그녀. 다시 시도하려는 찰나. 또 방해물이 나타났다.

 

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다정하고 온화한 모습의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그러나 기품이 있고 우아한 할머니에게 노트북을 읽어주면서 전개된다. 바로 노아가 엘라에게.

 

 

 

다시 할아버지의 노트북 속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들이 윈저 대저택에서 미래를 꿈꿀 때, 그녀가 밤늦게 돌아오지 않자 그녀의 부모는 경찰을 동원하여 그녀를 찾아내려 난리를 치게 된다. 그들이 막 다시 사랑을 나누려 할 때, 친구가 그 사실을 알려줘 사랑하는 그들은 그녀의 집으로 달려간다.

 

그녀의 부모는 이번에는 단호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빠를 대신해 그녀에게 더이상 그를 만나지 말라고 협박을 한다. 그런 가난한 사람에게 네 인생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미래가 뻔하지 않느냐고 절규하듯 외친다. 하지만 이제 자유의 의미를 알게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대든다. 그리고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딸을 사랑하는 아빠도 이번엔 침묵한다. 그녀는 그를 쫓아나가면서 엄마에게 울부짖으면 얘기한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이에 있을 법한 사랑에 찬 눈매, 아양떠는 말투,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다."

 

한편 거실에서 그들이 다투는 모든 소리를 들은 그는 떠난다. 둘의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는 떠난다. 그녀를 놓아주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듯 싶었다. 떠나는 그를 붙잡고, 그녀는 애원을 한다. 엘라는 돌아가는 그를 붙잡으면,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고 외치고... 그는 그녀가 원래 사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생각해보자고 대꾸한다. 그럴 거면 왜 지금 헤어지지 못하냐고 그녀는 절규한다. 하지만 그가 차를 몰고 떠나자 그녀는 홧김에 한 소리라며 헤어지지 말자고 울며 불며 외친다.

 

그들의 불같은 사랑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그녀의 부모는 당장 짐을 꾸려 내일 떠난다고 협박을 했다. 너무나 단호했다. 그녀도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떠나기 전, 그녀는 목재소로 찾아온다. 하지만 그는 배달을 나가서 자리에 없었다. 그의 친구 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간절하게... 그리고 그가 돌아왔다.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그녀는 이미 떠나고 없다.

 

그날부터 그는 갑작스런 별리의 고통을 겪으며 그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1통, 2통, 3통 마침내 365통의 편지를 보내고도 아무런 답장이 없자, 그는 친구와 함께 돈을 벌러 떠난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오는 편지를 가로챘던 것이다. 어떻게 한번도 실수하지 않고 365통의 편지를 가로챌 수 있었는지 그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대도시 공장에서 일하는데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그와 친구는 입대를 하게 되고, 오랜 전쟁 속에서 친구를 잃는 아픔을 겪는다. 마침내 그는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이루게 하려고 자신들이 살던 집을 팔고 아들이 그녀에게 약속했던 집을 샀던 것이다. 운명일까, 그는 목재를 사려고 시내에 나갔다가 길거리를 지나는 그녀를 발견한다. 급하게 버스에 내려 그녀의 뒤를 쫓았으나 어떤 사내의 품에 안겨드는 것을 보고 만다.

 

 

그녀는 대학을 진학하고, 멋진 대학생활을 즐긴다. 3학년 때 간호보조사로 지원하여 전쟁에서 후송된 환자를 간호하는 일을 한다. 그가 군에 입대한 것을 알았는지 그를 대하듯 모든 환자를 대하는데... 어느 환자가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그녀는 가볍게 몸이나 회복한 다음에 데이트를 신청해도 하라고 얼버무리는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하교를 하는데 그 남자가 진짜로 그녀 앞에 멋진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의 품에 안겼던 것이다. 

 

집안도 부유하고 전도 유망한 그를 만나 그녀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실의 나날 속에서도 그는 그녀가 돌아올 것을 생각하며 열심히 집을 지어 완성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슬픔을 잊으려 하고, 이웃동네 전쟁 미망인을 만나 육체적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 미망인은 사랑을 달라고 속삭이지만 그는 줄수 없다고 대꾸한다. 갈가리 찢겨진 사랑을 품고 있기에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고....

 

 

사랑은 다시 시작되고...

 

결혼 준비를 착착 진행하던 그녀는 우연히 신문에서 그를 보게 된다. 집을 내놓은 광고물에 그가 그녀를 기다리는 듯 서있는 모습.

 

남편감을 찾아가 며칠 그곳에 다녀오고 싶다고 얘기를 하고는 사랑했던 남자 그를 찾아간다. 재회. 그동안의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아쉬워 한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녀가 떠나기 전 그가 그녀에게 내일 다시 와줄 것을 것을 부탁한다. 보여줄 곳이 있다며....

 

다음날 그들은 배를 타고 아름다운 호숫가로 좀 멀리 떠난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수천 수만 마리의 새들이 호수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은 정말 영화에서나 볼듯한 아름다운 장면이다. 돌아오는 길, 날씨가 꾸물거려 급하게 서둘렀지만 배안에서 비를 쫄닥 맞고 만다. 자연이 다시 한번 그들에게 야성으로 돌아갈 기회를 준 것일까.

 

 

 

비를 피해 급하게 뛰어가던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왜 연락하지 않났냐고 매일 같이 기다렸는데 왜 편지를 하지 않았냐고 따지듯 묻는다. 그는 놀라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매일 같이 편지를 쓰고 또 써서 365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받지 못했냐고, 오히려 역정이다.

 

 

그의 집으로 돌아와 그가 그녀를 위해 화실을 마련한 것을 알고 놀란다. 더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던 그녀는 화실에서 붓을 잡아 그림을 그린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시 그림을 그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

 

그밤 그들은 이제서야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마침내 사랑의 뜨거움을 주체 못하고 몸과 마음을 나누는 완전한 사랑을 하게 된다.

 

 

 

 

 

다시 한번 그들의 사랑에 훼방꾼이 나타난다. 피안시를 기다리려도 오지 않고 전화도 되지 않자 론이 그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엄마가 그 소식을 전해주려 그곳에 나타났다. 문을 나서며 그녀와 엄마는 심하게 다툰다. 왜 편지를 감추었냐고...

 

마침내 엄마는 그녀를 데리고 채석장 같은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딸에게 고백을 한다. 25년 전 엄마도 불같은 사랑을 했고, 집안에서 반대를 해 남자와 줄행랑을 치려고 했지만 바로 붙잡혀 버리고 말았다고. 그 때 그 남자와 결혼을 했더라면 어떤 인생이었을까 하며 후회를 했다. 아빠를 사랑하지만 정말 사랑하지만 그랬더라면 어뗐을까, 하며 딸에게 고백을 하는 것이다. 마침내 진실이 드러난다. 오래 감추워왔던 현재 남편과의 화려한 생활 속에 묻어 두었던 사랑의 진실. 사랑으로 살아야 하는 여성대 여성으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딸과 엄마 사이가 아니라.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한다며 그에게 딸을 데려다 준다. 그동안 가로챘던 편지와 함께....

 

그와 그녀는 대화를 나눈다. 편지를 품에 안고. 그러나 이갸기가 틀어지고, 서로 격정적으로 다투다가 그녀가 떠나고 만다. 울며 떠나는 그녀. 그런 그녀를 허탈하게 바라보는 그.

 

 

울며불며 정신없이 차를 몰고가다 마주 오는 차에 부딪힐 뻔한 그녀는 급하게 차를 돌려 멈추게 되고 그 자리에서 비로소 첫 편지를 읽게 된다. 진실로 사랑했으며, 사랑으로 인해 더욱 성장, 발전하게 되었다는 그의 고백을 듣는다. 마침내 결정의 날이 왔다. 그녀는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영화 속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무척이나 행복했을 것이다. 때로는 다투기도 했을 것이고, 헤어지려고도 했을 것이다. 인생은 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는 그녀를 진실로 사랑했기에 엄청난 성격차이에서 오는 모든 장애물을 다 극복해갔을 것이다. 그의 사랑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로 말이다.

 

 

사랑은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불같은 사랑도,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도 3년이면 시든다고 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에는 다른 무엇이 포함되어야 한단다. 사랑을 끝까지 지키려는 의지, 더 나은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노력,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각오. 즉 사랑은 아름다운 감성으로 출발해 지키려는 의지(이성)에서 끝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그는 치매에 걸린 아내의 기억을 회복시키려고, 이야기를 썼고, 이야기를 매일 들려주었고, 자신도 심장병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끝까지 아내를 지켰던 것이다. 매일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듣던 그녀는 마침내 그 이야기가 엘라와 노아, 노아와 엘라의 사랑 이야기였다는 것을 기억해냈던 것이다. 그날 밤 그들은 아름다운 만찬을 즐긴다. 하지만 그녀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극히 짧다. 자신을 여보라고 부르는 낯선 남자를 심하게 거부하면서 소리를 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는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며 운다. 그리고 그는 그날 다시 심장이 멈춘다.

