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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시간: 2015. 2. 17. 18:47 ~ http://blog.naver.com/hoiyeon0310/140208727852

 

사랑하는 아내가 황망히 세상을 떠난지도 어언 1년이 다 되어간다. 작년 이맘 땐 아내가 많이 아파서 종합병원에 입원해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시기이다. 그로부터 채 두 달이 안 되어 아내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토록 빨리 인간의 생명이 허물어져갈 수 있는지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 다시 작년 이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내를 살릴 수 있었을까 헛된 생각을 다 해 본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설령 뾰족한 방법이 달리 없다고 해도 진정 온마음을 다해 다시 한번 치유해볼 수 있을 것이고, 어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해본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다. 오늘도 새벽녁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늦게까지 깨어있다가 9시가 지나서야 잠을 잤다. 그러고는 1시경엔가 일어나 Yes24 블로그에 올렸던 건강글 교정을  보기 시작해 방금전에야 마쳤다.

 

다시 설명절이 돌아왔건만 우리집은 황량하기 그지 없다. 딸아이는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직장엘 나갔고, 아들은 방금전에 일어나 알바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겨우 식빵 두 쪽에 쨈을 발라먹고는 주린 배를 참고 견디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지어주는 밥 한끼가 너무나 절실하게 그립다. 오늘은 특히 그런 마음이 간절하다. 새벽녁 존경하는 류선생님께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발렌타인데이 날 어느 아내가 남편을 생각하며 만든 음식 이야기에 관한 남편의 사랑글(http://cafe.daum.net/dreamy7036/bQD2/1)을 읽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부럽기만 했다.(18:59) 배는 고파 밥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데 밥해먹을 마음이 영 생기지 않는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다 라면이나 끓여먹을 생각이다.

 

식구(食口)!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하지만 내게는 함께 맛있는 밥을 먹을 가장 중요한 식구인 아내가 없다. 내게 맛있는 밥을 해줄 사람도 없거니와 내가 어찌 어찌 해서 밥을 짓더라도 같이 먹어줄 그 식구가 없다. 세상에 행복이 별건가. 그저 함께 있어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식구만 있어도 얼마나 큰 행복인가.    

 

아내는 음식을 참 잘도 만들었다. 뚝딱뚝딱하면 밥이며 반찬이며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려 만드는 것처럼 쉽게도 만들었다. 그렇다고 맛이 없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내게는 정말 아내가 하는 음식은 모두 기똥차게 맛이 있었다. (19:13) (11:30 2/18) 그해 겨울엔 육개장을 몇번 끓였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같이 일하던 사람에게 자랑을 다 했었다. 음식은 손맛이라고 하는데 손맛은 결국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든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줘야지 하는 마음에서 만드는 음식은 만든 시간이 짧더라도 맛이 나는 것 같다. 물론 아무 음식이나 잘 먹었던 나의 잘먹는 능력도 상승 작용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떠난 뒤 몇 번이고 밥을 해먹으면서 느낀 것이, 인생이라는 게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보면 먹고 배설하고 일하고 쉬고 잠자는 일의 반복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먹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한 일인 셈이다. 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으니깐 말이다. 하루 세끼라지만 먹고 돌아서면 또 먹어야 하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먹는 먹어야만 하는 삶이다. 그러니 가족들을 위해 세끼 음식을 준비해야하는 아내들에게는 여간 고충이 아니겠다 싶었다. 주부들이 자주, 오늘 저녁엔 뭘 해먹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이해가 갔다. 애써 만든 음식을 조금 맛이 없다고 해도 정성을 생각해서 맛있게 먹어줘야만 하는 게 다른 식구들의 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해 보았다.

 

건강한 삶 그리고 치유를 위한 식사에서 식의동원(食醫同源)이라고 음식의 중요성을 거론했는데,  영양을 따지고 맛까지 고려해 가며 세끼 준비하는 일도 어찌보면 번거롭고 힘든 일인데 보다 더 신경을 써야한다고 주문하는 일은 어찌보면 좀 가혹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먹는 일이야말로 중요한 일인 만큼 보다 세심하게 준비해야만 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주부들에게 건강한 밥상을 차릴 것을 강조했는데, 식구들은 잘 먹어주어야만 한다고 요청하고 싶다. 건강한 밥상은 사실 입맛에 맛는 음식이 아니다. 맛은 덜하고 어찌보면 거칠기까지 하다. 그런데 애써서 준비한 밥상이 맛이 없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짜증을 낸다면 음식을 준비한 아내나 엄마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그야말로 속이 뒤집어지지 않겠는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어만 한다. 본래 맛이라는 것은 길들여진 것에 불과하다. 소박한 밥상에서 맛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만 한다. 음식 맛이 없다고 타박을 해선 안 된다. 만일 음식 맛이 없어 수저를 놓을 상황이 되면, 그대로 쭉 몇끼를 굶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에는 하루 한끼 밖에 먹지 못해 주린 배를 부여잡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몇끼만 굶어보면 배가 고파 환장을 할 것이다. 그 때 차려준 밥상을 한번 받아보길 바란다. 아마도 꿀맛보다도 더 맛이 좋을 것이리라. 어쩌면 감사한 마음까지 들지도 모른다.

 

내친 김에 하는 얘기지만, 일주일 하루쯤은 굶어도 좋다. 하루 단식을 해보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배고픔을 느껴볼 수 있고, 건강상으로 보아도 장을 다 비워내는 일은 유익한 일이다. 그리고 못 먹고 사는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슬림에서 라마단이라는 종교의식을 치루는데, 이 기간에는 금식을 한다. 이는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린 의도적인 행사인 것이다. 나만 배불리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그치지 않고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처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려깊은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내 이웃이 배고파 죽는 고통을 더 이상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여유있는 사람들은 각종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호사를 누리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식도락가들은 건강치 못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오감을 쫓으며 사는데 유감스럽게도 오감은 절대 만족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면이 있다. 왜냐하면 점점 더 강도 높은 자극을 쫓기 때문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으면 물리기 마련이라 다른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된다. 음식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점점 더 미식을 돋구는 음식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을 맛있는 음식을 찾아 돌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어찌 훌륭하다 하겠는가.

