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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살상수학무기-캐시 오닐] 새로운 신에 대한 이야기 | Memento 2018-07-3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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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대량살상수학무기

캐시 오닐 저/김정혜 역
흐름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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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신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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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름 이과의 해로 정했다. 무슨 말이고 하니, 매번 읽던 책들에서 벗어나 수학과 과학 계통의 책을 읽자고 정했다. 평소에 문학, 역사, 사회 계통은 많이 읽었으니, 더 늦기전에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여 놓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이 이 책이었고, 읽은지 4개월이 지났음에도 쉽사리 글을 쓰지 못했다. 업무적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우선 덜컥 겁이 났다. 당최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가 어려운 용어들이 튀어나오고, 간단한 수리적 이해도 필요하도보니 도저히 개소리라도 지껄이기가 두려웠다. 그럼에도 억지로 지껄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꼭 필요한,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다.

세상은 데이터가 넘쳐자는 시대다. 데이터 마이닝, 빅데이터, 체인블록이니 시시각각 새로운 용어들이 튀어나온다. 물론, 그렇지 않은 시대는 없었지만. 그만큼 데이터가 권력이고, 데이터를 가공하고 운용하는 일은 새로운 노다지를 캐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수학적인 무언가, 저자의 표현대로 수학모형이 필수적이다. 더더욱이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계량화하여 평가하고 객관화해야 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수학모형은 "신을 닮았다.(p.21)" 아니 신이다. "무언가를 명확히 정의하기보다는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수학 공식들을 의도적으로 이용(p.115)" 이들에 의해 신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신은 그 작동법을 모르는 사람이나 약자에게 관대하지 않다. 이 모형은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선택에 기반을" 두었기에 "인간의 편견, 오해, 편향성을 코드화(p.20)" 했다. "무계획적인 데이터 수집과 허위상관에 의해 작동하고, 제도적 불공평에 의해 강화되며, 확증편향에 의해 오염(p.65)" 되었다. "그저 기술로 편견을 감(p.70)"추었을 뿐이다.

<대량 살상수학무기>는 사실 수학책이 아니다. 수학모형이라는, 아니면 대량살상수학 무기라는 새로운 신이 지배하는 시대에 관한 책이다. 정의에 관한 책이고, 공정성에 관한 책이다. "사회 전체가 공정성을 위해 효과성을 어느 정도 희생시킬 의지가 있느냐(p.233)"를 묻는 정치에 관한 책이다. 새로운 신은 공정하지 않다. 공정해 보일 뿐이다. 새로운 신은 "과거를 코드화할 뿐, 미래를 창조하지 않는다. 미래를 창조하려면 도덕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p.475)" 데이터는 공정하거나 중립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데이터를 선택하는 기준, 새로운 신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선택과 관련한다. 공정성과 효과성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새로운 신을 "날씨와 조수 같은 중립적인 불가항력으로 생각하면서 수학 모형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면, 이는 우리의 책무를 유기하는 행위다. (p.505)" 그렇기에 알아야만 한다. 미래는 인간만이 선택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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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경제의 원동력인 수학 모형 프로그램들은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선택에 기반을 둔다. 분명 이런 선택 중 일부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모형은 인간의 편견, 오해, 편향성을 코드화했다. 그리고 이 코드들은 점점 더 우리 삶을 깊이 지배하는 시스템에 그대로 주입됐다. p.20

수학 모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을 닮았다. 신처럼 불투명해서 이해하기 힘들다. 각 영역의 최고 사제들, 즉 수학자(p.20)와 컴퓨터 과학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내부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신의 평결처럼, 잘못되거나 유해한 결정을 내릴지라도 반박하거나 수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부자는 더욱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p.21

WMD는 가난한 사람들을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 특권층은 주로 개별적인 대인면담을 통해 평가받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주로 기계가 일괄적으로 처리한다. p.32

금전적 이익이 진실에 대한 대체 혹은 대리 데이터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p.43

모형들은 수학에 깊이 뿌리내린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 우리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누가 모형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개발자가 모형을 통해 성취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p.62

인종차별 모형은 무계획적인 데이터 수집과 허위상관에 의해 작동하고, 제도적 불공평에 의해 강화되며, 확증편향에 의해 오염된다. p.65

인간의 편견이 완벽히 제거되었을까? 그저 기술로 편견을 감춘 것은 아닐까? p.70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슨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p.73

사람들은 자신이 모형에 포함된다거나 그 모형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더라도 그 모형이 불투명하거나 비공개적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p.77

