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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 책리뷰 2017-08-2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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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저/이은선 역
다산책방 | 2017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헤어짐을 배워가는 손자의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나이를 먹어서 가장 기분 나쁜점은 더 이상 아무 아이디어도 더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야 !!

삶의 어느 한순간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현재가 녹아내리며, 완전히 놓아버릴 때까지......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헤어짐을 배워가는 손자의 세상에서

가장 느린 작별 인사 !!

'오베라는 남자'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의

감동을 잊는 프레드릭 베크만의 아름답고도 슬픈 이별 이야기입니다 !!




바닥 한 가운데 초록색 텐크가 놓인

삶의 끝자락의 병실과 그 안에서 눈을 뜬 사람이 거기가 어디인지 몰라

숨을 헐떡이며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기억과 놓음에 대한 이별 이야기가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소설입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손자와의 이별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해 놓을 수 있는지

읽는 내내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가져다 주는 소설이었습니다.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은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와

사랑에 빠진 느낌이 어떤건지 기억을 합니다.

그 느은 가장 마지막까지 그에 곁에 남을 기억입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건 그의 몸속이 모두 채워지는 걸 뜻하니깐요.




할아버지는 기억을 잃어가는 머리 에서 가족들과

아들과 손자와의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하룻밤이 지나고 또 날이 지날수록 할아버지의 머리 속은

전보다 작아집니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느 끝까지 손자 노아만의

기억은 마지막가지 남기를 바라죠.....





할아버지는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 지나간 기억들을

지우고 싶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회상합니다.

하지만 그 자체도 지금은 모두 잊혀져간 현실이 아닌

그 옛날의 기억들일뿐

할아버지의 머리속 세계는 갈수록 하나 하나 지워지고 있습니다.





삷의 어느 한 순간이 끊입없이 재생되면서

그 한순간의 기억만은 잊어버리고 싶지않은 나약한 인간의

자화상을 보는듯한 슬픈 이야기입니다.

나이가 들면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온다면 하는

착찹한 생각을 몇번이나 떠올리게 하면서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남기면서 책을 마무리합니다.

살아있는 현재, 아니, 기억을 할 수 있는 현재 주위사람들과

가족들에게 많은 걸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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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 책리뷰 2017-08-07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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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4

양정무 저
사회평론 | 2017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중세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탄생하는 다양한 미술 양식의 이야기가 한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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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를 다니던 대학시절 서양음악사라는 과목을 공부하게 되면서

서양의 찬란한 역사 속에서 싹튼 음악의 변천사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중세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났던

그레고리안 찬트와 단성음악과 다성음악의 탄생을 접하면서

수도원에서 울려 퍼졌던 오라토리오를 상상하기도 하면서

저는 그렇게 예술의 탄생에 있어 계기가 되었던 서양의 역사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있어서 서양의 역사 이야기는 지금까지 제 마음속의

최고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는데요........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미술관학'이란 수업에 매료되어

한때 큐레이트라는 전문 직업을 동경하기도 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었던

미술사 이야기입니다.

아!!!! 드디어 중세 미술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감동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책은 저에게 있어 중세에 대한 반전의 역사 이야기라고 할까요^^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중세의 재해석!! 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듯 하네요!!!


중세의 여러가지 사건들 속에 싹트기 시작하는 예술 양식들과 그 화려한 건축양식들

이번 휴가기간 내내 전국을 돌아 다니면서 제 여행용 트렁크 안에

함께 따라 다녔던 마음의 양식이 된 책이었답니다.


잠시 쉬는 카페에서 또는 전망좋은 강가에서 또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좋은 풍경들 속에서 읽어내려갔던 책입니다^^





누구에게나 그 일을 하기 시작한,  또는 좋아하기 시작한

 '계기'! '순간' ! '시발점' 이란게 있는 모양입니다.

이 책의 저자 양정무 교수님은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발견한 백과서전의

삽화에 빠져 미술을 연구하는 길로 접어드셨다고 하니깐요^^

저 또한 대학시절 서양음악사 첫 번째 수업시간에 들었던

그레고리안 성가의 엄숙함에 푹 빠졌듯이 말입니다^^





중세문명과 미술 !!!

