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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 영화 2017-12-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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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987

장준환
한국 | 2017년 12월

영화     구매하기

어떤 관료/ 김남주

관료에게는 주인이 따로 없다!

봉급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개에게 개밥을 주는 사람이 그 주인이듯


일제 말기에 그는 면서기로 채용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근면했기 때문이다


미군정 시기에 그는 군주사로 승진했다

남달리 매사에 정직했기 때문이다


자유당 시절에 그는 도청과장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성실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시절에 그는 서기관이 되었다

남달리 매사에 공정했기 때문이다


민정당 시절에 그는 청백리상을 받았다

반평생을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아프리칸가 어디에서 식인종이 쳐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배한다 하더라도

한결같이 그는 관리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에는 충성을 국민에게는 봉사를 일념으로 삼아

근면하고 성실하게!

성실하고 공정하게!

- 시집 『조국은 하나다』 (남풍신서, 1988)


이 모든 일들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 모든 일들이 끝나고서야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이 외침을 듣지 못한채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87체제라고 불리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앞선 세대가 피흘려 바랬던 세상을 쟁취하고 얻었지만, 그렇다고 세상은 혁명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혁명 이후의 혁명'에 대해 고민해본다. 

지금도 우리는 비슷한 시기를 거쳐가고 있다. 무혈혁명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앞에 서 있다. 세상은 혁명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느리게 느리게. 천천히 갈 뿐. 그리고 그 느린 변화에는 '법대로'라는 작은 원칙. 자신의 업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영혼있는' 사람들. '가진 거 없어도 당당하게 살아!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리네들이 만들어갈 혁명 이후의 세상을 기대해 본다. 더불어 내 삶이 어디로 가야할지, '어떤 관료'가 될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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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속리산에서(2004)] | 취중잡설 2017-12-3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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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 여겨 온 나에게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주었다.

나희덕 <속리산에서> (그곳이 멀지 않다. 2004)


한 해를 마무리 하며, 문득 고등학생때가 떠오른다. 고3. 치열하게 살고자 했을때, 그 목표를 오로지 높이 쌓는 것으로 정했다. 스스로 약지 못했다는 것을 알기에. 오로지 한 길 이외에 다른 길을 생각하는 순간 무너질 것을 알기에. 오로지 집중에서 높이 높이 쌓는 일로 버텼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그 길만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결과를 받아들고 아쉬웠지만 스스로 만족했다. 누구에게나 보여줌직한 높이를 적당하게 얻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높이 높이. 최대한 높이 쌓고 많이 하고 안되면 몸으로 떼우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야할 길은, 살아남는 방법은 아직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올해도 버텼다.

올해도 꽤 많은 책을 봤다. 독후감으로는 95권 남기지 않은 책 수 십권, 글로도 남겨보고, 혼자서 끄적이다 지우고. 때때로 시덥지 않은 이야기도 펼쳐봤다. 이 블로그 속에 95라는 숫자로 남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에 부끄럽지만, 95. '숫자'라는 높이가 남았다. 


높이 만으로는 오롯이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더 높이 오를 것이고, 내 능력의 한계도 알고 있다. 살다보니 오히려 높이 쌓는 일이. 멍청하다는 것도 알겠다. 삶은 쌓기만 하는게 아니라, 젠가처럼 밑에서 부터 하나하나 빼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도 중요한 아랫돌부터. 떨리는 손으로 살기위해 스스로 빼내야 한다. 두려움에 가득차서 살아남기 위해 하나씩 빼야한다. 그 과정이 내 잘못이건, 잘못 쌓은 아랫돌 때문이건, 무너지지 않게 빼내야 한다. 내 차례가 되어서이기도 하고, 남이 강요한 것이기도 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잘 빼내야 한다. 내가 살아온 삶. 짧게는 1년, 길게는 수십년 살아온 높이를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쌓는 일보다 뺄 일이 더 많을까 두렵다.