 

그날 다시 정신이 깨난 그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녀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찾아온다. 마침 맨정신으로 돌아와 있던 그녀와 그는 마지막 사랑의 밀어를 나눈다. 우리의 사랑이 우리 둘을 묶어줄 수 있겠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녀의 침대에 올라 둘은 손을 잡고 마침내 사랑으로 하는 죽음 여행을 떠난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랑을 해야할지 현실보다 더 Real한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젊어서 이렇게 열렬한 사랑을 나는 하지 못했다. 큰 꿈과 야망을 가졌던 나는 사랑은 유치한 놀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어리석게도. 하지만 나는 아내와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랑을 꿈꿨다. 영혼까지도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사랑을. 이제 아내와의 사랑은 멈추고 말았다.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은 전혀 생각조차 못했다. 이토록 가슴이 아픈 것은 내게는 시간이 전혀 없었다. 이렇게 된 것이 어쩌면 다 나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한번 맺은 사랑은 '지혜롭게' 지켜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사랑이 식었다 하면 다시 회복해야만 한다. 사랑이 없다고 하면 사랑의 불씨를 지펴야 한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하지 않는 삶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니까.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과 시작해야 하리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도 잘 하지 못하면 똑같이 사랑없는 삶으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지금, 가까이 있는 그 사람과.  

 

어떻게?

사랑도 배워야 하리라.

아름다운 사랑을, 더 나은 사랑을, 영혼의 사랑을, 사랑의 모든 것을.

 

 

 

2014. 6. 29.

16:54

 

 

 

사랑을 잃어 고통스러운

고서 김선욱

 

 

교정: 2015. 2. 17. 15:09~15:26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마음 신체를 완전히 지배한다 | 건강하게 살자! 2014-06-26 23:48
http://blog.yes24.com/document/7724496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암치유의 확실한 길 그러나 어려운 길을 걷다

에피소우드 - 고통 속에서 세상을 의심해 보다 

 

들어가면서...

 

마음, 정신의 세계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저의 인생 고백, 혹은 신앙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왔었기 때문에 진실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사실만을 진솔하게 적시하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하느냐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지만, 종교 혹은 신앙에 대한 저의 생각 혹은 깨달음을 적나라 하게 적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혹시라도 기존 종교의 교리에 현저하게 배치되고 때로는 기성 종교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순전히 저의 경험, 깨달음에 의한 것이니 저를 나무라셔도 좋으나 혹시라도 저 외의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욕하지는 말아주십사 부탁을 드립니다. 진리 추구를 위해 진짜 회의적으로 기존의 지식, 종교를 비판해보는 것이 아니라면 혹시라도 토론이나 대화를 할 생각은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귀에 거슬리거나 터무니 없다 생각되시면 외면해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암치유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마음의 치유에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에서 3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난 후 추가실천 사항으로 자연스런 평안한 호흡, 적당하고 알맞은 운동, 욕심버린 만족한 마음을 거론했습니다만, 이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좋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질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욕심버린 만족한)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을 회복해주어야만 가장 빨리, 효과적으로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음' 하면 종교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매우 어렵고 혹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제일 끄트머리에 놓은 것 뿐입니다. 마음을 회복시켜주면 즉각적으로 병은 치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마음이 주인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1. 환경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

2. 체질을 바꾸고 몸을 정화해야 한다.

3. 중금속 배출, 항산화 변이된 유전자 복원, 면역력 기본 형성

4. 추가 실천 사항

   1) 자연스런 평안한 호흡

   2) 적당하고 알맞은 운동

   3) 욕심버린 만족한 마음

 

이는 제가 ****을 펼치시는 **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경험한, 깨달은 바이기도 합니다. 마음 하나만 올바르게 갖는다고 해도 병은, 모든 질병은 일순 나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진리를 우리가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모든 병을 낫게 합니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말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실제 암이든, 다른 중병에서는 얼마든지 병을 치유한 예가 많습니다.

(* 마음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가, 믿음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다 같은 의미입니다. 문맥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것뿐입니다. 마음=영혼,정신,믿음,생각,정보 등등)

 

이제 제가 경험한 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경험을 일반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만, 저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 존재는 어쩌면 마음(협의의 믿음)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닙니다만, 1999년 어느날 저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 때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큰 뜻 품고 시작한 사업이 IMF로 인해 지지부진하던 때, 온동 어둠컴컴한 지하실의 한 귀퉁에서 인생 고민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50~60평이나 되는 지하실의 한쪽 사무용 책상을 놓은 자리에만 불이 켜져 있을 뿐 전체적으로 음침한 분위기였습니다. 그 때 인생 고민을 하며 성경책을 읽기시작했습니다. 다른 때와는 달리 구약부터 읽기 시작했지요. 한글개역성서가 어려워 영어 성경책을 펴놓고 공부를 했습니다. 구약을 읽어내려가는데 참으로 재미있기도 하고 술술 잘 읽히더군요. 그러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다른 것에 유혹당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찌 신앙인들이 그리도 믿음이 약할까, 참으로 한심하게 생각되었고, 불쌍해보일 정도였습니다. 인생 고민을 하면서 성경을 읽고 있을 때 제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업을 정리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서 괴로워 하며 지던 어느날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업을 시작했는데 몇년이 지나도록 빚을 갚지를 못하자, 혹시라도 집이 날아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시어 하신 말씀이었다.  

 

 

"너 같은 자식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차라리 죽었더라면.."

 

그것은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IMF 때, 원대한 꿈을 갖고 시작했던 무역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차에

사랑하는 어머님께 들은 한마디로

나는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무엇이든 다 잘 할 수 있다는 패기만만했던 나였지만

비수와도 같은 어머님의 말씀은

내 영혼을 갈갈이 찢어놓는 것과 같았다.

 

삶의 의욕을 잃고 번민의 나날을 보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도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안 그래도 힘들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머님의 말씀은 정말 듣기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예리한 칼로 심장 한 가운데를 찔린듯한 아픔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들은 그 소리는 청천벽력과 같았는데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요.

 

이렇게 좌절과 실의에 빠져 지내던 어느날, 저는 '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 같이 크게 잘못 될 수도 있던 인간이 죽지도 않고, 또 나쁜 길로 빠지지도 않고 이렇게 살아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것은 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죽지도 않고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한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가던 중 눈물이 너무 줄줄 흘러내려 어느 빌라 한 구석으로 가 펑펑 울었습니다. 그 눈물은 며칠 동안이나 그치지 않고 줄기차게 나왔습니다. 하루는 방 구석에서 우는데 아내가 그만 좀 울라고 핀잔을 주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어쨌든 이 경험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한없이 행복했으며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용서가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삶이었습니다.

 

어머님의 일만 해도, 오죽 힘드셨으면 자식에게 그런 소리를 다 했겠냐며 이해하게 되었고, 자식에게 몹쓸 말씀을 하신 것도 용서가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다른 한가지 문제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배신에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했고, 반드시 복수를 한다며 온갖 저주를 담은 글을 써놓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옛날 노트북을 켜보면 그 심한 저주를 담은 복수를 하겠다는 글이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그의 배신을 깨끗하게 용서하였습니다. 어떤 생각을 했느냐 하면...

 

"그가 그런 말을 한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그러한 생각은 그의 생각이기에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그 생각을 나중에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의 생각에 휘둘려 나쁜 생각을 가지면 나만 손해가 아니냐?"

 

그를 용서한 것이 아니라 나를 용서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내가 온통 복수심으로 가득찬 삶을 살았더라면 나의 정신도 아프고 육체는 병들고 말았을 것입니다. 결국 그를 용서함으로 내가 평온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용서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나서 확인해본 바, 그는 그 생각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결국은 내 예측이 맞았던 것이고, 복수심에 불타서 살았다면 나만 손해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이 때부터였습니다. 제가 기쁨에 차 행복하게 살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도우려는 마음으로 살게 된 것이. 과거의 저는 죽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던 것입니다. 가족을 포함한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게 되었으면 늘 웃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도 늘 미소짓게 되더군요. 저는 이것을 종교적 용어로 부활이라고 설명합니다.