제목 부터 제 가슴을 콩쾅 콩쾅 뛰게 하는 순간이랍니다.

너무나 좋은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이 책을 읽어보시지 않은

여행을 좋아하는 카페 회원분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어

책의 서평을 조금 길게 서 내려갈까 합니다^^





미술을 만나면 세상은 이야기가 된다 !!!

정말 멋진 말이죠^^

하지만 정말 fact 랍니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미술은 과거가 남긴 움직일 수 없는 증거' 란 말에

급 공감하게 될거니깐요!!

저는 무엇보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중세의 반전 해석에

푹 빠져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헤아나오질 못하고 있답니다.


역사란?  어떤 측면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재차 재차 공감하면서 글을 써 내려가봅니다!!






제가 알고 있던 역사를 잠깐 얘기해 보자면요^^

오늘날 사용되는 '박물관' 이란 단어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Museion'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이 Museion 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홉 여신들 뮤즈(학예의 여신)에게

헌납하는 사원으로 '뮤즈'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음악, 역사, 학예전반의

신이었죠.

그렇게 그리스 시대로 부터 이집트 시대를 거쳐, 로마시대로 들어오면서

서양의 예술은 많은 발전을 해 오게 되죠^^


하지만 로마시대를 이어 중세시대가 되는 시점 즉,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던 5세기 경 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되기전인 14세기 정도

까지라고 볼 수 있는 이 중세시대는

제가 서양음악사를 배울때도 그러했고 미술관학 수업을 들을때도

그러했고 중세를 '예술의 암흑기'로 표현을 하게 되죠~~


왜냐하면 중세는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적 영향으로 모든 예술이 종교의 권한하에

있었다고 보고 종교적인 내용의 예술의 발전만 있을뿐  세속음악이라던지

다른 대중적인 예술의 발전은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학자들은 그렇게 보는듯 합니다.







하지만 중세를 또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면

중세시대에 얼마나 많은 예술적 창조가 있었는지

얼마나 화려한 건축물이 탄생되었고 어떠한 역사들에 의해서

중세의 찬란한 문화가 꽃 피워졌는지를 알게 된답니다.





신을 찾아 떠나는 순례길에서 탄생한 로마네스크 양식 !!


중세의 하드웨어는 봉건제도/ 소프트웨어는 기독교 신앙 ^^

중세 봉건제도의 구조는 이러했답니다


왕 - 영주 - 기사 - 농노


왕이 영주에게 땅을 주고 영주는 왕에게 복종을 맹세하고

영주는 그 땅을 또 쪼개어서

기사들에게 주고 기사는 그 댓가로 영주에게 전투력을 제공했겠죠^^

또한 땅을 경작하는 것은 농노들이었답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재해석된 중세시대는

활력과 종교적 열정이 가득한 시대랍니다.


중세시대의 배경은 영주의 성과 종교적 상징인 교회가 두 축을

이루면서 발전해 나갔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다보면

한쪽에는 영주의  성채가 자리잡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교회가 자리한

모습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듯 하네요^^


이 두 건물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자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생활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런 형태로 이루어진 유럽의 도시를 방문하게 된다면

중세시대의 전형적인 마을 형태라는 것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






이러한 중세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가

많은 사람들이 속죄 여행을 떠나게 된 순례길이었는데요


999년 12월 31일!!!!!

 중세 기독교인 중 많은 수가 바로

내일 자신의 죄를 심판할 예정이며 동시에 1000년 1월 1일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000년 1월 1일 세계는 멸망하지 않고 멀쩡했죠^^


이때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이 유해되었다고 생각하고

죽기전에 일생 동안 저지른 죄를 용서 받기 위한 성지 순례를

하는게 유행하였다고 합니다.

그 성지 순례가 오늘날까지 유행하고 있죠^^

산티아고 순례길 !!!




예나 지금이나 기독교 최고의 성지는 예루살렘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파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육로로 4300킬로미터였다고 합니다.


