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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환상 이면에 숨은 진실 | 장르소설 2017-09-2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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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시마다 소지 저/한희선 역
시공사 | 201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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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서 접하는 진실은 우리 사회의 뒤안길에 있는 역사적 아픔과 함께 감동을 전한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최근의 추리소설은 증거나 알리바이를 추적하며 사건의 진상을 풀어가는 본격 추리소설 스타일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같은 명탐정을 그리워하는 독자들로서는 아쉬운 현실이기도 하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추리소설 시장이 컸기 때문인지 독자들의 성원에 부응하여 ‘신(新)본격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을 주도했던 작가 시마다 소지는 또 다른 시도를 구상했다. 그리하여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원제: 奇想、天を動かす)]로 본격물의 뼈대에 사회파적 문제의식을 담는데 성공했다.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서 접하는 진실은 우리 사회의 뒤안길에 있는 역사적 아픔과 함께 감동을 전한다.

 

사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더 많이 읽혀야 한다고 생각된다. 요즘의 위안부 협상이나 사할린 동포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 답답하기만 한 심정인데, 우리 국력이 그다지 높지 않고 일본과의 교류 또한 활발치 않던 시기였음에도 일본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한 폐해와 사회적 문제를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속죄의 필요성을 주장한 작가가 있었던 건 오히려 1989년이었기에 가능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재인물을 모델로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1950년대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이나 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무리한 수사와 자백 강요 등 당시 일본 사회의 일그러지고 병든 이면을 고발하는 동시에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의 가슴 아픈 인생사를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책이 추리소설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다. 상상이 만들어낸 동화 같은 이야기가 사실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현상이라는 명쾌한 풀이가 곁들여지며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즐거움이 함께 한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도쿄 아사쿠사의 상점가에서 부랑자 노인이 소비세 12엔(우리 돈으로 약 160원)을 요구하는 가게 여주인을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치매에 걸린 걸인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이 분명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던 요시키 형사는 단독으로 수사를 계속한다. 그러던 중 요시키 형사는 노인이 유아유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누명을 써 26년간 비참한 교도소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노인을 기억하는 모든 이가, 그가 살인은커녕 화조차 낼 줄 모르는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한다. 교도소 안에서 노인은 소설을 쓰기도 하였는데, 소설의 내용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한겨울밤 열차 안, 밀실 상태인 화장실에서 자살한 피에로의 시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이야기, 방금 목을 매단 사형수 곁에서 만주와 술을 게걸스레 먹는 남자, 하얀 거인에 의해 하늘로 날아오른 열차 등 괴담과 동화, 환상소설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인의 소설. 탐문 중 요시키 형사는 믿을 수 없게도 노인이 쓴 그 기묘한 소설이 실제로 일어난 일임을 알게 되고, 30여 년 전 그리고 훨씬 더 전에 노인의 전 생애를 뒤흔든 것들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출판사 서평 중에서-

 

우연인지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얼마 전 사할린 동포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소설 속 노인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건 심각한 스포일러가 되기에 더 이상 언급할 수는 없지만 다만 한일 정부를 비롯해 우리 동포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해방 이후에도 고향의 땅을 밟지 못하고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심했던 모양이다. 당사자들은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문제는 2세대, 3세대로 이어지는 가족들이다.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사할린에 남아 있던 2세대 후손들은 한국으로 귀환했으나 일본 정부는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의 영주귀국 비용을 지원하면서 대상을 해방 이전 출생자로 제한해 해방 이후 사할린에서 태어난 3세대는 계속 현지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또다시 부모자식간의 생이별이 이루어졌다. 같은 피를 나눈 이웃도 외면하고 냉대하는 한국의 어느 임대아파트에서 징용 피해자가족들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러시아말로 소통하며 그들끼리의 삶을 외롭게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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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스호퍼] 각박한 도시에 만연한 인간 메뚜기떼 | 일반도서 2017-09-28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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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래스호퍼

