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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의 거짓말 | 서평단으로 글쓰기 2020-12-3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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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집값의 거짓말

김원장 저
해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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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동산을 잘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부동산 전문기자님의 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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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광역시는 전매제한을 받고 있는 지역 3군데가 하나의 그룹처럼 불린다.

해수동(해운대, 수영, 동래 지역). 전매제한을 하는 이유는 이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막고, 실 수요자에게 주택 공급분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매제한이 이루어지고 2년이 지난 지금, 이 세 지역의 집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전매제한이라는 초강수에도 보란 듯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단순히 정책적 실패로 보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집값을 결정하는 다른 요소가 개입한 것은 아닐까?

 

주식도 부동산도 경제학보다는 심리학에 가까운 분야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선택에 의해 모든 것은 결정된다. 가격도, 상승도, 하락도.

작가가 서두에 밝혔듯, 이 책은 아파트에 대한 글이라기보다, 부동산 시장에 참여하는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는 책이다. 단순히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는 것이 아닌, 거대 시장에서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들은 왜 정책이 의도한 것과는 반대로 행동하며 (2018년 3월 이전까지 집을 팔지 않는 다주택자의 경우 중과세를 당하게 된다고 미리 알렸지만, 사람들은 외면했다) 집값이 오름에도 패닉 바잉까지 동원하며 집을 사려고 하는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20여 년간 세 차례 부동산 담당 기자로 일하며 수집한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현재 한국 부동산 시장을 형성하는 거대한 담론들에 대해 철저히 팩트체크를 했다는 점이다.

 

<한국 부동산을 지배하는 담론 베스트 3>

1. 왜 내 아파트만 안 오를까?

서울의 집값은 단기적으로 많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30년 주기로 보면 통계적으로 소비자물가나 코스피 상승률을 아주 조금 웃돌뿐입니다. 서울의 집값 상승률은 코스피 상장기업의 매출 성장률에 훨씬 못 미칩니다. 경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이 통계를 알고, 경제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통계를 절대 믿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시장은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러니까 내일도 그렇겠지'하고 믿는다면, 거대하고 선제적인 투자자들에게 당하기 쉽습니다. 당신의 손실은 '내일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믿는 사람들의 수익에 보탬이 될 뿐입니다.

 

실제 서울의 집값은 얼마나 올랐을까?

KB부동산 통계를 보면 실제 2008년 1월 - 2018년 1월까지 만 10년 동안 서울의 주택 가격은 15.11퍼센트 올랐을 뿐입니다. (물론 2018년 이후 2년은 더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하늘을 뚫을 것 같은 강남구의 주택 가격도 이 10년 동안 14.93퍼센트 올랐습니다. 이는 비교 시점이 서울의 부동산이 최고점이었던 2008년이기 때문입니다. 또 지난 2009년 이후 서울의 주택 가격이 2014년까지 줄곧 내리다 다시 올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2018년까지만 보면 '집값이 꾸준히 올라 전고점을 넘어섰다'정도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5년 이상 되는 어느 시계열로 봐도, 전국 또는 서울의 집값은 물가인상률만큼, 또는 그보다 조금 올랐을 뿐입니다.

 

왜 이런 착시가 생길까? 언론이 매일 한남 더힐이나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가격을 중계하듯이 전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특히 전국에서 가장 오른 지역만 골라서 보도합니다.

 

그러니 우리 집만 안 오른 게 아닙니다. 몇몇 지역이 아주 많이 오르고, 상당수 지역은 제법 오르고, 대다수 지역은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반포주공 1단지나 잠실주공 5단지 같은 곳은 정말 '자고 나면 1억 껑충'입니다.

하지만 이들 아파트는 우리 부동산 시장의 0.1퍼센트에 불과한 곳입니다.

 

아파트 가격은 대표성이 매우 강합니다. 잠실 파크리오가 1억 원 올랐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다 한 채의 가격이 1억이 떨어지면 언론은 또 잠실 파크리오 가격이 1억 원 하락했다고 말합니다. 잠실 파크리오는 모두 6,864가구입니다.

