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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장강명]나는 검은색이 좋다. | Memento 2018-09-2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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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표백

장강명 저
한겨레출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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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은색이 좋다. 좌절해서 표백하건, 너무 많이 섞여 검어지건 버텨보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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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은색이 좋다. 옷이나 개인 물품도 죄다 검은색을 선호한다. 때가 타지 않는다는 실용적인 이유가 주이긴 하지만, 포장을 하자면 검은색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기 때문이다. 검은색은 내가 아무리 착한 척 하며 흰색을 섞어도, 때로는 분노하며 붉은색을 섞고, 좌절하며 파란색을 섞어도 종래에는 결국 검은색이 된다.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다. 결국은 검은색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내가 애써 뭔가를 더할 필요도 없고, 설사 더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뭘까. <표백>은 검은색의 대척점이지만, 의미는 비슷하게 느껴진다. 한때 "정답이 없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다."라는 허세 가득한 말로 살아왔다. 지금도 유효하다.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절망을 표현 아닐까. 

피아식별이 어려운 시대다. 일제나 독재라는 절대악은 더 이상 없다. 독립이나 민주, 자유 같은 절대선 역시 마찬가지다. 이분법은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무엇을 믿고, 어디를 바라며 살아야 하는가. 그렇다고 돈을 숭배하고 살기도, 연약한 나 자신을 믿기도 어렵다. 검은색이든 흰색이든 어느 필터로 세상을 보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더하거나 빼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듯이 완벽한 세상이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낙원에서 태어났기에 낙원을 믿지 않는다. 대안이 없는 시스템에서 출구를 잃었다.

어른 세대는 말한다. 생각이 없다. 끈기가 없다. 버릇이 없다. 예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말한다. 가진게 없다. 할 수 있는게 없다. 차고라도 있어야 뭘 할게 아닌가. 어른들이 없다고 하는 것 중 뭐라도 하나 가지고 있다면, 출구로 종결을 택하지 않을거다. 우리는 무능하고 유약해서 선한 미덕을 가지지 못한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래서 희망이 없음을 알고 있다. 사토리 세대가 되어 욕망하지 않게 되었다. 욕망하더라도 가질 수 있는 것만, 확실한 것만 욕망하게 되었다. 병이라면 병이다. 완전히 탈색된 세상과 타협했다. 적당한 봉급과 부끄럽지 않은 위치. 어차피 더 해봐야 변할게 없다. 검은색이고 흰색이다. 좌절할 뿐이다.

이 소설은 그냥 나의 이야기다. 다만 주인공과 다르게 겁이 심하게 더 많았고, 용기가 없었고, 치밀하지 못했고, 모질지 못했으며, 도전적이지 못했을 따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탈색되었기에, 이미 좌절했기에 증명하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똑 부러졌던(혹은 믿었던) 내 친구는 무슨 색을 가졌던가. 이제는 답할 수 없는 아버지께 물어보고 싶다. 아버지는 무슨 색으로 사셨는지.

대답은 듣지 못했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다만 현재까지 내린 결론은 버티자다. Letum non ominia finit. Dum vita est, spes est.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희망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버티는 수 밖에 없다. 어쨌든 내가 증명해야하고, 내가 평가해야한다. 좌절해서 표백하건, 너무 많이 섞여 검어지건 버텨보는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여기에 있다. 뛰어야 할 곳은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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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히피즘 보다 더 거대한 정신적 유령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우리는 위대한 좌절의 시대-세연의 표현을 빌리면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를-살고 있다고. p.16

"너희에게 문제는, 너희가 세운 그런 목표가 뭔가 찜짐하게 여겨진다는 것이겠지.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세상과 타협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게 문제겠지? 그런 목표들이 자기기만처럼 여겨지고 말이야. 난 주관적인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사는 건 전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신이 없다고 해도 말이야. 신이 없고 내세가 없으면 역사도 없는 걸까? 그렇다고 본다면 각자의 쾌락을 추구하면 되지. 그것만큼 확실한 건 없으니까. 그리고 역사가 없는 것도 아닐 거야. 우리는 본성상 남의 시선을, 내가 죽은 다음에라도 신경 쓰는 존재거든. 너희도 죽기 전에 마지막 할 일이 하드디스크의 야동 지우는 거라고 농담하잖아. 그러니까 자기만족을 위해 어떤 일을 하겠다거나, 역사에 남는 일을 하겠다거나 하는 목표는 다 좋은 거야. 그걸 (p.79)로 완결된 거야. 누구의 승인을 받거나 할 필요가 없어. 그런데 왜 우리가 세운 목표가 마음에 차지 않는 걸까? 그 목표들이 시시하다는 걸 우리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야. 충분히 위대한 목표는 그 자체로 우리 가슴에 불을 지르고, 그러면 그걸로 충만해지지. 괜찮은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서 기른다는 목표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경지야." p.80

"기자가 된다면 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 p.80

"가끔 내가 세상에 뭘 보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렸을 때 나는 사람이 저마다 검거나 붉거나 푸른 색깔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 색들이 어울려서 세상이라는 화폭에 어떤 이미지를 그려낸다는 상상을 했지. 어떤 비범한 개인이 압도적인 재능을 펼쳐 그 주변으로 그 개인이 지닌 색의 빛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렸어. 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 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p.91)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담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p.92

젊은 이들은 자기파괴 성향이라는 폭탄을 안고 있으며, 저마다 각자의 뇌관을 지니고 있다. p.96

버나드 맬러머드 "인간의 가치 하락은 인간이 하등의 항의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긴다." p.187

1978년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유지, 보수자의 운명을 띠고 세상에 났다. 이 사회에서 새로 뭔가를 설계하거나 건설할 일 없이 이미 만들어진 사회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이들의 임무라는 뜻이다. 이들은 부품으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팔자다. p.233

완성된 사회에서 자살은 낙오이며, 낙오자에게 완성된 사회가 해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낙오자 수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은 구조적인 실패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기에 완성된 사회는 그 사실을 알리는 데 인색하다. p.285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고, 그것은 곧 다른 사람의 애정과 관심을 바라는 욕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어른스럽게 삶을 사는 법을 세연에게 보여줬어야 했다. 불행히도 우리 주위에는, 아니 한국 사회 전체에 그렇게 성숙한 삶을 사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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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무옌거] 잔소리로 느끼는 이유는 책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 Memento 2018-09-2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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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무옌거 저/최인애 역
쌤앤파커스 | 201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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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잔소리로 느끼는 이유는 책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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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잔소리가 싫다.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옳은 이야기이기에 반박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는 인내심을 시험한다.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인내심에서 드러나듯 잔소리의 가장 큰 문제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있지 않다.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나에게 있고,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스스로에게 있다. <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는 잔소리 같은 책이다. 모르지 않지만, 행하지 않는 이야기를 아프게 쏘아댄다. 삶에서 얼마나 '착함'을 핑계로, 멍청하고 호구같이 살고 있는지를 말이다. 결국, 잔소리의 악영향이 나타난다. 반감. 공부하라고 야단을 들을 때마다, 막 공부하려 했던 마음은 사라지는 법이다. 그래도 어쩌랴.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득이 되는 소리는 귀에 따가운 법이니, 잔소리를 묵묵히 들으며 오늘도 인내하고, 반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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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선은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살핀 후, 가장 좋은 결과를 불러올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신은 어떤 종류의 선량한 사람이 될지에 대해서 반드시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한다. p.42

