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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속의 꿈... | 나의 리뷰 2006-12-3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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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홍루몽 세트

조설근,고악 공저/안의운,김광렬 공역/대돈방 그림
청계 | 200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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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몽''이라는 단어는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봄날 눈앞에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은 느낌이 든다. 주석을 보니 "규방속의 꿈"이라. 왠지 여인네들의 한숨소리와 왁자지껄한 수다소리가 내 귓가에 머물고 가는 듯 하다.

중국 소설들을 많이 접해보진 않았지만 최근에 읽은 ''삼국지''만 보더라도 그 안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조차 일일히 나열하지 못할 지경이고 내 기억속에서 사라진 인물들이 또 얼마인지. 이 책 또한 열거된 인물만 500명 가량이 나온다고 하니 얼마나 방대한 소설인지 가늠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주된 인물에게만 신경을 쓴 것도 아니요 허드렛일 하는 일개 평범한 무지랭이 촌 사람에게조차 세심하게 배려하여 붓끝에서 살아 숨쉬고 있으니 일단 그 섬세함과 세심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처럼 귀한 책이 내 손에 오게 되었으니 한판 구성지게 그 옛날 규방속으로 날아들어 가 보련다.

혹자는 규방 속의 이야기라 지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각 장마다 사건들은 넘쳐나고 세 주인공 가보옥, 임대옥, 설보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참으로 흥미롭다. 중간 중간 주석을 통해 인물들의 미래를 살짝 엿보게 하는 글들을 보면 허무하다는 생각과 함께 작가에게 서운함마저 들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내 맘 몰라 주는 이에게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는 모습들을 보면 남녀노소 이 사랑이야기에 절로 눈길이 가게 된다. 아직 어린 세 사람이라 그 이야기의 축은 아직은 다른이에게 편중이 되어 있으나 그 주축은 이들 세 사람이니 그들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시간은 어느덧 흘러 밤이 되고 새벽이 되어버린다.

시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은 좀 많은가? 첫째로 가씨 집안의 화려한 생활에 눈길을 뺏기게 되고 둘째로 가씨 집안 그 친인척(가연,가사,가련,가정,가환,가주,가원춘,가탐춘,가진,가용 등등 너무 많아 여기에 다 열거하지 못하겠다)까지 등장하여 그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게 되니 여자들이 읽는 책이라는 어리석음에 빠져 이 책을 읽기를 주저하는 이가 있다면 그러지 마시라. 작가의 의도(궁금하면 다음장을 보시라)대로 충실하게 아주 지극히 자연스런 몸짓으로 책장을 넘기는 자신을 보게 될테니 말이다. 그만큼 장중한 내용으로 당신의 혼을 빼놓을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일대기를 적은 글을 보노라면 세월 무상함에 맘까지 서늘해지기 마련이라 달도 차면 기울고 아무리 이쁘고 화려한 꽃이라도 10일을 가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화려하고 대단한 권세를 누리는 가씨 집안도 그 흥이 다하여 쇠락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니 인생무상하여 한숨이 후~하고 절로 나오게 된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을진데 나 또한 가씨 집안의 그 화려함에 이해할 수 없는 노기가 치솟아 올라 어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게 되니 사람의 편협한 마음이라니 참 부끄럽기 그지 없다. 책 속의 등장 인물들이지만 내가 누려보지 못한 화려한 삶이 내것이 아닌것에 배가 아파오니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나 보다.

요즘 드라마들을 보면 시청자들의 의견대로 결말이 지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주인공을 죽여 아름다운 사랑을 사람들의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겨둬도 좋겠지만 누구나가 해피앤딩을 원하니 말이다. 나 또한 주인공들을 보면서 힘들고 어려운 사랑이지만 꼭 맺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 난 대충의 줄거리들을 보고 시작했다. 첫 만남이 있기 전 난 어느정도 이 책에 대하여 고정관념을 가지게 될지도 모를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작가에게 결말을 바꾸어달라 하지 못하니 결말을 먼저 봐 버린 나를 탓하고 그저 이들의 운명을 지켜보는 수 밖에 달리 할 일이 없다. 무엇보다 엇갈린 사랑과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인 것을 알기에 더 가슴 애절하게 눈길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많은 책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처럼 다양한 빛깔로 다가오는 책이 있었던가. 어떠한 역사드라마 보다도 장대한 대 서사시를 보는 그런 느낌을 받았으니 한 시대를 충실히 살아가며 이제는 역사가 되어버린 한명 한명의 삶을 읽다 보면 지리한 이 겨울날도 끝나고 따뜻한 봄날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 같다. 그때쯤이면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들이 내 눈앞에 다가와 있겠지 여인네들의 꿈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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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속의 꿈... | 기본 카테고리 2006-12-3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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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홍루몽 세트

조설근,고악 공저/안의운,김광렬 공역/대돈방 그림
청계 | 200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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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몽''이라는 단어는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봄날 눈앞에 피어나는 아지랑이 같은 느낌이 든다. 주석을 보니 "규방속의 꿈"이라. 왠지 여인네들의 한숨소리와 왁자지껄한 수다소리가 내 귓가에 머물고 가는 듯 하다.

