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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 기본 카테고리 2020-05-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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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도원 삼대

황석영 저
창비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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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가문 4대에 걸친 노동자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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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조선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맹글어진 거다.

일제 강점기 열여섯살에 경인철도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증조할아버지가 해 준 말입니다. 기차를 처음 본 순간, 그 기괴한 모습과 힘찬 움직임에 매료되긴 했으나 철로 공사를 중심으로 일제는 철저하게 조선의 모든 것을 빼앗가 버립니다.

철도가 놓이는 길마다 조선 백성들은 강제로 땅을 빼앗기고, 부역에 끌려 나와 고생을 하고, 이를 거부하면 심한 매질 혹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철도 기술자라는 자격은 증조 할아버지 이백만에게 밥벌이 수단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조선 백성들이 수탈당하는 모습 하나하나를 목도해야만 하는 입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에서 할아버지 이일철 아버지 이지산 그리고 아들 이진오에게로 이어지는 이씨가문의 혈통을 어머니 윤복례는 이렇게 정의 내립니다.

노동 투쟁은 원래가 이씨네 피에 들어 있다. 너 혼자 호강하며 밥 먹자는 게 아니구. 노동자 모두 사람답게 살아보자 그거 아니겠냐?

사실 아들 이진오는 위장 폐업으로 인해 부당 해고되고 노조원들과 함께 복직과 고용 승계를 주장하며 두달째 공장 건물 굴뚝 위에서 홀로 농성 중입니다.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가족들의 지지하에 외롭고 힘든 긴 싸움을 이어나갑니다. 이진오는 홀로 지상 사십 오미터 높이 굴뚝에서 지내며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으로부터 시작되는 근대 노동자들의 삶을 듣습니다. 어린날 증조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회상하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물(혹은 오물)이 담긴 페트병 하나하나에 기억 속 인물들의 이름을 적어놓으면 그들은 어느 새 나타나 진오와 과거 시절의 대화를 나눕니다.

사실 저는 황석영 작가의 책은 '철도원 삼대'가 처음입니다. 읽는 내내 놀라웠던 점은 생생하게 사실적인 묘사와 글의 흐름이었습니다. 어디 하나 변색 되거나 초점이 흔들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건과 인물을 묘사해주는 서사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오의 현재와 백만의 과거를 넘나들며 진오가 과거를 듣는 부분은 진오의 외로운 마음과 지상에서 동떨어진 장소가 주는 이질감 때문인지 환상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증조 할머니 주안댁과 관련된 이야기는 더욱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현실과 환상이 묘하게 중첩되는 것이지요.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이씨 가문 4대에 걸친 노동자들의 삶을 그저 올곳은 시선으로, 하지만 너무 아프지 않게 표현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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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키오 | 기본 카테고리 2020-05-2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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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들 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저/문승준 역
비채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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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도키오는 참 이상한 책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삶을 이끌어 주는 이야기니까요. 다쿠미는 홀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부잣집으로 재혼했다고 생각하여 어머니를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출생이 그러니 잘 풀릴 리 없다고 생각하여 그런지 다쿠미의 사고방식은 늘 뭔가 약간 꼬여있습니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행운이라는 걸 지닌 사람들을 경멸하고 시기합니다. 게다가 소소하지만 사건사고에 휘말리기도 하고 삶에 대한 태도는 늘 불성실합니다. 인생 한방만을 노리는 철 없는 다쿠미 앞에 이상한 청년 도키오가 나타나면서 다쿠미는 삶의 기회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미야모토는 자신의 아들이 선척적인 유전병으로 인해 일찍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아내를 설득해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에게 주어진 미래는 바뀌지 않습니다. 17년 중 3년을 병상에 누워 몸이 서서히 마비되고 정신이 굳어가는 것을 보았지만 아들도 아버지도 결코 비참해 하지 않습니다.

 

 

다쿠미는 20년 전의 미야모토씨입니다. 미야모토 다쿠미. 즉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스무 살의 다쿠미 앞에 나타난 도키오는 유전병으로 예견된 죽음을 맞이하는 미야모토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죽음을 목전에 둔 도키오는 과거로 거슬러가 스무 살의 철없는 아버지를 만나 그를 성장시키는 것이지요.

 

 

한참을 읽다 보니 하워드 스타크와 토니 스타크가 만나는 엔드 게임의 한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과거로 돌아간 아들이 아버지와 재회하는 감동적인 장면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삶에 아들이 영향을 미치는 타임 패러독스적인 장면일 수도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느냐가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시간이 순서와 상관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거 분명 예전에 읽는 책인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서 기록장을 찾아보니 2010년 판을 읽었군요. 감상평은 단 한줄 쓰여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갈 가치는 있다.

