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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중독-엄기호,하지현]우리 사회가 공부라는 블랙홀에 빠져 있다. | Memento 2018-08-3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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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공부 중독

엄기호,하지현 공저
위고 | 201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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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공부라는 블랙홀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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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중독>은 사회학자 엄기호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공부'라는 키워드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망가져 있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대담의 요지는 제목 그대로 우리 사회가 '공부중독' 상태에 빠져있다는 말이다. 공부가 우리의 삶과 사회를 식민상태에 빠뜨렸다. 공부는 우리 사회의 모든 담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고, 여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마음'이 변하는 길이다.

 모두가 잘 아는대로 한국에서 '공부'만큼 위대한 기적을 보여주는 일은 없다. 문(文)을 숭상한 오랜 역사적 맥락 때문일까, 아니면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로 여기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쨌든 '공부'를 들이대면 안되는 일이 없다. 가정의 대소사는 물론, '공무원 시험'이나 '대학교(원) 공부'를 위해서라면 신성한 국방의 의무도 연기할 수 있다. 게다가 '공부'하는 학생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범죄조차 용납해야만 하는 세상이 대한민국이다. 수 많은 의무를 "유예시켜주는 프리 패스(p.27)"가 바로 공부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는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했고, "배울 수는 있지만 가르칠 수는 없는 것.(p.146)"까지 배워야하는 세상이 되었다. "공정하자고 만든 제도가 도리어 다양성을 죽이고 획일성만 키우며 오히려 특정한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 유리해지는 불공정한 역설(p.99-100)" 속에서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공부라는 사다리에 모두들 매달려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보자면 책을 읽었던 이유 역시 저자들이 말하는 '공부'의 차원이었다. 만화책일지라도 조선왕조 500년 식의 만화라면 용납이 되었고, 야설만 아니라면 어느 책이건 용서 되었다. 책 읽는 일 역시 공부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계속해서 책을 즐겨 읽고는 있지만, 수많은 일들을 유예받은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올바른 사람이 되었는가에는 의문이 든다. 부모님이 보시기에 책 읽는 행위 역시 '공부'의 개념으로 봐주셨기 때문에 많은 의무를 면제 받았지만, 그만큼 나는 의무에 무감각하거나 책임감을 가지지 못한게 아닐까. 너무 억측일지 모르겠다.

 이러한 '공부'의 권능은 공백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침묵을 두려워하고, 고독이나 쉼을 경계한다. 재창조를 위한 방황은 비생산적이고, 게으름은 절대 악이다. 오직 부지런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공백을 채워야만 한다. 채우지 못하면 실패하는 것이다. 낙오자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의미'로 삶을 채워야만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채우기 위해 제일 쉬운 방법이 바로 '공부'다. '공부중독'은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면에는 '성실'과 '근면'이라는 산업화 시대의 미덕이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들이 말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하기에는 과거의 영광이 너무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가 공부 권하는 사회가 만들어진게 아닐까. 덕분에 저자들의 말대로 돈을 버는 누군가도 생기고.

 개인적으로 엄기호 작가의 책을 좋아는 하지만 꺼리는 편이다. 단어들이 쉽지 않고, 가끔은 난해하기 때문이다. 전문가 간의 대담이다보니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오는게 당연하겠지만, 그래서 다소 아쉽다. 이해하고 읽어나가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다소 꺼려진다. 대담이라도 좀 더 매끄럽게 다듬어서 나왔다면 저자들이 원하는 대로 더 많은 사람들, 한 사람이라도 더 읽기 좋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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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사실 이렇듯이 세상을 읽고 삶을 해석하는 언어라는 좋은 도구를 취득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치며여적인 부작용이 일어난다. 세상과 삶이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추상화된다는 것이다. ... 구체적 삶은 왜소해지고 대신 이미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어떤 개념들이 그 구체적인 삶(p.11)의 자리를 분해한다. 나의 삶은 그 개념들의 지식 권력의 정당성을 확인해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한다. 내가 아는 공부는 반대였다. 어떤 지식 권력의 정당성과 주도권을 확인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도전하는 것이 공부였다. p.12

공부의 기쁨은 보편성의 발견이다. 내가 처한 현실이나 난처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겪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가는 과정이 공부의 과정이다. 동시대성을 발견하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란 말이다. 시대의 암흑이라는 동시대성을 발견하고 그 문제를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해가려고 하는 과정에서 동시대인이 형성된다. 이 동시대인을 형성해가는 것, 그것이 공부가 무능력한 개체들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를 형성해가는 과정이며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p.13

자기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복제해서 자기 아이들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게 지금 문제의 본질 중 하나 입니다. 우리나라가 정말 운이 좋은 시기에 그때 그 나이에 있었던 첫 세대이자 마지막 세대.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모보다 더 성공할 수 있었던 세대. p.24

공부가 우리 사회에서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유예시켜주는 프리 패스가 되어버린 거죠. p.27

'공부 중'이라는 것이 한편에서는 유예를 합리화하는 거잖아요. '준비가 안 됐으니 더 머물로도 된다.' 그러면서 자기를 훼손시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고요. 그런데 이것을 사회학적 관점, 즉 통치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니까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라는 것을 합리화할 수 있는 좋은 이유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배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모두에게 자리를 배분하면 사회가 안정되죠.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자리가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국가의 중요한 역할이란 게 자리를 배분하는게 아니라 자리를 배분하지 못한 이들에게 네가 왜 자리를 배정받지 못한 대해서 설명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 설명이 '네가 준비가 덜 됐다'인 거죠. p.29

그런데 이런 상태가 되면 불만이 밖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향하게 됩니다. 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사회가 아니라 준비가 안 된 자기를 탓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반란은 일어나지 않아요. p.30

이게 공부의 문제가 되니까 노동을 시키면서도 노동이 아니라 '그게 곧 공부다'라는 식으로 손쉽게 착취할 수 있는 거죠. '열정 페이'가 바로 그런 맥락이죠. 나아가 노동을 착취하는 것을 넘어서 더 성공한 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맞아, 나는 노동자가 아니야,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 건 아니야, 나는 지금 배우고 있는 중이야'라고 생각하게 하는 거에요. 실수를 하면 '역시 난 준비가 덜(p.31)되어 있어'하고 자학하면서 현재의 대우를 인정하게 되는 거죠. 참 묘하게 주체의 두려움과 통치의 협박, 유예하는 것과 아직 받아들여주지 않는 것, 이 두가지가 공부라는 고리로 작동하고 있어요. ... 그런 인식이 모든 영역에 퍼져 있으니까 그로 인해서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는 물론이고, 일을 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죠. p.32

