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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이명준]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 | Memento 2017-07-2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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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이명준 저
바오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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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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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을 나에게 적용하여 바꿔본다면, <나는 왜 학생회에 참가했는가.> 내지는 <나는 왜 학생회 활동에 참여 했는가.> 정도로 바꿀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이유는 송곳의 구고신 소장의 말과 같다. "밥부터 같이 먹어요.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그렇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다소간 동아리 활동 등 대외활동을 하기에는 사회성이 부족했기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장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학생회 패권주의(?)라고 비난했고, 주류로 자칭하는 그들만의 리그라고도 했고, 우리는 니들은 그럼 무엇을 하느냐라고 비난했다. 서로 암묵적인 그룹이 만들어졌고, 투쟁아닌 투쟁이 있었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누군가가 학생회비를 유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의 진위는 알수없지만 유용한 학생회비의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나 역시도 그 돈으로 술을 얻어 먹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채워넣고, 그 사안에 대해서는 입닫고 있을 수 밖에. 그렇게 나는 졸업을 했고, 겨우 밥벌이를 하고 있으며, 그때 그 사람들과 이따금씩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 그때 그 옛날 이야기들을.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이면 될까 싶다. 서문에서 밝힌대로 과거에 대한 회상이자 반성이다. 나아가 진보 진영에 대한 용기다. 사실 내가 학생시설 학생회는 거의 정치색이 무너져버린 상황이었다. 이전부터 지속되어오던 사업들 조차도 참여를 바라기 어려웠다. 농활은 소수의 인원만이 가는 것으로 전락했고 (지금은 거의 안가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총회는 성사조차 어려웠다. 애초에 살아남기 바쁜 학우들이 가봐야 아무것도 없고 형식적인 절차 후 뒤풀이에서 술만먹는 꼰대(?)들만 있는 곳에 오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래서 고민도 많았고, 어떻게 해야 우리 학과가 잘 단합할까 고민도 많았다. 본 책도 마찬가지의 흐름을 따른다. 진보주의에 대한 반성, 주사파에대한 변명(?)일 수 있지만, 90년대를 관통했던 학생회 운동의 흐름을 보면서 내가 있던 시대의 학생회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선배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정파니 주류니 누가 옳으니의 문제로 다퉜고 (정치적 영역이 아닌, 현재는 정치적 영역이 거의 퇴색했기 때문에) 그것은 어쩌면 보편적인 사회의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그 때와 우리가 달랐던 것은 무엇일까 늘 생각했다. 나 때와는 다른 혹은 지금 학생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까. 그렇기에 참여라는 것에 있어서 이다지도 차이가 날까.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의문이었던 것은 진보진영 내의 주사파 문제였다.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10여년의 간극 전에는 어떻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오고 갔을까. 왜 저런 생각을 가지고 운동을 하게 되었을까. 하지만 깊은 물음은 아니었기에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을 오늘에서야 읽게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199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서 잘모는 사람이면, 혹은 주사파의 탄생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지금의 학생회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서 한 번 고민해 봄직한 이야기들도 많다. 

 책이 처음 나온 시기가 통합진보당 사태 시기 인듯 하다. 저자 역시 이런 시기에 큰 부담을 안고 이 책을 냈던것 같다. "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p.11~12)"이기에 용기를 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저자의 말대로 책이 보편성을 가지기 위해 일부 각색되고 축약된 이야기지만, 그 시대를 관통해온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겪어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이해를 위한 토대가, 진보진영에게는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거기에 남아 있(p.11)"을 잊지 않는 계기가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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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인간이 자꾸 과거를 되돌아보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거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p.11

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이다. p.11~12

반증이 없는 학습이란 종국에는 신앙이 될 수 밖에 없다. p.37

모순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다만 언론에 나오지 않을 뿐이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는 내가 있던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p.68

거대 정파들은 끝없이 희망을 독점하고 싶어 한다. p.126

운동가의 성장은 깨달음이 쌓이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고뇌와 두려움을 억누르며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운동가들도 인간이다. 자신들에게 향하는 싸늘한 시선들을 모르지 않는다. 그 고통 구조는 중고등학교에서의 '왕따'와 유사하다. 그렇지만 그 고통을 누르고 이겨내지 않으면 운동가의 길을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자신들의 사고체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주체사상으로의 진입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된다. 스스로 고민하고 성찰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기 때문이다. p.138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을 가더라도 너와 나를 구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이다. 생각이 다른 '분'과는 함께할 수 있지만, 미운 '놈'과는 함께할 수 없는 법이다. p.182