 

 

원치 않는 삶을 사는 다쿠미이건, 죽음이 예견된 도키오이건 그 누구건 간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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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 기본 카테고리 2020-05-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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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테

박상진 저
arte(아르테)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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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은 진입장벽이 꽤나 높은 책입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역사와 단테라는 한 인물의 일대기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상당하더군요. 도움이 될까 싶어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으로 다시 읽어 봤지만 그림이 많아 덜 부담스럽다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배경 지식에 대한 부족으로 허덕여야 했습니다.

이 책 클래식 클라우드의 단테는 평전과 기행문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놓은 듯한 책입니다. 단테의 일생을 시간 순서대로 써내려간다는 점에서 평전이라면, 저자가 단테의 길을 따라 이탈리아 도시여행의 이야기를 공간적으로 해준다는 점에서는 기행문입니다.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단테와 작가가 조화롭게 엮어진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테의 어릴 적 이름은 두란테라고 하는군요. 이는 이탈리아어로 지속하다 혹은 견디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어쩐지 단테의 삶을 정의 내리는 데 딱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자신이 사랑하는 도시 피렌체로부터 버림받고 망명길에 올라 정의를 실천하고자 했던 단테의 삶은 신곡 속 주인공과 닮아 있으니까요. 지옥의 끔찍한 고통의 현장을 참고 견뎌 연옥에 도달하고 결국 천국에 오르는 신곡 속 단테의 모습은 자신이 바라는 이상을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단테가 어린 날 받았던 교육이 어떻게 그의 삶에 신성과 합리성을 조화롭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지 알려줍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에 대한 영적인 사랑과 아내인 젬마에 대한 세속적 사랑을 어떻게 신곡 속에 펼쳐 보였는지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했던 피렌체로부터 왜 추방당했으며 단테는 그 속에서 어떤 노력과 어떤 절망을 했는지 알려주는 부분이 가장 도움이 되었습니다. 피렌체의 정치적 상황과 주변 도시 간의 알력, 그리고 정적들과의 대치와 협력을 설명해줍니다. 또한 신곡이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쓰여졌다는 사실이 주는 함의도 알려줍니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각 도시들이 신곡 속에서 어떤 모티브로 등장했으며 현재 도시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왔고 과거의 어떤 기억들을 품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다마 아쉬운 것은 신곡 속 등장하는 너무나 많은 인물들은 배경지식이 없단 이유로 흘려 읽었기에 이 책에서 언급되어도 전혀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하나이고, 둘째는 이탈리아의 도시들에 대한 비천하기 짝이 없는 저의 배경 지식으로 말미암아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각 도시에 대한 인상이 흐릿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단테가 어떤 개인적 배경을 지닌 인물이었으며 신곡은 어떤 정치적 배경에서 쓰여졌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을 위안으로 삼으려 합니다.

단테는 뛰어난 상상력과 시적 언어를 지닌 작가였고 합리적 사고와 역사의식을 소유한 지식인이었습니다. 또한 세속적 연애 감정과 영원한 사랑의 가치를 연결할 줄 아는 통찰력을 지닌 철학자였으며 세상의 정의를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세우고자 했던 실천가였습니다. 단테의 삶을 이해하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살펴보면 구원이라고 하는 인간 보편의 염원을 신곡이라는 고전을 통해서 단테가 어떻게 이루고자 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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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 기본 카테고리 2020-05-2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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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키르케

매들린 밀러 저/이은선 역
이봄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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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여성의 모습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실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지나치게 수동적이거나 삶의 폭이 제한되어 있어 불완전하게 표현되곤 합니다. 지금의 우리 세대까지 과거 여성의 이미지를 끌고 오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만 아니라면 신화가 생성되던 시기를 고려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심각한 건 극단의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첫눈에 반한 남신에게 쫓기는 님프 아니면 질투와 시샘으로 인해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존재, 그 양극의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신화 속 여성상입니다. 현실 속의 입체적이고 우리 모습을 반영한 여성상은 신화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겠죠.

이 책 '키르케'는 신화를 근거로 하되 작가의 창의력으로 풍성해진 한 여신의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키르케를 오디세이아에 등장한 마녀로만 알고 있었습니다만 각종 자료들을 찾아보니 신화의 다른 이야기들에도 많이 등장하는 여신이더군요.

이 책의 주인공 '키르케' 역시 시작은 신화 속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랑하길 원하고 사랑받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신화에서 봐왔던 다른 여신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신화 속 그녀들은 행복의 쟁취와 실패를 사랑만으로 결정지었다면 키르케는 사랑의 실패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사용한 것이지요.