길도 너무나 멀기도 했지만 그 당시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 순례객을 막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환대하는 분위기도 아니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대신한 다른 성지들이 부상하기 시작하는데요


예수의 12 제자 중 한 명인 베드로 성인의 유해가 묻힌 로마,

마가복음의 저자 마르코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베네치아,

야고보 성인의 유골이 발견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이러한 성지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중세의 성지 순례로 가는 길을 따라 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특히, 프랑스의 많은 도시들이 이때 크게 발전하였다고 보면 되겠는데요

지금도 많은 이들이 떠나는 순례길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려면 반드시 프랑스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랍니다.





산티아고는 '야고보 성인' 이라는 뜻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야고보 성인의 별이 빛나는 들판'

이란 뜻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도시가 생겨나고

도시의 가장 중심부에 성당이라는 건축물이 생겨납니다.


위 사진은 프랑스 생트푸아 성당의 모습인데요

생트푸아는 스페인어로 '산타 페' 우리말로는 '믿음의 성녀'라고

부릅니다.


 산타 페 !!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죠^^


성지 순례를 떠나는 순례객들이 몰려들면서 이렇게 순례객들이

거쳐간 도시에는 화려한 성당들이 생겨납니다






로마네스크 건축의 특징인 아치가 한없이 이어진

생트 푸아 성당 내부 모습입니다.


신도석 좌우와 앞쪽 제단에 층층이 자리한 아치형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인데요


로마네스크 양식은 지역성이 강해서 통일된 양식이 없고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 당시 지어진 모든 건축물의

대부분이 이렇게 아치형 이었다고 합니다^^



로마네스크 미술은 11세기-12세기에 유형했던 양식으로

로마의 영광을 알리는 웅장하고 거대한 석조건물이 다시 유럽 땅에 지어지고

로마 건축이 보여주었던 독특한 아치형을 다시 선보이면서

한마디로 로마식, 로마풍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저의 무지에 정말 부끄러움을 느꼈던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요.......


제가 유럽 배낭여행을 3번 갔다왔는데요


제가 이 책을 보면서 도대체 내가 뭘 보고 왔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유럽의 도시를 구경하다보면 여러가지 건축물 중에

특히, 정교하고 화려한 성당 건물들을 많이 보게 되죠


중세에 지어진 성당 정문의 조각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 최후의 심판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고 합니다.


중앙에 예수를 중심으로 주위를 천사와 동물들이 둘러싸고 있는데요

신약성경 4복음서의 제자 4명이 이 조각에 등장한답니다.


독수리는 요한, 황소는 누가, 사자는 마가, 천사는 마태,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지옥과 천국의 풍경이 조각되어져 있답니다^^

너희들은 어디로 갈것이냐?

지옥 ! 천국 !

하면서 말이죠^^





순례자의 꿈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영광의 문 !!


저의 버킷리스트에도

죽기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는게 적혀 있는데요^^



영광의 문 정문 위의 반원형 공간을 '팀파늄' 이라고 하는데요

산티아고 대성당 팀파늄에서 가장 크게 새겨진 조각은 두 손을 펼쳐 들고 있는

예수의 모습입니다.


순례객을 반기는 의미에서 손을 들고 환영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구요

또, 한가지 의미로는 성흔(십자가에 못 박혔을때 생긴 손바닥의 못 자국)을

 보여주는 거랍니다.


이 티파늄에도 마찬가지로 중앙에 예수가 자리하고 그 주위를 4복음서의

저자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위쪽으로는 천사들이 새겨져 있답니다.








순례라는 이름의 시위!!!


중세인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성지 순례를 떠난 데는

야고보 성인의 기적을 느낀다든가, 아름다운 건축물, 멋진 풍광을 보기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동시에 정치적인 즉, 사상적인 목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1000년경 이슬람 세력과 서유럽 기독교 세력은 서로 각자의 영토를

넓히려고 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이슬람 세력에 점령 당하면

유럽 전체가 이교도에게 넘어간다는 두려움 때문에 기독교의 땅을

지켜내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순례길에 올랐다고 하네요^^


역사를 제대로 알고나면 모든게 새롭게 보인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네요!!








보통 교회는 개신교의 성전을 성당은 카톨릭의 성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지만,

개신교가 존재하지 않았던 중세에는 일반적인 기독교 성전을

모두 교회라고 불렀고 특정한 교회를 가리키는 경우에 대성당이나

성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답니다.


