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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히로에겐 하쿠가 있듯이 (나의 특별한 친구) | 사는 이야기 2021-09-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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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참여

그녀와 나는 가끔 조조영화를 본다.

영화를 기반으로 한 약속의 좋은 점은 영화 시작 10분전까지 만나면 되고, 영화 상영이 끝난 시점이 공식적으로 만남의 끝으로 연결되기에, 일상으로 편히 돌아갈 수 있다.

사실 우리 사이의 가장 좋은 점은, 둘 다 아이의 '엄마'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모든 점에서 아이를 중심에 둬도 서로 섭섭해 하거나, 어떤 경우에 발생하는 미안함에서 조금은 덜 미안해도 된다는 점이 우리가 공유하는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그녀와 나는 함께 아이를 낳으며 알게 된 사이다. 그래서 쉬이 "친구사이에요"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사이의 유일한 단점이 될 것 같다.

 

우리는 비정기적으로 연락을 한다. 어느 아침에는 이런 메세지가 도착해 있다.

"영화의 전당에서 <화양연화> 특별상영을 하네요."

"아 그 영화 10년전에 노트북으로 봤었는데 좋았어요.."

"리마스터 기념 재개봉이라네요. 전 아직 한번도 못봤답니다. 괜찮으면 내일 오전 어때요?"

"좋아요."

 

그렇게 시작된 조조영화는 봄날의 장범준 콘서트로 이어지고, 가을의 부산국제영화제로 이어졌다. 우리는 우리가 처음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취향을 공유하고, 감상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갔다.

 

우리 대화에서 주어를 이루던 "아이가-"라는 문장은 "저는- "으로 바뀌어 나갔다.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낯선 상황 중 하나는 누구도 나란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결혼 후 생긴 인간관계중 시어머님의 지분이 가장 클 것 같다. 어머님과 그렇게 많은 대화를 주고 받았지만 정작 그 속에 나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었다. 늘 "그래, oo이는 어떻니?"라는 말로 시작된 대화는 아무리 길게 이어져도 늘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자연스레 '내'가 배제되어 있었다. 나는 자주 공허했고, 때로는 무력감을 느꼈다.

 

여름 날, 그녀가 이런 날에는 맥주가 딱인데, 라고 지나가듯이 던진 말에 오늘 저녁에 한잔 할까요? 라고 답했다. 그녀가 사는 조용한 주택가의 호젓한 영국식 펍느낌의 맥주집은 그렇게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7월이 생일인 내게 생일주를 사주는 그녀는 같은 날 두 달 뒤 생일을 맞았기에 우리는 여름과 가을자락에서  매 해 두 번은 만났다(술자리로). 우리 사이에는 함께 본 영화가 쌓이고, 같이 마신 맥주들이 방울방울 쌓여갔다.

 

최근 '샹치'가 개봉했다.  (카톡) '샹치'봤어요? 보러 갈래요? 라는 메세지에 그럴까요?라고 답하고 찾은 상영관에는 미리 예매해둔 표가 무색하게 관객이 우리 둘 뿐이었다..

 

"오늘 대관한 거나 다름없네요. 이런날도 다 있네요."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게요, 이렇게 큰 관에 아무도 없는 건 또 처음이네요."라며 기념샷이나 한장찍자는 그녀의 제안에 마스크를 야무지게 올려쓰고 렌즈를 응시했다.

 

카메라 화면은 거울처럼 우리를 담아냈다. 화면 속에는 집에서 아이 둘 건사하느라 진땀흘려 눅진한 티셔츠를 입은 어떤 엄마가 아니라, 한껏 취향과 감정을 발산하는 생기 넘치는 여인이 앉아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한 해 두 해가 아닌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엄마라는 역할에 매몰되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일상 속의 이런 시간들 덕분이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치히로라는 본명을 마녀 유바바에게 빼앗기고 센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센이 '치히로'였음을 잊지 않게 도와주는 강의 신 '하쿠'는 결국 마지막에 치히로를 구하고, 하쿠 자신도 마녀의 주술이 사라진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온다.

