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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이정모] 무뎌진 장단점 | Memento 2020-10-0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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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2

이정모 저
바틀비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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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여러 개의 손가락을 주셨듯이 과학의 방법도 여러개지 않을까. 장점이자 단점인 정치적 선명성이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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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권에서도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을 정치적 선명성이라 했다. 2권 역시 기존의 평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칼날이 무뎌진 느낌은 있다. 정권의 변화에 따름일까. 다소 톤 다운은 확연하게 느껴진다. 전작들이 사회나 정치문제에 대한 극렬한 비판(혹은 비난)이었다면, 금번의 글들은 문제 해결책에 대한 건설적 비판(혹은 제안)으로 읽히는 부분이 많다. 이런 논조 변화(?)에 대해서 사람마다 판단 기준은 다르겠지만...



혹자는 이게 무슨 과학책이냐며 분개할지 모르겠다. 이런 일방적인 주장이 무슨 과학이냐고, 그저 정치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느냐고. 분명 저자는 1권에서부터 밝혔다. 이 책은 칼럼을 모은 책이다. 칼럼은 짧은 분량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논쟁을 일으키는 게 당연하다. 각자의 생각은 다른 법이니까. 모두 같은 생각을 강요할 때 우리는 갈릴레이의 입을 막았고, 논문을 조작했음에도 국익 앞에 내부고발자는 죄인이 되었다. 논쟁은 분명히 시끄럽고 비효율적이지만, 그만큼 서로를 검증하는데 적합하다. 과학이 택한 방법 역시 논문과 데이터로 논쟁하는 것이다.



또한 과학자는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만큼 객관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고 불평할지 모르겠다. 결국은 탈정치를 주장하는 것인데, 역설적이게 가장 정치적인 발언이다. 좌우나 기타 이념에 의해 과학이 왜곡되지 않도록 탈정치화 하자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 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지 말자는 얘기다. 그렇다면 무엇을 따르자는 말인가?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검증절차를 폐기하자는 건가. 논쟁을 버리고 어떻게 기준을 세워가자는 말인가. 기존의 어떤 길을 따르자는 말인가? 그렇다면 패러다임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테다. 결국 무엇을 따를지는 탈정치를 외친 사람만이 정할 수 있다. 그 외에는 다 정치질이니 닥치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전작에서 저자는 과학을 생각하는 방법이자 세상을 대하는 태도라 말했다. 저자가 배운 과학과 다른 사람들이 배운 과학은 같다. 각자가 가진 방법과 태도가 다르기에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분명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시끄럽고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이 결국 과학의 힘이다. ‘신이 여러 개의 손가락을 주신 것처럼 인류에게도 여러 가지 길을 주셨다’ “무조건적인 옹호와 비판에 대한 조건 반사적인 반박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자들에 대한 관용(p.344)”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이러한 생각과 맞닿아 있는게 아닐까.



과학이라는 전문지식과 정치적 사안, 이를 연결하는 글 솜씨와 전개 과정에 넘치는 유머는 여전하다. 다만 가장 큰 장점이 다소 사라져서 아쉽다. 모두까기 인형을 바란 건 아니지만, 1권과 2권 사이에 있었던 상황의 변화가 절실히 느껴진다. 그럼에도 저자가 해야 할 말을 선명하게 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문제가 없는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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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과학을 알고 과학적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우주라든지 생명의 기원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덜 불안해하면서 조금 더 안전하게 살고 그리고 우리가 낸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죠. p.7

이해는 완전한 암기를 위한 준비과정이지.” p.10

창의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복이다. p.12

아는 만큼 생각한다. 머리에 들어 있는 게 있어야 생각도 할 수 있다. 창의라는 로켓은 암기라는 스프링의 힘으로 발사된다. 암기를 잘하면서도 창의성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암기를 못하면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없다. p.13

고생물학자 토머스 홀츠의 말마따나 때로 과학에서는 모른다가 제일 좋은 답이다. 과학에서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모른다라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을 믿는 게 가장 안전하다. 짐작은 얼마든지 하되 대답은 모른다고 하자. p.24

똘똘 뭉치는 게 운동이 아니다. 운동은 늘 자기편을 늘려가는 과정이다. p.92

자기가 얻은 점수를 얼른 납득하고 인정하는 것도 능력이다. p.149

공포와 혐오가 마구잡이로 퍼지면 우리는 그 공포와 혐오의 지배 속으로 들어간다. 쓸데없는 공포와 혐오의 혐의를 벗겨주는 것이야말로 정부와 언론, 그리고 전문가가 할 일이다. p.186

(마시멜로 심리학 실험) 연구팀은 인내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며 자기 통제력에는 이성이나 의지보다는 마치 거기에 마시멜로가 없는 것으로 여기는 지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p.199

명랑한 사회가 되려면 미래 보상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시민, 특히 젊은이들을 속여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치, 경제, 문화 환경이 만들어지면 우리는 모두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의 참을성을 시험하지 마시라. p.201

