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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골든타임 | 기본 카테고리 2020-10-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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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의 골든타임

박종훈 저
인플루엔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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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골든타임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반드시 연준의 생각을 읽어라. 이번 사이클을 놓치면 10년간 기회는 없다. '지금'은 이 순간에도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경제의 향방을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위기의 시그널은 수년간 증폭되어 왔다. 10년 넘게 이어진 장기 경기 호황과 엄청난 유동성 장세 속에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미 수차례 위기를 경고해왔다. 위기의 근본은 버블의 시작과 끝, 바로 부채 사이클이다. 특히 이번 사이클을 연장하는 것은 팬데믹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무제한 돈 풀기에 나선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연준이 키운 팬데믹 버블에 올라타라. 이번 사이클을 놓치면 앞으로 10, 기회는 없다. 2012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포와 기회가 공존할 것이다. 결코 높게 날지도, 낮게 날지도 않는 '다이달로스의 지혜'를 잊지 말아야 할 때다. 2020년 세계경제는 실업률이 악화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된 채 시장 전체의 수요가 감소하는 형국으로 과감하게 투자에 나서기가 어렵다. 다이랄로스는 손재주가 뛰어난 기술자였다. 그는 미노스왕의 명령으로 결코 뺘져나갈 수 없는 미궁을 지었다. 그러나 영웅 테세우스가 미궁을 빠져 나가자 화가 난 왕은 다이달로스와 아들 이카루스를 미궁에 가두었다. 다이달로스는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로스에게 주고는 '날개가 녹지 않게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지도, 날개가 젖지 않게 바다 가까이로도 날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했다.

 

 

많이들 알겠지만, 이 신화의 결말은 하늘을 나는 기쁨에 취한 이카로스가 태양 가까이가지 솟아올라 날개가 녹으며 땅으로 추락하는 비극이다. 백신 개발까지 아직도 많은 시간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속에서, 팬데믹 경제는 오직 미 연준의 양적완화라는 외줄에 지탱해 버블을 연장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큰 현재는 '버블의 정점'이 주는 거대한 자산 상승의 기대만큼이나 작은 충격에도 글로벌 경제 전체가 흔들리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때이다. 이럴 때일수록 절제되고 균형 잡힌 투자 포트폴리오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저자는 "사실상 연준은 미국 경제, 나아가 세계경제를 양적완화로 떠받치고 있다. 홀로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는 아틀라스의 처지와 같다"고 일갈한다.

 

 

2020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세계경제는 패닉에 빠졌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였다. 미국 경제는 물론, 사실상 전 세계의 중앙은행으로 군림해온 연준은 팬데믹 이후 강력한 리더십을 선보이며 '무제한 양적완화'라는 전대미문의 경기부양책을 쏟아 내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불확실성'에 빠져 있음을 여러 차례 경고하며,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재정 지원만이 더 거대한 경제위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임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경제를 구하려는 연준의 이와 같은 '무제한 돈풀기'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주가가 거침없이 오르면서, 전 세계 시장이 '버블 연장선'에 돌입했다는 사실이다. 20203월부터 연준은 고용과 가계 지원 수준을 뛰어 넘어 신용도가 높은 회사채는 물론, 신용도가 떨어져 투기등급으로 전락한 회사채까지 우회적으로 사들이는 미증유의 정책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미국 주요 증시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고, 국내에서도 '동학개미운동'울 넘어 '서학개미열풍'이 벌어지는 등 10년 넘게 이어진 장기 호황이 무색하게 투자 붐이 한창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 실물경제는 전혀 살아나지 않은 채 자산 가격만 상승해 그 괴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준이 또다시 무제한 양적완화에 나서면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는 점이다. 이미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양적완화만 하면 주가가 급등한다는 학습 효과가 생겼기 때문에 미국의 주가는 20203월 연준의 무제한 양적완화 선언과 동시에 급반등했다. 양적완화로 풀린 돈은 좀처럼 중산층에 가지 않고 금융회사를 맴돌며 일부 부유층이 집중적으로 보유한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만 하고 있다. 지금처럼 양적완화의 혜택이 중산층에게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괴리는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연준이 돈의 힘으로 끌어올린 '팬데믹 버블'과 코로나19가 끌어내리고 있는 실물경제 사이에 펼쳐진 커다란 간극에서 위태로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2021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포와 기회가 공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부조화속에서 펼쳐질 거대한 '부의 지각변동'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2021년에는 최악의 위기를 맞을 수도, 또 대역전의 골든타임을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부채 사이클 2단계인 버블 단계의 가장 큰 특징은 강한 자기 강화적 특성이 나타나 자산 가격을 견인한다는 점이다. 버블 단계에 들어서서 자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자산 투자에 나서면서 자산 투자 수익률은 더욱 높아진다. 그런데 자산 가격이 오르게 되면 담보 가치가 올라가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더 많은 돈을 토자하는 '자기 강화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빚을 내어 너도나도 갖종 투자에 나서면 자산 가격은 더욱 오르게 된다. 이는 더욱 부유해진 듯한 느낌을 주어 돈을 더 쓰게 하는 '순자산효과'를 일으킨다.