 

때론 내게 그녀가 '하쿠'처럼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였지, 나는 어떤걸 할 때 즐거웠지, 가을이면 영화제에서 영화를 봤었지, 봄이면 버스커버스커를 들었지, 여름이면 우리는 온천천에 앉아 맥주를 마시곤 했지 하는 소소한 일상과 감각들을 일깨워준다. 그녀는 내가 본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게 지켜주는 강의 신 '하쿠'같다. <두 분은 어떤 사이세요?> 라고 누군가 우리에게 묻는다면, 나는 그녀는 내 특별한 친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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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를 준비하는자세, 스마트브레인 스티커북으로 아이 초집중시간 만들기 | 서평단으로 글쓰기 2021-09-14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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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마트 브레인 스티커북 6~10 세트

도희 외 글/이현주 외 그림
꿈꾸는달팽이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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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달팽이에서 나온 스마트 브레인 스티커북 세트입니다. 

1-5권에 이어 6-10권까지 새롭게 출간되었네요!

 

 

스티커북 활동은 꽤 해봤는데, 이번 책은 확실히 교육적(?)인 측면을 잘 반영한 듯 했어요. (아이들 학습지를 만드는 대교 출판사입니다) 주제가 다양해요! 동물, 공룡, 안전, 국기, 요즘 핫한 코딩까지.  이번에 출간된 스티커북의 주제는 바로-> 음식, 코딩, 안전, 건강, 아이가 후다닥 가져간 한권은 무엇일까요?

 

 

바로 탈것! (=vehicle) 이었습니다. 물어보니 스티커 211개가 제일 적어서 이걸 1번활동북으로 골랐다고 하네요 :-)



 

자 그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책의 목차가 중요한 것처럼 활동북도 첫 장을 넘기면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지 팁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혼자서 스티커를 붙이는걸 봐주면서 이건 어디야? 이건 이름이 뭐야? 하면서 물어봐주며 시각적 청각적 자극을 함께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즐거운 언팩시간을 가지고...

오랜만에 등장한 스티커북. 사실 아이가 연령에 비해서 소근육이 한~ 참 느리다는 의견을 전달받고... ㅠㅠ 가위질, 색종이 접기, 젓가락질, 심지어 간식시간 간식봉지를 뜯거나 병뚜껑을 여는것, 요플레 포장 벗겨서 떠먹기 등 모든 활동이 소근육과 연관된 활동이라

소근육 발달에 좋은 가장 기초적인 활동! 스티커북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스티커를 하나하나 떼어내 제자리에 붙이는 것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정교한 손동작이 필요한 활동이라 사실은 소근육활동의 최적화된 그러면서도 비기너(소근육발달을 목표로한 아이)에게도 적합한 활동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장 뒷장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맨 뒷장에 스티커장이 있어요. (다만 스티커 절취선이 없어서, 칼이나 가위를 활용해 뜯어야 했답니다. 스티커 절취선이 들어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았어요!)

 


 

버스를 탈때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물어보니, 줄을 서야한답니다. 한명씩 한명씩 줄을 세워주고 있어요.


 

둘이서 의논도 하고



 

혼자서도 하고

 


 

땅에서 달리는 탈것들- 바다 - 하늘 - 우주 까지 나아가서 마지막 우주에 도착한 우주인들을 붙이는 활동으로 피날레를 했어요.

 

 

탈것을 마치고, 다음 날 아침에는 '안전' 편을 시작!

손씻기, 마스크쓰기 등등 시의성있는 내용들이 찰떡같이 들어가 있네요. 유치원에서 생활에서 늘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그림을 통해서 떠올려 봅니다.


 

유치원 다녀와서도 잊지 않고, 활동북 하는 둘째를 보니

이전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아 지나쳤던 스티커북이 제때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마트 브레인 스티커북의 장점은 

아이가 유치원(어린이집)에서 생활하면서 만날 수 있는 상황들이 많이 실려 있다는 점이에요.

자연스레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고, 아이도 활동을 하면서 눈으로 익히고 스티커를 붙이며 기억하는 과정들이 생각보다 유익하게 느껴졌어요.

또래와의 화용언어가 약한 둘째에게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대화들을 알려줄 수 있다는 것도 좋았습니다.

