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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의 배신-조한혜정 외] 선망국의 시간, 선망국의 기회 | Memento 2020-07-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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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노오력의 배신

조한혜정,엄기호,강정석,나일등,이충한,이영롱,최은주,천주희,이규호,양기민 공저
창비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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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겠지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갸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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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청년은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청년기본법3조제1) 다른 법령이나 조례에서 청년에 대한 연령을 다르게 적용하는 경우 그에 따를 수 있다지만, 원래 알고 있던 나이(39세 이하)와 다르게 갑자기 늙어버린 기분이다. 분명 장년에서 은 그런 의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묘한 감정이다. 법적으로 청년 기본법(20.8.5. 시행)에서 의미하는 청년이 되는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면 청년 다음 장년의 삶에서 또 얼마나 치이고 중간에 끼여서 고통 받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쳥년기의 삶을, 나의 노오력둘러보고 다른 청년들과의 공존을 고민해보는 일이 단순히 거시적인 차원의 청년문제가 아니다. 직접적인 내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다. 더불어 장년, 중년으로 나아가는 삶의 과정에서 미래의 청년들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떤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이다. ‘커피는 자고로 라떼가 최고야.’를 외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인 삶의 청년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근대화의 시기라 정의할 수 있다. 고대(유소년기) 동수저 시기를 지나, 청소년기의 흙수저 추락을 거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주력했다. 많은 80년대 후반생과는 조금 다를 수 있는 경험들이 있다. 유소년기와 청소년기 초반을 동족(동성)마을에서 보냈고, 꽤 신실한 마음으로 종교생활을 했다. 풍족했던 부모님의 재산은 질병으로 모두 날아갔고, 사회와 국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덕분에 사회적인 감정, 혹은 믿음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와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만은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일까. 비교적 도시의 문물을 늦게 접했다는 걸로 요약할 수 있겠다.

대학생, 청년기는 그런 청소년기와의 단절이었다. 기존의 사회적 안정감에서, 신심에서도 벗어나 스스로 서야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살려고 했으나 단호한 노력보다는 지난한 고민의 순간들이었다. 실천보다는 생각과 고민만 앞섰던 시간들. 돌이켜 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현실. 막상 실천하고자 해도 보이지 않는 막연히 높은 벽 앞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이런 막막함을 표현할 언어가 없었다. 운 좋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그때의 막막함을 표현할 언어들이 나타났다. 헬조선, 흙수저, 노답, 꼰대... <노오력의 배신>은 이런 막막했던 언어들에 의미를 해석해 준다.

돌이켜 보면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포기였다. (p.14)” 하고 싶은 일, , 사소한 일상까지도, 삶은 선택을 강요한다. 선택의 기회는 다른 말로 포기와 이어져 있고, 이는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신경림 선생은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이라고 한탄했다. 그럼에도 과거 세대와 현 세대의 차이는 미래, 즉 전망의 부재라는 가난, “삶의 예측 가능성은 불투명해졌(p.11)”음을 말한다. 어른 세대가 말하는 헝그리정신은 더 이상 미래를 담보해주지 않는다. 그런 정신으로 살다가는 평생 열정 페이로 헝그리하거나 중간에 아파서 더 헝그리 해 질뿐이다. 그러니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노답 사회에서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나아질 것인가? “3포니 5포니 N포니 하는 말은 결국 “‘사회이고 공공영역’(p.19)”에 대한 믿음 상실이다.

이는 각자도생의 경쟁사회를 가속화 한다. 끝없이 서로 불안해 하며 서로를 짓밟고 위로 올라서려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인국공과 같은 사태는 벌어진다. “누구는 자기 실력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을 다른 누군가는 약자라는 이름으로 쉽게 얻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것이다. ‘약자인 그들은 살벌한 경쟁에서 면제된 것으로 보이고 그것이야말로 불공정하게 여겨져 참을 수 없(p.19)”. 적대와 혐오, 상대를 벌레로 비하하고, 나도 벌레화 한다. “같이 망하는 게 목표이다. 어차피 애초에 나는 금수저가 아니었으니, 모두가 불행해져 차라리 평등한 세상을 꿈(p.181)”꿀 수밖에. 아니면 탈조선을 해야 한다는 건데, 그것 역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청년기 내 고민들이 의미를 찾아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결과가 배신할 뿐. 노력이나 노오력이나 무엇이든 남긴다. 다만 내가 원하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아닐 뿐이다. 책의 마무리를 쓰신 조한혜정 선생님께서 책으로도 내신 이야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선망국(先亡國)은 선망국(羨望國)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청년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겪는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다. 오히려 압축적이고 빠른 성장을 겪은 만큼 문제 있어서 가장 먼저 빠르게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이 다른 사회가 겪을지도 모르는 일을 앞질러 경험하고 있으며, 그 현실은 연구자들의 언어와 담론을 앞지르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의 사례를 특수화하는 것이 아니라 선도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며 언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문제의식 (p.35)”이 우리 사회에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나와 우리의 삶에도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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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청년들이 경험하고 있는 가난은 총체적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미래, 즉 전망의 부재라는 가난을 겪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에 이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은 양극화만이 아니다. 양극화보다 더 중요한 경험은 바로 삶이 불안정성이다. 일자리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다음 단계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삶의 예측 가능성은 불투명해졌다. p.11

