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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 의 전체보기
11월 독서 리스트 | 이상한 나라의 소설가들 2017-11-3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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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읽은 , 리뷰 등록에 상관없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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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여관

<이병률> 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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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아였을 때

<가즈오 이시구로> 저/<김남주>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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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이광재> 저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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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체온증

<아르드날뒤르 인드리다손> 저/<김이선> 역
엘릭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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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장

<미야베 미유키> 저/<김소연> 역
북스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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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오생근>,<조연정> 공편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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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저/<김선영> 역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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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미카미 엔> 저/<최고은> 역
디앤씨미디어(D&C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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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헌드레드

<임영철> 저
S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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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권정현> 저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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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에 대하여

<프랜시스 오고먼> 저/<박중서> 역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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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읽는 시간

<변지영> 저
더퀘스트(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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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Art&Text (격월) : 11/12 [2017]

편집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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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신혼일기

<김지원> 저
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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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조남주>,< 최은영>,< 김이설> 저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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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위

온다 리쿠 저/양윤옥 역
노블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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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테스

파스칼 키냐르 저/송의경 역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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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피아이의 축제의 밤 , 구병모 (발췌글) | 기본 카테고리 2017-11-2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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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현남 오빠에게

조남주,최은영,김이설,최정화,손보미,구병모,김성중 공저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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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 구병모 ,

지나가는 다른 인적 하나 없이 굳게 닫힌 사방의 문이야말로 이 모든 사태의 증거인 동시에 현상이었다. 
1번의 눈이 흰자위로 뒤집히고 몸이 옆으로 기울어질 때까지도 사람들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쿵 소리와 함께 1번의 다리가 조금 위로 들렸다가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외마디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이게 웬 사달이며 진행요원들은 다 어디서 뭘 하기에 이런 장면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는지, 몰래카메라로 여기기엔 아무래도 실제상황인데 자신들은 각자 어떤 반응을 보여야 맞는지 참가자들이 두리번거리며 의문을 가질 틈이 없었다. 최초의 화살이 일종의 신호 역할을 한 듯, 곧 홍해처럼 갈라지는 관중 사이에서 한 무더기의 화살이 무대 위로 빗발쳤다
도망자들은 어디서 이 많은 화살이 날아오고 조달되는지, 주체가 누구이며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돌아보거나 파악할 계제가 아니었고 목적 또한 추측할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표는 한때 운동을 하던 가락이 몸 어딘가에 미세한 흔적으로 남아 있어 누구보다도 신속히 그 자리에서 벗어났는데, 그러는 동안 공격 집단으로 추정되는 무리 삼사십 명을 볼 수 있었다. 저마다 시위에 화살을 메기거나 등에 멘 원통에서 새 화살을 뽑아내는 모습이 고시대 동굴 벽화 속 사냥꾼의 자태 그대로였다. 