 

요즘에는 너무 잘 살다 보니까 각종 활동에서 최고의 수준을 누리고 싶어 한다. 여러 활동을 하면서 예와 도를 추구한다. 최고 품질의 커피를 찾는 매니아도 있고, 좀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다도를 즐기는 사람들고 있고, 무도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인간 삶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 먹는 것에서는 도를 찾을 줄 모른다. 가장 먹저 배워야할 것이 식도가 아닌가 싶다. 아내나 어머니가 정성들여 준비한 세끼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것을 가장 먼저 배워야할 것이다. 수고스럽게 차린 음식을 대할 때, 먼저 식구들을 위해 정성을 다한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밥상을 대할 일이다. 감사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거든, 몇끼를 굶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본인이 한번 음식을 만들어 보길 바란다. 얼마나 많은 노고가 들어가는지를 안다면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진짜 미식가가 할 일인 것이다.

 

오래 전 동생과 함께 일하면서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던 때가 있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컵라면을 먹으면서, 늘 동생에게 하던 말이 있다. 비록 컵라면에 불과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얘기를 했다. 그 때 동생은 건강식에 관심이 많아 유기농 식품을 찾고,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컵라면을 어떻게 맛있게 먹느냐고 반론을 제기하곤 했었다. 나는 줄기차게 무엇을 먹든 감사한 마음으로 잘 먹는 게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곤 했었다. 그렇다,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잘 먹는 것이,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것이 중요한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 마음 공부를 하고 그런 바탕에서 건강공부를 하게 되면서 나중에서야 동생은 내말에 수긍을 했다. 물 한컵을 감사한 마음으로 마실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일이 식도의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13:00) http://blog.daum.net/quilt-sfs/381

 

감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게 느껴지지가 않으니깐 말이다. 대체, 거의 공짜로 (요즘은 물로 사 마셔야 하지만 여전히 공짜나 다름없는 싼 값에 사 마실 수 있으니까 ) 마실 수 있는 있는 물을 어떻게 감사한 마음으로 마실 수 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아무런 수고나 애들 쓰지 않고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어떻게 감사한 마음이 들겠는가 말이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그건 아니지만...) 매달 통장으로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대하고 어떻게 감사한 마음이 들겠는가. 우리는 자신이 애를 쓰고 고생을 하여 어렵게 어렵게 얻은 것이 아닌 다음에는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게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세계이다. 그런데 자신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란 말인가, 하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감사의 스킬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감사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기도 한 것이다. 방법은 없다. 자신이 직접 체험을 해 보거나 깊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만 한다. 또 한가지가 있다면 간접 체험이 있기는 하다. 멀리 아프리카의 못사는 나라에 여행을 하면서 한끼 식사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을 눈으로 직접 본다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행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를 느끼거나 깨닫게 될 것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아빠가 멀리 일하러 집을 비운 사이, 아들은 제가 직접 밥을 해먹어보고, 빨래를 해보고 그리고 화장실 휴지를 치워보고 나서야, 엄마가 예전에 얼마나 힘들었지를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리고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직접 경험을 해보니 그 모든 일들이 엄마의 수고에 의해서 누렸던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모두 자기가 직접 경험을 해보면 자기가 누린 모든 것들이 남들의 수고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다 경험해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 때 필요한 것이 간접 경험일 것이다. 우선 내가 얼마나 행복한 환경에 살고 있는지를 느끼려면,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느끼는 바가 많을 것이다. 고아원을 찾아보든, 시장통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든지 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도 직접 체험이라고 간주한다면 남은 방법은 진짜 간접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을 통해서 경험해보면 된다. 가장 싼 값에 경험을 해볼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식도에서 한가지를 더 꼽아본다면, 항시 조금 부족한 듯 먹는 게 좋다. 현대 질병의 많은 병이 풍요병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잘 그리고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이다. 넘치게 먹으니까 오히려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형도 많이 바뀌어가는 듯 싶다. 아직도 심각한 상황과는 거리가 멀지만 점점 미만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너무 잘 먹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병이라고 할 수 있는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적정하게 먹을 필요가 있다. 배가 찾다 싶으면 수저를 놓아야 한다. 못먹어 배고프던 시절에야 어떻게든 있을 때 많이 먹어두어야했지만 요즘에는 배고프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풍요로운 시대가 아닌가.

 

최근 몇개월 동안 다이어트(미용을 위해서 하는 살빼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매끼 적절하게 먹는 진정한 의미의 규정식Diet을 의미하는 것이다.)를 했다. 매끼 약간 부족하게 먹었다. 그런데 그게 매우 힘드는 일이었다. 항시 배고픈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살이 빠지기 시작했으며 체중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태를 유지하려니 참 힘들었다. 항시 과식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는데 회식을 하거나 밖에서 음식을 사먹을 땐 곤란했다. 음식을 사먹을 때는 반밖에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차는 것이었다. 그러니 반밖에 먹지 않고 남겨야 하니 아까운 생각도 들고, 모처럼의 회식이니 많이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 해서 과식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절제력이 있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조금 부족하게 먹는 일이. 몇달을 그렇게 사니 차츰 익숙하게 되었고 많이 먹지 않고 힘든 일을 했는데도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부족하게 먹어도 얼마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식의동원이라고 이전 글(http://blog.yes24.com/document/7769049)에서 언급을 했지만, 잘 먹기보다는 제대로 먹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감사한 마음으로 적당하게 먹는다면, 그런 습관을 들여나간다면, 먹는 즐거움도 누리면서 건강하게 오래 오래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아직 식빵 두쪽을 먹었을 뿐이다. 이런 사람에 비하면 맛있게 3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이겠는가.^^ (~15:33)