 

2. 주거의 문제인가, 욕망의 문제인가.

지금은 욕망의 문제입니다. '그는 왜 단지 몇 해 전 집을 샀다는 이유로 앉아서 수 억 원을 버는가?' 언론은 매일 아침 이 욕망을 일깨웁니다. 만약 부동산 문제가 주거의 문제라면 국민들이 관심이 임대주택이나 토지임대부주택 같은 주거를 위한 주택에 모아져야 합니다. 우리 국민은 아파트를 원하는 게 아니고 아파트의 소유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집에 대한 욕망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의 말을 빌려보자면 <한국에서 주택은 소유자의 지위를 과시하는 지위 재다> 우리가 주택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확히 바라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집에 대한 규제가 넘쳐나는 이유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지면, 보수신문에는 '사회주의로 가는 지옥문이 열렸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등장한다)

왜 우리는 건물주가 되려 할까? 건물이나 땅을 소유한다는 것이 우리 시장에서 매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땅을 소유하면서 얻는 이윤을 흔히 '지대'라고 합니다. 이 지구에서 땅은 공기와 물과 함께 재생산이 안 되는 재화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시장경제에서 땅만 소유가 인정됩니다. 주인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소유하면 유리해집니다. 그래서 늘 가치가 올라갑니다. 여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됩니다.

정부는 이런저런 원칙을 만듭니다. 정부가 곧 규제입니다. 규제가 없으면 정부도 없습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 교수는 <그런 자유시장은 없다. 인간은 규제를 만들면서 안전해졌고, 덕분에 담대해졌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땅과 집을 가진 사람이 유리합니다. 선진국보다 더 유리합니다. 땅에서 나오는 막대한 지대는 공정한 경쟁을 훼손합니다. 2017년 12월 말 기준 우리나라 개인 토지 소유자는 전체 인구 중 32.6퍼센트이며, 상위 50만 명의 소유 비율은 53.9퍼센트입니다.(토지소유현황통계 2018, 국토교통부) 그 불균형을 분명히 바로 잡아야 합니다.

--- (내용 갈무리)

 

마무리하며,

매 장마다 저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쏠리는 현상 분석, 개별적 결정을 내리는 우리가 그릇된 비교대상을 가지게 된 이유, 이 모든 신기루를 만들어낸  언론들의 경쟁적 보도, 선동성 보도의 문제점, 역대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들의 헛점들에 대해서 대답을 이어 간다. 4장부터는 우리 경제 전체를 살피며, 줄어들지 않는 빈부격차, 코로나19이후 경제 성장률, 그리고 세계 각국이 돈을 풀게 되면서 생겨나는 부작용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책을 단순히 '부동산'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넣기는 아쉽다. 나는 김원장 기자의 <집값의 거짓말>을 한국 경제에 대한 현직 기자의 날카로운 분석이 따르는 경제서로 재정의 하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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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 자유로운리뷰 2020-12-3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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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장하준,최재붕,홍기빈,김누리,김경일,정관용 저/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제작진 기획
인플루엔셜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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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대한 석학들의 명쾌한 정의와 앞으로의 우리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책. 단숨에 읽히는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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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변곡점에서

언택트(Untact, 접촉contact을 뜻하는 콘택트에 언un이 붙어 '접촉하지 않는다'는 의미다)가 낯설진 않다. SF영화 속에서 우리가 본 이미지들을 곧 떠올릴 수 있다. 미래에 한 단면이 될 언택트는 영화 속에서 충분히 그려졌다.

