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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개정판)-유시민] 과거에서 희망을 얻는 법 | Memento 2021-10-1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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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유시민 저
돌베개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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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보다 최초로 못사는 세대, 과거에서 희망을 얻어본다. 늘 올바른 길을 갈 수 없지만, 당장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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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살아간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고통 받는다. 더 나은 삶을 고민하지만, 손에 쥔 것은 개뿔도 없다.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에 떤다. 세상 그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다. 그러나 그 고통 덕분에 내가 현실에 존재한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선조들의 피와 땀, 고통과 고뇌가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셈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의 뿌리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 뿌리를 밑천 삼아 앞으로의 삶을 버텨나가는 것.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미래의 희망과 자산이 될 수 있다. 비록 놓쳐버린 기회가 있을지라도,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의 한국 근현대사(개정판)>은 우리 근현대사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희망을 갖게 한다. 사람의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 극한까지 치닫곤 했다. p.11” 주어진 독립 이후 혼란 속에서 나라를 세웠다. 미성숙한 민주주의 체제하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고, 군부 독재를 겪었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힘들었고, 군부독재를 용인했다. 그렇다고 선배들이 포기했는가? 아니다. 주어지지 않은 미래를 믿고 싸워서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미래는 내일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이미 들어 있다. p.658” 선배들이 믿고 싸웠기에 세계 유래 없는 국가, 식민지 경험과 내전의 상처를 딛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다. 덕분에 지금 우리 삶은 팍팍하다. 부모세대보다 최초로 못사는 세대가 되었고, 포기를 일찍이 체감해야 했다. 과거에 흔했던 기회는 점점 사라졌고, 불확실성만 가득하다. 책임과 의무는 다해야 하지만 주어진 기회를 쟁취하기는커녕 꿈꾸기도 쉽지 않다. 우리세대에게 남은 것은 처참한 현실과 향할 곳 없는 원망뿐일지 모르겠다.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할아버지 세대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아버지 세대는 배고픔을 이겨내고 내 가족의 안정적인 삶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우리가 살아남았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모두 선배들의 잘못이기만 할까. 우리들이 부족하고 약하기 때문일까.

 

확실한 것은 우리는 희망을 잃었다. 남은 것은 과거에 대한 원망, 현실에 대한 절망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잊고 있다. 언제나,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은 같은 고민을 하고 살았다는 것을. 고통은 비교 불가능한 주관적인 영역이지만, 모든 세대는 그 고통 속에서도 한걸음씩 나아왔다. 그 걸음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할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드는 역사도 거기에는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그런 상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p.20)” 나 역시 그렇다. 시골 깡촌의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 학생이 이렇듯 최소한의 사람구실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의 선배들이 만든 제도가 나를 그래도 밥 벌어먹고 살게는 해줬다. 다소 성에 차지는 않을지라도...

 

주어진 시대의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 안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소.(p.660)’라고 담담히 말하는 저자의 말에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그와 동년배는 아니지만, 그들이 만들어준 후대를 사는 입장에서 선배들이 겪었던 고통과 고뇌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수 십년이 지나 그들이 자신들에게 고생했다.’ ‘수고했다.’라고 말하며 위로를 얻듯이, 우리 역시 그럴 수 있으리라 작은 그림을 그려본다. 완벽하지 않겠지만, 조금씩 걸어가 본다. 부끄럽고 두렵지만 올바르다 믿는 선택을 해본다. 양극화, N, 불확실성, 주어진 현실들은 분명 만만치 않을 것이고, 어느 하나도 해결하지 못할 거다. 그럼에도 감히 희망을 가져본다. 내 선택들을 믿어 본다. 미래를 이미 우리 안에 와 있기에. 선배들이 그러했듯 우리들도 살아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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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선 극한까지 치닫곤 했다. 호모사피엔스가 생물학적 진화를 이루지 못하는 한, 미래의 역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환멸과 절망감이 세상을 뒤덮을 때도 반전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역사는 나를 격려해줬다. 역사는 또한 환희와 낙관이 넘쳐나는 시대가 비극과 몰락의 시간을 예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 두려움을 안고 격려를 받으며 나는 오늘의 역사를 산다. 그 과정에서 모인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독자들께 말하고 싶다. ‘역사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p.11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이다. 역사는 과거를 실제 그러했던 그대로보여주지 않는다. 방송뉴스와 신문보도가 현재를 실재 그대로전해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p.13

