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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듯이 쓴다-강원국] 글쓰기로 강원국을 보다 | Memento 2021-04-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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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저
위즈덤하우스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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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인생이고, 글쓴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강원국이다. 전작들이 거인의 후광을 업었다면, 이제는 온전히 그의 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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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요는 범인들이 따라 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거다. 사실 무언가를 잘하는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 시도해야 한다. 물론 시작하면서 다양한 조언을 받으면 좋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는 경우 다른 충고는 장기판의 훈수에 불과하다. 이래서는 훈수를 따르는데 한계가 있다. 수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들이 축적되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나에게 의미를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범인들에게 사기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범인이자 관종이라 자칭하는 강원국의 글쓰기는 어떠한가. <나는 말하듯이 쓴다>는 범인들의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유시민의 글쓰기가 학문적인 느낌의 글쓰기라면, 강원국의 글쓰기는 실용적인 글쓰기다. 유시민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이해시켜 준다면, 원론적인 방법을 어떻게 삶의 현장에 적용시키는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일반적인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 받을 듯하다. 회사원이라면 보고서나 인사말씀, 회의자료 작성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유시민의 글쓰기가 대중들에게 글을 잘쓰는 방법에 대해 강의하는 글이라면, 강원국의 글은 우리네 삶,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이 받아야만 하는 선배의 조언과 같다.

글쓰기는 끝 없는 선택이다. 무슨 내용을 담을지, 어떤 감정을 실을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한다.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까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고민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물론 비교적 고민의 고통 없이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역시 무의식 중에 이뤄진 선택의 결과다. 인생은 BD사이의 C라고 말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의 끝없는 선택, 그것이 내가 누군인지, 내 인생이 어떠한지 말해준다. 그래서 글(쓰기)은 인생과 닮았다. 글은 글쓴이의 선택을,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쓴다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나의 선택을 보여주고, 내 삶을 나누는 행위다.

전작 <대통령의 글쓰기>가 자신의 선택, , 삶보다 위대한 거인들의 후광을 등에 업은 책이었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는 온전히 자신만의 선택을 보여준다. 글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들은 그 사람을 보여준다. 글쓰기라는 소재를 통해 강원국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글쓰기,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치열히 살았던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분명 주제는 글쓰기지만 때에 따라 인생 선배로서 삶의 지혜를, 선임과 같은 엄격한 조언을, 기혼자로서의 가정의 안녕을 위한 노하우를 엿본다. 어디에다 관점을 두느냐에 따라 글쓰기보다 다른 걸 더 관심있게 보게될지도 모르겠다.

글의 본질은 그 사람에 있다. 결국 유시민의 글쓰기나 강원국의 글쓰기나 그 사람이 누구냐에 영향을 받는다. 더불어 내가 누군가에 따라 선호도가 달라진다. 수 많은 시행착오와 고통 속에서 어떤 사람의 글쓰기 방법을 따르 건 결국은 나만의 글쓰기 찾아야 한다. 그런면에서 유시민의 글쓰기 보다는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희망을 본다. 20대 시절 항소이유서라는 명문을 일필휘지로 써낸 유시민 보다는, 나와 그래도 (그나마) 비슷한(?) 삶의 현장에서, 나와 유사한 고민 속에서 본인의 글을 써내려가는 강원국의 이야기가 좀 더 와닿는다. 위인의 어깨에서 내려와 당당히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강원국의 모습이 내게는 좀 더 현실적이다. 부족할 지언정 모자라지는 않다. 나 역시 작은 희망을 가져 본다. 말하듯 쓸 수 있는 때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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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려면 잘 말해야 한다. 말을 잘하려면 잘 써야 한다. 말과 글은 서로를 견인하고 보완한다. 어느 쪽만 잘하려 하면 어느 쪽도 잘할 수 없다. 쓴 것을 말하고 말한 것을 써야 한다. 말하듯 쓰고 쓰듯 말해보라. 말 같은 글, 글 같은 말이 좋은 말과 글이다. 나는 말하면서 생각하고 말로 쓴다. p.7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질문이다. 사람은 묻는 만큼 생각한다. p.18

직장생활은 세 가지를 요구한다.(p.19) 문제의 제기와 분석과 해결이다. 제기를 잘하면 까칠한 사람이 되고, 분석을 발하면 똑똑한 사람이 되고, 해결을 잘하면 유능한 사람이 된다. p.20

글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답을 몰라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못 해서 못 쓴다. p.21

우선 눈앞에 보이는 것을 묘사해보자. 현상, 현황, 상황을 상세하게 서술해보자. 사실대로 현장감 있게 쓰고 의미를 강조해보자. 사건, 사물을 보이는 대로 쓰고, 사람의 심정, 처지, 사정을 헤아려 쓰고, 현상의 이유, 원인, 전망을 분석해 쓰자. 글은 자신의 시선이고, 관점과 해석이며, 감상이다. 길들지 않은 자신의 날것을 글로 쓰자. p.30

학교에서의 공부는 주로 읽기와 듣기였다. 읽기와 듣기는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소유 행위. 쓰기와 말하기는 내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공유 행위. 학교에서는 읽기와 듣기를 많이 해서 자기 소유를 늘리는 친구가 우등생이 되었다. 일종의 소유 경쟁이었(p.35). 우리의 공부는 협력을 잘하기 위함이 아니라 경쟁을 잘하기 위함이요, 우리의 교육은 경쟁을 잘하는 사람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p.36

쓰기는 대상에 공감하는 과정이다. 쓰려면 우선 이해해야 한다. 이해의 대상에는 처지, 사정 같은 이상 영역과 심정, 마음 같은 감성 영역이 있다. 이 둘을 이해한 상태를 공감’[이라고 한다. 사람, 사물, 사건, 삶에 공감하는 정도, 정서(p.42)적 감응력이 글의 수준을 결정한다. ... 독자가 공감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대상에 빙의해야 한다. 독자를 대신해 어떤 대상이 되어 쓰는 게 글이기 때문이다. p.43

관심 분야가 있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충분조건을 갖춰야 한다.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꿈과 목표가 그것이다. ... 그랬을 때 관심사는 자신의 화두이자 필생의 과업이 된다. 충분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관심사는 단지 취미에 불과하다. 자칫 몰입이 아닌 중독에 빠지게 된다. p.51

생각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생각을 챙겨야 한다. p.52

글을 쓴다는 건 문자로 펼쳐진 자신의 감정, 그러니까 문자화된 자기와 마주하는 것이다. 마주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뭉텅한 감정을 세밀하게 분화하(p.73)는 것이다. 기쁨의 감정이 매우 좋음과 매우 나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좋음, 좋음, 보통, 나쁨, 매우 나쁨으로 세분화되는 것이다. p.74

직장에서는 기억이 권력이다. 윗사람은 기억의 힘이 세다.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다. 규정과 관행도 윗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기억의 영역이다. 아랫사람은 상상력이 있는 대신 기억은 약하다. 아는 것도 적고 경험도 부족하다. (p.80)러한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 아랫사람은 새로운 기획을 하거나 도전하지 않는다. ... 실패했을 때 재기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패자부활전이 가능해야 상상한다. p.81

불확실한 데 도전하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입니다. 저는 그 사람의 삶에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 노무현 p.82

글이 말처럼 자연스럽고, 말이 글처럼 치밀하면 좋은 말과 글이 된다. p.107

글쓰기가 두렵다면 아직 살 만한 것이다. p.119

창조란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포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 작가 E.B.화이트 p.122

작가는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인 동시에, 스트레스를 이기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p.126

직장에서 글쓰기는 관계가 핵심이다. 관계가 좋아야 상사의 생각이 내게 흘러온다. 그 생각이 생명수다. 관계가 나쁘면 내 생각을 전할 기회도 없다. 그런 기회가 없으면 상사는 내 생각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낯설면 받아들일 확률이 낮아진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은 보람도 없다. 일하는 이유가 사람을 향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즐겁지도 않고 잘할 수도 없다. p.140

문서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듣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중요하다. 보고하는 사람은 문제점, 필요성, 성공을 말하지만, 보고받는 사람은 해법, 기대효과, 실패를 생각한다. p.143

직장에서 글 쓰는 일의 책임은 부하에게만 있지 않다. 상사의 몫이 더 크다. 좋은 생산라인에서 좋은 제품이 나오듯, 좋은 상사에게서 좋은 보고서가 나온다. 상사는 세 가지를 해줘야 한다. 첫째, 들어주고, 둘째, 알려주며, 셋째, 고쳐줘야 한다. p.144

