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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권내현] 역사는 반복된다?! | Memento 2020-09-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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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권내현 저
역사비평사 | 201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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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호적을 통해 '김수봉'가의 궤적을 그린 책. 역사는 반복된다고도 하는데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93%로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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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사정상 친척간의 왕래가 잦지 않다. 나 역시 무례할지는 모르나, 탐탁치 않게 여겨 집안의 어르신과 소통하는 일이 드물다. 그런차에 전화가 왔다. 족보를 재정비하고 있으니, 가족관계증명서 한 장을 보내달라 하셨다. 특별히 내가 가진 성씨와 집안에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일원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사정도 있었지만, 굳이 거절하기 어려워 우편으로 내어 드렸다. 집성촌에서 살았던 기억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내 과거임은 부정한다고 사라지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의병으로 유명한 고장에서 살아온 나는 직계조성이 의병장이라고 한다. 성함은... 봐도 양반 같지 않다. 어쨌든 실재 기록에 남아 있는 사람이니 믿을 수 밖에...어쨌든... 자기 비하라기 보다는 우리 집안이 양반이었을 거란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김수봉이라는 어느 노비집안의 가계를 추적 분석한 글이다. 조선시대 특정 가계의 호적을 분석함으로 신분제도의 변화와 사회상을 추적한다. 드물게도 김수봉은 경제력을 갖춘 노비였다. 그럼에도 견고한 신분제의 굴레는 수 백년, 수 세대의 걸친 노력을 거치고서야 조금 상승할 수 있었다. 이 역시 완벽하고 급격한 신분 상승이라기 보다는 신분제 자체가 동요하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한걸음 씩 나아간다. 노비에서 양인으로, 양인에서 군역을 면제 받는 유학의 지위까지 호적의 변화를 추적해 가는 경로를 보면 애처롭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속이고, 뒤틀어서 얻는 현실적 이득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그만큼 신분제의 불합리성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서까지 한을 남긴 흔적이 아닌가 한다.


김수봉의 사례가 얼마나 대표적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점은 우리의 대부분의 선조들이 겪었던 경로일 가능성이 높다. 1910년도 전국 호구조사에서 양반의 비율은 1.9%로 통계적 한계를 감안해도 조선시대의 양반 비율은 7% 내외였다고 한다.([계급사회로 가는 길]수능 인서울과 청년 정규직 비율 모두 '7%', 우연일까?, 한겨레, 2017.11.08.) 나머지 93%는 양민 또는 노비였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 대부분은 수봉의 후손들임이 분명하다. 치열한 노력과 동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시대는 계속해서 변했다. 갑오개혁, 일제강점기, 한국 전쟁을 거치며 신분제도는 역사책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는 그 신분의 구분이 지엄한 세상의 기본 원리라 믿었다. 지금 세상은 그 구분이 없어도 잘 굴러 가고 있다. 그 차이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잔인한 제도였는지를 실감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도 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똑같이 반복되진 않겠지만, 유사하게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불평등과 차별, 혐오가 시대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서로 배척하고 구분짓는 일이 일상이다. 불안한 현실에서 저마다의 안전한 자리를 만들고자 하는 애처로운 노력이라 믿지만, 이러한 상황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수 세대에 걸쳐 노력했던 가치가 한 순간에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니면 한 세대 한 세대에 걸쳐 다시 93%의 구분을 찾아서 후퇴하는게 아닐지 무섭기도 하다.

 

먼 훗날 한 역사가가 우리의 기록을 뒤져보며, 지엄한 신분이 만들어진 계기를 추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김수봉이 되었는지를 주민등록이나 인사기록 카드를 보면서 연구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머나먼 미래라 다가올 수 없는 시기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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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에 대한 서얼들의 집단적인 도전과 저항으로 양반 관료들은 서얼들에게 조금씩 양보하는 모양새를 갖추어야 했다. 어떤 사회든 저항 없이 자유가 확대될 수는 없는 법이다. ... 하지만 지역 내에서 혹은 한 가문 내에서 서얼에 대한 차별이라는 오랜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p.52

때로는 도망 이후의 삶이 끼니라도 해결할 수 있었던 노비로서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억압과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노비들의 욕망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수봉은 도망이라는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도망 이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이미 안정적인 삶을 누릴 만큼 재산을 모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도망이라는 방법보다 그가 가진 재산을 통해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하고자 했다. p.69

호적에는 갓동이 또는 갓동으로 이름 지워진 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평민들도 있지만 대개는 남자 종인 노의 이름인 경우가 많다. 그들이 설사 평민이라고 하더라도 아마 원래 신분은 노비였을 가능서이 높아 보인다. 이 갓동이는 개똥이의 또 다른 표기다. 수봉의 막내 이름은 원래 개(p.70)똥이었던 것이다. 노비의 이름은 양반과는 달리 동물, 식물이나 시간, 성격 등에 빗대어 흔하거나 천한 이름으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 p.71