 

 


* 참고 - 아래 불교의 가르침에 대한 해설은 극히 단순화한 것으로 오늘날의 용어로 알기 쉽게 설명한 것입니다. .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탈 혹은 열반에 이르는 큰 깨달음 혹은 그 깨달음을 얻는 데에 목표를 두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주어진 인생을 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교 공부를 깊이 하신 분들의 불교에 대한 이해와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이점 양해하시어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따라서 토론을 하시고자 하는 분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응해 드릴 수가 없음을 양지해주실 바랍니다. 그러나 잘못된 견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댓글로 지적을 해주셔도 좋습니다.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아내가 없으니 집안 꼴이 엉망진창이다. 남들이 와서 본다면 아마 기겁을 할 것이리라. 내 자신이 게으르고 지저분한 성격이라 더욱 그렇겠지만 (남자들이) 집안을 잘 정리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집안의 중심 역할을 하던 아내가 없으니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옛말에 아내를 안해라고 했던가, 집안의 태양.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이리라. 이런 상황에 차츰 더 익숙해지고 적응이 되겠지만 모든 게 어설프기만 하다. 시간이 멈춘 듯 딱 그때 그 상태로 남아 있다.

 

오래 전에 서재방을 좀 치워볼까 하고 책상 정리를 한 적이 있다. 큰 마음 먹고 시도를 했으나 며칠 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꼼꼼하게 차근차근 정리를 하든지 아니면 다 버리든지 해야할 판인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기에 그만두고 말았다. 오래 된 것들이라 필요하지도 않은 것이 대부분인데도 버리질 못하겠으니 집착하는 마음이 커서일 게다.

 

박스를 하나를 뒤져보다가 깜짝 놀랬다. 신혼여행 때 찍어두었던 사진이 봉투째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꺼내 한장 한장 보자니 참 슬픔과 서글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갖 결혼한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거기 있었다. 얼마나 행복했으며 또 희망에 찾겠는가. 바로 엊그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20년이 넘는 세월이 훌쩍 흘러갔으며 짝 한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그야말로 인생무상함이 느껴졌다. 지나고 보니 인생이란 정말 찰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산다고 해도 앞으로 두어번 더 찰나와 같은 짧은 삶을 사는 것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조차 부처님의 깨달음에 따르면 덧없이 일임에 틀림이 없지만, 짧디 짧은 인생 정말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http://blog.naver.com/monkmoney/220144457398       

 

좀 어렵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잠깐만 살펴보자. 부처의 깨달음은 참으로 명징한 것이다. 깊은 사유를 얻어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오감을 통해 얻은 감각적 정보와  이성적 사유를 통해 얻는 관념의 세계가 있다. 무념무상이란,,, 이런한 행위에서는 나오는 일체의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결국 생각이 없는 상태를 말함이다. 그런데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에 끌려 살아가고 있는 우리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생각이 없는 상태로 존재할 수가 있겠는가. 어쩌면 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누구나 가끔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것에 극히 몰두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한 경우가, 어려서라든가 혹은 잠깐이나마 내가 뭘하고 있었지 하는 정도의 몰아의 경험을 하는 수가 있다. 이런 경우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상태이다. 이런 몰아의 경우는 흔히들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 상태에 관해서 쓴 책이 바로 몰입의 즐거움 혹은 몰입의 기술이라는 책이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또다른 방법이 있다. 호흡수련이나 명상을 통해 이런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질 수가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정말 간단하다. 일체유심조! 세상 만사가 마음에 달려 있다는 너무나 간단한 이치이다.  

 

일체유심조( 造) []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 마음이라고 하면 불교적인 색채를 띄니까 좀 이해하기 어려울 것도 같으니까 현대적인 일반 용어로 바꾸어 보자. <생각>이라고 하자. 즉 모든 것(세상의 모든 일)은 생각이 만들어 내는 것에 불과하다. 얼마나 단순한 명제인가. 아마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이해를 할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러냐? 하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설명해주기만 하면 된다.   

 

'세상의 모든 일'이란 말도 너무 거창하다. 그러니 더욱 단순화시켜 보자.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생각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쯤되면 다 동의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생각의 작용에 대해서만 조금 깊이 알기만 하면 된다. 그 전에 부처님의 깨달음을 하나더 살펴보자.

 

불교에서 불.법.승 삼보라 한다. 불은 부처님을 말함이고, 법은 부처님의 깨달음이며, 승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스님들이 지칭하는 것이다. 종교적인 색채를 지우기 위해 부처님도 버리고, 스님도 버리자. 그리고 나면 부처님의 가르침만 남는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부처님 자체도 아니고, 스님들도 아닌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 우리 삶에 적용하면 그뿐이다. 이제 종교는 사라지고 가르침만 있으면 되는 시대이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이냐. 즉 법은 무엇인가.

 

법(), 즉 부처님의 깨달음 혹은 가르침의 핵심을 우리는 사성제(諦)[]라고 한다. 4 가지 큰 깨달음이라고 해서 이리 거창하게 부르는 것이다. 고집멸도(道)[]를 말하는 것이다. 고는 우리네 인생이 고(통)이라는 깨달음이다. 집은 인생고가 번뇌.망상.집착에서 생긴다는 의미이다. 멸은 그러한 인생고를 없앤 절대 행복 혹은 평화라고 해석하면 좋을 것이다. 도는 그러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을 일컫다고 보면 된다. 너무 간단하다. "우리네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인데 그러한 고통은 바로 헛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니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서 참행복을 누리며 살자. 그렇게 하려면 팔정도를 수행하면 된다."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다. 이제 그 수행 방법을 알아보면 된다. 

 

팔정도(道) [] 깨달음을 얻는 8가지 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여덟가지는 정견()·정사유()·정어()·정업()·정명()·정념()·정정진()·정정()을 말한다{(상세해설 링크 참조요 ->)[]}. 8개의 바른 방법이 또 깊이 들어가면 한없이 복잡할 것이므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생사에 (혹은 깨달음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여,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면, 지복[(至福: 더없는 행복), 해탈.열반의 대치어로 사용한 것임.]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이다. 