공개적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다양한 견해가 없는 곳에서는 언제나 가장 극단적인 수준의 해석이 힘을 얻게 마련이다. 이렇듯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이해되는 지점들을 만나게 된다. 괴물처럼 보이는 사회 현상의 밑바탕에는 괴물이 만들어지게끔 하는 사회적 토대가 존재한다. p.191

반성과 성찰도 뭔가 머리속에 많은 것이 들어 있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p.206

우리의 문제는 '반성을 늘 부정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p. 208

약자가 강자에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처지에 따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강자가 되었을 때의 올바른 태도를 기르는 것이 민주주의 훈련이다. 진보진영에는 이게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p.240

여론이라는 심판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의 싸움은 무조건 조직력이 우세한 쪽의 승리로 끝난다. NL과 주사가 진보진영을 장악한 것도 그래서 가능했다. 진보진영 내부의 모두의 무관심 속에 정글의 법칙대로 돌아간다. 우리 안의 정의란 강자의 이익일 뿐이다. p.274

사실 그 운동가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조직의 죄를 개인이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p.276

내부에서의 조용한 해결이란 결국 가장 힘 센 자들의 의지에 불과할 뿐이다. p.287

유토피아는 존재하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기 때문에 창조하는 것이다. p.330

메시아가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은 이제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금송아지를 가져다놓는다. p.333

진보가 진보인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아직까지 굳게 믿고 있다. 진보가 보수에게 늘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다. 거기에서 진보가 출발한다. 그렇기에 진보에게 역사적 책무가 있다면 그건 남에게 세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 바로 그게 아닐까. p.348

선한 의도가 의도지 않는 압박이 되는 경우는 어디에나 있다.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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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야마모토 시치헤이] | Memento 2017-07-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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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

야마모토 시치헤이 저/최용우 역
글항아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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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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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네 가지 의무가 있다. 근로, 교육, 납세, 그리고 국방의 의무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남성이라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이 세금 고지서, 청첩장, 그리고 군대다. 앞의 두개는 남녀 공통이지만 후자는 피할 길이 없는, 그리고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건데 남자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다양할 것이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과도 수십년간 살면서 불화를 겪는데, 하물며 전혀 다른 방식, 다른 성향, 다른 생각의 사람들이 수십만명 모여사는 군대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더 이상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배워야 하며, 조직에 본인을 희생해야 하며, 부당하여도 따라야 한다. 속칭 까라면 까야한다, 추워도 아파도 아닙니다라고 말해야한다. 갖은 부정부패도 눈감아야하고, 나도 그것을 해내야만 유능하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다. 상대가 아무리 무능해도 그의 손짓 하나에 죽는척 아니라 진짜 죽으려 달려들어야 한다. (물론 전시인 경우겠지만. 간혹 전시처럼 누군가 많은 이들이 죽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군대 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바로 이거다"라고 무릎을 쳤다. 우리군에는 6.25전쟁으로 인해 "관동군"으로 대표되는 인사가 많았을 것이고, 그것이 군부독재시대를 거쳐 사회 전체로 퍼진것은 아닐까? 식민지 시대의 폐해?일까. 물론 군대라는 특성상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지만 개인적 직접경험과 다양한 간접경험의 종합은 이 책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이러한 문화가 녹아 들었고,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완고히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가 여러 세대를 거쳐서 내면화한 지금. 우리는 이 자리에 서 있다.

