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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조영태 등] 선망국에서 선망국으로, 위기가 기회다. | Memento 2020-04-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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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아이가 사라지는 세상

조영태 등저
김영사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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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국에서 선망국으로, 위기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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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계출산율이 0으로 수렴하는 지금 영화 <칠드런 오브 맨>(2006)이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을 2027. 인간은 재생산 기능을 상실하여 2009년 이후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전 세계는 무정부 상태로 돌입하고, 인구 증가는 멈추고 말 그대로 자연적인 멸종상태로 치닫는 상황. 기적적으로 임신한 소녀를 두고 영화는 숨 막히게 움직인다. 처음 영화를 보고나서 14년이 지났다. 영화에서 상정한 미래가 7년도 채 남지 않았다. 한국의 출산율은 더 가파르게 추락하여 영화의 설정을 현실에서 이뤄내고 있다. 왜 그럴까.

정부는 수백조의 예산을 투입하여 이 흐름을 막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출산율은 반등은 없다. 정부의 접근 방향의 기본은 저출산은 해결해야만 하는 부정적인 문제. 그렇기에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한 보상적 차원의 지원, 단기적인 현금성 지원이 주를 이뤘다. 그럼에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어린이집 확충 등에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정책의 효과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느끼고 있다. 사실상 정책의 실패(p.17)”. 엄청난 돈을 투입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걸까?

우선 사회적으로 많이 달라졌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많은 자식이 축복이었다. 자식은 곧 노동력이었고, 많은 자식은 그만큼 많은 생산물을 담보했다. 산업화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자식은 많은 소득으로 이어졌다. 장남으로 대표되는 1명의 자식에게 모든 가치를 투자했다. 장남이 집안을 책임졌다. 지금은 어떠한가. 산아제한정책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었던 80년대 생들은 많으면 2, 적으면 1명에 그친다. 상속이나 책임, 부모봉양 등 기존에 부모님 세대가 겪어온 세상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부모님 세대는 많은 형제가 당연한 일이었지만, 현 세대에게는 1~2명의 형제가 당연하다. 상속과 의무 이행은 장남이 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균등하게 한다. 투자, 교육 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인식이 단순히 돈 몇 푼으로 달라질리 없다. 이미 핵가족에 적응한 여러 제도들이 어린이집을 늘린다고, 캠페인 몇 번 한다고 달라지면 그게 이상하다.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자면, 삶은 고통의 연속이더라.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삶이 즐겁고 행복한 기억보다, 슬프거나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내 자식에게 이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내 행복, 혹은 부모님의 행복을 위해서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오히려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오만하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 네가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의 삶을 규정하고, 예단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사주지 못해 고통스러워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내가 다시 반복할 자신이 없다. 비겁하다면 비겁하겠지만. 여기에 배우자 될 사람의 생각까지 더해지면 셈은 더 복잡해진다. 이게 돈 주고, 어린이집 짓고, 임대주택 준다고 해결될 일일까. 당장 내가 세 가지를 다 받는다 해도 자녀를 가질 마음이 생길지 의문이다.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은 기존의 접근과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인구학자, 진화학자, 동물학자, 행복심리학자, 임상심리학자, 빅데이터 전문가, 서양사학자가 각자의 학문에서 저출산을 바라본다. 서론에 본 책의 의도를 명확하게 밝힌다.

 

청년들이 출산을 단념하고 있는 진짜 이유를, 기존의 질서에 반하는 진짜 이유를 파악해야(p.7)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논의는 지금까지 저출산 논의에서 거론된 적이 없던 내용이지요. 주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던 출산이라는 행위를 좀 더 다양하고 근본적인 시각에서 검토해야 저출산 현상에 대한 유효하고 적절한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 취지에서 어찌 보면 저출산 현상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없어 보이는 학자들이 모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사태를 조망하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책으로 묶어 보았습니다. p.8”

 

정부의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시적 입장, 통계와 숫자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충분히 이해한다. 당연하다. 그게 정부의 임무다.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새로운 질문이 없는 이상 기존의 정책은 답습될 뿐이다. 문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저출산이 진화적 결과 (p.17)”라고 한다면 정책적으로 예산을 투입한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동물의 세계에 비춰볼 때 기후변화도 동물의 저출산 원인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p.57)”하는데 난임이나 불임 역시 저출산의 문제가 되지 않을까? “느슨한 가족이라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p.145)” 가 필요한 건 아닐까? 가족에 대한 인식과 제도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개개인의 행복감은 영향이 없을까?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은 저출산 자체를 해결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볼 때 새로운 방식의 행복을 찾을 때까지 사회와 국가(p.235)가 안전망을 갖춰주면서 새 제도와 관행이 연착륙하도록(p.236)” 지원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저출산이 정말 문제인가.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말한다. 대한민국은 먼저 망해가는 나라(‘선망국(先亡國)’)라고.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먼저 망한 나라가 아니라 먼저 위기를 극복한 선망하는 나라되도록 말이다. 어쩌면 심각한 저출산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지 모른다. 우리는 늘 사람을 갈아서 경제를 이끌어 왔다. 사람이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그 귀함을 이제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소중하다. 우리의 위기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는 정부만이 할 수 없는 문제다. 당연히 개인의 힘으로도 할 수 없다. 다 같이 해야 한다. 정책 담당 공무원, 정치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읽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여러 의미로 2019년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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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출산율이 매년 올라야 자연스럽습니다.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윤택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출산을 단념하고 있는 진짜 이유를, 기존의 질서에 반하는 진짜 이유를 파악해야(p.7)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논의는 지금까지 저출산 논의에서 거론된 적이 없던 내용이지요. 주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던 출산이라는 행위를 좀 더 다양하고 근본적인 시각에서 검토해야 저출산 현상에 대한 유효하고 적절한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런 취지에서 어찌 보면 저출산 현상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없어 보이는 학자들이 모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사태를 조망하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책으로 묶어 보았습니다. p.8

이 책의 저자들이 지금까지의 관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출산 현상을 기존과는 다른 각도에서도 접근할 수 있으며, 그렇게 관점을 다양화함으로써 저출산 위기론’, ‘인구 쇼크를 타개하고 해결책을 강구할 새로운 기회를 찾아볼 수 있음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p.10

장대익 ? 저출산, 정책의 실패인가 진화의 결과인가.

