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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 새떼보다 더욱 무서운 인간의 이상 심리 | 기본 카테고리 2011-07-3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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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사주를 아버지로 둔 멜라니(티피 헤드렌 분)는 애완동물 가게에서 조우한 남성 미치(로드 테일러 분)에 이끌려 앵무새를 사들고 집까지 찾아갑니다. 하지만 멜라니는 미치가 사는 보데가 만의 외딴 해안 마을에서 새 떼의 갑작스런 습격을 받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63년 작 ‘새’는 제목 그대로 새떼의 습격으로 인해 희생되는 외딴 해안 마을의 사람들을 묘사합니다. 까마귀와 갈매기 등 다양한 종류의 새들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인간을 공격해 살해합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동물이 학살자로 돌변한다는 점에서 엉성한 특수 효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가 지난 현재 관람해도 여전히 공포를 자아냅니다. 새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지만 조류학에 정통한 번디 부인(에셀 그리프스 분)이 이죽거리듯이 환경을 파괴한 인간에 대해 새들이 복수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희생자가 발생한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라디오의 뉴스 보도는 태평해 대중 매체의 조작 및 축소 보도 혹은 신뢰성에 대한 의문 제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는 타이틀 롤 새들의 공격을 중심으로 한 호러 영화나 재난 영화보다 미치를 둘러싼 세 여성의 이상 심리와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된 치정극으로 보는 것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119분의 러닝 타임의 절반에 가까운 50여 분이 지나서야 시작되는 새 떼의 습격 전까지 세 여성 등장인물의 치정 관계에 공을 들입니다.


주인공 멜라니는 우연히 만난 미치에 매료되어 그의 차적을 무단으로 조회하고 집 주소까지 알아내 몰래 잠입하는데 이는 명백한 스토킹입니다. 새떼의 습격으로 주민들이 희생되자 마을의 여성이 멜라니가 불행을 몰고 온 악마라고 규정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은 낯선 외부자에 경계심을 드러내는 폐쇄적인 인간의 본성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지나친 호기심에서 비롯된 스토킹으로 인해 스스로 신세를 망치는 여성을 단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애당초 미치가 멜라니를 알게 된 원인도 멜라니가 저지른 경범죄에서 비롯된 것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시커먼 새떼로 점령당해 불길한 새벽빛이 비추는 미치의 집의 비주얼이 시각적으로 ‘새’를 상징한다면 병적인 이상 심리에 사로잡혀 화를 자초하는 금발 여성이라는 히치콕 영화의 전형적인 여주인공은 ‘새’의 치정극 중심의 서사와 정서를 압축합니다.   


이상 심리에 사로잡힌 것은 멜라니뿐만은 아닙니다. 멜라니가 도움을 얻게 되는 애니(수잔 플레셋 분)는 미치와 사귀고 결별한 뒤에도 그를 잊지 못해 보데가 만으로 이사합니다.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그의 집 근처로 이사하는 것 역시 정상적인 심리 상태로 보기 어렵습니다. 미치의 어머니 리디아(제시카 탠디 분)는 남편의 죽음 이후 아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해 미치와 애니를 헤어지게 했으며 새로 나타난 멜라니 역시 강하게 경계합니다. 새떼의 습격을 겪으며 멜라니와 리디아의 갈등은 결말에서 봉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새의 습격이 원인도 밝혀지지 않고 결말도 나지 않았던 것처럼 멜라니가 미치를 만나는 이상 리디아는 멜라니를 계속 경계할 것입니다. 세 여성의 극단적인 애정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경계하기보다 즐기는 미치 역시 정상은 아닙니다.

    

힘 있는 아버지를 지닌 금발의 젊은 여성으로 특별한 직업 없이 호의호식하며 언론의 가십 기사의 주인공으로 일반인에게 유명해진 멜라니의 모습은 최근의 패리스 힐튼을 연상시킵니다. 아마도 히치콕은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키는 멜라니를 유명인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2011 시네바캉스 서울의 일환으로 상영된 ‘새’는 복원된 디지털 소스로 상영되었습니다. 칼 같은 화질이 도리어 어색해 과거의 흥취를 살리지 못했으나 거장 히치콕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걸작인 만큼 본편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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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블루레이 지름 - ‘악마를 보았다’ | 기본 카테고리 2011-07-3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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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주문한 '악마를 보았다' 블루레이가 도착했습니다.