 

버블의 강도를 종합적으로 볼 때, 2020년 미국 경제의 버블이 다소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주식시장에만 버블 신호가 나타났던 2000년 닷컴 버블이나 부동산 시장에만 버블 신호가 나타났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이번에는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서 동시에 버블 신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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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스 | 기본 카테고리 2020-10-2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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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리지널스

애덤 그랜트 저/홍지수 역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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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스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물론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없다. 우리가 지닌 생각은 모두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상에서 우리가 터득하는 것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끊임없이 주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온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절도망각증'에 사로잡히기 쉽다. 이에 나는 독창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한다. 독창성이란, 특정한 분야 내에서 비교적 독특한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능력, 또는 그런 아이디어를 개선할 수 있는 잠재력을 말한다.

 

독창성은 창의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창의성은 참신하고 유용한 개념을 생각해내는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독창성을 달성할 수 없다. 독창적인 사람들은 주도적으로 자신이 지닌 비전을 실현시킨다. 와비파커 창립자들은 안경을 온라인으로 판매한다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생각을 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안경을 적정한 가격에 쉽게 살 수 있게 만듦으로써 오리지널이 되었다.

 

 

어느 분야든 가장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들조차 별로 흠잡을 데는 없지만 전문가와 일반 관객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작품을 아주 많이 생산한다. 런던 교향악단이 선정한 세계 50대 고전음악의 목록에는 모차르트 곡 여섯 작품, 베토벤 곡 다섯 작품, 바흐 곡 세 작품이 올랐다. 손에 꼽을 정도의 소수의 걸작을 작곡한 모차르트는 35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600여 곡을 작곡했고, 베토벤은 평생 650, 바흐는 1,000곡 이상을 작곡했다. 15,000여 곡의 고전음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5년이라는 일정한 기간 동안 작곡한 작품의 수가 많을수록 음악가가 걸작을 작곡할 확률이 높아졌다.

 

피카소의 작품 목록에는 유화 1,800, 조각 1,200, 도자기 2,800, 드로잉 12,000점이 포함되고, 그 밖에도 판화, 양탄자, 태피스 트리도 있다. 그렇지만 그중에 아주 극소수 작품들만이 찬사를 받았다.

 

독창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작업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말이다."이 정답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의 독창성을 보여준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창출해낸 사람들이고, 그들은 가장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낸 기간에 가장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많은 사람들이 독창성을 발휘하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몇 개의 아이디어만 생각해내고, 그것을 완벽해질 때까지 다듬고 수정하는 데 집착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한 해는 1503년이고, 그 후 몇 년 동안 그리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미완성인 채로 남겨두었으며, 1519년 죽음이 임박해서야 완성했다고 추측한다.

 

당시 사람들은 그림은 완성하지 않고 광학 실험이나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시간을 낭비한다고 다빈치를 비난하였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다른 일에 정신이 팔여 있었기 때문에 독창적인 그림이 탄생했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운데 그가 20대에 지은 시는 단 한 편도 없고, 30대에 지은 시는 겨우 8퍼센트이며, 40대에 가서야 마침내 재능이 활짝 꽃폈다. 그리고 60대에 다시 절정기를 맞았다. "프로스트는 차근차근 서로 다른 지역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기다렸다가, 걸작 소설에 버금가는 훌륭한 최고 걸작 시들을 창작했다."라고 시인 로버트 로웰은 말했다. 프로스트는 탐험가처럼 세상을 탐험하면서 시를 창작하는 데 쓸 재료들을 모았고,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대화에 귀를 귀울였다. "내가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나 단어의 조합, 실제로 말할 때 쓰이지 않는 단어나 단어의 조합은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프로스트는 인정했다. 각각의 시는 다양한 요소들을 한데 섞어놓는 실험이다. 스포스트는 "작가가 놀라지 않으면 독자도 놀라지 않는다"라고 즐겨 말하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를 짓기 시작할 때, 마무리를 어떻게 할지 정해놓고 시를 짓고 싶지 않다나의 작품이 끝이 어떻게 될지 나중에 알게 되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나이가 들고 전문성이 축적되어도 독창성을 유지하려면 실험적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창작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미리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여러 가지 잠정적인 아이디어나 해결책을 실험해보는 일부터 시작하자.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면 결국 참신하고 쓸모 있는 뭔가를 생각해내게 될지 모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실험적 접근 방식으로 덕을 봤다. 그는 마흔여섯 살에 최후의 만찬을 완성했고, 50대 초반에 모나리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다빈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서야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깨달았고 목표가 분명해졌다"라고 한 학자는 말했다. 또 다른 학자는 "다빈치는 어떤 형태도 최종적인 형태로 받아들이지 않고, 본래 의도에서 벗어날 위험을 감수하면서조차 계속 진흙을 만지는 조각가처럼 작업을 했다"라고 밝혔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자에게는 복이 있고, 실험가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그의 최고 걸작인 폭포 위에 지은 집 폭포를 설계하기로 계약한 뒤, 이따금 스케치를 하면서 거의 1년을 끌다가 마침내 예순여덟 살이 되어서야 디자인을 완성했다. 레이먼드 데이브스는 쉰할 살에 착수해서 노쇠한 여든이라는 나이에 끝마친 실험으로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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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속사회