 

마음, 즉 한생각 고쳐먹으니까 세상이 달라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존의 모든 관념을 의심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 나름대로 세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모든 사상.철학.관념을 철저하게 따져보고 궁구해보고 옳다고 생각하는 관념들만 제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몇 차례의 경험을 한 후 나에게 이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의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이 사건이 내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다음에, 세상을 어떻게 인식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룰 때 자세히 언급을 하겠지만, 나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의심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확고하다고 믿고 있는 기존의 모든 지식체계를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성찰해보고 옳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만 수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출처]:누가 당신의 생명을 지켜줄 것인가?http://blog.yes24.com/document/7708956

 

이런 이야기하면 돌맞아 죽을지도 모를 이야기지만, 그 때 저는 제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죄송!^^)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다는 마음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하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위대한 존재인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마침 TV에서 본 남아메리카의 오지에 선교를 하러갈까도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성공지향적이었으며 세속적이었던 인간 김선욱은 죽어버렸습니다.

 

그 때 무역업을 운영한다는 꿈은 과감하게 버리고,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는 그게 무엇이든지 보람있고 가치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 두었습니다. 그러는 한편 불경, 도덕경 등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부터는 종교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여 천주교를 선택하여 2000년 1월 1일 제발로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교리공부를 하여 8월인가 세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도 전도를 하여 1년 조금 넘게 열심히 종교생활을 했습니다. 주일에는 단 하루도 예배를 거르지 않았고 그야말로 열성적으로 성당엘 다녔습니다. 종교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레지오에도 가입하여 활동을 했었고,  마침내 동생에게도 전도를 하여 동생 내외도 세례를 받게 하였습니다.  

 

성당에 다니는 한편 진짜 도는 무엇일까, 진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구도여행을 하며 수련하는 사람들, 선지식들을 만나고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은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을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해본 결과, 그것은 하느님이 역사를 벌인 것이 아니라, 내안의 신성이 깨어났던 것으로 판단을 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내재된 신. 그것은 항상 저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지, 교회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발로 스스로 성당을 걸어나왔습니다. 냉담이 아니라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하느님을 영원히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것을 종교를 졸업했다고 표현합니다.

 

어쨌든 종교라는 것은 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종교가 가르치고자 했던 영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 세계의 종교가 이름은 다르지만 그 근본은 같다고 봅니다. 모두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하나는 서쪽에서 바라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쪽에서 바라본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모양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지역의 역사화 문화, 언어에 따라 이해하고 설명을 해야하니까요. 즉 예수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마음이나 같은 마음 상태를 상징하는 용어인 것입니다. 같지 않다면 유사하거나 서로 보완적일 뿐닙니다. 그러니 어떤 게 유일한 진리이고 으뜸이 되는 종교라고 서로 배척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종교는 참된 신앙, 즉 영성에게 길을 내어주고 그 이름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이름을 팔 것이 아니라, 2,000년도 더 전의 사람들의 이름이나 가르침을 거론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했던 것을, 그 영성이 드러난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 하면 또 욕먹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믿으라며, 혹은 기독교를 믿으라며 교회에 가자고 열성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대하면 그만 골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입니다. 당신이 예수님의 모습을 내게 보여달라. 부처님의 자비를 내게 보여달라, 이리 말하고 싶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진리이며 올바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분들의 가르침을 종교라는 조직이 잘 못 행하고 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은 크게 잘못된 점도 있습니다. 이는 워낙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한 생각. 마음 혹은 영혼이 바로 우리 인간의 주인인 셈입니다. 어떠한 마음 상태냐에 따라서 인간 존재가, 그리고 그를 떠받들고 있는 육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주심(종교적 색체를 배제하기 위해서 표현한 것으로 사랑 또는 자비의 의미)을 가질 때 인간은 질병이 침범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병에 걸리지도 않지요.      

 

이제 믿음이 병을 고친다는 명제를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얘기지만 예수님은 수 많은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마르코의 복음서에는 치유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을 완전히 믿은 자들이 그의 현현에 의해 각종 질병을 완전히 치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병을 낫게 해줄 수 있다는 완전한 믿음을 갖게 됨으로써 그들 안에 내재하고 있던 하느님의 치유능력이 작용하게 되어 병이 나은 것입니다. 즉 스스로 병을 고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해석입니다.

 

우리가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 즉 생각을 갖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암환자들은 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지배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니 병이 나을 수가 없습니다. 대체 이 세상에 누가 있어 암에 걸려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겠습니까. 주의를 돌아보아도, 병원에서도, 사람들은 모두 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지요. 이러한 관념을 깨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상이 제가 경험하고, 깨달은 바에 따른 인간 존재에 대한 하나의 정의이며, 마음의 치유가 작용하는 원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믿음이며 신앙입니다. 비록 여기에서 예수님이나 부처님을 인용했지만 알기 쉽게 이야기하기 위해 비유를 했을 뿐 종교적인 색채는 배제하고 싶습니다. 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해도 그만입니다. 저의 설명이 그르다고 하든 말든 그것은 그들의 생각일 뿐이고, 그들은 그들 믿음대로 따르면 됩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일반인들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말로 설명을 해야겠지요. 그래서 생각, 혹은 마음, 영혼이란 용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에 걸리면 즉각적으로 자신을 돌아보아야만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깊이 성찰해보아 마음 고쳐먹기를 제일 먼저해야합니다. 그리고 차차 식생활을 바꿔주어야 하고, 환경을 바꿔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가 마음입니다. 마음이 이상에서 설명한 것처럼 아주 중요합니다. 마음은 깨우치기에 따라 즉시 바꿀 수 있지만, 식생활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는 것은 시간도 필요하고 그 효과는 매우 더딥니다. 그래서 몸을 먼저 고치려는 일은 대개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체질을 바꾸는 것이 하루 아침에 되겠습니까. 병행을 해도 우선 먼저 마음을 평안히 갖고 행복하게 해 주어야만 합니다. 과욕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괜히 쓸데 없는 자잘한 일에 신경을 많이 쓰지는 않았는지, 남과 비교하거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지는 않았는지 등 자연스러 마음, 평화로운 마음을 깨는 일상을 살지 않았는지 반성해야만 합니다.

 

사실 감기 같은 매우 사소한 병도 다 마음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감기 걸리기 쉬운 마음이, 육체를 나약하게 만들고, 그에 따라서 쉽게 감기에 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덥다고 갑자기 해이한 마음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잔다거나 하면 여지 없이 찬바람을 쐬어 감기에 걸리고 말잖아요.

 

제가 다른 글에서도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만 2001년 10월 2일부로 병원이나 의사에 절대 의존하지 않는다고 결심한 후에도 처음에는 감기도 찾아오고 목감기에도 걸리고 일년에 한번은 심한 몸살감기도 앓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참고 견뎠지요. 처음 2~3년은 그러더니, 나중에는 아예 감기, 몸살 감기가 오지도 않았습니다. 몸이 그런 병에 견딜 수 있도록 저항력을 길러준 때문입니다. 그것도 다 생각에서 시작되지 않습니까. 병을 이겨야겠다는 생각.

 

이런 지식을 미리부터 아내와 공유해야했는데 그걸 못한 건 제 불찰이었습니다. 그랬더라면 병이 오지도 않았겠지요. 심하게 다친 마음의 병은 다 저의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내가 병에 걸리자마자 사랑부족병이라 생각하고 온마음 다해 사랑의 기적의 치유를 하려고 단단히 각오를 했던 바이구요.

 

사랑이 가장 강력한 치유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들 아내가 그것을 느끼지(공유하지) 못하면 그건 사랑이 아닌 셈이지요. 저의 완전한 사랑을 느껴  평소에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만큼 저를 믿었더라면 치유는 확연히 달랐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후회를 하는 것이, 자책을 하는 것이 바로 이점이었습니다. 아무리 높은 깨달음을 얻었어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부지간의 사랑 이건 정말 너무나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 서로 신뢰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니까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아무튼 저는 즉각 반성을 하고 목숨을 걸고라도 아내를 살려야겠다고, 사랑의 기적의 치유를 통해서 아내이 병을 치유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투병 생활의 어려움

 

제가 아내를 살릴 수 있다고 자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생각'에 근거해서였습니다. 아내가 저를 완전히 신뢰하고, 또 **선생님의 치유 방법을 완전히 믿을 수만 있었다면 마음의 치유로 병이 얼마든지 나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시간도 없었으며, 이러한 원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평소에 지득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합니다. 

 

아내의 투병생활을 도우면서 제가 페북에 마치 백만대군의 적들과 싸우는 심정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사방에 온통 이러한 생각에 반하는 사람들 뿐이기 때문에 그만큼 병의 치유가 어렵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제게는 원군이 단 한분 계셨지요. 바로 ** 선생님. 흔들리는 저의 믿음과 확신을 붙잡아 주신 분이지요. 

