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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사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이다 | 기본 카테고리 2020-10-2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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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불안과 경쟁 없는 이곳에서

강수희,패트릭 라이든 공저
열매하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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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경쟁 없는 이곳에서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자연농사는 자연과의 교감입니다.

 

논 한쪽 편에 볍씨를 뿌려서 이른 봄부터 쭉 길렀다는 어린 모들은 한 뼘도 안 될 만큼 작았지만 푸릇푸릇 싱싱했다.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레 삽으로 퍼서 모판에 담은 다음, 그 모판을 옮겨 논 바깥쪽부터 차차 실어나간다고 했다. 땅을 갈지 않는 데다, 이전 해 자랐던 작물의 밑동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논에 모를 심는 방식은 독특했다. 팔뚝보다 좀 짧은 길이에 엄지보다 조금 굵은 나무 막대로 모 심을 곳에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깊이로 구멍을 낸 다음, 살며시 모를 넣고 주변 흙으로 덮어주면 끝, 저마다 속도가 다르다 보니 처음엔 한 줄을 다 심고 못줄을 넘기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따로 또 같이 각자 간격을 맞추어가며 부지런히 논에 모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자연농 방식으로 자급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물론이지요. 어렵지 않습니다. 저희 부부는 논 430평에 밭 500평 정도, 합쳐서 1,000평 규모의 농사를 짓고요, 함께 사는 부모님은 밭 500평을 하십니다. 우리 3대 다섯 식구는 쌀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작물을 자급하고 있습니다. , , 옥수수, 고구마, 감자, 녹두, 고추, 들깨, 땅콩, 마늘 그리고 배추, 무를 포함한 여러 가지 채소를 키우죠. 우리 식구만을 위해서라면 면적이 더 작아도 되지만, 어머니는 친척과 지인 들에게 많은 양을 나눠주십니다.

 

매일 비가 오더라도 풀을 베어서 ''을 주기도 하고, 줄을 따라 벼 사이에 풀을 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그 풀이 거름이 되고 김매기 역할도 해서 일석이조였어요. 워낙 오랫동안 화학비료에 의존해서 벼를 키워온 논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그런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저는 13년 동안 축산사료업체에서 일했습니다. 그동안 양계 기술, 경리, 품질 관리, 고객 상담 같은 여러 업무를 맡았는데요. 특히 달걀을 생산하는 과정을 보면서 더 이상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걸 두고 멀리 외국에서 수입해온 사료를 먹인다든지, 처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닭의 배설물을 태운다든지, 이렇게 제가 생각하기에 옳지 않은 일을 받아 들이고 이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지역과 조화를 이루는 농사를 위해서는 우선 농사 규모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적당한 규모 안에서 한 농부는 이 품종을, 또 다른 농부는 다른 품종을 키우는 식으로 힘을 합쳐서 다양성을 지켜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사기술 이전에 농사를 짓는 철학, 마음가짐이 바르게 잡혀 있어야겠죠.

 

1,000평 정도에 논을 포함한 자연농사 재배 농장을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적응한 것만이 살아남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과 철학을 바탕으로 저는 여기 제 밭에서 씨앗을 받고, 뿌리고, 기르고, 다시 씨앗을 받는 작업을 되풀이합니다. 그렇게 수확한 채소를 맛있게 먹기 위해 요리를 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나갑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되풀이하다 보면, 그 안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새롭게 태어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방법과 철학, 이 두 가지를 모두 제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규모 또한 작게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농은 땅을 갈지 않고, 풀이나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으며,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지 않습니다. 환경에 부하가 걸리지 않는 방식이지요. 다양한 농사 방식이 있지만, 자연 안에 자신이 있다는 걸 깨닫고 우주르르 이해해 나가는 건 어렵습니다. 자연농은 그런 물음을 늘 마음에 두면서 답을 구할 수 있는 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친한 아메리카 원주민 친구가 "이제는 돌아가서 네가 할 일을 해라." 하고 말하더군요. 그때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고, 그렇다면 앞으로 자연농을 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저는 기존의 가치관과 달리 가능하면 자본주의 편승하지 않고 돈이 움직이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멀어지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키우는 채소를 전달하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결국은 돈을 도구로 거래하기 때문에 싸다거나 비싸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의 가치관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런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어요. 농사법을 공부하기보다는 자연을 공부해야 합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연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해요. 그런 태도는 자연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지요. 내 선입견을 버리고 자연을 받아들여야 진정 자연을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자연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모습을 따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세상이 있고, 거기에 내가 들어가야 해요.