엄기호 저
창비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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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회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회가 유지된다는 것은 가까스로 이루어지는 기적 같은 일이다. 이 기적을 만들기 위해 사회는 도박을 벌이기도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일본의 이세신궁이다. 일본 신도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이세신궁은 20년에 한번씩 완전히 새로 짓는다.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아예 장소까지 옮겨 새로 짓는다고 한다. 왜 이렇게 부수고 짓는가에 대해 많은 이들이 다각도로 이야기해왔지만, 그중 나에게 가장 매혹적으로 다가온 설명은 황천의 개에 실려 있는 후지와라 신야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생각하기에 그들이 전승해야 하는 것은 건물 그 자체가 아니라 건물을 짓는 기술이다. 이세신궁을 짓는 데 참여한 목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가장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동시에 그 기술을 자신의 후학에게 전수해줘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목수라 하더라도 자기 혼자만 그 기술을 간직하고 후학에게 물려주지 못하면 그 기술은 당대에 소멸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이세신궁 또한 당대로 끝나는 건물이 되고 만다. 한 사회와 개인의 명운을 건 이야기 중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긴 어려울 것이다.

 

 

사람의 욕망은 시대 혹은 장소에 따라 바뀐다. 사람의 욕망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을 설명하는 틀도 바뀐다. 한 예로 티베트 사람들은 자신이 왜 지금 고통받는지 혹은 무엇 덕책에 물질적 여유를 누리고 사는지를 '환생'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중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종교로써 설명했다. 칼뱅 이후의 청교도라면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언어가 바로 '예정'이었을 게다. 다만 나에게 구원이 예정되었는지 아닌지를 알 도리는 없다. 그 징표는 오로지 현실에서 근검절약하며 부를 축적함으로써 확인할 수 밖에 없다. 칼뱅이 인간의 삶을 설명하고자 내놓은 '예정론'은 이처럼 당대 현실을 살아가는 태도와 상당히 밀접히 연결되었다.

 

 

몽골 초원에서 게르는 문을 잠그지 않는다. 낯선 사람이 방문하여 문을 여는 것은 그리 큰 실례가 아니다. 몽골인들은 낯선 사람들의 방문을 두려워하면서도 환대한다. 낯선 이는 그들에게도 당연히 두려운 존재다. 특히나 죽고 죽이는 일이 빈번했던 유목의 역사에서 낯선 이는 언제 나와 내 가족을 위협하고 재산을 가로챌지 모르는 존재다. 칭기즈칸이 어린 시절에 겪은 숱한 역경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이 때문에 오히려 환대는 혹시라도 나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을지 모르는 자가 벌일 미래의 적대행위를 방지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수현은 이러한 고민이 들자 자신에게 안식년을 주기로 하고 러시아로 떠났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주기로 하고 아무 계획도 정보도 없이 달랑 50만원이 든 카드 한장을 갖고 떠났다.