내가 다른 이를 거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의 거절도 받아들일 수 있다. p.56

사람들이 타인에게 '착함의 굴레'를 씌우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치를 따지는 것보다 착함과 나쁨을 따지는 편이 쉬워서일 뿐이다. p.62

무지는 악이다. 어떤 일은 원인이 결과보다 중요하지만, 반대로 결과가 원인보다 훨씬 중요한 일도 많다. 남에게 해를 입히거나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 ... 나의 선량함을, 이치를 무시하는 몰상식한 약자의 방패로 내주지 않겠다고... p.63

당신의 선량함이 타고난 품성이라고 해도, 그 전에 먼저 자신에게 그 선량함을 뒷받침할 능력이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p.83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쌍방 간의 의무다. 그렇기 때문에 피곤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면 상대에게 책임을 다하라고 과감히 요구할 줄 알아야 하며, 관용을 베푸는 동시에 무조건 끌려 다니지 않고 'no'라고 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p.97

상대에 대해서 다 안다고 확신하고, 상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천성적으로 착한 동시에 매우 '오만'하다는 방증이다. 왜냐하면 타인을 전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지점에서 이미 자기 자신을 남보다 우위에 두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선행이라고 생각한 것 역시 엄밀히 따지면 외부 세계를 평가, 판단한 후에 선택한 전략적 일 처리 방법일 수 있다. p.128

자기 자신 외에는 이 세상 누구도 당신을 공격할 자격이 없다. p.138

단순히 자신의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다는 이유로 불만을 갖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p.155

감정은 친절하게, 태도는 단호하게 p.161

대화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70%가 분위기, 30%가 내용이라고 한다. p.165

제프 베조스 "똑똑함은 재능이지만, 친절함은 선택이다." p.167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쉽게 행하는 폭력은 상대에게서 선택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p.197

"수 자체가 반영하는 본질 중 하나는 경계다. '1+1=2"는 와넞히 똑같은 것 2개가 더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각자 경계를 가진 어떤 사물 2개가 서로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피차간에 구분이 없다면, 숫자 1과 숫자 2는 수 본연의 의미를 잃고 만다." p.206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거나 고통을 경험할 권리가 있다. p.216

용서의 핵심은 과거의 나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 자신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용서에는 타인을 향한 측은지심도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선량한 지혜가 필요하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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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카트리네 마르살]절반의 학문을 넘어서 | Memento 2018-09-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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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카트리네 마르살 저/김희정 역
부키 | 201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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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학문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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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역사는 반쪽 역사다. 그의 이야기(His-Story)가 역사(History)라는 이야기는 단순한 말 장난이 아니다. 실제 역사의 내용 자체가 그러하다. 통치자나 위대한 전사가 대부분 남자였음은 물론이다. 간간히 여성 위인들도 등장하지만, 예외적일 뿐 아니라 비정상적인 상태이거나 보조적인 상황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과연 역사에만 국한한 일일까? 그냥 생각이지만 어쩌면 '역사 이전'의 모계사회 붕괴 후 '여성'은 그들의 헤게모니를 완전히 상실하고 '제2의 성'으로 전락한 것이 사실일지 모른다. 익히 배우는 역사는 남자가 승리하는 기나긴 과정을 기록한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 기나긴 기록 속에서 수 많은 것들이 기록되고 만들어졌다. 절반 만의 이야기와 학설들은 계속해서 역사에 기록되었고, 현재를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는 '경제학' 역시 마찬가지다. 여전히 절반 만의 이야기로 세상을 설명하고 있다.

페미니즘과 경제학의 이야기라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뉴스에서 뷰티산업에 대한 분노기사나 댓글을 보았지만, 수요와 공급, 숫자의 논리를 통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경제학'의 세상에서도 여성은 '제2의 성'이란 말일까. 저자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답한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지금 '경제학'의 토대를 만든 애덤 스미스는 오직 자신의 힘 만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는가. 우리가 사는 시스템을 움직이는 경제의 밥상은 누가 차렸단 말인가. 온전히 남성들의 노력만으로 차려진 '밥'일까. '경제적 인간'이라는 이기적이지만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그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기만 하면 세상은 굴러갈까?

성장에 대한 믿음,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는 이 시대를 선도하는 중심 이론이다. 이를 부정하려 든다면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물론이다. 확실하게 "경제적 인간은 풍요를 만들어 냈다.(p.82)" 물질을 풍요롭게 했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줬다. 하지만 절대 진리도 아니고, 완벽하지 않다. "여러 변수를 포함하는 경제 모델 안에서 하나의 변수를 따로 떼어 내지 않으면(p.44)"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에도 "모든 것을 장악했다.(p.82)"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모든 문제들은 우아한 수학으로 표현해"서 "예측 가능하(p.48)"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세상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른 무엇인가에 의해 움직이는 또 다른 세상이 있기 때문에 가능(p.74)"함을 잊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불완전한 이론을 토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징후와 반복되는 위기 속에서도 반쪽의 이론을 조금씩 변형시켜서 억지로 유지하고 있다. 경제학과 합리적 인간은 "실제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 (p.136)"

저자는 단언한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절반의 답을 찾은 데 불과하다.(p.35)" 경제는 "경제가 '보이지 않는 손'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심장'(p.36)"으로도 움직인다. 그 보이지 않는 심장이 여성과 돌봄 영역이다. 이 잊혀진 영역은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모든 사회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구조를 어떤 식으로든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제는 물론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p.203)" 기존의 그릇에 여성과 돌봄영역을 넣고 휘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경제학은 근본이 되는 개인을 이해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p.262) 하지만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을 자루에 넣고 흔든다고 해서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합리적인 개인이라는 가정을 받아들이면 인종, 계층, 성별 등에 대한 의문은 의미 없어진다.(p.98)" 그리고 "개인의 자유 선택이 모여서 만들어진 비인격적인 곳이 바로 세상이다.(p.254)" 절대로 경제학이 가정하는 완벽한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저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경제학은 관계를 모든 것의 근본으로 봐야 한다. 심지어 모든 것을 개인 수준으로 쪼개는 과정에서도 관계는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p.318)"고 말이다. 그럴때 배제된 '여성'과 '돌봄의 영역'이 보이지 않을까.