사실의 선택과 선택한 사실의 해석, 역사 서술의 핵심인 이 두 가지가 모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를 둘러싼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역사 중에서도 현대사는 특별히 민감하다.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은 현재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주역들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죽고 없더라도 그들의 행위로 인해 억울하게 고통(p.14)을 겪었거나 정당한 또는 부당한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살아 있다. 우리는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과 그들이 한 행위에 대해 강한 호불호의 감정을 느낀다. 그들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왕처럼 느긋하게 대하지 못한다. p.15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할 권리는 만인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이 권리를 소신껏 행사했다. p.18

훌륭함은 아무 오류가 없는 완전무결함이나 지고지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 아니다.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드는 역사도 거기에는 도달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그런 상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어떤 사회가 추하고 불합리하며 저열한 상태에서, 완전하지는 않지(p.20)만 더 아름답고 합리적이며 고결한 상태로 변화했다면, 그 과정을 기록한 역사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현대사 55년이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역사라 생각한다. p.21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훌륭한 사람의 당선을 보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악한 인물이 권력을 쥐어도 악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게(p.34)한다는 강점 덕분에 문명의 대세가 됐다. 이른바 국정농단이후 한국에서 펼쳐진 상황은 그런 역설을 증명해 보였다. p.35

경제발전 공로를 인정한다고 해서 독재와 인권유린까지 옹호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p.37

고령 유권자들은 투표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 했다. 그들은 일제강점과 해방공간의 혼란, 참혹한 전재오가 절대빈곤의 고통을 견뎌냈다. 길었던 군사독재의 어둠을 뚫고 오늘에 이르는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룸으로써 대한민국 사회를 바꿔놓았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일에 모든 것을 쏟고 빈손으로 노후를 맞았다. 박근혜 후보와 보수정당에 표를 준 것이 그 삶과 시대를 인정받으려는 소망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은 아니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달리 그 소망을 드러낼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고령 유권자들의 투표행위에 대한 이성적설명이 될 수는 있으리라 믿는다. / 박근혜가 단지 박정희의 딸이어서, 문재인이 오로지 노무현의 친구여서 대통령이 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p.39) ‘박정희의 딸노무현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2012년과 2017년의 대통령선거는 박정희 시대와 김대중, 노무현 시대가 맞부딪친 역사의 전장이었다. p.40

지난 두 차례의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당 사이의 권력다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의 투쟁이었고, 서로 다른 문화 간의 갈등이었으며, 서로 다른 역사인식의 충돌이었다. p.46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는 내일 오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이 이미 들어와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감정이다. p.46

역사는 주관적인 기록이다. 누가 쓴 어떤 역사도 과거를 원래 그러했던 그대로보여주지 않는다. ‘현재는 가상의 개념일 뿐이다. 현재의 모든 사실은 즉각 과거로 들어간다. 흐르는 시간에 실려온 모든 사실은 과거라는 거대한 수용소에서 망각과 소멸의 운명을 기다린다. 어떤 역사가의 손길이 닿은 사실만이 그 운명의 집행을 잠시 유예받은 역사적 사실이 된다. 사실에게는 선택할 권리가 없다. 선택은 역사가의 몫이다. 그래서 한 시대에 대(p.47)100명의 역사가는 100가지의 서로 다른 역사를 쓸 수 있으며, 한 시대에 대해 한 사람이 상이한 역사를 쓸 수도 있다. / 역사적 사실은 진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며 역사가가 허락할 때만 말을 한다. 역사가는 제멋대로 사실을 만들거나 바꿀 수 없지만 사실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사실과 역사가는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자신만의 사실을 갖지 않은 역사가는 뿌리 없는 풀과 같고 자신의 역사가가 없는 사실을 죽은 것이다. p.48

대립하는 역사인시그이 배후에는 대립하는 이해관계뿐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인생관이 놓여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존경하며, 어떤 사람은 싫어하고 경멸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되도록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p.49) ... “당신, 가치관에 문제가 있어. 인생을 잘못 사는 거야!” 이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 같은 말도 역사를 가지고 하면 부담이 덜하다. “역사를 잘못 아시는군요!” 하지만 이런 말도 단순히 가거 사실에 대한 인식과 견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철학과 인격에 대한 비난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뉴라이트의 한국사 교과서나 <반일 종족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친일파’, ‘극우’, ‘좌파’, ‘종북이라며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감정, 정치적 공방으로 번진 것이다. p.50

