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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사랑 그러나 평생 그리워한 두 사람. | 기본 카테고리 2008-03-31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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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저/우달임 역
문학동네 | 200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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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몇가지의 길을 두고 단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많다. 고민끝에 그중에 가장 나아보이는 길을 선택하지만 늘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단 한번의 선택으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갈수도 있을테니까. 체실 비치의 외딴 호텔방에서 첫날밤을 맞이한 에드워드와 플로렌스에게 그날 그들이 선택한 길은 평생 후회스러움을 남겼을 것이다. 해변에 햇살이 부서지듯 찬란하고 아련한 느낌의 사랑을 한 두 사람이 이제야 온전히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건만 서로 이해해보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등을 돌리게 된다. 두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이 자리에 왔는지 그 과정을 지켜본 독자들이라면 이들의 행동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전혀 마주칠 일이 없었던 남녀가 어떤 끌림에 의해 한 장소에서 만나게 된다. 분명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극적인 장면이다.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을 만날 생각으로 기차역까지 간 에드워드는 런던으로 가는 기차가 아닌 반대 방향인 옥스퍼드 행 기차를 타게 된다. 핵군축 캠페인 점심 모임을 알리는 표지를 보고 그 곳에 참석하기 위해 가게 된 에드워드가 여기서 처음 플로렌스를 만나게 된다. 전혀 모르던 두 사람이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다 한 장소에 함께 머물러 있었음을 알게 되며 가슴 두근거리는 감정을 가지며 사랑을 키워왔는데 흔히 드라마에서처럼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두 사람이 맞이하는 해피엔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에겐 결혼이 사랑의 종착역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첫날밤에 잘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에드워드와 관계를 가지는 것에 혐오감을 가지는 플로렌스, 지금의 자유로운 문화를 보면 충분히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한걸음씩 다가갈 수 있는 문제이지만 그 때는 참으로 보수적인 시대이기에 등을 돌리며 서로의 길을 간 에드워드와 플로렌스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첫날밤을 치르지 않았다 하여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깨끗하게 정리가 되는 것을 보며 그 보수적인 곳에서 이 상황이 어떻게 용납이 되는 것인지 놀라운 것이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서로 그리워하며 보내는 그들은 단 한번의 만남도 가지지 않은채 시간은 흘러간다. 그 날의 상처가 너무 커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라면 그 사랑의 깊이도 깊을 것인데 이렇게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외면한 두 사람을 보는 것이 힘들기만 하다.

 

두 사람이 함께 걸었던 체실 비치는 여전히 그대로일텐데 등을 돌려 자신을 떠나는 플로렌스를 잡지 못한 에드워드는 지금도 체실 비치를 떠올리며 플로렌스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잠깐의 사랑이었지만 평생을 그리워한 이들의 사랑이 해피엔딩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결말에 나는 저자에게 배신감마저 느끼게 된다. '사랑은 무조건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둘을 떼어놓는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한번의 선택으로 어긋난 둘의 사랑이야기는 그렇게 나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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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딛은 완득이. | 기본 카테고리 2008-03-2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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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완득이

