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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최태섭]우리에겐 서로의 지혜와 탁월함뿐만 아니라, 우둔한 바보스러움마저도 꼭 필요하므로 | Memento 2019-05-0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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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한국, 남자

최태섭 저
은행나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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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서로의 지혜와 탁월함뿐만 아니라, 우둔한 바보스러움마저도 꼭 필요하므로.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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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적은 여자다.” 여자의 질투심과 중상모략을 뜻하는 말이다. 질투심과 중상모략이 여자만의 전유물일리 없다. 왜 이런 있을까. 남성들이 여성을 비하하는 뜻으로 사용한다. 반면, 여성이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여성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성이 가장 잘 안다는(p.48)” 의미가 아닐까. 같은 문장이라도 보기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같은 주제로도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는 더욱 그렇다. 이런저런 페미니즘 책을 보면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책은 많다. 반면 남자를 위한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오찬호의 <그 남자들은 왜 이상해졌을까?>, 최승범의 <나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정도의 책이 남자 입장에서 볼만한 편이다. 남자가 페미니스트는 (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양쪽 성의 공격을 받는 애매한 위치에 서 있다. 중용을 중시하지만, 그만큼 맹탕이라 싫어하는게 우리 문화다. 기면 기고, 말면 말고! 어디 가서 당당하게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선언하기에 스스로 자신이 없다. 내가 속한 문화나 제도, 생물학적인 한계에서 남성이기에 페미니즘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거나 체화하기 어렵다. 게다가 참고하거나 따라갈 방향이 없다면 더욱더 난감하다. 여성들을 위한 책은 아무래도 내가 따라가기에는 쉽지 않으니 멀리서 응원할 뿐이었다.

  최태섭의 <한국, 남자>는 이런 나에게 일침을 가한다. “자신이 잘못된 시스템으로부터 수혜를 받아 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p.38)”할 것을 촉구한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내가 어떤 수혜를 받았는지. 장손의 장남으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 있다는 말인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는다. 너무 거대해서일 수 있고, 너무 일상적이어서 지나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한국, 남자>는 남성 이상형에 대한 역사를 훑어 준다. “소수자 정치의 외피를 맥락 없이 뒤집어 쓰고 나타난 새로운 남성(p.78)”, “모두가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여성을 희생시키고, 약자를 보호하는 대신 자신들의 처지만을 비관(p.297)”하는 이 시대의 남성들을 조명한다. “남자 문제는 인구문제, 노동시장 구조 변화, 사회적, 문화적 맥락 등 나라마다 세대마다 다양한 요인에 의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어쨌거나 아직까지 사회에서 주류이고,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p.78)” 있다는 점이다. 남자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빠질 수 없는 메뉴가 있다. “군대. 군대는 남성들에게 합리적인 대안이나 토론의 가능성이 아예 닫혀 있는 군 복무 경험을 개인에게 국가에 대한 무기력함을 학습 시킨다.” 괜히 중간만 가라고 말하는게 아니다. 질문은 고통이다. 의문은 반역이다. 이런 군 복무의 경험은 단순히 군 내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삶 전반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p.323)” 뉴스에 자주 보인다. 군대도 가본 적 사람들이 군대 보다 더 한 짓을 하는 경우를. “한국 사회는 단 한 번도 명령에 의문을 갖는 남자를 바란 적이 없었다.(p.215)” 군대에서 배워서 사회에서 써먹는 것. 그러니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고 한다. 사회에서 잘 통용되기 위해서 써먹는 하나의 스펙이다. 괜히 인생 최고의 대학이라고 부르는게 아니다. 이 경험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남성 지배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 잘난 군대도, 회사도, 사회도, 결국은 남성 지배로 돌아간다. “소수의 권력을 가진 남성들을 위해 다수의 별 볼일 없는 남성들이 열과 성을 다해 복무하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지배 비용은 남성으로 호명된 모두가 지고 있지만,” 그 대가는 자신들의 발 밑에 자신보다 더 못한 이들이(여성) 있다는 것을 보며 얻는 위안과 약간의 반사이익을 위해 가부장제의 수호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p.130~131)”이다. 그럼에도 남성들은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왜 페미니즘에 분노하는 걸까. 본인의 기득권이 침해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겠다. 비유컨대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아닐까. 우리는 일본에 악감정이 많다. 우리의 피와 땀으로 만든 식민지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 기반에서 세계 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는 물론 식민지 경영을 했던 서구 열강 모두에 해당하겠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집요하게 반성을 요구한다. 너무 극단적인 비유일지 모르겠다. 남성들은 극우 성향 일본(적극적 백래쉬)와 일반 일본국민(무관심하거나 방관하는 남성)으로 나뉘고, 여성들은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이다. 한국이 집요하게 사과를 요구하는 심정 역시 비슷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과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식민지를 여성에 비유하고 지배국을 남성으로 보는 도식 역시 비슷한 관점이 아닐까.