이사카 고타로 저/오유리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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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인생철학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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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 넘치는 작가 이사카 코타로가 그리는 느와르의 세계는 피와 폭력이 난무함에도 밝은 색채로 이루어져 있다. 고독한 킬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 고리에 자신도 모르게 얽혀 들어가 버린 전직 수학 교사 스즈키의 어수룩함에 실소가 나오지만 그로 인해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뺑소니 사고로 죽은 아내의 복수를 위해 교사직을 그만두고 비합법적인 조직 ‘영애’에 입사한 스즈키는 수상쩍은 약물을 팔며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사고를 자행한 사장 아들이 누군가에게 떠밀려 자동차에 치이는 현장을 목격한다. 직장 상사 히요코의 명령에 의해 사람을 떠밀어 죽게 만드는 킬러라는 일명 ‘밀치기’를 미행하게 된 스즈키는 집까지 뒤를 밟는데 성공하지만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함께 있는 가족의 모습에 고발을 망설이다 조직은 물론 킬러들의 타깃이 되어버린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생명을 빼앗는 살인청부업자들이 등장하는 하드보일드의 세계에서 순정파 스즈키는 어떻게 난관을 헤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작가의 재치는 킬러들의 별명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자살 유도 전문가 구지라(くじら, 고래), 가족 몰살 전문가 세미(せみ, 매미), 독살 전문가 스즈메바치(すずめばち, 말벌). 시바견과 도사견을 닮았다는 고문 전문 폭력배 등 기발한 캐릭터를 부여하는데 특징을 기가 막히게 잘 잡아내고 있는 비유다. 고래처럼 커다란 체구의 구지라의 깊고 어두운 동굴 같은 눈을 바라보면 절로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어 사람들은 자살하고 말지만 구지라의 눈에는 그로 인해 죽은 사람들의 유령이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이제 그만 모든 걸 청산하고 싶은 구지라는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해, 찰랑이는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진 세미는 브로커에게서 독립해 몸값을 올리고자 ‘밀치기’를 찾아 나선다. 사장 아들을 죽인 밀치기를 혈안이 되어 찾는 ‘영애’에 고용된 폭력단들의 덫에 걸린 스즈키를 본의 아니게 구하게 되는 킬러들이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담담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인생철학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메뚜기를 아시오?”
“그 온 몸이 초록색인 놈 말이죠?”
“하지만 초록색이 아닌 놈도 있지. 밀집해 사는 종류는 군집상이라고도 불리지. 그놈들은 시꺼멓고 날개도 길지. 성질도 난폭하고. 같은 풀무치라도 여러 종류가 있지. 이론적으로는 개체수가 많아지면 먹이가 부족해지니까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도록 나는 능력이 강해진다고 보는 모양이오.”
“그게 꼭 메뚜기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보는데.”
“어떤 동물이든 밀집해서 살면 변종이 생기게 마련 아니오. 색이 변하기도 하고 안달하게 되면서 성질이 난폭해지지. 메뚜기 떼의 습격이라고, 들어봤소? 군집상은 대이동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먹을 걸 싹쓸이하지. 동종 개체의 시체도 먹어치우고. 같은 메뚜기라도 초록색하고는 다르거든. 인간도 마찬가지요. 사람도 일정한 공간에서 복닥거리다 보면 이상해지지. 인간도 워낙 밀집해 사는 생물이니까. 출퇴근 시간이나 연휴에 길 막히는 걸 보면 기가 막힐 정도 아니오? 초록색 메뚜기라 할지라도 무리 속에서 치이다 보면 검어지게 마련이지. 메뚜기는 날개가 자라 멀리 달아날 수 있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소. 그저 난폭해질 뿐.”