1%의 빛나는 순간을 위해서 99%는 어두운 그늘 속에서 똑같은 것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것을 모르는 거죠. p.40

공부는 배우는 과정과 익히는 과정의 합이잖아요. 그래서 공부를 다른 말로 '학學'과 습習'으로 이뤄진 학습이라고 부르죠. 배워서 안다고 하면 익혀서 할 줄 알(p.54)게 되는 것이거든요. 이렇게 할 줄 알게 되어야, 그것도 능수능란하게 할 줄 알게 되었을 때 그걸 삶의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 배우면 익히는 게 아니고 배우고 바로 다음 배움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니 익히는 과정이 없어요. 그래서 배우긴 배웠는데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이죠. 이게 한국의 대체적인 교육과정입니다. p.55

어리다는 게 뭐냐면, 심리 발달을 어떤 식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중 하나의 틀이 '자아중심성'에서 '자아의 탈중심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얘기해요. 무조건 나를 중심으로 보다가 다른 사람도 보게 되는 거죠. ... 이타적인 면이 점점 나타나는 게 심리 발달에 있어 하나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p.57

학습과 경험이 다른 것이듯, 면역력은 경험을 통해서 아파봐야 생기지 학습한다고 생기지는 않거든요. 물론 학습을 하면 덜 아플 수는 있겠죠. 왜 맞는지 알고 왜 아픈지 아니까. 그런데 면역력이 잘 안 생기는 아이들이 있다는 거죠. 아픔에 대한 역치가 낮거나 아픔 자체를 회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거에요. 불패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안 아픈 채 위 레벨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죠. p.62

저는 사는 건 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까지는 겪으면서 감당하는 거고, 감당할 수 없을 때 문제 제기가 되어야 하는데, 감당해나가는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p.64

우리가 살아가면서 성장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자기 말고 타인이 있다는 걸 인지해 가는 것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의견이 생겨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p.73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나를 구겨 넣는 방법, 맞추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환경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법이에요. 이 두 개를 적절히 조화롭게 사용하면서 우리는 적응을 해 나가는 거겠죠. p.75

의견을 가진다는 것은 세상과의 대면 속에서 열심히 성찰을 해서 나만의 고유한 언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모든 의견은 이견의 형태를 띨 수 밖에 없잖아요? 그러자면 선생님이 앞서 말씀하신 대로 일단 타석에 들어서야 하거든요. 타석에 들어서지 않고 의견을 가진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죠. 그저 관전평 정도가 되는 것이겠죠. (p.76) ... 의견을 말하는 것이 참여자의 입장이라면 품평은 구경꾼의 언어예요. 우리는 구경꾼의 언어가 마치 의견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타석에 들어서지 않은 상황에서 뭔가 얘기를 계속 해야 하는데 자기만의 의견이 안만들어지니까, 계속 징징거리는 형태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상황이 자기도 답답하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화내고 짜증을 내는 거겠죠. p.77

모르는 존재는 우리에게 두 가지 감정을 일으키죠. 하나는 두려움이고 하나는 호기심이에요. 공부라는 것이 끊임없이 모르는 존재를 만나는 일이잖아요? 모르는 걸 만났을 때 이 두 가지 감정이 다 일어나요. 그런데 중요한 건 '두려움을 어떻게 호기심으로 바꿔줄 것인가'죠. '낯설긴 하지만 재미있네?' 이렇게 두려움을 호기(p.89)심으로 전환시켜주는 것, 그렇게 꼬시는 것이 교육이에요. p.90

오보퀄리파잉이 이제 우리 사회에 새로운 문제 p.95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공정하자고 만든 제도가 도리어 다양성을 죽이고 획일성만 키우며 오히려 특정한(p.100)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 유리해지는 불공정한 역설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p.101

제 생각에는 우리 사호의 지금 이십대 초중반 젊은이들이 받는 가장 큰 선물은 '니네 부모 굶어죽지 않아'거든요. p.119

이전에는 공부가 생애사적 기획을 하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였죠. 그런데 그게 잘 안되는 상황이 되고 있단 말이죠. 그렇다면 이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나와야 하는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출현해야 할 그 시점에 다양한 교육이 출현해버린 거죠. 그런데 다양한 교육이란 게 말 그대로 다양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이 다양한 영역을 식민화해버린 형태에요. 이게 정말 스쿨링하는 사회인 거죠. 어떤 의미에서는 '스쿨'이 문제의 근원이었는데 그걸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걸 굳이 학원에 가서 배워야 하는가? 굳이 학교화해야 하는가? 커리큘럼화 해야 하는가? 인성 교육도 그렇죠. 인성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p.139) ... 가르칠 수 없는 걸 가르치겠다고 하는 것, 저는 이게 정확하게 삶을 식민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p.140

어떤 건 가르칠 수 있지만 어떤 건 가르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건 가르칠 수 없는데 배우는 게 있다, 그것을 판가름하는 게 저는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p.144

공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게 있고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하는 게 있는데,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하는 영역들이 점점 좁아지고 있으니 진짜 삶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삶이라는 것은 어차피 잡종인 것이고 누군가와의 마주침인데, 그 마주침을 다 위험이라고 하고 제거 해놓은 상태가 되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공부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다 보니까 이제는 살면서 터득해야 하는 것에도 메뉴얼이 등장하고, 배울 수는 있지만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이 이제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되면서 거대한 공부 산업이 만들어지고 있죠. p.146

공부 중독이란 사실은 교육 중독이라고 할 수 있을거 같아요. 그 바닥에는 삶의 위기에 대한 초조함이 크게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간이라도 가려면 막차라도 타야 하고, 그 막차를 타는 유일한 방법이 교육 자본을 축적하는 공부라고 생각하다 보니 이 상황이 더욱더 악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p.155

대학 진학은 한국의 중산층 게임이에요. 이 사람들이 대학을 어떻게든 보내려고 하는 거죠. 이 사람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이들한테는 공포가 있어요. 자기 자식 대에서 계급이 재생산되지 않을 것 같은 공포가 있는 거죠. p.161