 

그러나, 우리가 언택트를 이렇게 맞이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흑사병과 같은 역사 속에 존재한 대규모 전염병은, 지층 속의 화석처럼 단단히 봉해져서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와는 멀리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참혹한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 세계를 관통한, 올해 2020년을 집어삼킨, 21세기 인류를 휩쓴 점염병으로 기록될 신종 바이러스, 바로 코로나19다. 우리가 코로나19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로 인해 우리의 삶 전반이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가 본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설명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더 이상 6개의 인간종에서 끝까지 생존한 고유하고 유일한 종 사피엔스로 머물 수가 없게 되었다. 코로나19의 전파와 이에 대한 감염으로 우리의 삶은 역사적으로 인류학적으로 변화해야 할 시점에 봉착했고, 코로나 사피엔스에 대한 고찰과 해결책 등을 모색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이 책은 각 분야의 석학 6명의 목소리를 통해서, 코로나19를 만들어낸 우리의 생활방식, 사회를 지배하는 시스템의 문제,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지, 진정으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조언을 전한다.

 

먼저, 코로나19의 발생과정과, 왜 우리는 코로나19에 주목해야 하는가부터 이야기해보겠다.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이 발생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정확한 전파 경로를 규명하진 못했지만, 야생동물인 박쥐가 보유한 바이러스가 제2, 제3의 숙주를 통해 인간에게 전파되며 전염이 시작된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

 

코로나19를 단순히 화학백신이라는 것으로 잠재울 수 있는 질병으로만 본다면 엄청난 착오다. 코로나19는 메타포로 작용하여 우리 사회가 앓고 있던 만성적인 질병의 민낯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그 질병의 이름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가 현대의 주류 체제가 된 이유는 명백하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 인간의 욕망을 더 효과적이고 합리적으로 충족시켜주는 체제였기에 인간은 이를 채택했고, 이 터전 위에서 각자의 욕망을 실현해왔다.

 

종국적으로는 모든 상황을 최악으로 만든 자본주의는 이미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커지면 커질수록 그 속의 인간을 잡아먹는 구조를 취한다. 이를 야수 자본주의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수요가 없음에도 계속해서 생산을 지속하며 끝없이 자연을 훼손해가는 구조를 가진다. 생태계 파괴로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들의 역습인 냥, 5년에서 3년, 점점 더 짧아지는 주기로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목도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회를 바꿔나가야 할까?

 

먼저 제도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자본주의를 대체할만한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을 안전하게 지키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코로나19 라는 위기로 인해 평소 취약했던 부분, 복지의 사각지대 위치한 사람들, 공공정치가 닿지 않았던 곳까지 모두 양지로 나오게 되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두어야 할 가치는 바로 생명과 안전임을 깨달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미주의가 약하거나 거의 없는 나라로, 미국의 정치, 교육, 경제체제를 취하는 총체적 미국화를 거친 나라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를 바라보면, 미국은 어떠한가? 마치 조타수를 잃은 배처럼 휘청이고 있는 실정이다. 실업률은 최고치를 찍고 있으며, 코로나19 감염자 수와 사망자수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인간의 고삐를 잡아챈 자본주의를 고쳐 메어야 하고, 과도하게 미국화 되어 있는 나라의 시스템 역시 손보아야 한다.

 

공공서비스와 재난대응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어야 하며,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을 통해 적절한 치료와 케어를 받게 하는 것. 우리 사회 전반 표준이 미국에 맞춰져 있다면, 유럽식 사회적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하여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겠다.

 

미국의 자유방임적 모델, 중국의 전체주의적 대응 모델, 일본의 관료주의적 대응 모델 등 각국의 위기 대응방식은 달랐다. 한국은 K방역이라고 부를 정도로 성숙한 대응 모델을 보였다. 한국이 포문을 연 독자적 대응 방식은 실제 감염자 수의 감소와 전파의 차단과 함께 생활 방역,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통한 새로운 가치를 재정립했다. 이런 자신감을 한반도 정치 안정화와 나아가 미래를 향한 통일로 확장시키는 것은 어떨까. 단순히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공으로 한반도의 안정화를 이룩하는 것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

 