 

어쩌면 가장 무서운 적은 아내 자신이었고, 심지어 가족들도 적에 포함되었습니다. 병문안 오는 친척들과 지인들, 각종 조언을 하는 사람들, 병원 자체 시스템과 조직원들, 의사들 모두가 이런 신념을 따르지 않고 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기존의 상식들을 굳건하게 믿고 있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은연중에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환자의 마음에 나쁜 영향이 없도록 세심하게, 용의주도하게 이야기해야만 하는데 그럴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병세를 설명하고 그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제게도 부정적인 의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확신을 가져야 하는데 그분들에게 설명을 하려니 어쩔수가 없더군요. 이야기를 안해줄 수도 없고 하자니 저의 믿음에 반하는 이야기를 해야해서 참 곤란했습니다.

 

아내에게는 저 외에는 모두 적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물론 고백하건데 저 자신도 많이 흔들렸습니다. 아내를 살리려는 강한 의지 때문에 아내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를 못 하기도 했습니다. 몸이 받아들이지 않아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할 때나, 아내가 나약한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제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답답해하기도 했으니 이런 모습 또한 아내에게는 나쁜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적들로부터 아내를 보호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건 역부족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주치의와 그를 보조하는 수련의는 회진을 돌다말고 저를 불러내 아내가 얼마 못 살것이라고 여러번 이야기를 했는데, 답답하게도 멀치감치 떨어져서나 이야기를 할 것이지, 바로 병실 앞에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정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면 나중에 조용히 기회를 봐서 누군가를 시켜 불러내서 제가 어디를 오가는지를 아내가 모르게 세심하게 배려를 했어야 하는데, 코앞에서 죽음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세상에 눈치가 아무리 없는 사람도 눈치를 채지 않겠습니까. 좋은 이야기를 하면 환자 앞에서 하겠지요. 정말 너무나 답답하더군요. 그런 배려심도 없냐고 귀싸대기를 갈기고 싶은 생각이 여러번 들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지요.    

 

의사들이, 환자들이 신뢰하고 있는 의사들이, 아무리 어려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라고 해도, 당신의 병은 나을 수 있습니다, 꼭 낫습니다고 선언하는 순간 아마도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적어도 30%는 싹 나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나마 추측해봅니다. 그들이 믿음의 치유효과를 알고 신념에 차 그렇게 말한다면 많은 환자들이 두려움을 떨쳐내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환자들에게 의사들은 신과 같은 존재이니까요. 의사라는 존재에게는 적어도 큰 신뢰를 보낼 테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얼마 안 있으면 죽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 어떻게 환자들이 희망을 갖고 투병을 하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의사들은 믿음의 전사들이어야 합니다. 인간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아름다운 인간 존재이어야만 합니다.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인자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원리를 알고 배우려는 오픈마인드된 전문가여야만 합니다. 자신의 지식에 파묻혀 살아서는 안됩니다. 생명을 살린 사람이 있다면 쫓아가 배워야만 합니다. 그것이 한의학이든 대체의학이든 통합의학이든 말입니다. 그것이 인술을 가진 의사가 해야될 일입니다. 그저 수술만 해서 돈 벌려고 하는 수술사가 되거나, 기계진단에 따라 판독이나 하는 기술자가 되거나, 약이라 쓰려고 하는 약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인술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저는 아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투병일지를 철저하게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을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는데, 갑자기 약을 바꾸거나, 갑자기 끊거나, 엉뚱한 약을 쓰기도 하더군요. 차차 줄여나가든가, 점차 높여나가든가 아주 세심하게 양을 조절하거나 해야하는데도 일반적인 일을 할 때도 보여줄 수 있는 세심함이라고는 전혀 없더군요. 그저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십이지장 궤양 때문에 고생하고 있을 때도 투약을 주사제로 하라고 여러번을 이야기했는데도 계속 경구투약으로 바꾸곤 하더군요. 몇번씩이나 얘기를 해도 듣지를 않더군요. 정말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지요. 왜, 말을 안듣는지. 한번은 간호원 아가씨가 엉뚱한 약을 들고와 투약을 하려하더군요. 처음 보는 것이라 왜 이걸 처방했느냐고 묻자 전에 하던 것이라고 답하더군요. 제가 기록해 바에 따르면 이건 처음이라니까, 아니라고 우기더군요. 기록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하자 간호사 대기실에 가서 의무기록을 보고 오더니 그저야야 인정을 하더군요. 참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한도 끝도 없으니 예서 마칩니다.

 

 

마음 치유의 사례

 

그럼 실제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만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건강 공부를 하면서 스크랩해놓은 기사가 있는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아주 잘 설명해줍니다.

 

 

 

 

고서 김선욱, Sunny Kim myinglife 건강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그런 만큼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아 미리 질병을 예방하자!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건강 공부를 하자! http://bit.ly/b6Z3sL) #건강하자_ #책읽자_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건강 공부를 해야

질병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고서 김선욱, Sunny Kim myinglife 암은 마음의 病因이 크다[산삼면역약침? 이건 또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인가요? http://bit.ly/d92DJd] (암 발병의 메커니즘을 알면 말기암도 방법이 있다 @xportsnews http://toto1.kr/101145) #건강하자_ #책읽자_

 

 

 

 


 

 

 

다른 많은 질병도 그렇지만, 암은 특히 마음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전 글에서 성격 유형에 따라 다른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기사를 소개했다.  

 

 

 

성격 유형에 따라 질병이 다르게 나타난다  

(성격이 나쁘면 병에 걸린다?

 

 

 

 

 

그것은 결국 성격이 나쁘면 질병에 걸린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성격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성격은 어떤 특정한 생각의 습관이 굳어져 나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질이 급한 사람은 오랫 동안 이렇게 행동을 해왔고, 그것이 하나의 행동양식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이러한 성격이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천부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태어나서 잘못 형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만일 암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육체적으로 치료해서 나을 수 있는 것이라면 과학, 의학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해 와 암 정복이 멀리 않았다고 호언장담하던게 언제인데 왜 쉽게 정복하지도 못하고, 왜 해가 갈수록 암발병률이 높아만 가는 것일까?

 

 

"암이 세계 경제 망친다"

 

 

 

그것은 바로 암의 발생 원인이 인체라는 물리적 측면보다는 마음이라는 즉 성격적인 부분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도 서양의학에서는 육체적인 치료만을 하려고 애를 쓴다.

 

다행스럽게도 환자가 '암'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하여 마음과 삶의 태도를 잘 바꾸면 되면 병이 완치가 되기도 하면 많이 나을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의학은 이러한 암 발생 원인과 결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인체의 질병치료라고 하는 서양의학 태생적인 결함 때문에 마음 혹은 정신적인 부분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현상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오 이런, 이제와 암이 아니라니... "

 

 

  

도대체 왜 흥청망청 살았더니 암이 나았을까?

 

정말 암진단을 잘못 내렸을까? 물론 그럴 확률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암이 나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이 환자는 기존에 갖고 있던 마음과 생활태도를 완전히 180o로 바꿔버려서 병이 나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간단한 결과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암의 치료에 있어서 육체를 치료하면 된다는, 즉 '수술하고 항암제 투여하고 방사선 요법을 처치한다는 것'에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는 인간의 질병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진정한 치유가 시작될 것이다.

 

 

병원에서는 말기암 환자들을 더 이상 치료가 불가하다고 하며 포기를 한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것인데, 치료를 해내지 못하는 죄를 범하면서도 다른 방법에 의한 치료마저도 부정을 한다. 어찌 이런 비인간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사실 대체요법이라고 하는, 아니 어쩌면 진짜 합리적으로 치료하는 다른 방법이 대안일 수가 있는 것이다.

 

다른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고 그냥 죽어가야만 하는가?

 

서양의학 맹신자들은 이처럼 합리적인 사고 방식에 근거를 둔 대체의학을 미신처럼 취급한다.

 

오히려 자신들이 치료를 하지 못해 포기를 했으니 사죄라도 하고 마땅히 추천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비난을 일삼고 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고서 김선욱, Sunny Kim myinglife 암은 마음의 病因이훨씬 더 크다[산삼면역약침? 이건 또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인가요? http://bit.ly/d92DJd] (암 발병의 메커니즘을 알면 말기암도 방법이 있다 @xportsnews http://toto1.kr/101145) #건강하자_ #책읽자_

 

 

이제 우리는 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서양 의학의 구태의연한 접근방식을 깊이 반성해보아야만 한다.