우리 역사에서 모든 청년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주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p.62

대한민국이 모두에게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다. 고르게 가난했던 독재국가 대한민국은 풍요롭지만 고르지 않은 민주국가로 변신했다. p.74

나는 한국현대사를 만든 힘이 대중의 욕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욕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인지 사람들은 욕구라는 말을 선호하지만 어(p.80)느 것을 쓰든 상관없다. ‘대한민국의 기적과 같은 변화를 이뤄낸 동력은 대중이 개별, 집단적으로 분출한 욕망이었다. 사람은 충족되지 않은 욕마을 안고 산다. 욕망은 행동을 일으키고 행동은 사회를 바꾼다. 만약 모든 욕망을 다채워서 어떤 결핍도 느끼지 않는다면 더는 행동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새로운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끼 때문에 그런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 p.81

모든 민주주의는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국가의 정부는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나는 젊었을 때 프랑스 정치가 알렉시 드 토크빌에게 저작권이 있다는 이 말의 역도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표현의(p.102) 자유를 탄압하고 언론을 통제해 여론을 조작하며 정부를 찬양하는 교과서로 아이들을 세뇌하고 공포를 조장해 대중을 길들이는 독제체제에서는 정부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훨씬 더 훌륭한 정부를 가질 자격이 있으니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루면 우리도 미국이나 서유럽처럼 수준 높은 정부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p.103

역사에서는 가정이 없다지만, 가정은 때로 역사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p.111). 만약 우리가 신탁통치를 받아들여 좌우가 동거하는 통일 정부를 만들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공산화됐을까? 그랬으리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p.112

국가의 정통성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라는 구호는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으며 남북 모두 유엔 회원국이 된 후에는 그런 의미마저 사라졌다. 국가의 정통성은 특정한 이념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빛나는 이념을 내세운다고 해도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국가의 정통성은 국민이, 민중이, 인민이 또는 대중이 그 나라의 국민임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국가의 결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복종할 때, 외부의 침략과 내부의 무질서에 대항해 공동체를 지키려고 헌신할 때 형성된다. p.114

외국의 식민지였다가 자주권을 되찾은 신생국가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정통성을 세울 수 있다. 첫째는 역사의 대의명분이다 신생 대한민국의 긴급과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해 민족의 자주성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러려면 조국의 광복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한 사람들이 국가를 세우고 운영해야 했다. 둘째는 경제적 효율성이다. 민중을 빈곤에서 해방하고 물질적 삶을 개선해야 국민이 최소한의 기대를 품고 국가에 복종, 협력하게 된다. 셋째는 민주적 정당성이다. 헌법에 따라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주권재민 또는 인민주권의 원리를 실현해야 한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권력의 단맛을 누리는 데만 몰두했지 그 일을 하지 않았다. p.115

20136월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p.121) “남쪽이 자주성이 결여되어서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다고 거듭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 ‘자주이념이 지금까지도 북한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채 미국에 종속되어 산다는 열등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독재가 공존했던 1980년대 한국사회 한복판에서 탄생한 주사파는 뿌리 깊은 민족주의적 열등감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p.122

혁명과 쿠데타를 구분하는 기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쿠데타는 민중의 동의와 지지와 참여가 없이 폭력으로 국가질서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행위를 가리키며 군대를 동원해 그런 일을 하면 군사쿠데타라고 한다. (p.139) ...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운영을 잘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해도 5.16이 군사쿠데타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p.140

여가가 없는 시민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는 아무 의미가 없다. 90% 사람들은 항상 일만 하고 여가가 없는 반면 10% 사람들은 늘 놀면서 전혀 또는 거의 일하지 않는다면 자유란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마그나카르타, 권리장전, 미국 헌법, 자유와 평등이라는 프랑스의 모토는 한갓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G.버나드 쇼, <쇼에게 세상을 묻다> p.148

역사에는 연습이나 실험이 없으며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는 바꿀 수 없다. ... ‘사고실험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실험의 결론이 타당한지 여부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 p.151