한 해 버텨내며 힘들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 선의에 대한 배신. 최선의 판단이 최악의 결과를 낳는 안타까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떨리는 손으로 무너질려 하는 높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안절부절 한 해를 버텨 왔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언저리. 새해를 다짐하며, 이미 빼낸 아랫돌과 또 살아가며 빼내야 할 아랫돌과 새로이 쌓을 돌과 곧 무너질 것 같은 돌탑을 바라본다. 

그래도 올 해 책과 함께 잘 버텼구나. 내년에도 새로운 책과 함께 살아가자. 아랫돌을 빼더라도 새로운 돌을 쌓고, 높이 가지 못하더라도 깊이(넓게) 가는 것도 삶이 되리라 자위해 본다. 우선은 해보자. 내년 이맘 때. 내가 뭐라고 할지. 그래도 올해 열심히 읽고, 빼내고, 다시 쌓고, 보강하고, 버티고, 울고, 웃고, 배신당하고, 배신하고, 투덜거리고, 뒷담까고, 뒷담당하고, 그렇게 사는거구나. 다만, 열심히 살았구나.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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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비] 두 철우의 반전 이야기 | 영화 2017-12-2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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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강철비

양우석
한국 | 2017년 12월

영화     구매하기

 2011년 12월 17일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일이 사망했다. 온 나라가 뒤숭숭했다. 우연치 않게 웹툰 "스틸레인"을, 아니 대놓고 검색어에 상위권을 차지 하고 있었다. 김정일 사후 한반도의 긴장관계를 다룬 웹툰으로, 마치 김정일 사망을 예견한 웹툰(?)으로 알려졌다. 고증이나 세심함에서 많은 반론이 있겠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정말로 그럴싸 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런 스토리로 충분히 가능치 않을까. 혼자 골방에서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17년 "강철비"는 다시 우리에게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의 의하여 더 고통받는다."며 우리들을 일깨운다.

 영화를 초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두 철우의 반전 이야기."다. 너무 간단하려나. 서로 다른 한자를 쓰는 철우지만, 그들의 이름은 결국 강철비(鐵雨)로 통한다. 영어로는 steel rain. 우리는 잠시 잊고 있지만, 늘상 전쟁과 맞닿아 있다. 그것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근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를 읽으며 한반도의 전쟁은 결코 우리 의지와는 관계없이 생긴다는 사실을 충분히 절감했다. 그리고 영화 역시 말한다. 단순한 이분법 만으로는 이 전쟁을 막을 수 없다고. "빨갱이"논리로만, "미제의 앞잡이"논리로는 남북 모두 비극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북한의 혈맹인 중국, 한국의 혈맹인 미국. 결국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는 항상 차선책일 뿐이다. 미국과 경계를 맞대기 싫은 중국, 일본을 최후방어선으로 지켜야 하는 미국. 양자간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이상 한반도의 전쟁 발발 가능성은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많은 장면들. 이를테면 땅굴이나, 개성공단 공격장면 등은 실재로 가능한지는 의문이 일지 모른다. 이야기 해결 장면 자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웹툰보다 진일보 한 이야기가 인상깊다. 보강된 개연성, 잘짜여진 이야기 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속속 집어 넣은 장면들은 잊혀지지 않는다. 지디의 노래들을 이런 식으로 사용한 연출에 감탄했다. 특히 '국숫집 장면'은 압권이라 본다. 주변 강대국들의 대리전일 수 밖에 없는 한반도의 전쟁.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깽깽이국수"뿐이다. 자신보다 결국 가족을. 가족보다 서로를 걱정하며. 어쨌든 남북은 같은 공간에 살아가는 '식구'임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누군가 나를 빨갱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만이 전쟁을 막는 길일지 모르겠다. 반 백년 동안 우리는 서로 많은 것을 잃었고, 이제 더 많은 것을 서로 잃어야 할 상황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식구'임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그 길이 너무도 멀고 험한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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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김혜진]"세상일"은 절대로 "자신과 무관한 일이(p.183)" 아니다. | Memento 2017-12-2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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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딸에 대하여