대성당에 관해서도 '규모가 큰 성당' 이란 뜻이 아니라

주교가 있는 지역의 성당을 대성당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성 미카엘 수도원의 평면도를 보면은 교회의 의식이 거행되는 곳으로

사제와 성가대가 자리한 동쪽 보다 신도들의 공간인 서쪽이 더 크고

중요해진 느낌이 들죠^^


이 교회에 오는 신도 중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쪽 공간이 종교적인 주역들이 있는 동쪽보다

훨씬 크게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중세는 교황과 황제 사이의  권력 다툼이 엄청 심했던 시기인데요

황제가 군사력으로 교황을 압박하면 교황은 파문권으로 황제에게 맞서는

상황이 9세기에서 12세기까지 이어졌다고 하네요^^






중세시대 교회의 조직 구조를 보면은 최상위에 교황,

다음으로 교황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추기경, 다음으로

대주교와 주교, 그 아래로 사제가 자리를 합니다.


봉건제도가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는 주교가 영주와 같은 역활로

교회가 정한 행정구역을 담당했다고 하니

중세의 어느 한 측면에서는 교회의 권한이 바로 법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답니다.


사진속의 오토 3세는 신성로마 제국의 3번째 황제입니다.

  황제의 권력이 빈곤한 시절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높이고져

이러한 그림이 그려진 성경 필사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림 속 중앙 자리에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 황제인 본인이 자리를 하고

그 주위를

4대 복음서의 저자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당시 황제의 왕관은 교황이 씌워주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 그림 속에서는 하늘에서 직접 손이 내려와

 황제의 왕관을 씌워주는것으로

 표현을 하였습니다.


당시 권력이 약했던 왕이 권력의 약함을 가리기 위한 표현 방법으로

이러한 그림을 성경필사본에 넣었나 봅니다.

.





인간의 원죄 즉,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의 따먹지 말아야할 과일인 선악과를

따 먹게 되면서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입니다.


화가 난 하느님의 모습이 보이고 아담은 이브를 이브는 아래쪽

뱀을 가리키며 서로를 탓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는 조각인데요


종교의 권한에 있던 중세 시대 인간의 몸은 죄의 근원으로

조각을 만들때도 신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신의 뜻을 전달하는 내용적인

측면을 더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과거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던 로마풍, 로마식의

로마네스크 미술의 다양한 작품들입니다.


10세기경 성녀 푸아의 조각상과 성 미카엘 수도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생트 푸아 성당, 생 피에르 수도원들이

모두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과 미술품이랍니다 !!








십자군이 된 해적 바이킹의 역사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나간 부분인데요

이 부분에서 전 완전 바이킹들의 활약에

 감동의 도가니로 풍덩 빠져 버렸답니다.


 그 유명한 프랑스 몽생미셸에 있는 생 미셸 수도원이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이 기독교를 받아 들이면서

지어진 교회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구요!!


바이킹의 후예 중 정복왕 윌리엄은 나중에 영국의 황제까지 되어

 그 유명한 런던탑을 지었다는 사실까지 !!!


제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해적 바이킹에 대한 이미지가

반전되는 순간이었답니다 !!






원래 바이킹은 유럽의 최북단인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덴마크 지역에

 퍼져 살던 민족이었답니다.

북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노르만' 이라고 불렀는데요


처음에 이 노르만족은 춥고 험준한 북쪽 땅에서 먹을 것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와 식량을 구하는 정도였는데요


나중에는 영국의 중부에 있는 린디스판 수도원을 공격하여 수도사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신도들이 수도원에 기부한 금은보화를 약탈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대서양 연안뿐만 아니라 지중해 깊숙한 곳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 나가면서 점점 무서운 해적으로 돌변했다고 하네요 ㅠㅠ





모험 기질이 다분했던 바이킹들은 롱십이란는 좁고 길쭉한 배를 타고 

서쪽, 동쪽으로 이동해 내려오면서

오늘날 러시아의 기원이 되는 키예프 공국을 세웠습니다.


당시 유럽을 탐내었던 여러 이민족 중에서도 바이킹의 공격은 많은

유럽사람들을 공포에 몰고 가기에 충분했었고,

1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들 바이킹은 기존의 침략 방식을 바꾸어

한곳에 몇 년씩 정착하는 방식을 택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샤를 3세는 침략한 바이킹에게 땅을 나누어 주고 대신 충성 서약을

받아서 봉건적 주종 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이때부터 바이킹들이 자리한  센 강 하류의 땅은 북쪽 사람들의 땅이라는

이름으로 '노르망디'라고 불렀습니다.



