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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 어디에도 기착할 수 없는 이방인의 이야기. | 마뇨의 마법서 2021-03-3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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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행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저/전은경 역
비채 | 2021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독일계 유대인의 시선으로 그 당시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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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제 여행자다.

끝없이 계속 움직이는 여행자.

나는 이미 이주했어.

독일 철도로 이주한 거지.

난 지금 독일에 있는 게 아니야.

 

 

세계 1차 대전 참전 용사이자 사업가인 오토 질버만.

그는 유대인이자 독일인이다.

아리아인의 특징을 가진 그는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겉으로는 유대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2차 대전의 기운이 점점 다가오는 와중에 나치의 유대인 탄압이 시작되고 있었다.

질버만이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모든 통로가 차단된 이후였다.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 허가증을 구해달라 요구하는 한 편 살고 있는 집을 핀들러에게 팔려고 하지만

시류에 편승한 핀들러는 헐값에 질버만의 집을 사려 한다.

그 와중에 나치당 청년들이 질버만의 집에 들이닥치고 핀들러와 부인이 그들을 맞이하는 사이 질버만은 도망친다.

그리고 끝도 없는 그의 여행이 시작된다.

 

"참 우습네요 우리는 서로 불쌍하다고 하며 상대방이 자기보다 상황이 나쁘다고 믿으려 하니 말입니다. 그게 마치 위로라도 되는 듯이."

 

 

어디에서도 머물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 질버만은 기차를 갈아타면서 나치를 피해 다닌다.

시시각각 조여오는 상황 속에서 친구와 처남의 외면까지 받으며 질버만은 분노했다, 절망하고, 희망을 찾다가 실의에 빠진다.

 

질버만을 따라가는 내 심정도 기차와 함께 덜컹거렸다.

그의 절망과 분노와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와서 마음이 착잡했다.

 

이 책의 저자인 보슈비츠 역시 독일계 유대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질버만이 느끼는 감정들이 굉장히 현실감 있게 전개된다.

몇 시간 눈도 제대로 못 붙이고 식사도 못하고 쫓기는 질버만은 점점 광분한 상태로 나아가고

벨기에로 극적인 탈출을 감행했으나 벨기에 경찰에게 붙잡혀 도로 독일 국경으로 넘겨진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질버만의 절박함을 그려내고

그가 가진 전 재산을 잃어버리는 상황에서는 절망감과 허탈감이 나에게도 전해져왔다.

게다가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가 신고를 하는 장면에서는 조마조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3만 마르크가 든 서류 가방을 잃어버렸어요. 고소하려고 여기 온 겁니다."

 

"내 권리 전체를 빼앗은 사람들에게 도난신고를 하려는 게 아마 유대인 농담인지도 모르지요. 당신이 도둑은 찾지 않고, 도둑맞은 사람에게 뻔뻔한 말을 하는 게 독일 현실입니다."

 

 

도망도 못 가고

자살도 못하고

경찰의 손을 빌리려고 했던 질버만은 착한(?) 경찰 덕에 풀려난다.

이제 꼼짝없이 돈도 못 가진 채로 기차로 돌아가야 하는 질버만.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질버만.

유대인이지만 다른 유대인 때문에 자신이 고통받는다고 생각하게 된 질버만.

 

이 이야기는 독일어권에서 독일 역사의 어두운 면을 당대에 알린 초기 문학적 증거로 가치가 있다.

질버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당시 유대인들의 절박함과 독일 사회의 분위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모든 독일인이 유대인을 박해한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고, 유대인을 경멸하는 질버만조차도 급박한 상황에서는 자신이 경멸하는 유대인 방식을 들이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질버만은 심란한 눈길로 카페를 둘러봤다. 나와 당신들이 다른 게 뭔가. 우리는 정말 무서울 만큼 닮지 않았나.

 

 

이야기의 끝에서도 저 문장이 자꾸 되뇌어진다.

나와 당신들이 다른 게 뭔가.

우리는 정말 무서울 만큼 닮지 않았나.

나치가 남긴 상흔은 세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학은 끊임없이 그것을 되새길 테니..

 

보슈비츠의 바람처럼 이 이야기는 바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80년이나 묻혀있다가 이제야 세상에 나온 <<여행자>>.

은둔하고 있던 여행자는 이제야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내려 땅을 디뎠다.

보슈비츠는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그 시대의 감정은 이제야 여행을 시작했다.

보슈비츠가 남긴 여행자의 여정이 그이 바람대로 날개를 달고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펄럭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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