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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이정모] 정치적 선명성이 강점이자 약점 | Memento 2020-08-2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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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저
바틀비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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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재미있고 쉽다. 과학적 태도를 익히기에 좋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선명하다.(마지막은 단점일 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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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어렵다. 어린시절 세상의 무서움을 모를 때, 꿈이 과학자였다. 세상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을 것 만 같았던 시기였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재능이 없음을 깨달았다. 과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은 실패를 이겨내는 힘이었다. 실재로는 수학에 약해서였지만, 사실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과학자는 매일 실패하는 사람들(p.340)”임을 알았다면 꿈조차 꾸지 않았을 테다. 그런 나에게 이정모 관장의 <저도 과학이 어렵습니다만>은 제목만으로도 울림이 있었다. “스스로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을 역임하고 계시다. 나름 과학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책의 첫 번 째 강점은 쉽고 재미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점이지만, 제일 어려운 부분이 어려운 부분을 쉽게 쓰는 것이다. 대부분의 글을 쓰다보면, 있어보이게 하기위해 쉬운 부분을 어렵게 쓰곤 한다. 이정모 관장의 글은 다르다. 과학이 쉬울리는 없겠지만, 최대한 쉽게 쓴다. 게다가 위트까지 들어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과학적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두 번째 강점은 짧은 분량의 글 안에 과학 이야기와 생각할 거리들이 다양하다. 특히,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은 깊게 새겨봄직하다. 우리는 과학이 진실이자 신앙인 시대를 살고 있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이 과학자는 제사장이라고 평했는데, 현 시대의 상황을 잘 진단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정모 관장은 이러한 상황을 경계한다. 과학은 틀린 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만(p.10)”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이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게 아니다. 과학이란 의심을 통해서 잠정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p.142)”이므로,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김상욱, p.11)”이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고, 이 책은 그 연습을 위해 가장 좋은, 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지막 강점은 정치적 선명성이다. 되려 약점이 될 수 있겠지만, 선명하게 본인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한다. 아인슈타인이 에이브러햄 링컨 탄생 130주년에 한 말을 인용하며, “과학자에게는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적극 나설 의무가 있습니다.”(p.223)고 주장한다. 여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정치 과학자라고 욕할지 모르겠다. 분명히 정치적인 계산만으로 행동하는 과학자가 있다면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위선이고 과학을 무너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계산으로 데이터를 조작하고 부정을 묵인하고 도덕적 문제에 침묵한다면 절대적으로 잘못이다. 하지만, 자신의 과학,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을 올바르게 표명하는 거라면 적극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서로간의 적극적인 정치 속에서 과학이 또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나도 과학을 모른다.”는 저자의 말은 겸양의 표현이든, 인간의 유한함을 의미하든, 과학이란 학문의 위대함을 의미하든 결론적으로 한 가지를 보여준다. 과학은 단순 학문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임을. “틀린 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만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p.10)”. 한때 모든 학문이 과학적이라는 말로 객관성을 얻으려 노력했고 나름의 성과(비판도 있겠지만)를 냈다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생활에서의 과학적 태도가 필요한 때인지 모른다. 가짜뉴스가 판치고, 극단적인 의견들이 넘쳐나는 지금.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이 진리가 아님을, 언제든 증거들이 쌓이면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 이런 삶의 태도가 중요한게 아닐까. 오히려 과학이 신앙이 되어가는 시대에 과학적인 태도가 가장 부재하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과학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살지만 비과하적 태도가 많아지는 지금 이런 글들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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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지식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매일 틀린 지식을 쌓고 있는 셈이다. 틀린 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만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10

칼 세이건은 과학은 단순히 지식의 집합이 아니다.(p.10) 과학은 생각하는 방법이다라고 했다. 존경하는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p.11

지식을 쌓는 것은 부지런하기만 하면 되지만 생각하는 방법과 삶의 태도를 바꾸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다. p.11

창의성은 심심할 때 나온다. 좀 쉬자. p.35

당장은 무용해 보여도 언젠가는 우리 삶을 바꾸는 것이 과학이다. p.47

과학적이라는 것은 최대한 간단하게 잘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오컴의 면도날 ... 것은 탐욕이며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것은 바로 염치. 염치만 있으면 누구나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p.108

과학이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게 아니다. 과학이란 의심을 통해서 잠정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이야기가 멈추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p.142

믿음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남을 해롭게 한다.” <맹자> p.143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심은 진실로 가는 첫걸음이다. p.177

대화의 기본은 팩트와 스토리를 구분하는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내가 머릿속에서 지어낸 스토리인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스토리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먼저 팩트를 이야기하고 확인해야 대화가 된다. p.201

과학은 의심하고 질문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것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p.202

약학 칼럼니스트 정재훈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항상 세 가지를 의심해야 한다. 자신의 눈, 자신의 기억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이 바로 그것이다.” p.207

권위에 도전하고 신화를 부숨으로써 사회를 진보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과학인데, 때로는 오히려 권위와 신화를 공고히 만드는 데 과학이 복무하기도 한다. p.221

과학자에게는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적극 나설 의무가 있습니다. ... 과학자는 ... 어렵게 얻은 정치적, 경제적 신념을 똑똑히 밝힐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에이브러햄 링컨 탄생 130주년에 한 말이다. p.223

자연에 평화로운 죽음이란 없다. 그것이 바로 자연사다. p.244

인간 사회가 동물의 왕국과 다른 것은 서로 존중하고 공정한 규칙 안에서 경쟁하고 협력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국이 재미있다고 인간 사회마저 동물의 왕국처럼 만들면 안 된다. 자연을 반면교사로 삼고 인간 사회를 더욱 명랑한 곳으로 만들려고 고민하기 위해 필요한 곳이 바로 자연사 박물관이다. p.244

놀면서 사회를 배우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며, 위험을 감수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호모 사피엔스의 결정적인 장면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동물 가운데 유년기가 가장 길다. 부모는 자식들을 오랫동안 돌봐야 하며 자식들은 성장하기 전까지 한참을 놀았다. 이에 반해, 네안데르탈인은 가능한 한 빨리 자라서 연장자의 자리를 채워야 했다. 그들은 유년기가 훨씬 짧았다. 유년기는 놀면서 배우고 사회성과 창의력을 개발하는 시기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p.253

