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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차원을 위한 아포리즘 | 사색과 감상의 길목 2020-08-28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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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승화

배철현 저
21세기북스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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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되새김질할 문장들, 여백이 있는 핵심 문구의 지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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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헌학자인 저자가 바라본 '승화'의 다양한 측면을 알고 싶었다. 또한 나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한 아포리즘을 만나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천천히 읽을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어렵지 않게 읽힌다. 한 주제어에 대해 차분히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주제어에 대한 내용이 끝난다. 그만큼 주제어 하나에 대해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지 않다. 각 주제어별로 짧게는 6쪽, 길어도 10쪽 분량이다. 내용의 깊이를 원한다면 아쉬울 수 있고, 감성적인 서술을 원한다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 자기 수양을 위한 명상이나 사색을 위한 책으로 적합하다. 하루에 한 주제어씩 반복해서 읽고, 독서 노트나 이 책의 여백에 자기 생각을 덧붙여볼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중간중간 앞서 나온 핵심 문장이나 되새겨볼 표현이 여백과 함께 나오는 지면 구성도 괜찮다. 다만 기본 전제로 알아둘 것은, 이 책이 지극히 인본주의적 명상집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종교 유무와 상관없이 볼 아포리즘 모음집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자의 무신론적 관점을 드러내는 표현이, 논리 전개와 무관하게 자주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응시, 엄격, 명료, 승화의 총 4부로 되어 있고, 각 부마다 일곱 주제어를 제시하고 있다. 차례를 보면 대번에 확인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이 책은 자신의 삶을 고양시킬 28가지 핵심 사전인 셈이다. 이는 저자만의 고유한 사전이자, 독자를 저자가 의미하는 '승화'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 팻말이기도 하다.

 

먼저 1부에서 '고통'에 주목해보자. 명언 한 구절과 '고통'의 정의가 나와 있다.

 

 

저자는 고통이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라고 말하면서, 인간을 '호모 파수스' 곧 '고통을 감수하는 인간'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우리는 이 고통 때문에, 현실세계를 선명하게 응시하고 반응할 수 있다. 일단 연약한 동물에 불과한 우리 자신을 인식하고,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잘못된 삶을 개조해야 한다. 저자는 고통의 필요성을 역설한 니체, 역경과 공포를 고삐로 채우는 인생의 본질을 말한 세네카의 글을 인용한다.

 

저자의 글을 보면서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수긍하기 싫지만, 인간의 삶에 반드시 고통이 동반된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의 유무가 아니라, 고통 받았을 때의 반응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개인적, 국가적 고통 앞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대처하고 몸과 마음을 추스리며 전진할 것인가. '코로나19' 앞에서는 정말 무기력해지고 만다. 이 길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모두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다. 터널의 끝에서 새로운 삶을 펼쳐가기 위해, 오늘 나는 무엇을 혁신하고 개조해야 할까.

 

다음은 2부에서 '취미'에 주목해보자. 다른 주제어들이 대체로 진중한 데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주제어 선정이라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명언 한 구절과 '취미'의 정의가 나와 있다.

 

 

19세기에는 인간 수명이 50세였는데 오늘날은 100세 시대다. 첫 50년이 화목한 가족, 생물학적 의무를 위한 시간이라면, 두 번째 50년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의무를 위한 시간이다. 후자의 삶을 위한 습관은 '고독'이다. '외로움'이 불안이며 두려움인 반면, '고독'은 고요이며 온전함이다. 영국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고독은 자신을 천재로 둔갑시키는 학교"라고 말했다. 저자는 자기-자신과의 관계를 새로 설정하려는 노력이 고독이고, 그 가운데 자신을 위한 열정이 취미라고 말한다. 취미는 정체성으로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물음에 답을 하게 되는 바로 그것이다.

 

누군가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요즘의 나는 "책을 읽고 생각과 느낌을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예전에 비해 읽게 되는 책의 양도 늘었지만, 그보다 책 한 권, 각 문장을 대할 때마다 끊임없이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비슷한 생각이든 완전히 다른 생각이든, 책마다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것을 즐겁게 받고 마음속에 채워가는 중이다. 그게 요즘 내 취미다.

 

다음은 3부에서 '구별'에 주목해보자. 역시, 명언 한 구절과 '구별'의 정의가 나와 있는데, 이 주제어가 '빅뱅 이론'과 무슨 관련성이 있을까. 직접 저자의 말로 확인해본다.