 이런 저런 상념속에 일본의 대단함을 느꼈다. 그들은 이러한 책을 통해 서로 공유하고 그 때의 잘못을 반성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일본 뒤를 10, 20년 차이로 따라가고 있으니 그들의 잘못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가. 특히 조직의 '자전'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너무도 무서웠다.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시스템화라는 것의 맹점이라고 해야할까. 일종의 완벽한 구조를 갖추는 순간, 그것은 시스템, 메뉴얼 대로 굴러가기만 한다. 내가 군 입대를 해도 세상은 여전하고, 내가 전역을 해도 군대는 여전하다. 이 여전함 속에 나는 그저 부속품에 지나지 않고,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소모품만 교체 될 뿐. 개혁을 외치지만 시스템은 그대로이고 시스템을 굴리는 사람, 메뉴얼같은 새로운 소모품만 생기거나 없어지거나 바뀌는 정도가 아닐런지. 새로운 사회, 강한 군대는 딴 나라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 여러모로 내 삶속에서도 많이 겪는게 아닌가 싶다. 

 매번 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 우리가 당한 것만 배우고 읽었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 일본 군대의 부조리. 패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그때의 사고를 보니 색다르면서도 씁쓸하기만 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남성들이 조직에 메이게 되는 것을 체화한다는 것. 그것이 또 다른 자전을 양산한다는 것. 우리 사회가 바뀌기 위해서는 혹은 다양성, 창의성, 다름에 대한 관용등을 증진시킬 방법에 대해 고민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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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특정 시대, 특정 장소에서 '일단'태어난다. 그리고 특정 시대와 장소에서 '결국' 죽는다.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동등한 전제로 일종의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큰 틀이라 하더라도 그안에서 이뤄지는 선택과 결정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르는 것이 당연했으나, 쇼와 10년대에는 일반적으로 병역 자체를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큰 틀의 일부로 여겼다. p. 12

'위기에 익숙해진다'고나 할까. 인간에게는 참으로 이상하게 '숙달'되는 경향이 있다. p. 84

'현실을 직시하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조직의 자전 속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사람들에게 진짜 현실이 보이는 것은 단 한순간, 바로 '본연의 나로 돌아갔을 때'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갑자기 모든 것이 이상해 보인다. p. 86

조직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면 모든 상념이 사라지고 오히려 방금 생각했던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조직의 요구에 순응하는 순간이야말로 비로소 '본연의 나로 돌아간'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일상은 그날그날의 일과에 따라 시곗바늘처럼 돌아가며 흘러간다. p. 87

사람이 인상 깊었던 기억이라고 언급하는 전장의 석양이란, 아마도 생각을 희구하는 가장 절실한 표현일 것이다. p. 104

오늘날의 상식도 나중에 이를 돌이켜보면, 이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만 놀란 것이었다면 내가 무지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각지에 반일 비적이 많다는 내용에 놀람. 본토에서는 필리핀이 일본 점령 후 평화를 되찾았다고 알고 있었기에 이는 생각지도 못한 정보임......' p. 106~107

일본인은 종종 아시아가 하나라고 말하고 싶어하는데, 저는 그 단어가 일본인의 아시아관을 왜곡시켜왔다고 생각해요. p. 109

'아시아라는 내적 망상'에 빠져 이에 부합하지 않으면 거부하려는 태도. 동아시아의 맹주가 동아시아의 해방을 외치면 모두가 분기하여  이에 협력할 게 분명하다는 식의 독선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는 본인만 아시아의 선직국이라는 자만심 같은 요소들과 얽히고설켜서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했다. p. 130

필리핀에 대해 무지했던 군단의 병사들은 오해가 쌓이면서 잇달아 생기는 착오에 부딪히고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많은 과오를 저질렀지만, 나는 그 책임이 전부 그들에게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p. 141

모든 민족에게는 그 민족의 프라이버시라른 게 있다. 이런 부분을 충분히 존중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p. 146

무엇이든 간에 진출할 때가 있으면 철수할 때도 있다. 철수는 철수대로 좋다. 다만 문제는 철수한 다음 다른 사람들이 뒤쫓아오느냐 아니면 돌팔매질에 의해 쫓겨나오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p. 146