 

부처님의 출가로부터 해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태어나서 늙고 병이 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을 보니 참으로 고통스러운 아닌가. 하여 부귀영화를 버리고 진리 혹은 깨달음을 찾아서 처자식.왕궁을 버리고 바같 세상으로 수행의 길을 떠난다. 수많은 선각자들을 만나 가르침을 듣기도 하고 또 온갖 고행을 하면 수행을 해보나 정각을 얻지 못한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었겠는가. 지치고 힘든 몸을 가누지 못해 어느 나무 밑에서 쓰러져 잠들고 만다. 다음 날 분부신 햇볕을 받아 아침에 일어나 가부좌를 틀고 고요히 앉아 명상을 한다. 아마도 (호흡수련을 하며) 고요한 상태에 머물게 되었을 것이리라. 한참 동안 무념무상의 상태에 머물다가 홀연히 큰 깨우침을 얻게 된다. 마음이 극히 평화로우며 일체의 번뇌가 사라져 버렸다. 해탈을 한 것이다. 이제 이 큰 깨달음을 어떻게 하면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줄까 깊이 사유하게 된다. 깨달음을 얻게 된 모든 과정을 되짚어보며 원리를 밝혀낸다. 이제 이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천천히 속세로 발걸음을 떼어 나간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가르침을 전하고 또 자신의 깨달은 바와 달랐던 기존의 구도자들을 만나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깨달은 후 40년 동안 사람들 만나고 대화하고 가르침을 설파하면 살다가 열반에 든다. 이것이 부처님의 삶이었을 것이리라. 

 

사실 부처님은 인생고를 가르친 것이 아니다. 언뜻 보기에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으며 사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고해다 싶었는데, 깨달아 깊이 사유해 보니, 사람들이 바르게 생각하고 제대로 깨우쳐 살기만 하면 참으로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간파하셨던 것이다. 지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성제이며 팔정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게 된 사유체계가 바로 인생사 혹은 인생 3세(과거.현재.미래)는 12연기법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12인연(緣)(혹은 12연기법)[]은 간단히 표현하면,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같은 우리의 삶이,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것이 원인이 되어 아이를 임신하고 낳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아주 단순한 법칙인 것이다. 사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뿐이지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열심히 공부한 것이 원인이 되어 시험을 잘 치루고, 시험을 잘 치룬 결과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과 같이 모든 일이 이와 같은 연기, 혹은 인연법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너무나 간단한 원리 혹은 법칙이 아닌가.

 

좀더 간단히 설명을 하면, 한 생각이 있으니까 또다른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처음 것이 원인이 되어 다음 것의 결과가 나온다. 그러므로 생각을 잘 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거의 모든 생각은 감정으로 연결된다. 그것이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감정을 초래하다. 혹은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점인데,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 몸에 해를 끼친다는 점이다. 화, 분노 등은 우리 몸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이점은 이전 글(마음이 신체를 완전히 지배한다. http://blog.yes24.com/document/7724496)에서 잘 설명했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는 거시적으로는 나와 타자(혹은 외부 세계)와의 일대일 대응 관계이다. 이 관계 속에서 각종 문제와 고통, 고민이 생겨난다. 미시적으로 볼 때는 나와 내면세계와의 일대일 대응 관계이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더 근본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는 다른 기회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고 타자와의 관계만을 생각해보자. 부부간의 관계, 모자 (혹은 부자, 모녀)관계, 나와 시댁(친정)과의 관계, 나와 직장 상사(혹은 부하 직원)과의 관계. 나와 사회, 국가와의 관계 등등. 모두 나와 타자와의 관계인데, 이러한 모든 관계에서 나의 생각 하나가 큰 원인이 되어 다른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다. 

 

최근에 딸아이가 추천해주어 her라는 영화를 보았다. 아내와의 별거 상태에서 주인공은 OS 의식체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인데, 아내와의 관계에서 직접적인 원인인 생각(의 차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았으니, 여자 친구가 남자친구(혹은 애인)와 헤어지게 된 결과를 생각해보자. 여자 친구는 6년(혹은 9년; 잘 기억나지 않아서) 동안 함께 살던 남자와 헤어지는데 그 원인이 아주 사소한 문제인 신발을 어떻게 벗어놓느냐 하는 문제로 다투게 되어 결국은 헤어지게 된다. 어찌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얘기가 나올 정도로 우리들 부부 혹은 연인 관계에서도 매우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하고 싸우고 결국 헤어지기도 큰 고통을 겪게 된다. 이런 삶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인 것이다. 또다른 외국 영화에서도 치약을 어떻게 짜는가와 같이 아주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을 하고 결국 헤어지지고 한다. 이처럼 큰 고통을 초래하는 불행한 삶이 아주 사소한 문제가 불거져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고정된 관념에서 나온 아주 의미없는 하나의 생각, '왜 치약을 중간에서 눌러서 짜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마음이 불편해 진다. 그런 생각은 사랑하는 부부가 헤어지게 되는 큰 고통에 비추어 보면 정말 하잘 것 없는 아주 작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친구들 모임에 나갔다가, 우연히 남편들 월급 얘기가 나왔는데 친구 남편이 500만원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의 남편은 300만원 밖에 받지 못하는데 말이다. 이때, 왜 우리 남편은 300만원밖에 못받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을 하니 속이 상하고 만다. 마음 속으로 남편에 대해 불평, 불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저녁 때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남편을 퉁명스럽게 대하고, 마침 아이 학원비를 내야하는데 돈이 부족한 상황이라, 아침에 일 나가는 남편에게, 얘기 끝에 급기야  남들은 돈도 잘만 벌어오는데 당신 회사는 어째서 월급이 안 오르냐며, 바가지를 긁는다. 일 나가는 남편은 그 소리에 그만 기분이 상해서 문을 쾅 닫고 나가게 되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화가 나니 새치기를 하며 끼어드는 차를 보고 욕을 해대며 크락숀을 빵빵 누르게 된다. 직장에 도착해서 부하직원이 올린 결제 서류를 보고는, 이 따위로 보고서를 만들었냐고 호통을 친다. 평소 같았으면 잘못된 곳을 지적해주며 빨리 고쳐오라고 자상하게 일러주었을 텐데 말이다. 가만히 살펴보라. 자신이 얼마나 바르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정사하지 못하는 삶 투성일 것이리라.

