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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일하는가-배리 슈워츠]이기적인 인간이 아닌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발명 | Memento 2018-10-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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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리는 왜 일하는가

배리 슈워츠 저/김성아 역
문학동네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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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인간이 아닌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발명. 내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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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일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다. 아무래도 현실적인 고민이 이유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로소득으로 편안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때면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정신없이 번잡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지켜낸다는 것, 남에게 싫은 소리,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하루를 지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한다. 노동의 대가로 받은 봉급의 기쁨은 짧다. "일은 성취감을 주는 요소라기 보다는 좌절감을 안겨주는 요소"이자,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p.15)" 견뎌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일 따름이다. TED 강연을 기반으로한 <Why we work>는 우리가 매일 겪는 고난의 행군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한다.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무엇으로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는가.

 모든 직업마다 주어진 권한과 재량이 있다. 그것이 업무분장이라는 문서로 정해지거나, 계약서에 명시되어 우리를 옥죈다. '일'이라는 거대한 목표아래 누구나 한계를 가지고 투쟁한다. 그럼에도 누구는 '생업job'으로, 어떤 사람은  '직업career'으로, 소수는 '소명calling'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이상이야 어쨌거나 대부분은 실무자로서 아담 스미스가 설계한 이론 아래 주어진 임무를 다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고, 이기적인 존재를 추동하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인센티브가 최고의 동기다. 그렇기에 효율성이라는 이 시대 지상 최고의 선 앞에서 모든 것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효율성을 위해서 계약이라는 신성한 의식 아래,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해야 한다. "재량권, 몰입, 의미"를 철저히 포기해야 한다. "소명의식(p.42)"은 사치일 뿐. 닥치고 까야할 뿐이다. 거대한 배에 철판을 억지로 붙든 나사마냥 언제고 조여지고, 대체될 운명이다.

 내가 "일터에 지니고 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만, "영혼 없는 일을 의미 있는 일로 바꾸는 데 한 개인이 심리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p.58)" 기계도 기름칠 없이 사용하다 보면 닳고 닳는 법이다. 하물며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급여가 반복적이고 의미 없는 일을 보상해주지는 못(p.83)"한다. 진급도 마찬가지다. 이런 보상은 짧고, 쉽게 익숙해 진다. 결국 일터에서 봉급이나 진급같은 인센티브 이상의 것을 찾아야만 한다. 그 조건이 재량권, 몰입, 일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 즉 효율성에서 조금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실무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관리자 나아가 새로운 인간의 본성에 대한 발명이 필요하다. 새로운 본성에 대한 발명. Why we work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애덤 스미스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기적인 인간이 아닌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발명을 촉구한다.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우리는 인센티브에 의존하게 되며, 딱 우리가 지불한 것만큼만 얻게 된다(p.115)" 그 이상은 생길 수 없다. 

 손쉬운 정신승리이자, 새로운 착취 이데올로기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미완성 동물'이"듯, "우리가 합리적으로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사회제도들이 어떻게 그들을 '완성' 하느냐(p.161)",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발명하느냐에 우리에 행복이 달려있다면? 우리가 왜 일하는지, 어떻게 일해야하는지, 그래서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수 있는지. 내 삶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일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려면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다같이 고민해 봄직하다. 그리고 그 논쟁을 시작하기에 이 책은 가장 좋은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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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90퍼센트에 해당하는 전 세계 근로자들에게 일은 성취감을 주는 요소라기 보다는 좌절감을 안겨주는 요소인 경우가 더 흔하다는 말이다. ... 성인 중 90퍼센트가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보낸다. p.15

애덤 스미스는 일과 관련한 우리의 태도와 열망에 대해 잘못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영향하에서 '인센티브 최고주의'의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록,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만족감들은 모두 무시되거나 제거되는 방식으로 일은 진화해 왔다. p.23

'좋은 일꾼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창조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좋은 일을 바라는 열망이 '그림의 떡'과 같은 이상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이루어낼 수 있는 일이다. p.26

인간의 본성은 발견되기보다는 창조되는 편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제도를 설계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설계'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인간의 본성을 설계하는 데 기여하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해보아야 한다. p.28

루크가 자신의 일에서 추구한 것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텔로스'라고 불렀던 것, 바로 그가 속한 조직의 '목적'에 의해 형성되었다. p.37

(에이미 브제스니에프스키 교수) 자신의 일을 '생업job'으로 보는 사람들은 자(p.40)유재량권을 거의 누리지 못하며 최소한의 정도로만 일에 열중하고 의미를 느낀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 일을 삶의 필수조건 정도로 본다. 그들은 돈 때문에 일하고, ... 애덤 스미스의 생각의 표상이다. ... 자신의 일을 '직업career'으로 보는 사랆들은 일반적으로 더 많은 재량권을 즐기고 더 많이 열중한다. ...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출세에 있다. ... 일에서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일을 '소명calling'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일이란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 중 하나이며, 그 일을 하는 것 자체로 기뻐한다. 또한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며,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고 믿(p.41)고, 친구들이나 자식들에게 이런 유의 일을 하라고 권한다. 하고 있는 일을 소명이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서 엄청난 만족감을 얻는다. p.42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성격에 달려있다. 즉, 사람들이 일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는 그들이 일터에 지니고 오는 태도에 의해 설명된다. 그 일이 무엇이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누구인간에 따라서다. ... 그러나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는가 또한 중요한 요소다. ... 일에서 재량권, 몰입, 의미를 없애버리면, 사람들은 그 일에 '소명의식'을 덜 느끼며 만족감도 덜 얻는다. p.42

(소명의식을 느끼며 일하는 것을) 누군가 금지한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 바로 효율성이다.(p.46) ... 두번째 이유는 책임자들의 통제욕이다. p.47

당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나 목적(p.50)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조직에서 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p.51

사실상 거의 모든 직업이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일은 다양성, 복잡성, 기술계발, 발전이라는 요소를 포함하도록 구성될 수 있다. 또한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하도록 조직될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는, 사람들을 다른 이들의 행복에 기여하도록 하면서 일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p.54

사람들이 일터에 지니고 오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영혼 없는 일을 의미 있는 일로 바꾸는 데 한 개인이 심리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p.58

성공적인 회사로 이끄는 요소와 좋은 일을 형성하는 요소 사이에는 상당히 공통점이 많다. ... 훌륭한 회사는 '매우 헌신적인' 직원들을 육성하고, 매우 헌신적인 직원들은 자신의 일을 잘하기 위해 철저히 신경을 쓴다. p.60

열의가 없는 직원들을 관리하기 위한 일반적인 두 가지 방법은 물질적인 인센티브(급여)를 제공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시켜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다. 당근과 채찍이라고 할 수 있다. 놀랍게도, 페퍼의 분석에 따르면 이 두가지 방법 '모두' 직원들의 몰입도와 업무만족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p.71

급여가 반복적이고 의미 없는 일을 보상해주지는 못하는 듯하다. 오히려 그러한 근로자들은 고되고 지루할 뿐인 자신의 일을 체념하고 받아들인 채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p.83

현대의 많은 근로환경에는 반복작업과 과도한 감독보다도 훨씬 더 심하게 좋은 일을 파괴하는 또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직원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핵심방법을 물질적인 보상제도에 의존하는 것이다. p.92

제도 설계자들은 물질적인 인센티브가 중심에 놓이면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 필수적인 다른 가치들이 밀려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진정 탁월한 성과를 내는 것은 이러한 다른 가치들이다. p.99