기존에 주장해온 것들이 전부 허구이고, 그렇게 말한 본인도 이를 믿지 않으면서 이것이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별일 아니다'로 끝나겠지만, 전쟁은 허구가 아니다. 그러나 전쟁 밖의 세계도 결국 허구가 아니다. 그 증거로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오늘날 많은 단체, 정당, 매스컴에서는 평화헌법을 꼭 유지해야 한다며 가르치고 말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을 실제로 체험한 내 경험에 비추어본다면, '정신력에 대한 경계'와 마찬가지로 특정 대상에 대해 경계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런 목소리르는 크면 클수록 믿음이 가지 않는다. 가장 큰 목소리로 주장하던 사람이 '객관적인 정세의 변화'등을 이유로 돌변하더니 태연하게 자신이 했던 모든 주장을 스르로 부정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나는 보장은 없다. 이걸로 괜찮은 건가. 그런 상황에서 '그렇다면 두말할것도 없다. 잘 알겠다.'고 말하며 옛날 우리가 그랬듯이 묵묵히 '지옥의 행진'을 시작할 생각인 걸까?(그 방향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간에 말이다.) 그런 각오라면이 문제는 이대로 방치해도 상관없다. 헌법만큼은 예외라는 식의 말은 통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p. 175~176

'새로운 사태'를 기존의 '관점'이라는 틀에 억지로 대입시켜 그 문맥 안에서 이해하려 한다. 사람은, 아니 적어도 일본인은 항상 다양하게 변화를 거듭하면서도 막다른 곳에 이를 때까지 이런 행동을 계속하는 민족인 듯싶다. p. 181

'승패는 전장에서의 일상'이라는 말은, 승패보다 '어떠한 패배 방식'을 택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군대건 일국의 국민이건 패배했을 때 그 본성이 드러난다. p. 198

"하늘은 사람들을 자멸시키고자 하면, 먼저 그들을 미치게 한다." p. 200

자전하는 관료 조직 위에 군림하는 장관과 앞뒤 말만 짜 맞추는 데 혈안이 된 국회의 '고무줄 숫자 답변', 또 앞뒤 숫자만 맞춘 분식 결산이라는 '고무줄 숫자 결산 보고', 그리고 고무줄 숫자가 대차 쌍방으로 늘어가는 구속성 예금 등 불가능한 명령과 고무줄 숫자 보고로 구성된 허구의 세계는 아직까지도 곳곳에 존재하는 듯하다. p. 233

'사물'이라는 단어는, 모든 것이 관급품이며 원칙적으로는 일절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 자신의 '소유물'을 의미했다.  ... ... 따라서 '사물명령'이란 관급품 지급처럼 점진적으로 위에서 말단까지 내려오는 명령이 아닌 '명령'으로, 이른바 상관 개인이 명령권을 사유화한 뒤 이를 근거로 자의적으로 내리는 명령이라는 의미인데 내용 상 두 종류 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 ... 부하의 '사적 고용인화'다. 그러나 이런 '사물 명령'은, 앞으로도 언급할 두 번째 형태와 비교하면 실질적인 피해가 훨씬 더 적었을 것이다. 두 번째 형태란, 정식 발령자는 전혀 모르는 일인데도 당당히 명령이란 명목으로, 때로는 구두로 때로는 정식 문서로 내려오는 경우다. p. 237~239

조직은 의미도 목적도 없이 '자전'하면서 이런 자전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게끔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버린다. 여기서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연기가 '기백 과시'이며, '사실'을 말하는 이에게는 '기백'을 구실 삼아 철저히 욕하고 비난함으로써 침묵시키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이것이 '조직의 자전' '쓰지 마사노부식 막 던지기' '병사의 요령'을 만들어낸 근본 원인이었다.

p. 260

나는 '역전의 겁쟁이는 있어도, 역전의 용사는 없다'고 전에도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포로일기>의 고마쓰도 이와 같은 취지의 말을 남겼다. 하지만 '역전의 겁쟁이' 세대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 세대인 '전쟁을 극화를 통해서밖에 겪지 못한 용사의 폭주'다. 그러나 나는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배후에 이미 그런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p. 326

본인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 제국 육군인지 세간인지 판정하기란 쉽지 않다. p. 356

"전장에서의 시계는 째깍거리면서 시간을 새기지 않고, still live, 아직 살아 있어. 아직 살아 있어 하면서 시간을 새기지. 앞으로 평생 이런 물건은 갖고 다니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p. 395~396

부하를 전멸시키고 일본을 파멸시킨 사실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동료의 감정에 상처 입히지 않고 당장의 '평화를 존중하는 것'을 절대시하는 태도였다. 아니, 어찌 보면 이것 외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했다. p. 430