한국의 저출산 현상은 정책의 실패이기 이전에 진화의 결과입니다. 물론 정부가 지난 10여 년 동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재정을 투입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책의(p.16) 실패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정책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진화적 결과라고 말해야 한다는 정도로 해두죠. p.17

우리는 종 차원에서 느린 생애사 전략을 진화시킨(K선택) 종입니다. 하지만 개인마다 좀 더 느(p.24)린 전략을 취하기도 하고 빠른 전략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전략들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현됩니다. p.25

저출산은 병리적 현상이(p.26) 아니라 하나의 적응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경쟁적이고 불안정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고 판단하는 순간 우리는 자원을 여러 곳에 나눠 투자하는 양적인 분산투자를 합니다. 그리고 성과를 빨리 확인할 수 있는 단기적인 전략을 발달시킵니다. 반대로 경쟁적이고 안정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원을 확실한 곳에 집중 투자하는 질적인 투자를 하고, 오랜 노력을 기울여 목적을 달성하는 장기적인 전략을 발달시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환경에 민감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27

실제 경쟁이 아닌 경쟁 지각만으로도 출산의 동기를 변호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p.29

진화심리학자 올리버 승에 따르면, 인구 밀도가 높을 경우 사람들은 느린 생애사 전략가가 됩니다.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의 국민일수록 성적인 엄격성이 높은데, 다시 말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짝짓기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죠. 또한 그런 사람일수록 기대 수명이 높습니다. , 출산에 투자해 자녀를 빨리 낳고, 많이 낳고 일찍 사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에 자원을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오래 사는 것입니다. p.29

결국 문제는 환경을 어떻게 지각하는가입니다. 객관적인 환경이 어떠한가도 중요하지만 그걸 어떻게 지각하는가가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지각을 통해 적응적 메커니즘이 작동하니까요. p.30

현재의 저출산 현상은 제가 보기에는 주위 환경에 오래 적응해온 인간 마음이 본능적으로 반응한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p.32

그렇다면 정책은 왜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 고령사회기본법을 만들고 지난 10여 년 동안 매년 평균 10조 이상의 예산을 들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저출산 관련 예산 가운데 70퍼센트를 보육 환경 개선에 집행했습니다. 최근에는 청년들의 복지제도 확충 방향으로 예산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선 논의의 관점에서 이렇게 자문해 봐야 합니다. ‘경쟁에 대한 지각을 줄여주는 데 예산을 사용했는가?’ 예를(p.33)들어 청년복지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그들에게 지출가능항목을 정해주고 그 항목들에 대해서만 복지비를 사용하게 하면(가령, 각종 시험 대비 학원비 지원), 복지비는 투입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비슷한 목표를 두고 더 경쟁하도록 만들었기에 경쟁 지각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습니다. 만일 청년들이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복지 비용을 유연하게 지출했다면 이렇게까지 저출산이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p.34

언제 얼마나 낳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메커니즘도 적응적 형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출산 문제에 대한 다원주의적 접근입니다. p.36

장구 ? 동물의 세계에도 저출산 현상이 있다.

저출산을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불임과 난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불임은 유전적으로, 혹은 특정 질병에 의해 영구적으로 출산을 못하는 현상을 뜻하고, 난임은 생식세포는 정상이지만 주변 환경 때문에 임신이 잘되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환경 변화 또는 대사성 질병으로 난소나 정소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손상되면 난임이 생깁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오늘날 저출산 현상에는 난임이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를 수행해 오고 있습니다. p.48

동물의 저출산은 대개 생물학적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생물학적 원인 이외의 원인으로 동물의 출산율(임신율)이 떨어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환경오염입니다. (p.54) ... 대사성 변화 또한 번식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p.55) 기후변화도 동물의 저출산 원인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p.57

저는 동물의 출산 문제를 과학에 한정에서 접근하면, 상상 이상의 기술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첨단과학의 발달은 윤리적 문제를 몰고 오지요. p.63

서은국 ? 출산으로 건너가는 파란 신호등, 행복

인간도 진화의 산물인 생명체이므로 인간에게도 모든 동물에 공통된 생물학적 원리들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재생산 결정 과정에서 인간에게만 영향을 주는 독특한 요인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감정이라는 경험이고, 특히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담은 행복감이 재생산과도 관련 있습니다. p.68

큰 그림에서 본다면, 현재의 저출산 문제도 인간의 막강한 뇌가 자연에 반해 행사하는 일종의 반역에서 기인하는 현상입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진화 과정에서 설계된 행동의 흐름을 자기 의지로 끊을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이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자연이 작성한 포유류의 인생 드라마 원본은 대강 이렇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이성에 관심을 갖기 위해 호르몬이 증가하고, 이성을 만나면 육체적 욕망이 생기고, 이 욕구를 충족시키다보면 아이가 탄생한다. 대부분의 동물이 이 순서대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높은 지능 덕분에 인간은 피임하는 방법을 발견했고, 이를 이용해 (p.76)연산출산 드라마의 결말을 스스로 수정할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p.77

이유와 논리는 감정이 내린 선택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감정의 위력을 우리는 잘 의식하지 못해요. 그래서 논리와 합리적 생각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렇지만 어쩌면 정작 선택의 밥상을 차려놓은 것은 감정적 느낌이고, 여기에 슬며시 수저를 올려놓는 것이 이성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 감정적 경험은 우리 일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감정은 긴 진화의 여정에서 습득한 생존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p.81

자연에서 인간이 겪어온 대부분의 상황에서 행동 판단은 정확성보다 신속성이 더 중요했습니다. 논리적 사고는 정확성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신속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소 역설적이지만,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생명체일수록 보다 간단한, 다른 형태의 처리법이 필요합니다. 디테일은 부족하지만, 신속하고도 강력하게 현재 상황을 (p.87) 처리할 수 있는 핵심 정보를 담은 시그널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감정입니다. p.88

긍정, 부정 감정의 기능은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교통신호등의 파란불, 빨간불과 비슷합니다. 부정적 감정들은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소모적인 노력을 멈추게 합니다.(p.89) ... 부정 정서는 뇌에서 켜는 빨간 신호등입니다. ... 위험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확보를 위해 생존 자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합니다. ... 생존과 재생산에 꼭 필요한 이 같은 자원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좇도록 만드는 것이 긍정 정서의 근본적인 역할입니다.(p.90) ... 긍정 정서는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도록 하는 에너지를 주는 파란 신호등입니다. p.91

긍정, 부정 정서가 가진 상반된 특성이 있습니다. 두려움이나 불안감 같은 부정적 정서는 우리로 하여금 시공간에 대한 주의를 좁히고 목전의 작은 디테일에 주목 하도록 만듭니다. ... 반면, 긍정적인 정서는 우리의 생각과 시각을 확장시킵니다. 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의 긍정 정서의 확장/축적이론에 의하면, 먼 미래를 염두에 두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거나 익숙하(p.91)지 않은 환경에 가서 새로운 자원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긍정 정서 경험이 필요합니다. 불안하고 염려로 가득 찬 마음은 큰 그림을 볼 여유가 없습니다. 당장은 없어도 되지만, 먼 훗날 반드시 필요할 자원을 탐색하고 준비하는 노력은 여유와 즐거움이 있는 마음 상태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p.92