 

스즈키의 눈앞에 앞을 다투어 나타나는 킬러들. 세상천지에 거무튀튀한 메뚜기뿐이다. ‘그래스호퍼(グラスホッパー, grasshopper, 메뚜기)’ 그래도 사랑이 있으므로 희망은 있다. 아직 초록색을 간직한 스즈키의 눈에 비친 세상을 응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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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 스타] 현청 공무원, 슈퍼마켓의 별이 되다 | 일반도서 2017-09-2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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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슈퍼마켓스타

가쓰라 노조미 저/양억관 역
북폴리오 | 200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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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와 서류를 우선시하는 공무원의 탁상공론에 열 받는 현장실무자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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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현청의 별'의 원작소설이다. '춤추는 대수사선'의 오다 유지와 '오렌지 데이즈'의 시바사키 코우가 주연한 영화를 몇 년 전 재미있게 감상했던 기억이 있어 책으로 읽으면 어떨지 궁금했는데, 원작의 여주인공은 스무살 아들을 둔 여장부 스타일의 파트타임 사원이었다! 기린을 닮은 공무원과 중년의 경력직 사원이라니 오다 유지와 시바사키 고우와는 완전히 이미지가 다른 캐릭터가 아닌가. 하긴 원작 그대로라면 영화로서의 흥미를 끌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료의식이 뿌리깊이 박혀 있던 꽉 막힌 공무원이 민간업체에서 산 경험을 통해 점차 의식개혁을 이룬다는 이야기의 맥은 같다. 절차와 서류를 우선시하는 공무원의 탁상공론에 열 받는 현장실무자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임원들은 줄서기와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고 스펙이나 인맥 중심의 인사로 인해 정작 일 잘하는 사원들은 그저 자신의 업무를 열심히 할 뿐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Y현 현청 산업진흥과에 근무하는 공무원인 노무라 사토시가 민간기업과의 인사교류 대상자로 선발되어 변두리 슈퍼마켓으로 연수를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 속에서도 지점장과 부지점장은 책임 회피에 귀찮은 일은 부하 직원에게 떠맡기는 무능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무능하기로는 엘리트 의식으로 무장된 주인공도 매일반이다. 오랜 경험을 무시한 결과를 받아들이기까지 노무라 사토시의 고난은 계속되지만 실무진의 조언을 발판으로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자 날개를 단 듯 뛰어난 행보를 보이며 새로운 인물로 탈바꿈한다.

 

실질적인 부지점장 격인 니노미야 야스코를 필두로 매장 직원들과 팀웍을 이루어 승승장구하는 ‘현청 씨’의 열정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코끝이 찡한 순간이 여러 번 찾아온다. 소방서와 보건소의 불시 검문 통과라는 숙제와 도시락 판매 경쟁에서의 마지막 승리를 염원하며 최선을 다하는 노무라. 여자에게 데이트 사기를 당하는 어수룩함까지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어떤 난관이 닥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성실한 성품 덕분이다. 1년의 연수 기간은 노무라를 현청의 별에서 슈퍼마켓의 별로 업그레이드시켜 놓는데 성공한다. 우리 사회에도 그와 같은 직원이 많이 있다면 변화를 가져올 텐데... 적폐로 얼룩진 요즘의 뉴스를 보며 생각해본다.


영화 [현청의 별 縣廳の星, 2005]

감독: 니시타니 히로시
출연: 오다 유지, 시바사키 코우

줄거리: 현청에 근무하는 엘리트 공무원과 슈퍼마켓의 아르바이트 여직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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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지지 않는 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다 | 일반도서 2017-09-2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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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끊어지지 않는 실

사카키 쓰카사 저/인단비 역
노블마인 | 200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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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세탁소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니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우리 집 단골 세탁소를 다시 한 번 눈여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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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를 무대로 손님들이 맡긴 세탁물에 얽힌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내용을 담은 [끊어지지 않는 실]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준 소설이다. 저자 사카키 쓰카사는 얼굴도 성별도 공개하지 않는 복면작가라고 하는데 엄마를 닮아 작품의 저자 얼굴을 확인하는 걸 재미있어 하는 나로서는 참 궁금하기 짝이 없다. 다루는 소재나 약간의 표현으로 인해 여자일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만. 하긴 남자건 여자건 어떻게 생겼건 뭐 어떠랴, 재미있기만 한걸.