금전적인 보상 없이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하도록 동기를 부여받은 상황에다가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더하자, 사람들이 이미 지니고 있던 동기가 강화되기보다 오히려 약화되었다. p.105

벌금은 그저 가격처럼 느껴졌다. p.107

인센티브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라는 질문을 '이 비용이 가치가 있는가?'로 바꿀 수 있다. p.108

이유란 항상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이유들은 서로 경쟁한다. p.111

구체적인 대본과 규칙들은 우리로 하여금 보다 완벽한 계약을 할 수 있게 하지만, ...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다. p.114

사람들이 옳은 일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우리는 인센티브에 의존하게 되며, 딱 우리가 지불한 것만큼만 얻게 된다. p.115

경제학자 프레드 허시 "계약서에 더 많은 것이 쓰여 있을수록, 계약서 없이는 더 적은 것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더 많이 기재해놓을수록, 신뢰로 행해지는 일은 더 적어지거나 더 적게 기대되기 마련이다." p.115

제대로만 실행되면, 모든 과학은 이론과 데이터 간에 계속해서 진행되는 대화라 할 수 있다. 과학 이론들의 핵심은 사실들을 정리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정리된 이론이 없는 사실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하지만 이론들 역시 궁극적으로 사실을 설명할 수 있고, 사실에 맞아야 한다. 또한 새로운 사실들은 우리로 하여금 부적합한 이론들을 수정하거나 버리도록 만든다. p.122

발견은 우리에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알려준다. 발명은 그러한 발견들을 이용하여 세상을 다르게 돌아가도록 하는 물건과 방법들을 창조해낸다. ... 발견 역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데 기여하지만, 발견만으로는 세(p.124)상을 거의 변화시키지 못한다. p.125

법원은 어떤 '독창적인' 조치가 자연에서 발견한 모든 것에 '현저하게 다른 특성'을 부여하지 않는 한, 천연물, 자연현상, 자연법칙은 특허를 받을 수 없다는 관점을 오랫동안 고수하고 있다. p.125

발견과 발명의 차이 ... 발견 그 자체가 도덕적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 발명은 그 특성상 도덕적 차원을 지닌다. p.126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론은 발견인가 아니면(p.126) 발명인가? 나는 그것이 발견보다는 발명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p.127

사회과학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아이디어 '기술'을 창조했다. p.128

'기술'이라는 개념을 일상환경을 변화시키는 절차나 물질들을 창조하기 위한 인간의 지능을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아이디어도 컴퓨터 못지않게 기술의 산물이라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 '사물 기술'과 구분되는 두 가지 특징 ... 첫째, 아이디어들은 보이고 구매하고 만질 수 있는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문화를 통해 퍼질 수 있으며, 심지어 제대로 감지되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둘째, 아이디어들은 사물과 달리 '그것이(p.131) 사실이 아닐 때조차도' 사람들에게 심오한 영향을 줄 수 있다. p.132

멜빈 콘, 카미 스쿨러 '재량권과 통제권을 발휘하는 일은 사람들을 인지적으로 융통성 있게 만들고 또한 자신과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이끄는 반면, 지나친 관리와 억압적인 감시를 받는 일은 고통으로 이어진다' p.135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들은 실제로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다. 이 말은 거짓이론 하나가 간단하게 사람들에게 그 이론을 진실이라고 믿게 하면서 정말로 진실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훌륭한 데이터가 나쁜 데이터와 이론들을 몰아내는 대신, 나쁜 데이터가 실제로 좋은 데이터가 될 때까지 사회적 관습들을 바꾸고, 결국 그 이론들이 인정을 받게 된다. p.141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진실이 되는가? 첫번째 방법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면서다. (p.141) ... 두번째 메커니즘은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불리는 것을 통해서다. ... 다른 사람들의 행위자에 반응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다시 이것은 그 행위자가 미래에 하는 행동을 변화(p.142)시킨다. ... '자기 충족적 예언'이란 "원래는 '가짜'였던 신념을 진실로 만드는 새로운 행동을 유발하는 상황에 대한 '거짓' 정의"다. (p.144) ... 마지막 ... 제도의 구조를 그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p.152) ... 이데올로기에 의해 사회구조가 형성될 때, 이데올로기는 그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p.153

'본성'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특징을 설명하기에 아주 불충분하다. 많은 면에서 우리는 사회가 우리에게 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만약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거의 없으면, 사회는 거의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규칙 설계자들과 인센티브 도입자들의 목적에 따라 행동하도록 일이 조직되어왔음이 분명하다. 만약 우리에게 더 많이 요구하고 사회적 제도들이 제대로 정비되면, 사회는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말한 대로 인간은 '미완성 동물'이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사회제도들이 어떻게 그들을 '완성' 하느냐에 달려 있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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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천종호]한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의해서 결정된다 | Memento 2018-10-2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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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천종호 저
우리학교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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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라는, 공공성이라는 명목 하에 우리는 '죽음'만을 선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의해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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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말한다. 왜냐면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거꾸로 모르면 위험하다. 용감하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겁이 없다는 말이다. 앞 뒤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른다는 것은 그래서 겁이 없다는 말이다. 적절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감당하기 보다는 저지르고 보게 한다.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은 두 가지 무지에 대해 말한다. 소위 ‘비행 청소년’들의 무지와 ‘비행 청소년’을 대하는 우리의 무지 말이다. 전자는 ‘비행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기회를 차버리지 말라는 따뜻한 아버지의 마음이라면, 후자는 ‘비행 청소년’에 대해 편견을 가진 우리들을 일깨우는 직업인으로서의 안타까움으로 느낀다. 책은 이런 아버지의 마음과 직업인의 고뇌를 쉽게 읽어 볼 수 있는 책이다. 더불어 근자에 일어났던(부산 여중생 폭행사건) 충격적인 사건들의 관련자로서 사건의 뒷이야기를 보며, 우리의 관심을 촉구한다. 
 개인적으로 그 사건을 보았을때, 이놈들 제대로 사회의 무서움을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엄벌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는 고민이 들었다. 저들의 행동이 전적으로 본인 만의 잘못일까라는 의문. 어떠한 사정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의 범죄 행위는 '비행 청소년'의 개인적인 성향도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다. 개개인에게 주어진 수 많은 선택이 자신을 만든다. 그렇기에 '비행 청소년'이 된 그들 역시 잘못된 선택을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이 잘못인지 모른채, 아니면 잘못인지 알더라도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엄벌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잘못임을 확실하게 인지시켜 주니까. 사실 엄벌만으로 세상이 잘 굴러간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사형이라는 최고형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엄벌은 범죄율 하락에 전혀 관계없다는 이야기도 많다. 그렇다면 심리적 위안에 족하는 걸까. 그렇지만은 않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개인보다 사회의 측면에 관심이 간다. 우리가 가진 편견에 대한 부분 말이다. '비행 청소년'의 문제는 비극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더러운 세상'이 문제인가? '게으른 개인'이 문제인가? 우리사회는 개인의 책임과 구조의 책임에서 비교적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편이다. 개천에서 용나는 모델을 신봉하는 사회다. 과거에는 실재 그러했을지도 의문이지만, 지금은 개천도 마르지 않았나. 최하위 소득계층이 중산층으로 발돋움하는데는 5세대, 약 100년이 걸리는1) 사회다. 과정보다는 결과로만 책임진다. 이제 사람들은 오직 결과로만 평가받기에 '노오력'이 문제라고 비꼬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비행 청소년에 대해 올바로 알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비행하게 된 결과만이 아니라 비행할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보고, 그들이 다시 비행하지 않고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공항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한 천종호 판사의 고민과 노력이, 직업인으로서의 분투가 보인다. 본인(본인과 함께 일하는 사람)과 세상의 괴리에 고민하는 모습들 말이다.
 비행청소년에 대한 일반적인 감정은 나와 비슷할테다. 나는 어렵게 살아도 버티는데 너는 왜 못티느냐. 세상 살기 쉬운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사정 없는 사람 없다. 그래서 극악한 범죄의 경우에는 더 극렬한 반응이 나온다. 만약 내가 피해자라면 더 여려운 문제가 된다. 이러한 반응은 당연하다. 절대 잘못된 감정도, 탓 할 수도 없다. 다만 또 다른 판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불편한 진실 자체에 도적적 잣대를 들이대어 왜곡하지 말고, 그 진실을 토대로 '어떻게 사회를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p. 269,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p. 381, ,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천종호 판사가 마지막에 언급한 A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사람이 떠올랐다. A라는 친구(사실 일면식도 없다. 비슷한 또래에 동향이라는 점 빼고는 공통점도 없다.)는 내 고향에서 유명한 친구였다. 책에서 서술한 대로 나쁜 일로 유명한 친구다. 그는 죄를 지었고, 다시 서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죄를 지었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저자의 말대로 안타까운 부분도 있고, 반대로 자업자득인 면도 있다. 상습적으로 중범죄를 저질렀고, 선의를 받았음에도 다시 죄를 저질렀다. 결말은 씁쓸하다. 그가 답이 없는 사람인지, 아니면 우리가 찍은 낙인이 그를 답이 없게 만든 것인지, 둘 다 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알아야 한다. 모르면 그저 두려움에 떨며 더 강한 처벌, 사회와의 격리, 마녀사냥이라는 또 다른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 비행장도 없이 착륙하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다수라는, 공공성이라는 명목 하에 우리는 '죽음'만을 선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의 말을 되새겨보자. '한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의해서 결정된다.'(p.50) 우리 사회의 수준은 어디인가?

