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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 | 기본 카테고리 2013-08-1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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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저/김난주 역
재인 | 201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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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사랑만이 사랑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시작부터 가슴 아픈 사랑도 있고, 홀로 마음을 태우는 사랑도 있다. 그러나 상대도 모르게 죄를 떠안고, 아무 말 없이 떠나는 것을 궁극의 사랑이라니, 이것이 사랑이라면 정말 힘든 사랑이 아닌가.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고 죄를 함께 짊어진 사람은 자신이 궁극적 사랑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가 버릴 것들을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야 한다니, 문학속에서나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이다.

 

'들장미 하우스'를 지키기 위해 스기시타와 니시자키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안도와 니시자키, 스기시타의 삶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노구치와 그의 아내 나오코가 살해된 사건 현장에 있게 된 니시자키, 스기시타, 안도, 나루세의 증언만으로 그 날의 진실을 알아내야 하는 독자들은 그 사건이 있은 후 10년 만에야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니시자키는 자신의 아픔을 나오코를 통해 이겨냈다. 그런데 궁극의 사랑이 '죄의 공유'라고 대답한 스기시타는 10년 전과 같이 현재도 달라진 점이 없다. 여전히 자신의 삶을 홀로 버텨내고 있으며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려하지 않고 지켜주기 위해 행한 모든 행동에 '죄의 공유'라는 이름을 붙여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 온 그녀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스기시타가 안도나 나루세와 마음을 나누는 사랑을 했다면 지금과 같이 황폐한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루세와 함께 한 죄의 공유는 스기시타가 아무 일도 아닌 것에 스스로 죄를 공유했다고 생각함으로써 궁극의 사랑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서로에게 고마움을 남긴 사이였을 뿐이다. 물론 그 당시 나루세가 처해 있는 상황이 위태롭긴 했다. 나루세가 용의자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은 스기시타의 덕이 크긴 정확하게 말하자면 진실은 '죄의 공유'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스기시타가 안도를 생각하는 마음은 또 어떤가. 안도를 지켜주고자 했던 마음은 니시자키가 나오코를 지켜주고자 했던 상황과 맞물리며 애초에 계획했던 것들과 달리 엄청난 결과로 번져간다. 안도가 니시자키, 스기시타, 나루세의 계획을 몰랐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꼈기에 노구치와 나오코가 살해된 사건에 뜻하지 않게 대단한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스기시타가 니시자키와 의논한대로 했다면? 니시자키가 나오코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게 된 후 그냥 물러났다면? 이런 저런 가능성들을 떠올려 보지만 그 무엇이든 안도때문에 이 사건의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 마음이 심란하고 머릿속만 복잡해진다.

 

등장인물들 중의 그 누구의 사랑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자 했던 마음도 그리 와 닿는 것이 없었으니, 작가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 완전하게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단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면 니시자키가 선택한 삶에 대해서는 바보 같은 선택이라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지켜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죗값을 치루는 것을 보며 10년 후의 그의 삶이 분명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이 책을 인물들간의 복잡한 심리묘사, 궁극적 사랑, 문학적 승화에 대해 다루지 않고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으로 노구치와 나오코의 사건을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흔한 작품이 되어 버렸겠지만 적어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소설은 되었을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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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 기본 카테고리 2013-08-1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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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저
은행나무 | 201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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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후쿠오카 형무소의 간수 스기야마가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한 줄의 시로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한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처음 시작되는 이야기는 스기야마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악마라 불린 간수 스기야마와 윤동주가 어떻게 연결 되어 있는 것일까. 조선인 죄수들을 잔혹하게 다루어 온 스기야마의 죽음에 대해 내가 알아야 할 것이 있을까. 미스터리처럼 하나씩 진실들이 밝혀질 때마다 스기야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윤동주의 죽음이 어떠했는지 알고 있음에도 그의 삶과 죽음을 지켜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전쟁 중에 형무소 안에서 간수 한 명 죽은 일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파헤치다니 소장이 직접 지시해서 스기야마의 죽음을 파헤치라고 한 것부터가 이해가 되지 않기는 하지만 스기야마를 알지 못하면 윤동주 가까이에 닿을 수 없기에 작가가 유이치를 통해 보여주는 진실을 따라가는 수 밖에 없다.