노르망디에 자리 잡은 바이킹은 유럽 대륙에서 생겨난 로마네스크 미술을

받아들여 새로운 단계로 발전 시켜나가는데요


위 사진은 '스타브 교회'로 '스타브'는 중세 노르웨이어로

구석 기둥을 의미합니다.


 스카디나비아 반도의 전통적인 목조 주택을 교회로 발전 시킨 모습인데요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를 짜 맞추는 기법을 사용하였으며

가파른 지붕위에 물결 무늬가 들어간 너와지붕을 얹어 눈이 쌓이지 않고

잘 흘러내리도록 하였답니다.






남쪽으로 내려와 수도원을 불태우고 약탈을 일삼던 해적 바이킹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정착을 하면서 독실한 신앙인이 되어

기독교의 건축 문화를 이끌어 가기 시작합니다.


간조때는 바닷물이 빠져나가 육지와 연결되고 만조 때는 바닷물이

상승하여 섬으로 변하는 몽생미셀을 그들의 요새로 삼게 되면서

바위섬에 지은 동화 속의 성

오늘날의 몽생미셀의 성모 교회가 바이킹에 의해 탄생됩니다!!


그 이쁜 동경의 장소 몽생미셀의 교회가

바이킹이 지은 건축물이라니^^





정복왕 윌리암이 누구냐구요^^


사생아라는 신분을 극복하고 바이킹의 후예로서

노르망디의 공작에 오른 뒤

바다 건너 영국까지 정복하여 런던탑을 탄생 시키면서

영국의 황제의 자리까지 오르는 유명 인사랍니다 ^^


정복왕 윌리엄의 이야기는 서양 역사에서 새롭게 공부하게 된

흥미로운 부분이었답니다 !!






길이가 70미터에 달하는 자수 작품인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헤이스팅스 전투를 비롯하여 노르만족의

영국 정복과 관계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답니다.


이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제작을 주도한 사람은 오도 주교로

바이킹의 후예 윌리엄 황제의 배다른 형제랍니다.




노르만족의 주도하에 시작된 새로운 건축의 흐름에 있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특별한 곳인 영국 북동부의 더럼시 풍경입니다.


 더럼 대성당은 당시 존경받던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면서

순례자들이 몰려들던 곳인데요

훗날 고딕 양식의 원조라는 주장의 공방전이 펼쳐졌던 장소로

유명합니다.

도시의 중앙에 가장 눈에 띄는 높은 건축물이

더럼 대성당이랍니다 !!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교인들의 싸움의 시작인 십자군 전쟁!!


1096년 여름, 대규모 십자군 원정대가 예루살렘으로 진격을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되 찾기 위한 대규모 원정대가 조직이 되고

이 전쟁은 200년 동안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 십자군 전쟁은 또 한번 유럽의 미술 풍토를 바꾸게 되죠^^


서양의 역사와 함께 탄생되어 가는 중세 미술사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해서 읽는 내내 제 손에 땀을 나게 하더라구요 ㅎㅎ




200년간 이어진 십자군 전쟁!!


육로를 통해 성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면 거쳐야 했던

콘스탄티노플 !!


십자군 원정대에 참가했던 유럽인들은 이곳에서 말로만 듣던

비잔티움 제국의 모습을 실제로 목격했고,

제국의 화려함에 완전히 매료되죠^^


이슬람 세계와 접촉하며서 발달된 과학 지식에 놀라게 됩니다.


당시 이슬람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과 처문학, 지리학과

의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십자군 전쟁때에도 바이킹의 후예 즉, 노르만족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답니다.


해적에서 기독교인으로 공작으로 또, 영국의 황제로

이제는 십자군 원정대가 된 노르만족 !!


모험심과 용감성에 이제 저는 이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족에 대해 존경을 표할 지경까지 이르게 된답니다 !!!!