조용히 도와주면 된다. 며느리가 핀잔 좀 들었다고 불같이 일어서면 며느리만 외로워진다. ... 지지자들(p.343)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옹호와 비판에 대한 조건 반사적인 반박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자들에 대한 관용이 아닐까? p.344

p.349

땅 위의 영양분을 물속으로 운반하는 것이 하마의 생태적인 역할인 것처럼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과학관 역시 자원을 이동시키는 게 본연의 역할이다. 돈 먹는 하마에게는 돈을 아낌없이 주자. p.349

사서는 책과 독자를 연결해주는 지식 큐레이터다. 근사한 현대식 도서관 건물에 수만 권의 책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그걸 다 읽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게 맞는 책을 권해 주고 내 독서 인생을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이 바로 사서다. 사서야말로 도서관의 핵심역량이자 생명이다. p.358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p.359

어렵거나 실패를 많이 겪을지라도 우리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익혀두여야 할 방법과 태도가 과학이에요. 과학은 어려울 수 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깨달았을 때, 뭔가 알아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을 때 재미를 느끼는 거지요.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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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권내현] 역사는 반복된다?! | Memento 2020-09-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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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권내현 저
역사비평사 | 201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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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호적을 통해 '김수봉'가의 궤적을 그린 책. 역사는 반복된다고도 하는데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93%로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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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사정상 친척간의 왕래가 잦지 않다. 나 역시 무례할지는 모르나, 탐탁치 않게 여겨 집안의 어르신과 소통하는 일이 드물다. 그런차에 전화가 왔다. 족보를 재정비하고 있으니, 가족관계증명서 한 장을 보내달라 하셨다. 특별히 내가 가진 성씨와 집안에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일원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사정도 있었지만, 굳이 거절하기 어려워 우편으로 내어 드렸다. 집성촌에서 살았던 기억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내 과거임은 부정한다고 사라지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의병으로 유명한 고장에서 살아온 나는 직계조성이 의병장이라고 한다. 성함은... 봐도 양반 같지 않다. 어쨌든 실재 기록에 남아 있는 사람이니 믿을 수 밖에...어쨌든... 자기 비하라기 보다는 우리 집안이 양반이었을 거란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김수봉이라는 어느 노비집안의 가계를 추적 분석한 글이다. 조선시대 특정 가계의 호적을 분석함으로 신분제도의 변화와 사회상을 추적한다. 드물게도 김수봉은 경제력을 갖춘 노비였다. 그럼에도 견고한 신분제의 굴레는 수 백년, 수 세대의 걸친 노력을 거치고서야 조금 상승할 수 있었다. 이 역시 완벽하고 급격한 신분 상승이라기 보다는 신분제 자체가 동요하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한걸음 씩 나아간다. 노비에서 양인으로, 양인에서 군역을 면제 받는 유학의 지위까지 호적의 변화를 추적해 가는 경로를 보면 애처롭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속이고, 뒤틀어서 얻는 현실적 이득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그만큼 신분제의 불합리성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서까지 한을 남긴 흔적이 아닌가 한다.


김수봉의 사례가 얼마나 대표적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점은 우리의 대부분의 선조들이 겪었던 경로일 가능성이 높다. 1910년도 전국 호구조사에서 양반의 비율은 1.9%로 통계적 한계를 감안해도 조선시대의 양반 비율은 7% 내외였다고 한다.([계급사회로 가는 길]수능 인서울과 청년 정규직 비율 모두 '7%', 우연일까?, 한겨레, 2017.11.08.) 나머지 93%는 양민 또는 노비였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 대부분은 수봉의 후손들임이 분명하다. 치열한 노력과 동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시대는 계속해서 변했다. 갑오개혁,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을 거치며 신분제도는 역사책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는 그 신분의 구분이 지엄한 세상의 기본 원리라 믿었다. 지금 세상은 그 구분이 없어도 잘 굴러 가고 있다. 그 차이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잔인한 제도였는지를 실감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도 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똑같이 반복되진 않겠지만, 유사하게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불평등과 차별, 혐오가 시대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서로 배척하고 구분짓는 일이 일상이다. 불안한 현실에서 저마다의 안전한 자리를 만들고자 하는 애처로운 노력이라 믿지만, 이러한 상황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수 세대에 걸쳐 노력했던 가치가 한 순간에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니면 한 세대 한 세대에 걸쳐 다시 93%의 구분을 찾아서 후퇴하는게 아닐지 무섭기도 하다.

 

먼 훗날 한 역사가가 우리의 기록을 뒤져보며, 지엄한 신분이 만들어진 계기를 추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김수봉이 되었는지를 주민등록이나 인사기록 카드를 보면서 연구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머나먼 미래라 다가올 수 없는 시기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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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에 대한 서얼들의 집단적인 도전과 저항으로 양반 관료들은 서얼들에게 조금씩 양보하는 모양새를 갖추어야 했다. 어떤 사회든 저항 없이 자유가 확대될 수는 없는 법이다. ... 하지만 지역 내에서 혹은 한 가문 내에서 서얼에 대한 차별이라는 오랜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p.52

때로는 도망 이후의 삶이 끼니라도 해결할 수 있었던 노비로서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억압과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노비들의 욕망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수봉은 도망이라는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도망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이미 안정적인 삶을 누릴 만큼 재산을 모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도망이라는 방법보다 그가 가진 재산을 통해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하고자 했다. p.69