공부 중독이 차별과 혐오를 굉장히 광범위하게 양산해내고 있거든요. 그 핵심에 지나친 과잉 투자와 보잘것없는 아웃풋이 있다 보니까, '내가 이 개고생을 해서 어떻게 얻었는데 내가 왜 쟤랑 이걸 나눠야 하지', '왜 내가 쟤랑 동등해져야 하지', 이런 생각에 용서가 안 되는 거죠. 그리고 이게 안 되면 안 될수록 중산층들은 교육을 더욱더 특권화하려고해요. 교육은 가장 공정한 것이고 그렇게 교육을 받은 사람이 권력을 독점하고 경제적 성과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아마도 공공선이라는 것이 이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소리로 들릴 거예요. p.167

공부라는 것, 알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 데에는 동기가 필요하거든요. 동기는 크게 세 가지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절박감이에요. ... 두 번째는 경쟁심이에요. ... 세 번째는 '그냥 하고 싶어', '알고 싶어' 이런 이상적인 목표가 있는 거예요. p.188

공부의 정의 자체가 벽에 부딪쳐보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색해나가는 과정을 익히는 거예요. ...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적응력을 향상시켜주기 위한 방법론을 익히는 것이죠. p.189

그렇다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뭘까. ... 첫 번째는 핵심, 맥락을 잘 잡아내는 거죠. 둘째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많은 정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셋째가 진짜 공부를 잘하는 것일 텐데, 이치를 깨닫는 것이죠. 큰 흐름 안에서 이게 뭘 의미하고 있고,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 나아가서는 나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가까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겠죠. p.192

대학을 안 가도 좋은 사회가 아니라 인생의 어느 때이건 공부하고 싶을 때 대학에 갈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거죠. p.209

교육 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교육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p.214

삶이 성장의 과정이라면 공부는 성장하는 삶을 위한 도구여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공부는 삶을 식민화하는 도(p.218)구일 뿐이에요. p.219

우리 사회가 공부라는 블랙홀에 빠져 있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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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오찬호]빌어먹을 사회를 만드는 건 우리다. p.292 | Memento 2018-08-2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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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오찬호 저
블랙피쉬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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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사회를 만드는 건 우리다.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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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묻습니다. OO씨 괜찮아? 물론 여쭤보신 분들의 선의를 곡해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하하 어색한 웃음을 띠며 괜찮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게 사회생활이라 굳게 믿어서가 아닙니다. 정상이라는 생각은 일말도 없습니다. 상황을 바꾸기가 버거워서 입니다. 엄청 비겁한 말이지만, 전 대세를 따르자 주의 입니다. 남자들 군대 이야기 그만해야 겠지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유명한 말이 '중간만 가라.'와 '꼽냐?'입니다. 요새는 선진 병영이라 좀 달려졌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꼭 군대가 아니라도 상명하복의 조직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여기서 참지 못하고 '꼽다! 어쩔래!'라고 말한다 해도 크게 바뀌는 건 없습니다. 아! 물론 여기서 말하는 변화란 나에게 꼽냐고 물어본 개인의 성향이나 그런 상황을 만든 문화나 조직을 말합니다. 꼽다고 말한 사람의 삶은 변합니다. 더 꼽게 만들지 모릅니다. 아닐지라도, 삶은 힘들어 집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지적하고 필요성을 공유하고 사람들을 이해시켜야 합니다. 차라리 내가 꼽고 마는게 더 편하다고 느끼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쨌든 비겁하게 오늘도 어색한 웃음을 날리며 버티고 버팁니다. 오찬호 작가는 그런 저에게 늘 말합니다. 사회는 사람이 만든다. 결국 개인이 변해야 사회가 변하고, 그 변화가 평균에 이른 만큼 세상은 변한다고 말입니다. 작가의 저작을 꽤 챙겨 읽는 편이라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앎으론 삶을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그 사례들이 무궁무진합니다. 오찬호 작가는 오작동하는 우리사회를 보여줍니다. 내 것이니 내 맘대로 하겠다는 이기심,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혐오, 남을 괴롭히며 오늘을 버티는 우리, 거창한 '악' 보다는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린 '악의 평범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부끄럽다 고백합니다. "공공선을 위해 뜨거워 질 순간"은 잊고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각자도생'의 삶에는 지나친 뜨거움으로 매진하는(p.9)" 삶을 살았다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반성이 거듭되어도 괜찮아 지는 건 나일 뿐, '그 때' 상처 받은 '그 사람'은 치유되지 않는다.(p.389)"

 그렇습니다. "빌어먹을 사회를 만드는 건 우리(p.292)"입니다. "사회는 사람하기 나름이(p.302)"고, "사회의 진보는 지금까지의 익숙한 삶과 반대되는 쪽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때 가능(p.277)"합니다. 갈등하고 불편해서 일상에서 균열이 일어나야 사회의 "평균치"가 높아집니다. 뻔한 결론입니다. 하지만 그게 유일한 길인가봅니다. 오늘도 매우 꼽고 유감스런 하루였습니다. 내일도 그럴겁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고 우기는 당신이 공범이고, 행동치 않고 침묵하는 나 역시 방관자입니다. 반성은 우리의 도피처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민하고, 반복되지 않을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할 뿐입니다. 그게 저자가 말하는, 우리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길이라 봅니다. 그래도 괜찮냐는 물음에 웃으며 말할 용기를 내봐야 겠습니다. "조금 별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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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선을 위해 뜨거워질 순간을 모르는 한국인들은 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각자도생'의 삶에는 지나친 뜨거움으로 매진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낯 뜨거워질 순간을(p.9) 잘 모른다. 남은 괜찮지 않은데 당당하다. p.10

우리가 변하면 우리는 행복해진다. 좋은 사회를 희망한다면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그 시작이지 않겠는가. 행복한 '내일'을 원한다면, 자신(p.15)이 다른 이의 존엄성을 뭉개고 있는 '오늘'부터 발견하길 바란다. p.16

소비자라는 가면을 방패 삼아 자신이 일상에서 당한 설움을 폭발시키는 행동을 일부 못된 사람들의 그릇된 심리로만 이해하면 될까? 권리라는 말의 집단적 남용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한국만의 놀라운 시스템이 있다. p.29

