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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시부사와 에이이치] 조선과 일본의 차이, 주변부와 다양성 | Memento 2019-09-1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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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이치

시부사와 에이이치 저/박훈 역
21세기북스 | 2019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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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와 다양성,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청년기에서 그 실마리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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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배울 때 늘 관심사는 근현대사였다. 어린 마음에는 웅장하고 거대한 서양의 건축물에 매료되어 중세사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유럽 중세사는 시기적으로도, 거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나에게 너무나 멀었다. 그러던 차에 일본은 왜 성공하고, 조선은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일본은 어떻게 근대화에 성공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그들의 역사가 답이다. 그들이 걸어간 경로가 바로 한 가지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로 달려가는 그들의 역사를 보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일본은 왜 근대화에 성공했는가?’ 이 질문에는 역사만으로 답할 수 없다. 과정과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성공했던 근본적인 이유, 나아가 그 법칙성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결정적인 요인이 있다고 볼 수도 있고, 복합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어쨌거나 이 질문에는 정답은 없다.

  DAUM 웹툰 중 <왕 그리고 황제>라는 작품이 있다. 조선의 근대화에서 가장 걸림돌(?)로 인식되는 고종에 대한 판타지를 기본으로 한다. 강력한 왕권(혹은 중앙집권 체제)은 근대화의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지만, 조선에는 그런 왕이 없었다. 만약에 고종이 유능한 왕(태종)이었다면? 조선은 근대화의 길로 접어들었고, 식민지의 치욕을 겪지 않았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은 우리에게 질문을 준다. 역사적 영웅이 종국적인 결과를 바꿀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흐름을 늦출 수는 있지만, 완전한 변화를 이루기는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개인에 의해 세상이 바뀐다면 정조에 의해 이미 조선은 바뀌었어야 했다. 그렇다면 왜 조선은 실패하고, 왜 일본은 성공했는가.’

  일반적으로 서양의 세계지배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이론이 있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읽고 있어서 참고했다.) 장기 고착이론과 단기우연이론이다. 장기고착이론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 어떤 내재적인 요인이 아주 장기간에 걸쳐 고착되어 변경 불가능한 차이를 만들었다는 이론이다. 반면에 단기우연이론은 서양의 지배가 단기적이고 우연한 요소에 의해 이뤄졌다는 이론이다. 이를 일본과 조선에 대입해 본다면, 우선 장기고착이론은 해당하지 않는다. 대륙과 인접했던 한반도가 여러 요인들이 발전했음은 물론이고, 선진문물을 전파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렇다면 남는 것은 단기우연이론. 하지만 이는 일본도, 한국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우세가 단순히 우연에 따른 결과라면, 거꾸로 우연한 결과에 의해 일본 역시 식민지로 전락했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더불어 한국 역시 지난 역사에서 배울 것이 전혀 없다. 순전히 운에 따른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는가. 우선 주변부의 이점이 있었다. 기득권(비단 권력뿐만 아니라 사회제도 등등)이 약했기 때문에 해외(서양) 문물의 수용이 쉬웠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조선의 경우 왕과 수도를 중심으로 중앙집권화가 이미 이룩되어 있었다. 반면 일본은 중앙 정부 격인 막부가 미약했고, 다이묘들이 사실상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 즉 다양성의 차이가 발생했다. 일본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성공을 위해 번마다의 실험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그 결과 사쓰마와 조슈번의 실험이 성공했다. 반면 한국은 강력한 중앙집권 제도였기 때문에, 지방에서 이런 실험은 어려웠다. 정국을 뒤흔든 반란은 많았지만, 결국은 진압되었다. 여기서 생겨나는 유연성의 차이가 일본과 조선의 큰 차이가 아니었을까.

  <일본의 설계자, 시부사와 에이아치>는 그의 청년기를 구술한 책이다. 아직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몸소 겪은 그의 구술은 생동감이 있다. 더불어 앞에서 이야기한 주변부와 다양성에 대해서 고민해볼 지점들이 있다. 이를테면, “막부가 쓰러져 국가가 혼란해진다. 국가가 혼란해지면 충신도 나타나고 영웅도 나와서 이를 다스린다. 이렇게 보면 국가를 혼란시키는 것은 국가를 안정시키는 디딤돌이 될 것 (p.100)”으로 믿는 부분에서 저마다의 실험을 할 수 있었던 여건이 있었음을 짐작해 본다. 더불어 농민 신분이긴 하지만 이 한 몸 희생해서라도 폭정 변혁의 단초를 열어 바르고 공명한 정치가 행해지는 세상으로 만들지 않으면 일본국은 틀림없이 망할 것(p.97~98)”으로 믿고 행동하는 부분에서 조선보다 조금 더 열린 모습을 살펴본다.

  근대화의 성공이 절대적 선은 아니다. 다만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때의 경험을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 있다. 지금은 주변부와 중심부의 위치가 바뀌었다. 세계적인 추세에서, 한국의 지난 역사에서도 지방분권,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일이 유의미 하지 않을까. 정답은 아니겠지만, 역사라는 실험실에서 나온 나만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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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상에서 공명을 떨치기 위해서는 순도로는 도저히 안 되니 역도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걸 한마디로 하면 변란을 꾀하는 것으로 나라에 대소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대소동을 일으키면 그로 인해 막부가 쓰러져 국가가 혼란해진다. 국가가 혼란해지면 충신도 나타나고 영웅도 나와서 이를 다스린다. 이렇게 보면 국가를 혼란시키는 것은 국가를 안정시키는 디딤돌이 될 것이므로 우리들은 떨쳐서 혼란을 야기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일신을 희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p.100

농민으로 태어나 경작을 주로 하는 신분이면서 감히 막부의 폭정에 분노하여 지금 같은 상태로는 막부가 도저히 유지될 수 없다. 또 유지될 수 있다 해도 이대로는 놔둘 수 없다. 농민 신분이긴 하지만 이 한 몸 희생해서라도 폭정 변혁의 단초를 열어 바르고 공명한 정치가 행해지(p.97)는 세상으로 만들지 않으면 일본국은 틀림없이 망할 것이다. 지금 같은 위태로운 시세에 처해 있으면서 내 본분이 아니라고 정치에 입을 열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므로, 정말로 마음을 다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데에 분골쇄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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