호적에는 갓동이 또는 갓동으로 이름 지워진 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평민들도 있지만 대개는 남자 종인 노의 이름인 경우가 많다. 그들이 설사 평민이라고 하더라도 아마 원래 신분은 노비였을 가능서이 높아 보인다. 이 갓동이는 개똥이의 또 다른 표기다. 수봉의 막내 이름은 원래 개(p.70)똥이었던 것이다. 노비의 이름은 양반과는 달리 동물, 식물이나 시간, 성격 등에 빗대어 흔하거나 천한 이름으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 p.71

호적에는 고유어로 만들어진 노비 이름들이 무수하게 등장한다. 때로는 이름만으로 그가 노비인지를 알 수 있기도 하다. p.75

노비들에게 붙여진 천하고 흔한 이름은 작명을 통해 발현되는 욕망의 거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p.75

역사가는 여기에서 장벽을 만난다. 논적 전개를 뒷받침할 자료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때 손을 털 수밖에 없다. 상상과 추론이 동원될 수 있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꾸며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역사학보다 훨씬 자유롭고, 앙상한 뼈대에 풍성하게 살을 덧보탤 수도 있다. p.79

이름을 바꾸는 것은 결국 이처럼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새롭게 출발하거나 성장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모든 개명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때로 그것은 의도된 혼란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p.111

수봉의 후손들이 심씨가의 손길을 벗어나 다른 마을로 이주하면서 성장을 꾀했다면, 심정량의 후손들은 한곳에 집거함으로써 다른 양반가와 경쟁했던 것이다. p.113

결혼 대상자의 지역적 범위는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과 맞물려 있기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수봉 후손들의 통혼 범위는 가까운 곳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p.130

군역을 지는 일이 노비가 아니라는 의식보다 양반이 아니라는 자괴감으로 다가올 때, 그것은 또 다른 장애물이자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p.135

지방의 전통적인 양반가의 입장에서 보면 하천민들이 그들처럼 유학이라 칭하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었다. 중앙의 정치권력은 서울의 노론 가문으로 재편되었고, 그들과 연관된 인물들이 수령으로 내려오면서 지방 양반들의 위세는 갈수록 약화되었다. 지방 양반들의 대다수는 여러 세대 동안 관직에 나가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그들은 중앙 권력에 쉽게 진출하지 못하는 이상 지방에서라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고, 그것은 신분(p.154) 질서가 엄격하게 유지되어야만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p.155

1858년 김정흠과 심항래는 비록 뿌리는 서로 달랐지만, 당대의 호적에 보이는 직계 조상의 직역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실로 새로운 양반 가계의 탄생이라고 할 만하다. p.157

기존의 양반들은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면서도 문중을 형성하고 그 활동을 확대하면서 위와 아래로부터의 도전에 맞섰다. 이 과정에서 부계를 중심으로 한 친족 문화가 발달하고, 그것은 다시 여타 계층으로 확산되었다. p.178

하천민 일부가 관심을 가진 이상, 이미 유학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수봉가에서 입양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들로 이어지는 가문이라는 관념은 양반가가 지닌 가족 문화의 핵심적인 실체였으므로, 직역과 본관을 바꾸는 외형적인 성장 외에 양반가의 문화를 하나씩 내면화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들에 대한 희구는 이미 양반가의 전유물도 아니었다. p.187

오랜 시간이 흘러 그들이 족보를 만들게 되었을 때, 그들은 친족 가운데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을 상당수 기록했다. 이는 수봉의 후손들이 특정 시점에서 조상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반추할 수 있을 만큼, 부계친(p.190)족 집단이 오래 전에 만들어져서 장기간 유지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활동은 양반을 향한 그들의 꿈이 양반 신분제가 철폐된 근대 이후로도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물론 그들 족보의 기록이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가계 이력을 입증하기 어려운 측면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전통 양반가의 족보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 모두 다 신분 사회 혹은 개인의 능력 이상으로 조상의 지위가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던 조선 사회의 한 단면이다. 양반들이 그럴진대 근대나 현대사회에서 처음 족보를 만드는 가계에서 일정한 조작이 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결국 족보가 얼마만큼 사실을 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족보 그 자체가 부계친족 집단의 발달과 양반 지향의식의 산물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어야 할 것 같다. p.191

수봉가의 이러한 움직임은 양반 중심의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하천민의 양반 지향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하천민들이 양반과의 사이에 놓인 간극을 줄이는 데는 저항과 동화라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자료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수봉가에서 양반 지배 질서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파괴하는 움직임을 찾기는 어려웠다. 호적은 오히려 그들이 양반을 지향한 흔적만 곳곳에 드러내고 있다. p.201

근대 이후 양반이고 싶어 했던 수봉 후손들의 욕구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계층 상승으로 가는 또 다른 사다리에 올라타야 했다. 한편으로는 미화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망각되어 가는 조상 이상으(p.202)로 자신과 후손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기회의 균등은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햇고, 오랜 염원이었던 교육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학력을 통한 상승 욕구는 갈수록 강화되었다. ... 인간이 사회적으로 평등하다는 선언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할 뿐 출생과 동시에 획득된 조건의 불평등을 염두에 둔 말은 아니다. 수봉가가 여러 세대에 걸쳐 좁혀 나간 심정량가와의 간극은 근래 들어 기회의 균등에도 불구하고 다시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장으로 가는 사다리에서 밀려난 이들은 수봉가처럼 또다시 기회를 엿보며 장기간에 걸쳐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수봉가의 후손들은, 심지어 심정량가의 후손들마저 그것이 현실에서 반복되지 않고 그저 흘러간 역사로 남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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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재구성-도진기] 다양한 방법의 판결의 내부를 들여다보기 | Memento 2020-09-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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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판결의 재구성