"공적인 자리에 있는 사람이 타인을 조롱하려는 본능을 드러내면 다른 모든 이의 삶에 퍼져 나갈 것입니다. 마치 다른 사람들도 그런 행동을 해도 된다고 승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메릴 스트립, 2017년 74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며 p.40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테러라는 행동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뿐이다. 테러를 저질렀던 사람들의 배경(인종, 종교)을 근본 원인으로 지목할 수 없다. 테러는 단일한 요소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질서를 주도하려는 여러 이해관계가 오랫동안 억척스럽게도 얽힌 결과물이다.  그러니 테러를 예방하는 방법은 입국심사와 치안을 '모든 이에게 차별 없이' 더 강화하는 것뿐이다. 대안이라서가 아니다. 사람이 싫다고, 그 사람의 속성을(인종, 종교, 성별, 소득 수준 등) 지닌 다른 자들마저 모조리 억압하다가는 더 큰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배제되어 마땅한 사람'을 일상에서 증오할 것이고 이렇게 고립된 누군가는 강력히 저항하게 된다. 약자의 정항은 강자가 만든 세상(p.45)의 질서에 부합할 리가 없으니, 이는 약자를 향한 지금까지의 혐오가 정당화되는 증거가 된다. 사람의 행동이 아닌 사람 자체를 함부로 통제할 수 없는 이유다.p.46

'찰나'의 이해로는 '하던 대로' 움직이는 몸과 정신의 버릇을 바꿀 수 없다. p.47

딱 한 걸음만 떨어져서 보면 말도 안 되(p.49)는 생각화 행동을 타인을 향해 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이 혐오다. 그럴 만한 이유를 상대를 가려서 주장하는 사람, 혹시 당신 아닌가? p.50

사회학은 이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더 충만한 긍정적 사고로 무장해도, 말하는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 사람에 주목합니다. 간절해도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p.52) ... 사회학은 같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성공한 '예외'에 주목하여 인생은 개인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결론 내지 않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간절해도 꿈을 이루지 못한 '평균치'가 함의하는 객관적인 불평등을 드러내는 걸 더 중요하게 여기죠. p.53

단언컨대, 예외를 가지고 평균적인 불평등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반드시 나쁘게 변한다. p.55

좋은 사회란 예외가 되지 않더라도 행복한 개인들로 넘쳐나야 한다. 이는 객관적 불평등을 직시하는 시민의 구체적인 노력이 모여, 마치 벽돌이 한 장 한 장 쌓여가듯이 정의로운 사회구조가 탄탄해져 갈 때만 가능하다. p.64

꼰대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몰라서, 정확히는 이를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p.70

특정한 권력 관계를 악용해 상대의 모든 걸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꼰대다. p.76

꼰대는 사는 대로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 p.77

차별은 피해자가 느끼는 것이지 가해자가 해명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는 괜히 예민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가난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고정관념과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여러 복지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이 응축되어 나타나는 '부정적 시선'을 어릴 때부터 마주하며 살아왔다. 이런 시선들은 대개 편견으로 변해 특정한 배경을 가진 사람을 괴롭힌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이 차별의 공기를 제공한 주범인걸 부정한다. 차별받는 사람만 있고 차별하는 사람은 없는 이유다. p.88

차별은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보고 비아냥거릴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수치심을 안겨 줄 때, 혹은 그런 배경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때 시작된다. p.89

스스로 하는 일이 선하다고 생각할 때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편해문 놀이터 비평가 p.92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한국의 어른들은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인류가 추구해야 하는 방식이 아닌 철저히 개인의 가치 안에서 풀어낸다. p.100

진짜로 넋 놓지 않아야 하기에 삶은 고민의 연속이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서 정당방위의 수위마저 경계 밖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거, 이는 본능을 억제하고 살아온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이기도 하다. 신경 써야 될 것이 많은 피곤한 삶, 그게 사람의 삶인데 어찌하겠는가. p.104

폭력의 예외를 발견하려는 버릇이 있는 사회에서는 절제할 수 없는 소수로 인해 약자들은 폭력에 상시적으로 노출된다. 이를 막을 방법은 하나다. 체벌이 허용되는 훈육은 '없다'는 강력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이는(p.107)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을 몸으로 느껴야지만 '욱한다고' 욱하지 않는 절제된 개인이 될 수 있다. p.108

"원칙을 경직됨으로 평가절하하며 그 빈틈마다 본인의 상대적 기준을 들이미는 순간, 유연함의 이름으로 포장된 예외의 남발을 막을 길이 없다." 영화감독 민규동 p.148

인간다움의 조건이라는 부끄러움이 원칙 없이 팔색조로 응용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부끄러움이 그다지 인간성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지 않음을 뜻한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함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합리화만이 강하기 때문이다. p.158

'사람'이 들어갈 자리에 남자, 여자를 자꾸만 집어넣으려는 인류의 습관을 내 아이들은 낯설어했으면 좋겠다. (p.164) ... 이것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할 '평범한 일상'에 자꾸만 균열을 일으켜야 하는 이유다. p.165

성과 없는 성실은 앙꼬 없는 찐빵에 불과하다. 삶을 버틴다는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더 독해져야 했다. 독하게 산다는 건 다른 거에 대한 관심을 끊고 '하나의 목표'만을 생각하고 살아야 함을 뜻했다. (p.179) ... 어떻게 보아도 인간에게 권고될 성질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독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이토록 독(p.184)해지길 강요하는 이 빌어먹을 세상에 대한 진득한 분노여야 한다. p.185

'그래 봤자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 되어 뒤늦게 과거의 기고만장을 후회한다. 철이 들어서가 아니다. 그릇된 개인의 강박을 모여 '자기 잘되겠다고 남을 희생시키는' 모순적인 각자도생이 범람하고 자수성가라는 말 안에 '주변의 도움을 은폐하는'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사회는 결코 '사회적'으로 튼튼하지 않다. 사회구조의 피해자가 언제나 입을 다물어야 하니 이곳은 죽든 살든 개인 탓이다. 악착같이 순간의 고비는 넘길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개인이 건승할 확률은 터무니없이 낮다. 원하는 대로 얻지 못한 이들은 억울하다. p.211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요소들 중 하나가 바로 '인내'다. p.220