WMD의 세 가지 요소 : 불투명성, 확장성, 피해 p.83

핵심은, WMD 모형으로 혜택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고통 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되는 모형은 수백만 명의 면전에서 기회의 문을 당아버리고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더욱이 가끔은 지극히 하찮은 이유로 그렇게 한다. p.84

수학은 외부인들에게 진실을 가리는 장막에 불과했다. 수학의 목적은 오직 판매자의 단기이익을 최적화하는 데 있었다. p.108

사람들은 무언가를 명확히 정의하기보다는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수학 공식들을 의도적으로 이용했다. p.115

대리 데이터로 구축된 모형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쉽게 말해 장난치기가 쉽다. 이는 대리 데이터가 대표하는 복잡한 현실 데이터 자체를 조작하기가 더(p.140) 쉽기 때문이다. p.141

WMD는 모든 사람이 정확히 똑같은 목표를 따르도록 강제한다. 이는 사람들을 무한경쟁에 내몰고 이전에는 겪지 않았을 다양한 부작용에 시달리게 한다. p.149

불공정한 조건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위를 차지하고 다른 사람이 자(p.161)신보다 앞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p.162

관건은 사회 전체가 공정성을 위해 효과성을 어느 정도 희생시킬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p.233

정의는 사회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에 가하는 것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p.236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데이터를 취선택하고 있다. p.238

현실에서 인성적성검사는 마치 불순물을 걸러내듯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지원자들을 가려내는 여과장치로 이용된다. "검사의 주요 목표는 최고의 인재를 찾는(p.261)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능한 한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한 많은 사람을 걸러내는 일입니다."라고 롤런드 벨이 말했다. p.262

문제는 채용 과정에서 이렇듯 공평하게 심사할 수 있는 직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p.272

기회로 이어지는 불평등한 경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단순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을 뿐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승자가 되려면 기계 문지기를 통과해야 한다. p.275

인간에게서 지원자들을 차별하는 법을 배운 컴퓨터는 인간들보다 한 술 더 떠서 기가 막힐 만큼 효율적으로 차별적인 심사를 했다. p.278

수학 모형들이 데이터를 철저히 조사해서 범죄, 빈곤, 교육 등 중요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걸러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런 정보를 어떻게 이용할지는 사회가 선택할 몫이다. 그들을 배제하고 처벌하기 위해 이용할 수도 있고, 그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면서 끌어안을 수도 있다. 요컨대 WMD를 치명적인 무기로 만드는 2가지 특징인 확장성과 효율성을 사(p.281)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용할 수 있다. 그것은 온전히 우리가 어떤 목표를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p.282

모형 개발자들의 과제는, 거대한 빅데이터 세상에서 넘쳐나는 정보 가운데 창의성이나 사회적 기술과 관련 있는 정보를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다. p.284

데이터 세상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에 대해 더 많은 새로운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 모든 데이터는 우리의 미래 고용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우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제공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통찰력은 검증 과정을 거칠까? 아니면 단순히 현상을 정당화하고 편경을 강화하기 위해 이용될까? p.289

WMD는 모형에 현실을 반영해 수정하기보다는 원하는 현실을 창조한다. p.315

'심슨의 역설' 하나의 추세를 나타내는 전체 데이터를 하위 그룹으로 나누면 각각의 하위 그룹에서는 전체와 정반대되는 추세가 나타나는 현상. p.322

만약 시험의 목적이 책임 지울 누군가를 찾는 것이라면, 그리고 노동자들을 겁주기 위한 것이라면,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무의미한 점수를 생산하는 WMD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다. p.331

"데이터는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오늘날 정보화 시대의 기본원칙이다. 그러나 일부 데이터는 공정성을 위해 함부로 이용할 수 없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p.351

데이터 경제에서 인간은 외부자이고 구닥다리다. 반면 시스템은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진다. 그것이 바로 효율성이고, 그래서 수익 창출원이 된 것이다. p.360

오직 인간만이 시스템에 공정성을 주입할 수 있다. p.363

우리의 개인적 행동을 추적하는 모형조차도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함으로써 위험을 평가한다. p.396

