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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 | 영화 2011-03-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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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킹스 스피치

톰 후퍼
영국, 호주 | 2011년 03월

영화     구매하기

 굉장한 수상 경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 시작 전에 스크린 위에 상 이름이 빼곡히 나열되더라고요. 게다가 왕이 주인공입니다. 왕이 세 명, 아니 어린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네 명이나 나오네요. 두 손 모으고 얌전히 봐야 할 장엄한 영화일 것 같지요.

 그러나 의외로 야심이 없는 작고 잔잔한 영화예요. 엄청 극적인 것도 아니고, 왕 이야기라 해서 2차 대전의 전운에 휩싸이던 당시 유럽의 정세를 각 잡고 거창하게 묘사하지도 않아요. 역사는 배경에 머무를 뿐입니다(물론 중요한 배경이긴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갑자기 너무나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된 한 성실한 인간이 어떻게 자기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주위의 인간적인 도움이 얼마나 절실한가입니다.

 왕실 가족들은 아주 인간적으로 그려집니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진 보통 사람들이라고 영화 내내 관객들을 설득시키지요. 가족들은 애칭으로 서로를 부르고, 조지 6세와 에드워드 8세는 어머니인 왕비를 엄마라고 부릅니다. 엘리자베스 공주와 마가렛 공주도 조지 6세에게 맘껏 어리광을 피우는 귀여운 딸들이고, 조지 6세는 더듬거리면서도 딸들에게 창작 동화를 들려주는 좋은 아빠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양위서에 서명한 조지 6세가 집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딸들에게 팔을 벌렸을 때, 이 어린 공주들이 갑자기 폐하라고 부르면서 예의를 차리는 장면은 어쩐지 슬프지요(나중에서는 다시 아빠 목에 대롱대롱 잘 매달립니다만). 왕실 가족들은 우아하면서도 친근합니다. 그게 바로 현대 영국 왕실이 국민들에게 보여주려고 하고, 국민들이 믿고 싶어하는 이미지이지요.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배우들 보는 재미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그렇게 재미있을 게 없죠. 정말 작고 소박한 영화예요!) 연기에 있어 목소리와 대사의 비중은 대단히 큰데, 조지 6세가 말을 더듬는 캐릭터여서 콜린 퍼스가 꽤 애 먹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원래 콜린 퍼스는 진중하고 책임감 있고 성실한 (그러나 실은 따스한) 영국 상류층 남자 역할에는 둘째 가라면 서럽죠. 보통 말더듬이라면 소심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콜린 퍼스의 조지 6세는 어릴 때의 억압적 경험 때문에 소심한 구석도 분명히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왕의 평대로 꽤 용맹하기도 합니다. 아주 입체적이어서  매력있는 주인공이에요.
 
오랜만에(!?) 정상적이고 다정한 여인 역을 맡은 헬레나 본햄 카터의 엘리자베스 왕비는 소탈하고 남편에게 힘을 주는 내조의 여왕이면서도 심슨 부인 앞에서는 턱을 똑바로 치켜드는 왕족 여인다운 부분도 있죠. 제프리 러쉬의 라이오넬 로그는 의외로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더군요? 저는 조지 6세와 그 언어 치료사의 이야기가 주라고 어디서 들었는데, 물론 중요한 역할이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마이클 갬본의 조지 5세는 등장 시간은 짧으나 정말 우아하고 강렬합니다. 중후한 목소리로 성탄 담화를 발표할 때의 위엄이라니. 그 위엄 때문에 나중에 임종 직전의 가물가물한 상태가 효과적으로 슬프더라고요. 가이 피어스의 에드워드 8세는... 가이 피어스가 콜린 퍼스보다 사실 7살이나 어린데 어째 콜린 퍼스의 형 역할을 맡았습니다. 사랑에 푹 빠져서 책임을 버리는 철없는 왕 역할을 얄밉게 잘도 했더군요. 그런데 너무 감정에 충실한 어린애 같은 캐릭터라 딱히 미워할 수도 없더이다...... 애라서 그러는데요 뭐. 심슨 부인은 진짜 꼬집어주고 싶습니다. 에드워드 8세와 심슨 부인의 이야기는 세기의 로맨스로 알려져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완전 민폐 커플입니다. 관점에 따라 둘 다 맞겠지요. 티모시 스팔의 처칠은 실제 인물과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그 불독처럼 처진 볼살과 우물거리는 말씨가 진짜 처칠과 꼭 닮아서 일품이었어요.

 시각적으로는 20세기 초의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내내 무리지어 다녀서 꽤 멋집니다. 안개에 휩싸인 옛 런던의 풍경도 고풍스럽고요. 음악 사용도 적절해서, 작은 영화임에도 영화관에서 보는 맛이 살아 있었지요.