부정한 사회는 '부정적 사람'을 싫어한다. p.222

약자들은 객관적 상황을 부정할 때만 살아갈 기회를 얻는다. p.223

한국에서 인간관계는 딱딱한 행정 원칙을 한칼에 무용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다. 문화랍시고 반칙을 반칙이 아니라고 하니 사람들은 급할 때 전화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을 주변에 만들어 놓기 위해 필요 이상의 애를 쓴다. p.249

한국사회에서 좋은 인간관계란 관행을 관해으로 받아들이고 기득권에 그만큼 잘 적응한다는 말일 뿐이다. p.250

친구는 쇠귀에 경 읽기에서 문제는 쇠귀이지 경이 아니라면서 p.268

사회는 갈등 없이 좋아질 리 없지만, 현실에서 '갈등'이란 말은 앞서 살펴본 '부정'이란 단어처럼 쉽게 오해 및 오용된다. p.274

사회의 진보는 지금까지의 익숙한 삶과 반대되는 쪽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때 가능하다. 이 과정은 갈등으로 비춰지지만 갈등이 아니라 진짜 균형을 잡기 위한 성장통일 뿐이다. p.277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무난한게 하려면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쥐어짜야 하는' 경멸할 만한 삶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 공허하기 짝이 없는 조언을 나는 할 수 없다. 사회학적 현상 분석에 초첨을 맞추는 내 책들은 개인이 '해야 될 일'을 제시하지 않는다. 개인의 역할이 중요치 않다는 것이 아니라, 자칫 '대단한 결심을 하고 살아갈 수 있는 자들'에게만 국한된 해결책일 수 있기에 주저한다. (p.288) ... 하지만 행동의 기준을 과거를 귀감 삼아 마련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여기서 기준을 마련하여 좋은 쪽의 삶을 지향하고 나쁜 쪽을 지양해야 한다. 내 삶의 방향이 그릇됨을 직시하고 그 반대 방향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만이 대안이다. 모호하게 들리겠지만 이것만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유일하고도 구체적인 방법이다. p.289

참된 성장은 그저 선한 정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백론>의 저자인 고대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선생은 악행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된다'고 했듯이 우리가 악한 성장의 공범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낄 때 사회는 좋은 쪽으로 변한다. p.297

사회는 사람하기 나름이다. p.302

자신을 예외적 인물로 노출시키지 않아 서로가 예의 바른 무관심 상태를 유지하는 건 타인에 대한 예의다. p.307

자신감만 있으면 못할 거 없다는 말이 난무하는 교육의 폐해는 엄청나다. 과잉 자신감은 반드시 근거 없는 낙관주의로 흐른다. 눈앞에 보이는 구체적인 절망을 애써 외면하고 공허하기 짝이 없는 희소한 확률에 본인의 인생을 거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은 이유다. 지나친 자신감은 자신'만'은 아무리 세상이 그릇 되더라도 살아남는다는 착각으로 이어져 구성원 모두에게 효과가 있을 사회적 해법을 찾는 걸 외면하는 자충수로 이어진다. 그러니 사회문제 앞에서 개인의 (p.313) 돌파구만 찾는 우를 범하고 그럴수록 면죄부를 얻는 사회의 폭력성은 더 경악스럽게 개인의 자존감을 파괴한다. 그 결과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온갖 반사회적인 요구를 다 참아 내는 거다. 일하면서 자존감 따위 찾지 말라는 거다. ... 문제는 일상에서 개인의 사적 가치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공적 가치에 대한 개인의 불신도 하늘을 찌른다는 사실이다. p.314

나는 자존감을 자아 존중감이라는 사전적 뜻에서 한걸음 나아가 '자신감이 없어도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되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싶다. (p.315) ... 나락으로 떨어져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뜬금없이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된다는 자존감 교육보다 실패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사회라면 자존감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다.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명확한 방법은 '우리가' 자존감을 잃지 않을 환경을 만드는 거다. (p.316) ...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길 원하는가? 그럼 자신감 좀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 p.318

원칙적으로는 죄가 될지언정 주변에서 '수군거리지 않는 한' 괜히 먼저 나서서 죄책감 가질 필요가 없고, 반대로 아무런 잘못이 아닐지라도 주변에서 '수군거리면' 부끄러움을 느껴야 되는 사회가 바로 한국이다. 이를 수치의 문화라 한다. 집단이 수치를 주면 죄고 안 주면 죄가 아니다. p.322

명백히 합의된 절대 악은 결코 논쟁하지 않는다. (p.329) ... 명명백백 절대 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가해행위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추동하는 씨앗부터 감시되어야 한다. (p.331) ... 당신이 타인에게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광범위한 성찰이 필요하다. 직접적으로 차별과 폭력에 가담하지 않아도 자신이 무의식중에 토양을 제공하는 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p.322) ...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개인에 대한 적절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타당한 것처럼 합의된 절대악은 지나칠 정도의 자기 검열을 통해서 예방되어야 한다. p.333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이란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조금이나마 공감의 간격을 좁히고자 끝없이 노력하는 거다. 그들의 슬픔이 끝날 때까지 그들 만큼은 아니겠지만 내가 표현하고 느낄 수 있을 만큼 함께 슬퍼하는 건 노력의 시작이다. p.336

희노애락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거지만 이를 언제, 어떻게, 어느 정도로 드러내고 감춰야 하는지는 철저하게 그 사회가 무슨 가치를 지향하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아이가 제대로 슬퍼할 줄 아는 시민이 되길 바란다면 '어른이 되면 알겠지'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p.338

공감의 시작은 자신이 타인의 상황에 쉽사리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공감의 실천은 "나도 네 마음 안다"는 기만적인 사람이 되길 거부하고, 아픈 것도 서러운 사람에게 "어쩌다가 그랬어?"라고 묻는 황당한 사람이 되지 않는 거다. "내가 감히 너의 슬픔을 알 순 없겠지만, 노력할게"라고 말하면서 상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성찰적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입으로만 '공감'을 말하는 건 아니무런 의미가 없다. p.345

세상이 완벽히 정의로웠던 적은 없다. 그렇다고 인류가 정의를 좇는 걸 포기한 적도 없다. 어제와 다른 오늘에 우리가 확장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이유다. ... '보편적 인권'의 영역에 많은 사람이 포함되도록 애쓰는 게 바로 인간의 역사다. p.363

