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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변호사 왕실 소송사건-정명섭]"이 자리는 올바른 쪽이 이기는 곳이 아니야." | Memento 2017-02-2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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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조선변호사 왕실 소송사건

정명섭 저
은행나무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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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는 올바른 쪽이 이기는 곳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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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법은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규칙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법은 어떤 모습일까.

"법대로 하자. 법대로!"

이런 절규가 난무하는 세상이 아닐까. 사실 법이란 것이 공정하거나 정의롭지 않다.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규칙인데, 무엇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라고 하는 것일까. 기득권. 혹은 이미 가진자들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 한 것은 그 문턱이 높고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법 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는 사실. 카프카의 법 앞에서를 보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2.

1730년에 시작된 하의삼도 소송은 1960년에나 끝났고, 토지대장이 완전히 정리된 건 거기서 삼십 년이 더 지나서였다. p. 376


작가의 말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조선이라는 왕조는 나름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수령을 파견한 왕조다. 그럼에도 이 책의 소재가 되는 소송 사건은 실재로 수백년 동안 이어져, 20여년 전에 정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다. "법대로" 하더라도, 약자가 승리하더라도, 종래에는 올바른 길로 가기에는 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법대로 해! 법대로"라는 외침.

누군가에게는 강자의 외침이다.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 법은 우리편이기 때문에 너는 질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기댈 수 있는 최소한의 외침이다. 억울하고 분통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희망인 것이다.


"송사는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네. 이번 송사는 잘못된 결송을 내리면 그 질서가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게. 아랫것은 아랫것의 본분을 지켜야 하고 사대부는 사대부의 예를 차리는 것이 곧 질서일세." p.352


"그래도 섬사람들은 송사를 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한양에 가면 송관이 법에 의지해서 공명정대하게 판결해주리라 기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법이 우리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죠. 부당하다고 외치면 그게 맞는 얘기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틀렸다고 하면 너희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억울하다고 호소하면 간악하다고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제가 한양에 올라와서 절망한 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데에 아무도 관심이 없고, 천릿길을 달려온 우리들의 얘기 역시 들어주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다시 빈손으로 섬으로 돌아가면 홍씨 집안 궁차들의 횡포는 극에 달할 것이고, 섬사람들은 개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안 된다고, 틀렸다는 말씀을 하시기 전에 부디 우리들의 이런 간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셨으면 하는 마음 뿐입니다." p. 268


소설은 "법대로"라는 외침을 두 방향으로 조선시대 송사라는 매력적인 매개를 통해 풀어낸다. 외지부(변호사)와 주인공이 극적으로 승리를 따내지만, 그 승리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필사적으로 싸웠음에도.


3.

"가진자들은 늘 남탓을 하더군요. 너희들이 좀 더 얌전했다면, 반항하지 않고 참았더라면 이러저러한 것들을 해줬을 텐데 하면서 말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 얘기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키는 대로 일하고 고분고분해도 돌아오는 건 욕설과 매질뿐이었죠. 섬사람들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백 년동안 그걸 겪었습니다. 그동안 당신같이 얘기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었습니다." p. 296


"법대로" 산다고 하더라도, 위대한 지도자가 지배하더라도, 천하태평의 시대라도, 민초는 늘 고달프다. 그것은 제도와 시스템이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모두가 잘 살 수 없는 생물의 한계일지 모른다. 가진자들은 말한다. 노오력하라고, 노오력하라고. 그렇게 노오력해도 우리는 개돼지일지 모른다. 헌법에서 아무리 계급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계급은 존재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법이라는 것이. "최소한"의 규칙이니 만큼. 기득권 뿐 아니라, "법대로"라는 강자의 외침만이 아니라, "법대로"라고 절규하는 약자들을, 우리 이웃들을 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싶다. "어명"이 없더라도, "최소한"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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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떻게 걷고 싶은데?" "당당하게 걷고 싶습니다. 이렇게요." 어깨를 펴고 가슴을 내민 윤민수의 모습이 때마침 강렬해진 석양 탓인지 눈부셨다. p. 83

"이 자리는 올바른 쪽이 이기는 곳이 아니야." "그럼 누가 이기는 겁니까?" 윤민수가 넋두리처럼 물었다.

"이기는 쪽이 이기는 거야.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쓰건, 아니면 송관을 구워삶든 간에 말이야." p.180

"사헌부가 책임지겠다고 말한 것을 못 들었느냐?" "하의삼도는 한양에서 천리나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문밖에만 나가도 호령이 사라지고 위엄이 흩어지는 세상입니다. 약조를 믿지 못하겠으니 송사를 계속하겠습니다." 주찬학의 말에 엄경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미천한 외지부 주제에 사헌부 장령의 말을 못 믿겠다는 것이냐?" "사람이 너무 미천하면 약속을 못 믿게 마련이지요. 지켜지지도 않을 약속이나 화해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p. 310

"결국 어명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겁니까?" 그러나 엄경하는 긴 한숨을 쉬었다. "백성들을 돌보는 관리로서 이번 일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 고개를 돌린 주찬학이 대꾸했다. "지금만 이러겠죠. 시간이 흐르면 유야무야될 것이고 말입니다." p. 355

"하지만 주상께서 어디 혼자 정국을 운영하시겠습니까? 탕평책을 펼치시려면 우리 당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어버리실 겁니다." "그리된다면야 더없이 좋은 일이지요." "이런 일에는 당파를 따질 이유가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임금께서는 우리 편을 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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