 

즐거운 서평단 활동으로 즐거운 주말과 월요일 이었습니다 :-)

 

*Yes24리뷰어클럽 서평단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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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편지 (북유럽 여행길에서 띄운 25통의 편지) | 서평단으로 글쓰기 2021-09-0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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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길 위의 편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저/곽영미 역
궁리출판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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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편지>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쓴 여행에세이.

 

그러나 이 여행에세이가 특별한 것은, 이 글은 단순히 여행과 기록을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청탁을 받은 작가가 그동안 영국인들이 관심의 주요 대상지가 아니었던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여행하며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때로는 비판적으로 서술했다는 지점 때문이다.

 

여자가 글을 쓰려면 매년 500파운드의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버지니아 울프가 등장하기 전에, 쓰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하다.

 

이 글에서는 여자 홀로 (심지어 갓난아기와 보모를 동행한, 그러나 여행목적지에 따라서 베이스캠프 격인 마을에 아이와 보모는 남겨두고 홀로 탐방을 떠나곤 했다)

여행하며 겪을 수 있는 고단함과(마음 속에 늘 내재해있는 안전에 대한 두려움)

현지인들과의 가격흥정,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들과의 교류, 그리고 각 나라에 존재하는 사회제도들에 대한 신랄할 비판과 시도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기존의 감상위주의 여행에세이와는 차이가 난다.

 

실제로 이 책은 울스턴크래프트가 쓴 작품들 중 최고의 호평을 받았으며 가장 잘 팔렸음으로 그 진가를 증명했다.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몇 개국에 번역되고, 미국판도 출간되었다.

 

17세기에 배와 마차를 이용해 여행을 다닌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는 자주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떠올렸다. 여성화가 마리안느가 귀족의 딸 엘로이즈의 결혼 초상화를 그리기위해 나룻배를 타고 그녀가 사는 성으로 찾아가는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거친 파고가 닿는 거대한 절벽과 성, 그녀들이 산책한 해안선의 모습은 책 속에서 메리가 묘사하는 풍경과 겹쳐졌다.

 

생각지 못한 일정이었던 만큼 두 국가를 가르는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스웨덴 최고의 산지 절벽을 올라야 한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습니다. 절별들 한가운데로 들어서니 바람이 들이치지 않았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일렁이고, 개울이 흐르고, 소나무 숲들이 암벽의 단조로움을 깨주었습니다. 이따금 절벽들은 불쑥불쑥 장엄함을 드러냈습니다. 한번은 아주 근사한 절벽을 오른 후 거대한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지요. 그곳에서 마지막 협곡이 우리를 잡아먹을 듯이 위협하는가 싶더니 방향을 틀자마자 푸른 초원과 아름다운 호수가 눈의 피로를 씻겨주고 우리의 눈을 매혹했습니다. p56

 

25통의 편지가 담긴 이 책은 그 나라에 대한 환경적 묘사와 (우리 눈 앞에는 그녀의 눈높이로 바라본 풍경들이 함께 그려진다) 그 지역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 사회를 지배하는 법에 대한 관찰이 이어진다. 그래서 한 통의 편지는 다채롭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어머니이며, 그 시절 남성 지식인들이 보여준 모순들에 대항해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페미니즘의 선구자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이 얼마나 자주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가를 여행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유려하고 우아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사유가 돋보이는 몇 문장을 갈무리 하며 마친다.

 

듣기로는 이 지역이 스웨덴 최악의 불모지 중 한 곳이라던데, 경작지가 노르웨이보다 더 많았습니다. 다양한 작물이 자라는 평야가 멀리까지 뻗어나가다 해안에 이르러 경사가 지면서 풍광은 끊어졌어요. 마차를 타고 가면서 대충 훑어본 바로 판단하자면, 농업은 노르웨이보다 한층 발달했지만 거주지는 스웨덴이 가난의 면모가 더 짙었어요. p170, 열일곱째 편지 중

 

국민은 본래 어리석은 법이라고들 합니다. 얼마나 모순적 인가요! 부지런할 이유가 없는 노예들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동력, 즉 사욕을 가질 수 없어 능력도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으니까요. 예술과 과학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은 짐승 취급을 당해왔습니다. 단지 그들의 실력이 예술과 과학을 생산해내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p57, 58, 다섯 번째 편지 중