글을 고쳐준다는 핑계로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대표적으로 두루뭉술하게 요구하는 때다.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고 좋다”, “나쁘다라고만 얘기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을 한다. “감동적으로 써 달라”, “격조 있게 써 달라”, 하면서 무엇이 감동적이고, 어떻게 써야 격조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요구를 하는 사람은 나는 그렇게 쓸 수 있나?’ 자문해봐야 한다. 비판 일색의 조언도 문제다. ... 명백한 오류가 아니면 단지 다른 것일 뿐이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p.146

직장에서의 글쓰기가 발전하려면 상사와 부하 관계, 즉 개인적인 차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조직이 나서면 훨씬 효율적이다. p.147

직장생활은 내가 주인으로 사는 게 아니다. 내 시간을 저당 잡히는 대신 급여를 받는 것뿐이다. 언젠가 떠난다. 직장에 있는 동안은 그 이후를 준비하는 기간이어야 한다. p.149

회사 다닐 적 상사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 “부하들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칭찬 해달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말이죠.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윗사람을 칭찬하는 데 인색합니다. 그런 사람을(p.168) 보면 아부한다고 비아냥거립니다. 윗사람에 대한 칭찬이 아부인데 말이죠.” p.169

글을 쓰려면 세 가지와 만나야 한다. 사람, , 자기 자신이다. p.230

일기가 공부라면, 쓰기는 시험이다. p.230

풍파는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 니체 p.240

한 대도 안 맞는 싸움은 없다. 네 대 맞고 여섯 대 때릴 수 있으면 싸운다. 시도하고 도전하면 실패와 성공 확률이 5050이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면 100퍼센트 실패다. 100퍼센트 실패의 길을 가려고 하는가.” - 노무현 p.240

개인의 경험을 글로 쓰는 것은 사회적 자산을 생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누구나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 특히 가시밭길을 걸으며 더 많이 고생한 분들이 책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p.249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 - 신영복 p.249

거절 잘하는 것도 경쟁력이다. 특히 회사에서는 거절 잘하는 사람이 보통 일도 잘하고 평가도 잘 받는다. 물렁하고 호인이란 소리 듣는 사람이 오히려 평가를 잘 받지 못한다. 인간적인 평가는 좋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p.263

실상과 진실은 구체성으로만 모습을 드러낸다. p.268

인간은 빵을 굽고 술을 빚고 글을 쓰는데, 이 세 가지는 모두 숙성과 발효가 필요하다.” - 다윈 p.309

없애는 것은 남아 있는 것을 응축한다.” - 미국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 p.330

겉으로 드러난 주제보다 그렇게 말하는 의도나 배경을 알아채는 일이 중요하다. ... 이는 월급 받는 사람이라면 모두 필요한 역량이다. p.332

사람은 단결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고, 평화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집만 센 사람이 되기보다는 신념이 굳은 사람이 되십시오. 감정이 앞서는 사람보다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특권계층은 사라져야 하며, 더는 특권이 존재해서도 안 됩니다. 인민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 빅토르 미라보 p.366

“20분을 넘어가는 설교는 죄인도 구원받는 걸 포기하게 한다.” - 마크 트웨인 p.373

첫 문장은 글의 출발점이다. 전체 글의 함축이고 복선이며 독자를 유인하는 첫인상이다. 글쓰기는 첫 문장과 끝 문장을 단단하게 잇는 작업이다. p.383

쓰는 단어를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배경과 성격, 심리 상태까지 알 수 있다.” - 심리학자 페니베이커 p.392

글 쓰는 사람은 어휘와 문장의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대담함보다는 사소함이 미덕이다. p.395

일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으며, 뜻하지 않은 고난과 역경에 부딪힐 수도 있다. 이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도전과 시련의 원인, 응전하고 반응한 결과를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p.410

정서와 감성은 글쓰기의 재료다. 글이 사실과 느낌의 조합이라고 할 때, 그 한 축인 느낌에 해당한다. 글쓰기는 이성과 감정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다. 이성으로 동의를 구하고 감정으로 공감을 얻는 게 글쓰기다. p.415

핵심 감정을 찾아라. 이것이 단편소설을 쓰기 위해 알아야 할 전부다.” - 피츠제럴드 p.417

갈등 상황은 소통의 전시 상태다. p.439

독자가 누구인지 알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 있다.” - 버지니아 울프 p.449

양시은 스스로 평가하는 사람에게나 있는 것이다. 내 평가를 남에게 위탁하고 살면 양심은 필요 없다. p.458

선을 행하는 사람은 봄이 왔을 때 동산의 풀 같아서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매일매일 덕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 같아서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나날이 덕이 깎이고 있다.” -<명심보감> p.462

의중은 실제로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그래야만 보이고, 보여야 맞출 수 있다.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게 의중이다. p.476

실패한 것은 죄가 아니다. 물어보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다. p.477

아랫사람들이 입을 닫은 조직은 희망이 없다. 그것은 가정도 마찬가지다. 말이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되나?’ 하는 것까지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이 없으면 어딘가 막혀 있거나 문제가 있는 것이다. p.487

듣기가 분해라면 말하기는 조립이다. 듣기는 말을 부분들로 나누는 일이고, 말하기는 부분들을 짜 맞추는 일이어서 그렇다. 분해를 많이 해본 사람이 조립도 잘할 수 있다. p.493

모든 배움은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p.495

삶이 곧 나의 메시지다. My life is my message.” - 간디 묘비 p.497

진정성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진실하고 참된 성질이라고 나온다. 이 단어는 본래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했는데,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라고 한다. 성찰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것에 기초해서 다른 사람들과 가식 없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p.498

도저히 침묵하기 어려운 말이 있으면 글로 쓰자. 글은 소리가 없다. p.502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책상에 붙여놓고 보던 퇴고 목록이다.(p.422)

1. 제목은 적절한가.

2. 사실에 오류는 없는가.

3. 빠뜨린 내용은 없는가.

4. 핵심 메시지나 결론은 명확한가.

5. 목적에 부합하는가.

6. 조직의 운영방침에 맞는가.

7. 시의적절한가.

8. 현재 상태의 진단은 정확한가.

9. 원인과 이유는 제대로 파악했는가.

10. 근거는 충실한가.

11. 사실, 정보의 출처는 어디인가.

12. 환경 분석을 잘했는가.

13. 문제를 정확히 정의했는가.

14. 문제 해법에 실효성이 있는가.

15. 실행계획은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가.

16. 얻을 수 있는 이익이나 혜택, 위험요인은 무엇인가.

17. 향후 과제나 미래 방향을 포함했는가.

18. 자료 수집과 조사는 충분한가.

19. 빼도 좋은 내용은 없는가.

20.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더 좋은 대목은 없는가.(p.423)

21. 전개 순서는 손댈 필요는 없는가.

22. 상호 모순되는 부분은 없는가.

23. 한 번만 읽고도 이해되는가.

24. 오자와 탈자, 맞춤법에 어긋난 부분은 없는가.

25. 잘라주면 더 좋은 문장은 없는가.

26. 다른 단어로 바꿔주면 더 좋은 대목은 없는가.

27. 다르게 편집할 수는 없는가.

28. 도표나 그래프, 그림으로 보여주면 더 좋은 부분은 없는가.

29. 수치화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가.

30. 다른 결론, 다른 대안은 없는가.

31. 의사 결정을 위한 선택지는 적절한가.

32. 쟁점은 챙겨봤는가.

33. 표절 등 지식재산권 문제는 없는가.

34. 균형감을 잃거나 편파적이지는 않은가.

35. 지나친 자신감과 확증편향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36. 고정관념, 통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p.424)

37. 불리한 사실이나 부정적 정보를 감추고 있지는 않은가.

38. 좀더 다각적으로 볼 수는 없는가.

39. 더욱 큰 틀에서 종합적, 구조적으로 볼 수는 없는가.

40.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41. 다른 부서 등에 공유해줄 내용은 없는가.

42. 보고받은 상사는 무엇을 물어볼까.