 

 

"하루는 빅뱅을 경험하는 시간과 장소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는 우주의 미아가 된다.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는 우주 안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정중동을 유지해야 한다."(234쪽)

 

마지막으로 4부에서 '변화'에 주목해보자. 역시, 명언 한 구절과 '변화'의 정의가 나와 있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늙어간다. '변화하다'는 상태동사로, 우리는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중이고, 그 가운데 혁신은 물질적, 정신적 DNA를 바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역동적 행위다. 혁신하는 사람은 유연하고 자유롭다. 저자는 '혁신'을 설명하면서, 동물 가죽이 '무두질'을 통해 털과 기름이 제거되어 과거의 잔재를 없애고 유연해지는 과정에 빗댄다.

 

"나는 타인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런 유도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임무가 있다. 나 스스로의 변화다. 나의 변화를 보고 상대방도 그 기운으로 서서히 변화한다. (중략) 변화는 누구에게 요구되는 폭력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탁하는 정중한 초대이며, 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의도하는 섬세한 연습이다."(280-281쪽)

 

이 구절에서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덜 변화한 부분에서는 눈 감고 뭔가 변화한 지점을 부각시켜, "당신(너) 왜 그래? 나처럼 그것 좀 고쳐" 식의 말을 많이 해온 것은 아닌지. 비단 '변화'라는 주제어뿐 아니라, 모든 주제어를 대할 때마다 자신을 '승화'시킬 질문을 스스로 해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을 읽는 사람마다, 잠깐 멈추게 되는 문장들이 각각 다를 것이다. 거기서 오래 머물 수도 있고, 훌쩍 나와 자신만의 문장들로 엮어갈 수도 있을 터이다.

 

이 책에서는 주제어마다 필요하면 영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한자어 등의 어원 풀이가 동반된다. 또한 성서, 인도 경전들, 여러 철학자들, 이슬람 신비주의 시인, 영국 시인,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 등이 언급되거나 인용된다. 이 책에서 소로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그가 고대 인도 경전들에 심취했다는 배경과 관련되지 않을까 추측된다.

 

이 책처럼 명언을 인용하는 글을 읽을 때, 독자로서 경계하거나 비판적으로 볼 대목이 있다고 생각한다. 논리 전개상 그 인용이 적절하거나 타당한지 살피는 게 필요하다. 이 책의 한 대목을 예로 들어보겠다. 저자는 '변화'라는 주제어를 설명하는 도입부에서, "만물은 변한다"와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두 명언을 끌어온다. 그리고 전자가 맞고 후자는 틀렸다고 단정한다. 그런데 과연 두 명언이 대립 관계일까.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은, 형태가 바뀔지라도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의미가 아닌가. '변화'를 설명하는 전반적인 맥락에서, 이 말의 인용이 적절했는지, 저자가 이 말을 타당하게 사용했는지 숙고해보게 된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니체 사상, 인도 경전들 쪽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다. 이 지점이, 종교 유무와 상관없는 아포리즘 모음집을 원했던 나의 기대에서 비껴간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으로 저자가 지향하는 '위대한 개인'이 되는 4단계가 완성된 셈인데, 이 책의 성향이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기점으로 거슬러 저자의 전작들 <심연>, <수련>, <정적>을 만나봐도 좋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의 제목 '승화'에 대한 인상적인 표현을 상기해본다.

 

"'승화'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더 높은 차원의 정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 얻게 되는 겸허한 마음이다. (중략) 어제와 달라질 오늘의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이자, 지속적으로 자신을 혁신하려는 용기 있는 도전이다. (중략) 오늘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정성스럽게 살려는 마음가짐과 그런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언행이 바로 승화다."(11-12쪽)

 

저자의 '승화'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았으니, 이제 나만의 '승화'를 엮어갈 차례다.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시간부터, 더 높은 차원을 위한 아포리즘으로 만들어갈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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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마음 단어를 새긴다 | 동심의 한마당 2020-08-2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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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신비한 마음 사전

김지호 글그림
파란정원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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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 단어를 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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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어떠한지 자주 들여다보고, 상대방의 마음도 잘 헤아리며, 순간순간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아이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마음 사전'이 필요할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참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아는 것이, 첫 출발이 될 것이다. <읽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신비한 마음 사전>은 아이들이 알아야 할 100가지 감정 단어를 선별하고, 각 단어 풀이를 만화 형식으로 보여준다.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 네 명이 등장해서, 아이들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황 가운데 감정 단어를 사용하고 적용하는 방식이다.