다음으로는 경제 부분인데, 현재는 전 세계 산업이 멈춰져 있다. 몇 개의 분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산업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기에 그에 맞는 경기부양이 필요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다. 그 당시 정부는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며 실물 경제 부양을 기대했는데 실패했다. 그 돈이 금융기관에만 유입됐고 결국 제대로 시장에는 돈이 돌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금과 같은 시기는 수요, 공급, 소비가 한 번에 다 붕괴되는 상황으로 생계에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돈이 돌아가 이를 내수로 연결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난지원금이 1차적으로 지원된 바 있지만, 이는 여느 OECD국과 비교했을 때 결코 크지 않은 금액이며 좀 더 과감히 개인을 향해 돈을 풀 필요가 있다. 실제 한국은 OECD 평균 자영업자 비율인 15%보다 많은 25%의 자영업자가 살아가는 나라이다. 내수가 돌고 그 안의 사람들이 살아가야 한다.

 

산업구조의 변화 역시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즉 비대면 서비스, 온라인으로의 생활공간 이동,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아이들 교육과 회사 업무 등 생활 전반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한 문명의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으며 코로나19가 그 촉진제가 되었다. 생각의 표준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사회 속의 표준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미국의 플랫폼 사업의 경우 한국 시장으로 진입이 어려운데, 기존의 한국 산업 체계에서는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규제 속에서 혁신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첨단이냐 전통이냐를 가릴 것 없이 전통사업 내에서도 디지털화의 혁신이 가능하고, 새로운 문명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왔음을 1,2,3차 산업의 변화 속에서 배웠기에 규제의 혁신도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마지막은 여기에 대응하는 개인의 태도다.

우리는 코로나19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할 뿐이다. 이 불안은 정확한 사실을 제공하면 소거된다. 투명한 정보공개 시스템 구축이 시민의 불안을 잠재우고 스스로 연대하게 만들었다. 통제하고 봉쇄하고 차별하지 않았으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 위기를 헤쳐 나가고 있으며 우리 안의 높은 시민의식을 경험했다.

 

국가 간 비교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일 것이다. 이번 코로나19에 대응하며 단순히 사망자가 최소한으로 발생했다, 발생자 수가 감소하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잘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우리만이 가진 힘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진국이라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좋은 나라, 행복한 나라를 규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간과 사회는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와 같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인류는 지혜로운 만족감을 지니며 자신의 욕망에 브레이크를 걸 줄 알며, 기업과 경제 역시 무분별한 개발과 대량생산이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며 좀 더 세분화된 리커트 척도를 통해 다양한 세상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작동하리라 믿는다.

 

중세시대의 봉건제 붕괴가 결정적인 시대의 전환점이 되었지만, 그 당시 중세시대 인구 반 이상을 집어삼킨 흑사병 역시 하나의 전환 축을 담당한 것은 사실이다.

암흑기 이후 찾아온 인류문명의 꽃 르네상스.

하나의 시대가 끝나는 것이 다만 비통한 일만은 아닌 것은, 그다음으로 나타나는 세상은 전과는 달라진 또 다른 문명의 교두보가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를 경험하며, 이제껏 알면서도 외면했던 모든 문제들을 제대로 바라보기, 함께 생각하기, 나와 타인이 아닌 우리라는 울타리로 연대하기, 결국 인류는 우주라는 망망대해 속에서 지구라는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의 회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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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이국환, 산지니) | 자유로운리뷰 2020-12-2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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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이국환 저
산지니 | 201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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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될지언정, 나아간다. 교수님의 인생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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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

 

시시포스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밀어 올려야 하는 신의 형벌을 받는다. 이 바위는 자체의 무게로 인해 산꼭대기에 도착하면 다시 굴러 떨어지곤 했다. 나는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를 읽으며 동시에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에 대해 떠올렸다. 시시포스는 산 위로 바윗돌을 밀어 올리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까? 아니면 주어진 숙명을 묵묵히 끝까지 행하여 나가야 할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거에 비하면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워졌고, 현대 기술문명은 과거 10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매 순간 찾아오는 불안과 이로 인한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사회생활에서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 역시 사회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높아졌다.