한국은 그의 역사와 배제되었던 그녀의 역사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다. 이는 사회, 문화, 학문 등 전 영역에서 치열하다. "이 책은 그 중 하나의 시각을 제시"한다. "바로 성sex이다. (p.11)" 저자는 말한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결국 '돈'이 문제다. "페미니즘은 늘 경제학의 문제였다.(p.9)" 이 시대의 진리인 '돈'을 누가 가지느냐가 결국은 존재를 증명하는 길이다. 그렇기에 무시된 '여성'과 '돌봄' 영역을 올바르게 복원하는 것은 반쪽의 완성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레베카 웨스트는 "짓밟혀도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나 창녀와 나 자신을 구별 지으려 할 때, 사람들은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p.56)"고 말했다. 짓밟혀서 고통받고 잊혀져서 무시받은 그래서 구별하려는 자들의 이야기를 고민해 본다. 나머지 절반을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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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늘 경제학의 문제였다.(p.9) ... 페미니즘은 지금도 돈의 문제다. p.10

위기 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던 경제 질서와 경제 이론도 보기보다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문제는 '왜'였다. 나와 있는 답은 많다. 이 책은 그 중 하나의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바로 성sex이다. p.11

본질적으로, 경제학은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익을 보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기술하는 역사였다. 모든 상황에서, 결과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것은 여전히 주류 경제학 이론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우리가 "경제학자처럼 생각한다"라고 말하면, 보통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특정 행동을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뜻한다. (p.24) ...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p.24

애덤 스미스의 가장 큰 업적은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경제학이라는 분야를 물리학적 세계관과 연관시켰다는 점이다. p.30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할 당시 푸줏간 주인,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인, 어머니, 혹은 누이들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고, 눈물을 훔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했다. 어떤 식으로 시장을 바라봐도 그것은 또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 말이다. p.34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절반의 답을 찾은 데 불과하다. 그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어머니(p.35)가 매일 저녁 식사가 탁자에 오를 수 있도록 보살폈기 때문이다. 이제는 경제가 '보이지 않는 손'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심장'으로도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간혹 나오기도 한다. p.36

경제학자들은 사람을 고립시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무인도에 조난된 로빈슨 크루소는 세상사에 방해받지 않으면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p.43)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대부분 주류 경제학 모델은 바로 정확히 이런 조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경제학 교수들은 세테리 파리부스ceteris paribus, 즉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가정'으로 설교를 시작한다. 여러 변수를 포함하는 경제 모델 안에서 하나의 변수를 따로 떼어 내지 않으면 모델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접근법이 가진 모순을 똑똑한 경제학자들은 항상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은 계속해서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의 근간이 되어 왔다. p.44

로빈슨 크루소는 경제적 인간의 전형적인 예다. 경제학자들은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우리가 아는 경제 이론의 기초를 제공하는 존재다. 경제학에서는 연구해야 할 대상을 개인이라고 정했고, 따라서 이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에 대해 단순화된 이야기를 만들어 낼 필ㄹ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경제적 사유를 결정짓는 인간 행동의 모델이 탄생한 것이다. (p.46) ... 주류 경제학 모델들은 이 경제적 인간이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이라고 말한다. ...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특성은 모든 것을 무한정 원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지금. 당장. 바로 이 희소성에서 선택이라는 것이 탄생한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다면 선택해야 한다. (p.47) ... 선택은 상실된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자동적으로 포기하게 된 다른 선택지의 이익 한 길을 선택하면 다른 길은 가지 않은 길로 남게 된다. ... 그리고 그는 항상 합리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데 가장 적은 비용이 드는 경로를 선택한다. ... 무엇을 갖고 싶은지 생각하고 그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리고 모두가 그것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준비 땅. 여기서 인생이 시작된다. 사실 인생이 끝나는 곳도 여기다. 싸게 사고, 비싸게 팔기. p.48

경제적 인간의 큰 장점은 그가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다. 바로 그 덕에 그가 마주하는 모든 문제들은 우아한 수학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p.48

레베카 웨스트 "짓밟혀도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나 창녀와 나 자신을 구별 지으려 할 때, 사람들은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 p.56

만일 경제학이 자기 이익의 추구를 연구하는 과학이라면 여(p.57)성은 여기에 어떻게 적용될까? "남성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역할, 여성은 손상되기 쉬운 사랑을 지키는 역할이 주어졌다"가 정답이다. 그리고 이 역할 때문에 여성은 소외되었다. p.58

경제적 인간이 이성과 자유를 대변하는 것은 누군가가 그 반대 역할을 담당해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상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른 무엇인가에 의해 움직이는 또 다른 세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p.74) ... 그가 이성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감정이 되어야 한다. 그가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육체가 되어야 한다. 그가 독립적이려면 누군가는 의존적이어야 한다. 그가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복종해야 한다. 그가 이기적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 애덤 스미스가 저녁 식사에 들어간 노동을 가치 없다고 말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를 위해 스테이크를 요리해야만 한다. p.75

시기, 욕심, 경쟁. 케인스는 과거 200년 동안 인류가 이런 것들을 신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기적인 꿀벌 없이는 꿀도 없기 때문에 다른 여지가 없었다. 케인스는 정의가 불의고, 불의가 정의인 것처럼 가장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의는 유용하고 정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욕심은 효과가 있다. 불행하게도. p.79

실제로 경제적 인간은 풍요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모든 것을 장악했다. p.82

무엇을 숫자로 표현하면 그 즉시 확실한 것이 된다. p.85

'경제학적(p.91) 논리'라는 것은 그냥 아무 논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에 관한 거대한 담론' ... 우리의 가장 내적인 본성은 물론 '이익을 거두는 것'이다. p.92

우리 모두가 합리적인 개인이라는 가정을 받아들이면 인종, 계층, 성별 등에 대한 의문은 의미 없어진다. 우리는 모두 자유로운 존재들이 아닌가. ... 자유라는 단어는 단어에 불과하다. 정말로 단어에 불과하다. p.98

고용 시장에서는 여전히 인간을 형체와 성별이 없고, 가족이 없으며,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개인이라고 정의한다. 여성은 그런 존재 중 하나가 되거나, 반대로 눈에 띄지 않고 희생을 통해 균형을 맞춰 주는 존재가 되(p.105)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들은 상황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한쪽을 선택해야만 한다. p.106

미국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페미니즘을 '여성들이 기존의 파이에서 더 큰 조각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파이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말은 쉽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 우리는 단순히 솥에 여성을 추가해 섞었다. 한 세대 전체가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는 말을 "너는 무엇이든 되어야만 해"로 해석했다. '모든 것을 갖는 것'은 '모든 것을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p.118

'게임'이란 참가자들이 내리는 모든 선택의 조합에 따라 정해진 결과가 도출되는 갈등 상황을 말한다. ... 초기 게임이론은 경제학의 오랜 꿈과 맥을 같이 한다. 사회라는 책을 수학적인 관점으로 읽을 수 있으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꿈 말이다. p.124