43. 지금까지 확인한 것 말고 놓친 것은 없는가. 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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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배신-윤희숙] 정치와 정책은 분쟁을 몰고다닌다 | Memento 2021-03-0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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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정책의 배신

윤희숙 저
21세기북스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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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정책은 필연적으로 분쟁을 불러 일으킨다. 다만 열린자세로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정책은 여기서부터 숙성되고 수정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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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정치적 산물로서 공공목표의 달성, 공공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단체가 취하는 활동 방향울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치공공목표 달성(또는 공공문제 해결)’이다. 정책은 태생적으로 정치의 제약을 받는다. 정치는 의견차이,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의 과정이다. 특정인에게는 이익을, 다른 특정인에게는 불이익을 준다. 분쟁은 필연적이다. 정치가 그러하듯,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제한적인 자원을 놓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합의하는 게 정치라면, 정책은 그 합의안에 따라 자원을 분배하는 방식을 말한다. 정치가 그러하듯, 정책 역시 분쟁을 몰고 다닌다. 구설수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 정치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듯이, 정책 역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다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분쟁과 논란의 과정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그 과정에서 어떻게 공공목표를 달성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때 공공목표 달성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과정 역시 중요하다. 공공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논란은 증폭되고, 목표 달성이라는 성과마저 무색해질 테다. 성과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소모될 것이다. 반대로 과정은 무난했더라도 목표달성을 이루지 못한다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정책은 필연적으로 이해관계가 대립하게 되어 있고, 분쟁을 몰고 다닌다. 그렇기에 정책의 성공은 과정과 결과에 모두 집중해야 가능한 난제다.

<정책의 배신>은 정책에 대한 논쟁과 분쟁의 예다. 진보, 보수를 떠나서 정책의 실패, 나아가 정치의 실패를 논하고 있다. 분명히 정치와 정책은 분쟁을 부른다. 그렇기에 이런 책, 이런 분쟁은 서로를 가다듬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최저임금, 노조 등 현 정부가 취하는 정책의 방향성이 틀렸고, 데이터로 입증하겠다는 저자의 의견에 일견은 동의한다. 정책의 목표가 달성되었는지 아닌지는 상당 부분 수치로 드러난다. 다만 숫자와 통계는 보기에 따라(이를테면, 기간, 근거 등등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통계라고해서 고정적이거나 정답은 아니다.) 변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당장의 수치만으로 정책의 성패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정책의 결과는 대부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고,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렇기에 과정이 중요하다. 숙성의 과정까지 정책이 살아남느냐는 정책의 과정에 달렸다.

저자는 6가지 정책, 최저임금, 52시간제, 비정규직 대책, 국민연금, 정년연장, 신산업 정책이 숙성의 과정을 거치기 어렵다고 본다. 과정이 잘못되었고, 그 의견 수렴을 통해 정책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공공목표의 달성이라는 최종 목적마저도 틀렸다고 말하고 있다. 정책대상자를 위한다고 주장한 정책들이 오히려 그 사람들을 옥죄고 있다. 특히 청년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치적 무관심은 결국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낮게 유지되고, 52시간제와 상관없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들이 과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정년보장과 국민연금은커녕 신산업이라는 명목 하에 열정 페이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관심조차 가질 수 있을까.

고용의 유연화나 노조를 잡아서 족치는 일들은 반드시 공공목적에 부합하는 일일까? 정책 대상자를 오히려 노골적으로 숨기고 이득을 주려는 의도는 아닐까? 정규직의 보장성을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어떤 중간단계로 변화해서 모두가 고용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저자의 생각은 결국 좋게 포장해도 하향평준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의도가 어떻든 분노하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정치적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판단은 각자가 해야만 한다. 정치적 신념, 도덕적 기준, 합리적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다. 쉽게 합의하거나 바꿀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 서로 바꿀 수 없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어떻게는 정치의 문제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이 간극은 영원히 좁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거시적 관점에서 정책의 과정은 늘 수정되어야 한다. 논쟁을 통해 문제가 있다면 바꿔나가야만 한다. 정치적 성향에도 공공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대의는 변하지 않는다. 보수건 진보건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바람은 마찬가지일 테다. 그 목적에 도달하는 과정을 원만하게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정책은 변해야만 한다. 수정의 과정이 어떨지는 이런 다툼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까기만 하고, 싸움만 거는 게 목적이라면 소모적일 뿐이다. 그것은 정치에도 정책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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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퇴행이고 무엇이 진보인지를 판단하는 가장 쉬운 기준은 아무런 기반이 없는 진입 희망자들이 기존에 자리 잡은 사람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판을 고치는 데 얼마나 적극적인가입니다. 그러니 진입로를 넓혀 모두에게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무어라 부르든 사회 진보의 장애물일 뿐입니다. p.9

최저임금 제도의 운영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통해 가장 취업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부정적 기능과 취업자 간의 임금격차를 줄이는 순기능 간의 경중을 비교해 균형을 맞추며 적절한 인상률을 찾는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p.29

법정 최저임금 제도를 확립했다는 것은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엄히 다스린다는 것인데, 미준수율이 높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제도를 위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 단속자의 재량에 의지해 선택적으로 법을 집행하기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제도가 더 후진적으로 운영됩니다.(p.47) 최저임금의 사각지대를 오히려 더 넓히고, 감독자의 재량과 자의적 판단에 의존하며, 단속자와의 유착이 형성되는 등 부작용이 심해지는 것입니다. p.48

아무 때나 야식을 배달시키고 주말에도 각종 서비스를 주문하는 등 삶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생산방식에 영향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이는 대중들의 삶의 방식 변화를 시장 수익으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이들 역시 24시간 체제(p.91)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로시간의 기본 틀이 바뀌면 근로자들은 그 안에서 본인의 선호를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예전과 같은 휴가와 휴일을 제외한 1년 내내 전일제 근무라는 표준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p.92

사실 우리나라는 고용보호와 관련된 법 규정 자체의 불명확성이 고용 조정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어왔습니다. 그간 노동계가 해고 절차나 규정을 명확히 하는 노력에 저항해왔다는 것은 고용보호법제 규(p.133)정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암묵적 장치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134

조직화된 세력들이 현세대의 이기심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정책 논의를 주도할 경우 어떤 개혁이든 시작(p.157)부터 암초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그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심을 잡고 국민의 인식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는 정부가 오히려 노조와 국민의 눈치만 살피며 상황을 축소하는 데 급급하고 있으니 암담한 상황이지요. p.158

비오는 날 무른 땅에 수레가 지나가고 나면 바퀴 자국이 깊이 팬다. 그대로 놔두면 땅이 굳어 자국을 영영 못 지운다. 경제개발의 바퀴 자국을 지우는 게 사회개발이며, 사회가 안정되어야 경제개발도 잘 달성된다. 경제 개발과 사회개발은 하나다.” (신현확 보건사회부 장관) p.181

산업 정책이 어떤 형태여야 하고, 기술혁신에 대해 국가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는 최근 들어 세계 각국에서 많은 논쟁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속에서 점점 더 분명해진 것은 방향 제시와 균형 잡힌 소통을 통해 사회의 혁신 수용성을 높이는 것이 현대 사회의 핵심 산업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을 방치할 경우 신기술이나 새로운 산업이 시작될 시점을 놓치기 쉽고, 설사 이를 밀어붙인다 해도 사회적 통합이라는 중요한 자산이 훼손되기 때문에 지속적 발전을 꾀하기 어렵습니다. p.244

법체계가 과거의 잣대로 현재를 판정하는 이상,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질 때 법의 테두리를 건드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 또한 기존의 이해관계자들과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혁신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갈등입니다. ... 길게 보면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전환일 뿐입니다. p.249

현대의 국가들은 수평적 접근을 기본으로 하되, 수직적 접근을 가미하면서 생태계 조성에 힘쓰는 경향이 관찰됩니다. p.272

이런 흐름에 우리나라를 비춰본다면, 국가 주도로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수직적 정책은 과하고 수평적 개입은 약하다는 특징이 나타납니다. 고도로 산업화 되었으나 요즘도 육성과 지원이라는 용어가 정부 문서에 심심찮게 나타날 정도로 수직적 지원의 관행이 강하고, 바로 이런 점이 시장 기능을 억압하는 문제로 지적되(p.273)어 왔습니다. ... 즉 현대적 산업 정책이란 승자를 골라 밀어주기방식의 시장 개입이 아니라, 누가 되었건 기회를 포착한 능력자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유지해 전체 국민의 일자리 및 소득 창출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정책입니다. p.274