무엇에 주목하며 일상을 사느냐에 따라 숱한 결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늘 작은 것을 염두에 두며 설계하는 인생에는 굵직한 원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큰 기둥부터 세우고 나머지 빈 공간에 작은 소품을 채우겠다는 생각을 할 때, 그리고 내일이 아닌 30년 뒤의 삶을 생각할 때, 자녀의 필요성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겠지요. 이러한 이유로 행복감과 출산은 관련이 있습니다. p.93

돈이나 건강은 모두 행복이라는 경험의 본질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행복감이라는 경험 자체를 묘사하는 것이 아(p.94)니라 행복이라는 경험을 유발하는 자극 혹은 조건에 대한 논쟁인 것이죠. 행복은 돈도 아니고 건강도 아닌 마음의 경험 상태입니다. ... 어떤 구체적인 모양이나 무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각자가 내면에서 경험하는 어떤 좋은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행복감이라는 느낌을 유발하는 자극은 다양하지만, 이 느낌을 구성하는 내용물은 긍정적 정서들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간단히 말한다면 긍정 정서를 경험하게 만드는 모든 자극, 상황, 기억, 혹은 미래 기대의 총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긍정(p.95)적인 느낌이 무엇 때문에, 왜 유발되었든, 좋은 느낌을 자주 경험하는 사람일수록 행복감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행복의 핵심 내용물은 긍정적 정서 경험이기 때문에, 행복감은 현재 자신의 삶이 처한 전반적 상태를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신혼부부가 책을 200권 읽은 뒤 아이를 낳을지 말지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현재와 미래의 상황에 대한 보다 크고 근본적인 진단이 필요합니다. 아리를 낳고 키울 만한 시간과 장소에서 살고 있다는 확신을 높이는 단서가 필요한데, 여기서 도움이 되는 것이 감정입니다. 지금 행복하다는 것은 즐거(p.96)운 일들이 비교적 많다는 뜻이고, 이런 즐거움이 빈번하다는 것은 현재 자신의 삶에 큰 문제나 위협이 없다는 뜻입니다. , 아이를 인생에 착륙시킬 활주로가 확보되었다는 뜻이지요. p.97

좋은 엄마가 되려면 단지 좋은 사람이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에릭 에릭슨 p.101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정은 보람과 의미가 있지만, 고되고 힘든 순간들도 분명 찾아옵니다. 행복은 이 긴 여정을 시작할 용기뿐 아니라, 어려움을 이기며 순항하는 지혜와 힘도 준다고 생각합니다. p.101

허지원 ? 좌절에 대처하는 방법 : 비출산의 심리학적 기제와 기능

비출산이나 비혼은 현재 청년 세대가 다양한 좌절에 대해 여러 대처 방법을 고려하고 시도해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의사결정의 결과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p.105

좌절은 개인이 타고난 성격에 따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을 가로막는 경험이나 사건을 말합니다. 심리치료 내담자분들은 크게 세 가지 문제를 들고 옵니다. 또래관계에서 장기적인 갈등이 지속되는 것, 학업이나 직업적(p.106) 측면에서 기대보다 성취가 낮은 것, 혹은 의미 있는 대상과 관계 맺기에 실패하는 것. 그러나 그 궤적인 면면을 들여다보면, 개인마다 좌절하는 지점은 제각각이며 좌절이 주는 심적 고통의 강도도, 기간도 개인차가 매우 큽니다. p.107

좌절이 지금 당장 맞서 싸워 이겨야 하는 우리의 목표 그 자체일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적절한 수준으로 심신이 가라앉았다가 꽤 괜찮은 속도로 행동의 기저선을 회복하면 됩니다. (p.108) ... 이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회복탄력성입니다. 역경이나 외상적 경험, 삶의 위협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의미는 간단히 얻고(굳이 의미를 부여하며 정신승리의 영역으로 넘어갈 필요는 없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 올라오는 적응적인 대체의 과정이지요. ... 아이러니하게도, 좌절을 유연히 극복하게 하는 회복탄력성은 축적된 좌절 경험에서 나옵니다. 더욱 정확히는, ‘최적의 좌절경험에서 나오지요.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 마음대로 되는 일도 있고, 되지 않는 일도 있구나를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p.109

발달 단계마다 놓여 있는 과업들을 성취하기 어렵게 만드는 현실적인 장애물의 크기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몫 이상으로 커져버린 것입니다. 여러 대규모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인이 경험하는 스트레스는 실제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p.115

심리학에서는 스트레스를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누어 살피는데, 한 축은 예측 가능성, 다른 한 축은 통제 가능성입니다. p.115

회복탄력성과 문제 해결력은 자잘한 스트레스 상황에 한동안 덩그러니 놓인 개인들이 이를 타개할 여러 대처 방안을 능동적으로 고민하는 과정에서 발달합니다. 그런데 1차적으로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최적의 경험들을 계속해서 박탈당해오며 좌절에 따르는 정서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 동기화되기 시작했습니다. (p.116) ... 사소한 최적의 좌절을 경험할 기회가 거세되어왔지요. 2차적으로, 우리 앞에 남아 있는 스트레스 요인들은 예측도 통제도 불가능할 만큼 거대해져버렸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는 젊은 세대들이 원했던 바는 아닙니다. p.117

그간 강화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기가 너무 길었고, 그 강화물도 우리의 삶과 자존감을 획기적으로 바꿀만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거나 감정적인 피로감이 예측되는 일에 우리가 손을 놓고 있는 시간은 점차 길어졌습(p.121)니다. ... 소진 burn out ...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 공평함이나 공정함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위의지지 없이 오랫동안 홀로 버텨야 하는 경우, 사람들은 감정적으로도 지치고 신체적 에너지도 고갈되는 것입니다. 너무 지쳐 소진된 상태에서는 우울, 무력감, 절망스러운 혼란을 경험하며, 이 시기가 길어지면 비관적이거나 냉소적이 되어 새로운 행동을 개시하(p.122)거나 꾸준한 노력을 투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p.123

이미 오랫동안 스트레스 상황을 겪고 좌절 경험을 지속해 감정표현 불능증, 무쾌감증, 편도체 납치 등의 영향을 받는다면, 결혼생활과 같이 다소 낯설고 성공 여부가 예측되지 않느 새로운 과제에 들이는 감정적 에너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혼이나 출산의 보류(p.129)는 잠시 쉬어가는 방식으로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p.130