김혜진 저
민음사 |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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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일"은 절대로 "자신과 무관한 일이(p.183)"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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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무서운 말이다. "만약에 우리 자식이 동성애 자라면 어떻게 할 거야?" 한 번도 고민해 본적 없는 이야기에 매우 당황했다. "하하... 글쎄?" "글쎄라니?"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일단 성인이 되기 전에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야 할꺼고, 성인이 된 후라면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대화가 미궁 속으로 빠지기 전에 얼버무리려 했다. "만약, 미성년자인 상태인데 본인의 성적 지향을 분명히도 자각해버려서 엄청난 고통 속에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할거야? 성인이 될 때까지 버티지 못할 정도로?" 역시나 실패다. 그렇게 한참을 곤욕스런 질의응답 시간을 거쳤다. 솔직히 동성애에 관한 문제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나와는 거리가 너무 멀기도 하거니와, 그들을 다르게 생각하지 않게 때문이다. 같은 사람, 같은 인간, 같은 시민일 뿐이다. 성적지향이라는 한 지점이 나와는 분명히 다르지만, 그래서 다소간의 '경계심'은 생긴다. 내가 이해할 수 없기에 '두려움'도 있다. 아니면 내 일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의연하게 대처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한 가정. 만약이라는 이야기는 곤혹스러웠다. 여자친구의 말대로 만약에 내가 이런 사건(?)과 거리를 유지할 수 없다면, 이 상황의 한가운데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할 할까. 긴 대화 속에서 막연한 불안감과 내가 믿어온 신념에 의문을 가졌다.

소설 <딸에 대하여>는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나이 (p.6)" 들어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죽음" 보다 "삶"이라는 "막막함을 견뎌 내(p.27~28)"는 것이 버거운 처지다. 남편은 이미 죽었고, 하나 있는 딸을 위해 청춘을 바쳤건만 남은 것은 다 쓰러져 가는 집 뿐이다. 물론 집이 있다는 것이 적게나마 월세가 나온다는 것이 큰 위안인 셈이지만, 그래도 일을 멈출 수 없는 팍팍한 삶이다. 더군다나 딸은 더 이상 본인의 뜻대로 할 수 없다. "딸애를 세상에 데려왔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자격이 유지되던 시절을 끝났"다. 물론 "그럴 능력도 기운도 없다. (p.90)" 세상에 남은 유일한 피붙이 마저 잃지 않기 위해 "쥐고 있던 끈을 느슨하게(p.96)" 한 채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p.40)" 않고 팍팍한 삶을 버틸 뿐이다. 그 순간 딸이 집으로 돌아온다. 왠 여자와 함께.

소설은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삶과 죽음. 분열과 연대. 평범한 삶과 나 다운 삶. 늙은 세대와 다음 세대. 그 지점에서 어머니는 표류한다.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 하지만, 도저히 딸의 행태는 인정할 수 없다. "내가 선택(p.40)"한 것도 아니다. 딸은 딸대로 선택을 하고, 어머니도 어머니대로의 선택을 할 뿐이다. 누가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 어머니의 불만도 정당하고, 딸의 불만도 정당하다. 반면 인물들과 세상의 대립은 정당하지 못하다. "침묵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겨지는 이 나라에서(p.184)" 불의에 침묵해야 한다. "한 사람에게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책임을 물을 수 없다.(p.233)" 그래서 어머니는 침묵을 택했고, 딸은 침묵을 깼다. 하지만 어머니도, 딸도 응당 사과를 받거나 대우 받지 못한다. "내 잘못이 아니지. 너의 잘못이 아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의 수많은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할까.(p.237)"