 

스기야마가 끔찍한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의 삶과 죽음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의 몸짓 하나, 눈빛 하나까지 그것이 어떤 진실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윤동주에게 영혼과 같은 시를 소각하고 조선인 죄수들을 고문하고 폭행하는 그를 보면서 대체 어떤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지, 진실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정도로 스기야마의 삶은 그렇게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동정심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의 고통을 위로 받기 위해 타인에게 고통을 준 스기야마의 삶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자신의 죄책감과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가리기 위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도 영혼이 상처 입은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스기야마의 죽음을 파헤치는 유이치는 스기야마의 주머니에서 나온 한 편의 시를 따라가며 조금씩 진실에 다가선다. 스기야마처럼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겁이 나지만 유이치는 여기에서 결코 멈출 수가 없다. 유이치는 스기야마를 죽인 범인으로 최치수를 지목한다. 최치수 또한 자신이 스기야마를 죽였다고 진술한다. 왜 그랬을까. 왜 최치수는 자신이 스기야마를 죽였다고 한 것일까. 유이치는 드러난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고 생각하여 좀 더 깊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스기야마와 윤동주는 '시'를 통해 마음을 나눈다. '시'를 통해 서로에게 다가가고 스기야마는 윤동주가 그의 세상 안에서는 오롯이 자유롭기를 원한다.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은 고통을 치유 받아야 할 것이고 윤동주의 시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스기야마 자신이 치유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꼭 살아서 형기를 마치고 나가겠다고 말하는 윤동주, 그러나 그를 덮쳐오는 거대한 음모의 세력은 스기야마조차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유이치는 간수가 아닌 죄수로 갇히게 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죄가 있다며 자책한다. 형무소에 관련된 서류들을 모두 소각한 후 기록이 불태워지고 감추어졌다 해도 진실은 여전히 그곳에 있기에 유이치는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 허구이지만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한 사실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것들을 기록해 나간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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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 기본 카테고리 2013-08-1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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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알렉스

피에르 르메트르 저/서준환 역
다산책방 | 201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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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가 자신을 납치한 남자에게 물었다. "왜 하필 나예요?" 알렉스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내 이 질문을 했을 것이다. 왜 하필 나지. 왜 하필 나야. 나도 남들처럼 예쁘게 살고 싶었는데 왜 하필 나지? 그런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지금 그녀가 자신을 납치한 사람에게 묻는다. "왜 하필 나예요?" 이 말이 이렇게 슬픈 말인지 몰랐다. 처음에는 그녀가 납치된 상황에 충격을 받아 그녀가 처한 상황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납치범을 잡지 못한 잘못을 저지른 비다르 예심판사가 미울 정도였다. 그러나 납치범의 아들을 아주 끔찍한 방법으로 죽인 사람이 알렉스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녀에 대한 동정심은 옅어져 갔다.

 

납치범은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죽었다면 어디에 묻혔는지 궁금했을텐데 왜 알렉스에게 이것부터 묻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는 알렉스가 죽기 전에 그것을 묻기 위한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를 굶겨 죽이려고 했으니 말이다. 납치범이 '어린 소녀'라 불리는 새장을 만들어 알렉스를 여기에 넣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납치범의 뒤에 거대한 세력이 있지 않을까 예측했었으나 아니었다. 카미유의 말대로 '어린 소녀'를 만들려는 것이 아닌 알렉스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 우연히 '어린 소녀'가 된 것 뿐이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것은 어린 소녀가 아닌 그냥 나무 궤짝으로 보인다. 납치범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알렉스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법을 꽤 오래 생각했을 것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를 가장 잔인하게 죽여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아줄에 매달린 나무 궤짝을 만들어 놓은 것만 보아도 꽤 오래 고민했을 것으로 보인다.

 

