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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름다운 | 나의 리뷰 2006-03-27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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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슴도치 아이

카타지나 코토프스카 저/최성은 역
보림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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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을 다룬 이야기는 많지만 이 책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는 접해보지 못했다. 특히 세계최대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부끄러운 수식어를 갖고 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모범답안이 이 책 속에 있다고 느꼈다.

이 이야기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고 싶었던 이 부부는 집을 만들고, 태어날 소중한 아이가 뛰어노는 데 모자람이 없도록 많은 걸 마련했다. 그렇지만 해가 몇 번을 바뀌어도 아이가 태어나지 않자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아이를 찾아 나선다.

입양된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을 낳은 부모가 아닌 다른 부모가 자신을 기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입양을 하는 부모의 편에선 아이는 단지 사랑을 주어야 할 대상이지만 입양된 아이의 편에선 그 사랑이 마냥 즐거운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진실되지 못하다고 느낀 나머지 동정이나 의무감으로 변질되어 버릴 경우도 있다. 고슴도치 아이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자신의 새부모가 주는 사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아이로서는 날카로운 가시를 바투 세우고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안 뒤 남의 아이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낳을 수 없었던 자신의 아이를 찾아나선 것이다. 입양된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슬픔 따위를 애초에 없애버린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아이를 대신 낳아 주었다는 관점의 변화는 정말 참신하다.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만큼 진실한 것인지도 알 수 있다.

또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아이의 몸에 돋은 가시들이 하나둘 빠지는 과정이다. 처음엔 뻣뻣했던 가시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빽빽했던 것이 드문드문해지는 묘사(그림)를 통해 아이가 점점 양부모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세세히 보여준다. 감동을 설명한다고 설명되어질까?

꼭 입양된 아이들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모, 가족, 연인의 경우에도 얼마든지 적용되는 방법일 것이다. 사랑은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행복하기 때문에 가장 위대하다. 사랑을 하고 싶은 계절에 아주 사랑스런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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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아름다운 | 2006년에 쓴 리뷰들 2006-03-27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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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고슴도치 아이

카타지나 코토프스카 저/최성은 역
보림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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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을 다룬 이야기는 많지만 이 책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는 접해보지 못했다. 특히 세계최대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부끄러운 수식어를 갖고 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모범답안이 이 책 속에 있다고 느꼈다.

이 이야기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고 싶었던 이 부부는 집을 만들고, 태어날 소중한 아이가 뛰어노는 데 모자람이 없도록 많은 걸 마련했다. 그렇지만 해가 몇 번을 바뀌어도 아이가 태어나지 않자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아이를 찾아 나선다.

입양된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을 낳은 부모가 아닌 다른 부모가 자신을 기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입양을 하는 부모의 편에선 아이는 단지 사랑을 주어야 할 대상이지만 입양된 아이의 편에선 그 사랑이 마냥 즐거운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진실되지 못하다고 느낀 나머지 동정이나 의무감으로 변질되어 버릴 경우도 있다. 고슴도치 아이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자신의 새부모가 주는 사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아이로서는 날카로운 가시를 바투 세우고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안 뒤 남의 아이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낳을 수 없었던 자신의 아이를 찾아나선 것이다. 입양된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슬픔 따위를 애초에 없애버린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아이를 대신 낳아 주었다는 관점의 변화는 정말 참신하다. 그리고 그 사랑이 얼마만큼 진실한 것인지도 알 수 있다.

또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아이의 몸에 돋은 가시들이 하나둘 빠지는 과정이다. 처음엔 뻣뻣했던 가시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빽빽했던 것이 드문드문해지는 묘사(그림)를 통해 아이가 점점 양부모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세세히 보여준다. 감동을 설명한다고 설명되어질까?

꼭 입양된 아이들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모, 가족, 연인의 경우에도 얼마든지 적용되는 방법일 것이다. 사랑은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행복하기 때문에 가장 위대하다. 사랑을 하고 싶은 계절에 아주 사랑스런 책을 읽었다.

[인상깊은구절]
고슴도치 아이는 안기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자꾸만 가시로 찔러 사람을 아프게 했습니다.
어느 날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제발 조심해요. 당신 몸이 온통 상처투성이잖소."
그러자 여자가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상처는 금방 아무는걸요. 아기들은 자주 안아 줘야 해요. 이것 봐요. 피오트르가 안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자꾸 쓰다듬어 주니까 가시도 한결 부드러워졌어요."