김려령 저
창비 | 200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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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의 소원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이번 주 안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이것이 완득이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기도다. 욕 잘하고 지극히 솔직한 똥주샘, "죽이고 싶다"는 완득이의 마음은 분명 진심이 아닐 것이다. 완득이에게만큼은 이웃집 아저씨처럼 포근하게 다가오는 똥주. 비록 똥주의 큰소리에 앞집 아저씨는 "씨불놈"을 연발하지만 이 글을 읽는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장애인 아버지를 둔 완득이, 늘 마음을 닫고 살았다. 그런 그가 하고 싶은 운동이 생기고 자신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정윤하와 핑크빛 사랑모드에 돌입했다. 아픔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웃음은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시리게 만드는 것일까. 속은 울고 있을텐데 얼굴에는 웃음을 보이는 사람들, 완득이도 많이 가지지 못했지만 그들을 돌봐줘야할 책임을 느끼게 된다. 완득이의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 킥복싱 관장님, 똥주, 어머니, 아버지에게 춤을 배운 삼촌, 정윤하 등 모두들 안으로 숨어들던 완득이를 밖으로 밖으로 나오게 만든다. 세상이 따뜻하지 않다면 언제까지고 나오지 않았을거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는 여전하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괜찮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어머니, 베트남에서 왔단다. 어머니 없이 살았건만 이젠 이 단어가 완득이의 가슴을 이상하게 만든다. 어머니가 신고 있는 꽃분홍색 술이 달린 촌스러운 단화도 왜그리 신경쓰이는지, 정말 멋지게 완득이답게 어머니에게 검정 구두 하나를 선물한다. 정말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거야? 싸움을 하면 늘 이겨야 하고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일엔 철저히 무관심한 완득이가 이렇게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별 실력없을 것 같은 똥주, 늘 완득이의 햇반을 뺏아먹지만 한마디 한마디 타인의 마음을 배려한다. 이런 선생님이 있을까. 야자안하고 도망가는 완득이에게 "나 안보일때 나가라"고 말하는 선생님, 흔하지 않다.

 

장애인을 아버지로 둔 완득이는 세상이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다. 춤을 추는 아버지가 싫었지만 글을 쓰는 완득이가 아닌 킥복싱을 하는 완득이를 인정하는 아버지를 따라 자신도 춤 추는 아버지를 인정한다. 허물 많은 몸을 안고 살아가자는 아버지, 아마 완득이의 마음이 한뼘쯤 성장하지 않았을까. 장애인, 이주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에 대하여 이렇게 유쾌, 통쾌, 상쾌하게 표현한 책이 있었던가. 가볍게 읽어지지만 내 마음속에 담기는 것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그나저나 세월이 흘러 완득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킥복싱 챔피언? 정윤하는 종군기자가 되어 있겠지? 어떤 모습이든 이제는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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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조선인들. | 기본 카테고리 2008-03-2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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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 하느님

조정래 저
문학동네 | 200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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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허망한 죽음에 가슴이 아파온다. 허망하지 않은 죽음이 있겠냐만은 조선인임에도 소련군이 되어 일본과 싸우라는 명령, 물론 권유사항이겠지만 길이 없었다.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일본군으로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에 신길만, 정우섭, 천일호 등 포로로 잡힌 조선 사람들은 "나는 조선 사람이니까 일본군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강대국에겐 조선이라는 나라,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었을테니까. "일본은 조선의 적, 또 그 일본은 소련의 적 그렇기에 소련이 일본을 무찌르면 조선의 독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소련군 장교의 말에 그저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조선인들은 소련군이 된 것이다.

 

소련군이 되어 배불리 먹고 전쟁에 참전한 그들에겐 또 다른 시련이 있었으니 이젠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다. 고향은 점점 멀어지고 조선인들도 하나둘 죽어가는 상황에서 오로지 "배불리 먹고 싶다"는 생각만 하는 그들에게 독일군 장교는 "지금 당장 이루고 싶은 소망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까' 지금 당장 이루어질 소원이 아니기에 "배불리 먹고 싶다"고 말하는 신길만, 배불리 먹기 위해서는 독일군이 되어야 하는 길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인생이 있을 수 있나. 이젠 독일군이라니. "나는 조선사람이다"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그들은 그렇게 독일군이 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이들 인생의 험난한 여정의 끝은 아니었다.