[그림2(한국 경제의 비행궤적, GNI)]60여 년에 걸쳐 수천만 국민이 수행한 분투의 기록이며 그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과 죽어간 사람들이 느꼈던 기쁨과 슬픔, 자부심과 분노를 느끼게 한(p.170). 역사가 그들의 인생에 각인한 성공과 좌절의 침전물인 동시에 대통령들이 품었던 야심과 포부의 흔적이기도 하다. ... 오늘 우리가 누리는 어느 것 하나도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의 청년들은 그 모두를 원래부터 있던 것으로 여길지 몰라도, 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p.171

국민총생산을 늘리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더 많은 노동력의 투입. 그렇게 하려면 인구가 늘어야 하며, 인구가 늘지 않는다면 고용률을 높여야 한다. 둘째, 더 많은 자본의 투입. 그러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투자는 생산한 것 가운데 일부를 소비하지 않고 자본을 형성하는 쓰는 행위를 말한다. 투자율이 높으면 성장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 생산기술의 향상, 기술수준이 높으면 같은 양의 노동력과 자본으로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p.186),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 합리적 규칙이 있고 자본가와 노동자, 정부와 기업, 공급자와 수요자 그리고 시민 각자가 모두 그 규칙을 지키면서 남들 역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에 비해 더 많은 부를 생산할 수 있다. p.187

민주주의는 단순히 제도의 총합이 아니라 제도와 행태와 의식의 복합물이다. 합리적인 제도가 있어도 행태가 비뚤어지면 소용이 없다. 권력집단과 유권자의 행태는 욕망과 감정, 의식과 관습을 비롯한 여러 요소가 좌우한다. 좋은 헌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집권세력 또는 통치자가 헌법과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존중해야 하며 시민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알고 행사해야 한다. p.274

민주주의는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해 최대의 선을 실현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라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한느 구체적인 악을 최소화함으로써 사회를 지속적으로 개량해나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p.276

사람은 누구나 성공한 경험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과거와는 성격이 다른 도전에도 예전에 성공했던 방식으로 응전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전략과 행동양식이 등장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p.286

독재정권이 대중의 욕망을 거스를 수 없(p.366)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의 혁명전사들도 대중의 욕망을 무시하지 못했다. p.367

누가 하는 어떤 것이든, 민주주의와 관련한 헌법의 규정을 실현하려는 활동은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대통령에 대해서, 정당에 대해서, 통일문제에 대해서, 혁명에 대해서, 그 무엇에 대해서든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 표현의 자유는 정부가, 또는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 국민이 터무니없다고 판단하는 견해까지도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진리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 견해를 표현하는 행위가 다른 사람(p.405)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다면 제약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이며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다. p.406

자이실현을 하려면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살아가는 방식은 신념이나 이상 같은 철학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생활을 설계하는 취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p.422

저출산 현상은 자유주의적 각성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사람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그렇게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의 생명과 존엄성도 희소성지불 능력이라는 경제논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도 너무 많으면 대접 받지 못한다. 물질적 능력이 없는 경우에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비참하고 가난하게 사는 사(p.435)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사람답게 대우하지 않으며 집단은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산업화의 성공과 저출산 현상은 사람의 희소성과 가치를 높였다. p.436

권력자는 역사에 자신의 인격을 각인한다. 한국현대사(p.495)에서 가장 뚜렷한 각인을 남긴 지도자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 지위도 권력도 없는 사람이 역사에 자신의 인격을 각인하기도 한다. ‘영원한 청년 노동자또는 노동열사전태일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p.496

소설가 김훈 선(p.510)생은 합동분향소를 다녀와서 이렇게 한탄한다. “나는 다만 울음을 듣고 돌아왔다. 늙은 어머니와 젊은 아내는 땅을 치며 울었고 뒹굴면서 울었다. 왜 이런 참사가 거듭되는가. 수많은 박사학위 논문, 연구보고서, 특집기사, 세미나, 공청회, 국무회의, 긴급대책회의, 총리 지시가 있었다. 이 산더미 같은 담론은 대체 무엇인가. 모두가 말짱 헛것이고 꽝이고 도루묵이다. 우리는 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넘어진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가.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우리는 왜 이런가.” p.511