전쟁은 합리적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인간들이 싸우는 것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경제적 인간은 비용이 더 낮은 출구가 없을 경우에만 폭력에 의존한다. 따라서 폭력보다 더 값싼 출구를 제공하면 된다. p.129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상은, 역사는 늘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수학 모델은 시장에서 감수해야 하는 위험에 대한 계산을 더 쉽게 하고 더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경제에도 좋고, 사회에도 좋다. p.131

경제학자들이 만들어 내는 수학 모델들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 모델들이 실제 세상의 모습을 무시한 가정을 전제로 했다면 실제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 p.136

금융 상품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제적 위험 관리를 목적으로 한다. 위험을 감수할 수 없는 사람들의 손에 있는 기회를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전한다. ... 금융시장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이익을 낼 수 없다는 의미에서 역설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은 위험을 감수하면 시장이 무너진다. p.149

사람들이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이라고 생각하는 무엇인가에 대해 집단적 환상에 사로잡히면 투기가 일어난다. 우리와 다른 존재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가치를 창출해 내고, 우리와 그 존재들 간의 간격을 좁히려 노력하는 것이다. (p.155) ... 사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중간에 그만두기 어렵다. 경제적 가치는 집단적 환상 속에서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곤 한다. 그리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 건 돈에 돈을 걸고, 그것에 또 돈을 거는 몇 겹의 도박이다. p.157

경제적 행동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지배되는 면이 많다. 그리고 개별적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p.168

경제적 인간은 성장하면서 지나가는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다. 적어도 단순화된 실험에서는 그렇게 보였다. 아마 다섯 살 먹은 아이들마저도 실제 상황에서는 실험실에서보다 더 복잡한 반응을 보일 확률이 높다. p.170

경제적 인간은 아주 좋게 말하면 '단순화된 인간'이고, 나쁘게 말하면 '환상'일 뿐 p.178

지구 상 어떤 언어도 경제학의 언어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 "예상 성장률이 높아지면 공공 재정이 건전해진다." "시장 정상화." "시장이 결정하도록 놔 두라." "공정한 경쟁의 장." "진입 장벽 낮추기." "결단을 내리다." "무리한 수요 진작 정책." " 생산성 전망 상향 조정." "비우호적인 환율 동향." "경쟁기반 시장." "매우 강력한 한계효과." 필요성만을 담은 언어. 우리는 모두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다만 다음에도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게 될지 모를 뿐. 이성에 무아지경으로 빠진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p.184

경제적 동기 부여책은 그것이 효과가 없어서라기보다, 효과를 발휘하더라도 때때로 상황의 본질을 바꿔 버려서 문제가 된다. 물론 이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p.197

우리가 경제적 동기 부여 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경제적 힘이 우리의 추동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보상이 다른 모든 추동력을 밀어내고 만다. 경제적 인간이 상황에 뛰어들어 도덕적, 정서적, 문화적 고려 대상들을 모두 쓰러뜨린 셈이다. 그 고려 대상들이야말로 돌아보면 경제가 가능하고 발전하는데 엄청나게 중요한 것들이었는데도 말이다. p.199

모든 사회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구조를 어떤 식으로든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제는 물론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p.203

사려 깊음, 공감, 돌봄 등에 관한 논의에서 돈과 부에 관한 이야기가 빠진 것이다. 어쩌면 이야말로 현재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남성에 비해 훨씬 열등한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p.204

돌봄 산업의 임금이 낮아서 주로 여성들이 그 분야에 종사하는 것인지, 주로 여성들이 일하기 때문에 그 분야의 임금이 낮은 것인지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남녀 간 경제적 불평등의 가장 큰 이유가 여성이 남성보다 돌봄 산업(p.207)에 더 많이 종사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간호하고 돌보는 일이 경제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는 것은 사랑과 돈 사이를 나누는 이분법 때문이다. (p.207) ... 나이팅게일은 하느님과 맘몬이 서로 적이 아니라고 말했다. 신의 일을 수행한다고 해서 간호사들이 보수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의 글에는 선행을 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잘살기를 원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말을 반복한다. 이 땅에서 신의 일을 수행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돈은 꼭 필요한 수단이다. p.210

금전적 보상이 성취에 대한 인정으로 간주되면 의욕을 더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분명 있다. (p.214) ...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서 인정과 지지를 받기 원한다. 돈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다. p.215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모든 사회관계의 근본이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이 경쟁적 관계를 정치적으로 권장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고 유지해야 하는 상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치를 없애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종류의 정치를 원할 뿐이다. (p.240) ... 목표는 모든 방면에서 시장 중심의 의사결정을 촉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면서 이득과 경쟁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런 욕망을 퍼뜨리고 제도화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임무다. (p.241) ... 이들은 '정치가 시장을 섬기기'를 바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합리적 행동을 장려해 경제를 이끌고 지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p.242

신자유주의의 역사에는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사람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신의 삶을 프로젝트로 경영하고, 그 결과에 온전히, 홀로 책임을 지는 기업가들만 있다. 성공하면 투자를 잘한 것이고, 실패하면 투자를 잘못한 것이다. p.248

신쟈유주의는 인간을 자본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노동과 자본 사이의 갈등을 간단히 해결한다. 즉, 인간의 삶을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련의 투자 행위로 보는 것이다. (p.249) ... 우리의 삶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일련의 투자에 지나지 않는다. p.250

개인의 자유 선택이 모여서 만들어진 비인격적인 곳이 바로 세상이다. p.254

경제적 인간은 인간 존재에 견주었을 때 매우 협소한 함의만을 가지고 있다. 경제학은 '개인의 과학'이 되었고, '개인'은 더 잘게 나눌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다. 전체를 쪼개서 얻은 가장 작은 단위가 바로 개인이다. 뉴턴의 물리학에서 말하는 원자처럼, 개인을 이해하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사실 이 개인이라는 것은 사람과 같은 개념이 아니다. p.262

인간은 자연적으로 타인에 대한 의존으로 둘러싸여 있는 존재다. 그 껍질을 부수고 나와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과제다. 자신의 공간을 점점 더 확보하고, 다른 사람들의 배경과 그들과의 관계, 그들이 만들어 낸 세상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 한다. ... 끊임없이 붙들려 있거나 오직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서만 가치가 부여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일들을 잘해내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사람들과 사회가 맡은 과제다. 우리는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관계와 관련된 문제에 직면한다. 우리 삶의 모습을 결정하는 수많은 정신적, 감정적 상처가 이때 생긴다. p.264

남성은 우리에게 목숨을 바칠 만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여성은 삶을 바칠 만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p.268

몸과 감정으로부터 도망감으로써 경제적 인간은 의존성으로부터 도피한다. 몸과 의존성은 연결되어 있다. 의존성은 몸을 통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제적 인간은 무엇을 절대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원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와 같다면 우리는 소외감을 느끼거나 무엇인가를 애걸하지 않아도 된다. p.285

경제적 인간이라는 개념은 여성을 배제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p.292

경제 이론은 세계를 보는 방식을 제공하고, 한 나라의 문제를 진단하고, 공적인 토론 조건들을 제시하고, 그 나라가 어떤식으로 발전할지 예상해서 그에 따른 문제들에 대한 처방을 내놓는다. 바로 이 이론이 인간 본성에 관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고집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p.296