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수컷은 암컷을 꼬시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한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부질없는 짓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수컷 가운데 죽기 전에 암컷 곁에 한번이라도 가본 개체는 전체 수컷 가운데 4%에 불과하다. 나머지 96%의 수컷은 평생 짝짓기 한 번 못해보고 생을 마감한다. 여기에 비하면 인간 남성은 정말로 복받은 존재다. p.287

철학자는 자신이 누군(p.309)지 찾는 사람이고 천문학자는 자신의 위치를 찾는 사람’ p.310

본질에 접근하는 수준에서 문화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과학의 대중화다. (p.310) ... 그저 쉽고 재밌게 설명한다고 해서 과학 대중화 운동은 아닌 것이다. p.311

도마뱀 꼬리 잘라내기는 힘센 놈들이 자신의 죗값을 힘없는 약자들에게 온전히 덮어씌우고 빠져나가는 행위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런 데 도마뱀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도마뱀은 그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도마뱀은 남의 꼬리가 아니라 자기의 꼬리를 잘라낸다. 엄청난 자원을 포기한 것이며 이후의 삶도 만만치 않을 것을 잘 알면서 잘라낸다. 그리고 일생에 단 한 번만 꼬리를 잘라낸다. / 그런데 돠뱀 꼬리 잘라내듯 곤경을 모면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자기가 아니라 남을 도려낸다. 거의 모든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을 포기할 뿐이다. 그리고 꼬리 자르기를 한 번만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평생을 그렇게 산다. 도마뱀이 그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 재생능력은 하등한 생명체에게만 있다. 왜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일까? 몸이 불편해진 사람들을 아직은 멀쩡한 사람들이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손과 발과 눈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p.327

과학자는 매일 실패하는 사람들이다. p.340

변화는 도둑처럼 찾아온다. p.366

이제는 완전히 다른 시대다. 부모의 지난 인생 경험이 자식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다. 부모가 살았던 시대는 자식이 살아갈 시대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의 권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하는 시대다. 다만 부모의 애정만은 가슴에 품으면서 말이다. p.368

창의성이란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게 아니다. 무슨 괴상한 생각을 해내는 게 창의성이 아니다.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 창의성이란 있는 것들을 이렇게 엮고 저렇게 편집하여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창의성의 근본 바닥에는 기억된 지식이 있다. 기억이 없으면 창의성도 없다.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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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와 선비-백승종] 우리에게 선비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 Memento 2020-08-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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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신사와 선비

백승종 저
사우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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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다시 선비(정신)을 소환하는 이유는 한국의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길은 외국이 아닌 우리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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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킹덤> 시리즈의 유행으로 세계적으로 갓이 유행했다. GOD와 발음의 유사성 때문일까. 정작 한국인들은 의아한 반응이었다. 사실 갓 하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상투와 비실용적인 도포와 함께 고지식하고 답답한 선비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조선사회를 이끌었던 선비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아픈 역사의 원흉으로 기억한다. 근대화 시기에 성리학에 매몰되었던 그들은 고고한 이상을 실현하기는커녕 지금까지도 역사의 상처를 남겼다. 물론 선비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할 만한 문화를 해외에서 주목해주니 멋쩍은 기분이 든다.

<신사와 선비>는 묻는다. “오늘의 우리에게 선비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p.287)” 과거의 고리타분한 유물일까. 아니면 역사의 과오에 불과할까. 저자는 대척점에 있는 두 존재를 비교하여 설명한다. 동양(한국)에 선비가 있다면 서양에는 신사가 있다. 이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주목하는 것은 차이점이다. 서양의 신사는 자기 문명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면, 동양의 선비는 그렇지 못했다. “서구에서는 신사의 길이 결국 시민의 길이 되었다. 그러면 선비의 길에도 과연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p.11” 이를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았던 선비라는 존재에 질문을 던진다.

결론적으로 책은 우리의 선비들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낙관적이었다.(p.287)” 평한다. “‘인간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이상적인 선언은 학자나 사회의 선생으로서 역할을 할 때는 무방하다. 오히려 권장할 만하다. 문제는 국가를 경여하고 운영함에서다. 세상일은 이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물론 이상 없이 현실만으로 살아갈 때, 그 현실은 지옥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럼에도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국정 운영자로서는 아마추어일 수 밖에 없다. 정치든, 삶이든 결국은 이상과 현실 간 타협의 연속이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수기치인의 성리학적 정치는 분명 이상적이고 좋은 의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갓과 같이 선비 역시 되살아 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전통의 계승이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일이 아니며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후세가 공감하는 가치와 태도를 되살리는 것이면 족(p.13)”하다. 그래서 책은 힘줘 말한다. 선비 혹은 선비정신은 한국 사회를 구할 길이다. 우리는 잊어버린 문화유산에서 시민들이 높은 문화적 수준에 도달한 분권적 사회를 지향하는 것. 지식인과 시민이 공고한 연대를 구축한 사회 (p.379)”를 만들어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조선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우리가 지금껏 문제라고 생각하는 수 많은 굴레들이 이 시기에 유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상 500년의 왕조를 유지한 사례는 흔치 않다. 그것도 무력을 동원한 통치가 아닌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할지 모른다. 그 체제가 500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 어떠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지배층이었던 선비는 분명 어떤 탁월함을 지녔을 테다. 저자는 그 힘을, 우리가 잊고 살았던 탁월함에 대해 얘기한다. “문화적 전통은 단속적으로 후세에 영향을 준다.(p.12~13)” 그렇기에 지금 선비에 대해 고민할 시기다. 한국 사회의 새로운 길은 멀리 있지 않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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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발견된다. “지혜로운 선비는 평소에 서류를 잘 정리해둔다. 임기가 끝난 그다음 날 소리 없이 관아를 떠나는 것은 맑은 선비의 법도다. 모든 장부를 투명하고 바르게 마감하여, 절대 이러쿵저러쿵 잡음이 나지 않게(p.5)하는 것이 지혜 있는 선비가 할 일이다.” p.6