 

불행히도 현대를 지배하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변혁시킬 힘이 개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시시포스처럼 바윗돌 같은 운명을 짊어지고 나아갈 뿐이다. 그렇다면 삶은 이미 정해진 잿빛 그림 속의 풍경일 뿐일 걸까.

 

이러한 현실의 부조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 저자는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를 통해 단순히 물질문명의 척도로 가늠할 수 없는 삶의 가치들에 대해서 말한다.

 

책 속의 저자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예술에서, 오랜 성인들이 찾아낸 철학에서, 책을 통해서, 심지어 고통과 불안 속에서도 산다는 것의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고 전한다.

 

"예술은 감춰진 것을 드러내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며 무의식을 의식하게 한다. 예술 창작은 세계를 모사하거나 언어로 베껴내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자신을 깨어나게 하는 과정이다. 예술은 재현을 통해 인간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것과 현실에 가려 보지 못했던 가치를 다시 보게 하며 운명에 맞서 우리를 구원한다." (p20,21)

 

저자는 작가의 의도가 개입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감성을 통해서 예술작품이 우리 삶의 한 장면과 중첩되는 그 순간이 가장 인간다운 순간이라고 말한다.

 

예술과 철학의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좀 더 쉽게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책은 어떤가.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책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기들의 기능적 뛰어남이 사용자의 세상을 향한 인식, 태도에 영향을 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으뜸가는 일이 독서라고 말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처럼, 우리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내면을 정화해 나간다. 책을 통해서 가보지 않은 세계를 탐험하고,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간접적인 경험에 그칠지라도 책 읽기를 통한 외연의 확장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

 

위와 같은 방법을 통해 삶을 가치롭게 보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하더라도 매 순간 찾아오는 고통과 불안이라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게 삶의 진리다. 책의 표지에도 등장하는 '우리는 불안한 자의 후예'라는 말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심리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꿰뚫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간은 온갖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불안이라는 감정을 발달시켰다고 한다. 이 불안이라는 것이 현대에는 학업 불안, 취업 불안, 주거 불안, 고용 불안, 승진 불안, 노후 불안이라는 형태로 현현하고 있지만 인간은 이러한 불안에 적절히 대처하며 변화해가고 성장한다. 불안에 잠식당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강구하며 불안이라는 터널 끝의 반짝이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가 저 멀리 보이는 산의 정상과도 같이 느껴진다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안에서 찾아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에 무엇보다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서 가장 큰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사회를 이루는 기본단위인 '가족'의 실상은 모순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사춘기 시절이 되면 찾아오는 부모님과 자녀의 반목, 통과의례가 사라진 사회 속에서 중2병이라는 독특한 성장통을 겪는 청소년기의 아이들, 육아하는 부모는 언젠가는 독립해 떠날 자녀에 대한 상실감등을 대비해야 하는 등, 복합적인 현실에 놓여있다. 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노력해야 하는 점들에 대해서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매년 봄에 열리는 지역사회의 가족음악회에 참여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툴지만 하나의 악기를 맡아 한 곡의 합주를 위해 함께하는 시간이라든지, 실제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었음을 고백하는 모습에서 현대 사회 속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절절히 공감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마치 10년 전 대학교 시절로 돌아가 15주 차로 구성된 인문학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지역을 대표하는 대학의 교수님이기도 한, 저자의 유년시절 성장담과 오랜 시간 쌓아온 인문학적 삶의 성찰의 태도를 아낌없이 책에 녹여냈기에, 한 권의 책이 아닌 한 학기 강의를 듣는 듯 한 기시감을 맛볼 수 있었다.

 

이번 글을 시작했던 시시포스 신화에 대한 알베르 카뮈의 책을 보면 삶의 부조리함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데, 카뮈는 시시포스 삶의 부조리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했다. 사력을 다해 밀어 올린 바위가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질 때 시시포스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할까? 아니다. 그는 바위의 주인이 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그는 들판으로 굴러간 바위를 향해 다시 걸어간다. 그 순간부터 바위는 그의 것이다.