생존에 대한 공포는 삶을 압도했다. 냉소도 사라졌다. 냉소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인식할 때 가능한 삶의 태도다. 그런 세상에 대한 인식이 가능할 만큼의 여유도 사라진 것이다. p.14

대신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선택해야 하는 것은 포기였다. p.14

사회에 대한 감각, 사회를 통해 자신의 삶이 보호될 수 있다는 감각이 실종되고 있다. 3포니 5포니 N포니 하는 말에서 결과적으로 포기되는 것은 사회이고 공공영역이다. 내 삶이 사회를 통해 보호되지 않는다면, 삶은 정글이 되고 탈락은 어쩔 수 없는 것이 된다. 각자 사적으로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여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 공공적 해결이란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저 수많은 포기의 핵심에는 사회사회적인 해법에 대한 포기가 있는 것이다. / 사회적 노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지면 각자도생하게 되고, 각자도생하는 이들은 사회를 통한 해결을 오히려 불공정한 것으로 취급한다. 사회적 해결을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라(p.18)여기며, 기본적으로 이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 ... 누구는 자기 실력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을 다른 누군가는 약자라는 이름으로 쉽게 얻는 상황을 불편해하는 것이다. ‘약자인 그들은 살벌한 경쟁에서 면제된 것으로 보이고 그것이야말로 불공정하게 여겨져 참을 수 없게 된다. p.19

망한민국’, ‘헬조선의 가장 결정적인 키워드이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없는 상태인데 그것을 계속 개인의 자질과 태도, 나아가서 윤리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채찍질이 노오력인 것이다. p.20

청년들이 분노하지 않는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분출되고 있는 그들의 분노가 어떤 방식으로 터져나가고 있으며,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해석학적 순환 방법, 곧 판단을 일시 중지하고 타인의 세상에 들어가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p.25

박권일은 분노가 혐오가 된 이유에 대해 불평등과 부정의 시정을 체념했기 때문이라면서 혐오해서 체념하게 된 것이 아니라 체념을 합리화하기 위해 혐오가 동원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앞에서 말했지만 한국에서 불평등의 문제는 불공정의 문제로 둔갑했다. 계층과 젠더 그리고 지역 등의 구조적인 권력 차이는 개인들의 자질과 능력, 그리고 노오력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때문에 구조에 대한 분노는 손쉽게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혜택을 보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적대혐오로 나타난다. p.26

불평등이 불공정으로 둔갑한 사회에서 가장 공정한 것은 살벌함의 공정함이다. 누구도 살벌한 경쟁에서 면제되어서는 안 된다. 살벌하게 경쟁해서 살아남는 것만이 공정한 것이며 그런 사람들이 누리는 부와 명예는 정당화될 수 있다. 누군가가 이런 살벌함에서 면제된다면 그것은 부당한 것이며 부패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은 공정함을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것으로 정당화된다. p.27

금수저, 흑수저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넘어서서 이 사회 자체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 이는 기본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는 한국이 제대로 합리화, 근대화되지 않고, 여전히 미개하다는 데에 대한 혐오다. p.27

구제 가능성이 없으니 차라리 망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해버린다. ‘분노혐오가 되고 서로를 벌레라고 부르면서 비하하게 된 배경이다. p.29

피해자로서의 정체성은 구조와 제도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적노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치적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이제 사람들은 공동의 노력으로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민으로서 피해자가(p.29) 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이익을 침해받은 소비자로서 피해를 입었다고 여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통의 것을 향한 공동의 노력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p.30

우리 연구진은 2015년 한 해 동안 청년들의 현실을 연구하며 이 새로운 공공성과 시민성이 만들어질 수 있는 여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탐색했다. 이 연구의 시작은 청년들이 사회에 대해 점점 더 과격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에 주목했지만 현실은 연구를 앞질러갔다. p.30