청년들은 현재 이루어지는 재정 관련 결정의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세대이므로 무슨 결정이 이루어지는지 지켜보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 자산도 권력도 갖추지 못한 젊은 세대가 목소리마저 내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의사결(p.284)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을 막기 어렵습니다. p.285

흔히 보이는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논쟁은 이데올로기적 근본주의와 정치적 진영 논리로 이루어진 무의미한 대립의 전형이라 할 만합니다. 사실 정부가 할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정부의 규모 자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물론 무엇이 정보의 역할인지에 대해 보수와 진보 간에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서로 간에 이런 차이를 인정한다고 해도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훨씬 큰 게 사실입니다. 그간의 역사에서도 상당한 정동의 수렴 현상이 진행되어왔기 때문입니다. p.288

이런 선순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빈곤에 허덕이던 국가들이 부국으로 발돋움한 동아시아 국가 성공 스토리의 핵심이며, 급속한 경제성장이 분배 개선과 양립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과 광범위한 대중들의 교육 기회와 취업 기회가 확대되는 구조 변화가 동반한 것입니다. p.376

고도 성장기까지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활력 있는 분배구조를 만들어낸 요인이 교육과 일자리가 보조를 맞춰 확대되고 질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은 핵심적 시사점입니다. 태어난 가정환경에 구애되지 않고 질 좋은 교육에 접근 가능하고, 거기서 쌓은 인적자원이 향후 노동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구조를 회복시키는 것이 분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었고, 이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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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에 대하여-서경식 외] 변명 없이 책임진다는 것, 그래야 하는 이유 | Memento 2021-03-0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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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책임에 대하여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공저/한승동 역
돌베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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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없이 책임지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험지로 향해야 한다. 판단과 책임을 회피했을때, 공산주의자, 유태인, 노조원, 카톨릭신자, 다음은 내 차례인 세상이 도래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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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하지 않고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건 어렵다. 우선 잘못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잘못했다고 사죄하고 끝내려 한다면 도망치는 것에 불과하다. 회피로는 문제의 본질을 알 수 없다. 무엇이 상대를 괴롭히는지, 잘못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이었고, 나의 과실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 과정도 힘들지만, 그 다음 역시 어렵다. 무의식과의 싸움도 해야 한다. 변명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문제를 합리화하는 자동적인 정신적 행위다. 의식적으로 싸워야만 한다. 무의식의 영역은 대부분 원하는 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 이렇듯 스스로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일에는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른다. 자신의 잘못을 명백히 깨닫고 끝없이 무의식과 싸우고 생각해고 노력해야 한다. 책임을 진다는 일은 어렵다.

책임지지 않는다는 건 불성실함, 도망과 회피를 의미한다. 생각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것을 증명한다. 모순과 갈등을 만들고 있음에도 미루고 있을 따름이다. 악의 평범성은 여기서 생기는 게 아닐까. 생각하지 않음, 행동하지 않음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의 시작점이다. ““그것은 이미 옜날의 일이다. 물에 흘려보내자.”라는 말은 언젠나 강자, 가해자, 기득권자가 좋아하는 틀에 박힌 대사다.(p.19)“ 판단과 책임없이, 합리화와 변명으로 위기의 시기를 모면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과연 순간을 도망친 그 끝에는 어떤 결과가 존재할 것인가. 결국 가해자와 강자, 기득권자들이 바랬던 세상이 존재한다. 그들이 바라는 통합과 안정은 결국 본인들의 안위와 기득권, 자존심을 침범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책임에 대하여>국가와 사회가 위험한 방향으로 크게 틀 때, 학자, 연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두 지식인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인식과 사상을 말하면서 계속 (p.25)“ 써 내려간 이야기다. 대담자 중 한 명인 서경식 교수는 재일조선인 2세로, 1970년대 재일조선인 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와 혈연관계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와 일본 모두에게서 배제받는 경험을 통해 <디아스포라 기행>과 같은 저작을 남겼다. 또한 다카하시 데쓰야는 일본 사회에서 역사 왜곡과 인권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철학자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지성이 모여 일본의 책임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책임은 비단 국가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일본 국민, 시민) 차원에도 해당하며, 더불어 (우군일 수 있는) 리버럴파의 한계까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전후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본성은 아직 천황제’, 즉 전전의 경험에 얽매여 있다. ”‘전쟁 책임’, ‘전후 책임’ ‘식민 지배 책임중 어느 것이든 1945년에 끝난 일본 제국 체제에 대한 책임을 불문에 붙여 왔다는 점, ‘중심부 일본 국민이 그에 대한 판단을 회피해 왔그것이 일본 사회의 곳곳에 왜곡과 불철저함을 만들어 냈다.(p.66)“ 이는 국가 지도층 뿐 만아니라, 일반 국민지식인들(p.67)“이 함께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고 비판한다. 판단과 책임의 부재는 자국 내 식민지 건설, 주변부 소외, 약자와 소수자 희생강요로 이어진다. 중심부를 위해 주변부를 희생시키는 구조, 예를 들면 오키나와 문제가 그렇다.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키나와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다수의 국민을 위해 소수의 약자가 희생을 해야하는 구조를 지속시키고 있고, 후쿠시마 사태 역시 그 사례다. 이런 일본의 대응은 중심부의 묵인하에, 일본의 지속가능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외 다른 국가와의 갈등에서도 마찬가지도 드러난다.

변명없이, 책임을 지는 일은 고통스럽다. 외면하고 싶다.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인 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방관자, 수혜자, 참여자 일지도 모르는 일반 국민과 지식인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고통스럽게 해서 얻는 이득이 무엇일까? 저자들이 생각하는 무책임의 미래는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처음 그들이 왔을 때에 글이 아닐까 싶다. 근대 일본 국가는 전쟁과 차별로 만들어졌(p.327)“고 그 차별의 끝은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세상일 테다. 그리고 그 희생의 끝에는 나와 세상의 종말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모든 희생의 폐기는 불가능하하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 없이 책임 있는 결정은 있을 수 없다.(p.364)“ 우리에게는 그 누구의 희생을 강요할 권한은 없다. 힘으로만 희생을 결정했을 때, 우리는 제국주의, 전체주의를 경험했다, 그 결말은 모두가 고통받는 전쟁 뿐이었다. 그렇기에 두 지식은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책임에 대하여>를 통해 두 지성인이 성토하는 판단과 책임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이 저야하는 책임의 다수는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그들의 책임 의식을 돌아보면 우리의 문제가 드러난다. 우리 역시 판단을 회피하고 책임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베트남 전쟁이나, 수도권을 위해 지방을 희생하는 사례(쓰레기 매립지, 발전소, 송전탑 등), 제주도 강정마을과 같은 다양한 국내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희생의 구조는 과연 일본만의 문제인가? 우리는 판단과 책임에 변명하지 않고 얼마나 솔직한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어떤 배려를 하는가. 우리 역시 일본과 같지 않은가. 삶의 자세도 돌아본다. 나 역시 판단하지 않고 회피하며 뭉뜽그려 저런 행동은 과격하다, 문제가 있다고 섣불리 지적하지 않았는가. 나 역시 강자의 가해자의 기득권자의 입장에서 흘러가는대로 가자. 그렇게 해서 실행이 가능하겠느냐는 말만 던지지는 않았는가. 나 역시 스스로에 대해 책임 회피, 판단 부재 상태에 있지는 않았는지.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 얼마나 지고 사는지에 대해 자문해 본다.