물질의 결핍이나 불합리한 제도만이 아니라 낡은 관념도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 p.540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나는 미국 문화비평가 리베카 솔닛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상이다. 누구도 내놓고 부정하지 못할 만큼 당연해 보이는 이 사상이 혁명성을 띤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p.543

우리는 평등 이슈를 노동문제농민문제와 동열에 놓인 여성문제로 취급했다. p.545

역사에 대한 지식은 어떤 유형의 정부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으며 또한 어떤 유형의 정부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가에 대해서도 실마리를 제공한다. 사실 성공적인 정부의 세 가지 주요 적은 이데올로기, 도덕성, 공포다.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정부는 실패하기 쉬운데, 이데올로기는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경험을 받아들이는 데 필수적인 개방성을 낳지 않고 오히려 폐쇄적인 사고 체계를 낳는다. -버넌 보그다너, <역사, 시민이 묻고 역사가가 답하고 저널리스트가 논하다> p.556

레드 콤플렉스는 단순한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이념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려는 삶의 방편이었다. 북한 편으로 몰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양심의 자유를 포기하고 자유와 권리의 박탈을 묵인한 정신적 병리현상이었다. p.565

오늘날 40, 50대가 20년 후 지금의 60, 70대와 비슷해진다면 별로 희망이 없다. 지금의 40, 50대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수가 많다. 그들이 변화를 기피하는 보수적 또는 과거 회귀적 고령 유권자가 된다면(p.657) 대한민국은 일본처럼 혁신이 불가능한 사회가 되어 물질에 대한 개별적 욕망과 북한에 대한 감정적 증오가 지배하는 나라로 머물 것이다. p.658

미래는 내일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이미 들어 있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미래가 된다. 역사는 역사 밖에 존재하는 어떤 법칙이나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사람의 욕망과 의지가 만든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우리 안에 만들어야 할 좋은 것의 목록에는 역사에 대한 공명도 들어 있다. p.658

짧지 않은 그 이야기를 마치면서, 나는(p.659) 내 자신과 동시대의 벗들을 위로하고 싶다. ‘주어진 시대의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 안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소.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살면서 오늘을 만들었으니 이제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역사를 지켜봅시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아직도 아름다운 감정과 소망이 남아 있다면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삶의 마지막 날까지 서로 등 두들기며 걸어갑시다.’ p.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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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이영채 외]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현실이다. | Memento 2021-10-1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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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저
창비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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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정리는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을 정리하면 친일파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입니다. 중요한 건 현실입니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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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나라의 과거와 미래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국가다. 오랫동안 지속적인 교류를 해왔고, 앞으로도 중요한 파트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본이 좋은 파트너인가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식민지의 기억은 너무나도 강력하다. 아픈 경험은 여전히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수많은 피와 땀에도 불구하고 독립은 급작스럽게 주어졌다. 해방 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다.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모든 자원이 부족했다. 친일파의 재등용은 어쩌면 불가피했는지도 모르겠다. 친일파 청산의 당위성과 별개로 막 독립한 혼란스러운 국가를 재건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는 분명히 존재했다.

 

실재로 일본 제국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은 남북한을 재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자연스레 기득권이 되었다. 문제는 한 번 주어진 기득권은 되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정현종의 <제국대학의 조센징>에서 김연수-김상협 부자의 사례를 들어구한말의 지주는 식민지 산업자본가를 낳았고, 그 산업자본가는 군사정권의 국무총리를 낳았다.(p.54)”고 말했다. 친일파 청산에 철저했다고 하는 북한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제국대학은 일본만이 아니라 식민지 및 남북한에서도 국가 엘리트 육성 장치(p.22)’로 기능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역사를 보다보면 그 시대마다 주어진 임무가 있다. 친일파 청산과 국가 재건은 당시의 소명이었고, 하나는 그럭저럭 해냈다. 다음으로는 산업화와 민주화였다. 한국은 그것을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해내었다. 그리고 맞이한 새 시대에 주어진 사명은 무엇일까. 양극화 해소, 통일, 사람 사는 세상, 아직은 합치된 의견이나 해결책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눈길은 자연스레 과거로 돌아갈 법 하다.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소명, 남은 것은 친일파 청산이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식민지 경험과 제도, 친일파를 도덕적인 이분법으로 모두 이라 규정하고 그것을 적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환상(p.296)‘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일조차 수많은 논란과 얘기를 낳지 않았던가. 그저 폭파만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은 그 해답을 바로 지금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친일파 정리는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는 게 아니라” “친일파를 누가 이어받았는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p.173)”를 밝힘으로써 그들의 힘을 깨야한다고 주장한다.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하고, 현재를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툼은 불가피하다.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들춰내야 하며, 현재를 기준으로 관계를 다시 세워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은 한국대로 분노하고, 일본은 일본대로 피로하다. 결국 역사분쟁은 경제보복으로 번졌다.

