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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우쓰미 아이코] 전범이라는 사실, 조선인이라는 진실 | Memento 2021-01-19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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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

우쓰미 아이코 저/이호경 역
동아시아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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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친일부역자라는 사실 앞에 숙연해 진다. 식민지인으로서 고통받았을 그들의 삶에 대한 정당한 평가로 진실에 이르기를. 그길이 우리가 운명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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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에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 대한제국 말기부터, 식민지의 고통에 이르기까지. 독립을 위한 투쟁에도, 신탁통치 결정부터 6.25 전쟁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려 왔다. 근대화의 지연과 국권 상실의 과정은 역사 무대에서 우리의 주도권을 상실하는 과정이었다. 해방을 맞이한 지금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잃어버린 주도권은 여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미래를 얘기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식민지 사회의 유산 속에 살고 있다.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과거로 인해 여전히 지난날의 위기를 안고 살아간다. 국가와 민족은 그렇게 휩쓸려 오늘까지 왔다.

개인이라고 다를 바 없다. <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은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국과 식민지 모국,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개인을 그리고 있다. 조선인으로서 그들의 삶이 어떠했든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전범으로 단죄되었다. 삶의 궤적이 어떠했는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식민지 모국에서 태어나 그나마 나은 조건이라 믿었던 선택이 그들을 전범으로 만들었다. 식민지 모국은 그들을 전범으로 만들었고, 조국은 친일 부역자로 기억한다. 그렇게 전범이라는 사실은 남고, ‘이라는 진실을 잊혀졌다. 과연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는 사실만이 전부인가.

책은 조선인 BC급 전범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 식민지인으로서 식민지 모국의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본제국군의 전진훈을 기초로 한 포로 경시 문화나 우월성에 대한 집착은 식민지 조선, 대만 사람들에게 스며 들었다. 식민지 국민으로서 최하층 대우를 받던 그들에게 전쟁포로라는 더 아래의 존재가 생겨난다면 과연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결국 전범으로 취급되어야 할 일본인들은 풀려났다. 포로 학대를 사실상 결정한 지휘부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지원도 받지 못한 위험한 상태에서 강요받은 현장 근무자들은 전범으로 재판 받았다.

여기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고향을 떠난 이역만리. 모든 곳이 연합군에 의해 점령된 곳에서 조선인, 대만인이라는 이방인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었을 테다. 게다가 본인들이 일본인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본인들 역시 억울하게 끌려온 피해자들일 뿐이다. 하지만 연합군에게 일본인과 일본식민지인은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일본인으로 적이자, 잔혹한 학대의 실행자이며, 단죄해야 할 죄인이었다. 조선인 BC급 전범은 필요할 때는 제국의 위대한 신민, 버려질 때는 사라진 나라, 조선인으로 취급받아야 했다.

모든 조선인이 선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모든 일본인이 악하지 않음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인이 선하지 않다고, 일본인 역시 피해자라고 해서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고 판단할 권리는 없다. 다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렸던 삶의 궤적은 온전히 판단 받을 기회는 있어야 한다. 졸속으로, 죽음의 순간까지 차별받았던, 식민지인들의 억울함은 공정한 평가위에 세워질 수 있다. 위해를 가했다면 처벌을 받고, 용서를 구하고, 받은 피해가 있다면 보상과 위로를 받아야 한다. 특히나 자신들의 운명과 관련 있는 중대한 문제는 항상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결정되었다(p.225)”면 더더욱 그렇다.

선택할 수 없는 것으로 차별하고 처벌할 수는 없다.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강제 징용의 위협 속에서 더 나아 보이는 선택지를 강요받았다. 주어진 선택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어진 일을 했다면, 그 행위를 악으로만 규정하고 단죄만으로 끝을 낼 수 있을까. 전범과 친일부역자로 명명하면 끝일까. 분명히 그것을 사실일 수 있지만, 진실이라 할 수는 없다. 영웅은 시대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네 사람들은 영웅이 아니다. 시대의 한계, 시대의 악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그 앞에 좌절하고 만다. 그렇다고 시대의 악을, 개인의 악으로만 치환해서 처벌하는 게 합당할까.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전부 운명이라 생각하고.(김귀호씨 유언)” 떠날 수밖에 없는 걸까. 운명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걸까. 여전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리는 현실 앞에서 과거의 미해결 과제를 돌이켜 본다. 운명의 처분 앞에 운명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은 함께 할 때 만들어질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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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의 죽음은 단지 포로수용소만이 책임질 문제는 아니었지만, 책임 문제는 현장에 집중되었다. 그 말단에 있던 조선인(지역에 따라서는 대만인) 군속에게 전쟁 책임이 집중되었다. p.12

BC급 전범자 중 유기형의 27%, 사형자의 11%가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을 포함한 포로수용소 관계자라고 한다. 일본 국내뿐 아니라 대동아공영권전역에 설치되었던 포로수용소의 전체상과 그 실정을 밝히지 않고서는, 그 끔찍한 전쟁의 실태도 밝힐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전범재판이 무엇을 심판했는지 그 재판의 정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p.17