우리 연구진은 한국의 청년문제는 선진국의 문제를 뒤따라가는 형태가 아니라 선진국을 앞질러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른 경제 성장을 달성했지만 시민성과 공공성을 방기한 사회답게 망가지는 속도 역시 초고속으로 압축적이어서 다른 사회에서 참조할 것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p.34) ... 이것은 한국의 상황을 특수화하여 한국만의 탈식민화된 국지적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과 다른 문제의식이다. 오히려 한국이 다른 사회가 겪을지도 모르는 일을 앞질러 경험하고 있으며, 그 현실은 연구자들의 언어와 담론을 앞지르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의 사례를 특수화하는 것이 아니라 선도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며 언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p.35

청년문제는 단지 일자리의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의 삶이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보호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라는 점이다. 또한 한 번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문제이며, 긴 시간에 걸쳐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청년문제를 청년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한국 사회의 기본 설계에 대한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공통된 생각이다. p.36

3포니 5포니 N포니 하느 수많은 포기 속에서 결정적으로 사회를 포기하게 된 청년들이 사회적 해법에 대해 신뢰를 가지게 된다면 그 값어치는 돈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신뢰를 회복할 때에만 청년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공통의 것으로 가꾸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p.39

헬조선이 처해 있는 현실이자 삶의 조건이라면, 노오력은 지옥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 할당된 몫이다. p.44

노력은 자기계발식의 자기와의 싸움을 넘어서서 누군가를 이기지 않으면 도태되는 배틀로열의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에서 개인들은 각자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끌어와 희박한 성공 가능성에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한다. 그러나 투자가 필수인 승자독식의 경쟁체제에서 한번 생겨난 격차는 어떤 노오력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p.61

노오력을 하면 살아남고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아니다. 노오력하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고 배제된다. 반면 노오력하면 삶은 발가벗겨 지고 법 밖으로 추방된다. 생존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배제와 추방이라는 두 죽음 사이의 선택일 뿐이다. <노오력, 노력의 배신자(칼럼)> 엄기호 p.64

생사여탈권을 자본이 쥐고 있는 한, 치열한 경쟁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해 하나의 상품으로서 개인이 완성된들 그 상품은 자본에 유리한 방식으로 언제든 순식간에 폐기처분될 수 있다. p.64

성과를 내면서 일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오력할수록 골병이 들거나, 자신을 탓하며 자해하거나, 노오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주체 없이 화가 날 때도 있다. 노오력에 대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신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역량의 한계를 넘어 계속해서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 결과 스스로 파괴되는 것을 느끼면서 과격해지는 것이다. p.69

노력은 더 이상 노력하는 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자신감, 자존감에 대한 자기 신뢰의 영역이 아니다. 노력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성과를 통해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것이 되었다. 뒤집어 말한다면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성과가 노력의 처도가 된 것이다. 따라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도덕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생존에 대한 의지가 없는 태도로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 되었다. 그 결과 혹시 자기가 일 못하는 사람인 것은 아닌가 하는 열등감과 열패감에 시달리며 늘 주눅 들어 있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점점 늘어나고 있다. p.70

노동 가치는 사회적 관계 내에서 결정된다. 개인의(p.70) 능력에 따라 시장이 값을 매겨주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합의하고 사회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독점자본에 그 모든 결정권을 빼앗긴 상황이다. 사회는 실종되었고, 개인은 파국을 맞이하고 있다. p.71

꿈을 위해 투자했지만, 상환이 불가능한 구조적 조건에서 청년빈곤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그 문제의 한 축에 부채가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p.86

삶을 재생산하는 일이 누구에게는 이라고 불릴 만큼 아주 거창한 것이 되어버렸고, 거기에 필요한 비용을 오롯이 개인이 부채로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p.87

오늘날 생존본능은 열정이라는 형태로 출현한다. 세상에 홀로 버려진 아이들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노오력을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p.92

지금 사회는 차라리 아노미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 비합리와 비논리가 유일한 운영원리인 부조리극과 같은 상태에 있다. 사실 보수 인사들의 막말이 노리는 것은 노년층의 정서적 결집뿐만 아니(p.107)라 청년들에게 이 사회는 부조리 그 자체니 관심 끄는 것이 정신건강에 유리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일 수도 있다. p.108

수십 년간의 산업화 과정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서로 공모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부장이 열심히 일한다면 모든 개별 가족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이 믿음은 민주화 과정에서 사회를 정의롭게 만든다면 모든 민중이 차별받지 않을 수 있다로 바뀌었다. 그런데 두 가지 기획이 모두 지속가능하(p.113)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지금, 청년들이 맞닥뜨린 것은 경제적 위기인 동시에 사회적 위기이다. 다시 말해 당신이 흙수저라면 경제적 하층민이 될 뿐 아니라 사회적 천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 앞에 놓인 것이다. ‘노력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산업화 시대의 명제는 엉뚱하게 뒤집어져 가난한 사람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다라는 비난의 날로 돌아와 경제적 패배자를 사회에서 아웃시켜버린다. 이는 경제적 양극화를 넘어 내부자-외부자 간의 분할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경제적 이중화의 문제이며 사회에서 배제당하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는 기근보다 더 무섭게 청년들의 마음을 조여 온다. p.114