 

시시포스의 바윗돌은 어쩐지 우리의 현재와 닮아 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시시포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시시포스가 한 것처럼 자신을 쓸모없고 희망 없는 과업으로 내밀었던 신들에게 운명을 내던지지 않고 바위의 주인이 되기를 자청함으로써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의 숭고함을 부여하며, 짧을지언정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쁨을 만끽함으로써 운명을 의식하고 극복하는 것.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생의 의지를 저버릴 것이 아니라 찰나의 시간에서조차 삶의 숨어있는 가치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내고, 다가올 오후조차 위대한 미래로 바라보는 태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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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수업 (오연호, 오마이북) | 자유로운리뷰 2020-12-2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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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삶을 위한 수업

마르쿠스 베른센 저/오연호 역
오마이북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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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교육방식, 우리 교육이 직면한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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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 학교에 갑니다

 

우리가 유럽의 교육과 복지제도에서 희망을 찾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현실에서는 결핍되어 있는 것들을 보완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백년대계 교육이라고 하면서, 교육과정은 시기를 타며 바뀌고 입시제도는 더욱 복잡해졌으며, 정작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선생도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무용수처럼 곤란한 상태에 놓여있다.

 

수능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 3일이던가? 이 정도로 아둔하게 수능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우리 집에는 '대'수능생이 없기 때문이다. 학령기의 자녀를 둔 학부모가 되어보니, 다가 올 수능날 12년 공부를 시험 한 번으로 결과를 내야 하는 학생들이 아니라, <ㅣ>와 <ㅏ>를 아직도 헷갈려하는 우리 집 초등학교 1학년이 더 걱정인 현실이다.

 

유치원은 고작 하고,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를 통해서 처음으로 공교육 내에서 격차를 절감하게 되었다. <한글도, 기본 학습도 학교에서 차근차근히 배웁니다>라는 교육청의 안내 공문에도 불구하고, 학기가 끝나자 아이는 성적표 비슷한 것을 집으로 가져왔으며, 거기엔 중(상-중-하)이라는 평가가 수학 평가란에 기재되어 있었다. 다소 심란한 마음으로 우리 부부는 말없이 저녁을 먹었다. (한국 교육에선 국, 영, 사, 과를 다 잘해도 수학을 못하면 힘을 못쓴다 라고 말한다.)

<이래서 다들 미리미리 학습지하고, 누리과정 찾아가고, 영어학원 가고 그러는 거구나... 숲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 맨날 숲에서 놀던 아이가 어느 세월에 그걸 다 따라잡는데...>

 

마음이 심란할 때는 책에서 답을 찾는다. 책에는 덴마크만의 교육철학과 <학생들은 왜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과 여기에 답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렇지! 학교가 존재하는 이유!)

 

책 속의 선생님들이 주로 상대하는 학생의 연령은 보통 8학년들(우리나라 중2-3)로, 향후 고교 진학에 대한 고민을 하는 또래들이었지만, 그게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기에 한분 한분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수학을 왜 배우는지 먼저 알아야지, 그럼, 미국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누가 처음부터 영어를 잘해. 왜 배우는지를 먼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하는 자문자답을 하면서 말이다.

 

덴마크의 교육의 차별점은,

1. 소외 없는 교실 만들기 (학생 개개인이 "나도 우리 교실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를 느끼게 한다)

2. 시험 점수 없는 평가방법(시험은 적을수록 좋고, 시험에 대한 분석은 많을수록 좋다)

3. 구체적인 직업군을 만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들이 수업에 편성되어 있다는 것(학교에 가기 싫다면, 그 주간은 개별 학생이 지역사회와 연계해 현장학습 수업도 가능하다)

4. 민주주의 교육(공동체 사회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덕목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공동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5. 본인들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 (1년간의 갭이어(gap year)도 있고, 비슷한 경험을 했던 진로 상담 선생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언을 얻는다)

 

대학시절 여행을 하며 만났던 유럽 출신 친구들에게선,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혹은 직업학교 )전 갭이어(gap year) 기간이 있어 이 시기에 여행을 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덴마크에는 이 같은 과정을 '에프터스콜레'에서 수행하고 있다. 덴마크에만 있는 '인생설계 학교'인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가기 전에 1년 동안 쉬었다 가는 학교로 여기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능하다.

