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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 책이야기 2019-11-29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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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저
허블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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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그것은 내가 순례의식에 대해 가진 최고의 의문이기도 해. 만약 내게 일기를 쓰는 습관이 없었다면 나 역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의 존재를 잊어버렸을 거야. 매년 순례의식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오면 나는 일기에 적어둔 그 질문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흔적을 되새겼어. 그러면서 어쩌면, 소피 너도 한 번은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망각의 약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한 모금의 음료가 우리에게서 지워버렸을 그 질문을. 어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_ p.12)

 

할머니는 스카이랩의 서른세 번째 생물학자로 탐사선에 올랐다. 엄마는 그때 아직 어린아이였고, 할머니는 엄마가 어른이 되기 전에 꼭 돌아오겠다고 엄지를 맞대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얼마 뒤, 탐사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광자 추진체의 결함으로 도약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회사는 강하게 부인했지만, 공방 끝에 결국 추진체의 설계 결함을 인정했다. 사라졌을 때 할머니의 나이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스펙트럼 _ p.60)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 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_ p.181)

 

 

 

 

2017년, 「관내분실」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동시에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초엽 작가. 그녀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이렇게 총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저자는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모두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세계를 그녀만의 방식으로 독특하게 담아낸다. 저자만이 가진 특유의 감각으로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넘나들며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개의 단편을 소개해보자면, 우선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뛰어난 과학자 릴리 다우드나로 인해 완벽한 유전자의 선택이 가능해진 근미래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완벽함의 범주에 속하지 못해 경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년이 되면 1년간 시초지로 떠나는 아이들, 하지만 그중에 돌아오는 이들은 떠난 사람에 비해 늘 그 수가 적기만 하다. 나머지 순례자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스펙트럼>은 언어를 주제로 하여 이야기가 이어진다. 주인공은 할머니 과학자. 우주에서 조난 당해 외계인과 조우한 할머니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도 할머니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가족과 생이별하고 우주에서 재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그리고 있다. 흥미롭다.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다. 곱씹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독창적이다. 왜 그녀를 일컬어 SF의 우아한 계보라고 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장편도 아닌 단편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놀라게 만들까.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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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빨간지구 - 조천호 | 책이야기 2019-11-2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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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란하늘 빨간지구

조천호 저
동아시아 | 201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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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지구에 상처를 냈지만, 지구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무위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 인류는 지구에 가한 흔적을 모든 곳에 남긴다. 우리 주변만이 아니라 깊은 바다의 퇴적물에도, 심지어 인공위성 궤도에도 인간의 흔적이 있다. 그리고 대기 안에는 온실가스와 오염먼지를 채운다. 이는 인류의 삶을 안정과 지속에서 혼란과 변화로 바꾼다. (p.53)

 

자연 순환이 지속해서 변함없어야 우리 삶에 질서와 안정감을 준다. 여기에 맞춰 인류는 각기 다른 생활양식과 문화를 누려왔다. 이처럼 기후에 맞추어진 우리 삶과 문명도 기후가 바뀌면 불안정해진다. 지구의 오랜 역사에서 실제 기후는 줄곧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체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고, 그 변화가 좋은 쪽이 아니라 인간에게 나쁜 쪽이라는 점이 문제다. 변해야 할 것은 변하고 지속해야 할 것은 지속해야 한다. 즉, 날씨는 변해야 하고 기후는 지속해야 한다. 날씨가 변해야 우리는 살아갈 수 있고 기후가 변하면 우리는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p.62)

 

기후변화는 명백하다. 그러므로 “기후변화가 없어도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질문하기 보다는 우리가 기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일으켰고, 이는 최근의 극한 날씨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지구는 인간이 가하는 온실가스라는 충격을 받아 인간에게 극한 날씨로 되돌려준다. 비정상이라고 간주했던 극한 날씨는 이제 우연이 아니라 정상이 된 것이다. (p.82)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서는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에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경기장에 불으르 피워놓았다. 오늘날 새로운 불인 화석연료는 인류 문명의 동력이므로 우리는 화석연료에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위험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우리는 무한한 욕망의 끝을 향해 달려가다가 그 마지막에 멸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결정 능력을 지닌 종으로서 욕망을 억제해 미래에도 생존할 수도 있다. 상반되지만 밀접하게 얽힌 이 두 힘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미래에도 지속할 수 있으려면 지구위험한계는 여러 돌파구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p.116)