사실 한국에서는 니트라는 용어가 너무나도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니트 개념 자체를 가지고 청년문제를 분석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구통계학적으로 특수한 어떤 집단이라기보다는, 청년 세대에게 드리워진 불안정 노도으이 결과로 빚어진 상태로 보는 것이 맞다. 기본적으로 이 시대 청년들은 누구나 조금씩 니트성혹은 잉여성과 같은,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내적, 외적 불안정성을 짊어지고 있다. 이 불안정성을 100퍼센트 지닌 니트0퍼센트인 행복한 취업자는 스펙트럼의 양극단일 뿐이며, 실제로는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람들이 대다수다. p.121

노답이라는 것은 내가 답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답이 없다는 것, 나아가서 세상이 내 비명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다음 단계가 안 보이거나, 다음 단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장이 봉쇄된 사회라는 것이다. p.126

청년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년노동의 위기는 일 경험의 부족이 아니라, 나쁜 일 경험 혹은 나쁜 사회관계 경험의 과잉으로 인한 피로감과 소진현상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청소년과 미취업 청년들 역시 이런 피로와 소진을 선험적으로(직접 경험하기도 전에)’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지원정책들은 청년들에게 또 다른 피로감이나 소외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원 프로그램들에 일정 정도 문턱이 있다고 느끼는 청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p.131

우리가 거대한 노답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는 이유는, 이 사회가 압축된 성장 과정 속에서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던 과제들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이행 과정을 제대로 되짚어 보면서 전환을 도모해볼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청년들이 각각 느끼는 니즈를 꼼꼼히 파악하고 맵핑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p.132

더 이상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사회에서, 단순히 시대를 잘못 타고 나서 천민이 될 위기에 놓인 청년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노동과 비노동(p.133)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들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인정해 주는 방식으로 노동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모멸감을 당할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와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작업도 필요하다. 끝도 없는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너는 인간이다. 살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그리고 그 근거가 될 가치와 방법의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p.134

우리의 문화에서, 다른 모든 갈등들을 관장하는 결정적인 정치 갈등은 인간의 동물성과 인간성 사이의 갈등이다. -조르조 아감벤 p.167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동물화를 넘어 더 하찮은 벌레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동물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동물 혹은 짐승은 최소한 고유의 신체와 생명으로서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벌레란 신체 없는 존재이자 비가시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며, 벌레화할수록 생명의 가치는 점점 낮아진다. p.172

혐오가 단지 감정의 억압적 표출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헬조선을 청년 세대가 대한민국을 혐오하는 것이라고(p.174) 단편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 사회의 실패가 누적된 결과이자 청년 세대들의 냉정한 진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청년 세대들이 자신과 상대를 벌레로 지칭하는 현상은 증오와 경멸, 좌절과 불안이 응축된 존재에 대한 인식으로 살펴봐야 한다. p.175

나도 벌레, 너도 벌레, 모두가 벌레인 세상이다. 서로가 서로를 냉소하는 세상을 만들어 벌레의 민주화, 벌레화하여 모두가 찌질하다는 점을 드러내 같이 망하는 게 목표이다. 어차피 애초에 나는 금수저가 아니었으니, 모두가 불행해져 차라리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p.181

익명성의 공간에서 혐오를 표현하는 것은 단지 비하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상대를 군집화시켜서 자신과 공통성을 제거한 채 서로 다른 종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이때 은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욕설이 아니라, 상상으로 만들어진 다른 집단과 나를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기 위한 적대를 구성하는 용어이다. 마치 빨갱이와 같이 사회화된 모욕으로 배제와 분리를 통해 적대를 구축하려는 사회적 언어 행위와 같다. p.183

남성 청년들이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은 자신이 남성이라는 것이기에, 점점 더 보수적인 사고를 하며 약자에 대한 혐오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p.185

서로에게 모욕과 혐오를 주고받는 방식은 더 이상 화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화해하고 싶지 않은 세상에서 모욕과 혐오를 교환하는 행위만으로 사회를 재구성하기는 어렵다. 서로 간의 도전과 응전이 반복되고 복수만이 목표인 전쟁 상태를 유지하고 지향한다. 최근 작고한 르네 지라르가 이야기한 것처럼 서로 닮은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모방적 경쟁은 상호 간 적대와 혐오를 통해 갈등과 폭력을 격화시키면서 비난과 책임을 하나의 대상에게 떠넘(p.186)기게 된다. 아마도 그 대상은 대답 없는 국가로 수렴될 것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들, 그리고 불신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복원해내기 더욱 어려운 상태로 지탱시킨다. p.187

