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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초한지 7 | 내사랑 만화 2011-05-3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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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초한지 7

고우영 글, 그림
자음과모음 | 2003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항우와 유방의 격돌을 가장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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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항우와 유방의 쟁패를 만화로 그린 고우영 화백의 <초한지>의 줄거리를 글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이 초한지의 세계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초한지의 세계가 궁금한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영포는 항우가 보낸 사자의 목을 베었다. 그의 선택은 유방에게 귀순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항우의 2대 맹장이었던 팽월과 영포가 유방의 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한편 대원수직에서 물러넌 한신은 유방의 패전 소식을 모두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계책을 따르지 않은 유방에 대한 감정이 쉽게 풀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승상 소하가 찾아왔지만 만나주지 않았고, 장량이 와도 역시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장량은 항우에게 패한 유방이 항복을 결정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놀라서 궁으로 들어온 한신은 장량을 보고 그의 계교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마음을 돌린 한신은 다시 대원수직을 맡아서 설욕을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은둔 중에도 항우를 물리칠 비책을 마련했고, 그 중에 하나가 수레로 만든 전차였다.

한편 범증은 초에 모친이 있은 왕릉에게 귀순을 종용하는 세객을 보낸다. 항우에게 오면 높은 지위를 보장하지만 거절할 경우에 모친의 목숨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왕릉에게 이 소식을 들은 한신은 이를 역이용한다. 자신도 왕릉과 함께 귀순한다면서 항우에게 친히 전해달라는 밀서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밀서에는 항우를 조롱하는 문구가 있었다.

분노한 항우는 신중을 기하라는 범증의 만류를 무시한 채 30만군을 이끌고 진격한다. 전장에서 마주친 한신에게 다시 희롱의 말을 들은 항우는 분노하여 추격하다가 본진에서 멀어지면서 한의 대군에게 포위된다. 항우는 용전분투했으나 대평원에서 전차에 가로막혀 속수무책이었다. 용장 우영을 잃고 자신마저도 화살에 맞아 쓰러진다. 본진에 남아 있던 종리매와 계포가 필사의 노력으로 달려와 항우를 구원하였으나 그들마저 한신의 대군에 포위되고 만다. 그때 범증이 보낸 포장군에 의해서 항우의 군대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30만의 대군 중에서 겨우 10만만 돌아온 대패였다.

범증은 자신의 충고를 듣지 않고 대패를 당해서 부끄러워하는 항우를 위로하며 새로운 계책을 세운다. 그것은 항우의 수하에 있다가 유방에게 항복한 뒤 대원수에 올랐다가 패전의 문책을 당하고 근신 중인 위나라 유표를 부추기는 것이었다. 유표가 반란을 일으켜서 한신의 부대가 출동하면, 항우가 유방의 진영을 공격한다는 계획이었다.

범증이 보낸 세객의 유혹에 넘어간 유표는 항우에게 귀순의 밀서를 보내고 한의 유방에게 반기를 든다. 그러나 한신은 범증의 계획을 간파하고 있었다. 한신은 진평을 군사로 삼고 장량이 함께 돕게 한 뒤에 자신은 유표의 반군을 진압하러 출동한다. 한신의 적수가 될 수 없는 유표의 군대는 쉽게 무너지고, 유표는 생포되었다.

한신이 출동한 것을 안 항우는 유방이 머무는 형양성을 공격했다. 유방은 장량의 계교대로 성문을 막고 대응을 하지 않았다. 유방의 군대를 경시한 항우가 방심하는 사이에 장량은 왕릉으로 하여금 야습을 감행하게 하였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항우의 군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왕릉의 용맹을 알게 된 항우는 초에 인질로 잡고 있는 왕릉의 모친을 압송했다. 그녀를 활용하여 왕릉을 귀순시키려는 계교였다. 자신의 모친이 항우에게 있다는 소식을 들은 왕릉은 확인을 하겠다면서 사신을 보냈다. 항우는 사신과 왕릉의 모친을 만나게  하였으나, 그녀는 신념이 강한 여인이었다. 자신으로 인해 아들의 지조를 꺾을 수 없다면서 사신이 보는 앞에서 자결을 한 것이다.