신사의 길과 선비의 길에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았으나, 양자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신사의 길은 중세 기사도에서 비롯되어, 결국 근대 시민사회의 미덕으로 승화되었다. / 선비의 길은 그렇지 않았다. 조선 500년 동안 숱한 역사적 굴곡을 겪으며 선비의 길은 더욱 세련되고 빛났으나, 퇴락한 점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가(p.10) 조선왕조의 멸망과 더불어, 선비는 명맥조차 잇기 어렵게 되었다. p.11

서구에서는 신사의 길이 결국 시민의 길이 되었다. 그러면 선비의 길에도 과연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p.11

문화적 전통은 단속적(p.12)으로 후세에 영향을 준다. ... 전통의 계승이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일이 아닐 것으로 믿는다.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후세가 공감하는 가치와 태도를 되살리는 것이면 족하다. p.13

기사도라는 중세적 유산이 신사도로 변형되어, 근대 시민국가의 건설에 이바지한 것이었다. p.19

기사도 정신은 서양 중세 귀족문화의 정수라고 볼 수 있다. 기사의 도덕성이 강조되었고, 전통적인 상무정신이 문자로 고정되었다. 기사는 영주에 대한 봉사를 신성한 의무로 받아들였다. 기사와 왕 또는 영주의 관계 역시 법제화되었고, 거기에 종교적 신성함까지 부여되었다. p.34

하나의 제도와 관념이 후대에도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거기에는 모종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숨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통의 재발견은 그 전통이란 것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리라는 사회문화적 확신에서 출발한다. 망각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화려한 수사의 옷을 입고 부활하는 배경이다. p.38

어느 사회에서든지 지배층은 그들의 가치관에 합당한 도덕과 규범을 상정한다. 또한 그들은 계급적 취향에서 비롯한 독특한 미적 관점을 공유하기 마련이다. 지배층의 미학적 관점과 도덕 규범은 역사의 용광로에서 녹아, 하나의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한다. p.83

사상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이고 다카모리 등은 구한말의 위정처사파에 해당했다. 그들은 유교적 세계관을 옹호했고, 서구 지향의 근대화를 끝까지 반대했다. 그런 점에서 양자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였으므로, 무력투쟁을 통해 나라의 장래가 결정되(p.89)었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여서 끊임없는 논리적 공방이 계속되었다. 결과적으로 저들은 6개월간의 전쟁을 통해 장차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조선의 찬반양론에는 끝이 없었다. 어느 편이 더 나았을까. 대답하기 난처한 문제다. 그러나 어느 편이 더 효율적이었는지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간명하다. p.90

베네딕트의 일본관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나의 관심을 끈다. 첫째, 그의 평가는 중요한 사안을 모두 이항대립으로 설정했다는 사실이다. 얼핏 보면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관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평가는 인류사회의 어느 집단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 (p.95) 둘째, 일본에 대한 베네딕트의 호기심과 긍정적인 관점이 내게는 충격적이다.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은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뒤였다. 그러므로 그의 연구는 미국이 한창 일본과 전쟁을 벌이던 1940년대에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베네딕트는 적국인 일본이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베네딕트가 니토베의 책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p.96

서양인들이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호감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서너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17세기부터 일본은 네덜란드와 부단히 교류했다. ... 둘째, 19세기 후반 서양에 다량으로 전파된 일본의 다색판화도 일본 문화에 대한 평반을 좌우했다. (p.97) ... 또한 에도시대에 일본에서 생산된 도자기 역시 서양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 셋째, 일본은 비 서구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서구식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였다. ... 이에 더해 니토베 같은 일본의 근대적 지식인들은 서구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자를 다수 간행했다. p.98

기사와 사무라이의 차이(p.100~102), 선비와 사무라이의 차이(p.102~103)

지난 1000년 동안 기사도는 유럽 사회의 변화를 추동한 힘이었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p.104

클라크는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라는 책에서, 세계 주요 국가의 역사적 인구통계를 비교, 분석했다. 다각(p.108)적인 연구 고찰을 통해서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 영국의 상류층은 하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자녀를 출산했다는 것이다. (p.109) ... 상류층의 사회문화적 특징이 영국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 인구 증가와 가치관의 변화가 산업혁명의 주요한 동인이며, 산업혁명의 효과를 배가시켰다. (p.113) ... 상류층의 자녀들이 사회 각 부문에 진출하자, 사회윤리 또는 가치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p.117

이러한 영국의 인구 동향은 일본 및 중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동아시아의 강대국에서는 상류층의 인구 증가가 저조했다. 하층민의 자녀 수보다 약간 많은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일본과 중국의 상류층은 자녀의 신분이 강등될까 염려했다. 그래서 출산율을 낮추는 데 힘을 쏟았다는 것이다. p.114

내가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영국 산업혁명의 주축은 젠트리였다는 점이다. p.129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은 1750년경이었다. 혁명이라고 표현했으나, 그것이 말 그대로 혁명적이지는 않았다. 기술혁신의 과정은(p.130) 대단히 복잡했다. 산업화 과정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p.131

18세기 영국인들이 경험한 역사적 변화 가운데서 나의 주목을 끄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기술상의 발전과 진보가 눈부셨다. ... 둘째,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에는 유별난 점이 있었다. (p.133) 나라처럼 사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보장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사유재산권을 신성시했다. 특허권까지도 인정하는 사회가 영국이었다. 셋째, 영국인들의 세계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따. 여기에는 칼뱅주의의 영향이 컸다. 그들은 근면한 태도로 생업에 종사하여 재산을 증식하고자 노력했다. 칼뱅주의자들의 이러한 윤리관은 노동과 선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p.134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여덟 가지로 정리하고 싶다. 1. 농업생산력의 발전, 2. 인구 증가, 3. 기술상의 진보, 4. 지리적 이점, 5. 사회간접자본의 발달, 6. 영국의 세계 지배, 7. 정치적 안정, 8. 사상적 이유. p.136

20세기에 인류사회가 겪은 많은 변화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엇일까.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민적 가치의 보편화가 아닐까 한다. 전통사회의 최대 약점이었던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사회질서가 마침내 그 수명을 다했다. 영국의 젠트리가 선도한 산업혁명이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혁신한 셈이다. p.148