 

 

본문 시작 전에, 이 책은 숨겨진 감정을 찾는 연습을 해보자고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1단계] 난 지금 어떤 감정이지? (질문하기)

[2단계] 왜 이런 감정을 느끼지? (분석하기)

[3단계] 아하, 이런 이유였구나. (알아차리기)

[4단계] 내 기분은 OOO해. (말로 표현하기)

 

네 명의 귀여운 캐릭터가 서로 어울리면서 느끼게 되는 여러 감정 단어들이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된다. 각 에피소드가 유아, 초등학생이라면 익숙하게 마주하는 상황과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담고 있어서, 아이들이 더욱 이야기에 몰입하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특히 남매인 소심이와 소미 이야기는 웃기다. 소미는 영리하게 오빠를 놀려대고, 소심이는 발끈하면서도 결국 동생이 하자는 대로 한다.

 

 

아이와 함께 볼 책을 미리 읽으면서, 문득 나이가 들수록 점점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감추거나 억누르다 보니, 어느 순간 적재적소의 감정 표출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결핍이든 과잉이든 둘 다 문제 같다.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마음 사전'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 처음부터 하나씩 다시, 배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유익한 학습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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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모습이 사랑스러워 | 동심의 한마당 2020-08-2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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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넌 나의 우주야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공경희 역
웅진주니어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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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이 저절로 공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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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신간이라서 구매했다. "세상 모든 딸에게 전하는 유쾌한 사랑 고백!"이라는 책 소개 문구가 딱 적합하다. 사실, 처음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 책에 그리 끌리지 않았다. 그동안 작가의 그림책을 꽤 많이 구매했고, 나도 아이도 작가의 책들을 좋아하지만, 왠지 이 책의 제목부터 내용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다는 게 선택을 주저한 이유였다. 돌아보면, '아주 새로운 이야기가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여러 책들을 살펴볼 때, 이 책을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에게 특별히 보여줄 이야기가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여러 책들을 검색하다가, 이 책을 다시 만난 것이다.

 

70세가 넘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앤서니 브라운이 멋지다. 무엇보다 그림책에 나온 아이에 대한 묘사와 표현을 보고 대단하구나 생각했다. 매순간 아이를 보며 놀라고 감탄하곤 한다. 고맙고 사랑스럽고 신기한 마음도 가진다. 그런데 일상의 버거움 속에서 날마다 매순간 새롭게 발견되는 아이 모습을 제대로 마음속에 새기지 못한 채 하루하루 지나칠 때가 많다. 매일 그림이나 글로 남겨두자고 결심하지만, "나중에, 내일" 하면서 슬쩍 넘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미 오래전 아이를 키우던 때의 감정을, (물론 지금은 손주들을 보면서 가질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모든 모습이 사랑스럽다. "소리를 빽빽 지르는 모습"마저도. 청진기로 곰을 치료하는 놀이를 자주 하는 아이는, 그 장면을 보자 크게 웃으면서 곧장 청진기와 곰 인형을 찾았다. 자기 모습을 책 속에서 거울처럼 봤다고 생각했나 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아이에게 보여줄 특별한 이야기였고, 동시에 나에게도 아주 새로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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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으로 날아가는 음표처럼 | 동심의 한마당 2020-08-27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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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음을 담은 연주

피터 H.레이놀즈 글그림/김지혜 역
길벗어린이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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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처음 느꼈던 즐거움의 순간을 떠올려볼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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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레이놀즈의 신간이 나왔다. 악기 연주하는 그림, 더구나 피아노라니! 구매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읽어볼 만한 책이 있을까' 하고 유아 신간을 보고 있다가, 이렇게 딱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날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린 시절 나의 모든 생활을 지배했던 피아노, 잘 치고 싶었던 만큼 많이 지루했고 좌절했던 피아노였기에, 그와 관련된 그림책, 동화, 글은 모조리 찾아 읽게 되는 것 같다.

 

"라지는 물감을 섞듯 음을 섞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라지는 음표가 동물원 쇠창살 뒤에 갇혀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는 동물들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라지의 실력은 더욱더 좋아졌지만, 라지는 점점 더 싫증이 났습니다."

"라지는 계속 연주했어요. 온 마음을 담은 연주였지요."

 

줄거리는 단순하고 어쩌면 평범할 수 있는데, 위의 문장들과 함께 펼쳐진 그림이 마음속에 잔잔하게 들어온다. 상세하지 않은 이야기 전개가 오히려 좋다. 그 여백을 읽으면서, 아이와 함께 채워갈 수 있으니까. 피아노는 처음에 왜 덩그러니 있었던 것일까. 라지에게는 레슨이 필요 없었을까. 아빠는 왜 라지에게 더 권유하지 않았을까. 어른이 된 라지는 행복했을까.