혐오는 교육의 실패로 인한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재 교육체계의 성공의 성과이자 결과물인 것이다. p.188

민주주의체제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청년들에게 민주주의는 당연하기에, 더 이상 민주주의체계의 필요성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지금 청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할 일 혹은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주고,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며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다. p.193

청년들이 탈조선을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국가나 시장의 기획, 그리고 저항 담론의 기획이 모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즉 탈조선은 국익을 위해 희생하는 국민을 길러내는 데도 실패했고, 시장을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동자또는 소비 주체를 길러내는 데도 실패했으며, 심지어 억압적 구조에 저항할 수 있는 주체를 길러내는 것마저도 실패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 탈조선은 비난과 희망의 언어라기보다는 차라리 성찰이 언어에 가깝다. 한국 사회가 지금 모든 영역에서 얼마만큼 실패하고 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p.220

우리는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잘 알 정도로 똑똑합니다라는 선언을 헬조선이라는 아주 알기 쉬운 말로 표현해놓았으니 p.229

충격요법은 치유와 관련이 없다. 충격요법은 현재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에만 효과적이다. 고발이 과격해질수록 살마들의 관심은 문제 자체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고발은 과격해야 하는 것이(p.236) 아니라 근본적어야 한다. 지엽적인 현상을 실마리로 삼아 근본에 자리하고 있는 것의 실체를 발견해내는 작업이야말로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p.237

실천적 의미가 없는 탈조선은 정치적 침묵을 강요하는 극우 논리와 완전히 동일하다. ‘한국이 싫으니 나가자한국이 싫으면 나가라는 동전의 앞뒷면일 뿐이다. 한쪽은 불만이 있는 사람들에게 싫으면 나가라고 외치면서 침묵을 강요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불만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으니 나가자고 외치면서 스스로 침묵해버리고 만다. p.238

헬조선 너머에도 지속될 삶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풀리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해답에 가까워질 수 있는지는 안다. 이 답을 구하는 좋은 방법은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고, 좋지 않은 방법은 죽창을 집어 드는 것이다. 죽창을 집어 드는 것은 그냥 파괴 행동이다. 파괴 행동은 즐겁기는 하지만 파괴 후에는 어떤 질서가 바람직한 질서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파괴 행동에 집착하여 어떤 질서가 바람직한 질서인가를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면 죽창으로 찌르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찔러 결국 자멸하고 말 것이다. p.242

탈조선혹은 해외 이주에 대해 접근할 때, 상당히 많은 경우 개인의 자발적인 동기에만 초점을 맞추곤 한다. 다시 말해 한 개인이 무엇인가를 원했고, 그 결과 어디론가 떠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탈조선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는 것처럼, 단순히 개인의 동기와 선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해외 이주는 한국의 국가권력이 일종의 사회적 문제를 처리하는 인구 통치의 한 양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p.249

개인의 자발성 문제와는 별개로, 한국의 근현대 역사에서 한국 사회는 국가 내부의 특정 문제적인구를 자생적으로 사회적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외부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주권 밖으로 처리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3월 중동 순방 이후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라는 발언을 한 바 있는데, 이는 실업이라는 내부적 문제, ‘청년이라는 특정 인구 그룹을 문제적 집단으로 삼아 외부로 처리해버리는 연장선상에 있다. 따라서 탈 조선은 개인이 더 나은 삶 혹은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p.250) 선택이면서 동시에 문제적 인구 집단을 외부로 처리해버리는 한국 국가권력의 관습적인 인구 통치 방식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p.251

청년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으며, 불공평한 생존보다는 공평한 파멸을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국호를 망각한 백성들처럼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릅니다. -<망국선언문> 손아람 p.281

모든 새로운 사회는 꿈같은 제안에서 시작했다. p.299

모두에게 일정한 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은 노(p.307)력하지 말고 게으르게 살아도 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가치에 기반 한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려는 새로운 집합적 노력이다. 삶을 파괴하는 노오력을 멈추고,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p.308

재난과 재앙이 체계적으로 일어나는 위험사회에서는 시민들의 협치가 핵심적 생존 자원이다. p.318

국가 인정과 국가 인증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복지의 대상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의논을 해서 자체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 호혜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산뢰 관계를 넓히는 것, 함께 의논하고 협력해서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을 돌파해내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복합적인 위험사회를 살아갈 세대가 키워야 할 자질이다. p.329

흔히들 인류의 진화는 불의 사용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단순한 불의 사용이 아니라 불(p.331)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앉은 것 자체에서 인류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지금, 지금은 그냥 그렇게 둘러앉아 같이 숨 쉬고 쳐다보며 살아주기만 하면 된다.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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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가-하종문] 끝나지 않은 과거, 불안한 미래 | Memento 2020-07-1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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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가