개인이 우주 최강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은 모두가 행복의 최소 기준에 부합한 삶을 살고 있을 때만 정당하다. p.370

정치란 엄청난게 아니다. 일상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도움을 기다리는 관행들이 많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런 순간과 마주한다. 이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표정 하나가 바로 정치의 시작이다. 누군가에게는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동력이 된다. 여론이 형성되면 정치인을 압박할 수 있다. 그렇게 정책이 등장하면 '내'가 변화의 수혜자임은 자명하다. ... 객관적으로 정치 영역에 돈을 지출해야 한다. p.380

반성이 거듭되어도 괜찮아지는 건 나일 뿐, '그때' 상처받은 '그 사람'이 치유되지 않는다.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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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vs사람-정혜신]심리테스트와 독서의 사이 어딘가 | Memento 2018-08-1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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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사람 vs 사람

정혜신 저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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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테스트와 독서의 사이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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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테스트는 재미있다. 답을 준다. 살다보면 가끔 -나의 경우에는 너무 자주- 자신에 대해 궁금할 때가 많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저런 생각을 하는지. 혹시나 내가 정성이 아닌 정신병이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혹시 내가 천재? 뻔한 답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무언가를 준다. 때로는 답이 아닌 답에 자신을 끼워 맞춰서 정답이라고 믿기도 하지만. 어쨌든 ''''를 알고자하는 욕망에 가장 손쉬운 접근법임에는 틀림없다. 반면 독서는 질문을 준다. 그래서 불편하다. 읽을 때 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그 책을 쓴 사람조차 나와는 전혀 다른 딴 소리를 한다. 작가조차 이런 상황을 통제하거나 예상할 수 없다. 게다가 재미없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독서는 재미있지도 편하지도 않는 불편한 방법이다.

정혜신 박사의 <사람vs사람>''를 알아가는 방법에서, 심리테스트와 독서라는 두 방법의 중간 어디쯤 위치하는 책이다. 기본 구성은 책 제목과 같다. 인물1과 인물2를 대비해서 비교 분석한다. 인물들은 특정 주제를 통해 묶는다. 이를테면 '이명박''박찬욱''자신감'이라는 주제로 묶는다. 백미러 없는 불도저의 자신감, 상향등 없는 크레인의 자존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읽다보면 인물1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인물2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다. 물론 단정적으로 인물1이 나쁘고, 인물2는 비교적 본받을 만하다 말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법적인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서 인지, 아니면 서론에서 밝힌 대로 모든 인간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임을 나타내고자, goodbad가 공존함을 보여주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읽어보면 확실히 안다.

이 책을 일종의 심리테스트라고 보는 이유는 두 인물-두 개의 답-을 통해 ''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인물 간 비교를 통해 특정 주제에서 나는 어느 인물과 비슷한가를 끝없이 비교하게 만든다. 언뜻 비슷하지만, 극단적으로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보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들은 유명인사이기에 더 흥미롭다. 심리테스트를 보면, 나와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나 유명인을 소개해주지 않는가. 그와 비슷하다. 인물1일 수도, 인물2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표류하거나, 이도 저도 아닐 수 있다. 사람은 복잡한 존재이니까. 그래서 나를 알 수 있는 방법 중 '독서'에도 해당한다. 딱 이거라고 정답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혜신 박사가 인물들의 발언, 행동 등 전방위적으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분석하다보니 보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인물1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할 테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니 좋아할 사람은 드물겠지만. 인물2 입장에서는 칭찬인 듯 아닌 듯 헷갈릴지도 모르겠다. ‘심리평전이니 만큼 평가가 빠질 수 없다. 평가는 결국 일정 부분의 goodbad를 나눌 수밖에 없으니, 그게 또 하나의 묘미다. 나아가 인물1에 대한 조언도 하고, 인물2에 대한 응원(?)도 한다. 꼭 인물들을 향한 게 아니라는 느낌이다. 인물과 비슷한 사람들을 향해, 독자를 향해 비슷한 말을 던지는 게 아닐까. 전작인 <남자vs남자>도 기대된다. 혹시나(?) <여자vs여자>도 쓰신다면 매우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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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일생은 침침한 눈으로 바늘귀에 실을 꿰려는 행위처럼 내면의 자기와 외면의 자기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의 연속이다. p.16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는 게 좋다, 나쁘다의 일차원적인 태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자신감이란 결국 한 인간의 이 '중간지대'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한 지표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중요한 잣대라는 말이다. p.17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일에 대한 인식은 '원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치열한 자기성찰조차도 원점에서 시작하지 않을 때는 '습관적 치열'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식의 습관적 성찰을 무기로 자신에 대한 타인의 비판을 무마시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이전의 '틀'을 제쳐놓고 인간의 개별성에 먼저 주목하여 그 일의 의미를 엄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속도와 효율성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 p.37

현실감각을 유지하려면 타인의 행위 뒤의 동기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현상적 시각이 필요하다. 내가 보고 싶은 상황만 보지 말고 나와 타인의 전체적 현실을 동시에 인식해야 하는데 p.85

현실감각은 한 개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까닭에, 어떤 이의 현실감각을 살펴보는 일은 단순한 스타일의 차원을 넘어 개인적 성향이나 가치관의 문제로 이어진다. p.86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프로세스다. 정신분석 치료에서, 내담자가 말하는 내용 자체보다 그 내용을 펼쳐 보이는 과정에 그 사람이 가진 문제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p.105

천륜은 때로 모든 역사적 진실을 뒤덮는다. p.157

부정적인 오해도 괴롭지만 지나친 미화도 사람을 힘들게 한다. 사람은 '좋은 것'보다는 '나인 것'에서 최고의(p.234) 평화를 느끼기 때문이다. p.235

역사소설은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보다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살고 있는 시대의 배경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 황석영 p.268

인간은 원래 과거에 겪은 쓰라린 일보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더 잘 회상할 수 있다고 한다. 또 과거의 괴롭고 쓰라렸던 일들이 지금의 행복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믿는다. p.271

'내 희망'을 '욕심'으로 간주하는 타인과의 투쟁에서 우위에 서려면 더 교묘하고 더 자극적이어야 하고 더 전투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p.277