젠이라는 어머니의 말대로 '젊음을 낭비한' 여성의 마지막 앞에서 누군가는 희망을 보았을 테고, 누군가는 화해를 보았을지 모르겠다. 나는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또 무언가를 버리고 계속 버리면서 물러(p.96~97)"서는 어머니가 보인다. "딸애가 도달할, 결국 나는 가닿지 못할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하는 어머니의 예견대로 아마도 "지금보다 더 팍팍(p.28)"한 세계가 나타나지 않을까. 혐오가 넘쳐나고,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주변을 볼때마다 두렵기만 하다. "차별받는" 이유로 "내 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일텐데.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 (p.169)"같은 당연한 일 조차도 힘드니... 내 자신이 했던 말들, 내가 가졌던 신념들을 대입해 본다. 나 역시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맞는지.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또 물러서는 것'으로 이 상황을 포장한 것이 아닌지. "세상일"은 절대로 "자신과 무관한 일이(p.183)" 아니다. 여자친구의 질문에 어머니를 보며 나 자신을 다시 본다. 우리가, 내가 가닿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절대 바꿀 수 없는 크고 단단하고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뭔가가(p.183)" 지배하지 않는 세상이기를. "침묵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겨지는 이 나라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라고 이렇게 늙어 버(p.184~185)"리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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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p.6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엔 끝(p.27)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어쩌면 이건 늙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일지도 모르지. 이 시대. 지금의 세대. 생각은 자연스럽게 딸애에게로 옮겨 간다. 딸애는 서른 중반에, 나는 예순이 넘어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 그리고 딸애가 도달할, 결국 나는 가닿지 못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나을까. 아니, 지금보다 더 팍팍할까. p.28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걸 각오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니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그런 후회(p.40)는 언제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p.41

저 애들과 지내는 동안 내가 또 무엇을 더 보게 될지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어떤 순간과 장면들이 아무런 예고 없이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과 맞닥뜨려야 하는 것. 내가 상상하고 짐작한 바로 그것들을 똑바로 봐야 하는 것. 어쩌면 내가 각오한 것보다 훨씬 끔찍하고 두려운 모습일지도 모르는 어떤 것. p.88

딸애를 세상에 데려왔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자격이 유지되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 그것은 끊임없이 갱신되고 나는 이제 그럴 능력도 기운도 없다. 그건 그 애들도 마찬가지다. p.90

기억은 늘 가장 연약한 부분부터 깨어난다. 나로선 정리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완전히 다물리지 않고 내내 들썩거리며 신경을 긁는 것. 다시금 뚜껑이 저절로 확 열어 젖혀진다. p.94

이대로 딸애를 계속 당기기만 하면 결국 이 팽팽하고 위태로운 끈이 끊어지고 말겠구나. 이대로 딸을 잃고 말겠구나. 그러나 그게 이해를 뜻하는 건 아니다. 동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내가 쥐고 있던 끈을 느슨하게 푼 것뿐이다. 딸애가 조금 더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양보한 것뿐이다.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또 무언가(p.96)를 버리고 계속 버리면서 물러선 것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딸애는 정말 모르는 걸까. 모른 척하는 걸까. 모르고 싶은 걸까. p.97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 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다. 관용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져야만 끝이 나는 싸움. p.130

이런 식으로 간단하고 간편하게 뭔가를 물리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누구에게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뭔가와 맞서고 싫은 소리를 하고 매번 내 바닥이 어디인지 더듬어 확인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p.165

세상일이라니. 자신과 무관한 일은 죄다 세상일이고 그래서 안 보이는 데로 치워 버리면 그만이라는 그 말이 맘에 들지 않는다. 저 여자는 언제 어디서나 저렇게 말하겠지. 제 자식들에게도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하겠지. 그러면 그 자식들이 그들의 자식들에게 또 그렇게 말하게 되겠지. 한두 사람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크고 단단하고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뭔가가 만들어지는 거겠지. p.183