우리가 경제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공식적인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 즉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왜 존재하며, 우리가 왜 일을 하는지를 밝히는 이야기 말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경제적 인간이다. 그리고 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가 여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p.302

사실 통계는 경제 주체들이 미시적 관점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나타내어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특정 현상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p.313

기대는 덫에 걸린 공포에 불과하다. p.317

경제학은 관계를 모든 것의 근본으로 봐야 한다. 심지어 모든 것을 개인 수준으로 쪼개는 과정에서도 관계는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 p.318

세상을 소유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편안하게 살려고 애쓰는 여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p.320) ... 소유는 집착이다. 죽은 물건을 손으로 감싸고 "이건 내 거야"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반면, 세상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은 무엇이 자기 것이라고 선언할 필요가 없다. p.321

우리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새로운 세대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그 말을 실천할 정도로 충분한 투자는 하지 않는다. p.331

※ 아리스토파네스 <뤼시스트라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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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한동일] 나의 길, 나의 걸음을 꿈꾸며 | Memento 2018-09-1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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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라틴어 수업

한동일 저
흐름출판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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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나의 걸음은, 길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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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진저리가 난다. 사실상 '공부'만큼 우리를 괴롭게하고, 옥죄는 단어도 드물다.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는 뜻인데, 변화가 빠른 시대니 만큼 더 빨리, 더 많이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공부해야 한다. 숨막히고 무서운 일인지 모르나, 사실 산다는 것 자체가 공부의 연속이다.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공부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것들을 얻는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직업(?)은 학생이었고, 공부가 나의 일이었다. 내가 취한 전략은 간단했다. 오직 "양"으로 승부를 본다.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고 여겼기에 취한 승부수였다. 결과는 차치하고 내가 얻은 교훈은 '"절대적 양"은 필요하다. 다만 "양 보다는 질"이 중요하다'였다. 이후의 삶에서 이 교훈은 새로운 일을 하는데 나만의 방법과 태도에 중요한 지시등이 되어주었다. <라틴어 수업>은 공부라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교훈에 대한 이야기다. 이를테면 '태도'나 '방향성'과 같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떤 '지혜'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라틴어라는 언어 공부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실제 강의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공부하는 노동자(p.126)"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p.377)"면서 깨달은 '지혜'를 나눠준다. 그 통로가 바로 라틴어다. 무엇보다 감명깊은 점은 그 '지혜'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따스하게 다가온다. 공부라는 긴 노동 속에서 느꼈을 고통과 허망함, 지난한 삶 속에서 신의 침묵을 바라보며 느꼈을 원망과 고뇌, 그리고 '희망'을 잃고 방황한 순간마다 느꼈을 암담함을 짐작해본다. 그 순간에 길어 올린 라틴어 구절들이 잘난척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Memento Mori'라는 라틴어 구절을 좋아한다. 죽음에 대한 겁이 많기도 하지만, 게으르고 포기에 익숙한 나에게 언제나 경고를 주기 위해서다. 물론 허세는 덤이고. 그래서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자신에 대한 기억을 정화하고, 사랑하고, 하고싶은 것을 위해 도전하는 모습에 힘을 얻어 본다. 살아 있기에 고통스럽고, 오히려 '희망'이 없기에 '희망'을 꿈꾼다는, 그렇기에 배워서 남주는 그의 모습에 위로를 얻는다. 분명 신은 침묵하신다. 다만 미소짓고 계실 뿐이다. 저자가 깨달았듯, 우리도 깨달을 것이라 믿으시기 때문이 아닐까.

 어차피 평생해야 할 일이라면, 조금은 숨을 돌려도 좋겠다. 내가 쉬고자 해도 세상과 사회와 시스템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나만의 걸음걸이로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 오늘도 '공부'에 감히 덤벼본다. 일가를 이루겠다는 목표는 없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길, 죽는 순간에 향기를 남길 수 있기를, 저자의 지혜에 위안을 얻어 본다. 살아갈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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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p.39) 틀을 세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향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그것을 빼서 쓸 수 있도록 지식을 분류해 꽂을 책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p.40

언어는 사고의 틀입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가 로마인들의 사고와 태도의 근간이 되었을 겁니다. p.68

'언어'를 알기는 아는데 그 언어를 '제대로 쓸 줄'은 모른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소통의 도구로서의 언어는 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되었을(p.69)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항구를 떠나 먼 바다로 나가면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해요. 어쩌면 그것은 배가 지나간 자리에 생기는 물거품이 아닐까 싶어요. 배와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아야 하는데 물거품을 보는 데서 생기는 문제라는 거죠. 이는 정작 메시지를 읽지 않고 그 파장에 집중하는 것과 같아요. p.70

'언어를 공부하는 것'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언어는 공부가 아니다'라는 역설적인 명제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언어라는 것이 다른 학문들처럼 분석적인 공부법으로 학습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꾸준한 습관을 통해 익힐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p.72

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공부한다. p.77

삶이란 끊임없이 내 안의 메리툼(장점)과 데펙투스(단점)를 묻고 답하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p.102

스스로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남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럽 대학의 평가 방식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p.116

중세의 교육 목표는 전인적인 교양인을 양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시기의 교육을 첫 단계로 문제의 정립, 곧 명제를 만드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리고 논리를 통해 그 명제에 접근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음 단계라고 보았고요. 이는 일종의 자기 표현의 훈련이었고, 이를 통해 학문(p.124)의 영역을 넘어 인생의 차원에서 궁극적인 논리를 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나와 나의 목표와 나의 과정이 일치하도록 하는 훈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세의 교육에서 주목할 것은 젊은 세대가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 자기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정체성이 여기에 있다고 봐요. p.125

그런데 겸손한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겸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실패의 경험에 대해 지나치게 좌절하고 비관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실패한 나'가 '나'의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건 자기 자신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일종의 자만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한 번의 실패는 나의 수많은 부분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 때문에 쉽게 좌절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겁니다. 우리는 실패했을 때 또 다른 '나'의 여집합들의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 여집합들이 잘해낼 수 있도록 격려해야하죠. 이렇게 자신이 가진 다른 가능성들을 생각하고 나아가는 것이 겸손한 자세가 아닐까요? p.129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나의 '최선'일 수도 있습니다. 공부를 항상 열심히 할 수만은 없고 또 그렇게 되지도 않습니다. p.130

중요한 건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해요. 그 둘 사이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또한 벗어났다고 해서 다시 빠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늘 들여다보고 구분 짓고 빠져 나오는 연습을 해야 해요. p.134

고통이 잇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음의 표시입니다. 산 사람, 살아 있는 사람만이 고통을 느끼는데 이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모순이 있는 소망이겠지요. 존재하기에 피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우리는 공부하고 일하며 살아갑니다. p.137