 

다시 말하자면, 자연과 충분히 교감하기 위해 최소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 자연이 우리에게 먹을 걸 베풀어 주지요. 우리에겐 길게 느껴질지 몰라도 자연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죠. 흙 상태 같은 조건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이 땅과 얼마나 교감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자연농이 가능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누구를 시켜 대신 경작한다거나, 일단 방치해두었다가 나중에 시작한다거나 하는 방식은 안 됩니다. 직접 자연과 충분히 교감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짓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방법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풀을 많이 벨 수도 있고, 적게 벨 수도 있고, 작물을 해롭게 할 수도 있고, 이롭게 할 수도 있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자연과 어떻게 교감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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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옳았다 | 기본 카테고리 2020-10-2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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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노자가 옳았다

김용옥 저
통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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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옳았다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저자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동과 코로나바이러스사태를 맞이하는 현재 인류의 문명을 위기상황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 난관을 돌파하는 사상으로 노자철학을 유일한 희망으로 제시한다.

 

21세기를 위한 철학으로 노자는 이미 25백 년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50년 전 노자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철학을 시작해온 저자의 사상궤적에서 노자는 가장 결정적이다. 그는 노자를 인류 최고의 철학이라 여긴다.

 

현재의 문명은 19세기부터 본격화된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에 의해서 조장된 경쟁구조와 경쟁심을 기본 동력으로 삼아,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을 지향하는 문명이다. 이 문명 발전의 귀결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전 지구적 기후변동과 코로나19의 팬데믹이다.

 

 

저자는 노자철학의 입장에서 기존 문명의 가치를 역전시키고자 호소한다. 노자에는 경쟁이 아닌 부쟁을, 욕망을 억제하는 무욕을, 소비를 줄이는 검약을, 천지대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유지시키는 환경론적 책임 등의 역문명사적 경고룰 숱하게 하고 있다. 노자철학은 무위의 철학이고 비움인 허를 존중한다. 노자는 무엇을 채우려는 방향에서의 인간의 작위를 "유위有爲"라고 부르고, 허를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서의 인간의 노력이나 지혜를 "무위無爲"라고 부르고, 현대 산업문명은 극대화된 유위의 문명이다. 그러니까 비움을 지향하는 무위의 철학은 기존의 문명에 대한 반문명적이다.

 

 

노자는 영원불변의 도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존재는 변화 속에서 존재한다고 여기며, 인간의 언어나 관념이 실재의 모습을 나타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노자는 변화를 긍정하고 불변의 허구성을 부정한다. 도를 도라고 말하는 것이 진리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노자는 명과 짝을 이루는 지고의 개념을 상이라고 보았다. 상의 개념이나 개념이 아닌 변화변통생성무제약을 뜻하는 창발을 담고 있다.

 

산천초목의 이파리 하나도 끊임없이 생성을 거친다. 새순이 또 하나의 새순을 생하는 과정에서 묵은 순이 새순을 소유하지 않는다. 묵은 순은 새순의 합생의 자료가 된다. 그러니까 생의 과정을 소유가 없어야만 오그라듦이 없이 새로움의 자유를 구가할 수가 있다. 소유없는 생성, 자기고집 없는 행위, 지배 없는 성장! 버트란트 럿셀은 이 세 마디를 서구인들이 결여하는 중국문명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마음비움은 노자는 불교사상가들과는 달리 배를 채우고 뼈를 강하게 만드는 건강의 비결로 생각한 것이다. 무아는 해탈을 지향하지만 무위는 건강을 지향한다.