호적에는 고유어로 만들어진 노비 이름들이 무수하게 등장한다. 때로는 이름만으로 그가 노비인지를 알 수 있기도 하다. p.75

노비들에게 붙여진 천하고 흔한 이름은 작명을 통해 발현되는 욕망의 거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p.75

역사가는 여기에서 장벽을 만난다. 논적 전개를 뒷받침할 자료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때 손을 털 수밖에 없다. 상상과 추론이 동원될 수 있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꾸며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역사학보다 훨씬 자유롭고, 앙상한 뼈대에 풍성하게 살을 덧보탤 수도 있다. p.79

이름을 바꾸는 것은 결국 이처럼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새롭게 출발하거나 성장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모든 개명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때로 그것은 의도된 혼란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p.111

수봉의 후손들이 심씨가의 손길을 벗어나 다른 마을로 이주하면서 성장을 꾀했다면, 심정량의 후손들은 한곳에 집거함으로써 다른 양반가와 경쟁했던 것이다. p.113

결혼 대상자의 지역적 범위는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과 맞물려 있기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수봉 후손들의 통혼 범위는 가까운 곳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p.130

군역을 지는 일이 노비가 아니라는 의식보다 양반이 아니라는 자괴감으로 다가올 때, 그것은 또 다른 장애물이자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p.135

지방의 전통적인 양반가의 입장에서 보면 하천민들이 그들처럼 유학이라 칭하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었다. 중앙의 정치권력은 서울의 노론 가문으로 재편되었고, 그들과 연관된 인물들이 수령으로 내려오면서 지방 양반들의 위세는 갈수록 약화되었다. 지방 양반들의 대다수는 여러 세대 동안 관직에 나가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그들은 중앙 권력에 쉽게 진출하지 못하는 이상 지방에서라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고, 그것은 신분(p.154) 질서가 엄격하게 유지되어야만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p.155

1858년 김정흠과 심항래는 비록 뿌리는 서로 달랐지만, 당대의 호적에 보이는 직계 조상의 직역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실로 새로운 양반 가계의 탄생이라고 할 만하다. p.157

기존의 양반들은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면서도 문중을 형성하고 그 활동을 확대하면서 위와 아래로부터의 도전에 맞섰다. 이 과정에서 부계를 중심으로 한 친족 문화가 발달하고, 그것은 다시 여타 계층으로 확산되었다. p.178

하천민 일부가 관심을 가진 이상, 이미 유학으로 성장하고 있었던 수봉가에서 입양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들로 이어지는 가문이라는 관념은 양반가가 지닌 가족 문화의 핵심적인 실체였으므로, 직역과 본관을 바꾸는 외형적인 성장 외에 양반가의 문화를 하나씩 내면화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들에 대한 희구는 이미 양반가의 전유물도 아니었다. p.187

오랜 시간이 흘러 그들이 족보를 만들게 되었을 때, 그들은 친족 가운데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을 상당수 기록했다. 이는 수봉의 후손들이 특정 시점에서 조상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반추할 수 있을 만큼, 부계친(p.190)족 집단이 오래 전에 만들어져서 장기간 유지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활동은 양반을 향한 그들의 꿈이 양반 신분제가 철폐된 근대 이후로도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물론 그들 족보의 기록이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가계 이력을 입증하기 어려운 측면도 많다. 하지만 그것은 전통 양반가의 족보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 모두 다 신분 사회 혹은 개인의 능력 이상으로 조상의 지위가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던 조선 사회의 한 단면이다. 양반들이 그럴진대 근대나 현대사회에서 처음 족보를 만드는 가계에서 일정한 조작이 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결국 족보가 얼마만큼 사실을 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족보 그 자체가 부계친족 집단의 발달과 양반 지향의식의 산물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어야 할 것 같다. p.191

수봉가의 이러한 움직임은 양반 중심의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하천민의 양반 지향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하천민들이 양반과의 사이에 놓인 간극을 줄이는 데는 저항과 동화라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자료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수봉가에서 양반 지배 질서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파괴하는 움직임을 찾기는 어려웠다. 호적은 오히려 그들이 양반을 지향한 흔적만 곳곳에 드러내고 있다. p.201

