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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 경주 2 | 북C의 문화생활 2009-09-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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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여행을 간다는 친구들이 때때로 코스를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은 당연하게도 며칠 짜리 일정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질문이 '경주여행'에서 지니는 의미는 남다른 것인데, 바로 '경주남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것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경주남산'은 경주여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코스지만, 2-3일로는 제대로 돌아보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단기여행에는 처리하기가 곤란해서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1주일 정도의 여행을 가는 친구에게는 나름 생각하는 남산의 풀코스를, 4-5일 정도 일정에는 한나절 코스를 추천하지만, 2-3일 정도를 계획한 친구나 그보다 짧은 친구에게는 위락시설 위주의 코스를 추천한다. 대부분은 짧은 일정에도 경주여행의 절반 이상이라는 의미를 지닌 남산을 꼭 넣어보고 싶어 하지만, 남산을 대충 볼거면 차라리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게 낫다는 게 나의 주관이다. 그만큼 남산은 중요하며, 제대로 보기 위해 집중을 요구한다.

 

남산은 말 그래도 경주의 엑기스이자, 신라의 축소판이다. 서라벌에 사로국이 생겨 고대국가의 초기 모습을 보이던 때부터, 통일신라기 불교가 융성하던 순간까지 그 모든 흔적이 남산에서 발견된다. 그래서 신라를 이해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경주를 찾는다면 바로 남산을 향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첫 코스는 남산 아래에 있는 '나정'-박혁거세 탄강지-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신라의 초기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발굴중인 나정, 사진은 2004년)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난 바로 그 곳 '나정'에서는 몇해 전 ‘신궁터’(일종의 제사를 지내던 곳)가 발굴되었다. 고대국가가 성립되는데 있어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시조묘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이다. (부족의 족장이 아닌) 국가의 시조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는 국가의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굴된 유적이 시조인 혁거세를 모신 것인지 천신-산신을 모신 것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나정’이 시조의 탄강지라는 사실은 이곳에 ‘신궁’이 들어서게 되는데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시조에 대한 관념이 있었다는 것이며, ‘서라벌’, ‘신라’라는 국가에 있어서 이곳은 상당히 신성한 곳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 진다.

 

그런데 이러한 신성성은 단지 ‘나정’이라는 시조 탄강지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나정’은 남산자락에 있다. 박혁거세가 비록 알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혁거세 신화는 천손하강신화의 성격도 보여주고 있다.(알에서 태어나는 것은 주로 남방계 신화이며, 천손하강신화는 북방계 신화) 대부분의 천손하강신화에서 천손은 특정한 산으로 내려오게 마련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태백산 신단수로 내려온 환웅이며, 서라벌의 6부 촌장들도 모두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온 이들이다. 여섯 마을의 이름마다 산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런만큼 하늘에서 내려온 박혁거세도 나정으로 내려온 것이긴 하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 남산으로 내려온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신라에는 산신을 받드는 모습도 보이는 만큼 신라인들이‘나정’을 넘어서 ‘남산’을 신성시하는 것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는 초기에 서라벌에 오악五岳을 두어 산신제를 지냈고, 국가의 기틀이 잡히고는 신라 전체에 오악五岳을 두어 산신을 모셨다.)

 

그런데 이러한 남산의 신성성은 신라 후기까지 그대로 유지되지만 그 내용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정을 뒤로 하고,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몰아쉬며 남산을 올라보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불교의 세계이다. 누구나 한 마디씩 이런 대사를 읊게 된다. ‘도대체 왜 이런 산 꼭대기에 절을 짓고, 돌에 새겨 놓은거야?’라는. 남산이 너무 힘들어서 나온 얘기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참 궁금한 일이다. 신라 때는 조선과 달리 불교를 억압한 것도 아닌데 왜 사찰이 산으로 들어오는 걸까? 아주 원론적으로 보자면 남산에 사찰이 들어오고, 남산의 돌에 이것저것 새기는 것은 불경한 일일 수도 있다. 남산은 시조가 탄강한 곳이고, 산신이 있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서는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함은 물론이고, 바위 하나까지도 기원의 대상이 되곤한다. 그런 곳의 바위란 바위에 외래 종교의 조각을 쉽게 할 수 있을까? 산의 정상에 탑을 세워놓을 수 있었을까?