1) 작동 멈춘 '계층이동 사다리'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해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4&aid=0004040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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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작은 도움과 격려 한마디에도 삶을 새로 빚어낼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p.10
소년 재판은 미래지향적입니다. ... 비행을 저지른 소년에 대해 어떻게 처벌할지가 아니라 소년으로 하여금 어떻게 비행에서 벗어나게 할지를 더 중요하게 판단하는 재판입니다. (p.11) ... 소년이라는 '인간'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중점을 둡니다. ... 재판의 객체나 당사자를 넘어 주인공으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p.12) ... 처분이 내려진 이후에도 소년부 판사의 역할이 일정 기간 동안 지속 (p.12) ... 마음으로 하는 재판 ... '로고스' 외에도 '파토스'와 '에토스'가 필요한 재판. (p.13)
우리 사회가 '법은 모두를 위한 정의'라는 명제를 망각할 때 우리 가운데 가장 힘없고 약한 이들이 고통 받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비행과 재 비행으로 인한 책임을 오롯이 아이들에게만 전가시키고 있습니다. 소외되고 버려진 아이들이 다시 손가락질 받을 때 이 나라의 법과 정의도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p.17
법조문을 적용해 기계적인 판결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안내자로서 아이들을 비롯한 소송 관계자들이 제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법관의 모습이다. p.29
헌법재판소는 양심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인격적 존재 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정의한다. p.45
주로 외부의 상황에 영향을 받는 '두려움'이나 '고독감'과는 달리 '불편함'은 내면, 다시 말해 양심에서부터 비롯된다. 법관은 양심을 따르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마음의 '불편함'을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p.46
'한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의해서 결정된다.' p.50
무릇 공분은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 p.64
지금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자기 범죄를 세상에 자랑하듯 드러내는 곳이 되어 버렸다. ...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부정할 수 없이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낸 것이다. 가정에서 일차적으로 폭력을 배우는 사회,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용인하는 사회에서 과연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p.77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에 의해 작동되므로 대다수의 국민이 동의한다면 소년법의 폐지나 개정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 입법 과정에 전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할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특히 법의 폐(p.79)지, 개정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입을 이해 당사자에게는 더욱 많은 의견 제시의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로 인한 불이익이 따르더라도 이를 감수하고자 할 것이기 때문이다. ... 미성년자에게 충분한 의견 진술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 법적 책임은 자유와 권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이처럼 무거(p.80)운 책임을 부과하려면 그에 상응한 자유와 권리 역시 부여해야 한다. ... 위헌 소지가 매우 높다. p.81
처벌만으로 나의 임무가 완수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엄벌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청소년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존재들이다. ... 단 한 차례의 실수나(p.84) 잘못도 용인 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삶에 대한 의지가 꺾이기 마련이다. p.85
국친주의('국가가 어버이처럼 범죄나 비행소년을 처우한다')는 국가의 품격을 결정하는 사상으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품격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어른이 아이와 동등한 입장에서 무한 경쟁을 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국친주의에 따른 보호를 없애려 한다면 거기에서 비롯된 제한도 함께 없애야 한다. 한마디로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이다. p.89
고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법칙'이 적용되어 피해에 상응한 가해자에 대한 '보복'이 가능했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서는 '형벌의 부과와 집행 권한'이 피해자 측이 아니라 국가에 주어져 있고, 형벌의 내용과 수위도 법률이 정한 바에 따르기 때문에 형벌로 인한 피해자 측의 보복과 그로 인한 만족도가 고대에 비해 낮을 수 밖에 없다. ... 현대 법치주의 체계 아래에서는 처벌에 대한 피해자 측의 불만족을 완전히 해소시키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p.94
가해자에 대한 엄벌, 피해자에 대한 제도적 조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 한계 너머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 사회 공동체의 몫이 되어야 한다. p.95
학교폭력은 과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 가지 특성, 즉 관계성, 지속성, 공연성이 학교폭력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p.123) ... '부부 간의 가정폭력', '군대 내 폭력', '직장 내 폭력'도 학교폭력과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p.124
진짜 심각한 것은 학교 밖 아이들이다. 그럼 왜 이 아이들이 일반인의 상식을 허물어 버리는 잔혹한 폭력을 만들어 내는 걸까? (p.132) 의외로 단순하다. 외로움이다. (p.134) ... 다음으로, 구조적인 점이다. ... 학교폭력에 대한 엄정한 태세가 마련되었고,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학교 안 폭력이 줄어들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는 동안 학교 밖 아이들은 심각한 학교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p.135
'인권'을 핑계 삼아 '보호'를 내팽개쳐서는 안된다. p.136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또 다른 학교폭력이나 청소년비행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사실상 이러한 입장에 처한 아이들에 대한 재판을 하는 것은 심적 부담이 매우 크다. 피해자로 있을 때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다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무자비한 비난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바로 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p.141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끊임없이 순환된다. 알면서도 악을 방치하는 것은 폭력에 가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p.147
청소년비행이 사회적인 이슈가 될 때마다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은 전과 달리 영악하다며 아이들 탓을 한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혼자 크는 아이는 없다.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모두 어른들이 제공한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의 실마리도(p.159) 우리 어른들이 풀어야 한다. 아이들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p.160
사법에서의 정의는 사회적 가치가 적정하게 분배되지 못하거나, 적정하게 분배된 사회적 가치를 침탈당하거나, 그 누림에 방해가 있을 경우에 이를 바로잡는 '시정적 정의'가 핵심을 이룬다. 나아가 사법에서의 시정적 정의는 '응보적 측면'과 '회복적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응보적 측면이란 어떤 행위(p.161)를 저지른 자에 대하여 그가 저지른 행위에 상응한 조치를 가하는 것을 의미하고, 회복적 측면이란 개개 사건에서 당사자가 원하는 상태로의 회복이나 보상이 이루어지게 하거나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을 말한다. p.162
정의는 '생명, 자유, 소득과 부, 권리와 의무,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등 이른바 '사회적 가치'의 분배 상태에 대한 평가와 개선에 관한 문제이다. 이렇게 보면 정의의 문제는 현재의 분배 상태를 평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동태적인 것이다. ... 첫째, 사회적 가치의 향유 국면이다. 개인이 자신에게 이미 분배된 사회적 가치를 제약 없이 누리는 것이다. (p.171) ... 둘째, 사회적 가치의 확대 국면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사회경제적 활동을 통해 자신에게 분배되는 사회적 가치를 확대시켜 나가고, 이를 통해 자아를 확장시켜 나간다. ... '공정한 거래'와 '공정한 경쟁'이 핵심 쟁점 ... 공정한 거래 문제는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의 형평성 문제다. (p.172) ... 공정한 경쟁 문제는 기회, 조건, 절차와 같은 경쟁의 룰을 공정하게 만들어 경쟁의 결과가 매번 특정 경쟁자에게 귀속되는 것을 사전에 예측할 수 없게 하는 것 ... 셋째, 사회적 가치의 조정 국면이다. 사회적 가치 보유의 차이는 불평등을 초래한다. ... 정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사회적 가치의 분배 상태를 평가하고 그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함 p.174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의관에 따라 정의의 국면을 다르게 본다는 것이다. ... 정의란 '사회적 가치를 적법, 공정하게 분배하고, 분배된 사회적 가치를 배타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 (p.175) ... 결국 정의로운 사회는 '사회적 가치가 적당하게 분배되고 분배된 가치를 제약 없이 누리고 있는 사회'라 하겠고, 정의의 문제는 분배의 적정성 문제로 집중된다. p.177
(정의의 권능) 첫째, 개인이 보유한 사회적 가치를 배타적으로 누리게 한다. ... '향유적 정의' ... 둘째, 가치 침탈이 있는 경우 바로잡게 한다. ... '시정적 정의' (p.179) ... 셋째, 사회적 가치 분배의 격차를 조정하게 한다. ... '배분적 정의' (p.181) ... 정의는 우리에게 미래세대 존중 의무를 부과한(p.183)다. ... '미래세대를 위한 정의' ... 미래세대가 법을 승인하기 위한 최상의 유보조건은 법의 정의로움에 있다. p.184
현대사회의 지배적인 정의관 ... 첫째, 분배를 함에 있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 해지도록 하면 되고, 행복의 측정은 효용으로 가능하다는 '공리주의'가 있다. ... 둘째, 사회의 효용이나 행복이 극대화가 아니라 개인의 자(p.186)유나 인권에 우선성을 두는 '자유주의적 정의관'이 있다. 이는 다시 '자유지상주의'와 '자유주의' 두 갈래로 나뉜다. ... 셋째, '공동체주의'가 있다. (p.189)
우리 법조계에서 법조인은 전통적으로 '분쟁 해결의 도우미' 역할에 주력해 왔다. 다시 말해,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 분쟁 당사자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법조인의 기본적인 사명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러나 '미성숙한 소년에 대한 용서와 관용'을 전제로 하고 '소년의 건전한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소년법의 이념에 따른다면, 소년사건에서의 법조인은 분쟁 해결의 도우미를 넘어 '삶의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194
회복적 정의론에 따르면 범죄는 관계 파괴 행위이므로 회복되어야 할 것은 '관계'이다. ... 우선적인 것은 범죄의 직접 당사자인 피해자와의 관계이다. (p.198) ... 사회와의 관계 회복도 요청된다. ...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은 범죄자와 그 가족과의 관계 회복이다. p.199
재판의 두 가지 이념은 '진실 발견'과 '절차 보장'이고, 절차 보장의 목적은 설득을 통한 승복을 이루기 위함이다. 절차를 보장하지 않은 채 단순히 법 조항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당사자의 승복을 기대하기가 어렵고, 이는 재(p.202)판 절차, 나아가서는 사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p.203
실정법과 법을 넘는 법은 모두 '법'으로서 사회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법이 '관계의 준칙'으로서 사회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속에 스며들어 있(p.204)는 '관계의 덕목'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실정법을 지배하고 있는 덕목이 책임이고, 이는 인간관계의 기본이 되는 덕목이다.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책임을 덕목으로 하는 실정법만으로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p.205
죄는 엄벌하되 죗값을 치르고 나면 사회 구성원으로 되돌아가 어엿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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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김애란]'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 입니까?" | Memento 2018-10-2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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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비행운