하종문 저
메디치미디어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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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과거(일본), 불안한 미래(중국), 그리고 위험속의 현실(한국)에서 "과거"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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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일본 국방장관 고노 타로의 집무실 사진이다. 그의 왼쪽에 보이는 한반도 지도가 눈에 띈다. 굳이 이 각도로 사진을 찍어야 했을까. 일본 열도가 아닌 한반도 지도를 노출했다는 점을 우연으로 넘겨야 할까. 김누리 교수는 그의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동북아의 현실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이 지역은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봅니다. 일본의 과거, 한반도의 현재, 중국의 미래가 그것입니다.”

 

한반도는 분단의 현실, 중국은 중국몽으로 대변되는 패권주의로 다가서는 미래를 불안해 한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과거는 무엇일까. 김누리 교수는 일본이 가진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일본은 “‘과거에 묶여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일본의 현재 행보를 본다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세계2차 대전 패전 후 일본은 전쟁이 불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군대를 가질 수 없고, 선전포고도 할 수 없는, 주권이 제한 된 나라다. 하지만 한 때, 동아시아의 대부분을 지배했고, 미국과 전면전을 시도할 만큼 대단했던(?) 나라였다. 현재의 제약은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하나보다. 전쟁이 가능한 나라, 일반국가를 지향하는 아베정권의 행보는 주변 국가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추구는 일본 평화헌법을 교모하게 피해나가기 위한 일본의 전략이다. (미국의 승인이 있었겠지만...) 동맹국 등이 침략을 받는다면 선제적 안보를 위해 자위대를 해외로 파병 할 수 있다는 말인데, 과거가 청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변국들이 우려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아가 평화헌법 자체를 개정하고자 하고 있다. 여전히 한국을 이익선, 생명선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의문스럽다.

<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가>에서 일본은 러시아의 남하를 걱정하며 한반도를 이익선, 생명선으로 보았다. 자국의 안위를 넘어 야욕을 위해서 대한제국이나 류쿠 왕국은 시험대이자 지렛대에 불과했다. 나치 독일이 그랬듯, 강대국과 주변국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야금야금 위치를 확장해 가는 일본 제국주의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진다. 초기의 우리 입장에서는 특히 어의 없는 논리(한반도가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과거의 일본 기록들에 기반 한)를 가진 정한론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정한론의 정교화가 일본의 근대화와 군국주의화의 시작과 발전, 쇠락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한제국은 전통적인 세계관 안에서만 현실을 진단했지만, 일본은 이미 한중일을 넘어서 세계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일본을 이기기 힘들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정신을 이어받은 자들이 일본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 정권의 국방장관 집무실에는 버젓이 자국의 지도가 아닌 한반도의 지도가 있다. 게다가 욱일기와 나란히 한반도가 보이니 한반도(한국과 북한)의 입장에서는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발톱을 숨기지도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어째서 일본은 한반도를 집요하게 노리는 걸까. 궁금하다면 <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하는가>는 필수다. 일본의 논리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역사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일본의 시도는 분명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우리 역시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일본이 지금도 (과거 러시아와 같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반도의 의미를 유사하게 상정하고 있다면 웃어넘길 수 없는 일이다. 앞의 사진은 그것을 대변한다고 본다. 앞으로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 역시 우리와 지대한 관련이 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도 동아시아는 위험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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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의 이데올로그이자 제국주의 일본의 지주, 그것이 쇼인의 역사적 무게감이다. p.25

산업혁명 또는 자본주의 발전의 보완재로서 식민지 획득을 추구했던 서양 제국주의와 달리, 일본은 역사 속에서 끄집어낸 우월 의식이라는 계기와 동인을 출발부터 내재했다. 이는 아베 정권의 집요한 역사수정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p.40

존왕양이를 신봉했던 쇼인은 강제로 개국을 받아들여야 했던 현실의 부조리를 이웃 나라의 정복이라는 침략론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p.42

쇼인의 관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조선은 원래 일본에 복속한 나라이므로 천황의 신하인 쇼군과 대등한 외(p.43)교를 할 수 있으며, 막부·쇼군과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은 조선은 천황이 다스리는 일본보다 국격이 아래라는 논리다. 뒤이어 쇼인은 도일한 통신사가 쇼군 취임만 축하하고 천황 등극은 축하한 적 없다는 것을 언급하며 막부가 사죄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덧붙였다. ... 통신사를 매개로 전쟁 대신 평화 공존을 추구했던 에도 시대의 조일 관계가 조선 정벌의 도화선으로 비틀리는 상황, 이를 이끈 것이 바로 쇼인의 제자들이었다. p.44