발매일이 며칠 연기되면서 엘리트 더블 케이스가 사은품으로 포함되었습니다. 등급 표시가 아웃 케이스 하단으로 배치된 것은 보기 좋습니다.


왼쪽이 '악마를 보았다', 오른쪽이 엘리트 더블 케이스입니다. 김지운 감독이 직접 감수했다는 'DIRECTOR APPROVED EDITION'이라는 독특한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엘리트 더블 케이스 뒷면에도 블루레이 아웃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영화 소개 인쇄물이 부착되었습니다.


아웃 케이스에서 블루레이 케이스를 꺼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검정색 케이스를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재킷의 표지는 양면으로 선택 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단의 표지보다는 상단의 표지가 훨씬 낫습니다.


케이스 내부의 디스크 알판. 왼쪽이 국내 극장 개봉판, 오른쪽이 인터내셔널 에디션입니다.


디스크 프린팅과 동일한 엽서. 랜덤으로 김지운 감독의 사인이 포함되었는데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왼쪽의 이병헌의 모습은 '악마를 보았다'보다 '달콤한 인생'의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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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독특하며 현대적인 반세기 전 가족 영화 | 기본 카테고리 2011-07-2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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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시달리는 마사코(다나카 키누요)는 남편 료스케(미시마 마사오 분)가 세탁소를 재건한지 얼마 되지 않아 와병에 시달리자 남편의 친구 기무라(가토 다이스케 분)와 동업하며 힘겹게 두 딸과 조카를 부양합니다.


박찬욱 감독이 ‘친절한 금자씨’에서 빵집 ‘나루세’라는 이름으로 경의를 표했던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1952년 작 ‘엄마’는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 마사코를 장녀 도시코(카가와 교코 분)의 시선을 통해 묘사합니다.


마사코를 중심으로 한 후쿠하라 집안은 유독 남성들이 무기력합니다. 남편과 외아들 스스무(가타야마 아키히코 분) 모두 노동에 시달리다 병약해져 경제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래지 않아 죽습니다. 따라서 집안을 지탱해야 하는 의무는 마사코를 비롯한 여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됩니다. 큰 딸 도시코는 철딱서니 없고 덜렁대는데 반해 작은딸 히사코(에나미 게이코 분)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눈치 채고 큰집에 양녀로 가겠다고 자청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먼저 죽는 스스무의 임종이나 장례식, 무덤 등의 장면은 전무하며 암전을 자주 삽입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엄마’는 반세기 전의 흑백 영화답지 않게 압축적이며 전개가 빠릅니다. 도시코의 내레이션이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지만 내레이션에 의존하지 않고 최소화하는 세련된 방식을 선택합니다.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가족의 죽음을 비롯한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새 출발하라는 계몽적이며 교훈적 주제의식이 뚜렷한 건전 가족 영화이지만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며 신파에 경도되지 않는 것이 장점입니다.    


‘엄마’는 가족 영화답지 않게 독특한 요소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선 큰딸과 둘째딸이 적지 않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전술한 바와 같이 둘째딸이 정신적으로 보다 성숙했다는 설정은 큰딸의 고정적 이미지에 반하는 전복입니다. 가족들이 국수를 먹으려는 순간 아버지가 임종을 맞는 것도 역설적입니다. 장수의 상징인 국수를 앞에 두고 죽음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이모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국수를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어린 테츠(이토 다카시)가 그릇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으로 시퀀스가 마무리되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테츠의 강렬한 식욕은 삶은 계속되며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주제 의식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가족들이 극장을 찾은 장면에서는 갑자기 ‘終’자가 화면을 메워 영화가 갑작스레 끝난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지게 하는 나루세 미키오의 재기가 돋보이며 생선회로 다시 태어나 어머니의 배를 채워준 후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히사코의 대사는 기묘합니다. ‘엄마는 강하니까’라는 도시코의 대사는 고전적이지만 ‘엄마에게도 개인으로서의 삶이 있다’는 요지의 신지로(오카다 에이지 분)의 대사는 가치관의 현대적 변화를 암시합니다. 도시코가 신지로에게 시집가고 테츠도 친어머니인 노리코(나카기타 치에코 분)에게 돌아가고 나면 하나둘씩 가족을 떠나보낸 마사코는 결국 홀로 남겨질 것입니다.