 

 

 

 

책은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하며 기후변화가 일어난 원리를 설명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기후변화가 일상이 된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나 사회 시스템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야 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인간과 문명이 가능했던 조건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유지해갈 수 있을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행동에 따라서 미래의 기후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생존은 크게 위협받고 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많은 것을 바꿔놓았고, 그에 따르는 피해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주로 보고 있다. 환경오염! 특히 그중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미세먼지는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오죽하면 나라에서도 이에 대처하고자 발 벗고 나섰을까. 예전에는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인식이 확연히 달라졌다. 거리에서 방독면을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이 나타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아무리 현재의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자연재해는 막을 수 없다. 기후변화의 주범은 바로 지구 온난화! 하지만 그 원인은 우리에게 있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가 따뜻해지도록 만들었으며 이 때문에 지구는 문명을 가능하게 했던 기후 조건에서 벗어나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태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리케인, 지진, 폭염, 폭우 같은 기상 이변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지구의 위기는 곧 인간의 위기. 그건 누구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 기후변화가 모든 걸 바꾸는 시대, 이제는 문명이 만든 삶의 방식을 다시 한번 생각할 때. 원인을 제공한 우리가 그 책임을 져야한다. 제때 변화에 대응하지 않으면 위험이 우리를 먼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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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이르는 병 - 구시키 리우 | 책이야기 2019-11-2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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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저/현정수 역
에이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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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목소리는······, 언제나 달콤하고 부드럽다. 두 번 다시 귓가에 들릴 리 없는 목소리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 남자의 목소리는······, 지금도 가슴속 깊은 곳에 살아 숨쉬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평생, 그 남자를 잊을 수 없다. 새삼스레 확신한다. 그 남자의 환영을 좇으면서, 이렇게 남은 인생을 무위하게 보낼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남자의 포로다. 돌멩이처럼 차갑고 무거운 죄를 품은, 무참한 포로다. 행복 따윈 이제 없다. 그때 잃은 것이다. 모든 것을 전부. 그러니까 나는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몇 년이 지나도, 정신이 들고 보면 여기에 돌아와 있다. 그때 그 남자에게 “선택해도 돼”라는 말을 들은, 바로 이 장소에. 그리고 나는 선택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지만 지금도 그 목소리에 사로잡혀 있다. (p.8)

 

“거실 창문에서 마당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저곳에 저의 귀여운 아이들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마음이 평화로워졌습니다. 시체를 묻을 때마다 정원수를 바꿔 심었습니다. 그 나무를 셀 때마다 성과를 확인할 수 있어서, 매일 처리하는 잡무의 스트레스나 업무 피로가 깨끗이 씻겨 사라졌죠. 으음, 그 정도의 즐거움은 또 없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저는 그 한때를 맛보기 위해서 살인을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p.38)

 

마사야 군이 옛날 그대로라서 기뻤습니다. 당신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겠습니다만, 그 무렵의 당신은 특별한 존재이며, 특별한 아이였습니다. 제가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자마자 곧바로 법학부에 들어갔다던 당신의 존재를 떠올린 것은 마사야 군에게는 불운이었겠지요. 하지만 당신의 눈으로 꼭 판단해주었으면 합니다. 저는 사형을 받을 만한 인간입니다. 누구보다 스스로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에 풀어놓아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굳이 이렇게 적습니다. 저는 입건된 8건의 살인으로만 재판을 받고, 사형대에 매달려야 합니다. 결코 9건의 살인으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라는 인간이 법을 근거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불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틀림없는 사회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p.41)

 