존재하는 이미지에 불과하기를 바라는 한 가닥 소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
아마도 그는 줄곧 그런 세계에서 살아왔을 터였다. 자신이 서푼짜리 힘을 쥐었거나, 최소한 힘을 쥔 누군가에게 등을 비빌 수라도 있는 세계에서. 자신의 상식이 작용하지 않는 세계의 틈으로 내던져진 적 없는 사람이 보이게 마련인, 낙관적이고 나이브한 반응이었다 .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자신만은 살아서 이 섬을 나갈 자격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므로, 그 골목을 벗어나기도 전에 저만치서 아지랑이의 흔들림과 비슷한 무리 속에서 눈에 띄는 붉은 원피스를 입은 표를 사냥꾼 하나가 발견하고 이쪽을 향해 시위를 겨눴다. 표가 고개를 홱 옆으로 젖힌 순간 뺨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촉의 한기와 쇳내가 느껴졌다. 표는 그대로 돌아서서 전력질주하다 급정거를 못하고, 바로 앞을 달리던 한 무더기의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멀어지는 사람들의…… 아니 환영들의 뒤꿈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액체도 기체도 아닌, 그럼에도 가시광선의 영향을 받아 눈에 보이는 저 모습들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설마 사냥꾼처럼 보이던 저들도…… 그러나 돌아보거나 생각을 가다듬을 틈 없이, 바닥을 짚은 표의 손 바로 옆 보도블록에 퍽 소리와 함께 화살이 꽂혔다.
이쯤되면 무엇이 사람이고 어느 쪽이 귀신인지 구별할 계제가 아닌데, 다음 화살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데다 사냥꾼 무리와 그들이 쏘아대는 화살만큼은 실체이자 직접적인 위협이었다. 설령 그게 아니라 이 모두가 누군가의 농간이자 악질적인 대규모의 장난에 불과하더라도, 허상을 분류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화살에 직접 맞아볼 까닭은 조금도 없었다. 표는 더 이상의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켰고, 다행히 힐이 촘촘한 블록 사이에 빠지거나 부러지는 일 없이, 모든 논리를 무시하고 사고를 뒤로 미룬 채 그대로 달렸다.
표는 누군가가 불편하게 여기거나 심지어 증오하는 인간과도 큰 거리낌 없이 친숙히 지내고 편의를 봐주는 자신을, 털어 먼지 안 나는 인간 같은 건 세상에 없다는 사실로 합리화하는 일에 익숙했다. 한때의 철없음과 사람의 불완전함 및 정서의 일시적 불안정은 어디에나 들이댈 수 있는 전가의 보도였으며, 사안이 더 심각할 경우 내밀 수 있는 정신질환이라는 카드 역시 누군가의 과오를 동정 내지는 수긍하는 데 있어 그럴듯한 명분이었다
한의 피해자를 생각하면 물론 나는 그를 무시하는 게 맞아. 예를 들어 피해자가 너나 네 언니였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나는 피해자를 전혀 모르고 나한테는 그녀가 제3자만도 못한데, 그럼에도 뭔가를 감수하고 그쪽의 상처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뜻이니?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의 실체는 그야말로 두 사람밖에 모르는데 내가 무얼 근거로 해서?
세상 모든 관계는 일종의 업무야. 언뜻 논리적 실리적으로 들리지만 본질적으로는 궤변에 불과한 표의 태도에 넌더리를 낸 것이 그녀가 떠나간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어쨌든 표는 사회에서 살아가기로 작정한 이상 사람과의 관계란 현실적으로 일도양단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축이었고, 비록 부서는 다르지만 언제 어디서 마주치며 협업해야 할지 모를 한과의 관계를 헝클어놓음으로써 불편한 회사 생활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건넨 충고를 가장한 폭언은 이랬다. 너만 모르지, 아니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지도. 그렇게 둘러대고 신경쓴다는 점에서 넌 이미 호구야. 네가 상대해주니까 널 계속 찾는 건데 그걸 받아주면 너도 한과 다를 거 하나 없어, 오십보백보야. 그런 무해한 척하는 순진함은 사실 나태함의 다른 이름이고 결국 넌 기꺼이 2차 가해자로 복무한 거야…… 말이 심하다니 천만에, 그걸 복무가 아닌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니…… 피곤하다고? 저쪽은 인생이 조각났는데 고작 피곤함 따위를 내세우게 생겼냐고…….
 