기독교는 보편종교다.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는 거듭된 도전과 위기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역사를 견인하는 놀라운 힘을 잃지 않았다. p.153

스포츠맨십 교육을 유난히 강조한 학교는 영구의 퍼블릭스쿨이었다. 중세 기사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p.157) 명백하다. 퍼블릭스쿨에서는 스포츠맨십을 젠틀맨십, 곧 신사도의 실천으로 간주했다. 청소년들이 신사다운 성품을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교과목이 스포츠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페어플레이란 곧 신사도였고, 그 근본정신은 기사도에 맞닿았다. p.158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선례를 따랐다. 그들 역시 시민교육에 박차를 가했다. 고전인문 교육을 교과의 중심으로 삼고, 시민의 인격을 도야했다. 유럽 각국은 애국적이며, 질서 있고, 건강한 시민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따. 그 과정에서 신사도의 핵심 가치인 예절과 명예심, 애국심과 희생정신, 지도력과 근면, 성실이 강조되었다. 또 신사도를 강조하는 스포츠가 학교 교육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체육 활동의 일환으로 시민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 들었다. p.166

인간의 삶에 쾌락을 선사하는 선을 추구한다. 반면에 불행의 원천인 악을 피한다.’ 이런 주장은 중국 고대의 철인 맹자의 성선설과도 유사하다. 조선 선비들의 심성론과도 맥락이 일치한다. / 그러나 동서양의 철인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선비들은 개인과 사회의 도덕심을 배양하는 데 중점을(p.169) 두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도덕보다는 인간의 권리를 강조했다. 그들은 인간의 쾌락 또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인간은 누구나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바, 이것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천부의 권리라는 확신이었다. 선비들은 끝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p.170

근대사회의 지배권을 행사한 것은 부르주아지였다. 그런데 그들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은 젠트리 또는 전통귀족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신사도는 근대사회를 거쳐 현대의 시민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적지 않다. p.182

유럽인들은 중세 이후 수백 년 동안 많은 역사적 경험을 축적했다. (p.194)편으로 그들은 기사도와 신사도의 전통을 의식적으로 계승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법과 기독교 신앙의 영향 아래 근대 자본주의의 싹을 틔웠다. 그리하여 현대사회는 시민의식이라 불리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p.195

한편 서구사회는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도, 합리적 판단 또한 중시한다. 그들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만 구별하는 단계에서 벗어났다. 자치와 연대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는 분위기다. 서구 시민사회는 여러 가지 여사적 경험을 겪으며 점차 저항적 존재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현대 시민사회의 미덕으로 부각된다. 21세기 서구의 시민권은 대략 그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p.195

수기치인은 순수한 도덕적 개념이다. 나 신과 온 세상을 교화 한다는 것이다. 가르쳐서 크게 변화시키는 실천적 행위다. 물리적으로 외압을 가해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형정이다. 순전히 도덕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예악이다. 선비가 추구한 수기치인의 길은 예악을 매개로 한 것이었다. p.206

조광조는 경연에서 여형의 사례를 자세히 아뢰었다. 그와 그의 부조를 표창하자고도 주장했다. 조광조는 여형의 예를 들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타고난 귀천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누구든지 정심성의로 수기에 전념한다면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광조에게 사노 여형의 사례는 여간 고무적인 것이 아니었다. / 그런데 불행히도 1519(중종 14) 겨울, 조광조의 시대는 일찌감치 막을 내리고 말았다. p.222

성리학자들은 예악을 형정보다 앞세웠다. 그들은 물리적인 힘(형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화를 통해서 살 만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 같은 시기 서양에서도 예절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 서양 사람들에게 예절이란, 신분과 교양의 차이를 드러내는 수단이자 정중하고 품위 있는 사교생활을 위한 도구였다. 그에 비해 조선 선비들의 관점은 전혀 달랐다. 선비들은 예절을 성리학적 이념의(p.232) 정화라고 확신했다. p.233

김장생과 송시열 등이 추구한 예학에 폐단이 없지 않았으나, 거기에도 순기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예의와 질서를 회복함으로써 도달하고자 한 구극의 세계가 있었다. 그것은 무한히 평화롭고 조화로운 대동의 세계였다. 차별과 대립이 완전히 소멸된 유교의 이상이 바로 대동 세계였다. 수기에 관한 송시열의 인식은 17~18세기 노론의 공통적인 가치관이기도 했다. p.234

가난하면 자신의 몸을 홀로 착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모두 착하게 만드는 것이다.” (<맹자> 진심장) 그는 이것이야말로 선비가 벼슬에 나아갈 때든, 집에 있을 때든 꼭 명심해야 할 가르침이라고 여겼다. p.237

천인합일설은 미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주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선비들의 굳센 의지를 표현하는 개념이었다. p.254

우리의 선비들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낙관적이었다. 인간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선비들의 이러한 신념만으로는 현실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어려웠다. p.268

조선 선비들의 이상을 세 가지 측면 ... 천인합일에 관한 그들이 철학적 모색 ... 하늘의 명령에 순응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그들이 그린 천명도 ... 시끄러운 세상사를 잊고 조용히 자연에 묻혀 살면서도 언제나 자신을 다련하고 후학을 기르기에 여념이 없던 선비들의 일상 p.286

오늘의 우리에게 선비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선비들은 지나치게 추상적인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또 자연과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체계적, 분석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다고 비파할 수도 있다. / 그러나 솔직히 말해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현대인에게 결핍된 많은 미덕이 있었다. ... 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망각한 채 살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적 자산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p.287

어지러운 세상에서 창고한 뜻을 세우기도 어렵지만, 그러면서도 심신을 온전히 지키기란 더욱 곤란한 일일 것이다. p.325

평생 인과 선을 실천에 옮기며,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애 쓰는 것. 이것이 출처의 근본이었다. p.331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허다한 난관을 뚫고 마지막 순간까지 내면의 높은 지향을 견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요체였다. p.333