공부는 성(p.140)숙을 배워가는 좋은 과정입니다. 힘들게 공부하는 과정 중에 자기 자신과의 소통을 경험할 수 있어요.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게 되면 자신의 한계를 보기도 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또한 끊임없이 지독한 나, 열등한 나와 조우하게 되고요. p.141

그리스도교는 기존의 종교와 전통 문화와는 다른 형태의 평등을 주장합니다. 신의 자녀로서, 신의 모상으로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겁니다. p.150

신학과 법학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는 저도 똑같이 희망해봅니다. 신학과 법학이란 학문이 그리고 종교가, 경직되고 닫힌 사고의 실타래를 좀 더 유연하게 풀어갈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말입니다. p.158

오늘날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향유하는 권리는 그 출발이 종교의 자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167

Do ut des 네가 주니까 내가 준다. p.179

공부는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매듭을 짓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해줍니다. 어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그것을 내가 할 수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그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가보는 연습을 해보라고요. 공부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잘 마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p.183

'네가 주기 때문에 나도 준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개인이든 국가든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준비되어 있어(p.190)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우리가 얻고자 하는 바를 위해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갖출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고요.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갖추는 것, 그것이 결국은 힘이 되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길일 겁니다. 어쩌면 삶이란 자기 자신의 자아실현만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준비 속에서 좀 더 완성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p.191

Tempus est optimus iudex rerum omnium 시간이 모든 일의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다. p.193

hic et nunc 여기 그리고 지금 p.195

인간은 스스로 인간이라고 자각하고 난 뒤부터 신을 경배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이 단순히 강력한 절대자에게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를 지배하는 냉혹한 체제와 부조리한 가치관으로부터 고통받는 삶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즉 초기의 인류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신적인 것에서부터 유추하려 했던(p.212)것이죠. p.213

Deus no indiget nostri, sed nos indigemus Dei.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한다. p.213

Si vales bene est, ego valeo (S.V.B.E.E.V.)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p.220

인간이 나무와 다른 것중 하나는 살아 있는 동안 향기롭지 못하다면 죽어서도 절대 향기로울 수 없다는 점일 겁니다. 가식적이고 인위적이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살다가는 죽어서도 악취만 내뿜는(p.234) 존재가 될 거에요. p.235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입니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고, 내일은 네가 관이 되어 들어올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의 문구입니다. p.239

인간은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p.246

Si vis vitam, para mortem.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p.247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p.252

적어도 사람 사이의 일에서 오해나 오판이 없으려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사랑으로 무장한 통찰이 있어야 합니다. p.267

사실 우리의 아픔은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문제일 겁니다. 그런데 기득권을 누리는 사회 일각에선 자꾸 개인의 문제로 돌려 청년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어요. p.274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angulo cum libro. 내가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더 나은 곳은 없더라. - 토마스 이 켐피스, 독이릐 수도자이자 종교사상가 p.284

Tantum vemus quantum scimus.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p.332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상징하고 그 시대의 가치관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매개가 됩니다. 언어를 공부하다보면 단어(p.373) 하나도 시대와 사상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좋은 번역이 어려운 일인 것 같고,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도 나오나 봅니다. p.374

Verumtamen oportet me hodie et cras et sequent die ambulare. 사실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루카복음 13장 33절 p.377

저는 종교란 마치 한 무리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정원과 같다고 생각해요. 여기에는 모든 종교를 통틀어 '종교'라는 아주 큰 정원과 각각의 종교라 할 수 있는 작은 정원이 있어요. 그리고 그 안에는 종과 수가 다른 식물들이 어떤 제한된 범위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죠. 취향과 생각이 제각각인 식물은 동일한 정원에 뿌리를 내리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각각의 작은 정원에는 같은 생각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식물들만이 공존할 수 있는게 아닐가요? 각자 자기가 뿌리 내리고 있는 그 정원만 옳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더 큰 정원, 나아가 자연이라는 더 큰 세상 속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정원 안에서 정원 밖을 꿈꾸며 살기도 하고요. 정원과 달리 자연에는 잡풀과 잡목이 따로 없습니다. 다 제각기 의미를 가지고 있는(p.390) 구성원이죠. 정원 안에서는 각각의 생각과 가치관에 어울리지 않는 식물들은 뽑아내야 할 잡초에 불과하지만 더 넓은 자연에서는 그 어느 것도 잡풀, 잡목 인 것이 없습니다. 제각각의 정원들이 자기들의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더 넓은 자연에서는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라는 것, '트린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습니다. 그런 자연 같은 분위기가 조성될 때에야 비로소 진리는 진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요? 그래야 그 자체로 복종할 수밖에 없는 '오보에디레 베리타티 Oboedire Veritati'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p.391

Vulneratn omnes, ultima necat.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 p.394

'그가 과연 나에게 상처를 주었나?' ... 그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제 안의 약함과 부족함을 확인했기 때문에 제가 아팠던 거에요. 다시 말(p.400)해 저는 상처받은 게 아니라 제 안에 감추고 싶은 어떤 것이 타인에 의해 확인될 때마다 상처받았다고 여겼던 것이죠. 그때부터 저는 상처를 달리 생각하게 됐습니다. 대부분 스스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다가 자기 자신이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p.401

그때 저는 기억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죽어서 하늘에 갔을 때 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를 판단할까?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몇 날 몇 시에 내가 저질렀던 인간적인 실수들과 교회가 말하는 죄를 읊으며 나를 판단할까?' 하지만 저는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라면 제 기억을 기준으로 물어볼것 같았습니다. 이 땅에서 용서하지 못하고 불편하게 품고 간 기억과 아픔들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생에서 삶의 기억을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p.413)다.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절실하게 됐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 마태오복음 18장 18절의 말씀입니다. ... 저는 결국 제 인생은 한 번뿐 이니까 제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 나쁜 기억을 품고 가기보다, 차라리 그냥 하고 싶은 것을 충실히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Dilige et fac quod vis.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p.415

Nolite ergo esse solliciti in crastinum crastinus enim dies sollicitus erit sibi ipse sufficit diei malitia sua.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루음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마태복음 6장 34절. p.420

"부처님의 말씀에 본래 얻고 잃은 것은 없고 잠시 머물 뿐" 이규보<동국이상국집> ... "완전이란 이미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새로운 창조다." p.426

과거에도 참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꿈꿨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사실은 결국 그만큼 힘든 삶의 조건이 인간의 모든 세대마다 있었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역설저깅게도 인간은 희망이 없는 현실 가운데에서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꿈꾸는 존재라는 생각을 합니다. p.436

Letum non ominia finit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내지 않는다. Dum vita est, spes est.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p.438

제 희망은 삶이 죽음이라는 선택을 강요할 때 죽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그게 저의 최고의 희망입니다. 저에게 희망이란 이루고 싶은 무언가, 어떤 것에 대한 기대와 그것이 충족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저 '희망' 그 자체로 저를 살게 하는 것이고 살아 있게 하는 것입니다. p.440