     

바르게 생각하는 힘이 없어 우리는 한평생을 번뇌, 망상,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이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몸은 병이 들고 말고, 끝내는 늙고 병들에 죽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한은, 해탈.열반은 고사하고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인생고라는 진리를 밝히셨던 것이다. 이런 인생고를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사성제이며 팔정도인 것이다. 이를 깨닫기만 하면 인생은 극락, 지복의 세계인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깝고 측은해 보였겠는가. 그래서 40년을 설법을 하시면서 지내셨던 것이 아닌가. 

 

아내의 결혼 사진을 보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이지만 인생사 정말 찰나와 같이 짧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도 죽음을 앞둔 연세 많은 노인분들이 대부분 그렇게 느낄 것이다. 아무리 잘 살았건 못살았건 인생무상을 깊이 느낄 것이다. 이렇게 짧디 짧은 인생에 불과한데, 사소한 일로 다투고 싸우며 고통스럽게 살아온 과거가 통탄스러울 것이다. 큰 깨달음을 얻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고통스럽게는 살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인생무상!

 

사실 이렇게 평생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우리 인생을 살펴본다면 누구나 인생무상을 느낄 것이고 인생의 덧없음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아무린 큰 부귀영화를 누리고 잘 살았다고 해도 허무함을 읊조리게 될 것이다. 세상의 온갖부귀 영화를 다 누렸던 저 위대한 솔로몬 왕도 인생 말년에 vanity vanity all vanity라고 인생무상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소한 생각에 매이지 말고 하루 하루를 좋은 생각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만 하리라. 그것이 건강한 삶을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가능하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 05:01 / 15-02-19)

 


착찹 + 찝찝 + 초조 살며... / 나의 인생 / http://blog.naver.com/myinglife/220299738135 

 

 사촌 동생을 만나 놀다 밤을 새우고 들어온 아들이 곤하게 잠을 자고 있다.


작년부터 일찍 군대를 가려고 수시로 지원을 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던 아들이 올 2월에 지원한 곳에서는 당당히 합격을 하여 내일 모래면, 정확히 3월 16일이면 입대를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평스러운 마음으로 아들을 보내려고 했었는데 얼마 전부터 마음이 착찹해졌다.


내가 입대를 할 때는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씩씩하게 맞이했었는데,,,

군대 정말 가기 싫다며 힘들어 하는 아들을 보려니 참으로 착찹하다. 

입대일이 가까워질수록 초조해하는 아들을 지켜보려니 안타깝기만 하다.


막상 점점 입대할 날이 다가오니 담담하게 보내려했던 마음은 다 어디로 가고 착찹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


군대란 젊은 청춘을 볼모로 붙잡아 두는 참으로 고약한 놈이다.

가장 혈기왕성한 시기의 젊음들을 꼼짝하지 못하도록 헐값에 자유를 구속하고 청춘을 저당잡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배워온다고 하는 말은 꾀임말에 지나지 않는다.


댓가로 무엇을 받는가?  

그건 그저 선배들에게 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도 못한 빚을 갚는 부채 변재의 기간이라 받는 것은 없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가 져야하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 어쩔 수 없이 끌려갔다 와야만 한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작년부터 빨리 입대를 하려고 그야말로 열심이었다. 

동반입대 3번 지원, 특수 병과 지원 몇 번 수시로 병무청 홈페이지를 드나들었다. 

그렇게 아등바등 열심이더니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인지 지원한 곳에 붙어 한달 조금 전에 영장이 나왔다. 


열심히 하던 알바도 그만두고 그간 미뤄두었던 놀이를 즐기던 아들, 두어주  전에는 심한 감기몸살이 걸려 꼼짝도 하지 못하였는데 그걸 지켜보려니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엄마가 없어 따뜻한 밥 한 그릇 해먹이지 못했는데 아파 끙끙 앓는데도 해 준거라곤 고작 해 놓은 밥으로 죽을 몇번인가 끓여준 게 다였다. 심하게 앓는 모습을 지켜보려니 속이 쓰라렸다. 무리해서 놀아서인지, 막상 군대를 가려니 마음이 아파서 몸도 따라 아파서 심하게 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속수무책으로 지켜만 보려니 속이 많이 상했다. 


며칠 후 간신히 몸을 추스렸는데 또 며칠간은 소화가 잘 안 되는지 속이 아프다고 하는데 참으로 안타깝기만 했다. 그렇게 일주일도 더 앓으며 보내는 사이 시간이 흘러 이제 내일, 모래 글피면 입대를 하게 된 것이다. 


열심히 주부 공부를 하여 요리를 잘 배우려했던 작년의 결심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아 요리는 젬병이라 정말 따뜻한 밥 한그릇 해 먹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그런데 며칠 동안 끙끙 앓는 모습을 보려니 더욱 착찹하기만 했다.


남들이 - 특히 젊은 여성들이 - 들으면 무슨 사내가 속 좁게 그 모냥이냐고 욕 먹을지도 모르겠지만 왜 남자들만 군대를 가야하냐고, 군대 안 가는 나라에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교통사고로 인대가 끊어져 군면제를 받은 친구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며 속내를 들어내는데 내 속은 정말 착찹해졌다. 게다가 10만원 정도 받는 월급은 말이 안 된다, 담배값에 쓰고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할 때는 내 속이 다 뒤집어졌다. 군대에서도 사회에서와 같이 비싸게 담배를 사야한다고 한다며 투덜거릴 때는,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만약 그렇다면 안그래도 담배값 폭등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는데 담배값 인상에 더욱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할일 없는 내가 대신 군대를 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아빠가 아들 대신 부역을 해 주면 크게 잘 못된 일도 아니다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오롯이 본인이 치뤄야 할 죗값이 아닌가. 분단국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죄 아닌 죄!