아무 죄도 없는데 죄지은 것처럼 행동하(p.137)는 사람들이 있고, 죄지은 것처럼 행동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님에도 내가 이 가족의 구성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행동들이 있었습니다. 부모가 내게, 엄마가 아빠에게, 내가 부모에게 가져야 했을 죄책감이 사실 애착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이런 경우들을 자주 만나니 한국의 가족문화는 죄책감으로 지탱되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새로운 가족의 구성이란 또 다른 죄책감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만 같습니다. (p.139) ... 진짜 문제는 불안정 애착 그 자체라기보다는 불안정 애착의 시기를 보내온 나 자신에 대한 불확실감, 그리고 가상의 혹은 실제의 아이에 대한 지나친 죄책감일지도 모릅니다. p.139

지금은 느슨한 가족이라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로 진입하는 과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느슨한 가족은 어쩌면 한국에서는 이미 익숙한 형태의 가족일 것입니다. (p.145) ...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혼인관계로 맺어진 부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측면의 보살핌을 서로에게 제공하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기도 하고 널리 권장되기도 했던 덕목이었습니다. 또한 이제는 SNS를 토대로 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기민한 반응성과 확장성이 담도되기 때문에 1인 가구 및 비혼 커플과 공동거주 가구, 그리고 이혼이나 사별 후 다른 사람을 만나 굳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노인 커플의 숫자는 점차 늘어갈 것이 분명합니다. (p.145) 그러므로 사회적 관점에서 비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개인의 행복권을 위해서 원치 않게 비혼 상태에 있는 커들을을 고려한 최소하느이 제도적 장치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합니다. p.146

그 누구도 완벽한 엄마일 필요는 없고, 실제로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없겠지만, 많은 사람이 아이에게 완벽한 환경을 제공해줄 자신이 없어 출산을 주저합니다. , 정말 아이를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직 집을 마련하지 못해서’ ‘아직 내 인생도 잘 살지 못해서’ ‘아직 부모로서 소양을 덜 갖췄기 때문에와 같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며 출산 결심을 지연하거나 비출산을 결정합니다. (p.152) 그러나 이는 심리학적으로 아주 틀린 이야기입니다. 부모는 그저 최적의 좌절을 제공할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면 됩니다. 예상되는 장애물들을 미리 제거해두고 아이의 욕구가 언제나 즉각 충족될 수 있는 무균실과 같은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은 아이가 결국 스트레스에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아이가 깊은 수준의 자기 통찰을 할 수 있으며 회복탄력성과 유연성을 갖춘 꽤 괜찮은 성인으로 자라는 과정에서, 부모의 불완전함은 아이에게 좋은 시험대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즉 좋은 주 양육자는 그럭저럭 괜찮은 엄마면 됩니다. 정작 필요할 때에는 없어서 화가 나기도 하지만 문득 돌아보면 계속 그 자리에 있어주는 사람 말이죠. 그래서 소아정신건강 분야의 권이자인 아주대 병원 조선미 교수는 살아만 있으면 좋은 엄마라고 종종 말합니다. p.153

개인의 심리적 요인들을 고려할 때, 복지 시스템의 보완만으로 비혼, 비추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란 쉽(p.155)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럭저럭 좋은 개인 혹은 그럭저럭 좋은 부부와 같은 모습을 젊은 세대에게 보여주고 기다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태도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저렇게 살아도 괜찮겠구나’ ‘내 삶에 아이가 한 명쯤 있어도 괜찮겠구나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도록 말이죠. p.156

송길영 ? 소셜 빅데이터에서 찾은 삶의 다른 방식, 엄마처럼 안 살아

통계 자료를 보면 기혼자들이 낳는 아이 수는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혼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는 아이 수가 줄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혼외 출생에 대한 인정이 각박한 문화이므로, 더더욱 비혼 출산이 드뭅니다. 따라서 만약 저출산 기조(p.185)를 단기적으로나마 반전시키려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결혼이 가능한지 절실히 고민해봐야 합니다. p.186

지금은 집단이 개인으로 분화된 사회입니다.“제가 국가의 인구 유지를 위해서 아이를 낳을 수는 없으니까요.”라는 TV쇼 출연자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러한 의식을 지닌 젊은 세대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에 사명감을 요구하는 저출산 문제라는 메시지가 미디어를 통해 전해질 때마다 더욱 반감을 품게 됩니다. p.193

출산은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 각자 준비를 거쳐 결정해야 할 일임을 이제 개개인이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의 선택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저출산 문제를 집합적인 숫자와 통계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아이를 키울 때 느끼는 무게를 줄여주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엄마들은 예전의 엄마와 같이 자신을 지우고 누구누구의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재정적 지원만이 아닙니다. 나중에 아이를 낳고 키운 뒤 자신이 돌아갈 자리가(p.195)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보육 수당과 같은 비용 보전만 언급한다면, 엄마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제 엄마들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아이도 소중하지만 단순히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p.197

처출산의 책임과 해결책을 해당 세대에게만 미룰 것이 아닙니다. 대신 이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시스템을 갖춘 배려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 배려 속에서 각자는 소(p.197)중한 아이를 낳는 일이 현명한 선택이 되도록 다시 적응할 것입니다. p.198

주경철 ? 인간도 멸종위기종? 다른 시대 다른 사회 비교 연구

지난 반세기 동안 인구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는 사실에는 그리 주목하지 않습니다. 제가 봤을 때, 이 정도로 빠른 인구 증가가 일어나면 어떤 식으로든 자체적인 인구 조정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 모호한 말이겟습니다만, 현재 우리가 염려하는 인구 감소 가능성은 인구 증가 자체에 귀결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p.206

전근대 시대에는 흔히 인구 성장과 경제 성장이 대립적인 균형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고, 현대에 들어오면 인구와 경제가 함께 성장할 수는 있지만 대게 가파르게 증가한 인구는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하곤 합니다. 대한민국은 엄청난 인구 성장과 동시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함께 이룬 예외적 사례입니다. 우리가(p.209)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일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흐름도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게 줄기차게 뛰어왔으니 부작용이 없을 수 없겠지요. p.210

비혼과 결혼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겠죠. 아마 우리 사회는 이 모두를 경험해나갈 것 같아요. 마치 시계추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이쪽으로 갔다가 문제점에 직면해 다시 반대쪽으로 가고, 그러면서 극단적인 경험을 한 다음, 결국 새로운 균형을 찾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중장기적으로 볼 때 새로운 방식의 행복을 찾을 때까지 사회와 국가(p.235)가 안전망을 갖춰주면서 새 제도와 관행이 연착륙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p.236

조영태 ? 맬서서의 인구 조절 메커니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저출산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산 자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출산과 관련된 근본적인 사항들에 대한 이해 없이 저출산 현상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능력에 대한 과신입니다. p.245