 

(남산 감실 석불좌상)

 

(남산 용장사지 석탑

: 말 그대로 용장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산꼭대기에 암자가 아닌 큰 절이 있었던 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탑들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남산에는 화강암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

 

남산 곳곳에는 이 처럼 불상과 탑들이 말 그대로 난무한다. 당연히도 이것은 불교가 신라사회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법흥왕 때 불교가 공인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과의 많은 갈등이 있었음은 ‘이차돈의 순교’로 상징화되어 널리 알려져있다. 그리고 이 이후 여러 사찰이 건립되었지만 대부분은 평지 사찰이었다. 물론 이차돈의 베어진 목이 하늘로 치솟은 후 떨어진 자리에 백률사를 지었지만, (백률사가 있는 곳은 서라벌의 주요 산인 금강산이다) 그 외 신라에서 숭배하던 신성한 산에는 통일을 전후한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에 사찰이 들어섰다. 즉, 불교가 공인되었지만 토착신앙과의 마찰을 겪으며 신라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던 상황에서 접근성이 용이한 평지를 위주로 사찰이 들어섰고, 이후 불교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면서 토착신앙에서 신성시되던 산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통일신라 오악의 하나인 토함산의 불국사, 월성에서 신성시하던 낭산의 사천왕사 모두 통일을 전후해서 지어졌다. 그리고 가장 신성시되던 남산에도 8세기에 들어와서야 아래쪽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불교의 흔적이 새겨지게 된다. 그리고 이제 남산이 산신과 시조의 권위를 통해 신성성을 유지하던 것과는 달리 불국토로서 신성성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야 신라는 완성된 불교국가로 자리잡게 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이 사실 얼마나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전문적인 지식을 읊어댄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있는 사실들을 가지고 개인적인 추측을 시도해 본 것이다. 경주처럼 역사가 제대로 스며든 곳을 여행하는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남산을 올라가는 그 길이 바로 신라의 토속신앙과 불교 융합의 바로미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산을 함께 올랐던 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신라의 불교는 대중적이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상당히 귀족적이었죠’라는.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때는 ‘남산의 노천바위에 새겨진 불상들이 民들과의 일상적인 만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는데, 남산의 조각들은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개인의 길흉화복을 비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의 통합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기원을 상징하는. (실제로 신라의 불교는 호국불교로 유명하다)

 

하지만 역시 한가지 개운하지 않은 질문이 남는다. 신라의 불교가 귀족적인 것이라면 호국이라는 이데올로기와 불교라는 종교의 만남이 신라사회 평민들을 통합해가는데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가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백제․고구려와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호국불교가 융성하고 이러한 불교의 융성이 신라사회 통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라불교가 귀족적이었다면 불교가 民들을 통합시켰다는 건 과연 사실인지, 아니면 불교라는 것은 지배층의 지배원리일 뿐이고 일반 민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회체제에 통합되었다는 것인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무려 100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나라가 民들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만큼 이 질문은 상당히 강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사실 쉽지는 않지만 경주를 여행하기 전에, 몇 가지 간단히 조사를 해본 후 방문한다면 여행의 맛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남산' 하나를 가지고 신라의 사회통합을 이렇게 훑어보면 남산에 널려있는 불상이 그냥 불상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사회에 불교가 이토록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불교가 그 기반을 마련했다는 첫 번째 상징물이 되는 셈이다. 이는 남산뿐만이 아니라 경주의 모든 유물, 유적도 마찬가지다. 의미를 새기면 보는 것이 달라진다. 그래서 여행은 '추억'이 아니라 '기억'으로 자리잡는다. 경주에 다른 훌륭한 풍경과 경치가 많지만, 신라를 느끼지 않는다면 경주가 지닐 수 있는 차별점이 과연 무엇일까.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경주 남산을 가게 된다면, 가급적 봄을 추천한다. 3월 말-4월 초가 가장 적절하다. 나정을 거쳐 삼릉골로 올라가면 상선암이라는 암자에서 만발한 벚꽃을 즐길 수 있다.

 

--- 컨텐츠팀 김성광(http://blog.yes24.com/comma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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