이제 이런 저런 착찹한 마음도 며칠이면 없어질 것이리라. 그런데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을 것 같다. 군대라는 미친 집단의 소굴로 등을 떠미는 것 같아서 말이다. 작년에 군 문제가 얼마나 많이 드러났는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불거졌는데 그게 국민들을 현혹시키려 일부러 세상에 알려 시끄럽게 만들었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지금 군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정말 찝찝한 것은 군대라는 곳의 속성이 비이성, 몰상식, 비상식으로 가득 찬 곳이라는 점에서이다. 벌써 30년도 전의 일이지만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군대생활, 아직도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그곳에 내가 아닌 자식을 보내려니 찝찝해 죽을 지경이다. 잘 할 거라며 걱정말라고 하는 아들의 말에도 전혀 위안이 안 된다.


군대 정말 뭔가 배울 수 있는 멋진 또다른 배움의 길로 만들 수는 없는가? 수많은 젊은 청춘들의 황금같은 시간을 빼앗았으면 뭔가 제대로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렇게 찝찝하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29년 전인가보다, 논산 훈련소에 입대한 게. 84년 3월 2일 입대를 했으니 아들보다는 29년 전에 경험한 일인데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불침번을 서다가 히터 위에 잠깐 걸터 앉았다가 내무반장에게 걸려, 반성문을 무려 10장이나 써내야 했던, 그 후에도 몇번인가 더 반성문을 제출해야만 했고, 훈련기간 내내 그에게 시달림을 받았던 씁쓸했던 기억. 아무리 해도 지워낼 수가 없다.


훈련받고 왔더니 관물대의 대검이 없어져, 밤에 다른 훈련병들이 훈련을 받는 다른 연대에 대검을 훔치러 갔던 정말 추잡하고 더러웠던 기억. 얼마나 조마조마하면서 남의 대검을 훔쳐와야 했던지 아직도 손에 땀이 날 것 같다. (13:08)(13:18~)


운전병 착출되어 운전연습할 때는 차를 몰고 가는 중 운전 못한다고, 모자를 벗어 앞 얼굴을 후려쳐 깜짝 놀라 운전대를 놓칠 뻔했던 아슬아슬했던 순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자대 배치 받았지만 나아질 게 하나도 없었다. 같은 중대에 소속되었지만 일과생활은 운전병들끼로 따로 해야겠기에 겪었던 수 많은 괴롭힘과 린치들.


수송관 밥 제 때 안 타 놓는다고, 2 1/2 트럭의 큰 타이어를 메고 연병장을 수십바퀴 돌며 '명령복종'을 외쳐야만 했던 고약한 기억. 배차 잘 안 주었다고 그랬는지 심심하면 불러다 치졸하게 돌려차기로 때리며 괴롭히던 중대장.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자를 땡겨 얼굴을 때리던 심술맞던 중대장. 그를 어찌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동네북마냥 이쪽에서 터지고 저쪽에서 매를 맞아야 했는데 그 게 무슨 죗값이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뿐인가. 일년 내내 훈련이 많았던 부대라 인원이 부족하여 혼자서 불침번을 서던 중 술사쳐먹으로 나갔던 선임 제지를 못했다고 그밤 얼마나 야간 근무서던 당직사령에게 두들겨 맞았던지. 미친 짓은 그걸로 끝이 나지 않았다. 시범케이스에 걸려서인지, 징계위원회를 소집하더니 결국은 영창엘 보내는 게 아닌가. 정말 다 끝내주고 싶었다. 자랑스럽게 공수부대를 지원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했던 입대전 생각이 나,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영창에 가야할 때는. 공수부대도 아니고 일반병으로 끌려려가 겨우 운전병으로 복무하게 되었는데 개같은 꼴만 당한다 생각하니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죽을 노릇이었다.


자대에 헌병대가 없어 남의 부대 헌병대로 끌려가 당했던 치욕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리라. 말로만 듣던 철창을 탔다. 세상에 얼차례는 그보다 어려운 것이 없으리라. 오줌도 하루에 한번 밖에 누지 못해 괴로웠고 매일 아침 거르지 않고 보았던 대변은 5일 내내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신체적 불편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수시로 받는 얼차례. 명령복종이란 죄목에 내린 헌병대 근무자들이 가한 린치 그건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칫솔을 당겼다고 놓으면서 입술을 때려 입술에선 피가 흐르고, 철창 밖에서 쇠밥주걱을 안으로 들이밀고 얼굴을 이곳저곳을 때리는데 내눈으로 광대뼈가 보이고 마빡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이것 시범케이스로 걸렸다지만 지나친 대접이 아니었던가. 완전히 미친 놈들이 아니었던가. 경계 근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복초로 서는게 원칙이다. 그런 원칙을 지킬 수 없었던 원죄를 지은 놈들이 불침번 근무 한번 잘못 섰다고 벌을 주었으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다. 