위 세가지 접근(자원, 물리적 밀도, 본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원이 맣으면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으니 재생산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개체수가 늘어나 물리적인 밀도가 높아집니다. 이제는 자원의 양이 늘지 않는 한 개체끼리 경쟁해야 합니다. 그래도 내가 자원 경쟁에서 이기면 재생산도 해볼 만합니다. 하지만 활발한 재생산 활동은 다시 밀도를 높여 내가 가진 자원이 줄어들게 되고, 경쟁이 치열해집니다. 그러면 개체는 재생산을 생각하기보다 어떻게든 에너지(p.259)를 아까셔 스스로의 생존에 에너지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재생산이 줄어드니 개체수도 조절됩니다. 물리적인 밀도가 줄어든 넋이죠. 그렇게 되면 경쟁이 줄고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이 늘어납니다. 자원이 나의 생존과 재생산 두 가지 모두를 가능케 할 정도로 유지되면 재생산을 통해 개체수는 다시 증가합니다. 그렇게 되면 무한 반복하는 생태학적인 고리가 생깁니다. 이 고리의 사이클은 어떤 종인가, 어느 정도의 자원이 존재하는가, 밀도가 형성되는 지역이 얼마나 큰가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p.260

생명체로서 인간에게도 이 생태하적 고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 비교해서 월등한 능력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생각하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혹은 수준이 높은지 낮은지는 물리적인 밀도에 대한 반응을 크게 바꾸어놓을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밀도는 겉으로 보이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그 밀도를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가로 연결됩니다. ... 물리적 밀도는 심리적 밀도로 변환됩니다. 심리적인 밀도는 물리적인 밀도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제도와 문화의 영향을 받습니다. 만일 사회의(p.261) 문화가 매우 동질적이고, 제도나 규범이 그 문화를 뒷받침하고 있는 경우, 약간의 물리적인 밀도 상승은 구성원들에게 매우 큰 심리적 밀도 상승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청년들이 성공에 대해 유사하거나 동일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사회에서는 청년들의 수가 물리적인 밀도를 그리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정도로 늘어나더라도 심리적인 밀도가 상승하게 됩니다. 반대로 성공에 대한 가치관이 매우 다양한 사회에서는 청년들의 수가 증가해 물리적인 밀도가 상승한다고 해도 심리적인 밀도에까지 영향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p.262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은 밀도 높은 사회에 청년들이 적응하는 과정이고, 그게 결국 종의 진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이 종의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가 아니라 사회적인 진화지요. p.272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밀도가 높아진 것인데, 밀도를 좀 낮추려는 정책이 가장 근본적인 해소 방법이 될 거에요. 물리적인 밀도는 청년들이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집중될 필요가 없도록 지방 거점도시들을 서울 못지않게 발전시키면 낮출 수 있지 않을까요? p.273

규범이 강하고 획일적이면 심리적인 밀도가 낮아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물리적인 밀도와 별개로 청년들의 심리적인 밀도를 줄이려는 정책도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p.274) 예컨대 한국 사회에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는 연령 규범을 좀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죠. 대학은 가는 게 당연히 좋지만, 반드시 모든 사람이 19세에 갈 필요는 없게 만들면 심리적인 밀도가 크게 줄거에요. p.275

이미 청년들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진화를 되돌리려는 노력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생물학적으로 진화된 형질은 자연 환경이 바뀌어야 다시 바뀌게 됩니(p.275). 그럼 사회적으로 진화된 형질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요? 사회 환경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 사회의 제도와 규범을 점검해보세요. 청년들은 이미 바뀌었는데 아직까지 기성세대 중심의 제도와 규범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 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죠. p.276

 

새로운 질서가 온다 ? 좌담

장대익 : 핵심은 경쟁이에요. ... 결혼을 할까, 애를 낳을까 하는 결정은 생태학적인 입력뿐 아니라 문화적인 입력에 좌우됩니다. 가치관이 다른 여러 문화권에서는 의사결정이 각기 다르겠죠. 그러면, 해결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현실의 경쟁을 완화하기. 둘째, 경쟁이 과도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인을 제거(p.282)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할 수 있는 환경 만들기. p.283

송길영 : 경쟁은 추구하는 바가 같을 때 발생해요. 목표가 다르면 경쟁할 이유가 없겠죠. 이미 정해져 있는 세상의 정답을 놓고 싸우다 보니 각박해지는 거예요. p.287

장구 : 사실 근본적으로 보면 저출산은 생물학적인 현상이잖아요. 그런데 제도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원인과 해법을 찾고 있는 게 현실이고, 순수하게 생물학적 원인에 의한 저출산은 아직 부각되지 않고 있어요. p.303

송길영 : 행복 추구는 개인적인 것이지만, 가난이라든지 사회적인 안전망이 없는 명백히 불행한 상황에서 개인이 벗어나도록 해주는 것은 국가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로 방향 설정이 수정되어야 합니다. p.311

허지원 : 하지만 그렇게 결정한 비혼이 좋은 선택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능동적인 선택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상황 때문에 출산을 포기하는 수동적 측면의 방어로 보여서요. 요즘 가성비라는 말이 안 쓰이는 곳이 없어요. ... 사회경제적인 활력이 떨어지다 보니 발생하는 현상일 텐데, 이런 가성비 논리에 따르면 사실 아이를 낳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잖아요. p.321

조영태 : 기성세대의 궂 개선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현재의 지속가능하지 않은 환경을 바꾸려면 그 환경을 만들어온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구 변화에 따른 새로운 질서를 맞아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내자는 취지라면, 우리 기성세대가 시스템 개선에 대한 동의를 해야 합니다. p.327

주경철 : 인구 변화가 사회 변화의 핵심이에요. 인구는 사회구조 전반을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틀이거든요. 인구가 확 줄거나 늘면 그에 따라 제도나 국가 정책이 바뀌고, 개인 간의 모럴도 바뀝니다. ... 다시 말하면, 크고 작은 문제에서 개인이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요소도(p.331) 따져보면 사회 환경 변화에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p.332

장대익 : 저출산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삶의 양식 자체가 엄청나게 바뀌고 있잖아요. 기존 시스템을 고정해놓고서 출산을 안 해서 문제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저출산 현상은 사실 원인이 아니라 결과거든요.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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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건축가들-김소연] 잘 몰랐던 이야기를 알아가는 즐거움 | Memento 2020-04-0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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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경성의 건축가들

김소연 저
루아크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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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랐던 이야기를 알아가는 즐거움. 그리고 그 시절 내가 어떻게 살아갔을까를 상상해보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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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유현준 교수는 사람과 건축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하며, “건축과 사람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서로 연결되어 상호 영향을 주면서 의미를 규정한다.(p.7)”고 말했다. 또한 건축물은 시대정신을 반영(p.119)” 하기 때문에, “건축 공간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다. (p.21)”고 말했다. 여기에 비춰볼 때 김소연 대표의 <경성의 건축가들>은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시작을 알아보기에 가장 적합한 책이다. 제목 그대로 사람과 건축물을 한 번에 살펴 볼 수 있다. 사람을 통해서, 그들이 세운 건축물을 통해서 그 시대를 상상케 한다.