 

 

노자는 하나의 사상체계가 아니다. 우리 삶에 이미 수천 년 동안 배어있는 지혜요, 생활 태도이며, 사고방식이다. 노자는 한자 문명권의 역사와 더불어 긴 여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소박한 삶의 지혜로부터 출발하여, 인간 세상을 어떻게 다스릴까를 말하고, 우주의 실상에 무엇인가를 말한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사상의 연원이 되기도 했고, 모든 민란의 사상적 기저가 되기도 했고, 불교를 수용하는 틀이 되기도 했다. 또 모든 예술의 영감이기도 하였다. 20세기에는 서양문명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게 해주는 모든 반문명적 사고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이제 21세기 인류문명의 근본적 회전이 절박한 이때 노자철학은 다시 한 번 세계사상사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고 잇다. 이제 인류는 공동의 운명임을 깨닫고, 우리 문명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노자철학은 아직 인류에게 희망으로 남아있지만 어쩌면 마지막 희망일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제부터라도 노자의 통찰을 받아들여, 의 문명을 새롭게 건설하자는 당위를 간절하게 설득하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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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초 효소 이야기 | 기본 카테고리 2020-10-2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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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산야초 효소 이야기

전문희 저
이른아침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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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초 효소 이야기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람 중에 과식을 하는 사람은 없다. 식탐을 부리는 순간 제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건강에는 독이 된다. 장수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식을 하고 효소가 풍부한 발효식품과 생야채, 생과일, 해조류를 많이 섭취한다. 적당한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절대 과로하지 않는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소화시키기 위해 몸이 그만큼 과도한 노동에 시달린다. 이때 몸속의 효소를 낭비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소식으로 체내 효소를 절약하고, 효소가 풍부한 음식으로 체내 효소를 보충하며, 운동으로 체내 효소를 활성화하기 때문에 장수하는 것이다. 효소는 건강을 지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질이다. 생명활동의 촉매 역할을 하고 생명을 유지시키는 효소 없이는 영양분을 만들 수가 없다. 음식물을 분해해서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흡수하게 하고, 몸속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며, 면역력을 높여준다. 뼈와 살, 피와 근육, 머리카락과 손톱을 만드는 데도 효소가 필요하다. '생명의 촉매'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다. 사람이 자라고 나이를 먹는 것은 물론 숨을 쉬고 생존하는 생명활동의 모든 과정에 공기와 물, 비타민처럼 효소가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인간은 효소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다.

 

 

겨울이 오면 산은 모든 것을 무로 돌리고 이듬해 제로에서 다시 시작한다. 아름다움도 열매도 무성한 잎도 다 떨어내고 빈 몸으로 긴 겨울을 난다. 그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인간이 자신을 비워서 무로 만들 수 있으며, 나에게 화려한 과거가 언제 있었느냐 듯 혹독한 추위의 겨울을 알몸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산이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작고 부끄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새 봄이 되면 겨울 동안 비축해둔 힘으로 인생의 새 주기를 시작하는 산을 그저 망연히 바라볼 뿐이다.

 

자연 앞에서는 오직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길밖에 없다. 자연의 질서, 계절의 변화는 우리의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한다. 아무리 급해도 제때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는다. 무심한 듯 거기 그렇게 조용히 있으면서도 자기 차례를 놓치지 않는 자연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긴 겨울을 날 때면 항상 기억하는 말이 있다.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더 단단하다는 것입니다."

 

신영복 선생님 말씀대로 겨울에도 식물들은 꾸준히 자신의 생명활동을 하고 있었다. 삐죽이 얼굴을 내미는 새순을 보면 묻는다. 너는 대체 어디 숨어 있다가 나온 것이냐? 저 거칠고 멋대가리 없는 나뭇가지에서 어떻게 저 가녀린 이파리들이 나오는 걸까. 아무리 많이 봐도 볼 때마다 놀란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거리에 살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병원 숫자도 환자 숫자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그때는 가난해서 고기를 먹을 수 없었고 밥상이 제철에 거둔 생식 위주의 반찬과 발효식품 위주의 우리 음식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한국 전통식단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건강식이고 서양 의사도들도 권장하는 식품이다.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가난하게 먹어야 한다. 소식, 절식, 채소. 거기다 좋은 물을 많이 마시자. 효소는 좋은 물을 적절히 섭취할 때 훨씬 더 활성화된다. 수분이 부족하면 효소가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가능한 한 냉장고에서 꺼낸 찬물보다 실온의 미지근한 물을 마셔서 몸이 냉해지는 것을 예방하자. 차 마시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이상적인 방법이다.