김애란 저
문학과지성사 | 201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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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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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 소설과 첫 대면은 대학 신입생 때였다. 따끈따끈한 신간과 따끈따끈한 신입생의 만남. 첫 과제로 서평을 빙자한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기 위한, 불순한 동기가 첫 만남이었다. 서점에서 작가의 신간을 볼 때마다 그 때를 추억하며 언젠가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 십수년이 지나 이제서야 만났다. 이제는 <달려라, 아비>의 내용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작가가 나이든 만큼, 나의 나이도 같은 시간을 지났다.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 입니까?"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p.171

 그래서 일까. 단편 소설의 여러 문구 중에 용대가 중얼거리던 문장이 잊히질 않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 인생을 산다는 것에 대해서 말하기에 아직 너무나 어리다. 뭔가 어렴풋이 대답하자면,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아무리 노래를 불러봐도,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가 아니기에 그런 노래가 유행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서로 주책이라고 손가락질 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때에 맞는 자리를 찾는게 중요하다. 꼭 나이(때)만 문제인 건 아니다. 중환자실의 환자가 클럽에 사랑을 찾아 헤맨다면 그것 역시 문제다. 상황, 장소, 시간 이 모든 것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져야 한다. 그러고자 하면, "언제나 '어디'가 중요하다.(p.171)" 그래야만 그 자리를, 나의 자리를 찾아 가기 위해 최소한 노력할 수 있다. 나에게 적합한, 분수에 맞는자리를, 때에 맞춰 찾아가는 것. 그것이 삶과 인생에서 복이지 싶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인물들은 참으로 불행하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너의 여름은 어떠니>, <벌레들>, <물속의 골리앗>, <큐티클>, <호텔 니약 따>, <서른>), 중년은 중년대로(<그곳의 밤 여기에 노래>, <하루의 축>) 자리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모두들 자기 자리가 '어디'인지를 모른다. 아니 알더라도 비행운 앞에서 도리가 없다. 부모도 실력인 세상에서, 노오오력을 한들 달라질 건 없다. 지리한 자리 찾기에서 더 악화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사회도, 자연도 "망설임, 회의, 반성" 없고 "책임도 물을(p.118)" 수 없다. 장강명 작가가 <한국이 싫어서에서> 말한것 처럼,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낮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이 더 위험하다.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을 펼 시간도 없다. 