16세기부터 조선 사회는 윤리적 인간의 시대를 맞이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선비들이 윤리적으로 완벽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윤리적 하자가 발견되면, 세인의 호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조선 사회처럼 윤리적 기준이 높은 사회에서는 자칫하면 위선으로 흐르기 쉬운 법이다 실제로 선비들의 언행을 살펴보면 위선이 의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물론 위선은 금물이다. 그러나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p.333

성리학을 근간으로 운영되었던 조선 사회의 굵직한 폐단을 몇 가지만 예시해보자. 첫째가 서얼차대, 둘째가 당쟁의 폐단, 셋째가 문체반정, 넷째가 금서를 통한 사상의 탄압, 다섯째가 위정척사를 내세운 쇄국정책이었다. p.339

풍속이 임금보다 무섭다, -장자 p.343

겉으로 보면,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국가였다. 그러나 그 실질은 달랐다. 조선은 마을공화국의 연맹체나 다름없었다. 선비들이 건설한 조선 사회의 실상은 우리가 지레짐작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 그로부터 우리는 한국 사회가 나아갈(p.378)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시민들이 높은 문화적 수준에 도달한 분권적 사회를 지향하는 것. 지식인과 시민이 공고한 연대를 구축한 사회라야 희망이 있다. 이야말로 비인간적 차별과 양극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한국 사회를 구할 수 있는 길이다. p.379

서당은 선비들의 정치적, 문화적 활동 거점으로 훗날 서원의 모체가 되었다. 또한 성리학을 연구하는 장소이자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p.416

조선시대의 스승과 제자는 정치적 운명을 함께했다는 점이다. 김종직의 제자들, 즉 정여창의 동문들은 거의 전부 무오사회와 갑자사화 때 중형을 받았다. 이렇듯 스승과 제자는 단순히 지식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학문적 이상을 공유하는 운명공동체였다. p.492

한국의 어느 기업이 공생자본주의를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내 생각에 유교자본주의는 동아시아의 현주소가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꿈이다. 만약 선비의 전통을 제대로 계승한다면 언젠가는 유교자본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p.501

바우만의 분석에 따르면, 시민들은 이러한 해방(자유)’를 원하지 않았다. 갑자기 확대된 자유란 무능의 동의어다. 인간이 책임과 의무를 버리면 권리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현대사회의 비극은, ‘사람들이 자유로움 그 자체를 싫어하고, 해방의 전망에 오히려 분노할 수 있다는 점이다. p.504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미래사회에 영감을 제공하는 전통의 가치를 함께 확인했기를 바란다. 이 시대의 좌표를 역사적으로 조망하는 기회가 되었다면 실로 다행이겠다. p.509

좋은 사회란 자신이 속한 사회가 결코 현재로는 충분하(p.509)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p.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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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6~7권-박시백] 역사의 진가, [35년]의 진가 | Memento 2020-08-1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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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고화질세트] 35년 6~7권 (총2권)

박시백 저
비아북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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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지만 현재에 살아 있고 미래를 지향한다. 박시백 화백의 [35년]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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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75주년 광복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전쟁, 외환위기, 금융위기 이어 일본 수출규제 위기 이겨냈다고 평가하며 자주독립의 나라를 넘어, 평화와 번영의 통일 한반도를 미래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동의하건 안하건, 확실한 바는 아직 우리는 완전한 독립을 이뤘다고 평가하기 힘든 상황이다.

역사의 흐름은 얄궂게도 전범국가인 일본이 아닌 한반도를 분단하도록 만들었다. 역사는 한반도를 반으로 두동강 냈다. 긴 수탈과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부족한 인적난 속에 반민족 청산은커녕 반민족행위자들이 유임되는 결과를 낳았고, 남북 모두 사회전반에 걸쳐 일제의 잔재를 솎아낼 시간이 부족해졌다. 여기에 6.25. 동란은 쐐기를 박았다. 양국 모두 독재체재를 구축했고,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쌍방의 대립은 상호 경쟁과 발전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소수의 지배층을 위한 명분이 되었을 뿐이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지만, 현재에 살아 있다. 완전한 독립이 이뤄지지 않았듯, 일제 강점기의 유산은 현재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바꿀 수 없다. 상처만 말끔히 도려내는 방법은 없다. 몸에서 살을 1파운드를 떼내면서 피 한방울 흘리지 않는 방법은 없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세대가 앞으로 더 줄어드는 만큼 유예된 청산은 앞으로 더 이루기 힘들테다. 남는 것은 기록과 기억 뿐이다. 박시백 화백의 <35>이 완결되었다. 여기에 또 다른 기록과 기억이 남겨졌다. 저자의 표현대로 더 많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활약상을, 기개를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너무 많은 사람, 사건, 이야기를 담으려한 모순의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한민족이 존재하는 한 이 모순은 영원히 지속될 테다. 다만 우리가 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역사는 현재에 살아 있지만, 미래를 향한다. 과거의 이야기를 복원해 오늘날 기록하고 기억함은 미래를 지향하는 일이다. 앞으로 잊지 않고,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역사의 진가, <35>의 진짜 의미는 여기에 있다. 당분간은 이보다 더 나은 기억은 보기 힘들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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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김동진] 기록하지 못하고 기억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 Memento 2020-08-1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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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김동진 저
서해문집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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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지 못하고 기억하기 힘든 이들을 위한 기록과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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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공동체의 의식적인 집단 기억이다. 긴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공동체가 겪은 일들은 이 의식적인 집단 기억에 주목한 누군가의 기록을 통해 역사가 된다. 그런데 모든 기억이 역사로 남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기억은 거대한 힘에 의해 끊임없이 되살려지고, 어떤 기억은 무관심 속에 잊히고, 또 어떤 기억은 잊힐 것을 강요받는다. p.5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저마다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이 역사가 될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하지만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패배자일지라도, 피해자일지라도 기록한 사람이 역사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독립운동사는 승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록을 많이 남기지도 못했다.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위치였다. 기록을 남겼다가는 자신 뿐만아니라 동지와 가족이 위험해질 우려가 높다. 그렇기에 기록에 남지도, 기억에 남지도 못한 수 많은 독립운동지사들이 있을 테다. 정당한 평가는커녕 영원히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을테다.