Vos autem nolite vocari rabbi unusenim est magister vester omnes autem vos fratres estis.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 불리지 마라. 사실 너희의 스승은 한 분이고 너희 모두는 형제들이다. 마태오복음 23장 8절.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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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정재승]뇌가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로 움직이 듯 | Memento 2018-09-0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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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열두 발자국

정재승 저
어크로스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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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로 움직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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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포기'였다. 탐험은 책 속에서만, 내 머리 속에서만 안전한 일이 었다. 말로,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안전한 일이 아니었다. 주어진 자원이 너무나도 없었고, 어린 내 어깨에 짊어지지 않아도 될 짐을 스스로 짊어 맸다. 그 짐이 당연한 의무라고,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아니었다. 살아가다 보니 나이에 맞게 때로는 투정도 부려야 했고, 굳이 그 짐을 지지 않아도 세상은 어떻게든 굴러갔을 거란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게 나의 '뇌'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역으로 버텼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생존에 절대적으로 민감한 '겁쟁이의 후손'(p.291)"이다. 어른스럽고, 강해지고, 올바르다 믿는 길을 우직하게 나가야 한다고 믿었지만, 우리의 '뇌'는 그리고 '삶'은 생각보다 도덕이나 상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가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정재승 교수는 알쓸신잡에 출연한 뒤로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알파고, AI, 4차 산업혁명. 잇따른 이슈는 '뇌 과학자' 정재승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그가 목표로 한 '과학의 대중화'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 곰돌이 푸 만큼 '뇌 과학'이나 '4차산업혁명'을 우리에게 친숙하게 느끼게 했다. <열두 발자국>은 정재승 교수가 대중강연을 했던 열 두 강의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열두 꼭지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뇌는 어떻게 움직이는가?'에서 시작하여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당황스러운 해답을 얻게 한다.

 무엇이 당황스러울까. 일단 '뇌'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다. fMRI가 개발되어 미지의 영역이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도 진행중일 뿐이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게다가 밝혀진 부분들 역시 당황스러울 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녀석이다. 에너지란 에너지는 죄다 끌어쓰면서, 정반대로만 움직인다. 이를테면 창의력과 관련한 부분을 보자. "창의적이려면 어느 정도 지적인 능력은 있어야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으면 지능이 높다고 창의력이 높아지(p.329)"는 않는다. 흔히 생각하는 천재들과는 달리 "창의적인 성취를 위해서도 훈련이 중요(p.332)"하다.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 몰입을 강조"하지만 "오히려 두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다른 과제를 하다가 다시 돌아올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p.566)"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우리가 믿는 생각과는 반대로 가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당황스러운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겁쟁이 뇌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8할을 포기하고 주저했던 나에 비춰 볼때, 새로운 혁명의 시대에 정재승 교수는 무엇을 하라고 말하는 걸까. "'유치원생의 마음으로 일단 시도해보라.' (p.103)" "세상은 점점 예측 불가능하고 인생은 늘 불확실한 방향으로 전개(p.134)"된다. '70퍼센트 룰'에 따라 일단 무엇이든 하고 봐야한다. "결핍을 허하고 무료한 시간을 허락(p.177)"해야 한다. 적극적인 놀이와 방황, "자기 객과화"라는 "인간의 최고 덕목(p.636)"을 통해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 당황스럽다. 뇌가 그렇듯, 정재승 교수의 말도, 우리의 삶도 모순적이다. 컴퓨터는 수학적으로 완결성을 요구하지만, 인간은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다. 그래서 컴퓨터가 AI가 할 수 없는 '작업'을 추구해야 한다. 초연결 사회에 걸맞는 직업이 아닌 작업을, 지능이 아닌 상상력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뇌가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로 움직이 듯, 우리의 지향점도 역으로 따라가야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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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p.38)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았기지 않고,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면서 실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특히 처음 해보는 일에서는 계획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합니다. p.39

인센티브가 더 나은 결과에 도움이 되지 않듯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이끌어내지도 않습니다. p.50

우리는 망설이다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그냥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의미 있고 중요한 의사결정일수록 판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죠. 오히려 사소한 의사결정은 가볍게 시도해볼 수 있지만 이샌의 중요한 결정일수록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p.62) ... 'go' 버튼을 누르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p.63

미국 해병대에는 '70퍼센트 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70퍼센트 정도 확신이 들면 95퍼센트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의사(p.63)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라는 겁니다. ...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를 오랫동안 방치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p.64

누군가를 반대한다고 해서 그 상대편이 리더로 선택되지는 않아요. 대통령은 비전이나 미래를 꿈꾸게 하는 사람이어야지, 다른 사람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내 후보를 정하지는 않아요. p.74

좋은 의사결정이란 무엇일까요? ... 만약 저에게 물으신다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p.80

확신은 내가 그것을 어디에서 들었느냐,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뒷받침해줄 증거가 얼마나 되느냐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확신하는 성향이 다르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p.88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p.90

우리는 평소 길을 잃어본 경험이 별로 없죠. 길을 잃어본 순간,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p.97)도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p.98

'유치원생의 마음으로 일단 시도해보라.' p.103

사람들이 6~10가지 선택지 안에서 최대한 적절한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걸 넘어가버리면 선택이 고통스러워진다는 거죠. 보통 3~6가지 정도의 선택지를 주는 것이 가장 무난합니다. p.128

세상은 점점 예측 불가능하고 인생은 늘 불확실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따라서 잘하는 것에만 매달리는 사람보다는, 그리고 실패의 두려움이 큰 사람보다는 실패 후에 빨리 회복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게 더 현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p.134

Memento Mori ... 의사결정의 무게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p.157

스스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재미있는 걸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젊은(p.176)이들로, 성취 동기로 가득 찬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는 길은 그들에게 결핍을 허하고 무료한 시간을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방황하면 그 방황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실패하고 사고 쳐도 좋다고 믿어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p.177

어떻게 노느냐가 그 사람을 규정합니다.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도 바로 노는 시간이지요. p.189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늘 해야 할 것을 지워나가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입니다. p.190

위대한 질문의 매력은 '답하긴 어렵지만 그 질문 자체가 가진 울림은 크다.'는 거겠죠. p.190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유가 우리 손에 있는 사회가 아니라, 시스템이 자유를 움켜쥐고 우리를 대하는 사회지요. 우리는 이런 사회를 신자유주의라고 부릅니다. p.205

나는 어디에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가? 이 질문에 정말로 답하고 싶다면, 일만 들여다보지 말고 놀이에서 해답을 찾아보세요. 일과 놀이를 함께 성찰할 때, 우리는 더 나은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p.208

새로고침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새로고침을 하려면 여러분의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습관을 바꾸는 데는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지요. ... 그래서 여러분의 새해 결심은 번번이 실패할 수 밖에 없고, 여러분의 삶은 어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고, 작년 이맘때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겁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걸까요?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 삶을 예측 가능하게 해주고, 안전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p.238

