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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만의 있는 그대로의 세줄 바이올린 | 독서와 음악감상 2007-06-16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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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파가니니 : 24개의 카프리스 - 이자크 펄만

Itzhak Perlman
Warner Classics | 200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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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연주가 중에 헬무트 발햐라는 오르가니스트가 있다. 그는 맹인이어서 점자 악보만 볼 수 있었다. 그는 연주 중에 악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연주하는 곡들은 모두 암기해야 했다. 불굴의 의지로 엄청난 분량의 바하 오르간 전곡을 암기 연주하여 가장 완벽한 구조미를 지닌 음반으로 남겨놓았다 . 불굴의 의지로 불멸을 이룩한 발햐가 정말 좋았다.

그런데, 자신의 장애를 극복한 연주자로서 이작 펄만이 있다. 단순히 장애를 극복했다기 보다는 장애야 말로 그의 힘이요 영혼이고 정수이다.

사실, 얼마전까지 이작 펄만은 내게 특별한 연주자는 아니었다. 펄만이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도 다른 기라성같은 연주자와 마찬가지로 현란한 기량이 돗보이는 연주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소아마비'를 앓았던 장애인 이라는 사실도 나는 몰랐다. 부끄럽게도 수 많은 음악을 들었지만, 펄만을 몰랐듯이 바이올린 역시 알지 못했다. 시게티가 남겨놓은 모짜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나 바흐의 샤콘느는 그저 한순간의 감상이었고 만났지만 지나쳤고 들었지만 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북악산 기슭의 삼청각에서 흘러나온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듀엣 곡을 들으면서 바이올린 소리를 진정으로 만났다.

초여름이지만 서늘한 기운이 스며드는 삼청각 뜨락을 계곡물 소리와 어우러져 흘러나온 신랄하면서 우아한 흐느낌...파가니니의 카프리스와 프레게이아 소나타(모세 변주곡)... 끊어질듯 이어지고, 잔잔히 흐르다 다시 급류처럼 휘몰아치는 파가니니의 넋두리....아아, 바이올린 소리가 가져다 주는 정열과 애잔함과 마침내 고즈넉함이라니~

'이 순간'만큼은 서늘한 삼청각 계곡 물소리도 잊혀졌고 오로지 태고적 고즈넉함만이 맴돌고 있었다.

바이올린 소리의 특별한 아름다움에 빠져든 후, 가장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를 찾아 헤메다 펄만을 만났다. 아마도 파가니니가 살아 있었다면 "그래 이거란 말이다!!"라고 손뼉을 치지 않았을까라고 느껴지는 정곡을 찌르는 연주였다. 사실, 삼청각에서 들었던 그 소리는 펄만이 연주한 소리가 아니었다. 펄만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를 연주했지, 프레게이아 변주곡을 한번도 연주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내게 그날의 형용할 수 없었던 '기분'은 펄만의 카프리스을 통해서만 환기된다.

어째서 펄만의 바이올린 소리만이 시공을 그 순간과 장소로 되돌려 놓는거지?

나는 여전히 펄만의 바이올린 소리를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연주에는 태고적 순수함이 묻어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펄만을 듣고 또 듣다가 문득 알게 되었다. 그의 연주는 채근담에서 말한 바 "문장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면 기발한 것이 아니라 다만 알맞을 뿐이요, 인품이 지극하면 별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본래 모습 그대로일 뿐"인 그런 연주라는 것을.

날카로운가 하면 어느새 부드러워지고 풀리는 듯 하다가 맺히지만 흐느끼지 않는다. 누가 곁에 있건 말건 끊임없이 도는 터키식 회전춤이 연상된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바이올린 소리일 뿐. 바이올린이니까 바이올린이었고 바이올린이고 바이올린일거다.

발햐가 불굴의 의지로 '불멸'을 이룩했다면, 펄만은 똑같은 불굴의 의지로 자연의 '소멸'에 도달했기에...그의 바이올린을 들으면 골방에 앉아 있어도 삼청각으로 되돌아가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 시간은 곁에 머물러 있다.(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여기 다들 알듯한 펄만에 관한 일화인데, 펄만을 진짜 알게 된 후 내겐 그 의미가 새롭다.

1995년 11월, 뉴욕 링컨센터의 에이버리 피셔 홀은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의 협주곡 연주를 감상하려는 음악팬들로 가득찼다.

이윽고 무대에 등장한 펄만에게 늘 그렇듯, 청중의 동정과 응원이 섞인 박수가 쏟아졌다. 펄만이 연주하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두 다리가 불편한 ‘소아마비’ 장애를 입고 살아온 그가 무대에서 연주할 준비를 갖추는 데 얼마나 힘겨운 과정을 거치는지 예상할 수 일을 것이다.

준비된 의자에 앉아 목발 대신 바이올린을 받아든 펄만이 사인을 보내자 이윽고 지휘자의 신호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됐다. 그런데, 현악기 연주자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연주 시작후 얼마 되지 않아 펄만이 연주하던 바이올린의 줄 하나가 끊어져 버린 것. 연주는 중단되었고, 청중은 펄만이 오케스트라 단원 중 한 사람의 악기를 빌려 연주할 것인지, 아니면 줄을 새로 끼우고 다시 시작할 것인지,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펄만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그는 지휘자에게 중단된 부분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부탁했고, 놀랍게도 3개의 줄 만으로 연주를 계속해 나갔다.

청중은 펄만이 원곡을 즉석에서 조옮김하고 재조합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모습들을 지켜보며 경이감에 휩싸였다. 마침내 마지막 마디까지 중단없이 연주해낸 펄만에게 팬들은 ‘브라보’를 연발하며 열광적 환호를 보냈다.

박수가 잦아들기를 기다려 펄만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가 3줄의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이유를 설명했다.

“때로는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아 불편할 때도 있지만, 지금 제게 남은 것만으로도 연주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께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음악가로서 제 사명이자 신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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