키르케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와 시냇물의 정령인 페르세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입니다. 헬리오스는 올림포스 이전의 티탄 신족 중 하나이며 페르세는 나이아스, 즉 님프입니다. 신의 순수 혈통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키르케에게 한가지 다른 신들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특이하고 가느다란 목소리였습니다. 이 목소리가 매(hawk)의 소리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매를 뜻하는 키르케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이지요. 키르케는 자신의 목소리를 싫어했지만 사실 이 목소리야 말로 그녀를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그녀만의 장점이었습니다.

키르케는 항상 외로운 여신이었습니다. 부모는 그녀를 효용성로 따지며 자신들의 지위와 명예를 향상시켜줄수 있는 지 여부를 놓고 자식의 가치를 판단했습니다. 이런 부모의 속물적인 가치관에 부응이라고 하듯 형제 자매인 파시에파와 페르세스는 부모와 똑같이 자신들도 부모들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눈에 띄는 미모도 아니고 지성도 지니지 못한 키르케는 부모와 형제 모두에게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나마 막내 동생으로 태어난 아이에테스에게 애정을 쏟아 부었지만 그 역시 키르케를 이용할 가치가 있는지만 가늠하고 결국은 자신만을 위해 영위했다는 점에서 다른 가족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죠. 결국 애정을 갈구하던 키르케는 가족 누구에게도 보답받지 못합니다.

외로운 존재 키르케에게 두 번째로 나타난 존재는 인간 글라우코스입니다. 그를 통해 필멸의 존재, 죽음이라는 끝을 가진 존재, 완벽하지 않음으로 인해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에게 애정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인 글라우코스는 자신의 눈에는 완벽한 모습의 여신인 키르케를 늘 동경하며 같은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라우코스를 사랑한 키르케는 그를 신으로 만들어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그와 사랑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하지만 신이 되어 버린 글라우코스가 바라본 것은 자신이 아니라 스킬라였죠. 그리고 질투와 분노에 찬 키르케는 스킬라를 바다괴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지금까지 신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늘 이런 식이었죠. 키르케처럼 사랑을 갈구하다 실패하거나 혹은 스킬라처럼 사랑을 가지고 놀다가 처벌 받거나.

마녀로서의 타고난 기질로 글라우코스와 스키라를 변신시킨 키르케는 이에 대한 벌을 받습니다. 외로운 섬에서 홀로 살아가라는 형벌이죠. 죽지 않는 신이니 영원히 혼자 살아가는 것이지요. 가족과 연인, 모두로부터 사랑에 응답하지 못한 키르케에게는 천형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형벌을 자신의 특기를 계발해내는 기회로 삼습니다. 자신 속 마녀의 기질을 찾아내어 이를 발전시킵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이야기는 오디세우스를 만나는 부분입니다. 돼지로 만들었던 그의 동료들을 구해주고 같이 생활하다가 오디세우스를 이타카로 돌려보낸다는 것이지요.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키르케와 오디세우스와의 관계를 넘어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 델레고노스,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와의 관계까지 확장시켜 들려준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오디세우스에 대한 인간적인 표현들입니다. 신화 속 오디세우스는 전형적인 지략의 영웅으로 완벽한 모습이 주로 강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책 속의 모습은 한없이 인간적입니다. 자신의 동료들을 아끼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는 고뇌하는 리더로서의 모습. 기나긴 전쟁과 귀향길에 지친 노병의 모습, 그리고 고국의 정적들로 인해 불안해진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국왕으로서의 모습이 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이어서 오히려 오디세이아 속의 오디세우스보다 매력적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떠나버리고 게다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텔레고노스 마저 아버지를 찾겠다며 섬을 떠나버립니다. 모두가 떠나버리고 결국 또다시 혼자가 되어 버린 여신 키르케는 과연 그 외로움을 끝낼 수 있을까요?

저는 중후반부까지 ‘이 책은 보편적 여성의 비극적 삶에 대한 책이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지위 향상의 도구로만 여기는 가족들, 늘 배신당하는 연인에 대한 사랑, 선척적인 외로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미모, 지성, 그리고 재주. 모두 그녀에게는 불행을 안겨주었으니까요. 하지만 단 하나 그녀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믿었으며 자신의 마음이 인정받을 때까지 인내했습니다. 결국 이 책 '키르케'가 하고 싶던 이야기는 '여성의 비극'이 아니라 '여성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마지막에 키르케가 마음의 안식처를 찾았을 때는 결국 완벽하지 않은 완벽함, 즉 신적인 요소를 포기했기에 그녀가 삶의 위안을 찾게 된 것이로구나, 라는 깨달음이 오더군요. 그녀의 사랑은 여러 시행착오적인 배신과 질투로 인해 실패했지만 마지막에는 보답받습니다. 물론 키르케의 모든 행동이 용납될 정도로 그녀는 선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질투에 눈이 멀어 스킬라를 괴물로 만들어 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키르케의 다른 점은 자신의 과오를 결코 간과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과오를 끝까지 책임지고 그에 대한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결국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노력하는 키르케의 모습이 그녀의 삶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가장 궁금했던건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키르케의 신화를 정말 작은 모티브 하나로 작가가 써 내려갔을까,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작가는 키르케라는 여신의 모습은 신화 속에서 차용해 왔지만 더 이상 그녀의 모습은 수동적이며 제한적이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불멸의 신이 아닌 불완전하기에 변해야만 한느 캐릭터로 변모시켰습니다. 결국 키르케가 불멸의 모습을 포기한다는 것은 변화로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더 애정했다는 것이겠죠.