이 책이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사농공상이라는 구체제의 위계질서가 살아있지만, 일제에 의해 모든 것이 바뀌고 있던 혼란한 시기. 게다가 당시에 지어진 대부분의 대형 건축물은 식민통치를 위해 설치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건축가라는 개인 역시 혼란스러웠을 테다. 국가와 민족, 조국의 현실을 고민하지만, 일본을 통해서 신기술을 배워야 했던 그 시절의 복잡한 감정을 떠올려 본다. 저자가 박길용씨를 저자가 평가 한 말은 건축가를 떠나 당시의 시절을 관통해 살았던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몸은 친일이라는 환경에 있었고, 마음은 조선인의 염원을 품었다. 의식은 제국을 향한 동경과 식민지의 콤플렉스에 흔들렸다. 식민 교육, 식민 권력, 식민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한 그 시대 건축가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내면이었다. 자본과 권력은 가까이 있지만 정작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식민지 건축가의 운명이기도 했다. p.55”

 

이렇게 방황하는 건축가를 살펴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결국은 혼란기, 나라를 잃은 시기에 누구나 겪었을 일이다. 만약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고민해 본다. 건축가는 기술인으로서 차별받던 인식이 오히려 친일의 궤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근거가 되었던 아이러니까지 생각해보면 단순하게 친일과 반일, 민족과 반민족의 범위는 협소해 보인다. 자기들만의 폐쇄적인 구조가 오히려 성역을 만든 걸까. “건축 바깥의 문제를 끌어안으며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속도는 느(p.153)”렸다는 날선 비판에 이어, 저자가 소개한 임화의 이야기가 인상 깊다. 우리는 어쩌면 친일을 너무 단선적으로만, 당위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지 고민해 본다. 내가 그 자리, 그 순간에 있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 시절을 살았을까.

 

가령 이번 태평양 전쟁에 만일 일본이지지 않고 승리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살아가려 생각했느냐고. 나는 이것이 자기비판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남도 나쁘고 나도 나쁘다 이게 아니라, 남은 다 나보다 착하고 훌륭한 것 같은데 나만이 가장 나쁘다고 감히 긍정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기를 비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임화. p.377

 

개인적으로 한국 근대사와 일제 강점기에 관심이 많다. 아픈 손가락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대기 때문이다. 서구 신식문화를 수용하며 새로움을 배워나가는 설렘과 식민지인으로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시기. 이 양가적인 감정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아주 가끔의 희극과 수많은 비극을 썼다. 그리고 내가 모르던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해 준 저자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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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용은 앞과 뒤가 달랐다. 앞에서는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두루두루 인정을 받고 인맥을 쌓은 성공한 건축가였다. 뒤에서는 격렬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조선인의 정체성을 끌고 나갔다. 그것이 3.1운동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인지, 종로에서 일본인과 대치하며 삶을 버(p.54)텨온 조선인의 근성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 몸은 친일이라는 환경에 있었고, 마음은 조선인의 염원을 품었다. 의식은 제국을 향한 동경과 식민지의 콤플렉스에 흔들렸다. 식민 교육, 식민 권력, 식민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한 그 시대 건축가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내면이었다. 자본과 권력은 가까이 있지만 정작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식민지 건축가의 운명이기도 했다. p.55

내가 생각하는 박길용의 최고 업적은 이런 것이다. ‘최초유일의 신화가 아니다. 그는 최초유일이라는 영향력으로 차별받던 조선인 건축가들을 품었다. 그들과 함께 건축 안과 밖을 넘나들었다. p.56

사농공상의 관념이 존재하던 시대에 건축가를 미장이로 알던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인식이 건축가에게는 오히려 보호막이 되었다. 양날의 칼처럼 건축가도 그 보호막 뒤에서 과학과 기술의 중립성이라는 함정에 빠지곤 했다. 건축 안의 문제는 예민했지만, 건축 바깥의 문제를 끌어안으며 사회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속도는 느렸다. p.153

시대상은 보여도 시대의식은 보이지 않는 삶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p.204

장기인은 용어가 지식이고 사상이라고 믿었다. 건축용어는 설계, 시공, 구조, 설비, 재료, 법규, 전통건축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만큼 여러 분야의 건축 지식을 섭렵하게 된다. p.243

자기비판이란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고 근본적인 문제일 것 같습니다. 새로운 조선 문학의 정신적 출발점의 하나로서 자기비판의 문제는 제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비판의 근거를 어디에 두어야 하겠느냐 할 때 나는(p.376) 이렇게 생각합니다. ... 가령 이번 태평양 전쟁에 만일 일본이지지 않고 승리를 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살아가려 생각했느냐고. 나는 이것이 자기비판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남도 나쁘고 나도 나쁘다 이게 아니라, 남은 다 나보다 착하고 훌륭한 것 같은데 나만이 가장 나쁘다고 감히 긍정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자기를 비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임화. p.377

건축은 사물이 아니라 사연이라는 것을.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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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유감-김정훈,심나리,김항기] 386세대 개새끼론을 환영하며 | Memento 2020-04-08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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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386 세대유감

김정훈,심나리,김항기 공저/우석훈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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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 개새끼론을 환영하며, 앞으로 건전한 논의를 위해 지속적인 후속작이 나올 수 있기를. 비단 우리세대가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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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랬다. 또 누군가는 내가 다 해봐서 안다고도 했다. 또또 누군가는 알바비를 떼여 보는 것도 값진 경험이랬다. 일본에서는 코로나도 인생의 값진 경험이랬다. 그렇다. 젊은 세대는 그래도 싸다. 늘 게으르고 무능하고 10새끼다. 나이가 차도 부모 등 쳐먹기 바쁘다. 88만원에 만족하며 알바를 전전하며 빈둥거린다. 모험심과 자립심이 없다. 그래서 중동으로, 해외로, 나라가 텅텅 빌 정도로 떠나지 못한다. 안정적인 공무원에 목숨을 건다. 결국 가진 것은 포기다. N포 세대. 별 수 있는가. 우리를 그렇게 정의한 사람들이 기득권이고,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다. 권한은 없고 의무만 잔뜩 이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데, 앞으로 가질 수 있다는 희망조차 없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가진 세대라지만 부모세대 보다 나아질 기회가 없는 최초의 세대. 그것이 지금의 세대다.