장릉은 뛰어난 모사였다. 죄인의 목을 베어 성루에 건 뒤, 초나라로 귀순하려는 왕릉의 목을 베었다고 헛소문을 냄으로써 한의 군기를 잡고 초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또한 한의 군사가 초의 수도인 팽성을 공격 중이라는 거짓 정보도 흘렸다. 항우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철군했다. 

유방은 유표의 죄를 물으려고 했으나 유표의 모친이 아들의 목숨을 구해달라는 탄원을 했다. 이미 힘을 잃은 자를 죽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모든 지위를 빼앗으면서 잔명을 살려줌으로써 각지의 제후들에게 인의가 있다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항우의 공격을 물리치고 기고만장한 유방은 한신에게 초나라로 진격하라고 채근했다. 한신은 초의 배후에 있는, 대·조·제나라를 제압하여 초를 고립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진언했다. 유방은 한신의 계책을 따랐다.

한신의 군대 앞에서 대나라는 쉽게 무너졌다. 조나라에는 이좌거와 진여라는 모사가 있었다. 이좌거는 한신의 군대는 멀리 진군했으므로 군량 보급에 문제가 있으니 후방을 차단시키자고 주장했고, 진여는 1천리를 달려와서 피로에 지친 한의 군대에게 쉴 틈을 주지 말자고 주장했다. 조나라 왕 조철은 진여의 주장을 채택했으나, 한신의 군대에 의해 대패를 당하고 항복했다.

한신은 이좌거의 능력을 알고 그를 후대하면서 연나라 공격책을 물었다. 이좌거는 조나라 민심을 사면서 군세를 키우면 연은 자연히 무너진다고 진언했고, 한신은 그 의견을 따랐다. 조나라 백성들을 위무하는 한편 수하를 연나라로 보내서 항복을 권유했다.

연나라에는 괴철이라는 뛰어난 인물이 대부로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한의 세력을 살피겠다면서 연의 사신이 되어 수하와 함께 한신에게 왔다. 괴철은 한의 군세와 한신의 능력을 확인한 뒤 연왕에게 귀순을 권유했다. 연왕 장도가 한신에게 항복한 것이 BC 204년이었다. 이제 항우의 세력은 초와 제 두 나라만 남은 것이다.

대나라에 이어 조나라와 연나라까지 유방에게 복속되자 항우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최후의 결전을 결심했다. 범증 역시 한신이 멀리 떠난 지금이 유방을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량의 반간계가 시작되었다. 그는 재물을 총동원해서 범증과 종리매가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는 헛소문을 초나라 전역에 전파했다. 초나라 최후의 충신인 범증과 마지막 남은 맹장인 종리매가 변절했다는 소문이 항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항우는 반신반의하는 와중에서도 유방을 향한 결전에 나선다.

형양성에 웅거한 유방은 장량의 계교대로 성문을 굳게 닫고 응전을 하지 않았다. 항우는 거세게 공격을 했으나 성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장량은 유방으로 하여금 거짓 항서를 보내면서 범증과 유방이 내통한 거짓 밀서를 항우에게 보낸다.

분노한 항우는 범증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외친다. 그동안의 공을 생각해서 목숨을 살리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알라면서…. 범증은 이것은 반간계라며 충심으로 고했으나 이미 항우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다. 쓸쓸하게 팽성으로 돌아온 범증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등창으로 자리에 눕는다.

범증은 마지막까지 충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스승에게 선약을 구해서 몸을 회복한 뒤 항우를 도우려고 했으나, 하늘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결국 범증은 통분 속에서 세상을 떠난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의 죽음에 비견되는 비장한 장면이었다. 