 

“세탁소는 참 대단하다. 왜, 몇백벌이나 되는 옷을 맡아서 빠는 동안 세탁소는 무서우리만치 개인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거잖아? 이 집은 식구가 몇 명인지, 뚱뚱한지 말랐는지, 애가 있는지 없는지, 주머니에서 미처 꺼내지 못한 영수증을 보면 어제 어디서 마셨는지까지 알 수 있어.”


동네 세탁소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니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우리 집 단골 세탁소를 다시 한 번 눈여겨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은 아주 오래전부터 ‘누구누구네’라고 하면서 접수증 없이도 곧잘 맡기곤 해왔다. 그저 말은 별로 없지만 친절한 아저씨 아줌마라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사는 집이며 우리 식구를 모두 환히 알고 계시는 셈인 것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아라이 가즈야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가업인 ‘아라이 세탁소’에 합류한다. 처음에는 잠깐 아르바이트 삼아 가계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아버지가 담당하던 집하와 배달 일을 하면서 차츰 세탁소 일에 긍지를 갖게 된다. 집에서는 과묵하던 아버지가 길에서 손님을 만나면 왜 그렇게 명랑하게 행동하셨는지, 꼼꼼하게 메모를 적어놓은 견본집을 보면서 그동안 몰랐던, 그리고 싫었던 아버지의 행동과 마음을 헤아리게 된 가즈야는 사계절을 보내며 한층 성장해간다.

 

아라이 세탁소의 중심에는 시게 씨라고 불리는 다림질의 신이 있다. 어린 시절 가즈야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들어주고 가족처럼 지내고 있지만 과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어머니 외에도 카운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송죽매 트리오’ 아주머니들. 연상의 직장 동료들로 둘러싸인 신참 가즈야가 숨 돌릴 틈을 갖는 곳은 대학친구 사와다 나오유키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 ‘로키’다. 사와다는 학교 때부터 남의 고민을 해결해주기로 유명한 친구로 가즈야가 털어놓는 세탁물에 얽힌 사연을 듣고 수수께끼를 풀이한다. 문제를 떠안은 자가 다가오는 가즈야, 그리고 문제를 떠안은 자에게 스스로 다가가는 사와다. 손님에게 벌어진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도움을 주는 두 사람의 브로맨스가 무척 훈훈하다.

 

“언젠가는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몰라. 네가 그 어딘가라면 참 좋을 텐데.”
사와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뿌리가 생긴 덕분에 나도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어.”
방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트렁크, 지나치게 적은 짐. 사와다의 방을 떠올리고 나는 겨우 이해했다. 사와다는 끊어지지 않는 실과 이진 연이 되고 싶었던 거구나.

 

여러 가지 세탁에 관한 상식을 알게 되는 건 덤, 시게 아저씨가 즐겨 이야기하는 고전영화 또한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봄에는 <크레이머 크레이머>, 여름엔 <바그다드 카페>, 찬바람 부는 가을겨울엔 오드리 헵번의 <사브리나>나 <로마의 휴일> 같은 로맨틱한 영화가 꽤 어울릴 것 같다. 기분전환이 필요할 땐 순수한 가즈야의 취향처럼 서부극 <셰인>을 보며 ‘셰인, 컴백!(Shane, Come back!)’을 외치거나 이소룡의 <용쟁호투>를 보며 ‘생각하지 말고 느껴라(Don't think, feel.)’를 실천하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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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의 밤] 매그레 시리즈 6권 | 장르소설 2017-09-2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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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교차로의 밤