너무나 바보 같은 부탁이다. 응해야 할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해보고 싶었다. 나를 믿어 의심치 않는 하이무라의 저 두 눈. 그의 시선을 받고 있으면 잊었던 그 시절의 만족감이 되살아난다. 게다가 그는 명백히 뭔가를 감추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의뢰는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그의 표정이나 태도에서는 기묘한 애정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대체 이 의뢰에 어떤 비밀이 있는가. 그것을 알고 싶다. (p.67)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대학생 마사야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것은 5년 전 체포된 희대의 연쇄살인마 하이무라 야마토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였다. “내 죄는 인정하지만, 마지막 한 건만은 누명이다. 그것을 증명해주지 않겠나?” 연쇄살인범은 마사야에게 유난히 친절히 대해주었던 어릴 적 동네 빵집 주인. 긴 고민 끝에 살인범의 요청을 수락한 마사야는 하리무라의 주변 인물과 사건 관계인들을 하나하나 만나며 조사를 이어나간다.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내젓는 친적,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감싸는 동네 주민들, 빵집의 단골들과 그와 데이트를 즐겼던 여성들까지. 연쇄살인범의 인생을 추적하면서, 마사야는 서서히 그에게 매료되어 가고, 어느 날 문득 자신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끼게 된다. 살인은 정말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것일까?

 

이야기는 단 한 통의 편지로 시작한다. 24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이미 사형을 선고받은 연쇄살인범이 평범한 대학생에게 보낸 편지. 어느 소설로 마찬가지로 거기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지막 그 여자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이 말 한마디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 한 건만이 무죄가 인정되더라도 내 사형 판결은 뒤집히지 않아. 실제로 나는 살인자야. 몇 사람을 죽였는지 다 기억하지도 못해. 하지만 나는 내가 하지 않은 죄까지 뒤집어쓰는 건 사양하고 싶어.” 자기 자신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년 소녀를 감금하고, 고문한 끝에 죽여서 마당에 묻고는 자신의 컬렉션으로 삼아온 남자. 책을 읽는 동안 옆에서 누가 불러도 모를 정도로 깊게 빠져들었다. 흡입력이 진공청소기급! 실제 연쇄살인범들을 모델로 한 이야기라 그 충격은 이로 말할 수 없이 크다. 연쇄살인범들은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생각으로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일까?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소년의 성장 과정에서부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동기와 심리 상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심리 조작의 기술까지 저자는 이 한 권의 책 속에 모두 밀어 넣었다. 피해자 or 피의자? 어린 시절 그가 자라온 환경을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공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해서 그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니까. 정말 무서운 세상! 그 잔혹함에 오소소 닭살이 돋을 만큼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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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일 - 스탠리 피시 | 책이야기 2019-11-2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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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문장의 일

스탠리 피시 저/오수원 역
윌북(willboo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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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인 존 던의 말대로 한 문장은 “교묘히 창조된 작은 세계다.” 이 짤막한 책에 내가 쟁여 넣은 작가들이 기막힐 정도로 교묘하게 창조한 작은 세계로 여러분을 모셔가고 싶다. 내 의도는 미적인 동시에 현실적이다. 나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에 실린 문장들을 곱씹으면서 내가 느낀 기쁨과 경외감을 함께 느꼈으면 한다.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이 이 책을 다 읽을 때쯤 위대한 문장까지는 아니어도 꽤 괜찮은 문장을 지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면 한다. 약속건대, 이 책을 통해 문장이 주는 기쁨과 문장의 기교, 좋은 문장을 음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빚어낼 수 있는 능력을 드리겠다. 문장을 음미하는 능력과 빚어내는 능력은 서로 접점 없이 따로 굴러간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내 생각에 이들은 나란히 습득되는 능력들이다. 기억에 남는 문장을 만드는 요소를 습득한다면 문장을 판별하는 법 또한 알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장을 보고 감탄한 이유를 분석함으로써 문장의 메커니즘까지 알게 된다면 어느 정도 비슷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길로 한 걸음 더 들어설 수 있다. (p.20)

 