후회없는 삶을 살겠다는 건, 저 같은 뇌과학자에게는 '나는 내 전전두엽의 시뮬레이션 기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표현으로 들립니다. 자기가 선택한 것 외의 다른 선택지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겠다는 건 어리석은 태도 입니다. 저는 인간이 이 시뮬레이션 능력을 통해서 다음에 유사한 선택 상황이 왔을 때 더 나은 결정을 하라는 뜻으로 후회하는 기능을 부여받은 거라 생각해요. p.249

징크스나 미신을 믿는 이유는 미래라는 굉장히 통제하기 어렵고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통제하(p.283)기 위해 인과관계를 억지로 갖다 붙인,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284

제2종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제1종 오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편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p.288

우리 모두는 생존에 절대적으로 민간함 '겁쟁이들의 후손'입니다. p.291

'행복은 예측할 수 없을 때 더 크게 다가오고, 불행은 예측할 수 없을 때 감당할 만하다' p.301

행복은 보상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기대와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미래를 알 수 있다면 행복도 사라질 겁니다. p.301

회의주의적인 삶의 태도란 어떤 것도 쉽게 믿지 않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려 애쓰는 태도를 말합니다. 근거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열린 태도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p.303

창의적인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세상과 연결하는 경험을 즐긴다'라고 들었는데, p.327

지능은 기존 지식과 절차를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이고, 창의성은 지식과 절차를 모를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 창의적이려면 어느 정도 지적인 능력은 있어야 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으면 지능이 높다고 창의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p.329

창의적인 성취를 위해서도 훈련이 중요하다. p.332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서로 연결하는 능력, 이것이 실제로 창의적인 사람의 뇌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 p.334

여러분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발상의 기회를 가지세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른 곳에 가서 흉내 내세요.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흉내 내세요. 똑같이 따라 하진 마시고 꾸준히 변형하세요. 그것이 창의적인 발상의 출발입니다. p.347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주워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운동(p.366) ... 수면 ... 독서, 여행, 사람 만나기 p.367

창의적인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순간이 있(p.368)을 뿐입니다. p.369

정답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좋은 문제를 정의하는 교육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정해진 답을 남들보다 먼저 찾는 교육이 아니라 나만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이 더 존중받아야 합니다. 높은 수준의 수학적 추론을 가르치고, 틀에 박힌 언(p.407)어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언어교육이 곧 사고와 철학 교육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가 더 큰 성취의 밑거름이 되어야 하며, 분야 중심이 아닌 문제 중심의 교육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경쟁하는 법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에 대한 다양성을 존중하고 학교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평가하는 세상이 될 때, 우리 사회는 인공지능과 공생하면서 더욱 인간적 가치를 높이는 사회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지성이 가야할 미래입니다. p.407

중요한 건 용어가 아니라 세계가 나아가려는 비전입니다. 스마트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비트 세계와 아톰 세계를 일치시켜 제조업과 유통업의 혁신을 이끌고 사용자와 공급자를 바로 이어주는 공유경제를 만들고 초연결 대융합 사회로 나아가려는 비전, 더 나아가 이것이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거대한 전 지구적 흐름에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미래의 기회는 아마도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p.437

정말 중요한 건 그걸 이용해서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냐 하는 겁니다. 이 질문에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미래를 이끌 겁니다. p.440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일자리의 지형도가 아니라 업무의 지형도입니다. 직업이 아니라 작업이 중요합니다. p.456

우리 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슈는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들과 기술을 두려워하고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입니다. 이른바 '기술 계급 사회'가 저는 가장 두렵습니다. p.456

미래의 기회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통해 학습하려는 자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p.464

인간은 행복을 '상태'로 인식하지 않고 '기억'에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p.466)  ... 오스카 레번트 ...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p.467

닐스 보어는 '하나의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세상에 퍼지고 결국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기성세대가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젊은 세대가 주요 세대로 등장하면서 바뀌는 것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p.486

테크놀로지의 미래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으며, 우리는 그것을 완벽히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p.520

혁명은 어떻게 오는가?(p.526) ... 첫 번째, 혁명이 오려면 그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도 혁명적으로 아름다워야 합니다. (p.527) ... '인지적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나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합니다. ... 그리고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p.528

혁명이 어떻게 시작될까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오기를 바라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에서 시작됩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혁명을 꿈꾸죠. p.531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발상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느냐, 위험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합니다. p.541

통계를 보면 20~30대에 일어난 성취가 40%이고요, 40대 이후에 일어난 성취는 무려 60%나 됩니다. p.547

어쩌면 '철이 든다'는 것은 시대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서서히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p.555

(우리사회에서) 퍼스트 펭귄이 안 나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이지 우리나라 젊은이가 스타트업 정신, 기업가적 정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p.583

창의적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일을 잘 미룬다'는 거라고 합니다. p.584

일견 상반되는 듯 보이는 두 가지 생각 사이에서 현명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 혁신은 찾아옵니다.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자들을 과감하되 무모하지 않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되 실패하지 않기 위한 준비에 철저한 사람이되어야 합니다. p.593

우리 뇌의 디폴트 모드는 리더십 모드가 아니라 팔로십 모드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리더가 되려는 성향을 가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따라 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내가 특별히 주목받거나 타깃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뇌는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p.634

자기 객과화는 인간의 최고 덕목이다. p.636

스스로 흥미를 갖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 것 같고, 그걸 발전시키는게 자신의 역할인 것 같아요. p.653

창의성이라는 게 어떤 우월한 능력이라기보다 특정 집단 내에서 좋거나 독특한 아이디어라고 인정받는 아이디(p.657)어를 전혀 모를 것 같은 다른 집단에 가서 이야기하면 그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 머릿속에서 온전히 처음부터 발화시킬 필요는 없다는 거죠. ...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창의성이라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가, 누구의 영향을 받는가, 누구의 책을 보는가, 어떤 경험을 쌓는가에 따라 길러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p.658

박웅현 .. "스티브 잡스는 천재가 아니다. 단(p.658)지 집요할 뿐이다." p.659

과학에서 말하는 천재의 정의를 잠깐 말씀드리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아(p.659)이디어와 실행력으로 역사를 앞당긴 사람'이에요. p.660

예술적 천재의 의미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 생각하는 방식,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다르게 해석한 사람들 p.660

단순히 결과물만 보고 "저 사람은 천재야. 정말 창의적이야."라고 말하기 보다 '우리 모두가 스쳐 지나간 일에서 저 사람은 어떻게 저걸 발견하고 해석했을까'에 중점을 두어야 해요. p.662

디자인이란, 다양한 욕망이 있는데 그것이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고 필요일 수도 있으며 이런 다양한 욕망을 사람들이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정리하는 과정이에요. (p.667) ... 생각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욕망을 세상에 내놓는 과정처럼 느껴져요. p.668

아티스트는 상상력을 확장하는 사람이고, 디자이너는 상상력을 구현하는 사람, 그리고 과학자는 상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사람 p.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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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