이 책이 반가웠다. 젊은이 개새끼론에 대항해서 우리에게 어른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언어를 주었기 때문이다. 감히 386세대 개새끼라고 말할 수 있게 했다. 이러면 꼭 너는 부모에게 그런 말을 하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우선 나는 댁과 같은 부모님을 둔 적이 없다. 거기에 우리 보모님은 그런 이득을 대부분 취하지 못한 분이다. 두 번째로 이해한다. 사람은 자기를 욕하면 당연히 싫다. 반대로 젊은이들이라고 아니었겠는가. 다만 그들에 대항하고 반박할 언어와 힘이 없었을 뿐이다. 386세대는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우리 사회의 전반을 휘어잡고 있다. 그들의 논리와 언어가 너무도 공고하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어린아이의 푸념으로 비친다. 그래도 표는 필요하고, 돈은 벌어야 한다. 그러니 불만 갖지 말고, 청년 비례로 공천 몇 개 줄게. 청년 정책? 그래 예산 배정해 줄게. 그래 너희들이 돈을 써야지. 몇 개씩 던져줄 뿐이다. 우리가 똥개인가? 뼈다귀 몇 개 던져주는 그런 집지키는? 개새끼 눈에는 개새끼만 보이는 법이다. 그러니 나 역시 그렇게 부를 수밖에.

그렇다고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치고 박고 싸우자는 건 아니다. 책 제목대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고통스럽고 소모적이다. 하지만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특히 누군가 부당하게 이득을 취했다면, 어떤 이가 상대적 피해를 받고 있다면 말이다. 그 인과를 분석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복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세대가 피해자라는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남이가로 덮어둔 결과가 어떠한가. 이대로라면 우리 세대 역시 미래 세대에 빨대를 꽂고, 부모 세대가 했던 과오를 물려줄 뿐이다. 그 결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 않은가. 모자란 자원을 두고 아귀다툼을 하는 사회는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굳이 빨갱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그런 사회에는 빨갱이가 넘쳐나게 될 것이다. 아니 그런 사회를 만들고, 방조한 사람들이 빨갱이가 아닐까.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선의에 기대하기도 어렵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괴물과 싸우다보면 나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버린다. 늘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뭐 어쩌란 말인가. 아무소리도 하지 말고 그냥 우리 차례가 올 때 까지 앉아서 기다려야 하나?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싸우지도 기다리지도 못하는 우리는 어찌해야 하면 좋단 말인가. 누구라도 좋으니, 다음 논의가 어서 나오기를 기대한다.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게 된 당신과 나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p.25)”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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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이 책이 세상이 나아질 수 없다고 믿게 된 당신과 나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를 안겨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p.25

명실공히 386세대는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을 주무르고 있다. 생애 주기로 봤을 때 50대가 가장 무르익은 시기라 한다면 당연한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50대의 사회적 역할이 무거운 만큼 시대와 함께 사회 주도 세력은 끊임없이 교체된다는 사실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운동을 전후해 20대부터 사회적 목소리를 키워온 386세대는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앞 세대가 쓸쓸히 퇴장한 자리를 넘겨받은 뒤 40대에도, 50대에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30, 40대의 그들에게 주어졌던 자리가 지금의 30, 40대에게는 대물림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p.38

386세대가 오롯이 자신들의 희생만으로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쟁취했(p.56)다고 믿는 것은 오만한 채권자적 태도다. 1987년 거리에는 80년대 학번을 가진 20대 대학생만 있지 않았다. ... 민주화는 살아남아서 현재의 사회 중심 세력이 된 386만의 전리품이 아니다. 기성세대의 지원과 시민들의 저항, 죽음으로써 역사가 된 적지 않은 386 동료들이 함께 모여 거둔 성공이다. 그러므로 20대가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p.57)에 눈감는다고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왜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연봉 높은 대기업 정규직 취직에 열을 올리는지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 p.58

청년을 위한 정치는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청년을 위한 예산은 이름만 거창하게 붙었다 결국 쪼그라들고, 정치 신인조차 키우지 않고 있다. p.58

망탈리테(mentalite)란 사회를 특징짓는 한 이난 집단의 습관적 사고 양식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집(p.67)단심성을 통해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행동을 꿰뚫어 볼 수 있다. p.68

386세대에게 그런 코호트 효과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로, 군사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자부심을 꼽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배양된 조직화 능력, 함께 어깨를 걸고 밀어붙이면 끝내 이뤄낼 수 있다는(p.70) 낙관주의도 빠뜨릴 수 없다. 반면에 괴물과 싸우면서 닮아간 권위주의, 자부심이 변질돼 나타난 우쭐함과 함께, 실행보다 말이 앞서는 공허함도 386세대 안에서 풍겨난다. 앞서 말한 교조적 성향도 코호트 효과에 따라 드러난 특징이다. 그러나 가장 큰 특징은 따로 있다.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오랜 기간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p.71

386세대는 당시 1인당 평균GDP보다 20% 더 높은 월급을 받았지만, 80년대생은 20% 더 낮은 월급을 받은 것이다. 그만큼 사회가 인정하는 청년 노동의 대가가 형편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p.103

지난 20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80년대생들을 채용해 월급 주면서 일을 시키는 상사의 대부분이 60년대생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요즘 청년 노동의 대가를 386세대가 산정한다. p.103

시대는 세대를 규정한다. p.112

시대가 부여한 운은 세대마다 달랐다. p.112

386세대가 장기 집권의 서막을 성공적으로 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능력이 유독 특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성공은 시대적 요행 외에도 윗 세대의 정치적 고려, 그리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시대적 상황이 그들의 빠른 성장을 견인했다고 할 수 있다. p.122

세대란 시대를 넘어서는 존재할 수 없다. 세대는 시대 위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p.122

실패의 경험 없는 승리에 대한 확신,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강고한 투쟁력, 타협하기 어려운 상명하복의 교조적 문화, 다른 목소리를 포용하지 않는 적대적 계파주의가 이른바 386 DNA로 자라났다. 자나 깨나 민주주의를 원했던 386세대가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남을 수 없는 한계는 이런 DNA 때문이 아닐까. 당시 이들은 피와(p.148) 눈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 노력했을 뿐, 민주주의를 즐겁게 향유하는 법을 익히지는 못했다. p.149

성유보(민주화운동가)1987년 민주화 성공 요인

정치적 리더십의 역할 2. 민주개헌이나 독재타도 혹은 고문반대와 같이 간명하고 보편적

목표를 대중에게 제시(p.171) 3.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와 미국의 압력 등 외부 조건이 맞아떨어짐 4. 학생운동이 대중노선으로 선회 p.172

과거의 헌신으로 오늘의 영광을 보상받는 것이 정당한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모든 세대는 각자 살아가는 시대의 무게를 나눠서 견디고 있기 때문이다. p.175

학원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평등하게 대학 문턱을 넘었던 386세대가 지옥 같은 입시 경쟁 체제를 만들어낸 셈이다. p.214