 

그 유명한 노르망디 전투에서 독일군이 무너지고 조선인들은 미군의 포로가 된다. 이제야 자신의 나라가 "조선이다"라고 밝히는 그들, 그러나 "국적을 고칠 수 없다. 그것은 소련의 권한"이라는 그들의 말에 절망에 빠져버린다. 고향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던 조선인들, 그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선택한 일들이 그들의 목을 죄고 놓아주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일본의 지배하에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타국에서조차 이들은 나라 없는 설움을 겪고 있었다. 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2차 세계대전, 일본의 패망, 조선의 독립 등 굵직한 사건들 앞에 이들은 노르망디 실종자가 되어 있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조선인들, 누가 있어 이들을 위로해 줄 것인가. 그들의 삶이 가슴을 친다. '오 하느님' 책 제목이 이렇게 절절하게 다가올 줄이랴. 학교에서 책을 통해 배웠던 우리나라의 한많은 역사에 한 줄의 기록조차 남기지 못했던 이들의 피맺힌 절규가 들리는 것 같다. "고향에 가고 싶다"는 그들의 외침은 그렇게 사라져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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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혀져서는 안될 역사의 한페이지. | 기본 카테고리 2008-03-2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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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간 연습

조정래 저
실천문학사 | 200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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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긴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못지 않은 무게감을 가진 책 "인간연습". 이 책에서도 시대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소련이 붕괴되고 북한이 굶주리고 있다고 언급된 글을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는 최근의 일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남파된 간첩 윤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30년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전향을 거부했던 그가 이 곳 남한에서 경희, 기준이를 통해 밝은 미래를 보게 된다. 불면증, 악몽, 어지럼증을 도저히 견디지 못한 윤혁은 육체적인 고통에 무릎을 꿇고 전향서에 도장을 찍는다. 그러나 윤혁은 마음속으로 여전히 비전향자라고 말한다. 윤혁 그가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통일? 자신이 처음 사회주의 운동을 했을땐 세월이 지남에 따라 사람이 변하고 그에 따라 시대도 변할 것이라고 알지 못했던 그가 30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을땐 세상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되어 있었다.

 

간첩이니 빨갱이니 이런 말을 떠나서 한 인간이 30년간 감옥안에서 자신의 신념을 걸고 전향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아니 대단하다고 할까. 조석으로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니던가. 부모님이 와도 전향하기를 거부하고 불효를 저질렀던 윤혁은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며 그래도 희망을 꿈꿨다. 여전히 그는 이 곳에서 가족을 이루지 않은채 북한에 남아있는 아내를 그리워한다.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아이들을 보며 그저 밝은 미래를 꿈꿀 뿐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나'는 '통일'을 해야한다고 목숨걸고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전쟁 후 분단되었던 우리나라 역사의 아픔을 통해 헤어졌던 가족들이 만나고 이념을 넘어서 한 민족으로 융합되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오길 바라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어린시절 반공의식을 고취시키며 각종 포스터, 반공 표어를 학교에 제출하고 했던 그때 그 시절과 지금은 너무나 많이 달라졌지 않은가. 이제는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을 뿐이지만 분단된 조국에서 가족을 그리워하고 눈물짓는 사람들이 있기에 여전히 그 역사가 닫혀져서는 안된다. 30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윤혁을 통해 혹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전향하지도 않는 사람을 먹여살리는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윤혁은 우리 민족이 안고 가야할 아픔이다. 같은 민족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다른 사상을 가지고 헤어져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역사이고, 삶이니까.

 

죽은 박동건의 가족들, 윤혁을 신고한 친구의 모습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약하디 약한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기도 하다. 연좌제에 묶여 미래를 버려야 했던 사람들은 가족마저 외면하며 암흑속에서 살아갔고 "빨갱이, 간첩"이란 말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지금 만약 내 주위에 윤혁이 살고 있어 나에게 "남파된 간첩"이라고 말한다면 슬금슬금 피하지 않는다 말할 수 있을까. 분명 외면하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뿌리박혀 있던 나의 머릿속에 있는 반공사상은 그렇게 나도 모르게 단단하게 박혀 빠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통일이 되면 그저 함께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며 포용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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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실체와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 기본 카테고리 2008-03-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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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검은 선 1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저/이세욱 역
문학동네 | 200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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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는 친구인 다미코와 사랑하는 사람 소피의 시체를 본 후 코마상태에 빠져 그들과 함께 한 마지막 시간들을 잊게 된다. 끔찍하게 훼손된 소피의 시신을 보며(직접 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으니 사진으로 본) 살인범이 왜 그녀를 그렇게 끔찍하고 잔인하게 죽였는지 그들의 심리,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불행한 사건을 잊기 보다 그것을 대면하고 파헤치는쪽을 택한 마르크는 '까나라'에 수감된 연쇄살인범 르베르디에게 위험한 게임을 제안하게 된다. 여자의 피를 신성시 하는 르베르디에게 가상의 인물인 '엘리자베트'를 만들고 그에게 편지로 접근한 것이다. 르베르디가 이르는대로 그가 행한 살인의 길을 따라가는 마르크, 순간순간 두려움을 느껴 포기하고 싶지만 그 실체에 다가갈수록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강렬한 힘을 느낀다.