나쁜일도 정도껏이라는데 이 정도로 그쳤으면 참 좋았겠다. 남의 부대 빌어쓴다고 이층 침상의 내무반 생활을 했는데, 술처먹고 이층 침상에서 아래로 오줌 갈기던 고참 쒜키들이 졸병들 군기 잡는다고 불러모아놓았겠다. 병장 놈들이 상병 쫄다구들에게 군기잡으라며 시범을 보인다고 몽둥이를 가져오라더니 일병이하 쫄따귀들을 침상에 눕게 하더니 몽둥이질을 시작했다.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참말로 재수가 없었던지, 동기중 입대가 제일 빨라 처음으로 빳다를 맞았는데 씩씩하게 5대를 꾹 참고 맞았다. 매맞는 데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잠시후에 보니 발바닥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이 아닌가. 급하게 가져오느라 살펴보지 못해서인지 몽둥이에 못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발바닥을 그대로 파고드어 3곳이나 찟어져 피가 철철 흘렀다. 순간 이성을 잃어버렸다. 벌떡 일어나 행정반으로 뛰어 들어가 선임하사용 대검을 빼어들고 나와 다 찔러죽이려고 했다. 급하게 뒤쫒아 온 술처먹은 사수가 나를 붙잡더니 극구 만류하며 발바닥의 피를 빨아내는 것이 아닌가! 그 고참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만 뽑아들었던 대검을 내려놓고는 말았다. 


3년, 아니 30개월간, 아니 27개월간 겪은 온갖 수모와 고통과 굴종, 그것은 젊은 청춘을 저당잡아 치루게 한 죗값치고는 지나친 형벌이 아닐까. 한마디로 군대라는 미친 사회였기에 벌어졌던 범죄나 다름없는 가혹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있어, 이를 정당하게 치뤘어야 할 의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13:58)(14:07~)


그런 미친 사회로 아들의 등을 떠밀어 보내야하기 때문에 찝찝하고 초조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어떻게든 미친 사회에서 잘 견디고 나와야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신 군입대를 할 수도 없으니 어쩌면 좋으란 말인가. 


재수가 좋았다고 할까, 아니면 불행중 다행이라고나 해야할까, 나중에는 군단장 표창을 받았다. 아직도 집 한 구석에는 그 종이때기가 처박혀 있을 것이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은 하나 있다. 직접 관계도 없으셨던 모 소령이 제대한다고, 읍내까지 집차로 태워다 주셨는데 금일봉까지 건네주시는 게 아닌가. 아는 아직도 아니 평생을 가고 그 분의 후의를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쯤은 연세도 많이 드셨을 텐데...아직 살아는 계신지 어쩐지 모르겠다.  


능력(?) 있어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열받아 죽을 지경이다. 아직도 열외의 혜택을 받는 인간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대를 갔다오지 않거나 면제를 받은 인간들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더구나 그런 흉악한 인간들이 남들 앞에 나서는 꼴을 보면 그 때 빼들었던 대검을 다시 빼들고 싶은 심정이다. 그냥 조용히나 살 일이지 정치를 한다고 껍쩍대는 걸 보면 정말 가소롭다. 고위 관료를 해쳐먹던 인간들까지 뒤늦게 명예욕을 부려 장관에 지명이 된다거나 또는 국개의원을 해본다고 설치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불명예를 드러내게 되는데 그런 인간들을 보면 상장으로 받은 종이때기로 대갈통을 후려갈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창피하지도 않냐고 나무라며 상장이 다 떨어져나가도록 때려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국방의 의무도 다하지 못한 인간들이 어떻게 국가원수의 직을 맡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어불성설이다. 그런 인간들이 군대의 수장이 되거나 고위 행정책임자가 니 어떻게 군대를 제대로 통솔하고 유지해나갈 수가 있겠는가. 군개혁 개가 웃을 일이다.    


청춘의 황금의 시기를 저당잡는 것이라면 정말 제대로 댓가를 지불할 수는 없을까? 누구나 당연히 군복무를 할 수 있을 만큼 배움의 장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미친 사회가 아닌 이성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군을 전면적으로 개혁할 수는 없는가? 


고통스러운 쫄따구 생활을 하면서, 마빡에 작대기 네 개가 달리길 얼마나 간절하게 소망했는지 모른다. 병장만 달면 뭐든 제대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막상 병장이 되고나도 할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병장이 되어서도 영창에 가고 싶냐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영창에 다녀온 개같은 추억이 있었기에 그 소리는 비수를 들여내는 것과 다름없었다. 군단 배차계를 했는데 온통 높은 인간들 뿐이어서 일개 병장에게 배차 제대로-저한테만 잘 해주기를 바라는 측면에서 - 안 해준다고 협박이나 해대든 영관급, 장성급 인간들 제대로 정신이 박혀있는 것들인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14:32)(14:38)


자신의 위치에 맞는 올바른 품위와 사고를 갖는 것은 군이건 일반 사회건 우리 사회가 이성 사회로 나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기본 자실인 것이리라. 명예라는 것은 자리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에 걸맞는 건전한 사고와 행위에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가치인 것이다. 군인이면 군인답게 대통령이면 대통령답게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지성을 갖춰야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란 게 엄정한 군 기강이 확립되고 사기가 충만해야만 일단 유사시에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엄정한 군기는 어떻게 해야 확립될까?


그것은 정당함, 공평함에서만 나올 수 있는 자발적인 의지의 표상이다. 억지로 기강을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열외 일명없이 모든 사람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할 때 모든 군인들이 불만이나 불평하지 않고 군복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단 한명의 열외도 없어야만 한다. 즉각적으로 모든 병역특혜를 폐지를 해야만 한다. 모두가 같은 입장에 있을 때, 그 때야말로 진정으로 협력할, 자발적으로 참여할 의지가 생긴다. 누구나 거쳐가야하는 과정이라면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참여할 것이 아닌가. 기강은 바로 여기가 시작점이다.  

 

자신의 부역, 즉 군복무에서 무엇인가 받을 댓가가 합당한 것이라면 누구나 수긍하고 즐거이 복무를 할 것이다. 군인들 - 일반 사병들 - 월급을 최소한이라도 제대로 보장을 해야만 한다. 자식 자식들이 모두가 혜택을 받는 것이라면 누가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하겠는가. 정부가 쓸 데 없는 짓거리를 하지 않기만 해도 일정부분은 즉각적으로 올려줄 수 있을 것이다. 사대강, 해외자원 개발에 쏟아부은 국민 혈세를 생각해보면 정말 안타깝기 그지 없다. 누구를 위한 낭비이며 허비였던가?