 

이 분쟁은 일본 극우 세력의 정치적 기반이 된다. 북한을 포함하여 한반도와의 갈등은 일본이 전쟁이 가능한 정상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자양분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했고, 드넓은 식민지를 경영하며 아시아를 호령했다. 다시 한 번 전성기를 찾고자 극우 세력은 과거로 눈을 돌린 셈이다. 팽창을 위해서는 전쟁 능력이 필요하고, 정상국가로의 복귀는 이를 위한 사전작업이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는 완벽한 군국주의의 시설로 근대 일본의 정신적인 구심점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야스쿠니 신사가 공식적인 국가시설로 전환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팽창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정신적인 기반을 되살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야스쿠니를 둘러싼 논쟁은 일본의 보수 세력들이 어떤 형태로 재편될 것인가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요소(p.87)”.

 

일본의 극우화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서 중요한 문제다. 일본의 성공은 주변국 모두에게 불행했다. 풍선은 무한대로 부풀어 오를 수 없다. 한계에 다다르면 큰 소리와 함께 터지기 마련이다. 실패한 과거로 회귀하려는 일본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돌아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 일본 우익세력의 동향을 살펴보며, 한국 내 동조세력을 견제하는 일은 한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극우세력이 득세하고, 포퓰리즘, 폐쇄적인 민족주의가 대두하는 상황에서 세계 평화를 보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위기는 곧 한국의 위기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거울 같은 존재(p.326)”. 무조건적인 화평은 불가하지만, 일본을 배제한 채 살아갈 수 없다. 긴밀히 연결된 만큼 서로 간에 좋은 파트너가 되어야 함은 양쪽 모두에게 당연하다. 그렇기에 과거사 청산은 현실을 개혁함으로써 해야(p.175)”한다는 주장은 중요하다. 과거에 얽매여 서로를 악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결국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 평화세력의 연대를 통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한 실마리를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자세히 보여준다. 과거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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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 어떤 한 국가나 사회가 고립되어 있을 때 이를 풀어갈 수 있는 것이 소프트파워, 즉 문화교류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경제와도 연결되고, 그러면서 정치 영역의 교류도 활성화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국제정치 이론으로 봤을 때 한일관계는 경제교류가 지금까지 지속되었고 문화적으로 더 밀접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영역은 오히려 악화되어가는, 이상한 비대칭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p.42

한국은 19438월에 독립했다기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점령 정책 속에 편입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p.48

일본에는 아시아 주변국의 역사반성 요구를 받아들일 기본 토양조차 부족하다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p.55

야스쿠니를 폐지하라는 말은 천황제를 폐지하라는 말이고, 나아가 근대국가 일본을 해체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야스쿠니 폐지라는 주장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p.68

야스쿠니는 완벽한 군국주의의 시설이었습니다.(전후 군국주의 시설에 대한 비판으로 현재는 예제 날짜를 422, 1018일로 변경해서 진행하고 있음.) 그래서 신도가 일본의 전통 종교이긴 하지만, 야스쿠니는 신도의 이름을 빌린 군국주의 시설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p.78

헌법 개정이나 안보법 개정보다도 야스쿠니가 공식적인 국가시설이 되었을 때야말로 일본이 진정한 군국주의로 돌아섰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전후 일본은 평화국가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국민들이 전전과는 다르게 전쟁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상들이 야스쿠니 참배를 계속하고 야스쿠니를 공식화해서 일본인들이 전전처럼 전쟁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보수세력의 노림수인 것입니다. p.83