.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노르만족 기사들 중 일부는 11세기 초 이탈리아

남부에 와서 용병으로 활동했고, 1091년에는 시칠리아에서

이슬람을 완전히 몰아내고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에

노르만 왕조를 세웁니다 !!



위 사진은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입니다.

노르만 민족의 걸작품 중의 하나이기도 하죠^^


스스로 자라나는 종유석처럼 생긴 화려한 장식인 '무까르나스' 가

정말 멋있지 않나요!!


기독교 신앙과 비잔틴 미술, 이슬람 미술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노르만 민족의 특유의

개방성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입니다 !!


제가 이 책을 통해 바이킹 , 아니 노르만족에 매료된

노르만 민족의 특성을 정리해보면요^^


첫째/ 탁월한 군사력   둘째/열정적인 신앙심

셋째/ 개방성


이러한 그들의 특성 덕분에 노르만 민족은 여러 문화를 엮어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바로 바로

 노르만 미술 !!





이탈리아의 피사는 1차 십자군 원정때 적극 참여하여

십자군 원정대의 1등 공신이 되면서

피사의 주교가 예루살렘 왕국의 초대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왼쪽 사진은 피사의 '기적의 광장'에 있는 피사 대성당 내부이구요,

오른쪽은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 성묘 교회 내부 모습인데요


전체적으로 두 성당의 내부 모습이 비슷하죠^^


아마, 피사 사람들은 피사가 예루살렘 성지를 되찾는 데 큰 역활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성당 건축물에도

그 공을  반영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탈리아 중부 특유의 양식을

토스카나식 로마네스 양식이라고 합니다 !!


둥근 내부 공간을 따라 원을 그리며 서 있는 기둥 모습과

원형 기둥과 사각 기둥이 규칙적으로 배치된 모습........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아치와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는 아케이드!!





십자군의 갑작스러운 공격 앞에 콘스탄티노플은 1000년만에

처음으로 기독교인들에게 함락됩니다.


이때, 십자군 원정대의 가장 큰 후원자는 베네치아 상인들이었는데요


베네치아인들은 십자군이 약탈한 전리품과 콘스탄티노플의 영토 중

많은 부분을 자기들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지중해의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베네치아는

점차 큰 바다로 나가 무역을 벌이게 되고

이때가 역사적으로 베네치아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답니다^^






베네치아가 초기에 거둔 상업적 번영을 알리는 건축물이

바로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대성당 입니다.


피사의 대성당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는데, 당시

두 도시국가는 라이벌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베네치아는

도시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지을 때도 피사에 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짓고 싶어했을것 같습니다.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은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성 사도 교회를

모델로 해서 지었는데요,

하기아 소피아 같은 비잔티움 제국의 건축물을 모델로 한 흔적들이

보이는 요소들이 곳곳에 있답니다 !!






동방의 피 묻은 보물들


13세기부터 베네치아는 스스로 비잔티움 제국을 능가하는 강력한

해상 제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차 십자군 원정 때 비잔티움 제국에서 약탈해 온

'승리의 콰드리가' 라고 부르는 조각상입니다.


베네치아는 자신들이 멸망한 비잔티움 제국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비잔틴의 유물들을 성당 곳곳에

배치했다고 하는데요


한편으론 '전리품의 전시장'이라는 냉소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지상에 재현한 천상의 공간 !!

중세 기독교인들은 늘 천국과 가까워지기를 갈망했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고, 목숨을 걸고 십자군 원정대에

나서기도 했죠!!


이들은 신앙심을 더 고취시킬 방법으로 지상에 천국을 구현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한 그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미술사조가 바로

고딕양식입니다 !!!


아 !!!! 정말 멋지죠^^

지상에 재현한 천국!!!





지상으로 내려온 천상의 공간 !!


고딕 성당에 처음 들어가면 순간 말을 잃게 된답니다.

제일 먼저 높이에 놀라죠^^


고딕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인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경우는

천장 높이가 대략 아파트 10층 건물 높이와 비숫하다고 하니 성당 안에서

올려다 본 천장의 높이 상상이 되시나요^^


특히, 바닥과 천장 사이의 공간이 중간에 층이 나뉘거나 막히지 않고

하나로 이어지면서 하늘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 !!


심지어 빛도 위로 향하고 있답니다.