항우는 항복하겠다는 유방의 말이 거짓으로 밝혀지고 범증의 부고를 받자 절망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설욕을 다짐하며 형양성에 대한 총공세를 펼쳤다. 희대의 명장인 항우의 분노에 찬 공격 앞에서 형양성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유방에게는 충신이 많았다. 유방과 용모가 닮은 기신이 유방으로 분장한 뒤 항서를 들고 항우에게 가는 동안 유방과 장량 등은 성을 빠져나갔다. 기신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유방이 탈출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 주었다. 속은 것을 안 항우는 기신을 죽인 뒤 무서운 기세로 형양성을 공격했다. 주가와 종공이라는 하급장교는 목숨을 걸고 성을 지키며 유방이 도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다. 기신의 희생과 주가와 종공의 장렬한 전사로 인해 유방은 분노에 찬 항우의 예봉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위·연 등 항우의 맹방은 유방에 복속되고, 팽월·영포 등 맹장은 유방에게 갔으며, 초의 기둥이었던 범증마저 잃은 항우는 사면초가의 신세였다. 전장에서는 무적의용맹을 지니고 있었지만, 한신과 장량 등의 뛰어난 용병 아래 사방에서 공격을 하는 한의 군대 앞에서 항우는 소득없이 힘만 쓰면서 군사만 잃을 뿐이었다.

항우는 자신을 배신한 팽월을 용서할 수 없다면서 그를 공격한다. 항우의 위세에 놀란 팽월은 부장 구명에게 성을 맡기고 도주한다. 구명은 팽월이 멀리 도주한 뒤에야 성문을 열고 항복한다. 분노한 항우는 성안에 거주하는 15세 이상의 모든 장정은 참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구명의 아들인 13세의 구숙이 "역적은 팽월이며, 성의 주민은 죄가 없다."는 말로 변호했다. 항우는 구숙의 지혜와 용기를 가상히 여기고 주민들을 도륙하라는 자신의 명령을 철회한다.

항우는 모처럼 덕을 베풀어서 성민들의 칭송을 받기는 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항우가 수성을 맡겼던 곳곳의 장수들은 유방의 군대에 무너지거나 항복했다. 

한편 한의 원로이자 개국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역이기는 장량·한신·진평 등의 신진들에 의해 한의 세력이 커지는 동안 자신이 잊혀져가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공명심에서 유방에게 가서 제나라 왕을 설복시켜서 항복시키겠다고 자원했다. 유방은 이를 허락했다.

제나라는 70여 성을 거느린 강국이었고, 제왕인 전광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유방의 사신으로 온 역이기가 현재의 정세를 설명하며 항복을 권유하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천하의 8할이 한의 수중에 들어간 터에 제나라가 초와 의리를 지키는 것은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전광은 한신의 군대가 제나라에 침입하지 않는다는 확약을 해준다면 유방에게 복속하겠다고 했다. 역이기는 당연히 이를 수락하고 한신에게 제의 항복을 전하며 군사를 회군시키라고 전했다.

역이기의 전갈을 받은 한신은 일단 회군시키겠다고 응답했다. 그러자 연나라 대부로 있다가 항복한 괴철은 철군을 반대했다.

"제를 정복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1년간 노심초사 했다. 이제 성공이 목전에 있는데 그 공을 역이기 노인에게 뺏기려고 하는가?"

한신은 괴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고 제의 국경을 넘었다. 역이기의 말을 믿고 무방비로 있던 제의 군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왕 전광은 사태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역이기에게 항의했다. 역이기는 놀라서 다시 사신을 한신에게 보내면서 왕(유방)명을 받고 제나라와 화친을 했다면서 철군을 종용했다. 한신은 이런 답변을 보냈다.

"역이기가 왕의 명을 받고 제나라와 친선을 맺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자신은 왕명에 따라 제를 공격할 뿐이다. 만약 친선을 맺으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원수인 한신에게 그런 명령이 경유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역이기는 기가 막혔으나 한신의 말이 명분에 맞으니 항변할 말이 없었다. 분노한 제왕 전광은 역이기를 체포한 뒤 사형을 시키라는 명을 내린다. 끓는 기름에 몸을 던져서 처참하게 죽이라고 한 것이다. 역이기는 처형의 순간까지도 그런 처지에 놓인 자신의 운명을 믿지 못한다.