먼저 한은 남성이 여성의 옷을 입는 행위 자체를 재미로 넘기거나 불가피한 업무로 간주하는 수준이 아닌, 거의 혐오와 공포에 가까운 불균형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과, 어쩌면 그의 부서장은 개인 사유로 회사에 작지 않은 말썽을 일으킨 한에 대한 분노 표출 내지는 제재 차원으로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시켰으리라는 거였다. 그렇다면 더욱 타 부서 사람인 자신이 끼어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대행료는? 표가 짧게 묻자 한은 손가락을 셋 펴 보였다. 사람 알기를 제 턱짓으로 부리는 종으로 아는 한다운 제안이었다. 이 새끼 봐라, 사람을 여장씩이나 시키고 삼십으로 때우려 들어. 심지어 업무 관련 사항이면 네 실적이 되는데?…… 아니 삼백이야.
딸 같아서…… 평소 가족 대하듯이…… 오해가 있는 듯…… 모함에 불과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했다면 성의껏 사과를 전하며…… 그 말들은 한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썼던 수많은 우아한 말들과 맥락도 내용도 조금씩 다르나 본질적으론 유사한 의도를 품고 있었다. 우리는 연인이었고…… 합의하에 이루어진 관계로…… 통상적인 경로를 거쳐 이별했을 뿐 결코 누구도 기만한 바 없으며…… 이별 후에도 관계를 간혹 이어왔음은 성인 남녀의 그때그때 판단과 자기결정권에 따른 행위로서…
표는 비로소 악의에 가득 찬 초대장, 상금이라는 포장지에 담긴 내용물의 성분을 어렴풋하게나마 더듬어나갈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벗겨지지도 찢어지지도 않는 옷과 구두의 분자 구조까지 규명해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런 크고 번거로운 절차를 감수하고서라도, 명세서에 알맞게 지급되지 않은 과오의 우수리를 목숨으로 받아내려는 이들이 어딘가에 실재한다는 짐작만은 할 수 있었다.
자신은 사십구 명의 참가자들과 무관하며 그들과 달리 그전에 누구에게도 잘못을 저지른 적 없는 사람으로서 친구 대신 반 이상 장난삼아…… 아니 돈을 받기로 약속하고 어쩔 수 없이 왔을 뿐, 그전까지 오직 중립의 세계에서 가능한 한 변색이나 탈색 없이 충실하게 살아왔을 뿐인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이렇게 한데 뭉뚱그려 사냥 대상이 되기엔 억울하다는 탄원을 어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표는 지금 이 거리와 골목이 그리고 눈앞에 있는 신과 자기 자신의 모습이 나쁜 꿈의 한 장면이기를,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차라리 누군가의 상상 속에나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 여자의 형상—어차피 홀로그램임에 틀림없을 그것을 향해 각목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손바닥을 관통하여 어깨까지 진동이 타고 올라오는 둔탁한 타격감에, 제가 휘둘러놓고 의아함을 느끼며 표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어, 이거……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정말 내 잘못 아닌데. 여기 진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고,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사람 목에 화살을 꽂아 혼란과 공포를 준 사냥꾼들이나, 기묘한 화상을 쏘아대어 실제인 양 속이며 조롱함으로써 그걸 본 사람에게서 자기보존의 본능을 제외한 모든 인간다운 의식을 강탈해간 누군가들한테 있는데. 그런 변명의 말보다 앞서서 입 밖으로 밀려나온 것은, 그전에 쓰러져간 사람들을 수차례 목격하고서도 미처 나오지 않았던 희푸른 토사물이었다. 시큼한 냄새가 피비린내와 섞이자 상황은 한층 더 구체적인 성분과 색채를 띠며 표를 압도했다. 일이 어찌된 지경인지 슬쩍 건너다본 신은 패닉 상태의 생존자가 더 이상 도움이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뒷걸음치다 어느 순간 돌아서서 줄행랑을 놓았다.
이를테면 얕은 수로 소가죽을 뒤집어썼다가 그것이 벗겨지지 않아 그대로 소가 되는 바람에 채찍을 맞으며 밭을 갈던 한량이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리자 소가죽이 매미 허물처럼 떨어져나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뒤축을 잡아당겨본 구두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고 표는 여전히 두 개의 달 위를 걷는 중이었다. 자신의 것 아닌 신에 발을 꿰기 전에는, 영원한 타인의 옷을 입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감각들이 표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럼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증보다는 가려움에 가까운 무엇이었다.
달빛을 등지고 서서 표를 둘러싼 이들은 검은 후드를 쓴 사냥꾼들이었다. 어두운 그림자 한가운데서 펄럭이는 후드 자락은 맹금류가 날개를 펼친 듯 보였고, 저마다 옆구리 아래로 내린 활은 갈퀴 모양의 발톱인 양 날카로운 빛을 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갑론을박했다.