 

산청에 터를 잡고 산 지도 벌써 8년이 되었다. 남원골, 뱀사골, 피아골, 화개골, 구례까지 지리산 구석구석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같은 지리산이라도 골짜기마다 그 느낌과 기운이 다르다. 꽃이 피는 시기와 겨울이 찾아오는 시기가 다른 것처럼 사람들의 성정과 사는 방식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캐나다 환경운동가가 만든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자. 우리도 그런 날을 하루 정해서 아무 것도 사지 않는 거다. 조금이라도 소비를 줄여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이겠지만 남을 따라 하지 않는 나만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 쇼핑을 자제하는 방편으로도 괜찮은 선택이다. 덜 쓰고 살면 그 속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질을 알게 된다. 물질적인 소비로는 알 수 없는 만족감과 다른 사람에 대한 감사를 배운다. 지구를 아끼고 더 가난한 사람들과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눌 수도 있다.

 

나는 많은 것을 자급자족하기 때문에 사실 살 게 별로 없다. 시골생활에서는 필요한 것도 많지 않다.

 

"가질 때의 기쁨도 크지만 갖고 싶은 걸 자발적으로 포기했을 때도 나름의 충족감이 있지 않을까? 더 갖고 싶어서 안달하는 게 인간이라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지 않을까?"

 

어디 라다크만의 일이겠는가. 우리도 농촌에 돈이 들어오면 망하시 시작한다는 말을 한다. 이 자조적인 농담에도 뼈아픈 현실이 담겨 있다.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길게는 농부들을 부자가 아니라 빚쟁이로 만든다. 돈이 계획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돈이 잘못 투입되면 기존 생활방식을 헝클어놓고 건강한 시스템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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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된 신부 정호경 | 기본 카테고리 2020-10-26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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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

한상봉 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리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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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시골 여자 마리아를 통하여 짐승의 밥통에서 나셨고, 가난한 노동자로 사시다가, 가난한 갈릴래아 사람들의 아픔에 동참하신 결과, 백성을 선동하고 왕이 되려고 했다는 죄로 십자가 참형으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을 통해서,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는가를 분명히 확인합니다. 저 낮은 곳에,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 하느님이 계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을 투명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정호경 신부를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본 날의 기록을 먼저 남긴다.

 

 

정호경 신부는 권정생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단박에 소유를 처분해 버렸다. 죽기 전에 미리미리 정리할 건 정리해 두어야지,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 소유로 되어 있던 이곳 비나리 땅뙈기를 곧바로 교구 명의로 돌려놓았다. 이승을 떠날 때가 되면 고스란히 몸만 가면 되게끔 말이다.

 

 

장일순은 묵란과 글씨에 빼어났는데, 정호경 신부는 1982년 어느 날 장일순을 찾아가 '불취외상(不取外相)하고 자심반조(自心返照)하라'는 글귀를 부탁한 적이 있다. 이 글귀는 팔만대장경을 여덟 자로 압축한 글인데, "밖에서, 요컨대 껍데기에서 찾아 헤매지 말고 제 마음속을 비춰 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선성은 이 문장에 '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를 보태서 써 주었다. "천지는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 만물은 나와 한 몸이다"는 뜻이다. 내 손이 내 발을 돕고, 내 눈이 내 귀를 돕고, 내 몸의 한 세포가 다른 세포를 돕듯이, 사람들도 이 세상도 서로의 은혜 가운데 기대어 살고 있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정호경 신부는 사제가 되고 나서 10년 넘게 가톨릭농민회 일을 하면서, 결심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너무 늙기 전에 노동할 건강이 남아 있을 때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죽겠다'는 것이다. 행복한 인생이란 '신명을 바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가는 삶'이라고 믿었던 정호경 신부는 그래서 천주교 '사제'가 되었다.

