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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넷째주 제154호 | 다락편지 2002-05-2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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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운동장, 어릴 때 입던 체육복, 학교 앞 만화가게……. 오랜만에 다시 보면 모두 줄어들어 있습니다. 20초 안에 뛰느라 헥헥거렸던 이 골대와 저 골대 사이는 이제 단지 몇 걸음 걸으면 되는 거리죠. 그때 그대로 여전한 것은 없을까 돌아봐도 언뜻 찾을 수가 없습니다.

  햇빛에 운동장이 하얗습니다. 봄 햇살이 제법 따가운데도 나무 밑은 마냥 서늘하군요. 이런, 변함없이 큰 것은 제 머리 위에 있었습니다. 교문 곁 소나무는 키도 크고 그늘도 넓어졌습니다. 솔잎도 수북이 쌓여있군요. 솔잎은 사시사철 떨어지고, 어릴 때 이걸 쓸어내느라 고생깨나 했습니다. 그야말로 여전하군요, 이 소나무. 하긴 살아있는 것은 빛이 바래지 않는 법이라지요.

양구 읍사무소 뒤 언덕에는 어린 날의 박수근이 종종 찾아 그림을 그리곤 했다는 했다는 느릅나무 두 그루가 지금도 비틀어진 가지를 붙들고 서 있다. 이곳에 서면 양구 읍내는 물론 서천 건너편에 있었던 그의 집까지 훤히 바라보인다. 70여 년 전이라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테지만, 느릅나무 가지의 다양한 형태들을 즐겁게 옮겨 놓을 수 있는 도화지의 세계는 무료하고도 답답했을 그의 심사를 달래주기에 충분한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평생을 즐겨 그린 ‘나목裸木’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면, 그의 외로움과 사물을 바라보는 눈, 그리고 삶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 또한 이 시기에 싹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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