‘엄마’는 일본 영화이지만 등장인물들의 옷차림과 대사만 바꾸면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서적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낯 한 번 찌푸리지 않는 어머니 상은 한국과 일본 모두 전통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마사코와 그녀의 동생 노리코의 혈색이 좋고 피부가 말끔한 것은 옥에 티입니다. ‘똑 사세요’라는 명대사를 남긴 어머니 역의 장미희가 가난을 강조하기 위한 지저분한 분장을 지우고 말끔한 얼굴로 등장해 화제가 되었던 1998년 작 MBC 드라마 ‘육남매’를 떠올리게 합니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 사무라이의 일원인 시치로지 역을 맡았으며 ‘요짐보’에서 얼간이 이노키치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가토 다이스케가 끝내 어머니를 넘보지 않은 건실하며 듬직한 사내 기무라로 출연한 것도 이채롭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의 일환으로 상영된 ‘엄마’의 한글 자막은 일본어 대사 특유의 맛을 살리지 못하고 의역해 아쉬웠습니다. 히사코의 대사 중 ‘엄마는 언니만 좋아해’는 ‘엄마는 테츠만 좋아해’의 오역이었습니다. 일본어 대사를 영어 등 타국어로 옮긴 것을 한글 자막으로 중역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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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블루레이, dvd 지름 - ‘더 브레이브’ 스틸북 외 | 기본 카테고리 2011-07-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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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입한 블루레이 및 dvd입니다.


'더 브레이브'의 블루레이와 dvd 콤보 스틸북. 국내 발매 시 소량만 찍어내고 추가 제작을 하지 않기로 악명 높은 파라마운트의 블루레이인데다 스틸북이라 예약 주문했습니다. 예상대로 예약 주문 초기에 품절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뒷면. 스틸북에 인쇄된 것이 아니라 띠지입니다.


띠지를 걷어내면 스틸북에 인쇄된 제프 브리지스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스틸북 내부.


디스크를 꺼냈습니다. 왼쪽의 갈색 디스크가 블루레이, 오른쪽의 흰색 디스크가 dvd입니다.


네 명의 등장인물이 인쇄된 스틸북 내부. 왼쪽 하단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 매티 역의 헤릴리 스타인펠드는 스틸북 전면에 이름이 제외되어 있어 의문을 자아냅니다.


 


'부당거래' 블루레이 아웃케이스 앞면과 뒷면.


 


디지팩의 앞면과 뒷면. 각각 류승범과 황정민입니다.


디지팩 내부. '부당거래'는 CJ의 한국 영화 블루레이 12번째 제품입니다.


 


아인스의 할인으로 풀린 '그라인드 하우스' 블루레이. 아웃케이스입니다.


 


블루레이 재킷. 엘리트 케이스입니다.


디스크. 왼쪽이 부가 영상 dvd이고 오른쪽이 '데쓰 프루프'와 '플래닛 테러'가 수록된 본편 블루레이입니다.


디스크를 제거한 케이스 내부.


 


할인으로 풀린 '사랑니' dvd. 2디스크입니다. 상당히 독특한 멜러 영화로 정유미의 상업 영화 데뷔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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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 진부한 주제, 단절적 흐름의 전쟁 영화 | 기본 카테고리 2011-07-2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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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고지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휴전 협정이 진행 중인 1953년 초 방첩대 소속 중위 강은표(신하균 분)는 동부 전선 애록 고지 악어 중대로 배속됩니다. 실언으로 인한 좌천과 인민군과의 내통자를 색출하기 위한 목적을 겸한 은표는 개전 초기 실종된 대학 친구 김수혁과 재회하게 됩니다. 은표는 수혁이 일개 병에서 중위로 승진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장훈 감독의 ‘고지전’은 휴전 협정을 앞두고 무의미한 고지 탈환 및 사수 작전에 투입된 국군과 인민군 병사들을 조명합니다. 최근 한국 영화들이 보다 잔혹한 고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골몰하는 것에 반해, ‘고지전’은 애당초 15세 관람가로 흥행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전쟁 영화치고는 고어를 비롯한 잔혹한 장면이 많지 않습니다.