사람들은 그게 무엇이든 예민하게 알아채고, 알게 된 것을 말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다. 뭐든 모른 척하고 침묵하는 것이 예의라고 여겨지는 이 나라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라고 이렇게(p.184)게 늙어 버렸다. p.185

마음은 왜 항상 까치발을 하고 두려움이 오는 쪽을 향해 서 있는 걸까. p.188

근데요. 자식이 오든 말든 돈 받은 만큼은 보살펴 줘야 하잖아요. 뭐 훌륭하게 살았든 말았든 돈 값은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왜 그런 것도 안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망할 새끼들. p.197

권 과장의 얼굴에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 한 사람에게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걸 나도 안다. 오늘날 일이란 행위는 모두 훼손되고 더렵혀졌다. 그것은 오래전에 우리 세대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던 역할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제 일의 주인이 아니고 그것에 종노릇 하며 소외당하고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한다. 그리고 끝내는 일 밖으로 밀려나고 쫓겨나고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 p.233

내 잘못이 아니지. 너의 잘못이 아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의 수많은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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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일을 하는 힘-홍주현]내 꿈을 이루는 길은 하기 싫은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 Memento 2017-12-2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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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하기 싫은 일을 하는 힘

홍주현 저
사우 | 201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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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것은 내 꿈을 이루는 길은 하기 싫은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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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아이에게 늘상 묻는다. 꿈이 뭐냐고. 그러면 유치원 때부터 학습해온 대로 정답을 왼다. 대통령, 과학자, 의사, 교수, 판검사...그리고 정답에 대한 평가가 내려진다. 당연하다는 듯이, 만족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암 그렇지. 공부 열심히 해야 겠네. 공부 열심히 해라." 요즘은 답이 살짝 현실화 되어서(?) 공무원이 되었지만, 꿈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바뀌지 않앗다. '먹고 사는 수단으로서의 일' 쉽게 말해 '밥벌이'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다. 넌 뭐먹고 살래를 묻는 말이 '꿈'으로 포장된다.

사실 꿈이 직업에 한정할 수 없는 것임에도 이런 대화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나마 적성이나 개성을 반영해서 응원을 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그런거 말고 너 하고 싶은 것을 하거라."라 대답하시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게 대답한 본인 스스로 너무도 잘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시는게 아닐까. 설사 나 하고 싶은 일도 '직업'이 되는 순간 고통의 여정이 된다. 대부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동경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특정한 분야, 매우 제한적인 부분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환상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 내가 그 직업에 발을 디디는 순간 깨닫는다. 경험하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지만, 실재 해보는 순간 '아 장난이 아니구나!'라고 절감한다. 그리고 고통의 나날이 이어진다. 그만두고 싶다. 그만둬야 하나.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하루하루가 버티는, 겨우겨우 넘어지지 않는 삶이 시작된다. 또 다른 아이에게 묻는다. '네 꿈은 뭐니?'

뜬금없이 꿈을 이야기 한 이유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힘>이라 믿어서다. 우리가 가지는 꿈은 일반적으로 포괄적이거나 이상향적이다. 일정한 환상을 가지고 있고, 특정 직업의 특정 부분에 얽메여 있다. 특히 먹고사는 문제에. 그래서 우리네 삶이 힘든게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을 보기전에 이런 이야기를 할 것으로 짐작했다. 읽다보니 '마음 관리법'에 좀 더 방점이 찍혀야 겠다 싶다.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해보면 -저자가 읽고 겪은 효과적인 마음 관리법- 정도가 적당하겠다. 저자의 일상이나 경험은 이를 뒷받침하는 양념일테고. 새로움 보다는 다양한 방법들을 저자의 체험과 잘 버무렸다. 다른 책에서 읽었던 부분도 있고, 이미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도 있다. 