나의 요구가 아닌 뭇사람들의 요구를 모아 그걸 다시 '희망'으로 묶어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건 아니다.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을 갖추는 데는 '시대의 고통'을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혹독한 과정(p.293)이 따르기 때문이다. p.294

부끄러움이란 '자아에 집중하고 자존감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남자는 자기 중심이 튼실한 매력적인 남자라는 게 내 생각이다. p.334

그가 생각하는 '좋은 방송'의 기준은 무(p.399)엇일까? "상식적인 수준에서 옳은 것이요. 힘없는 사람,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하는 거지요." ... "상식적 판단에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자."고 다짐한다. ... 어쩌면 사회란 개인의 그런 건강한 일관성을 바탕으로 진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p.400

심리학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사람들은 좋은 경험과 연합되어 있는 사람들은 좋아하고 나쁜 경험과 연합되어 있는 사람은 싫어한다고 한다. 이 원리에 따르면 처음에는 아무런 좋고 싫은 감정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상황과 지속적으로 짝지어질 경우 그 상황에 맞는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p.407

존재성이 있는 사람이라야 타인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은 '존재성'에 있으며, 존재성이란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드러냄으로써 상대의 존재도 그만큼 명백해지게 하는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재성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만 일어난다.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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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검찰-최강욱]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 Memento 2018-08-1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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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권력과 검찰

최강욱 저
창비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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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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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우 비효율적인 장치를 만들었다. 균형과 견제, 권력의 분산 말이다. 그래서 공화국은 행정권(정부)를 입법권(의회)를 분리시켰다. 그리고 이 둘의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독립된 권력인 사법권(법원)을 통해 삼권분립을 정립했다. 대통령도 의회의 견제를 받으며,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을 당한다.(심지어 짧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두 번, 넓은 의미에서 보면 세 번이나 있었다.) 국회는 법과 예산이라는 강력한 힘을 가지지만, 아무래도 일치 단결하기 쉽지 않다. (물론 의원분들의 권익을 위해서는 잘 뭉치는 듯 하다.) 법원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강력하다. 저마다 큰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존재가 있다.

검사.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다. 그들은 법무부(행정부) 소속이지만, 법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소권을 틀어쥐고 있으며, 경찰의 수사를 지휘할 수 있다. (그러지는 않겠지만) 조사 자체를 못하게 할 수 있고, 조사를 하더라도 기소하지 않으면 법원에서는 재판을 할 수 조차 없다. 심지어 수틀리면 대통령과 맞짱을 뜨는 존재이기도 하며(이는 많은 선례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입법기관에도 활발하게 진출한다. 오지랖이 넓어서 안끼는데가 없는 존재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들이 유능하고 유용하기에 안낄래야 안낄 수가 없는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전문가들의 결론은 한결같았다. 대한민국 검찰은 너무 많은 힘을 갖고 있다. p.274" 사실 굳이 전문가가 아니라도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다.(설마 본인들은 모르시지 않겠지) 모두가 정치검찰, 떡검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소수의 미꾸라지 때문에 시스템을 고치는 것이 무리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막강한 힘'을 선의와 양심에만 맡겨두는 일 역시 무리다. 우리는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에서 살고 있다. 그들만 예외일 수 없다. 기소독점권 폐지,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그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답을 찾고자 노력했기에 지금의 시스템을, 이 나라를 이뤘다. 그 고민에 좋은 보탬이 될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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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나 약속으로 평가받고 싶어하지만, 사실 봐야 할 건 과거의 일이죠. p.131

판사가 할 일은 정책의 효과나 타당성을 검증하는 일이 아니라 이 정책이 법에 맞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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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김웅]책을 읽으며 두 사람이 떠올랐다. 유시민 작가와 서민교수다. | Memento 2018-08-1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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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검사내전

김웅 저
부키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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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두 사람이 떠올랐다. 유시민 작가와 서민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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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내전>을 읽으며 두 사람이 떠올랐다. 유시민 작가와 서민교수다. 김민섭 작가가 이 책의 묘미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검사들)의 실재 모습을 들여다보고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나는 어떤 물음표를 가지고 살고 있는지, 어떤 눈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p.18)"고 말이다. 

 서민 교수는 그의 책 <서민 독서>에서 "난 사람들과 많이 접촉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책을 쓰라고 얘기한다. (p.94)"고 한다. 그들이 책을 써서 기록을 남겨야만 간접경험이 전해져야 실상을 알고 서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록으로 남기지 않더라도 이야기로 전해질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지속성에서 효과는 미약하다. 그런 점에서 검사내전은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우리가 가진 검사에 대한 정보는 매우 희박하다. 떡검이니 스폰서검사니 해서 뉴스보도에 의해 만들어진 부정적인 이미지 아니면, TV나 영화에서 나오는 멋지고 환상적인 모습이 전부다. 그것도 아니면 출세를 위한 통로라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검사라는 직업을 전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도 생활인이고 직장인임을 간과하는게 아닐런지. 일반화는 불가능하겠지만, 검사의 생각법을 일견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다.

 유시민 작가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세상은 완전히 희거나 검은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며 타고난 악당과 성인군자가 싸우는 무대도 아닙니다. 세상은 불완전한 인식 능력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들이 고뇌와 번민 속에서 서로 다투면서, 그리고 저마다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바로잡아가면서 살아가는 곳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언제나 '올바른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유시민

 그의 생각이 언제나 '올바른 생각'은 아니겠지만, 비교적 '올바른 생각'에 가깝다고 본다. 항상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고 고뇌하는 사람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상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현실에 발을 디디고 굳건히 서있고 그 선자리를 항상 돌아보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검사'도 비슷하다. 검사로서 자신의 위치를, 그리고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에 대한 본인만의 생각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선과 악이, 원인과 결과가 그렇게 쉽게 구분될 수 없.(p.153)"음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어떤 이상적인 목표가 아닌 현실에 발을 딛고 서있다. 그렇다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영원히 멈춰있지 않다. "곤궁하다고 다 청렴한 것은 아니(p.440)"라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 본인의 직업이 어떤 의미인지를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검사로서 살아오면서 느낀 직업적 고뇌, 인간적 고민, 개인적 견해가 비교적 '올바른 생각'에 가까워지고자 노력했다고 믿게 한다. 그가 보여주는 다양한 지식은 덤이다.