전쟁 영화라면 등장인물들의 죽음을 통해 전쟁의 비정함과 인간의 존엄성을 환기시키는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전투 장면을 중심으로 오락성을 충족시키는 것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고지전’은 주제 의식과 오락성 양면에서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고지전’의 전투 장면은 극장에 개봉되는 상업 영화가 아니라 TV를 통해 방영되는 뮤직 비디오처럼 일관된 흐름 없이 툭툭 끊깁니다. 이를테면 신임 중대장(조진웅 분)이 대공포를 고지에 배치할 것을 지시하지만 실제 대공포가 배치되는 장면은 생략되었으며 대공포가 인민군에게 탈취당한 뒤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묘사하지 않습니다. 폭우가 내리는 밤 중공군의 대군이 밀려드는 장면에서는 비장미와 위기감을 한껏 조성하지만 제대로 된 전투 장면도 없이 다음 날 아침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미군의 폭격에 의해 중공군이 물러났다는 대사 한 마디로 간단히 봉합합니다. 휴전 협정 조인 후 발효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마지막 전투 장면은 영화의 모든 것을 압축해야 할 클라이맥스이지만 잔뜩 벌려놓은 등장인물들을 ‘처리’하기에 바빠 할애된 러닝 타임이 부족하며 단절적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죽음이자 의외의 순간에 전사한 수혁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죽음은 관객이 예상한 방식과 순간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등장인물의 죽음을 통해 비극적 카타르시스와 주제의식을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서사 역시 단절적입니다. 부상을 입고 인민군에게 포로가 된 수혁이 어떤 과정을 거쳐 포항 전투에 참전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민군 중대장 현정윤(류승룡 분)으로부터 석방된 것인지, 아니면 목숨을 걸고 탈출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방첩대 출신 은표가 내통자의 존재를 확인하고도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내적 갈등도 별로 없이 쉽게 동화되는 것도 어색합니다.  


주제 의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북 관계를 대립과 경색으로 몰고 간 이명박 정부 하에서 남북 화해와 냉전의 폭압성을 주제를 했다는 점을 평가할 수 있을지 몰라도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 투 동막골’ 그리고 ‘고지전’을 집필한 각본가 박상연의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와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습니다. 핏줄이 같아 동질적임을 확인하고도 이데올로기와 냉전에 내몰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는 남북 관계를 다룬 영화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웰컴 투 동막골’에서 익숙한 신하균이 다시 캐스팅된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분단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할애되는 수혁의 죽음 장면도 ‘긴 할 말을 다 하고 죽는’ 과거의 신파 전쟁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고지전’은 한국 전쟁을 다룬 한국 영화의 자기 복제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여성 저격수라는 반전(反轉)의 소재는 ‘풀 메탈 재킷’(극장 배부용 팸플릿에서 스포일러를 공개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을, 그녀의 죽음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킵니다. 포항 장면 역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마하 해변 장면을 거꾸로 재생한 듯합니다. 무의미한 고지 탈환에 병사들이 희생된다는 소재는 ‘씬 레드 라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는 영화다’와 ‘의형제’ 이후 ‘고지전’은 장훈 감독의 세 번째 영화인데 갈수록 스케일은 커지는 대신 색깔 없는 밋밋한 영화를 내놓고 있습니다. ‘의형제’의 매끈함은 오락영화 감독으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로 볼 수 있었지만 ‘고지전’은 매끈함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진부하며 단절적입니다. 133분의 적지 않은 러닝 타임 동안 서사와 전투 장면이 자연스레 연결되지 못합니다.


한때 구설수에 휘말린 스승 김기덕 감독의 관계를 감안하면, ‘풍산개’를 통해 적은 예산으로도 창의적인 각본으로 매력적인 결과물을 내놓은 김기덕 감독에 비해 동일한 주제인 남북 분단을 다루며 거액의 제작비를 쏟아 부은 장훈 감독의 결과물은 신통치 않습니다. 장훈 감독의 세 편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일관된 것이 있다면 여성 등장인물의 비중이 적으며 남성 위주의 서사를 끌어간다는 것뿐입니다. ‘영화는 영화다’의 개성과 힘은 장훈의 것이 아니라 김기덕의 것으로 규정한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듯합니다. 차라리 15세 관람가를 포기하고 보다 잔혹한 장면을 제시하며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연출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나마 인상적인 것인 류승룡과 이제훈입니다. 류승룡은 언제나 그렇듯 노련하며 ‘파수꾼’의 신성 이제훈은 강렬함이 돋보입니다. 차후 이제훈이 강렬함이 아닌 부드러움으로 승부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시’에서 대사가 많지 않았던 이다윗이 류덕환과 비슷한 이미지로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이다윗이 분한 이병 남성식의 노래 ‘전선야곡’은 영화를 지배합니다. 개봉 전까지 연기력이 우려되었던 고수의 연기도 비교적 무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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