도진기 저
비채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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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되지 않는 권력이기에 더욱더 견제받고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새롭게 다양한 방식으로 판결의 내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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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 삼권분립의 정신에 입각해서 헌법을 꾸렸고, 그에 따라 살아간다. 이 원칙은 때론 무시되기도 하고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다. 어디까지나 믿고 있을 뿐이고 실재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주의깊게 보지 않는 이상 확인하기 힘들다. 게다가 일반적인 인식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 하다. 광화문1번가나 특이민원이 기사화 되는 사례를 보면, 입법사법행정의 분립 보다는 누구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느낀다. 사실 무엇이 중하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입법부든 사법부든 행정부든 구분이 무의미하다. 누구든 내 문제를 해결해주고, 살기 좋게 해주면 좋을 따름이다.

 

하지만 실재로 그런식으로 일이 해결되기는 힘들다. 뉴스 등을 통해 공론화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수 많은 불만과 노력과 아픔들이 번지수를 잘못 찾아간 덕에 시간만 날아가고 있다. 삼권분립은 우리가 믿고 있지만, 실재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입법부와 행정부는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 일꾼을 선출한다. 그렇게 국민에 대한 민감도를 높인다. 주인인 국민이 잘 찾아오지 못한다면, 일꾼이 찾아가면 된다. 선거를 통해서 움직이고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최소한 한국에서의) 사법부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선출이 아닌 임명된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당성을 가지는 가장 중요한 절차가 선거에 의한 선출임에도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3개의 축 중에 하나는 이와는 별도로 굴러가고 있다. 선거를 통해 법관을 임명하는 것도 명암이 있으니, 그것을 따지자는 건 아니다. 이 독립되고 고립된 권력기관이 점점 동떨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다. 이들은 입법, 사법기관의 선출된 자들과는 달리 임기가 보장된다. 자연스럽게 대중들과는 괴리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양심능력은 믿지만 그럼에도 판결의 결과에 터져나오는 불만들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한 때는 내부자였던, 지금은 외부자인 도진기 변호사의 책, <판결의 재구성>은 그래서 흥미롭다. 다른 책들이 비교적 내부자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면, 판결의 재구성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외부자의 입장에서 쓰였다. 늘 그렇듯 외부자의 시선은 판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합리적 의심이나 판사적 양심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법원을 통해 최종적 판단을 받지만 그 최종적 판단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게 한다. 판사라는 한 인간의 고뇌의 결과물이 얼마나부족한지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좀 더 법을, 법원을, 그들을 알아야만 한다. “무풍지대인 판결의 안쪽(p.5)”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법부 역시 노력을 해야 한다. 어려운 용어를 줄이고, 한글로 쓰고, 논리적이고 쉽게 쓴다지만 판결문은 여전히 견고한 벽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판결을 분해해 주는 사람이 고마울 따름이다.

 

여기에 가장 큰 장점은 저자 그 자신이다.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한 그의 개인적 이력이 책 속에 가득 녹아있다. 일반적인 책들이 이성과 합리 위주로 사회적인 책임이나 대의명분, 정의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와 다르게 추리소설 작가다운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서 사건을 보거나 설명해 준다. 사건을 재구성하거나 법관들의 생각을 추리소설과 유사하게 풀어주어 색다르게 다가온다. 법관들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에 대해 합리적 상상력을 통해 추론하는 내용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좋다. 단순히 논리와 이성만으로 풀어내기에는 인간은 너무도 감성적이기 때문일까.

인간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사법 시스템의 기초다.(p.320)” 그렇다면 그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논리와 이성이 세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는 애저녁에 지났다. 현재로서 마땅한 대안이 없겠지만, 판결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일이 대안을 찾아가는 방법이 될법도 하다. 더불어 판결의 내부를 다양한 방법으로 들여다 보는 일은 더 중요하다. 다양성은 불안함의 토대가 될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한 변화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새로운 방법으로 판결의 내부를 살펴보게 하는 저자의 책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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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유전무죄나 정치가 아니라 판결의 올바른 결론을 보장하는 논리상식이다. 과연 그 부분은 시민의 절대적인 승복에 값할 만큼 완벽할까. 늘 그렇지 못하다는 게 나의 솔직한 생각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폭주하듯, 비판받지 않는 논리는 독선에 빠진다. 무풍지대인 판결의 안쪽에 안주하며 내적 연마를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닌지. p.5