그래도 저자의 노력으로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이 책으로나오고, <암살>의 영화가 만들어 졌다. 그 후 이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혹자들은 의열단의 존재에 대해 불편해 할지 모르겠다. 의열단 단장 김원봉은 북한의 고위급 지도자로(비록 김일성에게 숙청당했지만) 6.25. 전쟁의 원수로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북한으로 가게 된 이유는 너무도 유명하다. 결국 해방기에 그를 포용해 내지 못한 남한 사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남에서도 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진정한 독립을 이룬 조국을 원했지만, 3의 세계, 자그마한 광장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과오를 정당히 평가해줄 역사마저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독립운동사를 만들어갈지 궁금할 따름이다. 해방기 일본 순사출신의 고문에 통곡을 하며 월북을 했다고 하는데, 정당한 평가는커녕 우리 역사에서 한켠 내어주지 못한다면 똑같은 일은 반복하는게 아닐는지.

영화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해서 아쉽지만, 그래도 한 번은 읽어봄직하다. 우리가 알고 있고 기억하는게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다면. 그래서 꾸역꾸역 무슨 말이라도 남겨본다.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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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만든 공간-유현준] 공간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들 공간 | Memento 2020-08-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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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저
을유문화사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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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공간을 만든다. 위기의 시대 우리는 어떤 공간과 생각을 만들어야 할까. 그것은 인류의 생존이 걸린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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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 따르면, 생물학과 사회학은 전 지구적 유사성을 설명하는 반면 지리학은 지역적 차이를 설명한다(p.94)”고 말한다. 이 지리가 사회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사회발전은 지리의 의미를 규정(p.96)”하는데, 여기서 핵심은 지리에 따른 기후다. 지리에 따른 기후가 사회의 발전 정도를 규정했고, 이 발전 정도가 역으로 지리의 의미를 변화시키면서 한계에 봉착했을 때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 한계를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흐름은 뒤바꼈다.

유현준 교수의 <공간이 만든 공간>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 맞춰 건축이 발전해온 모습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이 지리와 기후의 변화에 따라 건축이 어떻게 변화해 왔고,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어떻게 융합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살펴본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에서 두 가지 법칙체계-생물학과 사회학-가 지구적 규모에서 역사의 모습을 결정하는 반면, 세 번째 법칙체계-지리-는 동양과 서양이 이룬 발전의 차이를 결정(p.111)”했는지가 건축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두 문명 모두 사람이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공통점이 있지만, 지리와 기후라는 변수에 의해서 서양은 벽 중심의 건축을, 동양은 기둥 중심의 건축을 발전시켜 왔다. 여기에 누가 뛰어나고의 차이는 없다. 인류라는 공통적 특성을 바탕으로 기후에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했을 따름이다.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 기후, 농사법, 공간의 성격 그리고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생각, 이 네 가지는 때로는 한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때로는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수천 년간 고유의 문화적 특징을 형성해 왔다. (p.223~224)”

 

이런 차이가 전혀 다른 문명을 창조했지만, 현재까지는 서양의 건축이 한계를 먼저 돌파했다.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건축 재료를 제공했고, 서양의 지배력은 동양의 문화를 먼저 흡수케 했다. “지금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나 콘크리트로 높게 지어진 국제주의 양식만 남아 있는 세상이 되었다. (p.319)” 서양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 확보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다양성의 소멸이다. “21세기 문화 다양성의 멸종 문제는 기술적 요소만 도입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p.402)” 세계 어디에 살더라도 같은 공간이 생기고, 같은 생각을 하는 세상이다.

다양성의 종말은 우리에게 새로운 위기를 몰고 온다. 도시와 건축물 역시 생명체와 다름없다. 다양성의 소멸은 그만큼 변화에 대응력을 떨어뜨린다. 코로나19, 기후위기 등은 이러한 위기를 가속화하고, 인류와 도시의 생존에 위협이 될테다. 이언 모리스는 말했다.

 

어떤 시점에서 발전의 역설은 진정으로 혁신적인 변화로만 뚫을 수 있는 단단한 천장을 만들어낸다. 사회발전은 이러한 천장에 구속되며 필사의 경주를 펼친다. 우리는 사회가 문제 해결에 실패할 때 끔찍한 재앙들-기아, 전염병, 통제 불가능한 이주, 국가실패-이 한꺼번에 사회에 밀어닥치기 시작해 정체를 후퇴로 바꾸는 실례를 줄줄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 ... 후퇴는 수 세기에 걸쳐 파국적인 붕괴와 암흑 시대로 탈바꿈한다. (p.91)”

 

우리는 그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 우리의 생각은 어떠할 것이고, 우리는 어떤 공간을 만들고, 어떤 공간에서 살아갈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목숨줄을 쥐고 있다. 유현준 교수의 전작들이 공간에 대한 생각이었다. 이 책은 공간에 대한 생각을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우리에게 생각을 촉구한다. 위기의 시대, 우리는 이런 공간에서 살아왔다. 앞으로 어떤 공간을 추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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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가 가지고 있던 기술적, 사회적, 경제적 제약 들 속에서 환경적 제약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문화가 되었고 그 문화의 물리적 결정체가 바로 건축물이다. p.11

모든 창조는 온도 차에 의해서 시작된다. p.13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고 융합하려면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여서 살아야 한다. 도시는 그런 환경을 제공해 준다. 도시는 문명 발전의 필요조건이다. p.17

차이융합에 이어서 새로운 창조를 만드는 요소는 기술이다. p.22

건축물은 그 시대의 지혜와 집단의 의지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정체로, 그 시대와 그 사회를 대변한다. p.40

빛을 느끼기 위해서 그림자가 필요하듯, 빈 공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물체가 필요하다. 역으로 추론해 보면, 물체가 만들어지면 동시에 빈 공간도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건축 행위는 일차적으로 물체를 만드는 것이지만, 최종(p.51) 목적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 빈 공간을 프레임하기 위한 물체를 만드는 일은 엄청나게 큰 에너지와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 그렇기 때문에 그 빈 공간이 구축되는 형식과 모양을 보면 만든 사람의 생각과 문화를 비추어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공간을 분석하고 이해하면 사람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p.52

서양의 건축은 벽 중심의 건축을 하면서 내부와 외부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공간의 성격을 갖는 반면, 동양은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면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한 성격의 공간을 갖는다. p.88

인류 문명은 다양하게 계속 진화하는 것 같지만 사실 본질을 들여다보면 1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문명은 단순한 인공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p.