 개인적으로 와닿았던 부분은, 왕위가 자신에게 올 수도 있겠다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한 조지 6세의 반응입니다. 그는 자신의 소박하고 행복한 사생활이 희생되고(? 공작의 생활이 소박하다면 말이지만; 어쨌든 왕보다는 소박하잖아요) 자신의 한계가 극명하게 노출되리라는 점이 두려워서 왕위를 이어받기 싫어합니다. 내내 그런 식으로 그려지지요. 그러나 그의 언어치료사인 로그는 그의 마음 한 구석에 다른 한편으로는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이 조금은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요. 왜 그토록 말더듬을 고치려고 노력했겠어요. 언젠가 왕이 된다면 왕 역할을 훌륭하게 (형보다 더 잘) 수행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해서이든, 아니면 해야만 하기 때문이든, 좋은 왕이 되고자 하는 조지 6세의 노력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데가 있습니다.
 저도 지금 하고 있는 게 '해야 되는' 것이지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고 회의를 품은 적이 종종 있습니다. 누구나 그럴 거예요. 그런데 그 많은 징징거림이 얼마나 비겁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누가 쉽고 즐겁고 적성에 맞는 간단한 일만 하고 살 수 있겠어요. 그래도 앞으로 또 힘든 일 생기면 또 징징대고 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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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실망 | 2011-03-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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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저/김희상 역
갤리온 | 201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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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격하게 말하자면, 기만적인 제목이네요. 제목대로라면 자신의 정의관념과 상충하는 의뢰인을 만났을 때 변호사가 느끼는 고민이 다루어졌을 것 같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기대로 이 책을 읽게 되었고요. 변호인은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변호사도 직업인인 동시에 인간이기도 한 만큼 정말 악한 의뢰인을 만났을 때 고민이 되겠지요. 편들어 주고 싶지 않은 인간을 변호하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고민에 대한 해답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아닙니다.

 일단은 재미있게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입니다. 11건의 형사 사건 이야기를 단편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잘도 써 내려갔더군요. 웬만한 범죄 소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두 실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 편히 즐기기가 어려워요(진정으로 감동을 받으면서 뒷맛도 개운했던 이야기는 열한 편 중에서 단 하나, 맨 마지막 '에티오피아 남자' 뿐이었습니다. 마음에 걸릴 만한 피해자가 없는 유일한 사건이기 때문이지요). 모든 사건이 결국 변호사의 승리로 끝난 사건들인데, 대부분 석연찮은 부분이 한두 군데씩 있습니다. 정말 이대로 끝내고도 괜찮을까.

 특히나 사건을 대하는 이 스타 변호사의 태도는 잘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일단 의뢰인에 대해서라면 무비판적으로 편을 들거든요. 자기 의뢰인이 심지어 살인 청부업자라는 강한 정황이 있어도, 저자는 그에 대해 아무런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그를 정당방위로 빼내는 데 몰두하는 과정만을 그립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서 명백한 범인이 풀려나는 사건도 아무 비판 없이 '재밌지?' 하는 태도로 서술해 놨더군요. 물론 그게 바로 형사사건 변호인의 이상적인 태도겠지요. 외부적으로는 당연히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직업적 의무와 인간적 신념이 충돌할 때 노련한 변호사라면 내적으로 그 충돌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였다는 말입니다. 무비판적으로 할 일만 유능하게 해내는 저자에게 정이 가질 않더군요.
 