 ㅡ화장이 지워졌어.
 ㅡ그러게, 화장이 지워졌네.
 ㅡ그러면 이자는 집행 대상이 아니야.
 ㅡ그래도 봐, 그전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저 나이든 여자를 죽였어.
ㅡ좋아, 허물이 벗겨지는 자는 무죄. 벗겨지지 않으면 유죄.

반만 벗겨지면…….
반만 벗겨진다니 대체, 벗겨지다 만다는 뜻인지, 벗겨지다 말아버리면 자신의 몸은 어떻게 된다는 건지, 무엇보다 그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어떤 즉결심판을 내리려는 것인지 표는 알 수 없었으나 그것을 따지기 전에 사냥꾼들—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행인들—예닐곱 명이 한꺼번에 표를 밀어 넘어뜨리고 팔다리를 하나씩 맡아 붙들었다 .
여남은 개의 손이 덮쳐오는 틈새로 은색 초승달이 비쳤고, 표는 자신의 모든 순간이 더러운 시멘트 바닥과 달빛 사이에서 부서지고 있음을 알았다.
네소스의 함정에 빠진 헤라클레스, 아폴론과의 내기에서 패배한 마르시아스, 에우리디케를 영원히 잃고 여인들의 원한을 산 오르페우스, 도래할 새 봄의 파종을 위해 제 몸을 바치는 디오니소스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살가죽이 벗겨지거나 육신이 찢어진 허구의 이야기 속 남자들은 하고많았으나, 이 순간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표의 의식에 떠오른 것은 머리카락과 옷을 빼앗기고 굴 껍데기와 사금파리로 살이 도려내어져 살해당한 수학자 히파티아, 실존했던 그녀였다.

<ebook ㅡ 하르피아이의 축제의 밤 , 구병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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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년 ㅡ김이설 ( 발췌글) | 기본 카테고리 2017-11-2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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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현남 오빠에게

조남주,최은영,김이설,최정화,손보미,구병모,김성중 공저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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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년 ㅡ 김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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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는 애가 아니라며.”

“사귀는 사람하고만 하란 법 있어?”

저 주둥아리를 콱 쥐어뜯어버리고 싶었다.

“네가 어른이야? 넌 중딩이라고!”

“중딩은 하면 안 돼? 왜?”

안 된다고 단언하기 힘들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 만에 하나라도 하게 된다면, 이라는 전제로 합의와 피임에 대해 강조해왔던 터였다. 관계만을 위한 관계에 대한 전제는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사귀는 애랑 했으면 내가 이렇게 화가 안 나. 그것만 한다는 것이 정상이니?”

“나도 스트레스 풀 데가 있어야 하잖아!”

더 이상 말이 이어지질 않았다. 스트레스 해소였다니. 차라리 자위를 해!

“그걸로 풀 수 있는 거였으면 그랬지! 아씨, 쪽팔리게.”

그럼 하다못해 술, 담배를 하든가! 미쳤어, 왜 내 몸을 학대해. 단 한마디도 지지 않고 꼬박꼬박 대꾸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아들아이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가 알아서 다 관리하고 있다고.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엄마가 소원하는 데로 가줄게. 대신 나 스트레스 풀 데 하나는 좀 둬. 나도 해소할 구멍은 있어야 하잖아. 애들이 피시방 다니면서 게임하는 걸로 스트레스 푸는 거나, 나나. 그냥 똑같은 거야.”

“여자애는? 걔들도 너랑 똑같아?”

“그걸 왜 내가 신경 써. 각자 알아서 자기 사는 거지.”