육군에 있어서 사적 제재(구타)를 '기합' 혹은 '질서 유지의 필요악'이라며 긍정하는 이가 있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이들의 은밀한 주장에 따르면 만약 이런 부분을 모두 폐기할 경우 군기, 즉 질서 유지나 교육 훈련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p467

다른 사람의 말을 빼앗으면 자신의 말도 잃게 된다. 따라서 입에서 나오는 건 팔굉일우나 대동아공영권 등 '짖는 소리'에 가까운 의미 불명의 슬로건밖에 없다. ...... 나는 일본적인 파시즘이 '태초에 말이 없었다'라는 기본적인 형태를 지녔다고 생각하며 히틀러의 웅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일보에는 히틀러 같은 유형의 지도자가 없었다. '해방자'인 일본군은 어째서 그 이전의 식민지 종주국보다 더 미움을 받았던 걸까. 그 이유는 동물적 공격성만 존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조직을 형성하여 어떤 질서를 확립할지에 관한 계획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이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p. 472~473

언어를 통해 자신들의 질서를 확립하여 그 안에서 살 것인지, 아니면 언어를 빼앗고 동물적 공격성으로 이뤄진 '서식 나무의 질서' 속에서 살 것인지는, 수정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를 논하는 '고상'한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서 우선적으로 우리가 내부에서 결단지어야 할 사항이라고 본다. 이것은 결단의 문제이지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p. 474

'한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사고방식은 결국 다음 시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족쇄가 된다.' p. 481

'통수권'의 독립 -> 통수권에 의해 삼권분립으로부터 독립한 군은 오히려 자신의 지배 아래 일본국을 두려고 했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여러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기묘한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만주사변으로부터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제국 육군이 필사적으로 점령 하려던 나라가 사실은 일본국이었다는 점이다. p. 482

무토 참모장은 그곳에서 전범과 관련된 '미결' 상태인 사람들을 불러 놓고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모두가 특공대원의 자세로 재판에 의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만들자. 일본 육군 및 일본의 명예를 위해, 현지인, 포로살해 명령을 내린 사실을 말해서는 안 된다." ......냉정한 시각에서 보자면 그의 말은 오늘날 일본 내의 모든 조직에 존재하는 원칙이기도 하다. p. 502

'이것이 제국 육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전하는 '조직의 명예'라는 사고방식이 일본을 파멸시킨 것이다.' p. 503

그러나 파멸한 뒤에도 이런 원칙을 고수하면서 전범재판에 대처했다. 결국 패전조차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전후까지 답습해왔다는 증거다. ...... 개인의 명예라는 사고방식 없이 조직의 명예만 절대시한다면 언제나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우리는 이런 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p. 511

군부 파시즘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통수권, 전쟁비용, 실력자, 조직의 명예'의 기반에 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죽음의 철학'이었다. 제국 육군이란 살아있으면서도 '물에 빠진 시체이자 유골'과 같은 존재로서 산 자를 지배하는 그런 세계였다. 그것은 언론의 지배가 아닌 죽음이라는 침묵에 의한 지배였기 때문에 '언어가 없는' 것이었다. p. 521~522

'죽음과의 동거를 통해 산 자를 지배'하는 세상에 자유는 없다. 인권이나 법 따위는 공문에 불과하다. 사람은 전제가 죽는다는 사실 역시, 죽음과 동거하며 산 자를 지배하는 일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과의 동거'를 통해 산자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사상은, 일본에서 제국 육군이 생기기 이전부터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으로 언제든지 일본적인 파시즘의 온상이 될 수 있다. p.524

(사실 죽음과의 동거 라는 부분이 이해가 잘가지 않는다. 일본의 죽음에 대한 어떠한 의식(초월한듯한 의식)이 산자를 지배한다고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느낌이외에는 잘 모르겠다. 조직의 신의를 지키기위해 자신은 죽은 것과 다름없고 너희들도 같이 죽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그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에 본인은 초월해 있다. 우리 다같이 죽자 조직의 명예를 위해이런 사람이란 느낌일까?)