조르주 심농 저/이상해 역
열린책들 | 2011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사건 이면에 숨은 진실을 찾고자 인간 심리를 파헤치고 타인의 입장에서 본질을 생각해보는 한 남자의 포스가 시종일관 분위기를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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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심농이 쓴 인기 시리즈의 주인공인 매그레 반장은 인간적인 면모가 물씬 풍기는 인물이다. 프랑스의 추리문학은 영미문학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띄고 있다. 좀 더 예술적인 감각을 도입하려 한다고나 할까? 파리의 밤은 안개에 싸여있고 불빛 아래 그림자를 드리운 보도는 촉촉이 젖어 애수, 두려움, 고독함, 그리움, 신비함 등등의 감각이 곳곳에 감춰져 있는 것만 같다. ‘매그레 시리즈’의 6권 [교차로의 밤]은 빛과 어둠의 현란한 묘사가 특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파리 근교의 국도변 ‘세 과부 교차로’를 무대로 서로 마주한 단 세 채밖에 없는 집들을 둘러싼 미묘한 공기 속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매그레 반장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국도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 행렬의 불빛과 어둠에 싸인 세 과부 집이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과 복합적인 심리를 절묘하게 다루고 있다.

 

교차로의 세 인가 중 한 집에 사는 미쇼네는 차고에 새로 뽑은 자신의 차가 사라지고, 대신 이웃집의 고물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웃집 차고에 세워져 있던 미쇼네의 차 운전석에는 한 남자가 죽어있고, 파리 오르세 역에서 기차를 타려 하던 집주인 안데르센이 용의자로 붙잡히는데 그에게서는 동기도 증거도 찾을 수가 없다. 수사를 위해 팀원들과 함께 사건 발생지로 향한 매그레 반장은 교차로에 위치한 세 채의 집에 사는 개성 강한 사람들을 상대하며 미심쩍은 분위기를 감지하는 한편으로 안데르센이 누이라고 소개한 미모의 여성이 발산하는 묘한 분위기에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수상한 행적을 벌이는 안데르센이 정말 범인인걸까? 죽은 남자는 보석상으로 밝혀지며 마을에서는 또 다른 총격 사건이 발생하는데, 각자가 감추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지 매그레 반장의 추리는 파이프 담배 연기와 함께 결말을 향한다.

 

매그레 시리즈는 뛰어난 추리력이나 남다른 눈썰미를 지닌 탐정의 활약상도 아니고 짜릿한 긴장감이나 박력 넘치는 액션이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건 이면에 숨은 진실을 찾고자 인간 심리를 파헤치고 타인의 입장에서 본질을 생각해보는 한 남자의 포스가 시종일관 분위기를 압도한다. 그것이 바로 매그레 반장의 매력인 것이다. 인간적인 고뇌와 관계가 뒤얽힘에 따라 결말 또한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또한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퉁명스럽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덩치 큰 남자 매그레 반장의 모습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조르주 심농의 작품이 갖는 특징은 과장된 수사가 없는 간결한 문체와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전개로 빨리 읽힌다는 점인데 그가 한 인터뷰 기사를 보니 저자가 추구하는 방향임을 알 수가 있다. 추상적이고 수사적인 비유로 그럴 듯하게 포장한 문장이나 지식을 자랑하는 듯한 표현들, 가르침을 마구 주려고 하는 설교 스타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가 즐겁게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비극의 등장인물이다. 내 소설은 하룻저녁에 읽도록 쓰였다. 비극이 하룻저녁에 관람되도록 쓰였으니까. ― 모리스 피롱, 로베르 사크레와의 대담, 1982년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가능한 한 간결한 문체를 추구해 왔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나는 언젠가 프랑스 인구의 절반 이상이 6백 단어 이상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통계를 읽었다. 그러니 내가 추상적인 단어들을 써서 무엇하겠는가? - 장 루이즈 에진과의 인터뷰,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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