알렉스가 납치된 사건을 맡은 카미유, 레이, 아르망은 알렉스를 찾아내기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납치범이 만든 '어린 소녀'라는 이름의 새장에서 벗어난 것도 알렉스 스스로 한 일이고 그녀가 사람들을 죽이고 다녀도 그녀의 뒤만 따라다녔을 뿐 그녀 가까이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카미유가 드디어 알렉스를 만나게 된 것도 그녀 스스로 한 일일 뿐이었다. 그나마 카미유가 한 일이라면 알렉스가 계획해 놓은대로 따라간 것 뿐이다. 카미유는 아내 이렌이 납치되어 죽은 사건때문에 이 사건에만 오롯이 열정을 쏟아 붓기엔 감정적으로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알렉스가 지나간 길을 착실히 따라간다. 그리고 알렉스가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카미유와 레이, 아르망이 그녀 대신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알렉스는 나무 궤짝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나무 궤짝에서 탈출한 후 그녀가 한 행동은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렸으나 그녀는 꼭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알렉스가 왜 자신의 삶을 파괴한 사람부터 죽이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그녀 방식대로 복수를 하긴 했지만 그녀가 끝내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불행한 일을 겪지 않았다면 그녀가 얼마나 예쁘게 성장했을지,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열정적인 삶을 살았을지 눈앞에 그려져 더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그녀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알렉스가 어떤 일을 겪고 있었는지 알았음에도 그녀의 상황을 외면한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물론 우리들도 그녀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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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계곡. | 기본 카테고리 2013-08-0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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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인의 계곡

마이클 코넬리 저/이창식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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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다시 등장했으니 해리 보슈와 레이철이 '시인'을 잡을 것이라 예측된다. 이미 결말을 예측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시인의 계곡'을 통해 어떤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자, '시인'은 잡힐 것인가, 죽을 것인가. 지금까지 해리 보슈에 의해 정의가 실현된 일이 많은 터라 이번에도 '시인'이 순순히 잡혀 감옥에 갇힐 것이라 예상되지는 않는다. '시인'이 죽어야만이 다음 범죄를 예방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긴 한데 사실 해리 보슈가 범인을 깔끔하게 잡아 넣는 모습을 보고 싶은 바람도 있다. 해리 보슈 시리즈의 익숙함 속에서 결말의 궁금함을 참으면서 마지막 책장까지 넘겼을 때 무엇을 느끼고,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시인'을 잡기 위해 테리 매컬렙과 레이철 그리고 해리 보슈가 함께 수사를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결말은 같았겠으나 더 멋지게 마무리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 때문에 세 사람이 함께 수사할 일이 없는 것이 문제인데 공교롭게도 테리는 건강상의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난 후 지금은 사망한 상태이며 레이철은 '시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불모지로 쫓겨갔으며 해리 보슈는 경찰 배지를 내려놓고 사립탐정으로 생활하고 있기에 '시인의 계곡' 사건으로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미 테리 매컬렙이 죽었으니 세 사람이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해도 테리가 남겨 놓은 흔적을 통해 해리 보슈는 사건 깊숙히 들어갈 수 있었으니 그의 존재를 무시할 순 없겠다. 아직도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하니 이것은 나만의 착각인 것일까.

 

'시인'은 보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존재를 간과했다. 이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실수겠지만 이것으로 자신이 계획했던 모든 것이 무너질 정도로 파장은 엄청났다. '악'이 자신에게서 다른 곳으로 옮겨갈 뿐이라는 메시지를 남김으로써 마무리 했지만 살인을 하고 시체를 묻은 후 FBI를 통해 레이철을 끌어들인 '시인'이 이 사건의 결말은 왜 이렇게 허술하게 계획했는지 모르겠다. 테리 매컬렙의 죽음을 파헤치던 해리 보슈가 알게 된 진실이 반전이라 '시인'의 결말이 급하게 마무리 한 듯, 엉성했던 것이 가려지긴 했지만 테리와 레이철, 해리 보슈, '시인'까지 이렇게 많은 이들을 모두 이끌어 가는 것에 어려운 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뿐이다.

 

해리 보슈는 '테리 매컬립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묻었다. 그것이 테리가 원한 것이었으니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해리 보슈에게 사건을 맡기고자 했던 테리의 진심은 해리 보슈라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테니까. 어떤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는 그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고 따라가는 수 밖에 없다. 다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홀로 '시인'에게 닿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졌던 테리, 해리 보슈 못지 않은 매력을 지녔던 그를 죽임으로써 '시인의 계곡'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것 보다 또 다른 사건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배려를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해리 보슈는 이제 경찰 배지를 다시 달고자 한다. 고객들이 찾아와 해리 보슈에게 어렵고 힘든 사건을 맡길 것이라 예측했던 독자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어지고 해리가 사립탐정으로 이 시리즈를 이끌어 가는 것에 대한 한계는 이미 드러났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정의에 따라 미해결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의미를 뒀던 그는 이제 경찰 배지를 달고 자신의 소명에 따라 정의를 실현하게 된다. 우리는 그를 통해 어떤 사건을,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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