모든 기술이 그렇듯 문장을 읽고 쓰는 기술도 서서히 발전한다. 소박하게 세 단어짜리 문장에서 시작해, 필요에 따라 문장 구조를 줄줄 말하는 단계까지 능력을 키운 뒤에, 그다음 단계의 연습을 실행하면 된다. 짧은 문장-잠결에서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간단한 문장-을 연습하고 나서, 열다섯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 그다음에는 서른 단어짜리 문장, 또 백 단어짜리 문장으로 확장해가라. 그러는 동안에도 ‘행위자-행위-행위 대상’의 관계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런 다음(다시 힘든 부분인데), 추가한 모든 요소를 분석하라. 그 요소들이 문장을 확대하고 유지하는 데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문장이 다루기 불편할 만큼 거추장스러워져도 마찬가지다. 분석은 꼭 필요하다. (p.40)

 

언어는 현실을 전하거나 반영하거나 비추어주는 기능을 한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언어의 힘은 훨씬 더 크고 위험하다. 언어는 현실을 형성한다. 물론 문자 그대로 현실을 만들어낸다는 의미가 아니다. 현실 세계와 말의 세계는 엄연히 다르다. 언어가 현실을 형성한다는 것은 문장이 세계의 한 조각에 부여하는 질서가 수많은 가능한 질서 중 하나라는 의미다. 문장을 고칠 때 어떤 일을 하는지 떠올려보자. 뭔가를 보태고, 빼고, 시제를 바꾸고, 절과 구를 재배열한다. 변화를 줄 때마다 독자에게 제공하는 ‘현실’도 바뀐다. 가장 소소한 순간의 행동을 언어로 바꾸려는 시도조차도 그 행동에 포함된 것 이상을 반드시 남긴다. 문장이 긴건 짧건 상관없다. 도입할 수 있는 다른 세부 사항이나 견해나 강조점은 늘 있기 마련이고, 이러한 사항들은 문장이 제시하는 현실의 스냅 사진을 언제든 바꾸어놓을 수 있다. (p.62)

 

 

잘 짜인 문장은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에게 기쁨의 감정을 준다. 반대로 엉성한 문장은 어떤 감정을 전해줄까? 배관공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꽉 막힌 글을 보면 어떻게 시원하게 뚫을 것인지 평생 고민해왔다는 저자 스탠리 피시. UC 버클리, 컬럼비아, 존스홉킨스, 듀크 등 유수의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법학을 가르친 그는 대학 입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에 충격을 받고 ‘문장 제대로 읽기, 문장 제대로 쓰기’에 대한 쉽고 명료하며 실용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문장의 일』이다. 문장의 기본을 알고 싶은가? 문장을 잘 쓰고 싶은가? 바로 이 책에서 인생의 스승을 만날 수 있다.

 

 

책에는 문장의 개념부터 각종 문장 형식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쓰는 법까지, 글쓰기 방법이 단계별로 나와 있다. 다만, 스탠리 피시의 문장 강의는 그 효과가 확실한 요령이나 팁을 제시하는 가이드북이나 매뉴얼이 아니다. 위대한 작가들이 쓴 문장들을 실례로 들며 왜 그 문장이 인상적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여 문장을 읽는 안목을 키워주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스타일로 문장 쓰는 힘을 길러준다. 제인 오스틴,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허먼 멜빌, 버지니아 울프, 존 업다이크, J.D. 샐린저 등 형식미를 갖춘 거장들의 문장을 분석하고, 첫 문장, 마지막 문장, 종속과 병렬 문장, 풍자 문장을 쓰는 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시작은 한 문장이다. 누구나 마음속 깊이 간직한 문장 하나쯤 있다. 왜 그 문장이 마음속에 남았을까? 왜 나는 그런 문장을 쓰지 못할까? 문학 교수들의 스승 스탠리 피시가 그 답을 알려준다. 스탠리 피시의 방법론은 간단명료하다. 뛰어난 문장을 많이 읽고, 왜 뛰어난지 알아내고, 그런 문장을 쓰기 위한 모방 훈련을 지속하라는 것. 많은 교사와 글쓰기 지침서들은 예시보다는 규칙에 의존한 글쓰기를 강조한다. 하지만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읽어야 한다. 좋은 문장을 많이 읽고, 그 문장이 왜 좋은지 분석하는 과정이 선행된 다음 꾸준히 써보며 실력을 쌓아나가야 한다. 원론적으로 들리지만, 그게 시작이다. 문장은 생각을 담은 최소 단위이며 가장 핵심 단위이므로, 문장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문장의 형식만 제대로 알아두면, 무한한 내용이 산출된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어려운 듯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있다. “모든 것은 문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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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모험 - 이우 | 책이야기 2019-11-25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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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기만의 모험