"리 쩌리 위안 마?" "여기서 멉니까?"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p.221

나이 든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모른다. 일부 행운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김애란 작가는 2000년대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나는 다르다. 비행운을 만난 그들과 나에게 감히 힘내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겠다. 연기처럼, 구름처럼 흩어진 내 삶의 궤적, 그들의 자리는 어디쯤 일까.

 "리 쩌리 위안 마?" 여기서 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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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여름은 어떠니>

훗날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왔을 때, '나의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답한 것은. p.12

<물속 골리앗>

자연은 망설임이 없었다. 자연은 회의가 없고, 자연은 반성이 없었다. 마치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거대한 금치산자 같았다. p.118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 "제 자리는 어디 입니까?" 어디. 언제나 '어디'가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있다고. 그녀는 '짜이날'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라 했다. 그 말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고. 그다음, 그곳에 어떻게 갈지는 당신이 정하면 된다고.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 잃은 나그네에게 친절하다고. 그러니 외지에 나가선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할 줄 아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p.171

"리 쩌리 위안 마?" "여기서 멉니까?" p.221

<하루의 축>

많은 사람들이 쉴새 없이 오가는 공간에서 바로 그 '드나듦의 흔적'을 없애는 것. 이것이 공항 청소의 핵심이었다. p.232

제사는 조상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지내줘야 했다. 기옥 씨는 음식으로 자기 몸에 절하고 싶었다. 한 계절, 또 건너왔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시간에게, 자연에게, 삶에게 '내가 네 이름을 알고 있으니, 너도 나랑 사이좋게 니재보자' 제안하듯 말이다. p.233

<큐티클>

이런저런 곁눈질과 시행착오 끝에 가까스로 얻게 된 한 줌의 취향. 안도할 만한 기준을 얻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던지. 상품 사이를 산책할 때 나는 엄격한 동시에 부드러운 사람이 됐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여유. 그러나 원하지 않는 것 역시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식의 까다로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버리자 쇼핑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원하는게 많아졌다. 변화는 단순했다. (p.274) ... 명품은 아니어도 상품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 할까. p.275

만약 그런 '기분'도 구매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걸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정도는 낭비가 아니라 경제적인 행복이라고. ... '아주 조금 나은' 물건에 대한 욕구. ... 직장 동료들의 조언도 한몫했다. 그녀들은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식의 고집과 풍습을 공유했다. ... 모든 게 중요하(p.277)고 많은게 필수였다. 나는 그 필요에 쫓기지 않았다. 필요에 의지했다. 소비는 내가 현재 대도시의 왕성한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나 역시 그 신진대사에 속해 있다는 느낌. 그리하여 뭔가 지불 할 때, 나는 더 잘 생산할 수 있을 것 같은 암시를 받았다. p.278

그러니까 딱 한 뼘만 ...... 9센티미터만큼이라도 삶의 질이 향상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많은 물건 중 내게 '딱 맞는 한 뼘'은 없었다는 거다. 모든 건 늘 반 뼘 모자라거나 한 뼘 초과됐다. 본디 이 세계의 가격은 욕망의 크기와 딱 맞게 매겨지지 않았다는 듯. 아직 젊고, 벌 날이 많다는 근거 없는 낙관으로 나는 늘 한 뼘 더 초과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럴 자격이 있다 생각했다. p.279

그런데 그날, 선배 언니를 만난 뒤로 나도 모르게 자꾸 손에 신경이 쓰였다. 자기 성기를 최초로 의식하고 수치심을 갖게 된 이브처럼. 일단 뭔가 알게 되자 그 앎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p.288

<호텔 니약 따>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p.363

'1700년대 바흐가 작곡한 음악을, 2000년대 캄보디아에 온 한국 여자가 1900년대 굴렌 굴드가 연주한 앨범으로 듣는구나' '이상하고 놀랍구나' 하고 생각했다.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p.363) 건지도 모르겠다고. p.364

<서른>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초하네요. p.384

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 '너는 자라서 내가 되겠지 ...... 겨우 내가 되겠지.' p.390

그렇게 단순한 논리에 매료된 건, 피라미드 제일 아래에 있는 사람을 애써 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내가 되리라곤 생각지 않았거나.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요.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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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무라타 사야카]"이곳은 강제로 정상화되는 곳이다. 이물질은 바로 배제된다. (p.78)" | Memento 2018-10-2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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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저/김석희 역
살림출판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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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강제로 정상화되는 곳이다. 이물질은 바로 배제된다.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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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


 책을 읽은 기분을 표현하자면, 저 이모티콘 이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소설을 읽으며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다.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기괴한 듯 하지만 묘하게 계속 읽게 되는, 하지만 전혀 유쾌하지 않고 찜찜한 기분. 소설을 읽고나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데, 주인공은 싸이코패스 기질이 다분해 보인다. 그래서 일까. '정상'인 척 살아가기 위해 애쓰지만, 그녀는 '정상'이라는 범주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편의점과 편의점의 세계만이 본인에게 '정상'의 느낌을 준다. '점원'이라는 주어진 역할극에 충실하며, 같은 편의점에서 꾸준하게 일한다. 이 기괴한 주인공과 정신나간 사하라의 괴변을 보며 과연 '정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도달한다.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보통 인간'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는 거예요.(p.114)"

 일은 우리의 또 다른 정체성이다. 더불어 나를 규제한다. 주인공은 편의점에 최적화하고 살아간다. 모든 생체리듬부터 일상의 기본 생각까지, 자신에게 있어 편의점 이외의 이물질은 배제한다. 편의점은 주인공 그 자체다. 그러나 소설에 나오는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정상이라 칭하는 이들도 다르지 않다. 보수나 지위가 다르고 사람들의 인식이 다를 뿐 근본적으로 자발적 노예임에는 다름 없다. 그들 역시 '일'에, '사회'에, '시선'에 규정 당하고 연기한다. 세상은 진보했다지만 '사하라'의 말처럼 조몬시대로부터 바뀐 것은 없다. 똑같이 누군가는 사냥해야하고, 누군가는 돌봄의 영역을 담당해야 한다. 그렇게 무리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 주어진 임무를 평범한 척 연기해야 한다. 남들처럼 행동하려고 애써야 한다. 탈선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들에게 신호를 주는 셈이다. 흙발인 채 내 맘속을 마음껏 밟고 다녀되 된다는. 소설 내 표현을 빌려 내 인생을 '강간'당하게 되는 셈이다. 내가 하는 일이 아르바이트라고 해서, 남들이 그럴 권리는 전혀 없다. 