사법부의 결정은 따라야 한다. 이건 우리 사회의 질서이다. 하지만 판결 안의 추론 과정에 마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늘 옳다는 보장이 없고, 얼마든지 헤집어볼 수 있다. 유전무죄 비판과 진영 논리들 때문에 오히려 면책되었던 판결의 내부를 짚어보려는 것이다. 그래야 판결이 졸지 않고, 외곬 논리는 도태된다. p.6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원칙은 법률가라면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원리를 어느 경우에,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지는 각자의 척도가 다른 것 같다. ‘의심의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계량화되거나 더 세부적인 기준이 있으면 좋으련만, 지난한 작업이다. 많은 부분이 판사 개인의 결단에 맡겨진 현재는 사법부와 대중의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것 같다. p.44

세상에는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발장형범죄만 있는 게 아(p.53)니다. 더 많은 돈을 탐한 이욕 범죄도 있다. 오히려 살인에는 이쪽 동기가 더 흔하다. p.54

유죄로 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바늘 끝 같은 의심도 들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극한의 입증을 요구할 때 발생하는 재판 불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절충으로 확립된 형법상 원칙이다. p.56

형사책임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환상 하에 유지되고 있다. 심신상실은 자유 의지가 없었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이다. 그래서 형사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이 경우는 이 아니라이라고 취급하는 것이다. p.63

전문가에게는 논리 협곡이라고 불러도 좋을 맹점이 존재한다. 한 우물을 깊게 파 들어갈수록 보이는 하늘은 좁아진다. 분석이 깊어지면 종합은 죽는 것이다. 사회의 정서와 동떨어졌다고 질타당하는 결정들이 혹시 이런 논리 협곡에 빠진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일도 가치 있을 것이다. p.78

판결을 순전히 논리적 측면에서 요모조모 살펴보는 일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모든 작업은 비판을 견디고 진화해나가며, 판결도 예외일 리 없다. p.110

판례에서 수없이 언급되는 전체적, 종합적 고찰은 다른 말로 하면 확률론이다.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완전한 증명력을 갖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종합적 증명력이 있다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는 살인사건의 재판에 종종 인용된다. 풀어보면, 각각의 증거들이 범죄를 입증할 개별 확률은 높지 않는다 해도 그것들이 한 사건에 다 모일 확률은 얼마나 낮은가, 하는 의미가 되겠다. p.129

재판은 무죄추정, 마음은 유죄추정. 이것이 법관의 현실일지 모른다. 기소된 사건 대부분이 유죄이기에 객관적 통계에서 우러나는 그 선입견은 완전히 지울 수 없으리라. p.171

지옥의 가장 밑바닥은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 되어 있다.” - 단테 p.179

헌신을 강요하는 건 일회성으론 먹힐지 몰라도 영속적이지 못하다. 효율을 위해서도 그렇다. 좋은 제도는 윤리를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p.191

음란물 여부를 직관적으로 인지하는 건 논리의 영역이 아니란 얘기다. 그 실체란 어쩌면 우리 공동체 정서에 거슬린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p.196

창조는 어렵고, 규제는 쉽다. 만드는 게 어렵지, 망가지는 건 순간이다. p.239

법은 감정의 제국이다. 모든 형벌과 법제도의 근간은 감정이다. p.248

절차라는 것이 빠져나가는 악인을 잡아내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재판을 방해하고, 태클을 거는 쪽이다. 영화 속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렇다. p.284

현대법의 트랜드는 한마디로 절차의 실체에 대한 우위로 표현될 수 있다. 절차는 다 아는 그 절차고, 실체는 풀어 말하면, ‘올바른 결론’, ‘진상정도가 되겠다. 즉 사건의 진상에 다다르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절차를 꼬박꼬박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방향으로 기울었다는 의미다. ... ‘절차적 정의’ p.288

형사소송법은 악인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한 법이다. p.291

한국에는 5천만 명이 살고, 5천만 개의 정의가 있다. 각자의 정의만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우긴다면, 혹은 힘을 얻은 세력의 정의만이 지배한다면 사회는 끝장이다. 개인의 정의관도 변하며, 지배세력은 바뀐다. 누가 옳은지 누가 판단 할 것인가. 판사도 모른다. 정의만을 좇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안전수칙, 즉 절차를 지키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이다. p.292

인간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사법 시스템의 기초다.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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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로렌츠 바그너] 역설 | Memento 2020-09-1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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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로렌츠 바그너 저/김태옥 역
김영사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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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라는 아들이 있어 헨리 마크람이 성장하고 발전했듯, 변화에 민감한 반응이 과도하다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자폐가 그렇고, 우리의 삶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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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책임감이 약해. 우리 시대보다 나약해 졌어. 앞선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늘상 하는 말이다. 한때는 반항적으로만 생각했지만, 어쩌면 젊은 세대는 진짜 약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뒷 세대의 잘못이 아니다. 단적으로 앞선 세대와 뒷 세대의 성장 환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앞선 세대는 농촌을 기반으로 한 문화였고, 현 세대들은 도시 문화에 익숙하다. 농촌과 달리 도시는 변화가 빠르다. 결국 생존을 위해서 요구하는 가치가 다른다. 농사는 끈기와 긴 안목을 요한다. 하지만 현재는 조금 다르다. 주변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모든 걸 수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위해 민감도를 끌어올려야 하지만, 결국은 지치게 된다. 매 순간 강하게 버텨내는 게 불가능하다.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자극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버티겠는가.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 입니다>는 세계적인 뇌 과학자인 헨리 마크람과 그의 아들 카이의 이야기다. 누구보다 뇌를 잘 알지만 자신의 자식은 뇌에 문제가 생겨난 아이러니, 그리고 이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그려냈다. 로렌츠 바그너는 독일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로 뛰어난 문체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헨리 마크람이라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카이라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은 인상깊다. 그는 카이로 인해, 카이를 위해 자폐증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규명해 냈다. 강렬한 세계 증후군이라고 요약하는데, 자폐증은 뇌의 기능이 떨어진게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활발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거다. 결국 우리는 잘못 알고 있었다. “우리는 자폐인에게 공감능력이 결여됐다고 말해왔다. 아니다. 그건 우리에게 결여된 능력이었다. 그들에게 공감하는 능력 말이다.(p.221)”