이우 저
몽상가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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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가 되고 싶었다. 순례자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되고 싶던 순례자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대한 목표를 가진 개척자, 강인한 모험심을 가진 탐험가, 꿈을 잃지 않는 몽상가에 가까웠다. 낭만적인 시인이며 멋을 아는 소설가이기도 했다. 그런 순례자가 세상에 있었던가. 아니, 듣도 보도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존재가 되기로 결심했다. (p.18)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게는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나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싶어 찾아온 순례길 위에서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나는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앞으로도 그러할, 쉽게 바뀌지 않을 존재일 뿐이었다. 삶 자체를 짊어지고 있었기에. 무거워도 어쩔 수 없었다. 짊어지고 저 멀리 산티아고까지 나아가야만 했다. (p.40)

 

남루해져 간다는 것, 그것은 다른 의미에서 거추장스러운 모습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는 것이다.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허례허식을, 세상이 부과했던 의무들을, 영문도 모른 채 당연시하며 좇아야만 했던 가치관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이다. 벗어내고 벗어내다 보면 남루해져 가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등한시했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모든 것을 드러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맑고 투명하면서도 고귀함마저 느껴지는 남루함이었다. (p.75)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패치워크 같은 존재가 아닐까. 세상을 살아가며 배우고 익히고 원하는 것들을 조금씩 짜깁기해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 인간의 개성이라는 것도 인수분해를 하면 분명 누군가에 귀속되는 조각들로 나뉠 것이다. 인간은 결코 짙은 개성을 가진 본연의 존재로 태어나지 않는다. 개성 내지 정체성은 스스로 형성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간다는 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조각을 찾아나가는 모험이 아닐까. 흔히 여행을 ‘나를 찾는’ 여정이라 일컫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균형 잡힌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선택지를 넓혀보는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낯선 곳을 여행하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더 많은 책을 읽으리라. 그 여정에는 분명 찾고 있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일까. 지평선 너머에 있을 산티아고로 나아가는 길이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p.147)

 

 

 

“어느 신화 속 낭만적인 무언가를 찾아 방황하는 순례자. 바로 그런 순례자가 되고 싶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전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전혀 새로운 것들을 깨닫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전혀 낯선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그토록 꿈꾸던 무언가가 되어있을 것만 같았다. 새롭고 환상적인 무언가를 마주할 것만 같았다. 자기만의 모험, 자기만의 영웅을 위하여. 꿈과 낭만을 찾아 두 발로 9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장편 소설 <레지스탕스>의 저자 이우의 솔직 담백한 성찰과 고백 그리고 통찰.

 

 

책 속에서 나는 저자와 함께 발을 내딛으며 그곳을 거닐었고 함께 호흡을 맞추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과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자고 눈여겨보았던 곳이었기에 한 장 한 장 책을 읽는 동안 푹 빠져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종교를 떠나서 누구의 아내가 아닌, 누구의 엄마가 아닌, 누구의 딸이 아닌 오직 나 하나만을 두고, 내 자신에게만 온 마음을 다 기울이고 싶었다. 지겹도록 걷고 또 걷는 이 길이 해답을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이고 시간에 쫓기면서까지 어떤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붙들 이유가 충분할 만큼의 가치가 있으니까. 한 번쯤은 내가 속해 있는 이 테두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훨훨 날아보길 갈망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삶. 그래서였을까. 저자의 뒷 꽁무니를 따라 함께 걷는 이 길은 나에게 꽃밭이자 가시밭길이었다. 이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과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날들에 대한 헛된 희망과 시기 어린 질투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저자는 말한다. “여정은 수단이 되고 행위는 목적이 된다. 모험을 떠나면 계획했던 무언가를 하게 된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다. 걷고 또 걷고, 가슴 설레이는 나만의 모험을 찾아서. 답이 없더라도 그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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