야스쿠니를 둘러싼 논쟁은 일본의 보수 세력들이 어떤 형태로 재편될 것인가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요소입니다. 어떻게 주장하든 일본의 보수세력은 공통적으로 야스쿠니를 인정해야만 자신들이 집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야스쿠니를 국립추도시설로 삼으려는 운동이 훨씬 더 대중화되리라 예상됩니다. p.87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바라볼 때 민족적 관점이 중요하긴 하지만, 오로지 민족적 관점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보편적 관점이 중요합니다. 인권의 문제, 평화의 문제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를 반일 종족주의자라고 몰고 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사실 종족주의자입니다. 보편적인 기준을 갖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가 누구냐만 갖고 따지는 것이 편협한 종족주의이지요. 전강수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혐한 종족주의자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p.97

네덜란드 학자 카렌 판 볼레펜은 The Enigma of Japanese Power(일본이 지닌 힘의 수수께끼)라는 유명한 책에서 일본을 머리 없는 괴물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은 독일 나치즘의 히틀러나 이탈리아 파시즘의 무솔리니 같은 수괴가 없다는 뜻입니다. 고노에 후미마로나 악명 높은 도조 히데키도 그런 수괴는 아니었습니다. p.128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우리에게 처참한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회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p.130

박정희가 1945년 이전에 물리적으로 한 친일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박정희가 친일파가 되기 위해 긴 기간 준비운동만 한 셈입니다. 대구사범학교부터 일본 육사까지 문무를 겸비해 제국에서 출세하기 위한 발을 내디디자마자 일본제국이 패망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박정희를 원조 친일파라고 하는 이유는 집권한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일본 극우파가 생각했던 방향으로 끌고 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일본이 만주국을 경영했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의 사상적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세지마 류조고, 그 배경에 황도파 사상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p.136

친일파 정리는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을 정리하면 친일파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입니다. 중요한 건 현실입니다. 오늘 친일 문제의 싸움터는 1920년대, 30년대, 40년대의 역사연구가 아닙니다. 친일파를 누가 이어받았는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 그 힘을 깨버리는 게 친일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연구는 그 다음에 숨 돌리면서 하면 되지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주전장은 여기, 지금 이 순간입니다. p.173

과거(p.174)사 청산은 현실을 개혁함으로써 해야 합니다. 지금을 바로잡으면 과거가 바로잡힌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과거를 바로잡아서 지금을 바로잡으려는 생각은 잘못되었습니다. 우리의 과거 청산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가 그런 방식이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p.175

물론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맹아론은 말하자면 죽은 자식 나이 세는 격이지 싶습니다.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요? 제국주의 침략을 당하고 그 싹이 짓밟혀버려서 결국 발전하지 못했다면 그 싹이 실제로 있었던 건지도 불분명하고, 있었다 해도 어떻게 발전해갔을지 증명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싹보다는 씨앗에 가깝지 않았나 싶습니다. p.91

재일조선인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은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 속에는 한일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 북일관계까지 숨어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일 조선인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p.218

해방 이래 조선학교가 겪은 고난사는 재일조선인이 겪은 차별과 인권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는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주어야 하는 것임에도 한일관계나 북일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고 심지어 인질처럼 다뤄졌지요. p.250

재일조선인들은 해방 이래 지금까지 줄곧 똑같은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당신의 정체성은 일본입니까, 남한입니까, 북한입니까?” 예전 한 재일조선인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체성이 그렇게나 중요합니까? 왜 정체성에 그 정도로 연연합니까? 밤하늘에 반짝이는(p.264) 별이 수없이 있는데, 어떤 별은 한국 것이고, 어떤 별은 일본 것입니까?” p.265

한국과 일본은 서로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성이 너무 많아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나라이지요. 어느 한 나라가 반면교사인 것이 아니라 서로 그렇습니다. p.326

일본이 조선 식민지 정책에 근대화 및 개발의 측면이 있다는 것은 전면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착취와 종속을 주장할수록 그들의 근대화 및 개발 논리 역시 계속해서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할 뿐입니다. 역사수정주의에 대해서는 통계나 논리만이 아닌 역사 현장에서 당시의 개발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누구를 위해서 이루어졌는지 한일 시민사회가 함께 현장을 검증하는 새로운 연구모델이 필요합니다. p.330

일본은 한국의 통일을 이루어주지 못하지만, 우리의 통일을 방해할 힘이 있는 나라입니다.’ ... ‘일본은 한국이 20년 뒤에 겪게 될 모순된 사회상을 보여주면서도, 우리 사회가 현재 안고 있는 모순을 배우지는 않는 나라입니다.’(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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