중국 소설들을 많이 접해보진 않았지만 최근에 읽은 ''삼국지''만 보더라도 그 안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조차 일일히 나열하지 못할 지경이고 내 기억속에서 사라진 인물들이 또 얼마인지. 이 책 또한 열거된 인물만 500명 가량이 나온다고 하니 얼마나 방대한 소설인지 가늠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주된 인물에게만 신경을 쓴 것도 아니요 허드렛일 하는 일개 평범한 무지랭이 촌 사람에게조차 세심하게 배려하여 붓끝에서 살아 숨쉬고 있으니 일단 그 섬세함과 세심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처럼 귀한 책이 내 손에 오게 되었으니 한판 구성지게 그 옛날 규방속으로 날아들어 가 보련다.

혹자는 규방 속의 이야기라 지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각 장마다 사건들은 넘쳐나고 세 주인공 가보옥, 임대옥, 설보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참으로 흥미롭다. 중간 중간 주석을 통해 인물들의 미래를 살짝 엿보게 하는 글들을 보면 허무하다는 생각과 함께 작가에게 서운함마저 들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내 맘 몰라 주는 이에게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는 모습들을 보면 남녀노소 이 사랑이야기에 절로 눈길이 가게 된다. 아직 어린 세 사람이라 그 이야기의 축은 아직은 다른이에게 편중이 되어 있으나 그 주축은 이들 세 사람이니 그들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시간은 어느덧 흘러 밤이 되고 새벽이 되어버린다.

시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은 좀 많은가? 첫째로 가씨 집안의 화려한 생활에 눈길을 뺏기게 되고 둘째로 가씨 집안 그 친인척(가연,가사,가련,가정,가환,가주,가원춘,가탐춘,가진,가용 등등 너무 많아 여기에 다 열거하지 못하겠다)까지 등장하여 그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게 되니 여자들이 읽는 책이라는 어리석음에 빠져 이 책을 읽기를 주저하는 이가 있다면 그러지 마시라. 작가의 의도(궁금하면 다음장을 보시라)대로 충실하게 아주 지극히 자연스런 몸짓으로 책장을 넘기는 자신을 보게 될테니 말이다. 그만큼 장중한 내용으로 당신의 혼을 빼놓을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일대기를 적은 글을 보노라면 세월 무상함에 맘까지 서늘해지기 마련이라 달도 차면 기울고 아무리 이쁘고 화려한 꽃이라도 10일을 가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화려하고 대단한 권세를 누리는 가씨 집안도 그 흥이 다하여 쇠락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니 인생무상하여 한숨이 후~하고 절로 나오게 된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을진데 나 또한 가씨 집안의 그 화려함에 이해할 수 없는 노기가 치솟아 올라 어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게 되니 사람의 편협한 마음이라니 참 부끄럽기 그지 없다. 책 속의 등장 인물들이지만 내가 누려보지 못한 화려한 삶이 내것이 아닌것에 배가 아파오니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이 없나 보다.

요즘 드라마들을 보면 시청자들의 의견대로 결말이 지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주인공을 죽여 아름다운 사랑을 사람들의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겨둬도 좋겠지만 누구나가 해피앤딩을 원하니 말이다. 나 또한 주인공들을 보면서 힘들고 어려운 사랑이지만 꼭 맺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 난 대충의 줄거리들을 보고 시작했다. 첫 만남이 있기 전 난 어느정도 이 책에 대하여 고정관념을 가지게 될지도 모를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작가에게 결말을 바꾸어달라 하지 못하니 결말을 먼저 봐 버린 나를 탓하고 그저 이들의 운명을 지켜보는 수 밖에 달리 할 일이 없다. 무엇보다 엇갈린 사랑과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인 것을 알기에 더 가슴 애절하게 눈길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많은 책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처럼 다양한 빛깔로 다가오는 책이 있었던가. 어떠한 역사드라마 보다도 장대한 대 서사시를 보는 그런 느낌을 받았으니 한 시대를 충실히 살아가며 이제는 역사가 되어버린 한명 한명의 삶을 읽다 보면 지리한 이 겨울날도 끝나고 따뜻한 봄날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 같다. 그때쯤이면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들이 내 눈앞에 다가와 있겠지 여인네들의 꿈과 함께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꽃장례 지내는 나를 어리석다 웃지만
다음날 내가 죽으면 그 누가 묻어 줄까?
봄이 가고 꽃이 지는 무렵이
나이 젊은 소년 소녀 늙어 죽는 그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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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사도는 누구일까? | 나의 리뷰 2006-12-2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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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3번째 사도의 편지 1