감시는 보험의 본질을 변화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볼 때, 보험은 지역사회의 불행한 소수의 필요에 반응하기 위해 다수에 의존하는 산업이다. ... 시장경제에서는 우리는 이런 도움을 보험사들에게 위탁하고, 보험사들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보험료의 일부를 취한다. ... 표적화의 세상에서 우리는 더 이상 평균치만을 부담할 수 없다. 예상되는 미래 비용 또한 부담해야 한다. 보험사들은 우리가 삶의 장애물을 수월하게 넘어가도록 도와주는 대신에, 장애물에 대비해 미(p.399)리 비용을 청구할 것이다. 이것은 보험의 근본적인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며, 장애물을 극복하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더욱 혹독한 일이 될 것이다. p.400

기계지능, 다른 말로 인공지능의 시대에 거의 모든 변수는 미스터리로 남게 된다. 시스템이 사람들을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끊임없이 이동시킴에 따라 부족은 매 시간 매 분 변화할 것이다. p.404

정치인들은 미심쩍은 약속들을 제공하는 공급자이면서도, 그런 약속을(터(p.449)무니없이 비싼 값에) 구매하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p.450

데이터 처리 과정은 과거를 코드화할 뿐, 미래를 창조하지 않는다. 미래를 창조하려면 도덕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p.475

모형은 비단 데이터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떤 데이터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떤 데이터를 배제할지에 관한 선택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당연히 물류, 이익, 효율성과 관련된 선택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런 선택은 도덕과 관련 있다. p.505

수학 모형을 날씨와 조수 같은 중립적인 불가항력으로 생각하면서 수학 모형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면, 이는 우리의 책무를 유기하는 행위다.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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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섹스는 왜 펭귄을 가장 닮았을까-다그마 반 데어 노이트]'하기'전에 '생각해야' 한다. | Memento 2018-07-3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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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인간의 섹스는 왜 펭귄을 가장 닮았을까

다그마 반 데어 노이트 저/조유미 역
정한책방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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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남자들이여, 사랑과 섹스는 함부로 '하기'전에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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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단지계(三端之戒)라는 말이 있다. 본래 한시외전에서 나온말이라는데, 붓끝, 칼끝, 혀끝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사실 더 유명한 것은 세 방망이, 혹은 부리를 조심해라는 말로 더 유명하다. (남고를 다녔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테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특히 남자는 평생 세 부리(방망이)를 조심해야한다. 말부리(혀), 손부리(주먹), 마지막으로 x부리(성욕)다. 진화론적 관점과 관련된 책을 볼 때마다 이 x부리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걸까. 스스로도 이 x부리에 대해서 고민이 많다. 왜 남자는 끊임없이 이 욕구와 싸워야하는가. 그렇게 진화한 탓일까. 아니면 문화적으로 그렇게 배운 것일까. 진화론이니 하는 "썰"과 "론"을 빌어서 나약한 나에게 면죄부를 줄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알고 싶을 뿐이다. 어떻게하면 나를 포함한 수 많은 남자들이 - 주전자를 들 힘만 있어도 느끼는 - 이 끊임없는 욕구의 터널을 슬기롭게 견디거나 넘길 수 있을까. 확실히 애국가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이런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읽는 다면 오히려 좌절의 연속이다. 인간의 사랑과 섹스에 대해서 동물행동학 관점에서 풀어낸 이 책은, 오히려 내가 생각한 목적을 흩어 놓았다. 인간 역시 동물이라는 범주 안에서 동일한 목적을 가지 있다. 자손, 즉 유전자를 미래로 전하는 것. 특히 사랑과 섹스는 혼자 살아남을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서로 융합하기 위해 만든 동물들의 전략이다. 심지어 같은 종일지라도, 성별에 따라 전략에 차이가 있다. 일부일처의 헌신적인 면모를 펼치기도하고, 품이 많이 드는 난자를 최대한 아끼기도하고, 비교적 값싼 정자를 최대한 많이 뿌리기도 한다. 이는 양자간의 전략의 차이가 오랬동안 지속되어 온 결과다. 인간에 있어서는 많은 남녀관계가 그러하 듯, "섹스와 투자(p.109)"의 문제라고도 평한다. 심지어 "남자를 일종의 기생충으로 보는 생물학자들도 있다(p.39)"고 하니, 어찌 기분이 묘하다. 난 그저 슬기롭게 넘겨서 착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서민 교수의 책을 읽었기에 기생충에 대한 편견은 줄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묘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자연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인간뿐이다.(p.201)"라며 살며시 비켜서는 저자의 마무리를 보면 얄밉기까지 하다. "사랑과 섹스는 궁극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행하는 것'이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p.204)"고 좋게 마무리 하지만...저자의 결론을 믿을 수 없다. 인간은 동물이기도 하고, 때로는 동물보다 못한 인간도 많으니까. 어쨌든 만국의 남자들이여, 사랑과 섹스는 함부로 '하기'전에 동물과 달리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인간이니까, 동물보다 못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결국 원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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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일종의 기생충으로 보는 생물학자들도 있다. 남자를(p.39) 분석하자면 여자의 품질로부터 이득을 보려는 정자를 중심으로 둘러싸인 몸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알고 나면 왜 몇몇의 암컷 동물이 수컷 없이 사는 길을 선택하는지 이해가 간다. 이들은 머리를 써서 남자를 이용해 먹는다. p.40