386세대의 부동산 불패 신화가 독재정권의 정책 덕분이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박정희 정권이 만든 청약제도와 분양가 상한제, 그리고 노태우 정권의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과 1기 신도시 계획의 합작품이 386세대 한 사람 한 사람의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돈이 부족하다면, 주택금융규제의 완화 흐름이 이를 보완해 주기도 했다. 부동산 정책의 3종 세트인 공급과 금융, 세제 가운데 세제를 제외한 나머지 2개는 특혜에 가까웠다. p.241

이 정도로 노동시장이 유연해지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사회안전망이 갖춰져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과는 질 낮은 일자리의 양산, 그리고 더 나은 계층으로 올려주는 사다리 붕괴로 이어졌다. p.270

직업에는 귀천이 없을지 모르겠으나 고용에는 확실히 있다. ... 그리고 고용의 귀천은 세대별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p.281

세상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 당신이 보고자 하는 그 변화 자체가 되어라. -마하트마 간디 p.283

꼰대는 갑질, 헬조선과 맞닿아 있다. 이들은 모두 공정하지 않음을 문제 삼는다. 왜 공정하지 않은가. 걸핏하면 법대로 해를 외치지만 법과 제도가 원칙대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쁘고 급하면 언제든 우리 사회 갓길에서 전력질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기득권들이 너무도 많다.(p.287) ... 스스로가 저항의 대상이 되는 게 무척이나 낯선 꼰대들은 이들의 법대로 해봐정신에 움찔하지만, 결국 요즘 것들은...’이란 푸념으로 사태를 마무리 짓는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라는 말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것들을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p.288

세상의 절반과 다른 절반이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세상에서 저출산은 필연이다. p.300

386세대는 일종의 이익집단적 성격을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특히 386세대가 한 사회의(p.325) 제도를 만드는 정치 영역에 일찌감치 진출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386세대의 삶이 녹록하지 만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빈곤율 40%가 넘는 부모 세대와 체감실업률이 30%에 육박하는 청년 세대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 사회안전망 구추과 분배정의 실현을 외면하고 노동 없는 이익, 즉 지대추구에 몰두하며 살아온 과거의 시간들에 대해 책임져야 할 운명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p.326

먹고사는 걱정을 덜게 된 데에 산업화세대가, 민주화 달성에는 386세대가 유독 큰 주인의식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이 이 지경에 이른 데에 더 큰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세대가 있을 터다. p.329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세대라 할 수 있는 386세대를 바라본다. 가난과 전쟁 탓에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운 부모 세대 등에 올라타 독재자가 허용한 효율과 성장의 과실을 맛보며 10대를 보내고, 두 번째(p.329) 독재자가 교육의 평등을 설파하며 내건 교육개혁조치의 수혜로 20대를 열었던 386세대. 이어 반독재자가 내민 200만 호 아파트 건설 카드와 청야공장 덕에 일찌감치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어 중산층에 진입했으며, IMF 외환위기의 파고조차 비껴간 운 좋은 세대. 시대가 선사한 거듭된 운을 실력이라 믿으며 불운한 뒷세대에게 우리는 안 그랬다노오력을 강조하는 이 사람들 말이다. p.330

털끝만큼의 권력이라도 있다면 한 톨도 낭비할 수 없다는 집착,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경계가 흐릿한 지대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염치, 결국 불의보다 불이익에 민감해진 우리 사회 양심의 모습을 386세대는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정도쯤이야하는 허술한 양심의 벽은 지난 30년간 시대가 부여해준 호의와 그 속에서 이룬 성공스토리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건 반칙이야라고 외치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p.362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부를 만한 변화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공유경제, 인공지능, 테러리즘, 성평등, 개인과 국가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 어느 것 하나에 익숙하지 않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너희(p.367)들이 뭘 알아로 표현되는 실패 경험 없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는 말이다. 패러다임 전환은 한마디로 단절이다. 단절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가보지 못한 길을 가며 오류를 끊임없이 개선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p.368

1987년도에 그들이 패러다임 전환적 승리를 거둔 것은 그들의 눈이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에 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람은 남은 생의 길이만큼 내다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386세대는 새 시대의 첫차가 먼 미래를 내다보며 출발할 수 있도록 구시대 막차의 마지막 칸을 붙든 고리를 끊어야 한다. p.368

인간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가해자의 성격을 띤다. 이슬을 먹고 살지 않는 한 어떤 생명을 빼앗아야 생존할 수 있다. 자신이 가해자임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어떤 윤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후지이 다케시(일본인 한국 현대사 연구자) p.375

가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라고 후지이 다케시는 덧붙여 설명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가해자는 없고 온갖 종류의 피해자들만 난무하는 사회에서 책임이 설 자리는 없다. 우리 사회는 늘상 가해자가 명백한 사안이더라도 피해자의 귀책 사유를 찾는 데 혈안이 된다. p.376

이 모든 게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사회적 기본권, 즉 사회권의 범위 안에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약속이다. 사회권은 이를 유린당하고 있는 우리의 청춘을 붙들어줄 기둥이며, 인간다움을 지켜줄 보루다, 이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는 주체가 국가든 특정 세대든 간에(p.390) 배려나 양보를 기대하지 못한다면 저항의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저항은 당사자가 할 때 가장 힘이 세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싸워주지 않는다. p.391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은 30여 년 전 386세대가 눈물 흘리며 바랐던 그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바랐던 혁명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면, 세대 독점의 해소는 비록 늦었지만 혁명의 완결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이제는 혁명의 열정을 뽐내는 주체가 아니라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풍기는 혁명의 지원군으로서 말이다. p.395

70년대에서 80년대에 사회의 향방을 놓고 벌어진 이 오래된 갈등은 21세기에 오히려 더욱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이 갈등은 좀 넓게 틀을 잡고 보면 한국식 진보(뭐가 진보인지는 잘 모르겠다.)와 한국식 보수(도대체 성조기를 흔드는 외국 보수를 본 적이 없다!)의 이념전쟁처럼 보인다. 그러나(p.397) 개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보면 먹고살고 승진하기 위한 개인들의 처절한 생존투쟁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싸움은 아무리 강렬해도 별로 새롭지는 않다. 70년대와 80년대에 기원을 둔 과거 회상적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느 쪽이라도, 소수의 승자가 많은 것을 차지하게 되어 있다. 20대로서는 자기의 게임도 아니고, 재미도 없다. p.398

세력으로서는 이제 한국에 남은 게 별것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3김 시대가 결국 두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나서야 종료된 것처럼, 386 시대가 그들끼리 돌아가며 마지막까지 버티는 것 아니겠는가. p.424

몇 년 전의 헬조선의 눈총이 유신시대에게로 갔다면, 이제는 386에게 갈 차례다. 유신세대든 386이든, 획일성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 그럼 해법은 뭘까? 쉬워 오비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다양성이라는 방향이 거의 유일한 해법이 아닐까. 과잉, 과소 대표의 해소와 지역, 세대, 젠더 등의 변수를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부드러운 방법이다.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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