  사실 우리가 일본에 분노하는 이유는 뻔뻔하기 때문이다.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모습에 치를 떤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피해를 입은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p.48)” “비겁함말이다.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를 피하기 위해(p.445) 더 나쁜 짓을 하고, 자신을 직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타인을 괴롭히는 비겁함 말이다. (p.446)” 어쩌면 일본에게 그렇듯 남성에게 필요한 건 염치인지 모른다. 나 역시 침묵한 채 살고 있다. 염치없이. 더군다나 나 혼자 착한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불편함과 한계를 끌어안되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p.455)” 쉽지 않다. 남녀, 좌우, 메갈과 일베, 나눌 수 있는 대로 쪼개져 싸운다. 이 싸움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저자의 마지막 말에 용기를 얻어본다. “우리에겐 서로의 지혜와 탁월함뿐만 아니라, 우둔한 바보스러움마저도 꼭 필요하므로.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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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교육을 받고,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된 시(p.37)점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자신이 잘못된 시스템으로부터 수혜를 받아 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신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피해를 입은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은 방관이나 묵인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가해이기 때문이다. p.38

여성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성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이다. p.48

소수자 정치의 외피를 맥락 없이 뒤집어쓰고 나타난 새로운 남성들은 거친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내 가족만은 지켜내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부장이 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요컨대 이들은 가부장제의 비용은 지불하지 않으면서도 가부장제의 수혜를 누리겠다는, 양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p.78

남자 문제는 인구문제,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 사회적, 문화적 맥락 등 나라마다 세대마다 다양한 요인에 의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가 된 남자들의 곤란함은 그 문제의 당사자들이 어쨌거나 아직까지 사회에서 주류이고,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것이 문제가 된 이유도 그 압도적 우위가 여러 가지 환경(p.78)적 요인들로 인해 약간이나마 침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남자 문제를 문제시하는 것 자체가 남자들의 지배를 보조하고 연장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 때문에 남자라는 젠더 자체에 대한 질문을 멈추거나 평면적으로만 다루는 것 역시 남성 지배를 해체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p.79

남성 이상형은 단순히 남녀 간의 역관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관습과 윤리, 사회적 이상의 전체적인 그물망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현대 남성성은 지금도 사회를 응집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바로 이런 사실이 남성 이상형의 끈질긴 생명력을 설명해 준다. 역사는 쉽게 되돌려지지 않는 것이다. p.115

이상적 남성성이 민족주의와 자본주의가 시작되던 그 시기에 나타났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장과 공장을 채울 단련된 육체들(p.129)에 대한 필요가 특정한 형태의 남성성을 주조해낸 것이다. ... 가장 부당한 취급을 당하는 여성과 비-남성들의 입장을 잠시 잊고 생각해보면, 남성 지배란 소수의 권력을 가진 남성들을 위해 다수의 별 볼일 없는 남성들이 열과 성을 다해 복무하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즉 지배의 비용은 남성으로 호명된 모두가 지고 있지만, 지배를 통해 얻어낸 산물은 일부가 독식하는 구조다. 이 일부는 동료 지배자들을 위한 배당금도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는다. 이들이 주는 배당금은 여성과 비-남성에게 행해지는 차별이다. 즉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들의 발빝에 자신보다 더 못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p.130)며 얻는 위안과 약간의 반사이익을 위해 가부장제의 수호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p.131

한국 사회는 단 한 번도 명령에 의문을 갖는 남자들을 바란 적이 없었다. 공장과 전장에서, 명령에 순응하고 몸이 부서질 때까지 헌신하는 강건한 육체들을 원했을 뿐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악조건들이었다. ... 모두가 참고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p.215)가 참고 희생하지 않았으며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이 논리를 명분 삼아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 자신의 잇속을 챙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p.216

군부 정권은 병역 의무를 통치의 도구로 십분 활용해왔다. 군대는 신체적 훈육에 못지않게 특정한 이데올로기와 각색된 역사들을 교육하는데 힘썼다. 한국(p.224)의 군대에서 남성성 이념과 역사 인식-여성 및 비군인에 대한 인식은 하나의 조합 쌍으로 존재한다. p.225

군부독재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폭력과 공포에 의한 통치만이 아니라,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가 한국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p.231)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국강병의 꿈, 더 자세하게는 발전된 근대 민족(자본주의) 국가의 건설이라는 목표로부터 자유로웠던 세력은 많지 않았다. 이 목표를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하며 동원되어줄 국민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대의에 복무하는 군사주의적인 남성성은 이러한 존재를 만들어내기 위한 매우 효율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 개인주의와 일탈은 좌와 우를 막론하고 비판의 대상이었다. p.323