제프리 파커는 1970년대 말에 동물과 인간의 남녀는 서로 다른 생물학적 이해관계 때문에 항상 다투는 것이라고 처음으로 언급했다. 남녀의 후손 번식 전략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싸움은 2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섹스(얼마나 자주 하느냐, 또 얼마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그리고 투자(누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느냐, 상대방을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두 성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p.109

우리는 나를 닮은 파트너를 고르기보다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닮은 파트너를 선택한다. ~ 이런 선호도는 유전된 것이 아니라 학습된 것임을 다음 연구에서 보여준다. p.123

혼자서 부모 노릇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자녀의 생존율이 자꾸 떨어질 때 우리의 조상들은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다. 삶의 불공정함을 같이 나누어 가지고 같이 부모 노릇이라는 모험에 뛰어들 누군가를 찾는 것이다. 이때 남자와 여자를 연결해준 감정을 사랑이라고 한다. 여자들의 삶이 힘겨워질수록 사랑의 기회는 점점 더 커졌다. 깊은 불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 생겨났다. p.170

자상한 아비가 있는 동물은 대부분 일부일처제이다. 서로 항상 같이 붙어 있으면 암컷이 다른 수컷과 수정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수컷은 새끼가 자신의 핏줄이라는 확(p.176)신을 갖게 된다. 그러면 수컷도 육아를 기꺼이 떠맡을 마음의 준비가 선다. p.176

일반적으로 자연 법칙은 이렇다. 새끼가 의존적일수록 어미의 부담은 커지고 그럴수록 아비의 자식 사랑은 더 커진다. 부성애는 주로 육식 포유동물에서 볼 수 있다. p.178

섹스는 후손 번식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 동물 세계에는 동성애에 대한 증오가 없다. ~ 자연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아마도 그것이 유일하게 부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p.201

사랑과 섹스는 결핍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세포들의 후(p.203)손이고, 그들은 혼자 살아남을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서로 융합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p.204

사랑과 섹스는 궁극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행하는 것'이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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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록산 게이] 그래, 내 정체성이 하나가 아니듯. 꼭 페미니스트여야만 할 필요가 없듯. | Memento 2018-07-2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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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 저/노지양 역
사이행성 | 201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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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 정체성이 하나가 아니듯. 꼭 페미니스트 여야만 할 필요가 없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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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상도 출신의 일반적인 남성이다. 일반적이라고 함은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튀는" 면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명백한 이성애자고, 한때 심각하게 가난한 삶을 거쳐, 제 손으로 밥벌어 먹고 살고 있으며, 아직은 미혼이나 결혼하고 싶은 남성인 사람이다. 이러한 나 자신의 위치, 혹은 특권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았다. 그래서 "오빠는 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단정 짓는거야."는 여자친구의 물음에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남자고,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결코 닿을 수 없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가 바라는 이상향에 절대로 닿을 수 없다. 노력하고 고민하고 함께하려 애쓰겠지만." 책도 읽고 고민하고 대화도 해보았지만, 도저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기 어려웠다.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페미니스트에 대해, 혹은 어떠한 이상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이 고민에 대해 <나쁜 페미니스트 Bad Feminist>는 답을 주었다. 책의 추천사에서 여성학자 정희진은 말한다. 여기서 Bad는 '나쁜'이 아니라 '부족한, 못 미치는, 완벽하게 훌륭하지 못한'으로 읽힌다고. "보편성의 반대 개념은 특수가 아니라 차이(p.13)"며, 이것이 페미니즘의 기본 명제라 말한다. 저자는 흑인 여성으로-미국내에서 교수, 소설가, 문학 비평가 등으로 유명하지만-차별을 극명하게 받는 입장에 있다. 그녀 역시 한때 "페미니즘을 지지하면 매사에 일관적이고 논리정연한 사람으로만 살아야 할까봐 거부(p.26)" 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말한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기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를 택하겠습니다.”고. 이 외침에서 실마리가 되었다.