 

인간에 대한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고, 전인적인 치유의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하지만 기존의 고정 관념은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완강하게 저항을 하기 때문이다.  설령 과학이라고 해도 더 진실한 사실에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다. 기존의학계 혹은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무섭게 저항을 하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개개인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고,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에 눈을 뜬 사람들은, 지혜로운 식견을 가진 사람들은 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의문을 갖고, 새로운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생명과학에 대한 생각 1 | 생명에 대하여
새로운 생명과학에 대한 생각 2 | 생명에 대하여 

 

(계속 연재가 될 수도 있으니 잘 살펴보시길 바란다)


나를 지키는 공간 (연재물을 게시하는 곳) 

 

 

 

이제 우리는 스스로 지식을 쌓고, 지혜를 얻어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그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는 않으니깐 말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2010. 8. 19.     13:13

 

 

 

 

참생명, 참건강의 길을 찾고 있는

 

고서 김선욱

 

 

더보기 (질병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아야만 한다)

 

윗글, 질병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아야만 한다에서 중점적으로 논의하고자 했던 기사가 바로 아래 기사입니다.

 

“오 이런, 이제와 암이 아니라니… ”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암 선고를 받은 남자가 죽기 전에 평생 모은 재산을 다 탕진하려고 흥청망청 살았다. 재산을 다 써 버리고 나니 암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영국에서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겨 화제를 모으고 있다.

 

BBC방송 등 현지 언론들은 7일 “암으로 오진해 나를 흥청망청 살게 한 책임을 배상하라”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낸 존 브랜드릭(62·사진) 씨의 사연을 일제히 전했다.

 

브랜드릭 씨는 2005년 2월 황달 증상이 있어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절망한 브랜드릭 씨는 남은 삶이라도 풍족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마지막을 준비했다. 차도 팔고 옷도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착실히 갚아 오던 은행 대출금 상환도 중단한 그는 매일 최고급 호텔을 찾아다니며 비싼 음식을 먹고 전국 각지를 수시로 여행했다. 장례식 준비도 홀로 다 마쳤다.

 

이런 생활을 1년째 이어가 재산이 거덜 날 무렵 그는 자신의 몸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점을 깨닫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병원은 그에게 췌장암은 없고 단지 췌장염에 결렸을 뿐이라는 진단 결과를 내놓았다. 브랜드릭 씨는 날듯이 기뻤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 순간 찾아온 것은 절망이었다. 암 오진은 근검절약하며 살던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마지막 남은 30만 파운드(약 5억5000만 원)짜리 집도 채무변제로 경매에 넘어갔다.

 

결국 그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병원은 “사연은 안타깝지만 당시 진단 결과로는 분명히 췌장암이 맞았고 오진했다는 증거도 없다”며 소송을 할 테면 해 보라는 태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도대체 위와 같은 기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겠습니까? 병원에서 오진을 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정밀 진단 기계에서 나온 결과를 판독을 잘 못했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결코 오진은 아닐 것입니다.

 

암 진단후 환자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한번 살펴보십시요. 환자는 얼마나 마음을 확 고쳐먹었는지 보십시요. 아, 그동안 잘 못 살았구나 싶어서 마음을 고쳐먹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편한 삶을 살았지 않았습니까. 하다못해 빚도 나몰라라 하고 편하게 마음먹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환경을 바꾸고 나니 병은 저절로 치유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자연히 암세포는 사라지고 췌장염으로 병세가 남았던 것일 뿐일 겁니다. 저 환자가 살았던 삶이 암을 유발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포기하자 암도 떠나버렸던 게지요. 깊이 생각해보아야만 할 기사입니다. 이런 걸 설명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마음을 인정하자니,,, 자신들의 기존 방식을 버려야 할 것이구요. 마음에 병의 원인이 있다는 사실만 인식하면 너무나 쉽게이해 될 수 있는 기사가 아닌가요?

 

현대인의 삶은 지나치게 비인간적입니다. 해야할 일이 너무 많고, 갖고 싶고 누리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큽니다. 남과 비교도 해야지, 눈치도 봐야지, 도대체 자기 존재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나 바쁜 삶입니다. 암은 이런 현대인의 고통스러운 삶에서 오는 현대문명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쉼 한번 제대로 쉴 겨를이 없습니다.

 

이제 추가 실천 사항의 편안한 호흡에 대해서 잠깐 언급해보겠습니다. 평안하고 행복한 상태에서의 숨은 느긋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온 마음과 몸이 이완되었을 때는 자연스런 숨을 쉬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의 잠자는 모습을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잠을 잘 때 배꼽주위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아주 평안하게 숨쉬면 잡니다. 이게 바로 편안한 호흡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자연히 이렇게 됩니다. 배꼽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고 해서 배꼽숨이라고 합니다. 수련이나 명상 단체에서 이야기하는 단전호흡은 잊어버립시요. 그저 이렇게 자연스럽게 평안하게 배꼽 부위 전체가 오르락내리락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자신은 어떻게 숨쉬고 있나 관찰 해보십시오. 특히 여성들은 가슴으로 숨을 쉽니다. 채 배꼽까지 숨이 내려가지 못하고 가슴을 벌렁벌렁하면서 숨쉬는 가슴호흡을 합니다. 급하게 빨리 해야할 일도 있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까 배꼽까지 내려갈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급하게 숨을 내뱉고 들이마십니다. 남자들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화가날 때는 어떤가 한번 보세요. 숨이 가빠지면서 채 가슴까지 내려가지도 못하고 목아래에서 숨이 드나듭니다. 금방 숨이 가빠오지요. 바쁜 마음이 바로 호흡으로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평안한 마음을 갖고 배꼽까지 숨을 들이내쉬는 연습을 해주어야만 합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배꼽주위의 소장에서 뇌에 버금가는 각종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복뇌라고 부른 이유입니다. 그곳까지 숨이 내려가 소장을 자극해주니 호르몬이 잘 분비가 되지요. 당연히 건강에 매우 유익하겠지요.

 

아내에게도 이 호흡을 알려주려 했으나 쉽게 하지를 못하더군요. 요가나 명상 센터에 보내서 배우게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가 됩니다. 체계적으로 잘 가르쳐줄 수가 있으니 한결 배우기가 쉬웠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이 호흡이 육체적 고통을 견디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암통증에 의한 육체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호흡을 편안히 하다보면 마음이 육체와 싸우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병세가 나빴을 때 아내의 상태를 살펴보니 호흡이 너무나 가빴습니다. 그 때도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잘 하게 도와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배우지 못한 것이니 몸이 아팠을 때 하려니 쉽게 될 리가 만무하겠지요.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은 상태를 지켜보려니 거의 죽을 것 같더군요.

 

꼭, 꼭 요가 센터나 명상하는 곳에 가서 복식 호흡을 배워두시길 바랍니다. 건강에 당장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화가 나거나 할 때에 마음을 다스리기에도 매우 유익한 실천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련을 목적으로 한 호흡이 아니라 배꼽이 오르내릴 수 있는 자연스런 호흡법이면 됩니다. 집에서나 사무실에서나 쉴 때 그저 조금만 신경써서 숨을 쉬면 되니까 실천하기도 매우 쉬운 건강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마음의 치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저의 주장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는지는 본인들의 판단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드렸지만, 결국은 잘 사는 법에 관해서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마음이 질병 치유에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마음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산다고 해도 어떤 불편함이나 문제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그냥 나는 육체적인 존재이니까 몸이 원하는 대로 살래, 한다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게 있을까요.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욕심껏 살다가 갈래, 한다고 과연 행복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 인간은 모두 참으로 존귀한 존재이고 또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마음을 따르는 신적인 존재로도 살 수 있고, 육체를 따르는 동물적인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인생을 살지는 본인의 선택이겠지요. 하지만 그 결과는 명백하게 다를 것입니다. 마음을 따르면 살 것이고, 육체를 따르면 죽음일 것입니다. 육체의 병은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는 육체를 오래 유지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마음적인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살리지 못한 고통은 참으로 큽니다. 아무리 그것이 아내의 운명이었다고 해도 너무나 가혹하다 생각합니다. 행복하게 백년해로는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기 존재의 위대함을, 아름다움을 찾아 누리다  세상을 떠나기만 했어도 이처럼 애닯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내의 죽음을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하루에도 여러번 고갯짓을 하면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런 고통을 겪지 않고 사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닥쳐서는 너무 늦습니다. 병에 걸리서 고통받기 전에 미리 미리 대비를 해야만 합니다. 지금껏 말씀드린 내용들은 그 쪽에 관계된 책들을 찾아 읽어보면 다 나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건강한 삶을 위해서 공부해나가면 결국은 행복하게, 인간답게 잘 사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길 기원합니다!

 

 

 

2014. 6. 26.