 

러시아 여행을 떠나며 돈은 없고 시간만 있었기에 처음 모스끄바에 도착해서도 "최대한 천천히, 되도록 걸어서" 구경을 다녔다. 돈이 없다는 것은 간편하고 교환할 수단이 없음을 말한다. 그러다보디 이전처럼 무엇인가를 소비하는 것을 통해 시간을 채울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걸 다 해도 시간이 남아돌았고" 자신이 "대책 없이 비워둔 그 시간에, 아주 많은 것들이 와서 부딪혔다". "좋은 사람, 이상한 사람, 맛있는 음식, 맛없는 음식, 멋진 풍경, 그러 그런 풍경. 그 모든 것들은 나를 채웠다가 비웠다가 하면서 어떤 만족스러움으로 이끌어갔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렉산드르 코제브는 미국을 여행하며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가 된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동물'이 되는지를 서술했다.

 

이런 과정이 삭제되어 있는 동물이라는 존재는 그 삶에서 마찬가지로 질문 자체가 제거되어 있다. 질문이 없기 때문에 이 인간은 만족한다. 이 인간은 풍요와 안전을 토대로 삶을 영위한다. 동물이 된 인간에세 ''이란 '소비'를 의미한다. 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당함을 통한 '의미'가 아니라 힘이 가져다주는 '재미'.

 

 

노동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다들 노동이 지루하다고 말한다. 모던타임스에 나오는 것처럼 컨베이어벨트 위의 노동자는 외롭다. 그는 말을 해서도 안 되며 말을 할 수도 없다. 하루종일 동일한 단순작업만 반복한다. 그 일에서 창의성이나 자율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2013년 광주 기아자동차 강연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갓 입사해서 양복을 빼입고 신입사원 연수에 들어온 후배들을 보며 선배 노동자들은 연신 벙긋거렸다. "지금은 대기업에 들어왔다고 부모가 사준 양복 입고 한껏 부풀었겠지요. 하지만 컨베이어 한달만 타보세요. 저 살아 있는 눈이 동태눈깔 될 겁니다. 힘들고 지치고 지겹고. 애가 여기서 뭐하나. 지금으 세상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곧 쪼그라듭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나마 내가 다른 데보다는 돈을 더 받으니 그걸로 됐다고 자위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택배노동자가 형식적으로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라는 점이다. 택배 한건에 2500원이면 이때 노동자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550원 꼴인데, 택배포장 위헤 붙이는 운송장 비룡 100원은 온전히 택배노동자 부담이다. 결국 그에게 택배 한건당 떨어지는 돈은 450원이며 이는 하루 150군데를 돌아다녀야 75천원을 벌 수 있다는 뜻이다. 한달에 25일을 일하면 200만원이 소득이다. 하지만 택배노동자는 자기사업을 하는 사람이므로 기름값에서부터 감가상각, 나아가 '고객'이 운송장을 잘못 써서 다시 쓴다고 찢어버려 대체하는 비용까지도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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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기본 카테고리 2020-10-27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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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저/조경숙 역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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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할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그러니 곰한테 뺏기고 너구한테도 뺏기고……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 두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똑같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오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그러고 나면 또 길고 긴 협상이 시작되지.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다. 그들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그러니 사람들은 그놈의 말과 깃발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야……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

 

 

1838~1839년에 걸쳐 13천여 명 정도의 체로키들이 차례로 오클라호마의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당했다. 1,300킬로미터의 행진중에 추위와 음식부족, , 사고 등으로 무려 4,000여 명 정도의 체로키들이 죽었다고 한다.

 

체로키들 모두가 그 행렬에 끌려간 것은 아니었다. 산길에 익숙한 일부 체로키들은 깊숙한 계곡이나 먼 산등성이 쪽으로 달아났다. 이들은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끊임없이 옮겨다니면서 살았다.

 

이들은 덫을 놓아서 짐승을 잡곤 했는데, 군대가 그곳까지 들어오는 바람에 덫을 놓아둔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때도 많았다. 또 이들은 땅에서 부드러운 뿌리들을 캐내거나, 도토리를 빻아 가루로 만들거나, 개간지에서 기른 얼마 안 되는 작물을 거두거나, 나무의 속껍질을 벗겨내어 끼니를 때웠다. 가끔씩 차가운 개울물 속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일도 있었지만, 이때도 변함없이 이들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조용했다. 그래서 설사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도 잠깐 바람처럼 휙 지나가는 느낌 외에는 그들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사실 그들은 자취를 남기는 법이 거의 없었다.

 

 

백인 농부들은 늦여름이 되어서야 밭에서 수확을 하지만 인디언들은 최초의 풀들이 자라기 시작하는 이른봄부터 시작해서 도토리와 밤 따위를 줍는 여름과 가을까지 계속해서 수확을 한다. 할아버지는 숲을 손상시키지 않고 숲과 더불어 산다면 숲이 우리를 먹여살릴 것이라고 하셨다.