미셸 브누아 저/이혜정 옮김
노블마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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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사도의 편지.
종교에 대해 완전 백지 상태가 되어 버린걸까? 13번째 사도란 무엇을 말하는지 솔직히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교리 공부하여 세례도 받았지만 나 자신 종교가 있다고 내세울 수 있을 정도로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이렇게 무지할 수 있는지 약간 화가 나기도 한다. 나 이외의 많은 분들은 이 책에 대해 이리 저리 추리하기도 할텐데 난 완전 백지 상태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래서일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와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능력도 잃어버리고야 말았으니.

여느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첫 시작은 나의 흥미를 자극시킨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난 후 닐 신부가 은둔하고 있는 아브루치 산지를 찾아가는 ''나''라는 인물은 어찌 보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닐 신부와 대면하고 있던 나 자신이 아니었을지. 그가 이끄는데로 나는 점점 미궁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되었다.

이 글의 모티브는 예수는 부활하신게 아니라 여느 인간들처럼 고통도 느끼고 유한한 생명으로 인해 죽음도 받아들이게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예수에게 사랑받는 제자 13번째 사도의 증언을 통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를 에세네파의 한무리가 그의 몸을 사막 어딘가 안치함으로써 예수가 부활하신게 아니라 그저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증언을 통해 세상에 점차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부활하셨다고 그를 신격화 시킨 것은 그저 삶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라는 말이다.

물론 부활하셨다는 믿음은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감내하는 사람들에겐 분명 희망적인 메세지이나 왜곡된 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13번째 사도의 증언들을 통해 점점 사건은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결코 예수 그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었기때문에. 이 사실을 은폐시키려는 기독교와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안드레이와 닐 신부의 한판 승부 허나 안드레이 신부는 살해당하고 그의 유지를 받들어 닐 신부가 홀로 싸워나가게 된다.

첫 장 분명 닐 신부가 살아있음으로 이야기가 시작이 되나 읽는 내내 그가 어찌 될까 왜그리 조마조마 하던지 전체적인 흐름을 보아 그에게 끼칠 위험을 타인을 통해 먼저 알았기 때문일까? 모든 문제를 덮고 그의 손을 잡고 멀리 멀리 떠나보내고 싶어지니. 하지만 난 그를 통해 결말을 지켜보고 싶은 욕망도 느꼈다. 하나씩 진실에 근접해 가는 그를 보며 그 끝이 어찌 되려는지 두렵기조차 했으니. 허나 결말은 없다. 그저 이 모든 사건들이 닐의 인생을 바꿔놓지는 않고 신에 대한 믿음도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고 말하는 닐을 통해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달할 뿐이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 독실한 기독교인을 잡고 "정말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책일 뿐. 현실과 혼동하지 않기 위해 나는 무던히도 애쓰면서 읽어야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종교에 대해 "종교란 이러 이러한 것이다." 라고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분명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잡아주는 마음 든든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유약한 인간에게 주는 선물.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어쩌면 닐도 이렇게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았을까? 어떤 상황에도 가톨릭교회는 이제까지 교회가 해온 역할을 계속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 모든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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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사도는 누구일까? | 기본 카테고리 2006-12-2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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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3번째 사도의 편지 1

미셸 브누아 저/이혜정 옮김
노블마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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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사도의 편지.
종교에 대해 완전 백지 상태가 되어 버린걸까? 13번째 사도란 무엇을 말하는지 솔직히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교리 공부하여 세례도 받았지만 나 자신 종교가 있다고 내세울 수 있을 정도로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이렇게 무지할 수 있는지 약간 화가 나기도 한다. 나 이외의 많은 분들은 이 책에 대해 이리 저리 추리하기도 할텐데 난 완전 백지 상태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래서일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와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능력도 잃어버리고야 말았으니.

여느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첫 시작은 나의 흥미를 자극시킨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난 후 닐 신부가 은둔하고 있는 아브루치 산지를 찾아가는 ''나''라는 인물은 어찌 보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닐 신부와 대면하고 있던 나 자신이 아니었을지. 그가 이끄는데로 나는 점점 미궁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되었다.

이 글의 모티브는 예수는 부활하신게 아니라 여느 인간들처럼 고통도 느끼고 유한한 생명으로 인해 죽음도 받아들이게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예수에게 사랑받는 제자 13번째 사도의 증언을 통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를 에세네파의 한무리가 그의 몸을 사막 어딘가 안치함으로써 예수가 부활하신게 아니라 그저 우리와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증언을 통해 세상에 점차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부활하셨다고 그를 신격화 시킨 것은 그저 삶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라는 말이다.