군 생활에서 가장 힘든 일은 자유를 구속당하는 타율적인 삶이라는 것일 게다. 게다가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이 그냥 허송세월을 하는 것이니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인가. 훈련받는 일과 시간보다도 내무생활이 더 힘들어 고통스러운 게 군생활일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만 해도 군복무가 훨씬 더 즐겁고 가치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일과 시간 이후는 완전히 자유시간을 보장하면 좋겠다. 내무반 청소 등은 담당자를 정해서 돌아가면서 하면 될일이다. 고참이라고 해서 완전히 손놓고 빈둥거리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모든 부대원이 순서를 정해서 정리정돈 청소 등 해야할 일을 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생활한다면 군생활이 훨씬 즐거울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 더하여 일과시간 이후에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주면 훨씬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전 군인의 일인 일자격증 취득을 장려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활동하던, 아니면 나가서 활용할 분야의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강좌를 개설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다. 이런 것에 의무를 갖게 한다고 해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흔쾌히 따르지 않을까. 제발 이런 적극적인 사고로 군개혁을 하길 바라고 싶다. 군대에서 썩는 게 아니라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된다면 기피하고 싶기만 의무가 아닐 수 있을 것이다. 군 조직의 개혁 위로부터 이런 철학을 견지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아니면 시작하기 어려울 것이리라.   


사병으로 근무하는 군인들은 군인이기 전에 한 인간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고졸 이상의 성인이라면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선임이면 선임답게 모범을 보이고, 후배들이 이끌어주고 도와줄 때 고참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가 있지 않을까. 다 같이 어쩔 수 없이 자유를 구속당하고 치르는 국방의 의무인데 후임을 갈구고 괴롭힌다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 아닌가. 동병상련의 아픔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그 곳이 지옥이라고 해도.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형제요, 친구가 아닌가.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제복 - 군복 - 만 입혀놓으면 비정상적인 인간이 되고마는 남성병을 치유할 수가 있게 될까?  


군에 가기 싫어하는 아들을 생각하면서 헛소리를 찌걸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부모인가보다! 잘 마치고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지금 어디에선가 자유를 구속당한 채 군복무를 하고 있을 대한민국의 모든 아들들에게 한없는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2015. 3. 14.

15:13






아들 걱정이 태산같은 

고서 김선욱   

 



화이트데이 & 결혼기념일  살며... / 나의 인생 

http://blog.naver.com/myinglife/220300058673 


오늘 화이트데이가 연인들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날이지만 내겐 씁쓸하고 쓸쓸하기 그지 없는 날이다. 




결혼하고 나서 (그 전부터 있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행사가 없었던 걸로 기억이 되는) 3월 14일이 화이트데이로 즐기는 날이 되었는데 평생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좋았던 기억이다. 


다들 떠들썩하게 3월 14날에 아내, 여친 등에게 선물을 하는데 모르고 지날 수가 없을 테니 결혼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해서 아내를 서운하게 할 일은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가 21주년 결혼기념일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이보다 더 고약한 기념일이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다행이다 싶었던 화이트데이 기념일이 이젠 너무나 씁슬하게 맞이할 수 밖에 없는 날이 되고 만 것이다.


안쓰럽게도, 측은하게시리도 이메일함에 결혼기념을 축하한다는 이메일이 와 있는 게 아닌가. 그래도 축하 메일을 보내준 마음만은 받아보아야겠기에 이메일을 열어보았다. 



우리네 인생 인생무상이라 하고, 아무리 길고긴 행복한 인생이라고 해도 지나고 나면 한없이 덧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는 소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나니 마음에 절실하게 와 닿는다.그렇게 덧없이 훌쩍 떠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참으로 씁쓸한 화이트데이. 이제는 누군가가 만들었지는 몰라도 원망스럽기만 한 날이 되고 말았다. 그저 아무 날이었으면 잊고 지날 수도 있는 결혼기념일이 화이트데이 소란통에 고스란히 기억할 수 밖에 없으니 씁쓸할 수 밖에 없다. 참으로 고약한 화이트데이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어 사탕이든 쵸코렛이든 한없이 사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지켜야 할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느낄 수 있겠지만, 고통은 잊혀지지 않는다. 다만 가슴에 묻어두고 사는 것이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고 해도, 그 사랑으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이 덜 날 뿐일 게다. 또 일부러 생각치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것일 뿐이리라.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무신경해지고 또 잊혀질 날이 올까. 


담배가 떨어져 오전 늦으막히 편의점엘 갔다. 입구에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는 있는 화이트데이 선물들에 눈길이 간다. 예년 같으면 작으나마 사탕 한봉지에 또 간단하게나마 사랑한다고 적은 쪽지를 건네주며 즐겁게 지냈을 화이트데이, 이젠 쓸쓸하게만 보내게 되었다. 혼자서 술이라도 한잔 하지 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날이 되고 말았다.




담배 한피 피우며 시름을 달래 볼까 하지만 어디 흩어지는 연기처럼 아픈 마음이 사라질 리가 있겠는가. 담배 한 모금에 쓸쓸한 기억이 바닷물의 소금과 같이 조금씩이라도 사라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그나저나 담배값 인상에 주머니가 텅텅 비어가고 있으니 야속하기만 한 일이다. 담배가, 담배값이 인상된다고 딱 끊어질 것 같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난한 사람들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가는 야비한 짓을 저질러 놓고,,, 참으로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으니 가증스럽기 그지 없음이다. 



그대는 가고 나만 홀로 남아 맞이하는 씁쓸하고 쓸쓸한 날. 

화이트데이 참으로 고약한 날이다. 





2015. 3. 15.

00:08





화이트데이가 원망스럽기만 한 

고서 김선욱

             

* 덧글) 내일 모래면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야만 하니 더욱 가슴이 시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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