 "의뢰인이 정말 무죄일까 하는 의문은 중요한 게 아니다. 변호사의 1차적인 임무는 의뢰인의 변호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그러나 변호사라고 해서 기계인 것도 아니고, 속으로 의문이 들고 양심이 따가울 때가 없다는 말일까요? 이 변호사는 이미 십수년이나 변호사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충돌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요? 편하겠네요. 오랫동안 뛰어난 형사 전문 변호사로 활약해 왔다는 사람이 책에서 할 이야기가 이것뿐인가, 하는 실망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가볍고 선정적인 사건집처럼 보일 뿐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잘난 변호사인가 하는 자랑담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문체는 짧고 간결해서 얼핏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치 소설처럼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외모나 감정 묘사가 아주 구구해요. 그래서 신뢰감이 약간 저하되지요. 변호사라면 '진실' 이라는 걸 알아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텐데도, 부담없이 소설처럼 당시 관련자들의 심리 상태를 전지적으로 묘사해 놨습니다. 만약 피해자가 이미 사망하고 없다면 이 변호사가 그 때 당시 피해자의 심리를 어떻게 짐작했겠어요? 당연히 자기 의뢰인인 가해자의 입을 통해서가 아닙니까? (물론 객관적인 정황이나 다른 사람들의 진술도 참고를 하기는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양 당사자 중 한쪽의 진술이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게 '진실' 이라고 확신하고 그렇게 단정적으로 묘사할 수가 있지요? 이런 태도는 법조인인 저자가 논픽션에서 취할 만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로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건질 만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변호사는 수사관이 지어 놓은 증거라는 가건물에서 될 수 있는 한 틈새를 찾아내려 노력한다. 우연은 변호사의 친구이다. 성급하게 그럴싸한 겉보기를 진리라고 고집하는 것을 막는 게 변호사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어떤 경관은 대법원 판사에게, 변호사는 정의라는 이름의 자동차에 장착된 브레이크처럼 자꾸 제동만 건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법관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가 얼마나 위험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형사 재판은 이런 힘겨루기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이 부분은 좋더군요. 이런 논의를 좀 더 발전시켜서 책에 써 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변호사가 어떻게 정의의 '장애물' 이 아니라 정의의 '브레이크' 로 순기능을 할 수 있는가, 그에 어울리는 사건을 좀 더 통찰력 있게 제시해 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변호사가 증인 심문을 할 때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다.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게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며, 의뢰인의 운명을 가지고 게임을 벌여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은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법정과 실제 법정의 결정적 차이를 정확히 짚어낸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대륙법계인 독일(이 책 저자는 독일 변호사지요)이나 우리나라뿐 아니라 헐리우드의 나라이자 쇼비즈의 나라인 미국 법정에서조차도 영화처럼 극적인 증언이나 증거가 공판 도중에야 비로소 갑자기 튀어나와 사건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일은 없다고 하더군요. 공판 전에 길고 지루하고 꼼꼼한 사전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하거니와, 공판 도중의 갑작스러운 국면 전환은 판사도, 검사도, 변호인도, 피고인도, 배심원도,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고요. 진짜 재판은 그렇게 즉흥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해결할 일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번역 면에서는, 전체적으로 문장이 심하게 어색한 부분은 없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은 듯한 오류가 종종 발견됩니다. 본문 중에 사건 해결 확률이 95%이니 범인이 일곱 명 가운데 한 명 꼴로 잡히지 않는 셈이라는 문장이 있어요(5퍼센트가 잡히지 않았다면 열일곱 명 중 한 명 꼴이겠지). 6을 세 번 곱한 게 18이라는 말도 있고(세 번 더한 거겠지!). 그리고 용어도 좀 삐걱거립니다. 형사 사건에서는 피고라는 말이 없어요. 원고 피고는 민사 용어이고 형사 사건이라면 '피고인' 이지요. 그리고 정확한 용어는 정당방어, 과잉방어가 아니라 정당방위, 과잉방위입니다. 아무리 전문성이 그리 도드라지지 않는 책이라지만 법률용어는 감수를 받는 게 좋지 않았을까. 독일 지역명이나 풍습에 대해 열심히 각주를 달아 놓은 것에 비해 그런 부분에서의 세심함이 떨어지더군요.

 리뷰를 쓰느라 책 정보를 찾다 보니 2권도 있는 모양인데, 심심할 때 재미있게 읽을 만은 하겠지만 1권을 읽을 때 가졌던 기대감은 완전히 버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냥 가볍고 흥미로운 사건 이야기 모음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편이 낫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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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실패-_- 타인의 고통 | 일지 2011-03-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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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도서관에 갔는데, 빌려 오려고 후보에 올린 책 중에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 이 있었습니다.
 요즘 일본 지진 보도를 지켜보다 보니 자연히 그 책이 연상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도서관 서가에서 그 책을 꺼내 뒤적거리다가... 그냥 살포시 서가에 돌려놓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몇 해에 걸쳐서 벌써 네 번째라는 것; 몇 년 전부터 읽어 보고 싶어서 이 책 주위를 맴돌았지만, 매번 서가까지 가서 집어들다가 말았어요. 실려 있는 사진들을 감당하기가 어려워서였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청나라 말기의 형벌인 '능지' 장면을 찍은 사진... 몇 해 전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그 책을 집어 뒤적이다 그걸 보았을 때의 기분이란... 테러 당한 것처럼 너무너무 무섭고 끔찍한데 또 이상하게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수잔 손택은 바로 그런 심리에 대해 그 책에서 분석을 해 놓았...다고 알고 있는데 책을 읽지를 못했으니 책이 무슨 내용인지 잘 알 수가 없네요.
 
 그 사진을 처음 본 그날은 내내 목덜미 뒤에 뭔가 음침하고 어두운 것이 붙어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를 본 기분. 아아. 오늘도 도저히 그 책을 빌려 올 수 없었어요. 다른 것만 빌려 왔네.


 언제 그 책을 읽을 수 있을까요 ㅠㅠ 정말 좋은 책인 것 같은데.
 다음 번에 갔을 때 또 시도해야겠다.

 최대한 밝고 화창한 낮에 가서 빌려와야 합니다. 이번엔 해 지고 나서 도서관에 간 탓에 실패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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