천황의 전쟁 책임이 불문에 붙여진 것과 옛 식민지 출신의 사람들에게 전쟁 책임이 과해졌다는 것은 전쟁범죄재판의 정당성에 큰 의문을 남긴다. 그 재판에서 심판되었던 전쟁범죄란 무엇이었던가? 전후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어느 수준까지 전쟁 지도자들을 심판했고, 전쟁에 가담한 스스로를 질책했을까? 전후 조선인 전범 출신자들의 고독한 투쟁은 전쟁 책임에 무관심했던 일본인을 향한 고발이기도 했다. p.19

일본 군대에서 억압은 보다 낮은 사람, 약자를 향해 아래로 전가되어 간다. 조선인 군속은 그 억압 기구의 말단에 서 있었다. 그 밑에 황군이 목숨을 걸고 포획한 포로가 있었다. p.44

수많은 포로들의 죽음에 대해 패망 후 현장에 있었던 일본인 장교와 하사관, 조선인 군속들이 그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몇 월 며칠까지 완성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작업 현장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명령이 우선이었다. 쓰지도 못할 비행장과 철도를 만들어서 많은 포로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대본영의 작전상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장수업 씨가 포로 몇 사람을 때렸을 수도 있다. 허나 작전상 오류로 많은 사람들을 무의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본영의 책임에 비하면 장 씨의 잘못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장 씨는 창기 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같은 재판을 받았던 유동조 씨와 정은석 씨도 목숨은 건졌지만, 전범으로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 명령을 내린 사람들의 전쟁 책임을 과연 철저히 평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p.83

전범재판에서는 얼굴이 팔린 사람,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큰 손해를 입었다. p.136

포로수용소는 당초부터 전진훈과 제네바 조야사이에서 태어난, 일본 군대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조직이었다. / 서러운존재였던 포로수용소가 실전 부대에게 걸핏하면 무시를 받았던 것도, ‘불필요한 것, 방해가 되는 것은 처분하라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일본 군대 문화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일본군에게 포로는 본래 처분해야 하는 존재였다. p.171

시대는 완전히 폐쇄된 상황이었다.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수 없었던 청년들이 다른 길보다 좀 낫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것이 감시원이었다. 이를 지원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시대가 너무나 험악했다. 물리적으로 강제되어 끌려간 셈은 아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강제적으로 끌려간 것이다. ... 포로수용소의 감시원 모집은 지원이라는 이름표를 단 강제 징용이었다. p.200

조선인들은 설마 전범 문제에 관해서만 일본인과 동등하게 취급받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운명과 관련 있는 중대한 문제는 항상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결정되었다. 모르는 곳에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비단 이때 뿐 만이 아니었다. p.225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놓인 시점까지도 차별받는 자의 서러움이 뼈에 사무쳤다. 부려먹을 때는 천황 폐하의 아들이라며 치켜세우고 쓸모없자 전서구 이하의 존재로 멸시한다. p.259

우리들은 말이지, 식민지에서 태어나 식민지에서 자라나 식민지 교육을 받고 노예 같은 취급을 당하면서 살아 왔어. 그러니까 네덜란드 사람이 인도네시아 사람을, 영국 사람이 인도 사람과 싱가포르 사람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 영국 사람은 신사적이라든가 기품 있다고 말하는 놈이 있는데, 실제로 영국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면 신사가 아냐. 아시아인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 있는 거야. 사람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일을 하지 않으니까 수프를 먹을 때 이렇게 먹어야 한다, 저렇게 먹어야 한다 따지는 거지. 매일 생활에 쫓겨 바쁘게 일하는 인간은 수프를 어떻게 먹든 상관없어! 인간이 다른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게 신사인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고생(p.263)하고 똑같이 즐기면서 사회를 만들어 가야 인간인 건지. 나는 그 점을 지적하고 싶소! - 유동조 p.264

개인적으로 때렸느냐 때리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식량 사정이 나쁘고, 의약품은 부조하며,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억류소에 근무했다는 사실, 거기에다 일본군의 관습이 되어 버린 구타를 가한 점이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p.273

포로 학대에 연합국 측이 해 온 항의에 대해 학대 행위를 하는 것은 조선인이며, 일본인이 아니라고 회답한 일본군. 조선인 감시원에게 처음부터 포로 학대의 책임 추궁에 대한 방패막이로서의 역할을 떠맡길 요량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p.285

항명권이 없는 일본 군대에서 명령의 실행자로서 전범이 되어 버린 사람들이 A급의 조기 석방에 격한 분노를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레드 퍼지(Red Purge, 공산주의자 축출 운동)가 시작되고 경찰예비대가 발족하자, 전쟁 지도자와 협력자들에게 공직 추방 해제를 차례로 발표하였다. p.302

(평화) 조약 발효와 동시에 제11조를 실시하기 위한 법률 <평화조약 11조에 의한 형 집행 및 사면 등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였다. 일반적으로 법률 제103호로 불린다. 부칙을 포함하여 전문 40조로 이루어진 이 법률 맨 밑에는 천황 이름과 함께 도장이 찍혀 있다. 천황의 이름으로 일본 정부가 전범의 형 집행(p.317)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천황의 전쟁 책임이 불문에 붙여졌을 뿐만 아니라 천황의 이름으로 침략 전쟁에 끌려간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이 이번에는 천황의 이름으로 침략 전쟁의 책임을 떠안았다.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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