 추천사를 쓴 김민섭 작가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 이 책은 검사의 모습을 들여다 보기에도 좋고, 더불어 김웅 검사가 누구인지 들여다보기에도 좋다. 책도 좋고, 책의 추천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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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의 추천사)그들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보고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여러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다. 더불어 김웅 검사를 통해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나는 어떤 물음표를 가지고 살고 있는지, 어떤 눈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p.18

논리와 이성의 천적은 부조리가 아니라 욕심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주성분은 욕심, 욕망, 욕정이다. 우리는 '욕심'이라는 거친 바다 위를 구멍 뚫린 '합리'라는 배를 타고 가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마땅히 쉼 없이 구멍을 메우고 차오르는 욕심을 퍼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욕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그래서 우리는 욕심으로부터 논리와 이성을 지켜내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 결과 아무리 허술한 속임수라도 피해자의 욕심과 만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p.83

피해자도 헌법상 기본권이 보장된 우리나라 국민이지만 실제로는 2등 국민이다. p.92

희망은 낭비뿐 아니라 관대함도 부른다. p.104

길은 모를 때는 그냥 그 자리에서 멈추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p.112

만만한 데 말뚝 박고, 생가지보다 마른 가지 꺾는 법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이니까 사기 치는 것이다. ...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기도 마찬가지다. p.115

목 좋은 곳의 카페와 함께하(p.117)는 여유로운 노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서울의 건물 같은 것이다. 지천으로 깔렸는데 우리 몫은 없다. 그런 망상에 가까운 희망은 망하는 게 당연한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p.118

흔히 사람들은 위기가 기회라고 설교한다. 정말 그럴까?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듯 위기는 위기다. 그것이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위기가 진짜 기회라면 위기를 만들어주는 컨설팅 회사가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보면 사실 위기가 아니었던 경우가 더 많다. p.140

진 꽃은 다시 필 수 있지만, 꺾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한다. p.142

청년에게 희망을 주라는 말도 사기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특혜를 준다. p.149

선과 악이, 원인과 결과가 그렇게 쉽게 구분될 수 없다. 만약 쉽게 구분된다면 그건 감정 탓이다. 감정이 이끄는 결론과 확신은 편하지만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p.153

사람들의 기억은 부드럽고 잘 구부러지면서도 완강하다. 쉽게 변하고 변한 후에는 고집스럽다는 뜻이다. p.176

경청은 상대(p.192)방과 나의 의사와 진의를 확인하고 오해와 견해차를 줄여 서로 교감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자기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은 늘 그렇듯 이론과 다르다.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서로 대립되는 이해관계 속에서, 게다가 격분한 상태에서 만나다면 이런 이야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p.193

상대방의 의도를 빨리 알아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해야 나와의 거리감을 알 수 잇고 서로 일치하는 지점을 확인해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p.194

경청하는 것은 어쩌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공기청정기 아저씨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세상이 엉망진창이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걸 정당화할 수는 없다. ... 망각은 잊는 것이 아니고 다만 새로운 기억으로 덮이는 것이라고 햇다. p.207

형사부 검사는 다른 인생의 찢어진 틈을 들여바도고 그것을 꿰매는 직분이다. p.248

검찰청이나 법원까지 오는(p.256) 길은 우연히 잘못 들르게 되는 길이 아니다.  p.257

흔히 처벌이 능사는 아니라고 한다. 이는 처벌만 하면 안된다는 말이지 처벌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p.258

인권 의식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p.261)고,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아이들의 인권이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장래에 불이익이 되는 처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p.262

인간의 존엄성이란 눈물 흘리기 좋은 감성적인 소재가 아니다.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냉철하고 엄중한 과제이자 요구이다. 존엄한 것은 함부로 대할 수 없고, 훼손될 경우 반드시 응분의 대가가 따라야 한다. 마음대로 짓밟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짓밟힌 것이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간청해야 한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존엄한 것은 두려운 것이고 원시적인 것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p.263

사실 의지로 되는 것은 거의 없다. 의지란 아주 극단적인 상황에서 예외적으로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대부분은 여러 가지 여건이 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우연한 행운을 마치 노력의 대가인 것처럼 속이기 위해 동원하는 말이다. p.329

답은 되도록 말해주지 않는 것이 좋다. 답이라는 것이 도그마가 될 수도 있고, 정작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꼭 말해야 한다면 질문한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다. p.345

가장 중요한 것은 원인을 찾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원인을 찾기 위해서 무척 어려운 과학적 추론이 필요하며 자신은 그것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실패에 대한 인식이다. 원인을 찾아내는 것보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이 더 높(p.349)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고 대부분 사람을 무시한다는 반감만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죽었다. p.350

'법대로 하자'는 말은 매우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도발이다. 법대로 하자는 것은 상대방과의 공존과 상생은 개뿔, '널 반드시 박멸시키겠다'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법에 의한 분쟁 해결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보다 새로운 분쟁과 갈등을 낳는 경우가 많다. p.370

정의는 기본적으로 '부정'이 논리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부정의'가 무엇인지는 대부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p.400

사람들이 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간과하는 것은, 법은 불구이자 어느 하나만이 옳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분쟁 해결 방법이라는 점이다. 일도양단과 이분법적인 해결 이외에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법은 아직도 유일한 분쟁 해결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에 대한 의문이나 반성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p.416

범죄 수사는 범죄자와 국가 간의 대결이다. 그러다보니 불공정한 게임이 된다. 강력한 국가와 나약한 개인의 대결이니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 검사가 바로 세워야 할 정의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절차적 정의'이다. 421

우리나라에서 자기 생각을 넙죽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가끔 질문의 목적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싶어(p.438)서가 아닌 경우가 많다. p.439

불법화는 보충적인 것으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야 하는 항생제와 같은 것. p.439

곤궁하다고 다 청렴한 것은 아니니까. p.440

우리나라 정치는 시아파나 수니파의 대결과 같다. 옆에서 보기에는 다 같은 이슬람이고 그게 그건데, 자신들은 엄청나게 다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이라는 것은 폭력이다. p.466

(갑질에 있어서) 우리는 공범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방관자였다. 471

'제노포비아'는 감기와 같다. 몸이 약해지면 걸린다.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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