23:46 ~03:49 (6/27)

 

 

 

 

 

생각, 믿음의 힘을 역설하는

고서 김선욱

 

 

덧글)

 

쉬었다가 쓰려고 일단 게시했는데...

앗, 오래 쓰다보니 말투가 바뀌어 버렸다! 에구구...^^

 

 

교정: 2015. 2. 17. 15:38~16:08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월든 - 참지성의 세계를 탐험하다 | 지난 독후감 2014-06-26 17:27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7724151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저/강승영 역
이레 | 2004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제목 독후감 ... 2. (월든)


김선욱님께서 올리신 글. sunnyson@chollian.net http:// [ 2002.08.20 ]

내 영혼의 이발사는 책이다.

이제는 책을 읽지 않아도 자연의 현상에, 세상만사에 각양각종의 책이 숨어 있음을 발견한다. 마음의 눈을 뜨는 순간 아름다운 언어들이 꽃피듯이 피어나 나를 유혹한다. 그 책들은 무상으로 볼 수 있어 부담이 없고 편리하기도 하며 자연스러워 좋다.

그러나 예쁜 표지를 가지고 있고 그 위에 제목이 박혀 있는 그냥 눈으로 볼 수 있는 책을 보는 재미에도 푹 빠져있다. 하루라도 침을 발라 종이장을 넘기 않으면 어쩐지 허전하기까지도 하다.

고개를 들어야 겨우 하늘이 보이는 시골에서 자라나고 그곳에서 작은 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여태껏 국민학교 때 책을 가장 많이 본 것 같다. 저학년 때는 기억이 나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5학년 이후에 책을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시골 학교라 도서관이라야 책장 서너개 분량 정도의 책이 고작이었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5학년 때인가는 마음대로 책을 빌려 갈 수 있어 하루에 2-3권의 책을 빌려다 보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도서관 담당하는 여선생님이 잘 보아줘서인가 아니면 책을 하두 많이 빌려다 보니 혜택을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때로는 선생님께서 채점을 하실 때는 나도 도와준 기억이 있다.

옆에 나란히 앉아서 채점을 할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선생님은 이혼을 했었다고 했다. 그 때 그것을 알았더라면, 선생님을 위로해주려고 고민을 했었을까? 지금 세상의 이혼녀를 만난다면 나는 그들을 충분히 위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TV를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여 누군가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나는 이 선생님을 찾아보고 싶다.

하여튼 책을 하도 많이 본다고, 아버님께선 학교 공부는 하지 않고 무슨 책만 그리 보냐고 보던 책을 뺏어 반으로 찢어버린 때도 있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님이 그립기만 한데, 그 걸 따져 묻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 때부터 교육은 정말 중요한 것이란 생각을 했다. 내 아버님께서 조금만 더 깨어있으셨다면 이런 실수는 하시지 않았을테니깐… 여러분들도 혹시 자녀들의 교육에 있어 자신의 잣대나 주위와의 비교 때문에 억지 교육을 시키거나 나아가 공부 잘해야 출세하고 잘먹고 잘산다는 어리석은 가치관을 강요하고 계시지는 않는가 물어보고 싶다.

나는 고집이 센 아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 찢어진 책을 화장실에서 찾아 다 읽고야 말았다. 그 뒤로는 숨바꼭질 놀이 하듯 숨어서 책을 보아야 했다. 어려서 주로 사랑방에서 혼자 잤는데, 그 방엔 볏가마가 몇가마씩 쌓여 있었다. 그 땐 호롱불을 밝히며 책을 보았는데 밤늦은 시간에 안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밖으로 나오는 인기척이라도 나면 나는 얼른 책을 볏가마 사이에 끼워 숨기고 자는 척을 하다가 다시 보곤 하였다.

6학년 때인가는 자유교양반이라는 특활반에도 가입하여 책을 보고 했었는데, 그 때는 독후감 쓰는 대회도 있어서 군대회에도 나갔던 기억이 있다. 한번은 그 시절 한참 떨어진 외사촌이 사는 동네에 공부 잘하던 또래 친구를 군대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입상했던 기억은 없다.

외사촌이 사는 동네는 우리 동네서 70여리도 더 떨어진 곳이었는데 나는 방학만 되면 외삼촘댁에 다니러 갔다. 방학 시작하자마자 갔다가 방학 1주일 정도 남겨 놓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3살 더 먹은 형이 나를 우리집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돌아가는 형을 다시 따라간다고 동네 샘거리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지금은 그 시절 무슨 책들을 읽었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 다만 한가지 기억 나는 것은 6학년 때인가 외가댁에 놀러갔다가 사촌이 그의 친구에게서 빌려다 논 너댓권짜리 무협만화를 방학 끝나갈 무렵 집으로 돌아올 때 내가 그냥 가져왔었다. 그 만화책을 같은 반 친구에 빌려줬더니 그 친구가 만화책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도둑놈의 책을 잃어버렸다니 그 친구는 더 고단수였던 것 같다. ^.^

그러나 완력이 더 세었던 나는 그 친구를 매일 괴롭히며 만화책 가져오라고 윽박지르곤 했는데, 대신 다른 책을 주면 안되냐며 그 친구가 타협책을 제시해 왔다. 그 책이 바로 두꺼운 삼국지 1.2권 이었다. 나는 그 삼국지 1.2권을 읽고나서 나머지를 읽고 싶어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 뒤 어린 시절에 삼국지를 구해서 읽었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없다.

이렇게 해서 책을 많이 좋아하게 되었지만 정작 중.고교 때는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책을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뭐 그렇다고 대학 입시나 공부 때문에 책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 때는 전철역 입구에서 헌책들을 파는 것이 유행이었다. 전에는 성균관대역, 명학역, 대방역, 신길역인가 영등포 구청 등에서 본 기억이 있다. 한 권에 2000~3000원 정도 했으니 만원이면 3~4권을 살 수 있으니 좋은 책들을 싸게 구입할 수 있어 좋았다. 아쉽게도 요즈음엔 많이 없어지고 만 것 같다.

성균관대역에서 구입한 헌 책 중에 [책읽는 젊은이에게 미래가 있다](조만제/도서출판두란노)는 책을 보면, 청년기에 읽었어야 할 책도 참으로 많은 것 같은데, 젊은 시절 책을 읽지 못한 것이 많이 후회스럽다. 뭐 조금은 창피스럽겠지만, 그리고 늦었겠지만 젊은이들이 읽어야 할 책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종교적인 색채가 있는 책이긴 하지만 그 책에서는 책을 읽는 유익함에 대해서 많은 점을 언급하고 있다.

“힘들게 책을 읽는 것은 그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왔을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며,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여유를 갖고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이 능력과 지혜를 갖도록 해주며, 늘 고동치는 가슴과 영적 세계에 열린 눈은 암담한 현실의 고통을 이기게 한다.” 또한 좋은 책 한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했으며,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앞으로 책 읽지 않는 사람은 망한다고 말한다.

좋은 책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 한다. 책을 읽어 올바른 가치관을 얻을 수 있으며, 미래에 할 일을 발견할 수 있으며, 잠재력을 계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청소년에게 유익한 독서를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책을 읽고 있는가? 무슨 책을 보아야 하는가? 인터넷의 글 읽기와 독서의 차이는 어떤가? 많은 질문을 던져보고 지금이라도 손에 책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당장 책을 보시려고 결심하신 분이 있다면 나는 [월든]을 추천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매일경제에서 추천하는 글을 보고 읽기 시작했다. 어제 읽기를 마쳤으니 한 권의 책을 읽는데 2주일이 걸린 셈이다. 주로 출.퇴근시 전철 안에서만 보기 때문에 빨리 볼 수는 없다. 그나마 이번엔 일요일인가 휴일에도 보아서 2주일에 읽기를 마칠 수 있었던 같다.

또한 책을 읽는게 조금은 더딘 이유가 있다. 읽다가 중요한 부분이라든가 참고할 부분이라든가 의미를 새겨야할 부분은 밑줄을 긋기 때문에 그 시간도 제법 들어간다. 특히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자로 대고 줄을 긋기란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책에선가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며 읽으라는 충고를 따라서 하고 있는데, 요즈음은 의례껏 줄을 친다.

한번은 내가 읽던 책을 여동생에게 빌려준 적이 있는데, 줄 친 부분이 있으니까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또 뒷부분이 궁금해져서 계속 읽게 된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 뒤로는 누가 내가 읽던 책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줄을 치며 읽고 있다.



………………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강승영 옮김) / 이레…………………

 

 

 

아무튼 월든에 대한 소감을 적어 보면, 한마디로 ‘꼭 보라’는 이야기를 젤 먼저 하고 싶다.