역이기 노인의 처형이 집행되려는 순간에서 7권이 끝난다. 이제 마지막 8권이 남았다. 범증의 죽음으로 인해 날개가 꺾인 항우는 변변한 항거를 못하리라고 본다. 영웅의 그런 최후를 봐야 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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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0일 현재 네이버 지식인에서의 위치는? | 홀로 나누는 문답 2011-05-3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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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기장에서 나눈 문답입니다.

목연샘!

그대는 5월 30일 현재 네이버지식인에서 내공 순위는 어떻게 되었는지요?

--------------------

네이버 지식인 활동은 여전히 저조합니다.
4월 15일에 태양신에 등업된 이후 목표를 상실한 면도 있고,
요즘 신심이 고단한 탓도 있습니다.

2011년 5월 20일 현재 나의 순위였습니다.
112위면서 101위와는 27,484점의 격차가 있었지요.




그리고 5월 30일 현재 나의 순위이고요.


순위가 두 계단 상승하여 110위가 되었고,
101위와 내공 격차는 22,597점입니다.
열흘 동안에 순위는 두 계단 상승했고, 격차가 5천점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언뜻 보면 내가 상승세인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현재 101위인 8842ok 님이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어서 격차가 줄었을 뿐이고,
101~110위 사이에서 두 분 정도가 활동를 중단한 상태라서 순위가 올랐을 뿐입니다.

그러나 맹렬하게 활동하는 회원이 있으므로
100위 이내 진입은 물론 순위 상승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지요.
지금으로서는 내공 점수를 1만점 정도 더 높여서
50만점을 돌파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할 듯합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1,600만명의 가입자 중에 이 정도 순위를 유지하는 것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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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사엽] 춘향전 | 나의 장서 2011-05-31 16:20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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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라고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모은 책이 2천여 권은 되는 듯합니다.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자주 이사를 다녔는데
그때마다 책들이 큰 부담이었습니다.
방이 협소하니 둘 곳도 없었고요.
그래서 버리거나 남에게 준 것도 상당수 됩니다.
그런 환경에서 지금까지 지니고 있으니
그 책들이 문화재급이나 고가의 희귀본이 아니라도
내게는 갖가지 사연이 담긴 벗들이고요.

책장 정리를 하면서 추억을 되새겨 볼 겸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을 사진과 함께 공유해 보겠습니다.
---------------------


김사엽 교주 해설 춘향전 표지
김사엽(1912~1992) 교수님이 주해를 붙인 춘향전 해설서입니다.
춘향전의 원문과 주해가 함께 있지요.
김사엽 교수님은 국문학자로서 서울대학교와 경북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1963년부터 일본 오사카외국어대학의 객원교수가 되어 20여 년간 한국어를 가르쳤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바로 알리는 데 주력하였으며,
일본문화의 원류가 한국임을 밝힌 분이고요.

이 책은 해방 이후에 춘향전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0년대에 지금은 사라진 춘천의 강원서점에서 구입했고요.

말이 고어체라서 좀 어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춘향전의 줄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그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김사엽 교주 해설 춘향전 판본지
4285년(1952년) 10월 20일에 서울의 대양출판사에서 발행되었군요.
그때는 아직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시기인데
이런 책이 나온 것이 신기합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특색인 '우리의 맹세'가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200환이라는 화폐가치도 아득하게 느껴지고,
200환은 지금 시세로는 20원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내용은 그리 중요할 것이 없으나
60여 년 전에 발간된 책이니 희소성과 함께
고서로서의 의미는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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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도 예뻐야 한다 | 내가 아는 정보들 2011-05-3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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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에서 배우는 2학년 과학책 1단원 영양소와 소화 단원에 나오는 글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똥도 예쁘게 나오고
건강을 잃으면 똥도 비정상적으로 나온다고 하네요.



좀 깨끗하지 못한 내용인 듯하지만,
건강과 관계가 되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제 블로그를 찾은 손님들은 어떤 유형이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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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으며 성공한 경험은? | 홀로 나누는 문답 2011-05-31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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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일기장에서 나눈 문답입니다.

목연샘!

그대는 농사를 지으며 성공한 경험이 있는지요?