위로 갈수록 창문의 크기가 더 커지면서

위쪽으로 더 많은 빛이 들어오는 그런 공간 상상이 되시나요^^





제가 중세 고딕 건축물들에 더욱더 매료된 부분은 다름아닌 소리의 울림이랍니다.


중세에는 교회 내에서 악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악기는 이교도들을 연상시켜 사악한 기운을 부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찬송을 하였는데요,

큰 소리로 책을 읽듯 하나의 선율로 교회 안을 가득 채웠던

그레고리안 성가 !!


제가 대학 시절 서양음악사 수업 시간에 들었던

바로 그 그레고리안 찬트^^


고딕 성당은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기에 아주 적합한 공간이었습니다.


초기 교회의 건축의 경우 천장이 목재로 되어 있어 소리를 모두 흡수해버렸다면

고딕 성당은 달랐습니다.


석재로 만들어진 뾰족한 천장은 성당 전체가 울림통이 되어 탁월한 음향 효과를

만들어 내었답니다.


소리를 흡수하지 않고 그대로 반사하는 석재와 작은 소리까지 모아주는

뾰족한 아치형 천장 !!


고딕성당은 그 자체가 최고의 스피커입니다^^


이 순간 제가 왜 이렇게 바보 같은지 ㅠㅠㅠ

그동안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이런 고딕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성가대의 찬송가를 한번도 귀담아 들어 보지 못했다는 무지함 ㅠㅠ





고딕 양식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또 다른 한 부분이

위쪽으로 올라갈 수록 빛의 아름다움을 창조해 주는 스테인글라스랍니다.


높게 치솟은 거대한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한 소리와 화려한

색채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환상적인 빛이 어우러져

'신의 영광이 머무르는 '공간'

그곳이 바로 천국이겠죠^^






고딕 양식의 탄생지라고 불리는 생드니 수도원은 프랑스 왕가와

아주 깊은 관계를 맺은 곳인데요,


이곳은 프랑스 수호 성인이자 파리의 초대 주교인 생드니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기도 하고 프랑스의 왕들이 묻힌

성스러운 곳이기도 합니다.


생드니 대성당 이후에 프랑스 왕이 직접 통치하는 곳곳에 생드니 성당과

비슷한 양식의 성당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생드니에서 첫선을 보인 이 새로운 건축양식은 이후

프랑스를 넘어서 유럽 곳곳으로 점점 퍼져 나갑니다.

이 새로운 고딕 양식의 첫 번째 진앙지는 일드프랑스라고 불리는

파리 주변 지역이었습니다.


일드프랑스 지역의 대표적 고딕성당의 모습인데요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있는 모습이죠


모두 2개의 종탑과 3개의 문과 하나의 장미창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딕'이라는 표현은 후대 이탈리아 사람들이 만든 말이라고 합니다.


'고딕'이라는 용어는 고트족의 양식을 뜻하는데요

별로 좋은 뜻은 아니랍니다.


고트족은 로마를 멸망시킨 야만족의 상징이었기 때문인데요

'고딕'은 야만적이라는 단어와 동의어로 볼 수가 있답니다.


중세 건축을 지칭하는 말로 '고딕' 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바자리라는 16세기 이탈리아 비평가인데요


르네상스 이후 시기 이탈리아 사람의 눈에는 알프스 산맥 너무 유럽에서

유행했던 중세 성당이 야만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더 높게 더 밝게 그리고 더 완벽하게

천국을 지상에 재현하고져 했던 중세 고딕양식의 핵심은

천장의 높이였는데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33미터, 샤르트르 대성당이 37미터,

랭스 대성당이 38미터, 아미앙 성당이 42미터로 계속해서 높아져만 갔죠


1225년 지어진 보베의 생 피에르 대성당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천장의 높이가 48미터 까지 올라갔다고 하네요


그러나, 결국 무너져 내려서 현재는 위 사진처럼 머리와 날개 부분만

남아 있습니다!!


중세 건축 기술로 지을수 있었던 높이는 최대 48미터까지였지요

하지만, 철근과 콘크리트 없이 돌을 이용해서 이렇게까지 높은 건축물을

지었다는 사실 앞에서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네요.