"없었지. 아무런 일도 없었어. 그 사람들은 모두 지옥을 봤을 테지. 정말로 지옥을 본 자는 그런 짓을 하지 않거든." 나는 이 말을 듣고 불현듯 '죽음의 지배'에 대한 극복이 떠올랐다. ...... 전쟁 직후 나돌았던 말 중에 '특공 퇴물'은 있어도 '정글 퇴물'이란 말은 없다는 기묘한 사실을 상기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용소에 존재한 폭력단을 주도한 인물들 역시 패전 전에 투항해서 극한의 '지옥'을 몰랐던자가 많았다. p.530~531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서 상식적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인간의 이러한 측면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이 있는 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처럼 어떤 세계에서도 일말의 희망은 존재하는 것이다. p. 543

진정한 벽혁이란, 외면적인 변화로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냉정하게 자신을 파악한 뒤 통제함으로써 스스로를 변혁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참아낸 자만이 미래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p. 537

미지의 미래는 사람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p. 537

그러나 과거의 일본은 스스로 만들어낸 시나리오에 의해 자멸했다. ...... 자신이 가진 미지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사회로 확산시킴으로써 해소하려는 일종의 도피 행각은, 그야말로 무엇인가를 연기해가며 파멸로 가는 길임에 틀림없다. p.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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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하기-윤태영] 사람 사는 세상. 말 잘하는 세상 | Memento 2017-07-2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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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대통령의 말하기

윤태영 저 저
위즈덤하우스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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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와 사람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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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그러나 이성의 동물이기도 하다. 말 한 마디의 힘은 이 차이를 파고 든다. 더불어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진심을 담는가 거짓으로 하는 말인가. 사람들은 귀신같이도 거짓으로 하는 말은 간파 해 낸다. 단순히 "말" 하나로만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한 말은 그 사람이 살아오며 했던 다른 말들과 행동들과 사람됨을 총체적으로 반영하여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 뿐인 사람이 아무리 말을 잘 하더라도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겉만 번지르르 하다는 것을 쉽게 간파해니 때문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 것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것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예전과 달리 본인의 말을 오해할 수 있는 상수들이 너무나도 많다. 언론, 여론, 인터넷 등등. 나의 말 한마디가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게다가 말은 불완전하다. 한 번 내뱉으면 되돌릴 수 없고, 내가 원한 의미가 상대에게는 반대의 의미로 전달 될 말큼 불완전하다. 어쩌면 말은 적게 할 수록 좋다는 것은 진리인지 모르겠다.

 한 대통령이 있다. 말에 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 였지만, 말 때문에 가장 고통스러웠을 대통령. 본인의 의도와 뜻은 그것이 전혀 아니었을지라도 그것을 옮기는 사람들은 그대로 전하지 않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믿는 자들은 광신도로 취급당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많은 고통을 받았을 테지만.

그를 이해하려면 그의 말을 듣는 것보다 그가 걸어온 길을, 살아온 행적을 그렇게 한번 돌이켜보시고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때로는 그 사람이 한 일은 찬성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찬성할 수 없는 일도 있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진실한가, 그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p. 396

 우리는 어쩌면 그 사람의 "말"에만 집중한 것이 문제였을지 모른다. 직관적으로 안다고 믿었지만, 그의 말과 행동, 그의 말과 사상, 그의 말과 소신을 정략적으로 해석했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선의. 얼마나 전하기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낀다. "성공한 대통령" 보다 "옳게 하는 대통령" 한 명이 되고 싶었던 그의 말은, 그가 없는 지금에서야 우리에게 더 울림을 주는 이유도 마찬가지일테다. 

 그럼에도 다시 말이다.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고 행동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의사전달 덕이 크다. 그리고 가장 손쉬운 수단이 말하기이다. 그러나 말은 혼자로서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는 힘들다. 그가 살아온 삶, 행동, 소신, 철학, 말하는 사람의 총체가 담겨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말이라야만 "정치인의 말하기"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한 대통령은 너무나도 좋은 말하기를 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그는 당당히 싸웠고 맞섰고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수 있는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수 있다>

 그의 도전, 그들의 항해는 이런 책들과 함께 아직도 나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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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것이 사람의 기본이라면 말 잘하는 것은 리더의 기본이다. p. 6

