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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권정현]음식은 삶에 대한 태도를, 과잉은 소설의 재미를 | Memento 2018-10-1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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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칼과 혀

권정현 저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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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삶에 대한 태도를, 과잉은 소설의 재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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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있어서 여러가지 즐거움이 있다는데 그 중 하나가 식도락이라 한답니다.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행위"이자, "신의 선물(p.136)"이란 의미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이야기하는 행위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입니다. 단순하게 생존을 위해서 먹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친밀감을 쌓고 사회적 활동을 하는데 이 보다 더 인간다운 방법은 없습니다. 흔히들 '식사는 하혔어요?', '다음에 식사 한 끼 같이 하시죠.'라는 말로 인사를 하는데, 이런 인사말들이 개인적으로 먹고 살아남는데만 국한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게 아닐까요.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행위란 뜻입니다. 때에 따라 사랑의 표현이자, 숭고한 희생의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일까요. 저는 먹는다는 행위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식습관을 본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성격이 어떠한지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먹는 걸 크게 중시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굳이 주어진 맛있는 음식을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굳이 꼭 저걸 먹어야한다는 식의 강력한 의지는 표현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냥 주는 대로 먹습니다. 안먹으면 배고프고, 그러다보면 살 수 없으니 치뤄야 할 일로 대합니다. 찬찬히 맛을 음미하지도 않고, 허겁지겁 삼키키 급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하나의 과업으로 효율성 있게 먹어 치웁니다. 설겆이 거리는 최소한으로, 잔반 역시 최소한으로. 그렇다보니 라면, 패스트푸드가 주종을 이루며, 정성스러운 식사는 대량의 설겆이를 남긴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대충 어떤 사람인지 보이실까요? 이는 일하고, 살아가고, 남들과 함께 사는 일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너무 개인적인 경우입니다만. 그렇다보니 늘 쫓기는 느낌으로 산다고 해야할까요. 세상사에 누구보다 스트레스 받으며, 누구보다 삼아남으려 애씁니다. 생명체라면 누군들 그러지 않겠습니까만,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해야할때는 효율성 있게 칼을 써서라도 최소한의 생존은 확보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누구보다 치열합니다.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칼과 혀>를 보며 이런 잡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존과 음식, 칼과 혀. 이 적절한 조합 말입니다. 식민지 만주국이라는 배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소설에 모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음식을, 저마다의 생존을 도모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장교와 병사, 민중과 투사, 먹는 이와 먹히는 이들 사이의 얽히고 설킴이 역사적 배경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이 설정과 분위기가 '음식'을 통해서 나타나고, 앞서 장황하게 말한대로, 각 인물들이 취하는 삶의 태도와 인물의 성격을 짐작하게 합니다. 소설의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패망전의 만주국, 혼란한 시기를 관통하는 만큼 배꼽 잡고 웃으며 읽을 소설은 아닙니다.

 칼과 혀라는 제목과 음식이라는 주제에 맞게, 작가는 음식과 요리 묘사에 큰 신경을 썼습니다. 오히려 이런 묘사나 요리에 대한 태도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느껴지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과잉된 묘사가 이 소설의 힘이라 봅니다. 덕분에 소설 속 인물들이, 한중일의 차이가 더 선명하게 부각되고 첨예하게 대립한다고 느낍니다. 팩션소설의 특성(?)상 결말이 예상되고, 이 소설 역시 그 경로를 따르지만 인물과 설정, 배경과 소재를 이끌어가는 소설에 흠뻑 빠질 만 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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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죽음을 부른다는 걸 견장에 힘만 줄 줄 아는 자들일수록 알아야 한다. 나는 이토를 관통한 안의 총소리 따윈 절대 듣고 싶지 않다. p.23

"한 접시의 요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접시에 담긴 요리사의 진심이다. 모든 일에는 흥하고 망함이 있다. 너희들이 매 순간 중심을 잃지 않을 때, 우리를 위협하는 제국주의자들의 힘도 무뎌지는 것이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거든, 자신이 오늘 하루 소꼬리를 잘라내는 데 썼던 그 칼이 진정으로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고민해보기 바란다. 소꼬리 찜은 전쟁이 끝난 뒤 다시 배우자!" p.56

전쟁이 나면 멍청한 남자들일수록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정의를 짊어지고 불속으로 뛰어들길 주저하지 않잖아? 그건 때가 되면 규칙적으로 여자들에게 찾아오는 이름 모를 일본 병정들이나, 남부식 권총 하나로 세상의 부조리를 끝낼 수 있다고 믿는 내 오빠나, 도마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첸이나 모두 매한가지야. 그래서 난 사내들을 믿지 않아. p.98