 우리는 편의점으로 대표되는 표백된 세상을 살고 있다. 편의점은 동네의 오래된 구멍가게와 다르다. 메뉴얼에 따라 정해진 대로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경제적 행위를 치른다. 어머님이 어떻고 아버님이 어떠신지 묻지 않는다. 익명화된 도시에 가장 적합하다. '점원'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은 강제로 정상화되는 곳이다. 이물질은 바로 배제된다. (p.78)" 그렇게 효율과 합리로 움직인다. 24시간 "줄곧 있긴 하지만 조금씩 교체되고 있다. (p.70)" 물건도, 사람도. 편의점에서는 저마다 정해진 자리가 있다. 점원도, 물건도. 그렇다면 이런 편의점 사회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내 자리가 어디인지 몰라 해메일지라도, 누군가 나를 흙발로 밟고 다녀도 괜찮다는 걸까. 일본과 한국을 비교해본다. '사하라'의 괴변을 들으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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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투도 누군가에게 전염(p.40)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전염하면서 인간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p.41

언제나 계속 돌아가는, 확고하게 정상적인 세계. 나는 빛으로 가득 찬 이 상자 속 세계를 믿고 있다. p.46

'좋든 나쁘든, 어쨌든 간에 점원으로서 가게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주 달갑게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 p.60

점장도, 점원도, 나무젓가락도, 숟가락도, 제복도, 동전도, 바코드가 찍힌 우유와 달걀도, 그것을 넣는 비닐봉지도, 가게를 오픈했을 당시의 것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줄곧 있긴 하지만 조금씩 교체되고 있다. p.70

이상한 사람한테는 흙발로 쳐들어와 그 원인을 규명할 권리가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 나한테는 그게 민폐였고, 그 오만한 태도가 성가시게 느껴졌다. p.74

이곳은 강제로 정상화되는 곳이다. 이물질은 바로 배제된다. p.78

내가 보기에 차별하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한 부류는 차별에 대한 충동이나 욕망을 자기 내면에 지니고 있지만, 또 한 부류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아(p.85)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차별 용어를 연발할 뿐이다. p.86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p.101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보통 인간'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는 거예요. 저 편의점에서 모두 '점원'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p.114

"이것 봐요.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에게 프라이버시 따위는 없습니다. 모두 얼마든지 흙발로 밀고 들어와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거나 사냥하러 가서 돈을 벌어 오거나, 둘 중 하나의 형태로 무리에 기여하지 않는 인간은 이단자예요. 그래서 무리에 속한 놈들은 얼마든지 간섭하죠." p.127

당신은 내 인생에서 유일한, 흔들리지 않는 '정상'이었습니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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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수업-오종우]빵과 장미, 그리고 한 권의 책, 한장의 그림 | Memento 2018-10-2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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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예술 수업

오종우 저
어크로스 | 201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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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그리고 한 권의 책, 한장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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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옛날 노동자들은 '빵과 장미'라고 답했다. 우리는 동물이다. 또한 인간이다. 매 끼니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서 필수다. 하지만 밥이 전부는 아니다. 장미도 필요하다. 빵은 기본이고, 장미는 필수다. 이 두 가지, 생존권과 평등권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기본이다. 여기에 나는 감히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한 권의 책, 한 장의 그림이다. 장미에 포함되는 하위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추가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다운' 삶에 있어서 예술은 필수다. 복에 겨워 배부른 소리라 할 지 모르겠다. 하긴 기초수급자가 돈가스 먹는다고 신고하는 세상이니, 예술을 기본적으로 향유해야 한다고 하면 세금 아깝다고 질겁할지 모르겠다. 확실한 점은 예술은 "인류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소멸한 적이 없"었다. "쓸모가 컸기 때문(p.404)"이다.

 

사실 예술 하면 겁난다. 무지에 따른 두려움이 크다. 어려운 이야기 몇 개 주워 섬겨 알더라도 작품을 감상할 단계 이른 다는게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빨리빨리 마인드도 영향이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오렌지 하나, 사과 하나. 도무지 알아보기 힘든 색과 점과 선들. 머리속은 하얗게 타오른다. 서서 보는 내내 다리도 머리도 저리다. 뭔가 아는 척은 해야겠고, 사람들은 길 막지 말라고 보채는 것만 같다. 저자는 나에게 다독인다. "예술의 실천은 체험되는 데 있(p.287)"다고. 예술을 즐기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게 많고, 감히 내가 알려고 해서는 안되는 위대하고 신비한 존재로 느꼈다.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오종우 교수는 <예술 수업>에서 말한다. 겁내지 말고 천재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고. 주눅 들지 말고 거기에 담긴 새로운 "시선"을 보라고 말한다.

 

'왜 시선인가?'라는 의문을 가진 채 오종우 교수의 차분한 설명을 따라 가 보면 이 질문은 '왜 예술이 필요한가?'에 도달한다. 바로 창조성과 독창성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이해해서 구성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대상이 새로운 시선으로 파악되어 이전과는 다른 대상으로 거듭나는 것이 창조입니다. 과학의 발견 역시 없던 것이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있었지만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창조성은 독창성을 뜻합니다. 대상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창조되는 것이지요. p.230"

 

창조성, 독창성 하니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게 그렇듯 익숙해지면 게을러진다. 그래서 "일상이 되면 삶의 가치마저 잃기 쉽상(p.371)"이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익숙해지는 것, 그것은 첫 시선의 생생함을 잃는 일(p.369)"을 피할 수 있다. 새로운 시선으로 나의 일상을 돌아봄으로 삶의 가치를 일깨운다. 그렇게 "예술은 사람들의 고뇌와 고통을 이해하고 인간의 가치를 해석해 삶의 전망을 밝(p.16)"힌다. "가상과 실재가 혼재한 삶(p.343)" 속에서 우리의 꿈을 체험케 한다. 망상이나 몽상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선채 하늘을 우러러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오래된 꿈""절망(p.215)"이다. 예술은 오래되고 허무한 꿈이 아닌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시선을 준다.

 

빵과 장미, 그리고 이를 풍요롭게 한 권의 책, 한 장의 그림이 필요하다 믿는다. 최근 많은 지자체에서 작은 도서관을 짓는다. 독서 프로그램도 늘리고 있고, 바우처 시스템도 있다. 그럼에도 작은 극장, 작은 미술관이 더 많아져서 우리가 당연히 함께 누려할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 삶의 힘, 예술의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나 역시 부지런히 '시선'을 따라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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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사람들의 고뇌와 고통을 이해하고 인간의 가치를 해석해 삶의 전망을 밝히는 인문학의 전위에 있습니다. 예술은 인문학적 사유의 출발점을 놓지요. p.16

부디 이 책을 읽는 일이 하나의 '사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p.18

우리가 창의력, 창의성이라고 할 때는 보통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기존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렇게 단순히 새로운 시각만을 강조하는 것은 몹시 위험합니다. 그것은 자기 확대에서 비롯되는 자기 함몰, 즉 자신만의 세계에 유폐될 위험을 안고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자기 욕망의 발현에만 치중하는 탐욕을 부릴 가능성이 농후(p.24)하기 때문이죠. 창의성은 단순히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을 뜻하지 않습니다. 망상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p.25

진짜 창의성을 갖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꼭 필요합니다. 먼저, 전문성입니다. ... 다음으로는, 그 대상을 향한 애착입니다. p.25

사람들은 너도나도 독창적인 인간이 되겠다는 열망(p.28)에 사로잡혀, 다른 생각을 바른 생각보다 더 높게 평가하고 특이한 행동을 정직한 자세보다 더 바람직하다며 칭찬하고 있지요. 이 시대에 창의성이라는 가치는 그 말이 오염되어 되레 창의성을 죽이고 있습니다. p.29

지적인 개념이 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수업 전체에 걸쳐 차츰차츰 밝혀나가겠지만, 예술을 통해서 지식이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p.40

요점은 기성과 타성에 젖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자신의 작품을 창의적이고 능동적으로 만들어나간다면 그 역시 예술가의 속성을 지닌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의 근본성질 가운데 하나가 세상과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며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p.42