"말은 한 사람이 지닌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 결국 말은 지적 능력의 표현이다." p.8 (노)

"말을 잘하는 것과 말재주는 다른 것이다. 국가 지도자의 말은 말재준 수준이 아니고 사상의 표현이고 철학의 표현이다. 가치와 전략, 철학이 담긴 말을 쓸 줄 알아야 지도자가 되는 법이다." p.10 (노)

말하기의 기본은 역시 분명한 소신이라는 사실이다. p. 18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전개하는 것이 말 잘하는 사람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p. 21

본질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이다. p. 23

"감동은 표현에 있지 않습니다. 사실, 즉 팩트(fact)에 있습니다." p.30

지금은 웅변의 시대라기보다 메시지의 시대다. 표현 방법보다는 메시지의 내용으로 차별화가 되는 세상이다. p.31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솔직함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아야 할 분야가 있다. 언론을 상대하는 사람들이나 그 부서이다. p.31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원만한 소통의 시작이다. p. 50

"대통령은 말을 들어야 합니다. 욕을 많이 먹는 자리입니다. 대통령이 하는 일이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욕먹는 겁니다. (웃음) 국민들이 스트레스도 풀어야 하고 대통령을 만화로 이상하게 그려서 욕하면 재미도 있고 스트레스도 풀릴 것입니다." p. 57

"모든 독재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는, '박종철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p. 76 (노)

말하기의 세계와 글쓰기의 세계는 같은 듯싶으면서도 다르다.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연설문 작성은 '글쓰기'의 세계이다. 그러나 연설문을 현장에 가서 낭동하게 되면 '말하기'의 세계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말한다면 연설문은 '말하기의 세계' 에 가깝다. p. 76~77

"개인에게는 세월이지만 세월이 모여민 역사가 됩니다." p.97 (노)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먼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인의 처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이 야이기를 합니다. 주인이 알아주지 않는 머슴들은 결코 훌륭한 일꾼이 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자존심이 상한다할까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무릅쓰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만, 해답이 아니라 문제 제기입니다. 함께 생각해보자는 제안입니다." p. 134(노)

"독재자는 힘으로 통치하고 민주주의 지도자는 말로써 정치를 합니다. 제왕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권력과 위엄이 필요하죠.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왜 성공했느냐. 그 사람의 책을 보면 말을 잘해서 성공한 겁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 못하는 지도자는 절대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p.142

'같이'는 정치인 노무현의 철학과 세계관이 집약된 단어라 할 수 있다. 그를 상징하는 문구인 '사람 사는 세상'에도 이 철학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같이'는 곧 '공존'이다. 그는 부당하게 덧씌워진 이미지처럼 '분열'의 정치인이 결코 아니다. 줄곧 '공존'을 추구했던 정치인이다. .226

신뢰를 얻기 위한 첫 번째 노력, 바로 겸손과 낮은 자세이다. p. 331

"사실 안에 진실이라는 게 있다. 사실 안에 또 거짓이라는 게 있다. 거짓도 진실도 아닌 사실이 있다. (중략) 결국 수많은 사실 중에서 사실에 반대되는 거짓, 거짓에 반대되는 사실이 있어야... 진실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의 영역에서 참과 거짓을 놓고 이렇게 게임을 하는 것이다."  p.355~356 (노)

"언론이 써야 하는 사실은 주관적 인식을 포함한 사실이라 해도 반드시 척도 또는 비교를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보편성을 점검해야 한다." p. 357 (노)

달변가이지만 그의 지향은 글쓰기에 있었다. 그에게 있어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었다. 세상을 설득하고 나아가 바꾸려는 분명한 목표가 거기에 있었다. p. 361

"저는 의미 있는 삶에 눈뜬 것이 30대 중반에 들어와서입니다. 비로소 새로운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결국 한 사람을 이야기하라면 리영희 선생의 책이 될 것 같네요." p. 367 (노)

연설 전체의 흐름과 콘텐츠를 스스로 작성한다. 이 내용을 가지고 글쓰기에 관해 전문성이나 비교우위를 가진 참모 또는 주변인이 수정하고 보완한다. 그러면 정확한 콘텐츠가 바탕이 되고 적절한 표현으로 다듬어진 연설문이 만들어질 것. p.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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