 

그러나 함부르크 사람들을 보면 볼수록 광범위한 투기는 도덕성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제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더군요. 인간은 이상한 기계 같습니다. 인간의 도덕 체계는 일반적으로 하나의 대원칙으로 통합됩니다. 그 원칙도 인간이 제 자존심을 지키는 한계를 태연히 깨부수도록 내버려두면 힘을 잃고 말지요. 인간은 부를 좇으면 좇을수록 인류애를, 다음에는 개개인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게 됩니다. 어떤 건 이해와 충돌하고, 어떤 건 쾌락과 충돌합니다. p222, 스물 세 번째 편지 중

 

오늘은 토요일이고, 저녁 시간이 평소와 다르게 평온했습니다. 마을은 어디서나 일요일 준비로 분주했지요. 호밀을 가득 실은 작은 짐마차가 우리 옆을 지나갔는데, 추수 풍경을 많이도 보았지만 연필과 가슴으로 담고 싶을 만큼 다정한 풍경이었답니다. 어린 소녀가 머리털이 텁수룩한 말의 등에 다리를 벌리고 올라타 말머리 위로 나뭇가지를 휘둘렀어요. 아버지는 아장아장 걸어와 아빠를 맞았을 아이를 들쳐 안고 짐수레와 나란히 걸었고, 어린 생명은 아빠 목에 매달리려고 두 팔을 뻗었습니다. 페티코트를 입은 여자들 위쪽에서는 한 소년이 옥수수 다발이 떨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갈퀴질을 하고 있었어요. p162, 열여섯 번째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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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님이 보고 계셔 - 홍칼리 무당일기 | 자유로운리뷰 2021-09-0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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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령님이 보고 계셔

홍칼리 저
위즈덤하우스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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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 무당, 유튜브하는 무당, 타투하는 무당, 편견을 깨는 무당. 당신이 알고 있는 무당에 대한 생각을 싹 바꿔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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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계셔>

- 홍칼리 무당 일기

 

 

전에 살던 동네에는 유난히 골목골목 oo장군, oo보살이라 쓰인 옛집이 많았다. 보통 입구에는 기다란 대나무에 오색의 비치볼과 수박모양의 비치볼과 오방색의 천들을 엮어서 세워두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쪽 세상과의 경계를 짓는 냥 느껴지기도 했다. 이후에 마을 어르신께 들은바 로는, 바다에 접해있는 이 마을에는 전쟁과 생계로 바다에 나가서 목숨을 잃은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그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제가 열렸고, 그 형태가 남아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점집들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무당이라는 존재로 통해 발현되었다. 어쩐지 무당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조금 무섭고, 두렵다. 신과 영접하는 존재. 이세상과 저세상의 경계에 서있는 이. 샤먼은 신비로운데, 무당은 토속적이고 예스럽다.

 

예를 들어 이런 무당은 어떤가? 90년대에 태어나 21세기에 신내림을 받고, 2021년을 살아가는 MZ세대 무당. 코로나19시대에는 영상통화로 (혹은 줌으로) 점사를 봐주는 무당이라면 어떤가? 마음속에 존재하던 무당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는가?

 

오방색의 현란한 한복이 아니라, 무지 티셔츠에 슬랙스를 입는 무당, 조도가 낮은 붉은 조명이 가득한 신당이 아닌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점사를 보는 무당.

 

우리는 미디어가 보여준 전형적 무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요즘 무당은 그런 거 아니니까.

 

이 책의 저자이며 무당인 홍칼리님은 독특하다. 글도 쓰고(글샤라고도 한다. 글쓰는 샤먼), 공부도 하고, 기도도 올리고, 반려견도 돌보며, 예술작업도 하는 무당이다. 이렇게 보면 무당이 그녀의 코어 정체성이 아니라, 그가 수행하는 여러 역할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본캐, 부캐일수도 있고. 역할극일수도 있고.