1990년대 전반기의 남자들은 1987년에 한 번, 그리고 19915월 투쟁에서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6년 연대 사태에서 도 한 번 반복되는 이념과 투쟁의 시대의 끝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아서 증명하라는 사명을 안(p.264)고 다양한 방식으로 남성성을 변주해나갔다. 그러나 이들은 1980년대라는 중압감을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했고, 이념 투쟁이 아니라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같은 이념들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기성과 타협하고자 했다. p.264

모두가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여성을 희생시키고, 약자를 보호하는 대신 자신들의 처지만을 비관했다. 그 결과 다가오는 2000년대의 새로운 남성-청년들은 남성성에 대한 신파적 향수와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무장하게 되었다. p.297

2000년대 한국 사회 남성성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자기 피해자화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말 외환 위기가 남성의 위기로 전치되면서 만들어졌던 불쌍한 남자의 수사들은 위기가 끝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남성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설명하는데 사용 되었다. p.305

합리적인 대안이나 토론의 가능성이 아예 닫혀 있는 군 복무 경험은 개인에게 국가에 대한 무기력함을 학습시킨다. 괜히 나서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무언가를 책임지는 것은 가장 피해야 할 일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덜 엮이고, 덜 귀찮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군 복무 경험이 일으키는 문제는 단순히 군 내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삶 전반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p.323

청년 남성들에게 게임이란 상당 부분 경로 의존적인 선택이며, 동시에 그들이 처해 있는 문화적 곤경의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게임에 대해서 외부라고 여겼던 이들, 특히 여성의 의견이나 비판은 영역 침범의 문제로 여겨진다. 게임 문화 속으로 여성이 들어오는 것은 남자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곤란함을 초래한다. 왜냐하면 게임(p.394) 문화가 게임의 내외적인 면 모두에서 여성의 타자화를 불문율로 삼고 지속되어왔기 때문이다. p.395

나는 이 남자들을 지배하는 제일의 악덕은 비겁함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를 피하기 위해(p.445) 더 나쁜 짓을 하고, 자신을 직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타인을 괴롭히는 비겁함 말이다. p.446

이성애 정상 가족을 기본 모델로 하는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고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가 유지되는 가운데에서는 남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p.454

나 혼자 착한 남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불편함과 한계를 끌어안되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p.455

우리에겐 서로의 지혜와 탁월함뿐만 아니라, 우둔한 바보스러움마저도 꼭 필요하므로.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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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인류-빈센트, 강승민]소소한 작은 것들로 내 “쓸모”를 채워 본다. | Memento 2019-05-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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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쓸모인류

빈센트,강승민 공저
몽스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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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작은 것들로 내 “쓸모”를 채워 본다. 작심삼일의 밤이 지나고 있다. 쓸모를 찾는 여정이 내일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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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쓸모에 민감하다. 특히, 사람의 쓸모에 민감하다. 어렵게 살아와서 그럴까. 밥으로 쓸모의 기준을 잡는다. ‘밥 값은 하자!’최소한 1인분 몫은 해야지!’라고 말이다. 사람이면 충족해야 할 최소한의 쓸모에 대한 기준을 밥값으로 말한다. ‘식충이는 밥값 못하는 무쓸모, 잉여인간에 대한 비난의 말로 쓰인다. <쓸모인류>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불쾌했다. 또 어떤 멋진 사람이 나 같은 식충이를 야단칠지. 그 잘나신 삶을 자랑하며 훈계를 할지.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당신은 지금 닥친 현실에서 어떤 도구만큼의 유용성을 가진 인간인가요? (p.10)”라는 질문에 아니요칸에 체크할 수 밖에 없었다. 제목에 마음이 상하고, 책의 도입도 지나지 않아 일격을 당했다. 하지만 빈센트라는 이 어르신. 참 존경 스럽다. 그래서 참고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저자는 쓸모를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 힘든 날을 버티는 기술, 생활공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식,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과정(p.11)”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살아가는 기술, 삶의 기술을 말하는 듯하다. 책은 빈센트라는 어르신의 쓸모에 대해서 소개한다. 빈센트는 스스로 쓸모를 찾는 것이 자신의 삶을 응원하는 훌륭한 방법이라 한다. “삶에 핑계를 대고 싶지 (p.21)” 않기에, 수 십년 전부터 열심히 자신의 쓸모를 찾는 삶을 살고 있다. 자신에게 떳떳한, 나의 삶을 사는 것이 쓸모’, 삶의 기술을 찾는 길임을 보여준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니 겸허히 빈센트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잘난 훈계질이나 야단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조용한 혁명은 가까이 있(p.151)”. 빈센트의 삶을 보고, 작은 태도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늘 도망치고 핑계만 대는 식충이로 수 십년을 살았다. 습관이 단숨에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꼬인 인생을 정리하는 일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정리하는 훈련(p.47)”부터 시작해봐야겠다. “정리 정돈이라는 일을 시작하기 전의 태도(p.57)”부터 바꾸는 걸로 정해본다. 아침먹기, 요리하기, 청소, 직접 만들어 쓰기... 소소한 작은 것들로 내 쓸모를 채워 본다. “오래된 차곡차곡의 과정(p.21)”을 거치면, 나의 쓸모가 빛날 날이 올까. 작심삼일의 밤이 지나고 있다. 쓸모를 찾는 여정이 내일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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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닥친 현실에서 어떤 도구만큼의 유용성을 가진 인간인가요?" p.10