 

마르크는 직업이 '기자'이기에 일반 시민들보다 정보를 알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르베르디가 던지는 단서들을 가지고 그가 어떻게 여자들을 죽였는지 머릿속에 똑같이 재현해 볼 수 있을 정도로 근접한다. 여기에서 한가지 생각해 보자면 르베르디는 '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을까' 이다. 그저 심리학을 전공할 뿐인 엘리자베트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자신의 자취를 찾고 있건만 그 정보를 그렇게 단시간내에 파악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다니, 거기다 남자인 마르크가 여자 흉내를 완벽하게 낸다는 것이 이해가 가는가? 아마 르베르디는 자신과 엘리자베트의 영혼이 이어져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의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입문의식'을 잘 치뤄내는 엘리자베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르베르디, 모든 것을 알아냈을때 마르크는 어떻게 행동 할 것인가. 그 실체와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생명의 길'을 따라 칼로 베고 거기에 치유의 힘을 가진 꿀을 바르는 르베르디, 마르크가 그의 행동을 떠올릴때마다 구역질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내 머릿속에 꿈틀대는 르베르디의 힘을 느끼며 속이 편안하지가 않았다.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 마르크, 그는 엘리자베트의 사진을 보낼 때 '하디자'의 사진을 보냈었다. 그녀가 모델로써 인기를 얻게 되어 마르크가 한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하디자는 르베르디의 표적이 되어 버린다. 솔직히 모든 사실을 알아내고 책을 내어 '부'를 거머쥐려는 마르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을 위해 그렇게 위험한 게임을 하다니, 이제는 자신의 안전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저 어디론가 떠나 숨을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애초에 '악'의 얼굴과 마주하려던 그의 동기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출판사 사장에게 위험이 있을 것이란 언질을 주면서 왜 그는 르베르디의 편지를 받는 유치우편 담당 직원 알랭과 하디자를 모델로 키운 뱅상을 생각해 내지 못했던가. 그의 이런 행동을 볼때 마르크는 르베르디의 상대가 될 정도의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보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다!"

뱅상의 피로 써 놓은 르베르디의 글을 보면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르베르디는 분명 감옥안에서 사형을 당할 죄수였다. 그런데 현장검증을 하기 위해 르베르디를 데리고 나서며 엉성하게 승용차에 태워 데려가다니 이것은 "도망가라"고 떠미는 것과 뭐가 다른가. 르베르디와 마르크의 정면대결을 위해 르베르디의 탈출은 필요한 부분이었겠지만 너무 엉성해서 헛웃음마저 나온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작든 크든 '악'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조금의 선한 모습이 악의 모습을 누르며 살아가지만 자신안에 든 '악'의 진정한 모습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연쇄살인범의 심리상태를 직접 알아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누구든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궁금해서 손을 뻗게 될 것이다. 내 안에 들어있는 '악'을 깨우게 될지라도 말이다. 마르크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악'의 실체가 궁금해서 르베르디에게 다가갔지만 자신 안에 있는 '악'을 깨움으로써 스스로 '악'이 되어 버린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대로 상처가 잊혀진대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 '악'과 마주할 것인가. 그 선택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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