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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문유석]판사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그리고 미스 함무라비. | Memento 2017-03-1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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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저
문학동네 | 201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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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유감, 개인주의자 선언, 그리고 미스 함무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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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대의 법이 있다면, 서양은 '함무라비 법전'이고, 우리나라는 고조선의 '8조금법'이 아닐까 한다. 이 두 법의 공통점은 계급사회임을 보여주고, 동해보복형(탈리오 법칙)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특히 요즘 우리의 법감정은 법 앞에서의 평등, 받은 피해에 만큼 처벌을 원하는 감정이 강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원칙으로 삼는 동해 보복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절규가 이 시대를 지배한다고 믿고 있는(실재로도 그러한) 우리로서는 이러한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고대의 법 역시 "계급"이라는 차별에 따라 처벌하였음을, 동해 보복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법을 무서워하고 불신하게 된 것이리라.

 그렇기에 또한 '정의'를 외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즉,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를 기반하여 원칙을 적용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법감정과는 다를지라도, 그것이 올바른 법적용일지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판사들의 고민이 시작하지않을까. 정의의 원칙. 국민들의 법감정. 그리고 기준이 되는 법. 법이라는 것이 지니는 태생적인 한계.


2. '미스 함무리비'는 없다?!

(수정-1 착오로 잘못 알고 있었던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우리는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잘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단호히 명하는 법관의 모습과 그와 또 다른 인간적인 모습, 약자를 보듬는 모습에서 '정의'의 단면을 보았는지 모른다.

"법정에서 가장 강한 자는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판사야. 바로 우리지. 그리고 가장 위험한 자도 우리고, 그걸 잊으면 안 돼." p.321

 법정에서 가장 강한 자는 판사다. 그렇기 우리는 때로 존경과 경의를. 때로는 두려움을 표한다. 그리고 바란다. 정의로운 판사. 우리의 편이 되어줄 판사를.

법이나 재판이란 건,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안온한 중산층의 도덕을 강요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 p.353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법관이 아무리 우리편(미스함무라비)일지라도, 실상 판단의 기준이 되는 '법'이 누구의 '법'인지를, '법'을 만드는 '입법자'들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지를. 그렇기에 우리가 원하는 사이다 같은 판사, '미스 함무라비'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3.'상처입은 치유자'(p.221)

 결국 법도, 법관도, 우리가 가진 시스템도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한계를 가진다. 저마다 약점이 있고, 한계가 있고, 구멍이 있다.

"사법 서비스 역시 경제원칙이 적용되는 거야. 정의도 한정된 자원이라고." p. 66

"맞아요. 세상의 모든 시시비비를 끝까지 밝히는 건 불가능할지 모르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그런게 그 기준이 액수의 많고 적음인가요? 뻔뻔한 불의가 자행되고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소송 경제, 분쟁의 효율적 해결 다 필요하지만, 그전에 초등학생도 아는 정의를 제대로 선언하는 것이 우리의 근본 임무 아닌가요?" p. 71

"재판에서 공정성 자체보다 공정하게 보이는 외관이 더 중요하다는 유명한 말도 있잖아." p.272

"실제로 썩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썩은 것처럼 보이느냐가 중요한 거지." p.277

 그렇기에 변화를 시도한다. 경제적 원칙을 따지기도 하고, 절차적 완결, 합리성을 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답인지 알 수 없다. 판사들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밤새서 서류를 검토한다. 그러나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를 얻기는 어렵다. 이러한 과정에서 판사 조차 상처입는다. 본인의 삶에서, 재판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지금 법원이 원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법보다 훨씬 현명한 시간의 힘이 이 가정의 상처를 치유해주길 기도할 뿐입니다." p.207

 문득 딱딱하고 어려운 판결문들이 간혹 판사들의 고뇌가 담긴 '기도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4. '책임지는 사회' 더 나은 시스템을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존엄한 것이다. 최소한 그것이 인간 사회의 약속이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을 수렁 속에 방치하는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지는 걸까. p.346

 우리가 판결하고 처벌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의도적인 경우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혹은 정말 부지불식간에도 한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이다 같은 '책임'지우기 만으로 우리 사회가 살기 좋아질까? 절대 아닐것이다.

 민원인, 분노에 찬 사람 대부분이 자신의 사정을 들어주지 않는 다고 느끼기에, 무시 당한다고 느끼기에더 분노 한다. 이들의 분노의 찬 메아리는 누가 책임져 주는 것일까? 사회가 책임져 주는가? 아니다. 우리에게 어쩌면 '정의의 심판자' 보다 '상처입은 치유자'가 더 필요한 지 모른다. 

나쁘거나 추한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라 나쁘거나 추한 상황이 있는 거다. 그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판사들에게도 올 수 있다. 그런 시기가 오면 원래 선량하고 관대한 사람도 독해지고 강퍅해진다. 그걸 생각하면, 인간에 대한 실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숙명에 관한 문제가 된다. p.356~357

 세명의 판사와 주변인물들이 벌이는 법정 속에서 문 판사의 진지한 고민이 보인다. 그간 저작들이 녹아있는 소설과 본인의 코멘트들은 작게는 앞으로 사법부가 나아갸할 방향을, 크게는 "추한 상황"을 줄일 수 있는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향타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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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이란 참 묘해서 완결된 것은 곧 망각하고, 미완의 것은 오래오래 기억한다. p.193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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