 

나무뿌리나 버려진 나무의 먼지나 썩은 부분을 털어내고, 할 수 있는 대로 그 생긴 모습을 살려 책상이나 찻상, 등경이나 촛대 따위의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어 좋아하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뿐이다. 정호경 신부는 "아무리 똑소리 나도록 똑똑한 사람이 만든 작품이라도, 자연의 아름다움에는 어림이 없다. 흔히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그림 같다'느니, 예쁜 아이를 보고 '인형 같다'느니 하는 사람은 뭘 모르거나 오만방자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정호경 신부는 나무에 관한 특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는데, "나무의 아름다운 무늬는 나이테나 상처의 열매"라고 말했다.

 

 

이처럼 영락없는 사제였던 정호경 신부는 "사제로서 '입품'만 팔다가 가는 삶이 두려웠고, 하느님이 허락하신다면 흙에서 '즐겁게 땀 흘려 일하다 가는 삶'이 그리웠다."고 말한다. 땀 흘려 농사지어서 나눠 먹고, 우두막집 지어서 살며, 30년 전에 신자들이 선물한 것이지만 아직도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옷가지는 입고도 남을 만큼이라고 말했다. 함창에서 본당생활을 하면서도 농사 지을 궁리와 집 지을 궁리를 여러 번 시도했다. 집을 짓더라도 집 장사들이 지은 집에선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장삿속으로 지은 집은 '돈 귀신' 소굴이 되기 쉽다고 생각했다. 돈 생각이나 하며 지은 집에 사는 사람은 그 집도 가족도 돈으로 생각하기 쉽고, 집안에 돈독이 퍼져 있으니 그 영향을 받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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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습관 캠페인 참여


열정과 기질

하워드 가드너 저/문용린 감역/임재서 역
북스넛 | 2004년 07월

 이 책에서 다루는 현대의 거장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고독한 처지에서 노력했지만, 역사의 긴 안목으로 봐서 참으로 짧은 시간인 10여년 만에 이름을 얻고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자면 분명히 많은 독자들은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점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며 탁월한 업적을 남기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불운한 인물들이 많지 않느나고 물을 것이다. 실상 역사를 보면 살아 생전에 혹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생물학에서의 그레로기 멘델, 회화에서의 빈센트 반 고흐, 시에서의 에밀리 디킨슨, 음악에서의 바흐 등이 그런 예이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순수한 창조성에 관한 얘기라기보다는 성공이나 명예와 관련된 얘기가 아닌가?

 두 번째로 발견한 사상은 창조적인 성년기를 거의 포괄할만 만큼 더 긴 세월을 아우른다. 이 연구를 통해 나는 각각의 창조자들이 모종의 거래나 계약, 다시 말해서 파우스트적인 협정을 맺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들은 이 협정을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오랫동안 발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겼다. 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이러한 계약의 성격은 사례마다 조금씩 다르다. 금욕적인 삶을 다짐하는 경우(프로이트, 엘리엇, 간디)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경우(아인슈타인, 그레이엄)도 있다. 피카소는 이런 거래가 거절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스트라빈스키는 공평무사한 태도를 버리면서까지 주변사람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다. 이 범상치 않은 협정에는 이런 계약을 강박적이리만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재능이 손상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서려 있다. 실제로 계약 이행이 느슨해지면 창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가 있다.

 프로이트는 비록 바쁜 장교이기는 했어도 짬을 내서 다른 일도 그럭저럭 해냈다. 가족들은 프로이트의 관심과 조언을 받는 데 큰 부족함이 없었다. 하루에 여덟 내지 아홉 시간은 환자들을 보았고, 매일 산책을 했으며, 가까운 친구들이나 브나이 브리스의 동료들과 어울렸으며, 책을 읽고 고대 유물을 수집했다. 그리고 거의 매일 밤 11시에서 새벽 1시나 2시까지 글을 썼다. 1910년에서 1930년까지 발표된 그의 저작을 나열만 해도 몇 페이지는 금방 채울 수 있을 정도다. 프로이트는 확실히 지치지 않고 일을 하는 19세기 브르주아 계층의 이상향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매 순간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에 몰두하면서, 자신에게서 나태한 구석이 보이면 스스로를 매섭게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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