책임과 판단의 문제는 늘 고통스럽다. 아직도 고난의 길은 험난하다. 그 길에 좋은 일보다 나쁜일 만이 가득하겠지만 처음 그들이 왔을 때를 떠올려본다. ‘그들이오지 않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두 지성인은 우리에 명확하게 대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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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견으로는 책임의식이 희박하거나 부재하는 문제는 개인의식의 미발달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일본 국민 다수의 대세 순응주의나 동조주주의의 심성을 의식 깊숙한 곳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천황제와 깊이 연관된다. p.12

천황의 (p.17)이었던 일본인은 패전하고서야 국민 주권이라는 제도를 부여받아 신민에서 국민으로 바뀌었다. 국민은 자이니치 조선인 등 옛 식민지 인민을 배제한 토대 위에서 성립된 허구였으나, 그럼에도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국민에서 더 열린 존재 형식인 시민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일본 국민 다수는 기꺼이 자발적으로 신민으로 회귀하려 하는 듯하다. p.18

그것은 이미 옜날의 일이다. 물에 흘려보내자.”라는 말은 언젠나 강자, 가해자, 기득권자가 좋아하는 틀에 박힌 대사다. p.19

국가와 사회가 위험한 방향으로 크게 틀 때, 학자, 연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인식과 사상을 말하면서 계속 쓸 수밖에 없다. p.25

1990년대 후반으로부터 약 20여 년간 일본이 응답 책임을 지는 데 실패해 온 결과로서, 동아시아와의 관계에서 보자면 최악의 보수 정권이 그것도 장기 집권으로 자리를 틀고 앉아서 자신들의 오랜 야망을 착착 실현해 가는 광경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p.36

응답 책임에 대해 우파 쪽이 정면으로 부정하거나 역사 수정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른바 리버럴파, 신문으로 이야기하자면 아사히, 마이니치, 도쿄신문 과 그 매체들을 통해 발언하는 지식인들이 응답 책임이라는 것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도 이번 대담에서는 중요한(p.36) 주제로 삼고 싶습니다. / 전후 민주주의라는 도금이 벗겨진 “20이라는, 우리 두 사람이 공유한 역사를 겹쳐서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20년이라는 신간 속에서 다카하시와 서라는 두 인간이 무엇을 생각해 왔는지, 어떤 일을 해 왔는지 분명하게 싶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주의라는 지금이 드러난 현재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p.37

디자인으로서는 괜찮다라고 한다면, 나치 독일의 국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있겠지요. 여기서도 일본 리버럴파의 약점이 드러난다고 봅니다. 즉 역사성의 소거, 더 조심스럽게 말하더라도, 역사성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p.59

제국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 전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인식인데, ‘전쟁 책임’, ‘전후 책임’ ‘식민 지배 책임중 어느 것이든 1945년에 끝난 일본 제국 체제에 대한 책임을 불문에 붙여 왔다는 점, ‘중심부 일본 국민이 그에 대한 판단을 회피해 왔다는 것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것이 일본 사회의 곳곳에 왜곡과 불철저함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역사의 잘못을 직시하며 그것에(p.66)대해 스스로 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점이 전후 일본의 근본 문제가 아니냐는 것이지요. 그것을 하지 않은 국가 지도층의 문제가 크지만, 국민도 그것을 피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식인들에 대해 말하자면, 특히 1980년대에 들어서 세상이란 그렇게 단순히 선악 이원론으로 나눌 수 없다라는 논조가 퍼졌습니다. p.67

원칙론적인 차원이나 운동론과, 유효성 논의의 차원이 언제나 의도적으로 혼동되고, 원칙론적인 의견에 대해 유효하지 않다. 역효과다, 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문제지요. p.76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계기로 보수 세력의 희망으로 대두한 아베 신조 씨에게, 연합군 점령하에 만들어진 일본국 헌법과 그것을 떠바디는 교육의 원리는 정한 <교육기본법>, 이 두 가지는 전후 레짐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제1차 아베 정권은 헌법 개정에 앞서서 <교육기본법>부터 손대려 했습니다. 또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면 자신의 목숨을 국가에 바치는 것을 국민의 모범으로서 현창하는 야스쿠니신사의 부활과 병행해서, 국가르 ㄹ떠받치는 구민의 마음을 고취시키기 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 축이 <교육기본법>의 개정이었습니다. p.88

1950~60년대에는 일본교직원조합과 관련 교육 연구 단체들이 일본 리버럴 좌파운동의 큰 기둥 중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냉전 종결 이후 사회당, 총평 그룹일는 기반이 무넞지자, 그들은 교육 이념 그 자체를 지킬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 자신들(p.89)의 이해와 직결되는 노동조합이 무너지자 이념에 대해 입을 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냉소적인 사회 풍토가 이루어진 전환점이 아닐까요. 그렇게 되자 아이들은 이념보다도 이해로 움직이게 되고, 설령 이념을 이야기해도 그것은 단순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직감을 체질화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p.90

이념을 말해야 할 사람들이 맥없이 이념을 내버릴 때에 자신은 나약했다는 아픔이 수반되는 자기 부정이라면 또 몰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거나 이것이 현실주의라거나 거기에 집착한느 놈은 바보라는 식으로 자기 정당화를 하는 것, 여기에 지금 이 대담의 주제 중 하나인 일본 리버럴파가 지닌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다. p.90

중요한 것은 겉모양이 아니라 정치의 방향성, 주권자의 의식 수준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p.94

천황의 이름으로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운명이 뒤틀려 버렸는지를 생각하면, 현실과 말 사이의 낙차에 눈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p.105

먹으로 쓰인 거짓말은 피로 쓰인 사실을 감출 수 없다. 혈채는 반드시 같은 것으로 되갚아 주어야 한다.” - 루쉰 p.108

식민 지배라는 제도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 구성된 이상, 제도의 역사적 극복은 양자가 서로 다른 각도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 노력함으로써 달성할 수밖에 없다. 바꾸어 말하면, 식민 지배 시대를 넘어서는 것은 인류사가 조일 두 민족에게 부탁한 사명이다. 조일 두 민족 중 어느 쪽도 어떤 의미에서든 납치와 식민 지배를 저울에 달아서는 안 된다. 설사 타산적인 헛말일지라도 일본국 대표가 조선 민족에게 식민 지배의 잘못을 인정한 ‘9.17’(북일평양선언)을 새로운 불신과 절망적 대립으로 가는 전환점으로 만들어서는 결코 안된다. 하물며 다음 전쟁의 단서로 삼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p.118

저울에 올리는 심리는, 국가적 정체성과 개인의 정체성이 뒤섞인 정신이지요. 우리 일본인만 나쁘다고 하지만, 너희 조선인도 ... 라는 유치한 논리가 있다고 봅니다. p.122

도금이 벗겨지고 강고한 지금(본성)’이 드러났다고 느꼈습니다. ‘본성이란 메이지부터 패전까지의 기간에 만들어진 일본 국가의 체질,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그것을 내면화한 일본의 국민 의식이기도 합니다. ... ‘식민주의는 그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p.128

나는 피해자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반드시 선한 사람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로 몰니는 것은 사회적으로 최하층이고 몇 겹으로 가중된 차별을 받아 온, 교육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일본 제국의 군국주의 사상을 내면화하거나, 자신보다 더 학대받은 자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결코 위안부제도에 대한 면죄부는 될 수 없지요. / 백 보를 양보해서, 한국에서 위안부문제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설사 피해자 모델을 만들어 신성화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그런 한국 사람들을 향해서 자기 성찰로서의 재고를 주장할 일이지, 일본의 언설계가 그서을 환영하고, 증폭시키고, 재생산하는 구도 자체는 차마 두고 보기 어려우며 지적으로도 퇴영일 뿐만 아니라 식민주의를 연명시켜 증폭하는 방향으로 기능한다고 생각합니다. p.142

지향해야 할 것은 조화가 아니라 극복을 통한 보편적인 연대입니다. p.146

국가 간의 화해, 국가를 주어로 삼고, 국민이라는 하나의 집단을 주어로 삼고 말하는 화해에서는 그 밑에서 내버려지는 희생의 구조에 의해 배제당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법 권력의 폭력이 존재합니다. 그런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적, 정치적인 결정은 늘 감시, 비판받고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대 세계에서 국가나 국민이라는 단위로 법적,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한, 국가, 국민 단위의 정치적인 해결 자체를 거부할 수도 없지요. 따라서 그 해결은 가능한 한 피해자가 납득하는 선까지 접근해야 합니다. / 데리다의 이야기는 아무리 피해자가 납득하는 선까지 접근하더라도 완벽한 해결을 없으며, 법적, 정치적 결정은 반(p.156)드시 어딘가에 폭력을 내포한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결정,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결정,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정의는 없다, 라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결정 불가능한 속에서의 결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또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그 정의는 하나의 법으로서 상황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 밑에서 또 상처받거나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법을 끊임없이 수정해야만 합니다. 즉 반복해서 결정, 결단을 계속해 가야만 한다-이것이 데리다가 말하는 법의 탈구조라고 생각합니다. p.157