예술의 반대말은 추함이 아니라 '무감각'인 것이죠. 뛰어난 예술작품은 무엇보다 우리의 감각을 되살립니다. 그래서 그런 예술작품을 접하면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p.43

우리가 사는 세상은 두 개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질세계와 여분세계. 실질세계는 쉽게 말해서 먹고사는 일들로 형성됩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세계인 셈이죠. 그래서 이 영역에서는 사람들이 무척 바쁩니다. (p.44) ... 휴식을 찾습니다. 오락이나 여행 등을 통해 여가를 즐기며 다시 실질세계를 살아갈 힘을 충전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분세계가 형성됩니다. p.45

실질세계는 사실 픽션, 곧 꾸며 만든 세계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질서는 절대자 신이 우리에게 강제로 부여한 절대규율이 아닙니다.(p.51) ... 사람들이 언제나 더 좋은 삶의 양식을 만들고자 능동적으로 구축한 고안품인 것입니다. p.52

예술은 여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이루며,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실질세계와 긴밀하고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p.55

문화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예술입니다. ... 인간이 자신이 처한 삶과 환경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곧 예술이라는 점이죠. 이것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예술의 성질입니다. p.92

예술은 그렇게 여분세계에서 실질세계를 창출합니다. 문화의 실질세계에 안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죠.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이 늘 문화의 패턴을 확장합니다. 요컨대 예술은 문화를 형성하는 핵심이면서도 그 패턴에 결코 종속되지 않고 새로운 사고를 탄생케 하는 가장 능동적인 원동력인 것입니다. p.94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생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른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즉 겸허하기 때문입니다. p.119

인류의 역사는 사람들이 대면하는 자연과 우주, 그리고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한 자취를 말합니다. (p.122) ... 자연을 자신들이 살아가기 위한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 인간적인 해석으로 수용하려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질문했습니다. 예술이 탄생하는 근본동력도 바로 그 질문입니다. ... 묻는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뜻합니다. ... 질문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능동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 질문은 사유의 한 행위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개념이나 미리 규정되어 내려오는 가치 들을 선험적으로 무조건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질문은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한계 짓는 체제를 거스르면서 생명의 자연스러(p.123)움을 회복하는 행위 입니다. ... 또한 질문하는 일은 반성한다는 의미입니다. 반성한다는 것은 판단의 조건들을 성찰하고 사유한다는 것으로, 곧 돌이켜보는 일이죠. 반성은 모두가 확고하다고 여기는 현재의 질서에서 잠시 벗어나는 질문입니다. ... 만일 관심이 없다면 질문이 생기지 않습니다. p.124

문자는 반복을 통해 소통을 위한 도구로서의 특성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과정을 거쳐서 차이를 없애고 동질의 부분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래서 어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여분세계를 줄여 실질세계로 진입한 것입니다. (p.134) ... 이제 문자는 대상을 성찰하고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밋밋하게 가리킵니다. 문자가 탄생할 때 지녔던(p.135) 생동감과 생명력은 흔적만 남고 상실된 거죠. 여분세계가 사라진 현상입니다. 그러나 언어를 조금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세상을 더 깊이 성찰한다면, 언어의 근본속성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예술적인 성격으로 말이죠. 문자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시적인 성질, 예술적인 상상력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야 일상생활에서 여분세계를 누릴 수 있습니다. p.136

농인은 원래 청각장애인을 낮춰 부르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 용의 귀를 가졌기에 사람의 소리는 못 듣지만 용이 듣는 다른 소리를 듣는다는 겁니다. p.136

예술은 자기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예술언어는 작품 내부에서 생겨나 작동하는데, 그것이 작동하는 토대가 바로 비례와 척도입니다. (p.144) ... 비례와 척도는 단순히 수치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가치평가와 관련됩니다. p.145

예술은 어쨌든 인간의 행위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양식은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이자 주제입니다. p.146

드라마가 극적이기 위해서 기본법칙이 작동합니다. 그것을 이른바 3일치라고 합니다. 즉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시간과 공간과 행위의 일치를 요구합니다. p.151

대화는 동일한 주제를 놓고 상이한 의견을 주고받는 것(p.157)을 가리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어떤 문제에 대해서 각기 다른 견해를 내놓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말이죠. 그럼에도, 즉 견해가 서로 다름에도 대화가 지속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며, 바로 여기에서 대화의 정신이 나옵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행동은 무엇보다 상대를 존중해야 가능합니다. 자기 견해와 다르다고 무시하거나 거부한다면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때 그 주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무조건 옳거나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시야가 넓어집니다. 이런 게 대화이고, 거기에 대화의 정신이 담기는 것입니다. 자기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자르르 통해 자기 시야를 넓히는 행위, 그것이 대화입니다. p.157

드라마는 파국을 통해서 작품 전체의 의미가 드러나 완결되는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를 우리말로 풀어 번역할 수 있다고 봅니다. '끝을 향한 힘'이라고 말이죠. p.159

사람의 정신력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 발현됩니다. ... 슬픔을 알지 못하면 경박해지기 쉬운게 인간이니까요. p.165

비극의 행동이 '완전하다'는 뜻은 비례와 척도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비극의 행동은 열정, 능력, 그리고 추구하는 가치가 조화를 이루어 인간의 고귀함을 보여줍니다. 영웅은 초능력을 지닌 슈퍼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웅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가치를 보존하는 인물을 뜻합니다. 반면, 희극은 비례와 척도의 차원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p.168) ... 희극은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는 거룩한 작품도 있지만, 주위에서 흔하게 보듯이 대체로 비례와 척도의 차원에서 불일치를 이루어 우스꽝스러(p.169) 광경을 연출합니다. p.170

사전을 보면 유니버설이나 제너럴 모두 '보편적' 또는 '일반적'으로 번역하면서 '세상에 두루 통하고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 어원을 살펴보면 유니버설은 단 하나의 것unus으로 귀결된다vertere는 뜻을 지녀서 하나가 곧 전체라는 의미입니(p.177). 제너럴은 같은 종류genus가 널리 퍼지다rate, 동일한 종이 여기저기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유니버설은 하나가 세상에 두루 통하여 전반적이라는 단어이고, 제너럴은 같은 것들이 아주 많아 전반적이라는 낱말입니다. ... 제너럴한 듯 보이지만 유니버설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생명체 ... 사랑 ... (p.178) ... 예술이 그렇습니다. ... 따라서 개개의 것을 일반으로 환원해서 보는 흔해 빠진 통념은 죽은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것 자체에 자신의 척도가 있습니다. ... 이에 반해 제너럴의 성격을 띠는 대표적인 예로 이데올로기를 들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고 같은 부류만을 허용하는 ... 또한 제너럴은 경쟁이라는 문제를 낳습니다. p.179

음악을 이루는 근본은 리듬입니다. 물론 화음과 선율도 중요한 요인이지만, 아프리카의 토속음악까지 모든 음악을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본원리는 리듬인 것입니다. p.195

어느 예술작품이나 꿈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p.209) ... 꿈의 실현, 풀어 말해서 꿈이 현실이 되는 것,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을 기반으로 해야만 가능합니다. p.210

살아가면서 꿈은 언제나 필요하지만, 막연한 꿈은 희망을 안겨주기보다는 절망을 낳습니다. 절망은 꿈의 반대말이 아니니까요. 오래된 꿈이 절망입니다. p.215