책의 강점은 저자의 경험이 아닐까 한다. '꿈'을 가지고 아르바이트, 인턴, 보좌진을 거쳐 작가에 이르는 동안의 경험에서 길어낸 "힘"의 정체를 이야기 한다. 살면서 우리는 깨닫는다. 자신 스스로가 보잘 것 없음을. 그리고 어릴때와 달리 내가 뭐든지 할 수 없음을 잘 안다. 세상과 상황은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쉽지는 않지만 내 몸과 마음, 감정은 스스로 바꾸고 통제할 수 있다. 다만 품이 많이 들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사실 책을 읽기전에 뭔가 획기적인 것을 기대했기에 다소 실망했다. 요행을 바랬다. 왕도는 없다. 결국 하기 싫은 일을 잘 해내야 한다. 작가가 걸어온 길을 보며, 내가 걸어 온 길을 본다. 그리고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바라본다. 저자는 인생의 길을 걸어 '이 책'을 결과물로 내놓았다. 저자의 꿈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결과물'로 어디쯤일지를 조금이나마 보여줬다. 내 꿈, 내 갈 길은 어디일까.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확실한 것은 그 길은 하기 싫은 일들로 가득할 것이다. 지겨운 밥벌이는 계속해야 할 것이고, 개소리 뻘글이라도 부끄러워 말며 말하고 써야 한다. 골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이것저것 읽고 경험해야 한다. 요행은 없다.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연습하는 마음으로. 꿈이라는게 단 번에 이룬다면 누구도 힘들게 살리 없겠지. 저자 덕분에 풀어진 마음을 추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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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과 나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바로 '하기 싫은 힘을 하는 힘'이 있느냐 여부가 결정적이었다. 우리가 모두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하기 싫은 일을 피해가면서 좋은 성과를 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p.8

'하기 싫은 일을 하는 힘'이 지향하는 바는 무위자연, 애쓰지 않는 삶이다. p.15

귀찮고 골치 아픈 사안일수록, 그래서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기 싫을수록 합리적 의심이 중요하다. p.25

남의 눈이 아니라 내게 좋아야 어떤 일이든 즐겁게 최선을 다할 수 있다. p.34

난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티핑포인트에 이를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건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힘이다. p.42

불안과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시작뿐이다. 실패 대안을 마련하고 어쩌고 아무래 해도 시작하지 않는 한 불안과 두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p.53

"무엇을 시작하기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는 없다." 정호승 p.55

불확실성은 본증적으로 우리를 불펺가ㅔ 만들지만 대신 행운을 숨겨두고 있다. p.59

'난 못해'라는 짧은 문구는 일종의 주문이다. 마음이 자꾸 되뇌면, 몸도 반응한다. p.65

피해 다녀도 계속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삶이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문제를 계속 던진다는 것은 나를 괴롭히려고 하기보다 내가 그것을 풀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p.94

"꿈이란 내가 가장 이루고 싶은 것 한가지를 위해 하기 싫은 99가지를 해나가는 과정이다." 김상현 대표 p.97

"자극과 반응 사이에 빈 공간이 있다." 빅터 프랭클 p.109

금욕은 절제하려는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또 다른 탐욕이다. 금욕은 위태롭다. 절제하려는 의도가 균형을 잃고 욕망이 되는 순간, 또 다른 극단으로 치닫고 만다. ... 절제란 속박이 아니라 자유(p.127)다.

몸에 주의를 둠으로써 절제는 과정(현재)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p.133

대게 생각은 부정적 결론을 도출한다. 예측할 수 없는 엵악한 자연 환경에서 맨몸으로 살아야 했던 선사시대 인류의 전략적 사고방식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p.204

진짜 원인은 의지력이 아니라 기억력 때문이다. p.219

마크 주커버그나 엘론 머크스는 유능함을 '지겹고 짜증나는 수많은 일을 피하고 싶은 욕구를 다루는 능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p.257

"진짜 자유로운 삶은 '자유로운 생각'이 규칙적 노력과 열정을 만났을 때 실현됩니다." 장진우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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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