“네가 동물이니? 어떻게 그 짓만 하려고…… 좋아, 너는 엔조이였다고 쳐. 상대방도 분명히 엔조이라고 한 게 맞느냔 말이야. 여자애 기분을 제대로 파악했느냐고. 여자애가 널 좋아하는데 너 혼자 엔조이라고 위악 부리는 거 아니냐고

왜 나는 그 말에 곧바로 응수하지 못했을까. 그건 네 책임이라고. 사람은 누구나 바쁘고 할일 많지만, 그걸 조율하고 배분해서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연애로 뭘 못한다는 핑계는 대지 말아야 한다고. 꽂고 다닐 정신 있으면 그런 책임에 대해 고민도 해야 한다고! 이렇게 말해야 했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사랑 없는 섹스에 대해 중2짜리 아들아이와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해서가 아니었다. 정말 아들아이의 말처럼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이라는 타협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던 탓이었다.

“그래서 뭐가 문젠데?”

남편의 반응에 내가 더 놀라 되물었다. 뭐라고?

“어떤 년들이길래 그 나이에 몸뚱이를 맘대로 굴려. 뭐 뻔해, 다 공부 못하는 것들이겠지. 아무튼 괜히 애 기죽이지 말고 적당히 넘어가. 호들갑 떨 일 아니야.”

“이제 열다섯 살들이야.”

“난 더 어릴 때도 했어.”

“자위를 한 게 아니잖아! 여자애랑 진짜로 했다고.”

“그게 뭐. 억지로 했대? 서로 합의해서 했다며. 강간 아니잖아. 그냥 스트레스 풀었다며. 그게 이렇게 난리 칠 일이야?”

“바로 그 스트레스 해소였다는 것이, 잘못이 아냐?”

“그럼 연애하라고 떠밀어? 콘돔도 썼다며. 똑똑한 자식.”

“세훈이가 아니라 세은이한테 벌어진 일이라면? 세은이가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남자애들이랑 그런 짓을 하고 다녔다면? 그때도 당신은 공부 잘하는 애가 그랬으니 괜찮다 할 거야?”

“어디 끔찍하게 세은이한테 갖다붙여! 여자랑 남자랑 같아?”

“다를 게 뭐 있어?”

“어깃장 부리지 마. 계집애가 무슨. 여자들은 태생적으로 그런 짓 안 해.”

“세훈이랑 한 애들은?”

“그것들이 미친년이지. 세훈이 때 남자애들은 여자라면 정신 못 차리니까 어떻게든 몸으로 꼬셔보려고. 그럼 내가 가만 안 두지. 우리 애 공부 방해한 것들이면 가만두면 안 된다고. 싸가지 없는 년들. 어린것들이 발랑 까져서 밝히기나 하고.”

아들아이도 남편에게도 말하진 못했지만, 나는 계속 그 여자애들이 걱정되었다. 아들아이를 좋아하는 여자애였으면 어쩌나 싶고, 그 여자애들 부모가 알면 또 어떡하나 싶었다. 아들아이가 잘못한 일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것도 두려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저 시간이 흐르게 두는 것도 바른 해결 같지 않았다. 왜 남편과 아들아이는 이 상황을 문제라고, 해결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잘못된 일이지 않은가. 인정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싫지만, 분명 옳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아니라면 아닌 일이라니.

아들아이는 학원에서 돌아오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대체 아들아이는 여자애들과 어디서 뒹굴었을까. 몇 명이나 되는 애들과 어울린 걸까. 학교와 학원, 영재원만 다니는 아이인데. 동선이 명확하고 귀가 시간 한번 어긴 적 없는 아이인데. 거칠지 않고, 예의 바르고, 단정한 아이인데. 그런 아들아이라고 생각하며 키웠는데. 머리가 아팠다.


남편과 달리 아들아이뿐만 아니라 여자애들이 줄곧 신경이 쓰이는 건, 혹시라도 그 여자애들이 나중에라도 내 아이의 발목을 잡는 증인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해결할 수 있을 때 입을 막거나, 봉합할 수 있을 때 수습하고 싶은 것. 그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부모가 할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인정하고 싶지 않고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가장 솔직한 심정이었다.