벼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은 농사짓는 방식 때문에 결속하게 되고, 집단의식을 키우고, 주변인과 협업하도록 가치관과 시스템이 발달해 왔다. p.98

뒤에 산이 있고 앞으로 강이 흘러야 대지가 자연스럽게 앞으로 기울어지게 되고, 그래야만 비가 와도 배수가 잘 돼서 땅의 침하가 적고, 습기가 적어서 나무로 만든 건축물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남쪽으로 기울어진 땅이어야지 단위 면적당 더 많은 햇볕을 받게 되고, 비가 온 후에도 땅과 건물이 잘 말라서 건축물이 더 잘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배산임수라는 풍수지리 원리가 나온 것이다. 기둥 중심의 건축으로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건축 공간이다 보니 여러모로 주변과의 관계가 중요한 건축으로 발전했고, 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비쳤을 것이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집단행동이 필요해져 사람 간의(p.116) 관계에 무게를 두는 가치관이 형성됐다면, 건축을 통해서는 사람과 건축과 주변 자연 환경과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디자인관이 발전하게 되었다. p.117

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고,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동서양의 강수량 차이는 건축 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 공간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행동 방식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양은 밀 농사의 혼자 농사하는 방식에 따라 개인주의 성향이 커졌고, 외부와 단절된 창문 없는 벽 중심의 건축으로 바깥과 교류가 적은 성격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건축물(p.121) 역시 독립된 개별적인 건축물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축적 개인주의가 발전했다. 반면 벼농사는 집단 농사 방식으로 사람 간의 관계가 중요한 가치였으며, 많은 강수량 때문에 사용하게 된 재료인 목재를 이용한 기둥 중심의 건축 양식은 외부 자연 환경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활양식으로 발전되었다. 강수량 차이로 인해서 서양은 독립된 개인이 중요한 사회가, 동양은 관계를 중요시 하는 사회가 되었다. p.122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둘 다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가 있는 것으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그 둘을 바탕으로 한 서양의 사고방식에는 절대 진리의 세계가 있으며, 그곳에 이르는 길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 이 같은 사고방식이 있었기에 수학이 서양 문화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학문으로서 위치할 수 있었고, 그 토대 위에 과학혁명이 가능했던 것이다. p.149

사람들은 존재하는 즉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동양에서는 그 관계 속에서 가치를 찾으려고 했다. 이는 집단 노동 방식으로 벼농사를 지으면서 만들어진 가치관이다. p.156

서양 문화는 절대성’, ‘수학으로, 동양 문화는 관계비움으로 문화적 성격을 설명했다. ... 동서양 각 문화권의 패러다임은 기후가 만들어 낸 농사 방법과 건축 공간에 의해서 서서히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천재적인 사상가가 어느 날 갑자기 동서양 문화의 특징을 세웠다기 보다는 그 시대 그 지역의 패러다임이 그런 생각을 만들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p.165

일방향성과 다방향성은 두 건축문화가 각기 가지고 있는 다른 특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서양 문화는 세상을 절대자가 만든 수학적 규칙의 조합으로 보고, 동양은 세상을 관계의 집합으로 보는 시각 차이에서 나온 것이(p.173)라 여겨진다. p.174

서양 건축은 육중한 벽이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 중심의 건축이고, 동양 건축은 기둥중심의 건축이다. 서양은 벽을 세워서 그 안에 만들어진 방을 사용하는 방식인 반면, 동양은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으면 그곳이 곧 건축 공간이 된다. ... 동양 건축에서는 영역성이 건축 평면도에서 점으로 표현되는 기둥으로 만들어져서 안팎의 경계가 모(p.189)호하며 빈 공간 자체의 모양이 규정되기 힘든 공간이다. 따라서 빈 공간은 성격상 내외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 서양 건축의 빈 공간은 평면상 선으로 표현되는 벽이 만드는 공간으로, 안과 밖의 공간 경계가 벽에 의해서 명확히 구분되는 딱딱한 느낌의 공간감을 가지고 있다. p.190

동양 건축의 주요 기본 요소들은 기둥, 지붕, 낮은 담장이라는 세 가지로 규정할 수 있다. 동양의 건축 공간은 이 세 가지가 구획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요소들의 가치는 바둑판 위의 돌처럼 상대적인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p.217

서양 건축, 특히 종교 건축에서는 기하학적으로 점점 더 복잡하게 진화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반면 동양에서는 건축 양식이 진화라고 할 만한 양식적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동양 건축은 격자와 기둥에 기초한 공간 구조가 수천 년간 반복되어 왔다. p.216

강수량이라는 환경 요소가 동서양에 두 가지 다른 공간적 특징을 만들었다. 서양에서는 벽으로 강간의 경계가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다. 서양 건축의 지붕에는 처마도 거의 없다. 반면 동양에서는 띄엄띄엄 놓인 기둥과 긴 처마로 인해 내외부 공간의 경계가 모호한 특징이 있다. 안팎의 경계가 모호한 동양에서는 철학자의 생각도 구분보다는 융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동양의 건축 공간은 항상 내부와 외부, 자연과 건축물의 융화를 통해서 두 개체 간의 일치를 추구해 왔(p.222). 따라서 동양의 빈 공간은 규정되어 있기보다는 유동적이며 내외부를 관통해서 흐르는 듯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강수량은 농사의 주요 품종을 결정하고 농사법은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을 형성했다. 또한 강수량은 건축 재료를 결정했고, 그에 따라서 건축 공간의 성격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사람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쳤고, 반대로 생각은 건축 공간의 디자인을 결정하기도 했다. 결국 자연환경이라는 부모는 사람의 생각과 건축 공간이라는 두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생각과 건축 공간은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자녀처럼 공통된 성격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상호 영향을 미친다. 공간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공간을 만든다. 기후, 농사법, 공간의 성격 그리고 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생각, 이 네 가지는 때로는 한 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때로는 상(p.223)호 영향을 미치면서 수천 년간 고유의 문화적 특징을 형성해 왔다. p.224