"우리 고향에선 음식이 곧 목숨이었다. 음식을 먹는 시간은 최대한 간략하게 줄여야 했고 낭비는 허락되지 않았지. 무사나 군주들일수록 겸양의 미덕을 보여야(p.113) 했거든. 밥을 축내는 노인네들은 수침심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제 어금니를 부러뜨렸어." p.114

전황을 보고받을 때마다 나는 죽음과 삶 사이에 끼인 수많은 생명들을 생각한다. 죽음을 앞둔 운명만큼이나 절박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식탁에 차려진 갖가지 산해진미가 아름다운 이유도 그것이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 소화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소멸되지 않는 장식품은 아무런 미적 가치가 없다. 극락사의 반가사유상이 아름다운 이유도 그것이 긴 세월 동안 조금씩 부패해왔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것의 몸엔 녹이 잔뜩 슬고 미소는 기괴하게 일그러질 것이다. 그러기에 시시각각 변하는 그 미소를 사랑할 가치가 있다. p.126

"옳으신 말씀입니다. 요리가 가진 최고의 기능은 침묵이죠. 인간들이 세 치 혀로 감히 만평할 수 없도록, 그들을 침묵 속에 빠뜨려야 합니다. 더불어 아는 척을 조금 더 하자면..." "하자면?" "음식을 먹는다는 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혀와 위가 우리의 뇌에 가져다주는 행복, 단순하기까지 한 그것을 만끽하는 신의 선물이기도 하지요." p.136

나라는 몸은 무엇이며 나라고 믿는 이 생각은 무엇이며 내가 겪었다고 믿는 과거는 무엇이며 나는 어느 인과를 통해 낯선 신경 한 귀퉁이에 버려져 있는 걸까. 내 오빠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 차나무에 앉아 아침 이슬을 매달고 지리하게 먹이를 기다리는 염낭거미의 반에 반만큼이나 삶은 의미가 있을까? 온종일 먹이를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우리의 삶은 간절할까. 오빠처럼 거창한 명분은 결코 생각해본 적이 없어. 거창한 명분을 가진 자들일수록 모양과 크기에 집착하는 법이잖아. 종종 삶의 가장 진실한 알갱이를 잃어버리기도 해. p.148

그러면서 사내들은 단련이 되는 것 같아. 몸속의 피가 밖으로 빠져나와 그들에게 죽음을 가르치는 그때에. p.150

개가 허공을 보고 짖을 때 노인네들은 귀신을 보고 짖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개가 허공에 떠다니는 냄새를 맡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죽은 자의 냄새일 수도 있고 사물의 단순한 냄새일 수도 있다. 냄새가 흩어지지 않고 떠다닌다는 건 그만큼 그 맛들이 단단한 힘으로 뭉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리를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설 때 손님들은 먼저 코를 통해 그것을 찾는다. 그다음 눈이 그것의 모양과 색을 구분하고 마침내 혀로 평가를 내리는 단계로 나아간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개처럼 사슬에 묶여 있는 나는 인간보다 확실히 개에 가깝다. p.213

내 눈을 탐했던 적을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혀에 와 닿는 맛으로 경험했던 그 날, 나는 커서 결코 군인 따위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적을 죽이다가 끝내는 자신마저 그 죽음 속으로 밀어넣어야 하는 미련함, 대상에 대한 자유로운 품평을 강제당한 채 통일된 동작으로 뜨겁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획일화된 세계에 대(p.234)하여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p.235

가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문 하나가 저 부엌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어느 부엌이든 문을 열(p.246)고 들어가면 주린 배를 채울 무언가가 숨어 있게 마련이지. 죽이고 죽는 전쟁쯤은 잠시 잊어도 좋은 그곳. p.247

"집중, 집중! 너희들이 무슨 생각으로 요리 병과로 지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요리사는 요리사이기 이전에 가장 현란한 마술사가 되어야 해. 알겠어? 마술사와 요리사 모두 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 다만 마술사는 상대의 눈을 속이지만 요리사는 상대의 혀를 속여야 해. 맛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모든 사물은 그대로 있을 뿐이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게 맛이야. 의미란 공통의 관습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의미를 부여받기도 하는 거고. 유능한 요리사는 그런 개인의 습성, 집단의 습성을 빠르게 간파하여 그들의 혀를 속일 수 있어야 해. 마술사들이 젊은 연인들을 앉혀놓고 모자 속에서 빨간 장미를 뽑아내듯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맛을 대령하는거지. 곧 죽어갈 머저리들에게. 응, 알겠나?" p.256

사람의 표정은 때로 미래를 짐작케 한다. 그것은 한 집단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p.257

썩어가는 것들일수록 더 깊은 맛을 풍기지. 인생도 그렇다. 너의 무엇이 너를 간절하게 하느냐? 그것이 없다면 요리는 겉치레일 뿐이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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