마크람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존경스럽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절박한 부모의 심정이기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공감능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253쪽의 헨리와 카밀라의 대화는 어쩌면 과학의 본질적인 면을 부정한다고 느껴진다. 그간의 발견들이 문제가 있었고, 카이에게 독이 되었던 점은 확실하다. 이러한 과학의 본연적 속성 때문에 본인이 문제를 좀 더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향후 본인의 발견 역시 똑같은 이유로 부정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게 과학의 힘이라 들었기에 매우 아쉽다. 지금의 세대가 뒷 세대에게 약해졌다고 타박할 때가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문제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본인의 연구도 진리가 아닌 이상 또 다른 마크람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그가 좋은 사람이고 좋은 부모일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일하기에 좋은 사람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현대 사회에서 정신질환이 끊임없이 증가하는 이유는, 저자의 말대로 진단기법이 발달해서 일 수 있다. 아니면 우리 머릿속에 그 원인이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가 추진하는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는 분명히 신기원을 열 것이다. 하지만 쉬운 길도 있다. 앞선 세대가 뒷 세대보다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덜 강렬한 세계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정된 세계에서 변화를 버텨낼 시간을 부여 받았고, 뒷 세대는 그렇지 못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이다. 카이와 달리 어린 시절 변화가 제한적이었던 시골에 살았던 게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변화가 느리고 지루했던 그곳에서의 삶이 오히려 내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차분히 변화를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는 그런. 물론 아직도 그 여파로 도전이나 변화에 약한지 모르겠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다.

마크람이 카이가 있었기에 오히려 성장하고 발전했듯, 우리의 삶도 때로는 느리고 변화가 적어야만 할 때도 있다. 변화와 진화, 돌연변이는 생명체라면 당연히 가지는 현상이다. 다만, 이것들이 늘 종의 차원에서 생존을 담보해주더라도, 해당 개체의 생존을 담보하지 않는다. 때로는 과거의 방법으로 돌아가는게 나라는 개체의 생존을 강하게 해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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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뉴런의 수보다 뉴런들의 소통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어린아이의 뇌가 자랄 때는 신경세포의 수가 아니라 세포 간의 연결 개수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 연결에 장애가 생기면 아이는 다르게 성장한다. p.43

연륜은 삶을 좀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p.44

연결의 오류는 발달을 저해한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발달장애는 자폐증이다. p.46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될 때 어른은 많은 것을 배운다. 어린아이들이 피부색을 신경 쓰지 않는다든가, 친구가 자기와는 뭔가 다를 때에도 그에 대해 별생각을 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그냥 그런것이다. p.91

위기와 현명함은 서로 떼놓을 수 없다. 조작의 대가. 뭔가 낯설지 않았다. p.100

감정이 있는 존재의 고통을 대가로 쓰느니 차라리(p.122) 삶을 버리겠다.” - 마하트마 간디p.123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곳에서 이방인이다. p.173

우리는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흡수하도록 설계됐다.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불쾌한 것조차 흡수했다. ... 뭔가를 탐색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p.214) ... 자폐증이 있는 아이는 일반적인 빛을 동굴 속에서 사막의 햇볕 아래로 나갔을 때와 같이 느낀다. 우리에게는 일시적으로 몰려왔다 지나가는 세계를 아이는 민감하게 마주한다. p.215

신이 세상을 창조했더라도 우리에게 그것을 이해시키는 일은 신의 주된 관심이 아니었을 것.” -아인슈타인 p.218

우리는 자폐인에게 공감능력이 결여됐다고 말해왔다. 아니다. 그건 우리에게 결여된 능력이었다. 그들에게 공감하는 능력 말이다.” p.221

강렬한 세계 증후군 (p.222) 자폐의 스펙트럼은 장애부터 천재성까지 아우른다. 천재성은 예외이며 자폐인은 대부분 기능이 제한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자폐증 약물은 뇌를 자극한다. 우리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자폐인의 뇌는 억제되어 있지 않으며 지나치게 성능이 좋다. 뇌는 과하게 네트워크화되어 있고 과도한 정보를 저장한다. 자폐인은 세상을 적대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으로 강렬하게 경험한다. p.223

자폐인은 세상을 조각조각으로 의식한다. 자극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조각을 과도한 주의력과 무서울 정도의 기억력을 갖고 뒤쫓는다. 이는 특정 영역에서만 천재성을 보이는 결과로 이어지며, 동시에 움츠러듦과 반복행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p.225

