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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술봉과 분홍 제복

사이토 미나코 저/권서경 역
문학동네 | 2020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구체적이고 세밀한 예시들을 담은 이런 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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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성평등, 성인지 감수성,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들이 부쩍 많아진 느낌이다. 그런데 일반적이고 개괄적인 차원을 넘어,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를 담은 책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아이에게 읽어줄 여러 동화를 찾아보면서 새삼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유명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고스란히 아이의 머릿속, 마음속에 스며들어도 될 만한가. 그냥 이야기니까 가볍게 재미로 읽히고 나중에 비판적 시각으로 다시 보게 하면 될 일인가. 나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책들을 찾아보았지만 의외로 별로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매체 속 여성 인물에 대한 문제점을 다루었다는 대략의 내용만으로도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인 문예평론가가 특수촬영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아동용 위인전집을 조사 및 분석 대상으로 삼아 여성상을 고찰했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을 "전후 일본이 쌓아올린 아동매체 속 여성상의 집대성"이라고 의미 부여했다. 판권을 살펴보니, 일본에서 출간된 때는 무려 20년 전이다. 이 책에 명시된 연도는 1998년이다. 그런데 이런 시간 차가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우리나라 어린이 대상의 드라마, 애니메이션, 아동용 위인전집은 어떨까. 그 외의 다른 장르에서는 또 어떨까. 이런 식의 접근을 하는 데, 이 책은 꽤 유용한 자료집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총 3부로, 먼저 1부에서는 특수촬영 드라마, 애니메이션, 위인전에 나오는 공통의 여성상과 그런 인물의 형성 배경을 서술한다. 2부와 3부에서는 각각 인기 애니메이션의 여주인공, 아동용 위인전의 여성 위인이 어떻게 묘사돼왔는지 보여준다. 각 장마다 '깊이 읽기'를 통해 관련된 주제에 대해 탐구해온 참고서적을 소개한다. 379쪽의 긴 분량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하다.

 

"녹음이 우거진 가운데 피어난 붉은 꽃 한 송이. 본디 군계일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던 말이 변형되어 이제는 '남자들 사이에 있는 여자 한 명'이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9쪽)

 

저자는 중국 북송시대 왕안석의 시에서 유래한 '홍일점'을 위와 같이 설명한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왕국은 현실사회를 축소한 모형"이라는 관점에서 마법소녀, 소년 왕국의 여주인공, 악의 여왕의 현대판 캐릭터를 각각 풀어내고, 여성 위인의 유형과 더불어 홍일점의 원조인 잔 다르크에 주목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역사와 시대 배경, 주요 내용과 캐릭터의 현대적 의미 등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들을 분석한 내용 중에서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 기존 애니메이션과 달리, 그의 작품은 소년 왕국과 소녀 왕국의 분쟁을 그리는데 두 왕국의 대표가 모두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가 그린 여성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중 한 사례를 소개해본다.

 

"<나우시카>는 분명 일반적인 여주인공이 아니라 여성 영웅, 다시 말해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여성상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나우시카와 쿠샤나는 여성의 육체에 남주인공의 성격을 이식한 영웅이다. 남자 영웅을 본뜬 여성, 다시 말해 남자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준 캐릭터다."(246쪽)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여성 위인 세 명을 애니메이션 여주인공들에 나란히 빗대어 풀어간 대목이다. 저자에 따르면, 나이팅게일은 <나우시카>, 퀴리부인은 <세일러 문>, 헬렌 켈러는 <모노노케 히메>와 각각 닮았다. 애니메이션 왕국과 마찬가지로 위인전 왕국은 의식적, 무의식적 조작의 결과로, 아이들에게 유익할 만한 에피소드와 어른들이 바라는 인간(여성)상, 재미있는 장면은 강조되고 지루한 장면은 생략되는 방식이다. 오히려 악의 여왕(마녀)에 가까운 세 명의 여성 위인이 백의의 천사, 근대 과학의 어머니, 삼중고의 성녀 이미지로 고착화됐다. 저자는 애니메이션과 위인전의 구조가 현실사회에도 해당되며, 두 왕국뿐 아니라 현실사회도 많은(양과 질을 모두 포함한 개념) 여성의 참여를 통해 반드시 무엇인가 바뀔 것이라고 희망한다.

 

공부와 연애, 일과 사랑, 직업과 결혼, 내 꿈과 육아 등, 돌아보면 나는 이 두 가지를 대립 혹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둘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온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내 무의식속에 수많은 매체가 주입해온 여성상이 꽤 깊이 박혔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야기의 힘은 무섭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읽고 싶고, 전달하고 싶고,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물론 그 이야기란, 여러 매체 속 여성 서사뿐 아니라 내 삶의 에피소드를 포함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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