이 책은 신화의 모티브로 써내려간 여성의 아픔에 대한 소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화의 모티브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풍성하게 옷을 입힌 여성의 성장에 대한 소설이었습니다. 신화에 충분한 근거를 두면서 입체적으로 살아난 여성 캐릭터를 읽어가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오랜만에 극단적으로 수용적이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혁명적이지 않은, 오히려 입체적으로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로 인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성장의 전제는 완벽함이 아니라 변화라는 진리를 생각해 보게 하는 여성 캐릭터의 등장시켜 준 작가의 상상력과 통찰력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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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 기본 카테고리 2020-05-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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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콘크리트

하승민 저
황금가지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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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을 아는 순간, 문자 그대로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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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검사인 세휘가 돌아간 고향 안덕은 그녀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쇠락한 공업 도시 안덕. 토박이와 외지인을 철저하게 갈라놓은 구도시와 신도시의 경계, 인간과 자연을 갈라놓은 파도 넘어의 스산한 바다. 그래서 세휘의 아버지는 안덕을 결계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불렀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세휘는 한때 잘나가는 검사였지만 지금은 남편과 양육권 다툼 중인 이혼녀인 뿐입니다. 고향에서는 성장기 내내 수재 소리를 들으며 자란 그녀이지만 막상 아이와 단둘이 돌아온 고향에서 그녀를 반겨주는 건 치매에 걸린 홀어머니와 그녀를 지배하여 도시 안덕의 이권 (利權)을 좀더 챙겨보려는 하이에나 같은 당숙뿐 입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치료비와 아이의 양육권을 담보로 당숙이 제안하는 일이란 온통 의심스럽지만 지금 세휘가 믿을 구석이라곤 당숙밖에 없습니다. 뿐인가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수민이는 자기보다 3살 많은 중학생 이웃 누나 도연에게 빠져 앞뒤 분간 안 되는 성호르몬이 최고치에 이르는 사춘기 청소년입니다. 게다가 아들을 홀려 버린 도연이의 엄마 인숙은 세휘가 조사하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니 이를 어찌할까요. 더 심각한 것은 검사를 사칭하는 초임 변호사 세휘는 술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알콜중독자라는 사실입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인 세휘를 중심으로 모든 등장인물의 행보를 따라가기가 버겁습니다. '도대체 등장인물들 중에 정상이 있기는 한거야? 아니면 지나치게 현실적인거야?'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하거든요. 게다가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세휘의 삶이 더 암담한건지, 아니면 끊임없는 퇴락의 세월을 겪고 있는 세휘의 고향 도시 안덕의 상황의 더 암담한건지 계속해서 저울질 하게 만듭니다.

이 책 콘크리트는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장 ‘골프장, 엿이나 먹으라지’ 정도에 다다르면 연쇄 납치 혹은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속 시원하게 작가가 알려줍니다.

‘응? 이것은 범인은 알려주고 범행의 이유를 깊숙이 들여 다 봐야 하는 미야베 미유키식 추리소설의 전개 방식인가?’

라고 생각하고 5장 ‘동굴, 약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미야베 미유키는 개뿔! 이건 애거서 크리스티의 ‘비뚤어진 집’ 안덕 버전이라고!'

를 외치게 됩니다. 사실 이 책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범행의 이유가 아니라 '누가 범인인가', 인데요, 작가가 슬쩍 그 진범을 내 놓는 순간, 전 정말이지 비유적 표현이 아닌 문자적 표현 그대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미 ’비뚤어진 집‘을 언급한 순간 스포 당한 건 아니길 바랍니다.

 

모든 소설의 결말이 명쾌하게 권선징악을 추구할 수는 없다는 것, 오히려 좀 더 비정한 현실에 가까울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는다면 충격을 완화 시키면서 좀 더 이 책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 혹시라도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을까 봐 뉴스 읽기가 두려워지는 순간이 올까 걱정스러워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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