쇼인의 제자가 추진했던 울릉도 개처 소동은 두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먼저 막번 체제 아래서 정한론 실행은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기도가 언급한 막대한 비용도 고려 사안이었겠으나, 막부는 울릉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조일 관계를 규율하는 교린의 틀을 재확인했다. 막부는 개국에 맞춰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조선 침략은 고려하지 않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정한론이 존왕양이와 사상적인 뿌리를 공유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한론 실행은 결국 왕정복고의 현실화 곧 천황의 귀환이 이뤄진 뒤에야 가능했다. 동시에 위의 경과는 쇼인의 제자들이 계승하고 발(p.57)전시킨 새로운 정한론의 출현을 짐작케 한다. 조선 땅인 울릉도를 서양(영국)이 차지하면 일본의 안위가 위협 받는다는 지정학적 안보관, 이것이야말로 메이지유신 후에 조일수호조규 체결로 실체화되는 정한론의 요체였다. p.58

기도의 정한론에는 쓰시마번 또는 오시마와의 교류라는 측면 말고도 독자적인 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신정부의 정략이고 다른 하나는 메이지유신의 대의명분에서 찾을 수 있다. 정략이란 무진전쟁이라는 내전의 수행 및 뒤처리와 정한론이 맞물린다는 부분을 가리키며, 왕정복고라는 정변은 원래부터 명분의 차원에서 정한론을 내재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 둘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p.75

기도의 논리는 쇼인의 논리와 흡사하다. 스승은 양이의 실현이 어려워지자 조선을 희생양으로 삼는 발전 전략으로 선회했고, 합리주의자로 정평이 난 제자는 내치와 결부해 권력 기반을 다지고자 조선 침략을 선택하고 실행에 힘을 쏟았다. 기도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정한론의) 뜻은 전적으로 내환을 압도하는 데 있었을 뿐이었다. p.82

명분의 차원에서 드러나는 정한론과 왕정복고의 연계성이다. 신정부는 조선과의 관계 정비를 국교 수립이라는 함의뿐만 아니라 왕정복고라는 대의명분과 연결해 거론했다. 메이지유신에 이(p.83)르는 과정에서 도쿠가와 막번 체제의 권위 실추와 천황의 부상은 동전의 양면이었으며, 신화적 역사관을 근거로 조선을 하대하는 주장은 다양한 형태로 분출했다 이에 따라 천황 친정을 회복한 새 일본에게 조선과 관계를 새롭게 바꾸는 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에도 시대를 승계하는 교린의 조선 통신사를 폐지하고 조선의 복속을 가시화함으로써 황국 일본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정한론은 메이지유신의 정치적 변혁에 힘입어 비로소 사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정책의 차원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p.84

사할린을 매개로 부침하던 일본, 러시아 영(p.100)토 분쟁은 일본의 지정학적 안보 인식과 결부되면서 정한론을 비롯해 조선과의 외교 쟁점을 논하는 소재로 곧잘 변용되곤 했다. 가령 1873년 신정부를 양분시킨 정한론 정변은 조선을 칠 것인가 러시아와 국경 교섭을 마무리해야 하는가를 두고 벌이는 각축전이기도 했다. 18755월 일본과 러시아는 각각 쿠릴열도와 사할린을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8월에 도쿄에서 협정을 비준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다음 달에 강화도사건이 터졌다. 안보관과 국경 문제를 소재로 조선, 일본, 러시아 관계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에 체결에 이르기까지 국서 사건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조일 외교의 타개책과 긴밀히 연동돼 있었다. p.101

한 연구자는 19세기 후반 일본의 관점에서 조선, 류쿠, 타이완 문제는 하나의 문제가 다른 문제로 곧바로 파급되는 연관 구조를 지녔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는데, 그 점에서 타이완 출병은 류쿠 병합의 최대 분기점이 됐다. 청이 출병을 의거로 인정한 것은 류큐인이 일본인이(p.143)라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 1877년 초대 일본 공사로 부임한 하여장은 류큐가 망하면 조선에 화가 미치며 타이완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의견을 이홍장과 총리아문에 전달했다. 현실은 그의 예언대로 이뤄졌다. p.144

쇼인이 통탄해 마지않던 페리의 내항은 23년의 세월이 지난 뒤 구로다 사절단에 의해 일대 역전극으로 탈바꿈했다. p.171

시모노세키조약 제1조는 강화도조약 제1조의 연장선 위에 입안됐으며, 완성이었다. (p.199) ... 독립국, 그것은 조선의 운명과 연관해 사용할 때만 특수한 의미를 띤다. 청의 간섭 없이 일본이 자유롭게 침탈할 수 있는 국가, 그것이 독립국의 진의였다. p.201