우리는 그림에서 화가의 시선을 봅니다. 거기에 그려진 사물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 대상을 바라본 화가의 시선을 보게 되는 것이죠. ... 예술가의 새로운 시선을 느끼고 나서 다시 그 대 상을 보면 없는 줄 알았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p.222

전에 없던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이해해서 구성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대상이 새로운 시선으로 파악되어 이전과는 다른 대상으로 거듭나는 것이 창조입니다. 과학의 발견 역시 없던 것이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있었지만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창조성은 독창성을 뜻합니다. 대상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창조되는 것이지요. p.230

미술사는 바로 시선의 변화사입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는 것을 미술의 흐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p.230)래서 미술사는 곧 문화사이기도 합니다. 시선에는 세계관이 담기니까요.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시선을 말합니다. p.231

형상은 단순히 거울처럼 대상을 비추어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정신이 각인된 것입니다. 새겨서 기억하는 것이죠. p.234

피카소의 형상을 보면 그동안 우리는 우리가 자각하는 시선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그래야 하는 시선으로 사물을 봐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이처럼 여러 개의 시점으로 대상을 지각하는 것은 대상의 본모습을 더욱 성숙한 관점에서 이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p.243

물화한 세계의 문제는 현실성을 상실한다는 데 있습니다. 물화한 인식은 대상을 계량화해서 보며 그것을 객관적인 현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대상의 본질을 덮는 수치로 사물을 파악하여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게 물화하면 각각의 개성은 없어지고 영혼도 소멸합니다. p.254

예술은 의미와 해석의 문제로, 현실과 일대일로 정확하게 대응한다고 인지되는 영화는 예술이 되기 어려웠습니다. ... 의미가 생기려면 선택이 가능해야 합니다. 자동적으로 그것이 그것이라면 의미는 없습니다. 그것이 이것이 아닌 까닭에서 의미가 생깁니다. ... 당연하다고 여기는 곳에는 의미가 없죠. ... 우리는 과학기술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요.(p.267) ... 감히 넘볼 수 없는 과학기술에 찬사를 보내며 그것에 적응하려고 급급합니다. 그럴 때 과학기술은 이미 종교가 되어버립니다. (p.268) ... 종교의 기본속성은 믿음입니다. 어떠한 의심도 없어야 종교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이는 대단히 비과학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성을 가지고 따지는 태도에서 과학이 발전했다는 사실을 잊은 것입니다. (p.269) ... 영화가 탄생했을 때 과학기술의 신빙성은 영화를 예술로 보기 어렵게 했지만, 시네마토그래프가 현실을 아무리 정밀하게 기록한다 해도 그것은 진짜 현실일 수 없습니다. 의미를 찾을 필요가 생긴 것이지요. p.271

기억은 옛날이 아니라 현재에 살아 있는 과거로, 미래를 여는 힘입니다. p.280

타르콥스키는 영화를 찍는 까닭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2차 언어의 굴레를 벗어나 원초 언어를 회복하겠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 존재의 잃어버린 원천을 다시 찾으려 했다. 말은 무술적 차원과 마법에 홀리게 하는 차원을 상시랗고, 말이 한때 가졌던 신비한 역할이 사라진 오늘날, 이미지는(p.281) 말보다 그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다. 말은 점차 내용 없는 잡담으로 변질되었다. 말은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질식할 정도로 많은 정보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소식들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p.282

예술의 실천은 체험되는 데 있습니다. p.287

가상과 실재가 혼재한 삶,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형편인 현실인 것입니다. p.343

기교가 곧 예술이지 않습니다. 예술에는 언제나 성찰이 함께해야 하지요. p.344

현대예술이 난해하고 기이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상과 실재가 구분되지 않는 우리네 현실을 진실하게 대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349

우리는 흔히 사실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곧바로 진실이 될까요. (p.350) ... 사실이 진실이 되지 못하는 진실, 그리고 사실은 삶에서 실재가 되기도 하고 가상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 의미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는 것입니다. p.359

현대에 올수록 사실과 진실은 더욱 괴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예술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사실들을 더욱 비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현대예술이 난해하고 기이해진 것이지요. p.360

예술작품이 아닌 모든 것은 이것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고 나면 다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작품에서는 내용이 차차 분명해져도 의미가 확실해지지 않습니다. p.363

익숙해지는 것, 그것은 첫 시선의 생생함을 잃는 일입니다. 모든 사물은 첫 시선에 포착될 때 가장 생기 있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익숙해지면 그 생기는 시들다가 끝내 소멸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대상이 아니라 시선인 셈입니다. p.369

타력이 붙어 관습화하면 그것의 의미를 삭제한다는 점입니다. p.370

여행은 원래 살던 곳의 진부한 삶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합니다. ... 여행은 당연한 삶을 낯설게 만들어서 생동감을 되살립니다. 일상이 되면 삶의 가치마저 잃기 쉽상입니다. p.371

퍼포먼스는 예술이 사물화 하는 것에 저항합니다. 예술작품은 원래 완성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의미를 발산하는 것입니다. 예술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의 성질을 띠죠. ... 탈 물질화를 통해 정신의 영역에 남고자 하는 것이죠. p.376

현대예술에는 동일한 성질이 있습니다. 새로움. 새로움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기존 예술에 현대예술을 연결함으로써 그 괴팍함을 예술로 이해하게 해주는 성질인 동시에, 현대예술의 주요한 특성인 충격을 확보하는 개념입니다. 새로우니까 충격을 주는 것이죠. 아무리 이상해도 익숙하면 충격을 주지 않습니다. p.377

사람들이 자기 사회의 질서를 아무런 성찰 업싱 받아들여 무조건 확대할 때 괴물이 되기도 합니다. 그 체제는 처음(p.384)에는 자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괴물을 환영합니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사회를 보존하기 위해서 괴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 과잉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p.385

우리 모두가 괴물이나 좀비인 것은 아니지만, 일상에 젖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자칫 그러기 쉬운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가끔 주위에서 너무나도 당당한 괴물이나 좀비를 보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은 그런 줄 모르지만요. p.386

현대예술의 여러 실험은 이미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에 도입되어 그 정신을 잃고 방식만 차용되기도 합니다. p.390

게다가 현대예술의 위악적인 추함은 아무리 생각을 하도(p.390)록 다그친다 해도 결국 추함이어서 사람들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단지 지적인 부분에서만 작동하는, 한곳만 기형적으로 발달한 괴물 같기도 합니다. 싫어하게 만들어서라도 생각하게 하는 일, 그것이 예술의 현대적인 가치로 지나치게 부각됐기 때문입니다. p.391

사적인 욕구에 의한 과도한 자기현시를 예술성과 구분하기 힘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p.391

칸딘스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모든 예술작품은 그 시대의 아들이며, 때로는 우리 감정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각 시대는 자신의 예술을 만들어내며, 그것은 결코 반복될 수 없는 일이다. 지나간 시대의 예술원리를 재생시키려는 노력은 고작해야 사산된 아이를 닮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꼴이 될 뿐이다." p.402

예술은 인류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소멸한 적이 없습니다. 실질적인 쓸모가 컸기 때문이지요. p.404

작품에 대한 인식능력이 커져가는 것은 대답 찾기와는 다른 일입니다. 거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p.404

결국 우리가 읽어야 할 절실한 대상은,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현실일 테니까요. 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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