자폐인이 사람과 교류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감정이나 신호를 해석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감정표현 불능증도 아니고 공감능력이 부족하지도 않다. 단지 세상을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서 눈을 맞추지 않고 움츠러드는 것이다. p.226

자폐인은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만 편도체의 활동이 과도하기 때문에 눈길을 주지 못하거나 회로 어딘가에서 스위치가 내려가는 것이다. 뇌는 자극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돼야 한다. p.230

객관적인 세상은 없다. 기대는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p.231

부모나 가족은 언제나 저 방법을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해요.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그게 자폐증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거예요. 안아주는 것. 공감해주는 것. 그들에게는 그런 안정감, 편안함, 따듯함이 간절해요. 그걸 느껴야 하는 거죠. 저는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이렇게 조언해요.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아이들 곁에 있어주라고. 그리고 그 순간(p.241) 사랑을 주고 붙잡아주라고. 그들은 그런 행동이 기계적이고 인위적인지 아니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지를 정확히 알아요. p.242

자폐인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들은 세상을 조각난 상태로 받아들인다. 이는 아이들의 삶을 극적으로 만든다. 자폐증이 있는 아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귀를 막는 것은 배로 슬픈 일이다. 고통과 더불어 삶에 필수적인 자극까지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달이 어려워진다. 지금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미래를 망쳐버린다. p.245

뇌에는 망각이 쓰레기 수거와 같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은 과거에 사로잡힌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의 정신은 질식하고 만다. p.246

보살핌을 받지 못하거나 학대받은 아이들이 자폐인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p.246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사하려면 그들의 현재를 느리게 만들어줘야 한다. p.248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곳에는 항상 기술혁명이 함께 일어난다. 인류가 경험한 가장 커다란 변혁은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발명하여 사람들에게 지식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 것이다. 그들은 읽는 법을 배우고 읽기와 쓰기를 통해 사고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사고를 통해 연구를 수행했다. 중세 시대에는 과학이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했다. 이미지는 한 번에 많은 것을, 그리고 전체를 묘사한(p.265). 반면에 글은 한 번에 하나씩 설명한다. 따라서 과학은 선형적으로, 일다 세부를 본 뒤 전체를 보게 됐다. p.266

컴퓨터는 구텐베르크 시대 이전처럼 이미지로, 즉 총체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p.272

왜 우리 시대에 이렇게 많은 자폐증, 우울증이 있고 그 밖에 다른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지 궁금해 한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진단기술의 발전에 있다. 그리고 도 다른 원인은, 예전이라면 정서불안이에요.”라고 말했을 증상도 과도하게 살펴보고서 ADHD 판정을 내리는 데 있다. 그러나 환자 수가 증가하는 정도를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어쩌면 이젠 휴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아이들이 너무 적기 때문은 아닐까. p.283

우리의 세상을 지금처럼 만든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것들이었다. p.308

자폐인은 강박에 거의 무력하다. 스스로의 행동을 바꾸거나 조절하기란 아주 어렵다. 피나는 노력으로 배워야만 한다. 그러기 위한 전제는 강박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처럼 그들의 강점이자 약점을 돌보는 것이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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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주강현]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에 놓쳐버린 자신 | Memento 2020-09-18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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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주강현 저
서해문집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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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이라는 이름하에 놓쳐버린 우리 자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책이다. 우리가 소흘히 여겼던 것들에서 우리의 뿌리, 우리 문화의 힘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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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학교 정문에는 Y자 모양의 교차로가 있어서 Y로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중간에 I자 모양의 탑이 있었다. 인근 잔디밭에서 술자리가 이어지다보면 슬슬 말거리라 떨어질 때쯤, Y로와 탑의 진실(?)에 대해 알려주곤 한다. 남녀의 성기와 관련된 음양의 이야기. 특별나거나 유별날 얘기는 아니었다. 어느 동네, 어느 지역에나 한 가지 이상씩 있을 법한 그런 얘기였다. 학교는 발전이 필요했다. 건물이 바뀌었고, 와중에 Y로는 사라졌다. 그 자리엔 다른 광장이, 누구도(학생 만은 절대 못들어간다.) 들어갈 수 없는 잔디밭이 생겼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런 식으로 발전(?) 해 왔다. 미신타파, 개화, 근대화. 다양한 이름의 발전. 당장 먹고 살기 바빴기에, 명분은 충분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발전했고, 그만큼 급격하게 과거로부터 단절을 추구했다. 그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너무도 정신없이 달려왔다. 살만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아무리 앞으로 빨리 달려나가도 채워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깨닫고 뒤돌아보는 순간, 때는 이미 지났다.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음을 깨닫는다. 민속학자 주강현의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는 이런 깨달음의 반성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알려준다.