근대 이후 양반이고 싶어 했던 수봉 후손들의 욕구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계층 상승으로 가는 또 다른 사다리에 올라타야 했다. 한편으로는 미화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망각되어 가는 조상 이상으(p.202)로 자신과 후손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기회의 균등은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햇고, 오랜 염원이었던 교육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학력을 통한 상승 욕구는 갈수록 강화되었다. ... 인간이 사회적으로 평등하다는 선언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할 뿐 출생과 동시에 획득된 조건의 불평등을 염두에 둔 말은 아니다. 수봉가가 여러 세대에 걸쳐 좁혀 나간 심정량가와의 간극은 근래 들어 기회의 균등에도 불구하고 다시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장으로 가는 사다리에서 밀려난 이들은 수봉가처럼 또다시 기회를 엿보며 장기간에 걸쳐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수봉가의 후손들은, 심지어 심정량가의 후손들마저 그것이 현실에서 반복되지 않고 그저 흘러간 역사로 남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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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재구성-도진기] 다양한 방법의 판결의 내부를 들여다보기 | Memento 2020-09-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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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판결의 재구성

도진기 저
비채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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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되지 않는 권력이기에 더욱더 견제받고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새롭게 다양한 방식으로 판결의 내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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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 삼권분립의 정신에 입각해서 헌법을 꾸렸고, 그에 따라 살아간다. 이 원칙은 때론 무시되기도 하고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다. 어디까지나 믿고 있을 뿐이고 실재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주의깊게 보지 않는 이상 확인하기 힘들다. 게다가 일반적인 인식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 하다. 광화문1번가나 특이민원이 기사화 되는 사례를 보면, 입법사법행정의 분립 보다는 누구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느낀다. 사실 무엇이 중하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입법부든 사법부든 행정부든 구분이 무의미하다. 누구든 내 문제를 해결해주고, 살기 좋게 해주면 좋을 따름이다.

 

하지만 실재로 그런식으로 일이 해결되기는 힘들다. 뉴스 등을 통해 공론화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수 많은 불만과 노력과 아픔들이 번지수를 잘못 찾아간 덕에 시간만 날아가고 있다. 삼권분립은 우리가 믿고 있지만, 실재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입법부와 행정부는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 일꾼을 선출한다. 그렇게 국민에 대한 민감도를 높인다. 주인인 국민이 잘 찾아오지 못한다면, 일꾼이 찾아가면 된다. 선거를 통해서 움직이고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최소한 한국에서의) 사법부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선출이 아닌 임명된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당성을 가지는 가장 중요한 절차가 선거에 의한 선출임에도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3개의 축 중에 하나는 이와는 별도로 굴러가고 있다. 선거를 통해 법관을 임명하는 것도 명암이 있으니, 그것을 따지자는 건 아니다. 이 독립되고 고립된 권력기관이 점점 동떨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다. 이들은 입법, 사법기관의 선출된 자들과는 달리 임기가 보장된다. 자연스럽게 대중들과는 괴리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양심능력은 믿지만 그럼에도 판결의 결과에 터져나오는 불만들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한 때는 내부자였던, 지금은 외부자인 도진기 변호사의 책, <판결의 재구성>은 그래서 흥미롭다. 다른 책들이 비교적 내부자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면, 판결의 재구성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외부자의 입장에서 쓰였다. 늘 그렇듯 외부자의 시선은 판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합리적 의심이나 판사적 양심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법원을 통해 최종적 판단을 받지만 그 최종적 판단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게 한다. 판사라는 한 인간의 고뇌의 결과물이 얼마나부족한지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좀 더 법을, 법원을, 그들을 알아야만 한다. “무풍지대인 판결의 안쪽(p.5)”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법부 역시 노력을 해야 한다. 어려운 용어를 줄이고, 한글로 쓰고, 논리적이고 쉽게 쓴다지만 판결문은 여전히 견고한 벽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판결을 분해해 주는 사람이 고마울 따름이다.

 

여기에 가장 큰 장점은 저자 그 자신이다.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한 그의 개인적 이력이 책 속에 가득 녹아있다. 일반적인 책들이 이성과 합리 위주로 사회적인 책임이나 대의명분, 정의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와 다르게 추리소설 작가다운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서 사건을 보거나 설명해 준다. 사건을 재구성하거나 법관들의 생각을 추리소설과 유사하게 풀어주어 색다르게 다가온다. 법관들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에 대해 합리적 상상력을 통해 추론하는 내용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좋다. 단순히 논리와 이성만으로 풀어내기에는 인간은 너무도 감성적이기 때문일까.