여기서 말하는 쓸모는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 힘든 날을 버티는 기술, 생활 공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식,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과정, 그 모든 쓸모에 관한 기록이다. 결국 이 책은 쓸모에 관한 어른들의 이야기다. 별 볼일 없는 어른들에게 특화된, '쓸모 인류로 살아가는 법'이라고 하면 조금 더 친절할 것이다. p.11

나이가 들수록 남자가 말하는 사람보다 여자가 칭찬하는 사람에 관심이 간다. 남자들이란 어디에도 쓸데 없는 '동지애'를 갖고 으스대지만 여자들은 어디에다 써먹을 데 많은 '쓸모'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p.19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따로 있을까? 단지 시도하는 인간의 역할이 있을 뿐이지. 스스로의 쓸모를 찾는 것, 그게 나의 삶을 응원하는 훌륭한 방법이란 걸 알고 있을 뿐이야. 난 내 삶에 핑계를 대며 살고 싶지 않았어." p.21

우리 나이로 예순 일곱, 은퇴 이후의 삶에 속하는 빈센트의 쓸모가 빛을 발하는 건 그 오래된 '차곡차곡'의 과정 때문이다. 시간과 여유가 많아 쓸모를 생각한 게 아니라 내 삶이 불편해지고 주눅 드는 걸 참지 못해 그 많은 쓸모를 만들었다고 했다. p.22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이다. 제아무리 사는게 힘들어도 누군가를 응원하는 말들을 놓지 않는 것. p.25

수처작주 隨處作主 p.42

그러고 보면 꼬인 인생을 정리하는 일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정리하는 훈련. 어쩌면 괜찮은 인생으로의 변화는 작은 데서 시동이 걸리는 게 아닐까. p.47

"삶의 필요는 부족함에서 나온다. 부족함은 질문을 만든다. 그리고 필요한 질문은 쓸모를 만든다." p.53

"정리 정돈은 일을 시작하기 전의 태도에 관한 것일 수 있어. 내가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힘드니까. 난 일을 맡길 때 뭐든 적당주의가 없어. 미리 철저하게 주문을 하기 때문에 결국 일하는 사람들이 편하지. 게다가 결과물을 놓고 서로 다툴 일이 안 생겨. 그렇게 보면 정리 정돈은 불만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p.57

"누구나 처음엔 쉽지 않아. 어쩌면 세상 모든 쓸모는 오래된 삶의 습관이야. 예를 들어 삼시 세끼 밥을 챙기는 게 쉬워? 그렇지 않잖아. 정리 정돈 역시 처음엔 의무적으로 해야 해. 처음엔 어색하고, 하기 싫은 딱딱한 감정들이 생기겠지.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그게 몸에 배는 거야. 적절히 쌓일 때 우리 삶은 그전보다 튼튼해질 거야." p.58

애써 쓸모를 찾는 사람들이 만드는 풍경이 있다. 물건을 만들면서 거기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안다. 한편으로 어른스럽다는 것은 지금 함께 하는 소중한 것들을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p.73

'조용한 혁명'은 가까이 있는데, 애써 우리가 잊고 사는 건 아닐까. 언제나 삶의 혁명은 이 단순한 말에서 출발했다. "익숙한 것의 반대편을 생각한다." p.151

괜히 위로 따위는 필요치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당당한 것은 '처지'를 따지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남을 설득하는 노력에 앞서, 자신을 설득하는 오랜 세월을 보냈다. 나를 향한 담백한 '설득의 언어'가 다른 시간을 만들고 있다. p.160

쓸모 있는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사라져 가는 좋은 인간의 말들을 기억해서 들려주는 일이지 싶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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