 

진로 고민 없이 점수에 맞춰 대학에 들어갔고, 100여 군데의 회사에 지원서를 낸 후 뽑힌 곳에 들어가 일을 했기에, 30이 넘은 나는 아직도 진로라는 것에 뚜렷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치열한 고민과 자기 탐색을 거쳐서 도달해야하는 진로, 직업, 꿈에 우리는 좀처럼 시간을 내어 고민하지 못한다. 아니 그럴 시간이 없다.

 

우리나라는 중등과정 중에 '자유학기제'라는 시간을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학교 시험이 없기에 선행 진도를 빼기 좋은 기간으로 더욱더 사교육 시장이 치열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좋은 취지의 제도도 사회 전체의 의식변화가 없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음을 , 사교육 문제를 타파하지 않는 한은 당장 풀기 어려운 현실의 문제들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교육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루소의 '에밀'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교육의 목적은 도덕적 자유, 즉 자유와 규율, 의지의 독립성과 사회정의를 양립시킬 수 있는 인간을 형성하는 것, 교육내용의 선택도 지식의 체계에 대신하여 생활의 원리가 중시된다.

이는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을 다룬 5장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며, 실제적으로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과도 같은 내용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는 아이를 길러낸다는 것은 그저 한두 개의 교과목을 잘 가르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는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지만, 지금 한국학교의 경우에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치열해지는 선행학습과 공과(功課) 쌓기, 이를 교두보 삼아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포트폴리오 만들기를 위한 자격 취득의 장이 된 것만 같아 씁쓸하다.

 

호우르키에르 선생님은 가장 나쁜 교육이 '정답을 맞히기 위해 학교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분명 '세상을 어떻게 알아갈 것인가'라는 목적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우리의 학교 생활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16년에서 끝나지만,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다시금 1학년 아이의 학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개학으로 시작된 학교생활은 좀처럼 풀릴 생각을 않는다. 사실 집에서 온라인 학습을 해보니 그럭저럭 새로운 시대의 적합한 교육방법이며 나쁘지 않았다.(4차 산업시대에 걸맞은 온라인 학습법으로 재편되는 기점이 지금이 아닐까) 그렇지만 우리가 학교를 생각할 때 무조건적인 지식 습득만을 고려할 것인가? 아니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아이가 처음으로 만나는 규칙과 질서가 형성된 곳이며, 내 기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기분은 어떤지, 상대방도 이런 방식을 좋아하는지, 공동체 생활에서 필요한 덕목들을 차근히 경험하며 배워나가는 곳이다.

선생님과 학생 간의 관계 속에서 위계질서를 경험하고, 학교 안에서의 문제들을 때로는 스스로, 때로는 반 친구들이 힘을 합쳐 해결해나가야 하는 작은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 2회 등교를 하면서도 학교를 다녀와 친구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말하며 학교생활을 복기하는 아이를 보면 학교가 아이 인생의 어떤 의미인지는 미처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삶을 위한 수업'을 읽으며, 좀 더 희망적으로 미래를, 우리 학교를 바라본다. 뜻있는 선생님과 그를 뒷받침 해주는 교육제도, 그리고 점수로 등급화하지 않은 평가시스템, 꿈과 직업이 미래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생활에서 살아 숨 쉬는 진로와 직업체험이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그리고 소외됨 없이 모두가 스스로 소중한 한 명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함양하게 되는 그런 학교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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