나는 차이는 인정하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 인종이 다르고, 성적 취향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정치색이 다르고, 고향이 다른 것은 모두 존중하려 애쓴다. 나는 사람이기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항상 이러한 차별에 반대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정의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내가 남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록산 게이의 고민처럼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서 일까. 비겁해서일까?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면 반-인종차별주의자, 반-종교차별주의자 일 수 있듯이, 페미니스트 혹은 반-성차별주의자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혹은 정희진이 말한바 Bad Feminist라 칭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어떤 주의자라해서 꼭 완벽하게 그 이상을 실현해야 하지는 않을 것이며, 또한 내 정체성이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역시 정체성이 -'성공한' '흑인' '여성'- 하나가 아니기에 책 전반에 걸쳐 젠더와 인종을 넘나들며, 때로는 동시에 이야기한다.

책을 덮으며 저자의 외침에 용기를 얻어본다. 굳이 아니라고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이 역시 모든 차별에 반대해야 한다는 내 신념에도 합치하고, 내 정체성의 또 하나를 이룰 수 있는 일이기에. 이제 여자친구에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페미니스트다 라고. Bad Feminist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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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읽다-정인경] 과학책인 듯 과학책 아닌 책을 과학책 | Memento 2018-07-2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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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과학을 읽다

정인경 저
여문책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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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인 듯 과학책 아닌 책을 과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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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입니다. 우선 내가 잘난 척하고 으스댈 수 있게 해줍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 하잖아요. 요즘 같이 정보화 시대에는 강한 권력이 되기도 하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인터뷰에서 “아름다움은 어원 그대로 ‘앎’입니다. 깨닫게 하는 것이죠.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던 것을 주목하게 하는 사회적 실천이 아닐까요.”라고 말하셨는데, 안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미처 몰랐던 것을 알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앎’은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일이 알아간다는 과정이 아닐까요. 서정범 교수는 아름답다는 ‘나답다’가 어원이라고도 하는데, 아름다움, 앎, 삶은 복잡하고도 미묘해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정인경의 <과학을 읽다> 그런 책입니다. 과학책인 듯 과학책 아닌 책을 과학책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우리가 과학 공부를 하는 목표는 지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지식이 왜 중요한지를 알고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 (p.13)”이며, “앎은 삶을 바꾼다!(p.468)”고 말합니다. 그래서 과학책일까요 아닐까요. 얼마전에 TVN에서 서울시립과학박물관 관장님께서 시청자에게 물었습니다. 지동설이 과학일까요 아닐까요. 당연하게 과학이 아닌, 틀린 비과학이라고 믿을 겁니다. 하지만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시지요. 그것은 너무나도 과학적이라고,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줄수 있는 과학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은 "의심"의 학문이기에, 패러다임을 바꿔나가는 그 과정자체가 과학이다. 그래서 지동설은 가장 과학이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반성합니다. 옳고 그름, 정답과 오답의 문제가 아니라 과정, 즉 방향성의 문제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정답을 찾는데 익숙합니다. yse와 no의 경계는 분명 흐림에도 불구하고, 항상 극단적으로 나누는 것에 익숙합니다. 누구를 탓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살아오고 겪어온 결과일겁니다. 희미한 경계에 있음에도, 스스로 희미해지면 세상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과거를 미워하거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요. 수 없이 다양성, 창의성을 개발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우리는 그 경계에 대해서는 아무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애매한 녀석을 우유부단 녀석으로, 확고한 친구를 위험한 친구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이 문제겠지요. 넓게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나도 그러지 못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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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그 지식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놓치고 있다. 우리가 과학 공부를 하는 목표는 지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지식이 왜 중요한지를 알고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 p.13

살아 있는 생명의 이야기는 모두가 역사학인 것이다. p.91

그동안 역사가들은 자연의 역사를 인간의 역사에 종속시켰지만 다윈주의적 관점의 역사는 자연과 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인간의 목적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서양 역사학이 '그래야 한다'는 당위와 목적을 추구했다면 <총,균,쇠>는 '그래왔다'는 사살을 말하고 있다. p. 94

학자에게는 지적 능력이나 유려한 글쓰기가 재능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현재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 고통을 해결하려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것이 재능이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과 자발적인 의지야 말로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품격이다. p.123