 

얇은 펜 스케치 위에 번지듯 자연스럽게 퍼진 물감 자국, 색색으로 날아가는 음표의 흐름이 글의 전개와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제목 <마음을 담은 연주>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그림책에 나왔던, "가장 처음 느꼈던 즐거움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작가의 말도 떠올려본다. 마음을 담는 것, 처음 느꼈던 즐거움을 잊지 않는 것, 그게 비단 피아노 연주에 한정된 말은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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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해설 모두 흥미롭다 | 사색과 감상의 길목 2020-08-2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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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옛이야기

지현,조박선영,조이스박,백윤영미,유숙열 공저
이프북스(IFBOOKS)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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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바뀌면 인생도, 사회도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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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를 떠올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이 많다. 굳이 '페미니즘'의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분명히 다시 쓰여야 할 이야기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대목이, 공통적으로 '예쁘고 착한 여자, 못생기고 못된 여자'의 이분법적 캐릭터 설정이다. 이야기 속에서 그려지는 여자들의 '착함'의 의미도 실상 '수동성'이나 '어리석음'에 가깝다. 그게 못마땅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옛이야기를 다시 쓰자는 이 책의 문제의식에 맞닿아 있었다. 기존의 이야기가 어떻게 새롭게 탈바꿈될지 너무 궁금했다. 기대감으로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콩쥐팥쥐>, <아기 장수>와 <오누이 힘겨루기>, <구미호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 속에서 "묵살되고 지워진 여성들의 목소리"를 부활시켜 각각 새로운 이야기로 꾸몄다. 각 이야기마다 해당 이야기를 쓴 작가의 해설이 덧붙여 있다. 부록으로 <단군신화> 속 웅녀에 대한 논문 내용도 실려 있다. 그러면 어떤 기준으로 선별된 것일까. 프롤로그에서도 특별히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솔직히 내가 기대했던 책의 구성은 아니다. 이런 제목으로 책이 나온다면, 적어도 우리 옛이야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뭔가 주제별 혹은 문제의식별 차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급적 많은 내용을 담아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다시 쓴 이야기만 본다면 네 편이다. 단지 그 수가 적어서 아쉽다기보다, 왜 굳이 앞서 나온 내용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꾸몄는가 하는 의도나 목적에 대해 밝혀주면 좋았겠다 싶은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쉬움은 이 책 자체에 있다기보다, 이 책을 기점으로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와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에 기인한다. 이런 기획의 첫 책이라면 전체를 조망해주고, 그 다음 책부터는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다른 맥락에서 본다면, 이 책은 나처럼 옛이야기에 대해 문제의식을 이미 가지고 있었거나 다시 쓰는 이야기 자체를 궁금해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실 전체적인 조망이나 주제별 혹은 문제의식별 차례가 무의미하다. 그저 이런 시도 자체가 반갑고 책 내용도 흥미롭다.

 

콩쥐와 팥쥐 자매의 연대, 항상 길동보다 앞선 누나 길영의 존재감,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 '구미호'로 불리던 명희, 선녀와 나무꾼 사이의 맏딸 마야 이야기를 읽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 새로운 이야기였다. 자매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가 아닌 연대와 연합이 좋았고, 길영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도 멋졌다. 속수무책 당하면서도 도리어 비난을 받는 명희는 안타까웠고, 이 땅의 모든 딸을 대변하는 듯한 마야의 버거움이 그대로 나에게도 전해졌다.

 

다시 쓴 이야기들뿐 아니라 각각의 저자가 쓴 해설도 새롭고 흥미로웠다. 특히, 후기 낭만주의 시에서 처음 등장한 팜므 파탈, 여성과 자연의 융합된 이미지 가운데 그런 치명적인 여성 이미지가 중국과 한국의 구미호 이미지와 일맥 상통한다는 내용이 그랬다. "고통을 벗고 날개옷을 되찾아 입는" 선녀들, 곧 수많은 가정폭력 생존자들의 사연은 먹먹했고, 부록에서 사람이 되지 못한 '호녀'의 소환과 그 의미는 '웅녀'로 한정된 시야를 넓혀주었다.

 

고정관념, 틀에 박힌 이야기가 바뀌면 우리의 인생이 바뀔 것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도 바뀔 것이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잘못된 이야기라면, 다시 쓰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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