 

산에는 온갖 덩굴열매들이 있었다. 나무딸기, 검은 딸기, 할아버지가 고급 와인 담그는 데 쓴다고 하셨던 양딱총나무 열매, 그리고 허클베리와 나는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지만 할머니는 요리재료로 쓰곤 했던 빨간 월귤나무 열매도 있었다.

 

 

씨뿌리기는 때가 다가오면 우리는 바빠진다. 그때를 정하는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흙 속에 손가락을 찔러넣어 보고는 온도를 재었다. 할아버지가 머리를 흔들면, 아직 씨뿌릴 때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씨뿌리기를 할 때는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씨를 뿌릴 수 없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땅 밑에서 자라는 순무나 감자 같은 것들은 달 없는 밤에 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무와 감자는 연필 크기만큼밖에 굵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땅 위에서 자라는 옥수수나 콩, 완두콩 같은 것들은 달빛 아래에서 심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다지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이처럼 작물마다 파종하기에 적당한 때가 달력에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겐 달력이 필요없었다. 별의 위치를 보고 직접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봄날 밤이면 할아버지는 베란다에 앉아서 별을 관찰했다. 할아버지는 산등성이 위에 떠 있는 별자리의 모양과 위치를 살펴보고,

 

"별자리를 보니 덩굴콩을 심는 것이 좋겠구나. 내일 동풍이 불지 않으면 어디 좀 심어볼까?"

 

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별자리가 적당해도 동풍이 부는 날에는 덩굴콩 파종을 하지 않았다. 콩알이 열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물론 너무 습하거나 건조해도 씨을 뿌릴 수 없다. 새가 울지 않고 조용한 날도 파종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처럼 씨을 뿌리려면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 문제가 없으면 우리는 지난밤에 별을 보고 정해둔 대로 파종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바람이 적당하지 않거나, 새들이 조용하거나, 또 너무 습하거나 건조하면 우리는 밭농사를 제쳐두고 물고기를 잡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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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 중심적인' 정신 | 기본 카테고리 2020-10-27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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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기질

하워드 가드너 저/문용린 감역/임재서 역
북스넛 | 2004년 07월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둘 다 자신들이 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었고, 누구라도 그들이 가는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고독한 처지를 일부로 구하진 않았으나, 프로이트와 달리 고독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의 결혼 생활이 두 번 모두 실패로 끝났고 두 아들과의 관계 역시 순탄치 않았던 이유는, 이처럼 다른 사람에 대한 갈망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론적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는 시골에서 고독하게 살았으며, 단조롭고 조용한 삶이야말로 창조적인 정신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아인슈타인은 회고한다. 곧이어 그는 향수 어린 심정으로 이렇게도 말한다. "현대의 여러 조직 중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노력을 하지 않고도 그처럼 고독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 등대나 등대선에서 근무하는 것이 그런 직업이 아닌가 싶다."

 아인슈타인은 남드른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몇 시간, 심지어 몇 일 동안이나 중단 없이 같은 문제를 숙고할 수 있었다. 그가 관심을 두었던 주제 중에는 수십 년 동안 마음속에 담아 둔 것도 있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는 음식을 듣거나 요트를 타곤 했지만, 이런 순간에도 사색은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공책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공책에다 적곤 했다. 그는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후에 동료인 볼프강 파울라에게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에는 빛의 본성에 관해 탐구하고 싶다네"라고 말했는데, 갓 태어난 아이가 처음 내보이는 시각적 행동이 빛에 눈 초점을 맞추는 일이라는 사실이 전혀 우연은 아닐 것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발달의 전환점이란, 그저 덧없을 뿐인 개인적 관심사를 서서히 뒤로 하고 사물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는 사실에 있다." 

아인슈타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숙한 사고를 할 때까지는 발달 단계를 거쳐야 했다. 신동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갖추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처음 발표한 논문들은 당시의 주요 물리학 잡지에 금방 게제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수준이 특별히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원하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을 존경하고 뉴턴의 사진을 자기 침대 위 벽에 걸어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어떤 업적을 이룰지 알 도리가 없던 당대인들은 당연하게도 그를 실패한 사람으로 여겼다. 김나지움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지 못했고, 처음에는 취리히 공대 입학에 실패했으며, 영향력 있는 스승이나 후원자도 없었다. 교수직을 확보하지 못했고 박사 논문을 완성하지도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특허국의 이름 없는 관리로 남게 될 가능성이 가장 컸던 것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을 구상하고 그것을 발표하는 데까지는 5주에서 6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전에도 몇 년 동안 충분히 논의하면서 이론의 주춧돌을 준비하고 있었지요. 다만 근본적인 수준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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