다수결로 결정하면 소수파의 의견이 버려지므로 그 자체가 하나의 희생 구조입니다. 따라서 그럴 경우 다수결로 결정할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소수 의견도 존중해야 합니다. 소수 의견을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던져지는 질문을 끊임없이 고려하면서, 내려진 결정을 거듭 음미하고 재검토해야 합니다. / , ‘저지먼트에는 불가피하게 폭력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내버린 온갖 목소리들에 응답하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이는 역사의 재검토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p.180

오키나와에 대한 식민주의의 문제를 둘러싸고 노무라 고야 씨가 <무의식의 식민주의>를 썼는데, 그 책에서 권력적 침묵이라는 개념을 제기합니다. 자기 자신의 포지셔널리티가 우위에 있는 자, 식민 지배라면 식민자 쪽에 있는 인간은 피식민자가 제기하는 질문, 비판, 고발에 대해 침묵만 지켜도 자신의 기득권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p.182

직감적으로 말하면, 한나 아렌트라면 자신이 타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했을 때 그래도 그 판단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라는 고민을 했겠지요. 이는 칸트 식으로 말하면 보편화 가능성입니다만, 단지 일반화할 수 있는지의 여부만이 아니라, 거꾸로 약자의 입장에서 피해자 쪽에 서 있더라도 지금 자신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작업을 통해 자기 보신을 위해서 내리기 십상인 자신의 판단을 상대화해 보지요. 그런 의미에서 정의라는 관념의 핵심에 있는 것은 역시 타자와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요. p.183

침묵해도 자신은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겸허한 몸짓의 폭력 - “너도 그런 말 할 자격은 없어라든가 너는 그런 식견이 없으니까 안돼라는 것이죠. 젠더로 말하면,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적 발상, 자기 보신의 폭력이 그런 구조 속에 늘 있지요. p.184

레토릭만 유통되면 현상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인간에게 항상 유리합니다.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 레토릭을 활용해서 정의 따위는 없어, 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p.185

근대 일본이 그런 분단과 차별 위에 만들어진 식민 제국인데 그 구조가 지금의 일본 사회에서도 유효하게 기능하고 있습니다. p.223

타자에 대한 책임의 인정과 사죄, 보상이 없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p.223

다시 본성론으로 돌아갑니다만 일본이 무엇이지라거나 일본의 근대는 무엇이었나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이토록 집약적으로 철저하게, 그리고 알기 쉬운 형태로 드러난 적이 없었습니다. 예컨대 안보조약이라면 오키나와, 식민지배라면 대만, 조선, 중국 ? 모두 타자들입니다. 타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자신을 지키겠다는 가짜 논리지만, 당연히 자국 내에서도 그 논리가 버젓이 통하고 있습니다. ‘기민을 정당화하는 레토릭을 포함한 국책에 대해서 역시 위에서 하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운 나쁜 놈이나 약한 놈은 입 다물고 있어라는 태도나 심정을 굳히게 되지요. “일본은 그런 나라였어라는 것이 재 확인되었다고 나는 생가합니다. p.228

개인에게 닥친 가혹한 경험의 의미가 타자의 말로 규정되어 버릴 때, 그 당사자는 자신의 말을 찬탈당한 듯한 감각에 빠집니다. 특히 아카데미즘이나 저널리즘의 언어를 그 위에 덮어서 쓸 때는, 당사자임에도 그 일들이 마치 다른 세계에서 일어난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p.235

포스트모던적인 상대화가 사실을 중심부 일본 국민의 기득권을 지키는, 또는 자기 자신의 기득권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 기제로 기능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p.270

그러나 시대를 넘어 빛을 발하는 그 사람들의 언설도, 전체주의화가 어느 단계까지 진행되면 언론을 통해서 그것을 저지할 수 없게 됩니다. 평소에도 우리의 언설이이 얼마나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그런 상황은 변함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렇게 되기 전에 교육이나 문화를 통해 어떻게든 막아 내야 하는데, 서 선생이 말씀하신 것 같은 인간의 신성이 발휘되는 사례나 사상적 광휘가 있더라도, 그것이 현실의 붕괴를 막을 수 있을지는 유감스럽게도 의문이지요. p.286

지도자, 주류파 미디어, 체제파 지식인들의 말은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보편주의에 호소하는 레토릭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타자,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발전 도상에 있는 나라의 국민들에 대한 정책을 이야기 할 때 특히 그렇다고 윌러스틴은 말합니다. 그들의 레토릭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첫째로 인권 옹호, 민주주의 촉진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이라크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둘째, ‘문명의 충돌로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이때는 항상 서양 문명이 보편적인 가치나 주의에 입각한 유일한 문명이며, 다른 문명보다 우월하다고 말합니다. 셋째, 신자유주의적 경제학의 법칙들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주장하지요. / 이들은 결코 새로운 주제가 아니며 라스카사스-세풀베다 논쟁 이후의 세계에서 일관적으로 유지된 구도이고 그 논쟁은 지금도 이어진다고 합니다. 월러스틴은 이러헥 권력에 의해 왜곡된 보편주의를 유럽적 보편주의라고 부르고, 진정한 보편주의, ‘보편적 보편주의를 이것에 대치시키라(p.297)고 호소합니다. “이 두 개의 보편주의사이에서 선택은 피할 수 없다. 어떤 초개별주의적 입장(중략)으로 물러날 수 없다. 왜냐하면 초개별주의는 실은 유럽적 보편주의와 현재 권력을 장악한 자들의 힘-그들은 비평등주의적이며 비민주주의적인 세계 시스템의 유지를 꾀한다-에 대한 은폐된 항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해서 폐쇄적인 내셔널리즘이나 쇄국과 같은 배타주의 쪽에 틀어박힐 수도 없다, 우리는 그 대립하는 두 세계 속에서 어려운 길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 일본은 메이지 이후에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해서 근대 일본을 구상한 사람들이 동아시아로 진출해 온 유럽적 보편주의와 곧바로 조우했고, 자신들이 아시아와 근린 제국으로 침략해 들어가는 길을 선태했습니다. 이른바 탈아입구지요. 그렇게 해서 유럽적 보편주의가 일본의 근대화에 수용되었습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일본도 범유럽 세계의 일각에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p.298). 그러나 동시에 유럽적 보편주의마저도 일본적으로 왜곡해서 일본적 보편주의라고나 해야 할 것이 거기서 만들어졌습니다. 예를 들자면 태평양전쟁 때 선전한 대동아공영권’, ‘팔굉일우라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조선인의 민족 독립운동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개별적 도전이라는 레토릭으로 끊임없이 탄압당햇습니다. 그것은 <치안유지법>의 논리인데, 예컨대, 옥사한 시인 윤동주의 판결문에도 그 사상이 적혀있지요. / 따라서 이 문제는 월러스틴을 흉내 내서 말한다면, 지금도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선만이 아니라 오키나와를 둘러싼 문제에서도 그것이 일본국의 중심부 일본 국민에게 사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할 때, 기지 부담의 평등, 공정성은 물론이고 더 깊은 의미로 말한다면, 메이지 이후 이런 구도에서 일본 국민이 빠져나오는 것, 월러스틴의 말로 하자면 가짜 보편주의에서 진짜 보편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런 어려운 길로 가는 하나의 방향성을 읽어 내야만 한다. p.299

천황제가 전쟁 전과 전쟁 중에 야기한 참화에 대해 천황 자신도 일본 정부도 공식적으로 반성의 뜻을 표한 적이 없습니다. 아키히토 씨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천황제입니다. 천황제 때문에 현행 헌법의 민주적인 원리들이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는 면도 많습니다. p.312

천황제는 근대 일본의 몬스터 같은 제도로, 질체 없는 유령과 같은 것을 설정해 놓고 모든 대립을 조정하며, 그 결과를 지배층의 이익으로 회수시키는 장치지요. p.315

조선은 근대 일본의 이중 기준의 핵심을 건드리는 문제로 존재합니다. p.318

화해는 필요하지만 문제를 소거하는 화해는 안 되며, 그런 가짜 화해는 일본적 보편주의를 넘어 유럽적 보편주의에 접근하고 다시 그것을 넘어 보편적 보편주의로 가는, 마땅히 그래야 할 방향성에 반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p.318

근대 일본 국가는 전쟁과 차별로 만들어졌다. p.327

이 나라에서는 지금도 헌법의 민주적 가치들이라는 문자 아래서 천황제의 장치들이 지금(본성)’처럼 존재하고 있다. p.337

조문상을 그런 장면으로 내몬 일본의 책임을 밝히는 방향으로 그의 원죄를 풀어야 했는데, 거꾸로 여기서는 오로지 일본의 책임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강조되고 있다. 조문상의 원죄를 푸는 일이, 일본의 원죄를 풀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 셈이 된 것이다. p.354