딸아이는 대체 뭐가 되려는지, 영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들아이는 지금처럼만 성적을 유지하면 제가 바라는 의과대 진학이 그리 힘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딸아이는 아들아이와 달라서 가르치지 않으면 저절로 깨치는 게 없고, 가르쳐도 알맞게 하는 게 없었다. 딸은 야무지고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왜 생긴 것인지 납득할 수 없었다. 딸 키우는 재미도 마찬가지였다. 딸과 아들의 차이가 아니라 각 아이들마다의 차이 아니냐고, 어찌 딸만 키우는 재미가 있느냐고, 나는 생전 딸 키우는 즐거움은 몰라도 대신 아들 키우는 맛은 정말 잘 알겠다고 말하던 엄마였던 것이다.

당신이 맨날 얘기하는 그 여직원, 얼굴도 예쁘고 날씬한데 대학교도 좋은 데 나왔다면서 침이 마르게 칭찬하잖아.”

“남들한테 내보이려고 대학교 보내? 공부 백날 해서 석박사 따봤자 뭐에 써. 똑똑한 것들보다 예쁜 것들이 더 시집 잘 가더라. 안 그래?”

“당신 말대로 똑똑한 놈, 잘난 놈 만나려면 걔네들 노는 데서 같이 놀아야 할 거 아냐. 대학이라도 멀쩡한 데 가야…….”

“근데 엄마.”

어느새 딸아이가 다가와 있었다.

“내가 고르면 안 돼? 내가 선택하면 안 되고, 꼭 선택받아야 해? 엄마도 그랬어?”

남편이 딸아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넋이 빠지게 텔레비전을 보던 딸아이가 귀찮다며 제 아빠를 밀쳐냈지만 금세 둘이 뒤엉켜 깔깔거리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요 근래 딸아이의 봉긋해진 가슴이, 투덕투덕 살이 오른 엉덩이와 허벅지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언니, 나도 딸을 키우지만, 요즘 여자애들은 정말 못 당하겠어요. 공부면 공부, 잔머리면 잔머리. 어수룩한 아들들만 피해본다니까. 내가 그래서 세훈이 얘기 듣고 가슴이 철렁했잖아요. 언니가 얼마나 속상할지 아니까.”

윤서 엄마의 논리대로라면 성적에 목숨 건 여자아이는 되바라진 여자애였고, 성적에 관심 없는 여자애들은 아이돌이나 따라다니면서 화장이나 하는 골빈 여자애였다. 윤서도 내 딸아이도 요즘 여자애들이라는 것을 잊은 사람 같았다.

윤서 엄마는 진심으로 나를 위로하고 있었고, 아들아이가 나쁜 애가 아니라고 변명을 해주었으며, 마치 자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남자들은 다 그렇게 큰다고들 하니까 염려하지 말자는 말까지 건넸다. 어쩐지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고맙다고 거짓말을 해버렸다.

윤서 엄마와 헤어질 무렵에야 윤서의 안부를 묻게 되었다. 윤서는 잘 지내지? 야무져서 엄마 걱정할 일을 만들지도 않을 테고. 윤서 엄마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그럼요, 우리 윤서는 그저 순진해빠져서 공부밖에 몰라요.”

윤서는 되바라진 여자애구나. 그럼 윤서 엄마는 어떤 여자아이였을까


네가 여자여서, 세상의 온갖 부당함과 불편함을 이제 어린 너와도 나눠 갖게 된 것이 서글프기 때문이라는 걸 말할 수는 없었다. 영문을 모른 채 내 등을 쓰다듬던 딸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는 생리대를 혼자 붙여보겠다고 끙끙댔다. 그렇게 어린애였다.

남편과 아들아이는 어쩔 줄 모르고 식은 음식 앞에서 아내와 딸을, 엄마와 여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제 손으로 처음 생리대를 한 딸아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걸어갔다. 어기적거리며 걷는 걸 보니, 나는 누구에게든 마음껏 미안하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eBook ㅡ 경년 , 김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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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꿀벌과 천둥 | 스치듯이 2017-11-2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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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긴장감을 이어가진 못했지만 음악을 글로 읽는다는 행복을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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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현남 오빠에게 | 스치듯이 2017-11-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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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도록 현실적인 이야기에서 환상세계로까지 재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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