잠자고 있는 그대의 지성을 깨우고 싶다면 월든을 읽어라. 그리고 읽기 어렵다고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읽어라. 끝까지 읽고 나서 책을 평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책을 추천한 저를 바보로 만들 것이며, 더더욱 월든의 저자를 천치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드시 책을 끝까지 읽어라. 한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두번 세번 반복해서 어려운 책을 일생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통독을 하라. 이제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정신세계를 여행하는 자신의 탐험선을 띄울 수 있게 되리라.

처음 기대를 갖고 책을 접하고는, ‘어, 번역이 잘 못 되었나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가져 ‘원서를 보아야겠구나’하고 생각하였으나 계속 읽어 나갔더니 곧 읽기가 쉬워졌다. 전에도 이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한글개역 성경을 읽을 때가 그랬다. 대학까지 나온 내가 성경을 읽으려니 모르는 낱말도 나오고 또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영어판으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고, 결국엔 주로 영어판을 읽었다.

아무튼 월든을 읽으면서 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으며 웃기도 참 많이 웃었다. 그가 말하는 진실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사상의 통렬함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월든은 저자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살던 지역에 있던 작은 호수 이름인데, 이 호수 주변의 외떨어진 곳에 오막살이를 지어놓고 살면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내면서 발견하는 진리와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경제에선 19세기에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과 자연과 함께 하는 친환경적 삶에 관한 이야기라며 자연과 환경을 화두로 잡았지만 나는 차라리 한 인간의 삶에 관한 진실과 진리에 대한 이야기라 보고 싶다.

[월든]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읽은 내 느낌을 소소하게 여기에서 적기 보다는 각자 자기의 느낌을 찾아보는 것이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되어 [일독을 강력하게 권하면서], 매일 경제에서 소개한 내용을 짤막하게 싣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다.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이런 광고가 눈길을 잡아끈다. 흡사 우리가 오직 떠나기 위해 일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이 광고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인간은 늘 떠남을 꿈꾸는 존재다. 마음과 몸의 고향이 자연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왔기 때문이다.
휴가철이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산과 바다를 찾아 떠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회귀본능에 이끌리는 것처럼 자연을 찾아 떠난다. 자연을 파괴했던 사람들이 자연을 만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지불한다.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다.
21세기가 우리에게 던진 가장 큰 화두는 환경문제다. 편하게 마실 물과 깨끗한 공기,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건 인류사회의 커다란 재앙이다.
미국 작가이자 시민운동가였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Walden)은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명저이다.
대략적인 줄거리만 보자면 이 책은 하버드대를 나온 재원이었으면서도 문명사회를 등지고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던 한 자연주의자의 고백록이다.
하지만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면 이 고백록에 담긴 메시지와 세계관에 우리는 놀라게 된다. 왜 마하트마 간디가 이책에 대해 ‘가장 감명깊은 책’이라는 찬사를 보냈는지 알게 된다.
우리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삶에서 종종 위안을 찾는다.
직장과 은행과 매연과 교통체증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살고는 있지만 인간에게 처음 지구 위에 자리잡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꿈이 있다. 다름아닌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꿈이다. 그러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인간이 기울인 노력이 다시 우리를 숨막히게 하고 있다. 소로우는 숨막히는 것들과 이별을 고한 사람이다. (33면에 계속…생략하겠음.)
-.-.-.-.-.-.-.-.-.-.-.-.-.-.-.-.-.-.-.-.-.-.-.-.-.-.-.-.-.--.-.-.-.-.-.-.-.-.-.

나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45세에 요절한 것을 알고는 크게 슬픔에 젖었다. 그렇듯 치열한 구도자가 45세란 젊은 나이에 갔다는 게 너무나도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다른 좋은 많은 책을 남길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소로우를 생각하면 나는 또 한명의 미국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벽안의 스님 현각.

책방에 갈 때마다 늘 눈에 띄는 것이 현각스님의 저서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였는데 선뜻 구입해서 읽지 못했었다. 왜 그 책을 선뜻 집어 들지 못했냐 하면 제까짓 외국인이 불교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어 하는 어줍잖은 자만심 때문이었다. 내가 그래도 불교의 나라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아무렴 저보다 더 모르겠나 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에서였다. 참으로 우스운 생각이었다.

아무튼 나는 현각의 그 책을 읽고 수없이 울었다. 왜 파란눈의 외국인이 모든 인연을 끊고 한국의 숭산 스님을 만나고 한국 불교를 만나게 되었는가를 알고, 그의 치열한 진리에 대한 구도자적 정신에 나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러한 그가 측은하기도 하였고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는 한국의 선불교에 끌렸던 것이다. 아무튼 벽안의 외국인에서 나는 또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나는 소로우에게 나의 최대한의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눈물이 난다!

그를 만나고 그의 생을 만나니

나는 그가 그립다


그는 가고 없지만

나는 이제 그가

나와 함께 살아 있음을 느낀다



당신을 만나

나는 두 주일간이나 행복했고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울음을 멈추고

또 다른 나 자신인 사람들에게

당신을 알리고 싶다  


 


2002. 8. 19 13:36  

 



8월도 어느날 아침에...

고서


조회수 : 150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연어 - 진리의 길을 향해 나아가다 | 지난 독후감 2014-06-26 16:56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7724133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연어

안도현 저
문학동네 | 1996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제목 독후감 ... 1. (연어)


김선욱님께서 올리신 글. sunnyson@chollian.net http:// [ 2002.08.06 ]

나는 요즘 깨닫지 못하면 죽는게 낫다는 처절함과 진리를 알지 못하면 굶는게 낫다는 절박함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싸움으로 나는 지쳐있다. 나는 적어도 우리의 삶은 무엇을 위해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삶이어야 하고, 이 지상에서의 삶은 여행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것을 들어서 머리로 이해는 하고 있으나, 이러한 것이 폐부로 깊숙이 몸서리쳐지게 확연히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여 나는 오늘도 깨달음에, 진리에 목숨을 걸고 있다.

요즈음은 책도 많이 읽고 있다.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책을 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 진리의 단초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하여 만나는 이마다 감명 받은 책이나, 소개해 줄 좋은 책이 없느냐 묻곤 하였다. 그렇게 하여 한 두 권씩, 나름대로 찾아서 몇 권씩 나는 그렇게 종교 . 철학 서적에 심취하여 왔다.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불빛은 항상 몇 발치 앞에서 나의 앞길을 밝혀주는 듯 했지만 결코 그곳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때에 게시판에서의 깨달음에 관한 토론은 나의 깊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구름님의 불교의 깨달음은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종교가 우리에게 어떤 깊은 성찰을 줄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하여 솔직히 말하면 불교적 깨달음이든 기독교적 교리든 종교에 속하는 한 종교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언정 진정 깨어있는 삶을 추구하는 자연인에게는 이미 거리가 멀다고 보기 때문이다.

차라리 나는 그저 단순한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라도 책을 통한 마음의 여행을 떠나겠으며, 모든 것을 놓는 명상을 통해서 그 길을 찾고 싶다.

며칠 전 어떤 분께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였더니 어른들이 읽는 동화책이라며 [연어]라는 책을 추천해 주시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좀더 수준 높은 책이었으면 좋을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 가벼운 책도 좋을 거야’ 하며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하여 그 책과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같이 인터넷으로 주문하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책 읽는 여인이라고 생각해왔다. 예전에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 할 때 전철을 이용했었는데, 그 때는 책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보다 편하게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만 하는 현대인들은 보통 잠이 부족한데 출퇴근 길 전철에서는 단잠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는 듯 했다. 요즘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은데 특히 여성들이 책을 많이 본다. 소설이든 시집이든 책을 읽는 여인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다 내 마음 탓이려니 생각한다.

책을 읽지 않는 민족은 망한 민족이라 한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 어려서는 공부를 하기 위해,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었다면, 이제 성인이 된 우리는 참다운 지혜를 얻기 위해 깨달음을 위해 책을 읽어야만 하리라. 우리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축적했다 한들 지혜를 얻지 못하면 깨어있는 삶을 살 수가 없는데, 지혜를 얻을 때인 성인이 되어서는 책을 너무나 멀리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여 나는 몇 권의 책을 읽으며 독후감을 써 볼까 한다. 그 분의 고마운 마음을 기념하여 나는 [연어]로부터 시작하여 의도된 독서를 해 볼까 한다. 여러 벗님들께서도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으시다면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다.