인간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사법 시스템의 기초다.(p.320)” 그렇다면 그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논리와 이성이 세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는 애저녁에 지났다. 현재로서 마땅한 대안이 없겠지만, 판결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일이 대안을 찾아가는 방법이 될법도 하다. 더불어 판결의 내부를 다양한 방법으로 들여다 보는 일은 더 중요하다. 다양성은 불안함의 토대가 될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한 변화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새로운 방법으로 판결의 내부를 살펴보게 하는 저자의 책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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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유전무죄나 정치가 아니라 판결의 올바른 결론을 보장하는 논리상식이다. 과연 그 부분은 시민의 절대적인 승복에 값할 만큼 완벽할까. 늘 그렇지 못하다는 게 나의 솔직한 생각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폭주하듯, 비판받지 않는 논리는 독선에 빠진다. 무풍지대인 판결의 안쪽에 안주하며 내적 연마를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닌지. p.5

사법부의 결정은 따라야 한다. 이건 우리 사회의 질서이다. 하지만 판결 안의 추론 과정에 마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늘 옳다는 보장이 없고, 얼마든지 헤집어볼 수 있다. 유전무죄 비판과 진영 논리들 때문에 오히려 면책되었던 판결의 내부를 짚어보려는 것이다. 그래야 판결이 졸지 않고, 외곬 논리는 도태된다. p.6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원칙은 법률가라면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원리를 어느 경우에,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지는 각자의 척도가 다른 것 같다. ‘의심의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계량화되거나 더 세부적인 기준이 있으면 좋으련만, 지난한 작업이다. 많은 부분이 판사 개인의 결단에 맡겨진 현재는 사법부와 대중의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것 같다. p.44

세상에는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발장형범죄만 있는 게 아(p.53)니다. 더 많은 돈을 탐한 이욕 범죄도 있다. 오히려 살인에는 이쪽 동기가 더 흔하다. p.54

유죄로 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바늘 끝 같은 의심도 들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극한의 입증을 요구할 때 발생하는 재판 불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절충으로 확립된 형법상 원칙이다. p.56

형사책임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환상 하에 유지되고 있다. 심신상실은 자유 의지가 없었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이다. 그래서 형사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이 경우는 이 아니라이라고 취급하는 것이다. p.63

전문가에게는 논리 협곡이라고 불러도 좋을 맹점이 존재한다. 한 우물을 깊게 파 들어갈수록 보이는 하늘은 좁아진다. 분석이 깊어지면 종합은 죽는 것이다. 사회의 정서와 동떨어졌다고 질타당하는 결정들이 혹시 이런 논리 협곡에 빠진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일도 가치 있을 것이다. p.78

판결을 순전히 논리적 측면에서 요모조모 살펴보는 일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모든 작업은 비판을 견디고 진화해나가며, 판결도 예외일 리 없다. p.110

판례에서 수없이 언급되는 전체적, 종합적 고찰은 다른 말로 하면 확률론이다.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완전한 증명력을 갖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종합적 증명력이 있다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는 살인사건의 재판에 종종 인용된다. 풀어보면, 각각의 증거들이 범죄를 입증할 개별 확률은 높지 않는다 해도 그것들이 한 사건에 다 모일 확률은 얼마나 낮은가, 하는 의미가 되겠다. p.129

재판은 무죄추정, 마음은 유죄추정. 이것이 법관의 현실일지 모른다. 기소된 사건 대부분이 유죄이기에 객관적 통계에서 우러나는 그 선입견은 완전히 지울 수 없으리라. p.171

지옥의 가장 밑바닥은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 되어 있다.” - 단테 p.179

헌신을 강요하는 건 일회성으론 먹힐지 몰라도 영속적이지 못하다. 효율을 위해서도 그렇다. 좋은 제도는 윤리를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p.191

음란물 여부를 직관적으로 인지하는 건 논리의 영역이 아니란 얘기다. 그 실체란 어쩌면 우리 공동체 정서에 거슬린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p.196

창조는 어렵고, 규제는 쉽다. 만드는 게 어렵지, 망가지는 건 순간이다. p.239

법은 감정의 제국이다. 모든 형벌과 법제도의 근간은 감정이다. p.248

절차라는 것이 빠져나가는 악인을 잡아내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재판을 방해하고, 태클을 거는 쪽이다. 영화 속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렇다. p.284

현대법의 트랜드는 한마디로 절차의 실체에 대한 우위로 표현될 수 있다. 절차는 다 아는 그 절차고, 실체는 풀어 말하면, ‘올바른 결론’, ‘진상정도가 되겠다. 즉 사건의 진상에 다다르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절차를 꼬박꼬박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방향으로 기울었다는 의미다. ... ‘절차적 정의’ p.288

형사소송법은 악인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한 법이다. p.291

한국에는 5천만 명이 살고, 5천만 개의 정의가 있다. 각자의 정의만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우긴다면, 혹은 힘을 얻은 세력의 정의만이 지배한다면 사회는 끝장이다. 개인의 정의관도 변하며, 지배세력은 바뀐다. 누가 옳은지 누가 판단 할 것인가. 판사도 모른다. 정의만을 좇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안전수칙, 즉 절차를 지키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이다. p.292

인간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사법 시스템의 기초다.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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