데리다에 따르면 신의 부름에 따라 이삭에게 칼을 내리치는 아브라함의 행동에서는, 타자의 부름에 응답하고 책임을 지려는 자가 한순간도 도망칠 수 없는 절대적 희생의 구조가 드러나 있다. 한 타자()에게 충실하려 하면 다른 타자(이삭)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다른 타자를, 다른 타자들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한 타자의 부름, 요구, 책무, 그뿐만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도 응할 수 없다.” 이것은 키르케고르가 말하는 신앙의 기사만이 직면하는 예외적인 사태가 아니다. 법적, 정치적 결정은 물론 모든 윤리적 결정에서 피할 수 없는 구조이며, “모든 남녀가 모든 순간에 직면하는 책임을 그 역설로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 우리는 누가 아브라함이라 불(p.358)리게 될지 모른다.” p.359

사람은 절대적 희생구조 속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으며, 그 외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결정의 거부 또한 하나의 결정이며, 최악의 희생도 방관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p.362

모든 희생의 폐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 없이 책임 있는 결정은 있을 수 없다. 또는 희생의 폐기란, 특이한 타자들의 부름에 보편적으로 응하는 것, 즉 데리다가 말하는 정의에 다름 아니다. ‘절대적 희생의 구조 속에서, 그러나 모든 희생의 폐기를 욕망하며 결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p.364

일본형 전체주의가 여기서 완성되었다. 사고 정지와 자발적 예종이 습관적으로 몸에 밴 광범한 국민들이 아래에서 떠받쳐 주는 전체주의다.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틀 바깥으로 밀려난 자이니지 조선인인 내가, 아마도 지금 많은 일본 국민이상으로, 일본 민주주의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을 것이다. 역설적인 일이다. p.401

계급 사회에서 만인은 만인에 대한 기생충인 것이다. p.420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공세적 디스(dis)는 미중 무역 전쟁 등 헤게모니 쟁투로 이어진 동아시아의 정세 변동과 밀접히 얽혀 있다. 그것은 기존의 미일 주도하의 냉전적 질서가 더는 유효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일본 주류와 이 체제의 입안자요 실행자인 미국 주류 세력은 이 질서를 온존, 강화하려는 데서 초래된 파열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p.423

1853년 페리 제독의 일본 내습 이래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근간은 언제나 일본 확보였으며, 조선이나 한반도는 그것을 위한 주변적 요소였다. 분단과 한국전쟁 개입조차도 그 일본 확보를 위한 미국 전략의 부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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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을 낭동하겠습니다] 현직 판사가 말하는 판결 아래의 일상 | Memento 2021-03-0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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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판결문을 낭독하겠습니다

도우람 저
시공사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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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이라는 수면 위보다 서류, 인간적 고뇌, 양심, 제약의 수면 아래의 일상이 더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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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직업을 가진 이후로 슬럼프만 되면 다른 직업이 궁금해진다. 같은 직장에서 계속해서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다른 경험에 대한 동경이 생긴 듯하다. 특히, 슬럼프 때마다 많은 생각에 부딪힌다. 만약 내가 저 직업을 가졌더라면, 혹은 돈이라도 많이 받았더라면. 슬럼프 때마다 반복되는 무의미한 질문들은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현재 직업을 그만두면 먹고살 방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직업을 찾아 나서기에 남다른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스스로를 갈아 넣는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할 판이다. 그렇기에 고학력 직종 전문 직종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가정을 해본 적이 없다. 아마도 신포도는, 가질 수 없는 것은 가정조차 무의미하다고 여겼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책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저런 판사가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연일 부당한 판결들로 난자당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일하는 방식, 일상적인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기억은 드물다. 판사들이 쓴 다양한 에세이들이 출판되어 그들의 생각은 비교적 널리 알려지고 있음에도, 그들이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저 서류에 갇혀 살 뿐이라고 짐작만 한다. <판결문을 낭독하겠습니다>는 현직 판사 스스로 말하는 판사(직업) 설명서다. “‘한 권으로 읽는 재판 실무 해설서판사 무작정 따라 하기에 가깝(p.10)”다고 저자 스스로 못 박는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의 사정을 알리는 일이야 말로 올바른 이해로 다가가는 길(p.24)”이라 믿기에 저자 스스로 일하는 방법을 공개한다고 말한다. 현직 판사라는 한계가 있지만, 판사의 일상적인 삶과 일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들을 수 있다.

사건의 결론을 내리는 일, 대립하는 가치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p.182)”. 결정 장애가 있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누군가의 운명을 가르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고달픈 일이라 짐작된다. 판사는 그것이 직업이고 일이라는 점에서 숨 막힐 듯하다. 자신의 선택이 정답인지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본인의 양심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또한 판결이 결론을 내리고 한쪽을 선택하는 만큼 적이 생기고 싫은 소리를 듣는 게 필연적이다. 괜히 공무원 봉급의 절반이 욕(먹는) 값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결정에 우군은 적고, 적군만 많은 판사는 고독한 직업임이 분명하다. 자연스럽게 대중과 괴리되고 숨어들 수밖에 없겠다 싶다. 공개하고 드러날수록 먹는 욕은 늘기만 한다. 그렇다고 월급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들의 일은 선택하는 일이다. 항상 선택을 강요받는다. 최선이 아니라도, 차악이라도 선택해야만 한다. 선택을 위한 업무 역시 과중하다. 경찰이나 검찰 역시 업무는 과중하고, 선택의 고통은 여전하다. 하지만 최종 결론을 자신의 몫이 아니다. 판사가 있기 때문이다. 판사는 정의를 실현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최종 판결 권한을 가지고 있다. 판사가 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p.281)”지만, 가장 최후에 최종적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대중과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가 그게 아닐까. 대중의 법 감정과 판결, 양형의 부당함에 많은 사람들이 성토하지만, 대부분의 판사들은 자신의 판결이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p.392)”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판사를 만날 일도 없기에 그들의 노력, 일과 일상에 대해 알 수 없다. 여기에 이 책의 의미가 있다.

친밀한 사람 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사랑의 감정 같은 것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판사의 눈빛을 볼 기회도 적고, 본다 해도 그들과 친밀하지 않다. 당연히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결국 말해야 한다. 서로 공개하고 이야기하고 터놓아야만 알 수 있다. 판사들이 쓴 에세이보다 조금 더 객관적으로 판사의 생각법에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판결이라는 수면 위 보다 수면 아래에 있을 서류와 고뇌, 그리고 다양한 법리와 제약을 떠올려 본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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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법률 에세이가 아니라 한 권으로 읽는 재판 실무 해설서판사 무작정 따라 하기에 가깝습니다. 그러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애초에 글을 쓴 동기이기도 합니다. p.10

무엇이든지 감추기보다는 드러내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의 사정을 알리는 일이야 말로 올바른 이해로 다가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제대로 알리지 못한 부분은 전하고 잘못된 점은 고쳐야겠지요. 법원과 판사가 공적인 위치에 있음을 생각하면 굳이 감출 이유도 없는 것이고요. p.24

실형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가 요구하는 액수의 합의금을(p.149) 지급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합의가 되었으니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방식이 정의로운 결과일까요? 피고인에 대한 형벌을 정하는 절차에 돈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상황은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p.150

사건의 결론을 내리는 일, 대립하는 가치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p.182

판사로 일하면서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하나는 (...) 헌법에서 말하는 양심은 선함이나 정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관적 가치판단에 따른 사물의 옳고 그름에 관한 내적 믿음을 뜻합니다. ,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판사 자신의 옳고 그름에 관한 내적 믿음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둘째, 헌법과 법률에 의해서만 판결할 수 없는 사건이 제법 많기 때문입니다. p.202

법조계에는 판사가 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연히 당사자들입니다. 그다음은 당사자들을 직접 대면해 면담하고 조사한 변호인과 검사입니다. 판사들이 보는 것은 변호인과 검사를 통해 진실이 어느 정도 여과된 다음입니다. 판사들이 변호사나 검사와 달리 피해자와 피고인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이유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객관성을 확보하는 자리는 진실에서 조금 멀 것이고요. p.281