체계적으로 말하면 진리는 두 가지 방향으로 탐색되었다. 하나는 '세계는 무엇인가'를 묻는 자연세계의 '사실'을 이해하는 작업이고, 또 하나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p.129) 묻는 삶의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었다. 종교에서 신은 대체로 이 두 가지 질문을 다 만족시켰다. p.130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인간이고 지구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세계의 모든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직면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고 살안마기 위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해야 하고, 그래서 철학과 과학을 탐구한다. 우주론이나 진화론, 윤리학과 같은 진리는 철학자나 과학자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처한 상황에서 더 나은 선택과 올바른 결정을 하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지식이다. 그동안 우리가 진리를 찾았던 이유는 마음속에 올바른 앎과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p.140

오늘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난 역사 속에서 여러 번 경험했듯이 우리는 매우 무지하며 우리가 가진 모든 해답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다. 이를 인정할 때 인류는 '이 모든 것들의 의미'를 향해 계속 뻗어 나갈 수 있는 열린 통로를(p.219) 만날 수 있게 된다. 나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올바른 도덕적 가치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아직 그 해답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리처드 파인만 p.220

우리가 달에 가서 본 것은 달이 아니라 지구의 가치였다. 관점을 바꾸어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 새로운 객관적 사실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p.241

"고통은 그 작용이 완벽하지 않은 자연선택과 마찬가지로, 대개 각 생물종이 다른 종과의 생존투쟁에서 가능하면 이길 수 있는 종이 되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다." -다윈 p.332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사회적 뇌에서 나온 공감과 도덕적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p.363

과거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p.391)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서 세계를 지배하고 역사를 바꾼다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불안한 삶을 사는 물질문명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제어하지 못하고 민족과 국가, 종교 사이의 분쟁과 갈등은 점점 첨예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 바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매달리느라 정작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못했다. p.392

나는 과학책을 쓰면서 과학이 지식으로서 가치 있으려면 삶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리모 레비처럼 과학을 통해 세상이 불합리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이다. 모든 공부가 그러하듯 과학 공부도 이해하고 기억하는 과정이다. 물질에 대한 이해, 우주에 대한 이해, 인(p.418)간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가 직면한 잘못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픈 역사를 왜 자꾸 들춰내느냐고 하지만 그 아픔을 알고 기억해야 바로잡을 수 있다. 기억은 목적지향적인 뇌가 의식적으로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인간적인 행위다. 하루하루 소멸해가는 삶에서 기억은 올바름에 대한 갈망이며 인간됨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누구 한 사람의 기억이 아니라 집단의 기억이다. 그런데 집단적으로 기억상실증을 앓고 끝난 이야기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는 없다. 수많은 사람의 기억이 연대해야 과거에 일어났던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 p.419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에 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p.439

실재를 아는 것과 그것의 중요성을 느끼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뇌에서는 실재가 무엇인지를 아는 앎과 앎의 중요성을 깨닫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앎은 삶을 바꾼다! 앎으로부터 일어난 감정의 변화가 삶의 의미를 찾게 한다는 것이다. p.465

도덕은 인간 삶의 기본적인 욕구에서 나온 것이다. 자신의 욕구만큼 타인의 욕구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바로 도덕이다. 도덕의 진보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p.467)을 이해하고 염려하면 되는 것이다. p.468

"잘못된 사회에서 올바른 삶이란 있을 수 없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p.478

결국 인간의 도덕이란 자신과 일체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도덕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그들의 행복과 고통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p.491

인간은 사실을 토대로 가치판단을 한다! 사실상 모든 가치판단의 영역은 과학적 사실들과 결부되어 있다. 지금까지 우주, 인간, 마음에 대한 과학책들을 읽고 내린 '과학적 통찰'이다. 앎(사실)과 판단(가치)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올바른 가치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왜 과학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과학과 인문학이 왜 융합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대답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적 사실과 올바른 가치판단이다. p.493

과학책 읽기는 여느 인문학책 읽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그런데 일선 학교에서 권장되고 있는 과학책 읽기에 이러한 의미가 전달되는지 의문이 든다. p.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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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치인 이야기 | 잡설 2018-07-25 20:47
http://blog.yes24.com/document/1055580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별로 진지하게. 정치를 안한거죠. 나는 그게 제일 중요한 거라고 봐요. 그러니까 딱. 삶을 걸고. 책임성 있게. 최선을 다해서. 하지를 않은 거지."  

-유투브를 보다가 유시민 曰


이유야 어쨌든. 당신의 선택이기에. 

자신만의 책임성을 가지고,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한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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