--------------------

농사를 성공적으로 지었다는 것은 건방진 표현이지만
나는 2004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시골의 작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교실 한 칸 정도 되는 텃밭을 가꾼 적이 있습니다.

그때 상추, 쑥갓, 열무, 근대, 아욱, 고추, 고구마, 서리테, 땅콩 등 10여 종을 심었는데
4년간 비료와 농약을 치지 않는 무공해 경작을 하였지요.
함께 근무하면서 텃밭을 가꾼 동료가 여러분이 계셨지만
완전 무공해 경작을 실시한 분은 나 한 명 정도였습니다.

나의 비결은 퇴비와 물을 주는 것, 그리고 북돋아주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물을 주었고,
자주 흙더미를 올려주는 등 북을 주었으며 거름은 퇴비로만 하였지요.
농사의 경험은 없었지만 퇴비가 좋다는 것과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방과 후에 틈만 나면 관사 주변과 밭 주위는 물론
등산로의 잡초까지 뽑아서 환경을 정리하면서 퇴비를 만들었습니다.
더러운 물을 섞으면 퇴비가 더 기름지게 된다고 해서
소변을 볼 때도 퇴비 더미에 가서 보았고,
방엔 요강을 두고 잠자면서 밤에 보는 소변도 모았다가 퇴비에 부었습니다.
세수를 하거나 간단한 방청소를 한 뒤에도 그 물을 양동이에 담았다가
퇴비 더미에 부었고요.

행운도 따랐겠지만 나의 농장에는 4년간 병충해도 없었습니다.
내가 가져오는 풋고추와 상추 등은 아내와 아내 친구들에게 큰 인기였고요.

내가 가꾼 탓인지 모든 농작물들이 맛있게 느껴지더군요.
4년간 먹은 상추와 풋고추 등이
아마 평생동안 먹은 야채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내가 심은 배추가 김장을 만들 형편은 아니었기게
쌈으로 싸 먹거나 국으로 끓여 먹었으니까요.
음식 솜씨는 없고 조미료는 싫어하기에
배추를 적당히 잘라서 넣은 뒤에 된장만 풀어서 먹어도 내 입맛에는 맞았습니다.

밥에는 내가 가꾼 서리테를 넣었고,
가을에는 대추나 밤 등을 넣어서 오곡밥을 만들었으며
반찬은 상추나 배추 쌈에
국은 배추나 아욱으로 끓였습니다.
간식은 초여름에 딴 산딸기를 설탕에 재워서 1리터 주스 병에 넣어서 만들었는데
뒷산에는 산딸기가 지천으로 있었습니다.
매년 10여 병은 만들었지요.
그야말로 웰빙 식단이라고 할까요?
4년간 내 수명이 1년은 늘었을 것입니다.

그 학교를 떠날 때는
4년간 정이 든 텃밭과 뒷산을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쉽더군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나고요?
시골에 텃밭이 있기는 하지만 멀기도 하고 귀찮아서 *^^*
농약도 치고 비료도 주고 있답니다.
타락했다고 할까요?

예전에 올렸던 사진을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국어샘 농장
학교 창고 옆에 교실 한 칸 정도로 개간을 하였답니다.
모두 아홉 고랑에 13가지를 심었답니다.
"아이들 보듯이 너희를 가꾸리" 라는
 국어샘의 전훈(田訓: 밭의 교훈)을 교장샘이 보시더니
감동적이라고 하시더군요 *^^* 

하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아이들에게는 좋은 선생님이 되지 못했듯이,
농작물에게도 좋은 농부는 아니었던 듯합니다.
풀 뽑고, 물 주는 것 외에는 한 것이 없으니까요.


고구마와 고추
평생 먹은 고추보다 4년간 먹은 것이 더 많을 정도로  풋고추는 실컷 먹었고
고구마는 20여 개 수확에 그쳤지만
고구마 줄기는 풍성하게  거두어서 반찬으로 했답니다.


내가 만든 고춧대
그냥 나무 토막을 잘라서 만들었습니다.
20대궁을 심었는데 끝없이 달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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