물론 부활하셨다는 믿음은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이겨내고 감내하는 사람들에겐 분명 희망적인 메세지이나 왜곡된 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13번째 사도의 증언들을 통해 점점 사건은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결코 예수 그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니었기때문에. 이 사실을 은폐시키려는 기독교와 역사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안드레이와 닐 신부의 한판 승부 허나 안드레이 신부는 살해당하고 그의 유지를 받들어 닐 신부가 홀로 싸워나가게 된다.

첫 장 분명 닐 신부가 살아있음으로 이야기가 시작이 되나 읽는 내내 그가 어찌 될까 왜그리 조마조마 하던지 전체적인 흐름을 보아 그에게 끼칠 위험을 타인을 통해 먼저 알았기 때문일까? 모든 문제를 덮고 그의 손을 잡고 멀리 멀리 떠나보내고 싶어지니. 하지만 난 그를 통해 결말을 지켜보고 싶은 욕망도 느꼈다. 하나씩 진실에 근접해 가는 그를 보며 그 끝이 어찌 되려는지 두렵기조차 했으니. 허나 결말은 없다. 그저 이 모든 사건들이 닐의 인생을 바꿔놓지는 않고 신에 대한 믿음도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고 말하는 닐을 통해 희망적인 메세지를 전달할 뿐이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 독실한 기독교인을 잡고 "정말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책일 뿐. 현실과 혼동하지 않기 위해 나는 무던히도 애쓰면서 읽어야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종교에 대해 "종교란 이러 이러한 것이다." 라고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분명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잡아주는 마음 든든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유약한 인간에게 주는 선물.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어쩌면 닐도 이렇게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았을까? 어떤 상황에도 가톨릭교회는 이제까지 교회가 해온 역할을 계속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 모든 교회는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그것이 자네의 인생과 심연의 진로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네. 자네가 찾고 있었던 것은 항상 진실이었고, 자네는 표면적으로는 그것을 찾았네. 이제 자네에게 남은 것은 기도를 통해 진실안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는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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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되고 진실된 사랑을 하라. | 나의 리뷰 2006-12-2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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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김옥림 저/탁용준 그림
미래북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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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할 삶이 얼마남지 않은 이가 글을 통해 전하여 줄 메세지가 있는 줄 알았다.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사랑 예찬론자가 쓴 듯 온통 "사랑"이라는 단어뿐이다. 꼭 사랑의 정의가 내려져 있는 묵직한 사전의 느낌이다. 내용이 무거운 것은 아니나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벼이 대할 수 없으니 묵직하다고 할 밖에.

나는 참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 듯 하다. 더 받길 원하고 늘 확인하는 사랑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연인과의 사랑, 부모 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그 밖의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참사랑을 한다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텐데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사랑" 실체가 없으니 누군가 봤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잡으려고 해도 잡아지지 않는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있는지 이 책을 보면 평소에 알고 있어 사랑하는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함을 알면서도 늘 사랑을 떠나 보내고 더 주지 못했음에 후회하며 아파하니 바보같은 삶만 살아왔나 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사랑을 시작하고픈 이에게 사랑을 시작하라 용기를 주고 사랑을 하고 있는 이에게 진실된 사랑으로 사랑의 향기를 느끼고 그 향기에 흠뻑 빠져 보라 이야기한다.

어쩌면 현재의 나의 삶을 이야기 하거나 역사를 이야기 할땐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시대이든 사랑이 있었고 이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며 성숙해지고 더 발전할 수 있었던 인간사가 있었으니 말이다. 현존하는 어떠한 유물보다 더 오래된 이 단어를 통해 행복한 삶을 얻고자 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나 또한 그러하니 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냉큼 주워오고 싶어진다. 하지만 어디 주워서 가질 수 있는 물건이던가? 마음을 열고 노력하지 않으면 내 곁에 올 틈도 내어주지 않는 존재가 아닌가.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자신있게 이야기 하면서도 영원한 사랑을 만들기 위한 노력따윈 하지 않은 내게 ''넌 사랑을 모른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라고 말하니 참으로 부끄러워진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온 세월만 있을 뿐이었다. 실체 없는 사랑의 의미들을 살펴보니 내가 똑부러지게 이렇게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이 없다. 상처받을까 두려워 멀리한 사랑이 있을 뿐이고 늘 받기만 한 사랑만 존재했을 뿐이다. 결혼하여 가정을 일구고 살고 있지만 가까이 있고 소중한 사람과도 참사랑을 하고 있지 않으니 나의 삶은 꼭 죽어있는 삶인 것만 같다.

사랑은 노력해야 한다. 저절로 크는 나무가 아니다. 이제 시작하는 나의 사랑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소중히 가꿔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니 진실되고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주는 사랑을 통해 알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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