 

젊고, 아름다운 그녀가 무당이 된 것이 궁금했다. 시원하게 알려준다. 무당되는법 A to Z. 그런데 무당의 보통날들도 궁금하지 않은가? 무당이라고 매번 신과 영접해서 점사만 본다면 그것도 무당의 노동착취아닌가? (무당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무당에게도 워라밸이 필요하다. 연애이야기도 있고, 무당 이전의 삶의 이야기도 있다. 첫 책에 비기를 다 털어놓듯 여과 없이 적어냈다. 그 이야기들은 종교 구분없이, 미신론-유신론 관계없이 통한다.

 

우리는 고민이 있을 때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심리상담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실제로 점집(무당이 있는 신당을 의미)은 전통적인=traditional 심리상담소의 역할을 했다. 무당의 어원은 묻는자.

 

한국의 무당은 왜 묻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을까? ‘무당하면 느껴지는 이미지는 물어보기보다는 술술 답을 말해주는 모습일 거다. 하지만 무당은 손님이 왔을 때 손님에게 묻고, 신령에게도 묻고, 스스로에게도 물어보는 자다. 그렇게 수행을 해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닐까. p89

 

평소 의지하며 믿는 신이 있다면 그분께 기도를 드리겠지만, 우리는 너무나 알고 싶은 거다. 미래를. 다가오는 미래에 내가 이 시험에 합격할 것인지, 이직을 앞두고 과연 이 회사에서는 승승장구할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이 사람과의 인연에서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 등등을 너무 묻고 싶은데, 그러한 속내를 여실없이 드러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 아닐까. (완벽한 프라이버시의 공간)

 

무당일기라는 다소 으스스한 부제를 달고 있지만, 무당 홍칼리의 글은 따뜻하고, 편안하다. 읽다보면 이미 산전수전 공중전으로 겪고 저 앞에 걸어가고 있는 언니가 인생 상담을 해주는 기분이다. 그렇지, 그럴땐 이런식으로 하면 좋아. 그런 방법이 고민이면 이렇게 생각해봐.

그리고 충분히 자신에 대해 고민했기에 나오는 의견들. 이분법적 성적인식에 대해, 환경에 대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에 대해, 여성에 대해, 운명에 대해, 팔자에 대해. 그녀의 깊은 사유가 거슬리지 않고(꼰대력없음) 편안히 닿는다.

 

많은 사람이 운명이 바뀔 수 있냐고 질문한다. 운명, 흔히 팔자라고 하는 게 정말 정해진 걸까. 사주 명리는 기호라서 무한하게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운명의 여덟 글자(팔자)는 바뀌진 않지만 무한한 변주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운명이란 명을 운전한다는 뜻이다. 같은 사주팔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는 그 자신의 의지, 그를 둘러싼 편견과 고정관념을 생산하는 교육, 그와 주변 환경의 일상적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진다. 당연하게도 나를 둘러싼 환경과 세상이 나아져야 운명도 나아지는 거다.

 

운명학은 개개인의 삶을 신화로 만드는 미신이 아니라 고정된 언어를 해체하고 삶을 다르게 해석해보자는 실천에 가깝다. 고정된 관념을 자꾸 버려야 하는 이유는 삶의 무한성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다. 운명은 하나의 좁은 직선 도로가 아니다. 뻔한 관념은 있어도 뻔한 인생은 없다. p170, 171

 

나는 진즉에 하지 못한 고민을 하고 있다. 나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질문들이 급격하게 밀려온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결혼이 우측을 차지하고, 고민은 좌측을 차지하고 나란히 나아가고 있는 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홍칼리 작가가 존경스러웠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 (예를 들어) 내가 설령 그녀와 같은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을지라도 과연 세간의(부모님의) 눈과 목소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무당이라니, 말도 안돼. 다들 실망할거야.’

 

그녀는 어떤가?

 

친구) 칼리는 왜 스스로가 무당이라고 생각해요?

칼리) ..... 내림굿을 받고 점사를 보고 있으니까요? 사실 무당이라는 직업도 제가 입는 역할 옷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왜 무당이 되었나 생각해보면..... 저는 편견을 부수는 것이 재미있어요. 무당이라는 옷에 묻은 편견을 벗겨내고 싶어서 무당이 된 것 같아요. p89

 

내가 바라는 지점에 그녀는 이미 도착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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