동학농민전쟁은 내전인 동시에 일본과 청이 개입한 실질적인 국제전의 측면까지 겸비했다. 30-40만 또는 3-5만의 죽음은 자발적인 변혁을 압살하려는 일본(청과 조선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의 학살극이었으며, 시모노세키에서 맺은 강화조약은 그들의 주검 위에서 체결되었다. p.206

일본의 근대국가 만들기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청일전쟁은 메이지유신, 아니 그 앞의 쇼인과 쇼카손주쿠에서 발원한 정한론을 완성하는 전쟁이었고, 승리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대일본제국이라는 간판을 내걸 수 있게 됐다. p.206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자는 체계적인 안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일본이 처음 제기했다. 이후 청일 양국의 침탈이 가시화하는 현실 아래, 조선에서 박영효와 김옥균 등이 중립국을 향한 전망을 그려냈다. 20세기에 들어와 대한제국은 러일전쟁 때 공식적으로 국외 중립을 선언했으나 일본이 묵살해 성사되지 못했다. 이렇듯 중립국 논의의 대두와 무산 모두에 일본이 깊숙이 관여했다. p.268

100년 전의 쇄국과 개국의 갈림길에서 조청일 관계의 중요성을 확인했듯이, 1950년대 후반의 한일 관계는 분단과 냉전이 가미된 한중일 관계의 지평 위에서 펼쳐졌다. 그 점을 되짚는 것이 이 책의 과제다. p.426

식민 지배 청산이 대동아공영권의 주창자인 A급 전범 용의자를 매개로(p.429) 모색되는 상황, 이것이야말로 역사 문제로 양국 관계가 꼬이는 원점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미국이야말로 과거 청산의 불철저와 한일협정 체결을 압박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p.430

식민 지배 청산이 분단 고착화로 연결되는 맥락, 이것이 기시가 초석을 놓은 전후 한일 관계의 또 다른 화근이었다. p.436

불행히도 한강의 기적은 군국주의자와 군사독재 정권의 검은 야합을 도약대로 삼아 이뤄지게 되었다. p.438

한국은(정확히는 한국의 보수는) “일본 우파의 체질을 알면서도 반공의 동지 또는 경제 원조의 산파역으로서 이것을 이용해 왔던 것이다. ‘한일 보수 유착이라 불러 마땅하다. 이런 양국 보수파의 밀월 관계는 한국의 민주화 및 역사 문제의 쟁점화를 계기로 서서히 파열음을 일으키게 된다. 1990년대의 한일 관계는 식민 지배의 역사 청산을 둘러싸고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그런 상황 아래서 일본 보수의 재결집이라는 중책을 떠맡게 된 것이 아베였다. p.445

아베는 보수 정치가 중 누구보다 강경한 역사수정주의자다. p.458

아베의 특징 중 하나는 좌익리버럴에 대한 적대감이 남달리 강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p.459

신자유주의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냉전 해체에 따라 경제의 세계화가 획기적으로 진전됐다. 급작스럽게 확장된 세계 시장의 유일한 경찰관으로 군림하게 된 미국은 일본에 동북아의 군사적 파트너로서의 역량 강화를 주문, 압박했다. 1990년대 이후 우리에게 익숙해진 우경화와 군사 대국화는 이런 미국의 전략 설정과 연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위대의 위상 강화와 활동 범위 확대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해서 추진됐고, 9.11 사건으로 촉발된 대테러 전쟁은 일본 내에서 평화헌법 제9조의 개정을 향해 강력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p.460

한국으로서는 일본은 물론 중국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해 치열한 문제의식과 참신한 발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p.471

개헌이 성사돼 군사력 증진의 길이 열릴 때까지 한국의 최전방 기지 역할이 유지돼야 한다는 발상이다. p.480

150년 전 근대화 문턱에 섰을 때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인다. 남북 분단이나 중국의 대두, 미국의 존재감 등이 새로운 변수지만, 한중일 관계의 틀과 동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근대의 좌절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해묵고도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바로 한반도 중립화다. p.483

중립은 고립이 아니고 소통이다. 평화와 공존을 발(p.483)신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일본의 보수는 왜 한국 중립화 논의를 친중(또는 친북) 정책으로 치부하는가? 중립화에는 현금의 동북아시아 지정학을 염두에 두면서 19세기에서 발원하는 한중일 관계의 프로토콜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지배층은 한반도에 대한 장악력이 줄어드는 어떤 사태도 원하지 않으며 훼방하려 한다. 남북의 화해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근대 이후 최강의 국력을 보유한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주체적으로 중립의 의미를 상상하고 현재화해 실현하려는 구체적 행보를 시작해야 한다.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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