…………………(연어)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어제 점심무렵 택배로 책을 받고 점심 때와 저녁 때 업무 끝나고 읽었는데 워낙 책이 얇고 읽기가 편한지라 금방 다 읽어 버렸다. 사실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읽어가는 것이 좋으련만 마음이 급해서인지 후딱 읽어버리고 말았다.

연어라는 말에서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써내려 간 동화였는데, 새삼스레 동물을 인격화 하여 감정이입을 시킨 점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해 보았다. 만약 미물인 동물이나 나무 등 식물에도 감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다만 우리 인간이 그것을 알고 있지 못할 뿐이라면 우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잘 못을 저지르는 것인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로 시작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화두 하나를 잡았다. 그것은,

깨달음!

공교롭게도 단순히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에 지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깨달음에 관한 것이었다. 한 마리 연어가 그 일생을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 운명이라는 것, 삶의 여정, 그리고 사랑… 마침내 승화된 죽음에 이르는데…

책을 읽으며 나는 마치 한 마리 연어가 되어 인생이라는 강을 헤엄쳐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는 죽어가는 연어의 일생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결국 땅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인생과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머나먼 바다에서부터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아름다운 마음 속에 그려진다.

그 길고 긴 여정에서 만나는 바다, 강물, 단풍잎과의 대화 그리고 아름다운 연인 [눈맑은연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마침내 자신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녹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폭포라는 시련의 벽을 넘어 감격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내가 승리한 듯한 느낌이었다.

단지 알을 낳기 위해서 그 머나먼 여정을 쉬임없이 달려왔나 하며 번뇌하는 은빛연어의 모습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만 하는가 하고 고민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연인인 눈맑은연어와의 사랑에 빠질 때는 마치 내 가슴이 붉게 물드는 듯 했다. 왜 고통과 시련을 견뎌내야 하는 대목에서는 지난날의 내 생을 반추해 볼 수 있었으며 왜 고통 속에서 깨달음의 꽃이 피는가를 알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괴물들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고 자신들이 상처를 입지만 끝내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모습에서는 차라리 숭고함을 느꼈다.

마침내 내가 너와 다르지 않고 우주가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고는 죽음마저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아 나는 희망이라는 것에 유혹당하기 보다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기쁨을 노래하는 한마리 새처럼 순간에 존재하는 삶이어야 함을 깨닫는다.

미래의 달콤한 꿈과 희망을 위해 현재의 어려움을 인내하는 것이 아닌, 죽음을 향해 치달려가면서 번뇌하는 것이 아닌, 지금 순간에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진저리쳐지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죽어도 좋으리라.

머리에서 이해되는 것이 아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면…

나는 오늘 한 마리 연어가 되어 벗님들의 세계, 사유체계, 논리 그리고 깨달음 속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2002. 8. 6


고서


조회수 : 83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지난 독후감을 게재하면서... | 지난 독후감 2014-06-26 16:42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7724114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아무도 읽지 않은 책

오언 깅거리치 저/장석봉 역
지식의숲 | 2008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지난 이야기 메뉴를 만들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어쩌면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다. 옛날 이야기들을 새삼스레 들춰보면 미숙했던 점, 잘못한 일, 올바르지 못했던 생각 등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마음일 게다.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는 것은 그래서 얼마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위에 링크 건 지난 이야기 메뉴를 만들다라는 글에서 밝힌 것처럼 기존의 홈피가 완전히 새롭게 개편될 것이기에 기존의 글들을 대피시켜놓는 차원에서 지난 독후감들을 이곳 Yes에도 옮겨놓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누가 읽어보기야 하겠는가마는, 자료 보관 차원에서 철지난 독후감이지만 이곳에 게시하려고 한다.

 

사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2002년 9월부터인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두어야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매주 1권씩의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그후 계속 지켜왔는지는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모르겠다. 책을 읽고나서 란 메뉴를 만들어 기록해 왔다. 참고삼아 링크를 걸어봐둔다. 홈피가 개편되고 나면 연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 http://www.myinglife.co.kr/bbs/bbs.htm?dbname=B0041&mode=list&page=66&ftype=&fval=&etc=

 

메뉴의 시작 글을 옮겨적어 본다.

 

제목 '책을 읽고나서'를 시작하면서...

저희 집에서의 화두는 늘 '독서'랍니다.

올해 4학년에 올라가는 딸아이 예지는 책을 보는 것을 참 좋아해서
학교에서 독서장 상을 꽤 많이 타 왔습니다.

아들 성준이는 2학년에 올라가는데, 아직 책을 잘 읽지는 못해도
가끔씩 책을 봅니다.
1월 1일 신정에는 가족이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란 영화를 보러 외출을 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서점에 가서 책을 한권씩 사주었는데
만화로 된 책을 사 주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아들 뜻대로 해도 좋겠지만
아빠의 소망을 따라서 자라면서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해 봅니다.

아내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자주 이야기를 하니깐 조금씩 책을 보기도 하지만
아직도 좋아하는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늘 관심을 갖고 책을 보도록 권유해보야겠다고 생각하지요.

올해 저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권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답니다.
출.퇴근 시에 오가는 전철에서만 읽어도 일주일에 한권은 읽을 수 있거든요.
유익한 책을 많이 읽고 간단하게나마 독후감을 써 보려구합니다.

저는 사람은 늘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은 긍적적으로,
자기자신 밖에 모른다면, 이타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가족에 무관심한 사람이 따뜻한 가족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변하를 한다면
세상은 점점 아름다운 세계로 변화할 것입니다.
이렇게 점점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이 세계에서 바로 천국, 극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변화를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바로 독서가 아닐까 합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지식을 쌓을 수 있을 뿐만아니라 지혜도 넓혀갈 수 있고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나아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책읽기를 통한 인생상담이란 코너도 마련해서
현실세계를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가지 문제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그에 맞는 책을 추천하는 방식을 통해서 상담을 해 볼까 합니다.

이 글을 보는 단 한사람에게 만이라도 즐거음을 줄 수 있고
책을 손에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너 나은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감사할 일이지요.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3. 1. 13. 9:17


김선욱 드림


덧글) 지금까지 몇권의 책을 읽으면서 구름님의 싸이트(www.cafeclouds.com)에
올렸던 몇편의 독후감을 일괄 게시할 것입니다.

 

 

                   * 책에 대한 리뷰가 아닌 이 일반 포스트 글이 게시가 될지 아직 모르겠다.

                       (역시, 상품을 반드시 추가하여야 합니다, 라는 메세지가 뜬다! ) 

할 수 없이 틈새독서를 선택했으나, 이미 독후감을 써 올렸기에 될지 모르겠다!

(해당 상품에 대한 리뷰를 이미 썼습니다, 라는 메세지가 뜬다!)

어떻게 하면 글을 게시할 수 있을까?

[아무도 읽지 않은 책, 이란 책이 다 있다^^ 미안하지만 이책을 선택해야겠다]

또, 메시지가 나온다, 평가를 해달란다.

(읽지 않은 책을 어찌 평가하란 말인가! 중간을 선택해야겠다.)

 

 

참고로, 책을 열심히 읽어왔지만 나의 책읽기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아니 어쩌면 많이 다르다고나 해야할까. 책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였다기 보다는, 읽는 책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독후감(or 리뷰)를 쓰는 것 자체도 일반적인 것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책들은 저마다 어떤 주장이나 설명을 담고 있지만 극히 부분적인, 혹은 편파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책들은 유행에 따르는 것에 불과하기도 하고. 진짜 좋은 내용을 담고 있거나 훌륭한 책들을 선별하는 작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독후감에 책들에 대한 평가는 유보해 두었다. 어떤 책이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신념하에서 책의 수준이나 질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나의 독후감은 그 책에 대한 권독서가 아니었나 싶다. 

 

혹시라도 누군가 나의 독후감을 읽게 된다면,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독후감 자체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과 같은 살기 힘든 세상에서는, 나는 독서는 인생공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취미를 넘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너무나 복잡한 세상살이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을 잘 지킬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길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야 오래 잘 살면서 취미로의 독서 또한 잘 해나갈 수가 있을 것이리라.

 

자체에 다시 한번 인생 공부를 위한 독서를 권하는 바이다. 적어도 일정 수준의 독서를 해온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 독서를 시작한 사람들은 우선은 독서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처음부터 인생 공부라는 좀 부담스러운 요구를 한다면 책을 가까이 하기도 어렵긴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길을 걸어야 하리라.

 

책이 누구에게나 인생길을 밝혀주는 등불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14. 6. 26.

16:29

 

 

 

독서 전도사

고서 김선욱

 

 

덧글) 죄송합니다만, 저는 이 책 읽을 읽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책을 읽어서 이 미안한 마음을 표하겠습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 2 3 4 5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나의 네이버 블로그
나의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