가뭄이 농업의 시대를 열었듯이 편서풍이라는 제약은 새로운 기술의 시대를 여는 방아쇠가 되었다. p.257

서양인들은 심할 정도로 정원의 자연을 기하학에 끼워 맞춰 왔다. 서양의 조경 디자이너들은 정원을 디자인하면서 대지를 기하학적으로 분절하고 그 안에 자기 완성적인 우주를 창조하는 데 주력했다. 조경 디자인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경 디자인을 보면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엿볼 수 있다. p.276

강철과 콘크리트라는 재료와 엘리베이터라는 기계, 이 두 가지 기술 혁명이 전 세계의 건축을 바꾸었다. 이 두 기술의 힘은 너무나도 강해서 20세기부터 인류의 건축 문화는 이 두 엔진이 이끄는 대로 갔다. 결과는 지금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나 콘크리트로 높게 지어진 국제주의 양식만 남아 있는 세상이 되었다. p.319

서양의 건축은 벽의 건축’, 동양의 건축은 지붕의 건축’ p.334

사실 르 코르뷔지에가 이야기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는 것이 두 번째 항목인 옥상 정원을 제외하고 나면 다 동양의 기둥식 구조의 건축에서 보이는 디자인과 거의 똑같다. (p.359) ... 근대 건축의 5원칙은 동양의 기둥식 구조의 건축 양식이 서양에 전파되어 산업혁명의 새로운 재료인 콘크리트와 함께 만들어진 문화적 변종이라고 볼 수 있다. p.363

문화 변종의 탄생은 패러다임 변화의 결과다. 생각은 창작자 자신이 의식을 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영향을 받고 진화하는 법이다. p.364

시대가 노동자를 위한 저렴하고 빠르게 지을 수 있는 건축 디자인을 필요로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손이 많이 가는 장식을 없애는 것이었고, 마침 이들에게 매력적이고 이국적인 나라인 일본의 건축에 장식이 없었다. p.369

역사상 뛰어난 생각은 모순되는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 호합시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p.396

제대로 된 창조는 문화와 기술 두 마리 토끼를 잡았을 때 만들어진다. 문화적 요소의 융합이 배제된 상태에서 기술적인 부분만 적용하면 다영성이 소멸된다. 21세기 문화 다양성의 멸종 문제는 기술적 요소만 도입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p.402

시간이 돈이고, 공간이 돈’ (권터 니츠케) ... 미국과 같이 공간이 넘쳐 나는 지역에서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발전한 건축 시스템이다. 이와 반대로 일본 같은 섬나라에서는 공간이 부족하고 시간은 오히려 남는다. 이런 경우에는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p.449)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는 그의 주장이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이동 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면 많은 기억이 남게 되고, 따라서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p.450

문화인류학적으로 한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은 서로 비슷한 생각과 공감대를 공유하게 되는데, 이와 유사하게 같은 컴퓨터 언어, 즉 같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디자이너들의 생각과 결과물들은 서로 비슷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p.507

컴퓨터를 이용한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진 점은 장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다양성의 소멸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것(p.511) 도 사실이다. p.512

기술이 이끄는 획일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피하느냐가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다 p.513

지금은 건축을 뛰어넘어 새롭게 바뀐 세상에 적합한 도시(p.521)의 모습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 p.522

삼성전자는 더 이상 반도체 회사가 아니다.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는 가상 공간 속 부동산을 생산하는 재료를 공급하는 회사, 즉 가상공간을 만드(p.529)는 부동산 회사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가상공간이 융합의 주요 플랫폼이다. p.530

우리가 어떻게 꿈꾸느냐에 따라서 다음 시대의 도시가 바뀌고, 라이프 스타일(p.536)이 바뀌고, 사회가 바뀔 수 있다. p.537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지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p.541

창조적인 생각은 항상 다른유전자와 결합으로 만들어졌다. 다름이 기후 변화에서 온 것이든, 지리적 차이에서 온 것이든, 전공 분야의 차이에서 온 것이든 상관없다. 지금 시대의 다름의 원천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유전자다. 아날로그 유기체인 인간이 디지털과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p.548

역사가 말해 주듯이 기술혁명만으로는 획일화를 벗어나기 힘들다. 디지털과의 융합 없이는 진화에서 뒤처지겠지만 동시에 디지털과의 융합만으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창조적 생각을 위해서는 디지털 이외에 다른 무엇이 더 있어야 한다. 역사를 보면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루이스 칸처럼 과거에서 문화 유전자를 찾는 것이다. p.549

창조는 서로 다른 재료의 융합에서 나온다. ... 그런데 이 시대에 새로운 변수가 하나 생겼다. 다름 아닌 기후의 변화다. ... 첫 번째 지구 온난화는 자연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인 두 번째 지구 온(p.552)난화는 인간이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모든 문화혁명의 첫 번째 도미노가 기후 변화였다. 그 도미노가 쓰러졌을 때의 연쇄 반응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시작될 또 다른 연쇄 반응은 엄청날 것이며,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p.553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공간의 재구성을 만든다. 공간 구성의 변화는 우리 사회 내 권력의 재배치를 만든다. 코로나19는 진정되겠지만, 그 이후 우리는 공간과 권력의 재배치가 시작되는 변화의 시작을 볼 것이다. ... 기존 권력의 해체와 분산은 또 다른 종류의 문제를 만든다. 공간을 통한 권력의 재배치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p.563

새로운 생각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크게 두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는 제약이고, 둘째는 융합이다.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각이 나오고, 서로 다른 생각이 융합되었을 때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창조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변화와 새로움을 거부했던 문화는 발전을 멈췄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열린 마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불완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완전하다고 느끼는 자는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한다. (p.571) ... 더 좋은 것으로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이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창조적 변화는 멈추게 된다. p.573

역사 속에서 새로운 생각은 위기와 다름에서 시작했다. 위기와 다름은 보통 갈등과 충돌을 야기한다. 그런데 갈등과 충돌이 있다고 자동적으로 새로운 생각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새로운 생각은 갈등과 충돌을 화합시키려는 마음이 있을 때 만들어진다. p.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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