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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대화 철학에서 삶을 배우다 | 기본 카테고리 2020-06-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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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허유선 저
믹스커피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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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씨,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내 인생 괜찮냐교? , 내 인생은 말이지.' 아직 고민도 시작하지 않고 오십 줄에 들어선 나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의 마음은 번뇌로 가득 찬다. 어리석음과 우매함으로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번민이 뇌리를 때린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삶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 무엇이더란 말인가? 아무런 것도 없이 철학적 사유없이 살다가는 것이 진정한 삶인가? 살아가는 것의 진리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간다. 그렇게 번민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간다. 아침에 일어나나자 마자 한 편의 글을 써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삶의 의미을 찾을 수 없다. 알면 실천을 하면 된다. 그저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잡고 가서는 안 된다. 하나의 사실에 집중하면서 끊임없이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철학적 사유 방식을 견주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살면 잘 사는 것일까?" 난 지금의 내 상태를 점수 매겨 평가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간절함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을 모른다는 거다. 그 간절함이 닿아야 할 곳을 알 수가 없었던 것뿐이다. 그러면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누군가 답을 주기는 그 답에서 내 마음이 만족할 수는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내 대답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내 답변의 꼬리를 물어 다시 물음을 던진다. 그건 뭐죠? ,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보기에는 이런 예외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럼 당신이 대답한 것은 그 예외를 뺀 나머지인가요? 그런데 궁금한 것은 예외 없이 확실한 답이 아니던가요? 이처럼 끊임없는 대화가 철학이다. 무지를 인정하고 앎에 대한 갈구를 찾는 것이 철학이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도발적인 면모를 지녔다. 소크라테스는 일부러 나서서 기존의 체제를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기존의 체제를 떠받치는 주요 가치에 따라서 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 젊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각과 잠재성을 돌아보고 알아차리게 하는 충실한 조력자였고, 사회적으로 이미 받아들여지는 가치나 목적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일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삶의 근본적 가치를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적 대화를 위한 파트너였다. 소크라테스가 반체제적인 인물로 유죄 판결을 받아 죽음에 이른 사실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아테네의 수많은 청년들과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청년들의 정신을 타락하게 만들어 사회의 근간을 흔들리게 했다는 이유로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겠는가.

 

소크라테스는 결국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신탁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받아들임은 스스로 다른 사람보다 가장 뛰어나고, 가장 현명하다는 자기 확신에서 기인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분야에서는 똑똑하지만 삶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이 되기보다, 그 스스로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꾸준히 앎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소크라테스는 모르기 때문에 앎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고 배움을 열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실제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아는 지혜를 자신하거나 이를 목표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바로 그 모름의 자리에서 묻고 배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에게는 돈벌이와 무관한 거리의 대화가 인생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소명이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무지함을 알게 되고, 그 무지를 인정한 이후에야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용기이다. 배움에 도달하는 첫발걸음이 된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죽을 때까지 공부하다 가는 것이다. 삶은 어떤 이름으로도 변명으로 일관될 수는 없다. 현실에 대한 간절함과 치열함만이 그 삶에 대한 해답이 된다. 아직은 아니라고 하지 말라. 지금 오늘 이 순간에 간절함만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자신만의 특수함을 보편적인 것으로 오해해 모두가 자신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보는 세상은 얼마나 속 터지고 화가 날 것인가? 반대로 그동안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삶 속에 자신을 끼워 넣으려 노력했지만 그것이 거짓 보편이었다면 어떨까? 또한 내가 '누구라도 이럴 거야.'라는 이유로 슬그머니 생각하기를 놓아버린 문제들이 정말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것이었을까? 일상에서 익숙한 일은 대개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익숙한 것은 오랫동안 접해왔던 것뿐이지. 그것이 꼭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 익숙함이 보편적으로 '옳은 것'으로 간주된다면 거짓 보편은 많은 사람들을 억압하는 굴레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는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는 규칙인데, 절대 바꿀 수 없고 꼭 그래야 하는 법칙이라고 생각되면 다양한 삶의 방식과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해버리게 된다. 보편적으로 생각하려는 철학적 태도는 함부로 보편을 장담하는 것이 아니라, 착각이나 오해로 인해 생긴 인생의 무거운 짐, 딱딱한 마음에서 벗어나는 길로 통한다.

 

"혼란과 좌절" 자신의 기술이 부족함을 절실하게 깨달았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수준의 기술을 얻는 일에 몰두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은 우리를 앎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혼란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앎으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단계다. 혼란스럽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그 상태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혼란하고 부끄러운 와중에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다. 무지를 인정할 때, 과거와 똑같은 것을 고수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나아갈 수 있다. 모르는 것에도 아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정말로 우리가 할 일은 '받아들인다.' '인정한다.' 등 그저 납득하는 것뿐이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 다른 행동은 필요 없다.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다. 이유를 가져다 붙여 변명하고 해명할 생각은 접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으면 그만인 것이다.

 

철학책은 눈으로만 보기보다 손으로 함께 읽으면 좋다. 대화를 할 때 말이 잘 통하지 않으면 신체 표현을 통해 의미 전달을 돕는 것과 마찬가지다. 책을 펴놓고 주요 용어, 근거, 결론을 체크하고, 이들 관계를 화살표 등을 사용해 그림으로 나타내보자. 그렇게 찾아낸 내용에 대해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풍선, 따옴표 등을 통해 적어 넣어도 좋다. 정말 대화를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걸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어디인지도 생각해보자.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데카르타 씨와 대화하고 그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접근하는 한편, 나 자신의 문젯거리도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과 같은 저항이자 시민불복종인 셈이다. 시민불복종은 국가 권력의 명령이 부당하나는 이유로 그 명령을 거부하고, 그러한 행동을 통해 문제를 공론화해 변화를 촉구하는 행동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시종일관 철학함을 실천하는 삶을 완성했다. 그는 참되고 가장 가치 있는 삶, 영혼에 유익한 삶, 그러므로 모두에게 정의로운 삶을 추구하며 어떤 불의와 위협 앞에서도 그렇게 살기를 그만두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 묻고 있다. 죽음이 두려워 진실되게 살지 않는 쪽을 택할 것인가?

 

사람에게는 철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고, 덕분에 지금의 생각은 바뀔 수 있으며,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삶이 바뀐다. 무엇보다 내가 나에 대해 느끼고 평가하고 기대하는 것도 달라진다. 우리의 생각, 행동, 삶은 늘 진행 중이다. 그리하여 끝을 단언할 수 없는 우리의 활동은 자주 어렵게 느껴질 것이고 때로는 좌절할 수도 있다. 철학적 활동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 숫한 함정과 탈선의 유혹 앞에서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와 소크라테스의 물음이 나 자신의 철학적 활동과 철학적 삶에 불을 밝혀줄 것이다. 다음에 세 가지 물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자.

 

1. 나는 영혼에 유익한 삶을 살고 있는가?

2. 나느 독백하듯 살고 있는가, 대화하듯 살고 있는가? 다시 말래 내가 하는 말이 전부이고 내가 하는 말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태도로 자신의 믿음 안에만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3. 나는 어떤 삶을 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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