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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이름, 조선의용군-류종훈] 이념과 정치 투쟁에 지워진 이름 | Memento 2019-10-1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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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리가 잃어버린 이름, 조선의용군

류종훈 저
가나출판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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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한 켠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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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앙금을 씻어 내지 못하고 있다. (p.35) ... 항일 무장투쟁의 명맥은 임시정부의 광복군과 만주의 항일빨치산, 그리고 이들 조선의용군이 잇고 있었다. 그중 의용군의 대오가 가장 많았고 최전선에 있었다. p.36” 그러나 남북 누구도 의용군을 기억하지 않는다. 남에서는 공산주의자로, 북에서는 국제간첩으로 몰려 배척당했다. 돌이켜 보면 우직하게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던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해방공간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저 우연에 그치는 비극일까.

조선의용대 마지막 분대장으로 유명한 김학철님께서 생전 마지막 강연에서 하신 말씀이 인상 깊다. 해방 후에는 역사가 이렇게 잘못 만들어졌습니다. ... 그런데 이렇게 우리는 무장투쟁을 한다고 했는데, 한다고 했습니다. 한다고 했지만은 성과는 미미했어요.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 저는 항일투사라는 말만 들으면 막 역겹습니다. ... 무장한 일본군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분들이 계속 독립운동가로 행세하고 있더라고. 그러니까 재탕, 삼탕, 몇 십 년동안 우려먹고 있더라고. 그것을 보고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 독립투사 김학철 초청강연 중(01.06.04.)”

항일무장 투쟁사에서 가장 큰 규모를 유지했고, 가장 최전선에서 싸웠던, 그래서 자신의 다리까지 잃어버렸던 독립투사가 던진 말이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이지만, 마음이 먹먹하고 답답하다. 조선의용군이 성과과 미미했다면 다른 독립군들은 무장투쟁이라고 언급할 여력조차 있는 걸까?

그들의 피와 땀은 이념에 가리 우고, 정치 투쟁에 지워졌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분명한 잘못이다. 나의 할아버지 역시 같은 고통을 받으셨다. 대한민국 안에서 그러한 고통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문 게 정상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한 번쯤은 돌아봄직도 하다.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하는,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하고, 못한 것은 못 했다고 역사에 명명백백히 기록하는 일 말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논의조차 시도하지 못할 정도로 경색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쉽다.

역사는 얄궂다. 조선의용군의 대장정은 승리의 역사로 기록되지 못했다. 그들은 해방된 조국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p.430” 다만, 중국만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독립유공자 등의 서훈은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 역사 한 켠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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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두저촌이라는 마을 입구 누각에는 아직 우리말이 선명하게 쓰여 있다. ‘왜놈의 상관놈들을 쏴 죽이고 총을 메고 조선의용군을 찾아오시오.’ 투박(p.30)하지만 힘 있게 또박또박 쓰여 있는 글자를 보면 당시 의용군의 기상을 느낄 수 있다. p.31

광복 70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앙금을 씻어 내지 못하고 있다. (p.35) ... 일본의 탄압과 잔악함이 점점 극에 달해가던 때, 항일 무장투쟁의 명맥은 임시정부의 광복군과 만주의 항일빨치산, 그리고 이들 조선의용군이 잇고 있었다. 그중 의용군의 대오가 가장 많았고 최전선에 있었다. 누구보다 독립을 멸망했고 한목숨 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염원하던 일본의 패망 이후, 남과 북 모두 그들을 역사에서 지웠다. 팔로군 동료들이 세워준 몇몇 묘비와 기념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다. p.36

중국과 한국은 항일의 역사를 공유한다.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장소와 겹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p.77

주은래가 조선 해방 문제를 토론할 때 피차간에 각자가 자기 의견만 고집한다. 실제의 목표는 조선의 해방이고 독립이다. 차이가 있다면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며 단결을 충고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점을 들어 독립운동 내부의 파벌과 분열을 언급하며 깎아내리는 이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일본 경찰과 밀정들이 도처에 날뛰고 있는 형국이다 보니 흩어져 있는 독립지사들이 맘 편히 모여 회의 한 번 하기 쉽지 않았(p.86)을 것이다. 독립에 대한 고민에 전력을 다하다 보면 생각이 달라 논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전선에서는 뭉쳐야 한다는 점에는 다들 동감했다. p.87

김학철이 죽기 전 남긴 말이 있다.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를 외면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하라.” p.109

지금 중국 공산당이 북한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파고들다 보면 의용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역사를 모르거나 무시하고 중국을 대북 정책에 활용하겠다는 일부 한국 전문가들의 태도를 볼 때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p.251

의용군이 창립된 지 80여 년이 흘렀지만, 이념의 벽은 때로 태항산의 그것보다 높고 험하다. p.324

생활과 전투는 같은 이름의 일상이었고 때론 처절하고 때론 치열했다. 예나 지금이나 삶은 언제나 고단하다. p.333

학교 건물 끝 편 앞에 기념비가 있었다. 뒷면에 조선의용군의 역사가 쓰(p.422)여 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영도를 받은 조선의용군으로 시작하는 문구는 선조들의 항일을 제대로 기억하고 써내려가지 못한 후손들의 죗값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잊히지 않은 것이 천운이다. p.423

역사는 얄궂다. 조선의용군의 대장정은 승리의 역사로 기록되지 못했다. 그들은 해방된 조국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p.430

운 좋게 중국 체류의 기회를 잡았다. 시간이 되는대로 그 약간의 흔적들을 말 그대로 훑었다. 말도 서툴고 현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찾아다니기 급급한 답사객 형편이었던지라 뭔가 전문적인 내용을 담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었고, 다시 찾아올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길 바랐다. 가늠할 수 없는 빚을(p.432) 진 후대로서 가신 열사들에게 얼마간이라도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p.433



소설가들은 왕왕 역사학자가 해결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더욱 더 빛이 난다고 저는 생각해요.” 김학철 (태백산맥 출판 기념식에서)

해방 후에는 역사가 이렇게 잘못 만들어졌습니다. ... 그런데 이렇게 우리는 무장투쟁을 한다고 했는데, 한다고 했습니다. 한다고 했지만은 성과는 미미했어요.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 저는 항일투사라는 말만 들으면 막 역겹습니다. ... 무장한 일본군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분들이 계속 독립운동가로 행세하고 있더라고. 그러니까 재탕, 삼탕, 몇 십 년동안 우려먹고 있더라고. 그것을 보고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 독립투사 김학철 초청강연 중(0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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