도깨비 없이 태어난 세대를 위하여라는 책의 부제는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급하게 채워 넣은 발전은 우리의 문화를 급속도로 대체했다. 외국의 문화가 우리의 것이라 생각하고 산다. 저자가 지적했듯 우리가 아는 도깨비의 모습은 사실 일본의 오니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엄숙주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본다. 국뽕도 잘못되었지만, 지나치게 무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우리네 성문화가, 장승과 마을()나무가 계도되어야 하고, 베어넘겨야 할 미신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외국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의 옛 것은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 문화의 정본이자 교과서’”라는 출판사의 평가는 지당하다. 지나친 국뽕도, 과도한 자기비하도 아닌 적당한 선에서의 우리 문화를 평가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쳐 버린 많은 것들을, 사소하게 여겨져 무시하던 것들을 돌아본다. 문화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세계화를 지나 세방화를 넘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힘은 우리 내부에서 나오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문화의 뿌리가 어디인지 책과 함께 살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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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풍속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매우 엄숙하기만 했을 것 같지만, 정자 민중의 생활 속에서 유전하던 성풍속은 참으로 인간적이기만 했다. 비록 유교의 덕목 탓에 남근신앙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더라도 그들 남근조차도 마을공동체의 공유물로 만드는 민중의 슬기를 보여주었다. p.124

민중의 삶 속에서 성과 반란의 욕구는 분명 역사책의 상식을 앞서 가고 있었다. ... 전통시대의 성관념은 성의 과감한 노출조차도 공동체의 산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마을 입구에 버젓이 남근이 서 있어도 음탕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백년 동안 마을 사람이 오고가는 길목에 남근을 세워두고, 그것도 1년에 한 번씩 줄다리기가 끝나면 옷을 입힌다고 짚을 감아주었다. 오히려 공개된 사회적 성 상징물을 묵인하는 건강한 분위기다. / 오늘날은 어떤가. 만약 선남선녀가 오고가는 신촌 네거리에 남근을 세워둔다면 외설 시비로 논란이 거듭될 것이다. p.125

비슷한 것만 나오면 중국의 영향 운운하는 주장은 하나의 모화주의에 다름이 아니다. p.138

도깨비는 실제로 괴상한 짓을 많이 한다. 그러나 단순하게 인간에게 해코지만 하는 미물은 아니다. 허깨비가 몹쓸 환상이라면 도깨비는 쓸 만한 환상이다. 쓸 만한 환상은 꿈을 불러일으키고, 그 꿈은 문화를 다채롭게 한다. 꿈을 불러일으키는 도깨비가 곳곳에서 출몰하던 (p.154) 조선시대에 구전문학도 르네상스를 맞았음을 상기해보라. p.155

일본의 오니가 우리 도깨비로 둔갑하여 동화채과 텔레비전을 장식한다. 아이들은 오니를 우리 도깨비로 착각한다. p.165

문화란 어떤 영향 관계에 놓였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경우는 없다. 늘 상대적 독자성을 지니고 발전하기 마련이다. p.180

오늘날 생태 환경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면서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리사이클링의 중요성이 부쩍 주목받고 있다. 쓰레기를 재생하는 문제가 늘 제기되지만, 리사이클링은 되돌려주기 위해 또 다른 열량을 요구한다는 문(p.200)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추어보면, 똥돼지문화는 어쩌면 가장 완벽한 리사이클링이란 생각이 든다. ...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됐고, 똥은 그야말로 물에 씻겨 강물로 흘러들어갔다. (p.201) ... 폐기물이 아니라 영원한 재생품이던 똥을 버림으로써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인가. ... 깨끗한 수세식 처리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도리어 새로운 환경 훼손의 시작임을 안다면, 우리의 서구식 청결관은 쳥결도덕주의에 불과하다. p.202

돼지 사육과 사료 문제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돼지고기를 금기 식품으로까지 만들게 된 원인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이슬람교도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그 원인을 자연 환경이 변하면서 사료가 불충분해진 데서 찾았다. p.206

역사는 늘 그랬다. ’바련이라는 이름으로 대량학살을 자행했고,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히 파괴했다. p.319

<황금가지>는 우리 자신의 당나무를 깊이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왜 우리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거나 침묵하는 것일까? 내가 그의 황금가지를 끌고 온 이유는 바로 우리의 황금가지가 자라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에서다. p.384

도대체 미신이란 무엇인가? ’문명인의 관점에서 야만인을 덜 개화된 인종으로 비하해서 보는 것과 같이 미신이란 다분히 제국주의적,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 믿음으로 인정되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에게 당당한 정신이 된다. 이에 반해 바깥 사회의 국외자에게는 미신이 된다. 더욱이 마을나무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거론되는 것인데, 이를 미신나무로만 몰아댄 우리의 편협한 이해방식이 안타깝다. p.402

욕설은 결코 단순한 욕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한다. 따라서 욕설은 인간 심층심리와 행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민속문화의 하나다. p.521

신화를 단순한 허구나 전설 같은 이야기로 여기는 풍조는 근대 이래의 지나친 계몽주의적 지식관에서 비롯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신화학자 쿠르트 휘브너가 갈파한 신화의 명예 회복을 꿈꾸며, 우리 신화 속에서 여신과 남신의 자리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신화의 원형이야 말로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삶의 비밀을 보여주는 청동거울이기에. p.526

하늘과 땅의 통치자, 올림포스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가부장제 신화를 우리 여시 답습하는 중이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여신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이 땅은 아직까지 간 큰 남성이 살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다. 물론 조금식 균열을 보이고 있는 중이기는 하다. p.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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