고딕의 3요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데요


기둥 무게를 천장쪽으로 분산 시키는 첨두아치와

천장을 더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늑골 궁륭과

천장의 무게가 집중되는 부분을 지지해 주는 공중부벽이라고 합니다.





고딕 양식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사용되었던 두꺼운 벽은

필요가 없어집니다.


 대신에 창문이 더 많아지고 점점 더 커졌으며

이 창들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었습니다.


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마치 조명처럼

성당 내부를 구석구석 비춥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간단하게 채색된 유리조각을 이어 붙인 창문입니다.


이 시기 유리의 색깔은 유리를 만들때 코발트, 산화철, 마그네슘 같은

화학 첨가물을 넣고 식히는 과정을 조절해서 얻었다고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고딕 성당으로 꼽히는 생트 샤펠입니다.

내부 천장 높이만 30미터에 이르는 이 성당은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명령으로 지어졌습니다.


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15개의 창 안에 1,000개가 넘는 성경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창세기 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까지의 기독교의 역사가

무려 1113개의 에피소드에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하늘의 이야기를 새긴 고딕조각 !!


중세 교회의 문은 지상에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인 셈입니다.

속세를 넘어 하느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 !!


그리하여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의 조각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고 합니다.


중세에는 이러한 성당 앞쪽의 조각들에 색이 칠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중세의 성당에 사는 괴수들


중세 성당의 외벽이나 첨탑의 모서리 부분 곳곳에는 '가고일'이라고

부르는 괴수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가고일은 빗물받이를 장식했던 기괴한 조각상이었는데요


중세 성당은 이런 괴수들을 붙잡아서 빗물받이로 쓸 만큼 위대한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성당을 지을때 열심히 일한 소들의 노고를 조각으로 남긴

랑 대성당의 소 조각도 있답니다.






유럽의 화가들 중에는 자신의 역사나 전통을 드러내고 싶을 때

오래된 중세 성당을 그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도 루앙 대성당을 이렇게

시리즈로 여러 점 그렸습니다.


하나의 성당이 여러가지 빛과 색으로 그려지니 색감이 주는 분위기에 따라

명랑하게도 보이고 음침하게도 보이죠^^





우리 곁의 중세 미술의 흔적을 한번 찾아 볼까요^^


높은 천장과 늑골 궁륭, 그리고 첨두 아치까지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명동성당입니다.


명동 성당은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과 비슷하다고 하는데요


두 성당 모두 천장 높이가 19미터라고 하네요


다음에 서울을 가게 되면 꼭 명동성당을 가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중세와 현대 사이에는 1,000년이라는 긴 시간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유럽인에게 중세는 여전히 삶과 매우 가까운 존재인듯 합니다.


유럽여행을 해 보신분들은 느껴겠지만 유럽 도시들 곳곳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이 바로 이 중세 시대때 탄생된 건축물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유럽 사람들에게 중세 성당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곳으로 오늘날 많은 창작물의 영감이 되고

상상력의 원천을 가져다 주는 곳입니다.


중세 시대 서양의 역사와 함께 미술사에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으며

이 책을 통해 중세 미술 역사의 길을 같이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예술의 암흑기라고 생각했던  중세에 이런 다양한 쟝르의 건축물들이

탄생하고 바이킹과 같은 반전의 민족이 있었습니다.


미술의 역사는 그 자체가 인류의 역사라고 할 만큼 복잡한 길을 걸어왔다는

작가의 말에 지금 진실로 공감하게 됩니다.


200년간 이어진 십자군 원정으로 탄생한 찬란한 건축 양식과

사람들의 이야기는 제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고 있었답니다.


 이 책을 통해 저는 너무나 많은 소중한 지식들을 제 마음속에

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했던 이 책은 제 인생에서

또 한권의 제 마음 속의 베스트셀러입니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카페분들과 꼭 함께 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유럽 여행 길에 오른다면

아마 모든게 달라 보이지 않을까 하는 행복한 생각을 해 봅니다.

여행의 질이 ! 감성의 질이! 생각의 차이가 !!!


 한 권의 책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 흥미롭고 감동적인 내용들이 많았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깁니다.


역사는 보는 이의 생각하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인다는

교훈을 깊이 새기면서.......


좋은 책 감사히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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