판사가(p.391) 선고하는 하나하나의 판결이 당사자들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느리긴 하지만 사회적 갈등을 푸는 역할을 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판결 중에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다소 튀는 것이 나오는데 오히려 그러한 판결들이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데 기여할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판사는 자신의 판결이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합니다.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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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권요영]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 | Memento 2021-02-1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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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권오영 저
21세기북스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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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절대 과거에 매몰된 학문이 아니다. 끝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다보면 현재가 보이고 미래로 가는 길이 열린다. 역사는 그렇게 살아 있다. 그래서 역사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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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대학교 시절을 회상하면, 두 교수님의 강의가 떠오른다. 장교수님과 전교수님의 강의다. 장교수님의 강의에서는 역사에 대한 기본 전제를 배웠다면, 전교수님에게는 역사에 대한 시야를 배웠다. 전교수님의 한민족과 다문화라는 강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문화에 경기를 일으킨다. 과거의 유물들과 사료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한민족은 허구일지 모른다고. 우리의 지난 역사는 단일민족이거나 폐쇄적인 문화를 가졌던 게 아니다. 반대로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살던 개방적인 한반도였는지도 모른다. 시야를 넓게 봐야한다고 배웠다. 마찬가지로 권오영 교수의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는 두 교수님의 강의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야를 보여준다. 우리가 알던 역사적 사실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역사는 생물과 같다. 모든 학문이 그렇지만, 역사는 살아 움직인다. 과거에 박제된 망령이 아니다. 변화한다. 고정된 진리나 법칙은 비교적 중요하지 않다. 증거에 기반 한 경향성과 가능성을 바탕으로 합의한다. 그 합의가 어떤 방식, 어떤 방법이냐에 대해서 논쟁이 있겠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상호간 검증하교 정교하게 다듬는다. 중요한 것은 증거, 즉 사료다. 역사는 사료를 바탕으로 과거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 세계는 어떤 인식을 가지고 만들어졌는가(사관)에 따라 그 범위는 무한히 확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한없이 쪼그라들기도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역사는 범위를 설정하면서 시작한다.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역사는 구분과 범위 설정에 민감하다. 그래서 역사를 시간의 범위에 따라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나눈다. 지역별로도 나누고, 국가별로 나누기도 한다. 근래에는 이런 범위를 붕괴시키고 미시사나 빅 히스토리처럼 마치 역사가 아닌 범학문적인 역사도 많지만, 기본은 범위를 설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권오영 교수의 책은 이 범위 설정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고대 한국사는 우리의 잘못을 알아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부족한 문헌 사료, 식민지 경험으로 인한 오류, 긴 시간의 경과에 따른 망각 속에서 우리는 역사적 진실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시야를 넓혀보면 다르게 보인다.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민족 (...) 실상, 그런 민족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p.223)” 한민족이라는 허구성, 폐쇄적인 문화는 조선 하반기 격동의 시기에 발생한 반동이었을 뿐, 길고 긴 한반도의 역사는 열린사회, 다문화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그 증거는 아직도 땅속에 머물러 있다. 또한 한반도가 아닌 이역만리의 타 지역에도 숨겨져 있다. 그렇기에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외국에 대한 발굴 지원과 학술 연구는 우리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이자, 우리 스스로를 더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저자는 후배 사학자들에게 조언한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학자의 엉덩이가 더 가벼워져야 한다.(p.72)”.

역사는 흥미롭다. 우리가 우리 세계를 어디까지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디까지 범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경계가 변화한다. 단순히 한반도, 한민족에 머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를 경험했다.(p.249)” 조금만 넓혀서 본다면 동아시아에서의 한반도, 나아가 세계 속의 한반도, 인류속의 한국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시각(p.226)”한국인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역사는 그저 과거에 집착하고 매몰된 죽은 학문이 아니다. 과거의 해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통해 역사는 그런 질문과 대답하고 시작되고 이어미래로 나아간다.(p.77)”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는 거기에 대한 실마리를 안겨준다. 좀 더 범위를 넓게 보자. 우리의 미래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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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는 말처럼 역사학 중에서도 문헌 사료가 가장 부족한 고대사 연구를 위해서라면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통해 생산된 빅데이터의 활용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p.27

가야 고분의 고고학적 조사와 연구는 임나일본부설을 분쇄하는 일등 공신으로 평가된다. 앞으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유라시아 차원에서 전개된 원거리 교류에서 가야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힐 것이다. p.57

2004년에는 용두산 정혜공주묘 주변을 조사하다가 3대 문왕의 부인인 효의황후와 9대 간왕의 부인인 순목황후의 무덤을 발견했다. 여기에 세운 묘비에서는 왕비가 아닌 황후라는 호칭이 사용됐다. 발해인들이(p.62) 자국을 황제국가로 인식한 확실한 증거인 셈이다. 하지만 이 귀한 자료의 전모는 발굴조사 이후 여태껏 공개되지 않고 있다. 발해사를 말갈족이 세운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깎아내리려는 중국 당국의 공식 입장과 정면으로 상충하는 자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외부적으로 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고학적 실물자료 없이 정치적인 의도로 작성된 당시의 문헌 자료로만 역사 연구를 시도한다면 얼마나 큰 왜곡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경고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p.63

백문이 불여일견이 진리이듯 백기록이 불여일유물인 경우가 자주 있다는 사실 p.64

땅에(p.71)서 새롭게 출토되는 자료에 의해 기존 정설은 붕괴되며 새로운 연구 과제가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다. p.72

1부의 결론은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학자의 엉덩이가 더 가벼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정된 문헌 자료만 가지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씨름하던 시대는 지났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 답사가 필수인 시대다. p.72

역사학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 고고학자가 발굴한 유물을 가지고 화학자와 함께 분석하기도 하고, 토목공학자와 함께 공학적 원리를 규명하는 식으로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역사 연구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p.74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역(p.76)사는 과거의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하고 재구성한 결과다. 사학자라면 과거의 해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그런 질문과 대답으로 시작되고 이어지며 미래로 나아간다. p.77

중국의 사례를 보아도 그렇고 한국사에서도 순장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던 때와 소멸되던 때를 확인 할 수 있으며 그 사이에 일어난 사회적 변혁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순장은 단순한 장례 풍습의 의미만이 아니라 계층분화 현상과 신분제 사회의 실체를 규명하는 실마리라 할 수 있다. p.112

대형 고분의 시대에서 불교 사원으로의 이행은 다시 말해 고대 사회에서 중세 사회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p.140

수도유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 고대 국가들이 주고받은 문화적 교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래저래 수도유적은 고대 국가의 다양한 면모를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소재다. p.154

역사학자는 시세를 따라가며 연구해서도 안 되지만, 홀로 성을 쌓고 안주해서도 안 된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 교육이 우리의 고대 사회를 단일민족이라 표현하며,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민족으로 그려온 이미지를 정정하기 위해서다. 실상, 그런 민족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p.223

동쪽의 조용한 은자의 나라혹은 순수한 단일민족이라는 우상은 물론 고대시대, 우리의 교섭 상대는 중국과 일본뿐이라는 잘못된 프레임을 깨야 한다. 쇄국을 국시로 삼던 19세기 말도 아닌데, 21세기에 태어난 우리의 후손들에게 이런 역사관을 심어주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는 없다. / 21세기를 주도할 후손들에게 넓은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시각을 전해줘야 한다. 앞으로 코리안이란 정체성은 태어난 장소와 얼굴 형태, 핏줄을 통해 정해지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코리안의 인종적 스펙트럼은 훨씬 넓어질 것이다. ...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겨야 한다. p.226

몽골족과 스키타이, 무굴 등 우리가 제국이라고 부르는 모든 국가는 사실 다문화 사회였다. p.233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분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국익을 위한 이합집산이 무궁무진하게 반복되는 외교 무대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으려면 항상 우리 편을 들어주는 국가가 셋 이상은 있어야 하는데, 가장 유력한 후보는 단연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이라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초강대국 주변에서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우리와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p.244

고대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를 경험했다. p.249

지금까지 소개한 유적들은 모두 우리 역사와 관련성을 갖기에 당연히 한국인 연구자들의 연구 대상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 역사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것들만 연구해야 할까? 우리와는 무관하더라도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데 뛰어든다면 국고 낭비가 아니지 않을까? 이제 대한민국도 민족사를 넘어 세계사 연구에 공헌할 때가 되었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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