(중략)

어느 날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예전에 나는 누구 배 속에 있었어요?"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음, 내 배는 아니었단다. 그때는 다른 엄마가 있었어. 넌 그 엄마 배 속에 잠시 머물렀지. 하지만 다행스러게도 지금은 이렇게 우리 곁에 와 있단다."
"내가 옆에 없어서 많이 울었나요?"
"그래, 그때 엄마는 아주 아주 많이 울었어. 아빠도 눈물을 흘렸지. 하지만 지금은 정말 행복하단다. 우리 세 식구가 오순도순 함께 사니까."
그날은 꽤 많은 가시들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나갔습니다.

(중략)

"엄마, 엄마가 나를 낳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나도 그러고 싶었단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너를 낳을 수 없었어. 그런데 정말 고맙게도 엄마 대신 다른 엄마가 너를 낳아 주셨단다. 덕분에 네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고, 우리가 이렇게 함께할 수 있는 거야. 아가야, 엄마는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알아요, 엄마."
그날도 피오트르는 한밤중에 잠을 깼지만, 여느 때처럼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어둠 속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엄마!"
피오트르가 한밤중에 깨어나 엄마를 찾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날로 가시는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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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3시간동안 떠든 이야기 | 2006년에 쓴 리뷰들 2006-03-1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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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외딴방

신경숙 저
문학동네 | 200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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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감상문일 수도 있고 또는 에세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감상문과 에세이의 어느 중간쯤의 글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도저도 아닌 글자들의 나열일 지도…

2
사진을 보았다. 책 속의 그녀는 외로움 혹은 고독에 잠긴 채 무언가 고즈넉히 바라보고 있다. 책 속에 해답이 있으려나…나. <외딴방>을 읽으려 한다.

3
<외딴방>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서른둘의 그녀. 어느날 고교 동창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너 작가가 되었구나.”
“근데 너의 책에선 우리들의 얘기는 없더구나. 혹시 그 시절의 우리들이 싫었니?”
서른둘의 그녀는 말한다. 아니다. 그 때 그 시절이 싫었던 것만은 아니다.

열여섯의 그녀.
마당에서 쇠스랑을 가지고 놀다. 쇠스랑에 발을 찔린다. 하지만 그녀는 찔리는 순간에도, 찔리고 나서 한동안 빼내지도 못하고 있을 때도 아프면 당연히 나와야 할 눈물과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쇠스랑은 누워서 가만히 있는 그녀를 보고 뛰어온 엄마가 빼주었다. 등짝을 때리며 왜 소리도 지르지 않느냐고 나무란다. 열여섯의 그녀. 그제서야 아픔을 느끼고 눈물과 울음이 나온다.

열여섯의 그녀. 된장을 바른 발을 끌고 우물가로 가서 쇠스랑을 우물에 던져버린다.

무어냐. 쇠스랑에 대한 복수냐. 그런다고 그 사실이 은폐될까. 나중에 외사촌에게 그 사실을 조심스레 고백한다. 열아홉의 외사촌은 "왜 우물에다 넣었어?"라고 묻는다. 열여섯의 그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해 우물거린다.

“우물이 더러워지잖아. 이 담에 내려가면 꺼내야겠다.”
열여섯의 그녀. 그제야 꺼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이 책이 신경숙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면, 이 부분은 작가 자신이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그렇다면 분명 우물 속에 감추어진 쇠스랑을 꺼내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있다. 그런데 작가 혼자 꺼낸게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 희재언니…그녀는 누구?

4
책읽기는 점점 속도를 더해간다. 일단 희재언니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그녀가 큰오빠를 따라서 외사촌과 함께 서울로 상경을 하고, 자리를 잡은 <외딴방>. 분명 좁디좁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공간일진데, <외딴방>이란다.

열여섯에 그녀.
나이를 속여 외사촌과 같은 공장에 취직을 한다. 열여덟이 안되면 임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사람이 일을 하며 돈을 벌지만 입에 풀칠하며 살기엔 그래도 버거운 살림살이. 70년대 우리네 생활상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잠깐 신경숙의 글쓰기에 대해 잠시 말해볼까.
어느 평론가는 그녀의 글쓰기를 아름다운 시를 읽는 기분이란다. 신경숙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시각의 청각화…공감각적인 문체다.

그런데 이런투의 글쓰기가 때로는 독이 될 때도 있다. 사람과의 대화에선 재미없는 말을 하면 끊어버리고 넘어갈 수가 있는데, 책읽기에서는 그럴수가 없잖은가. 읽던 책을 집어던지지 않는 이상 책을 띄엄띄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5
책읽기는 계속된다.
열여섯의 그녀와 열아홉의 외사촌과 함께 상경하며 나누었던 꿈 이야기. 함께 취직한 공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꼭 붙들고 있는 모습. 노조위원장에게 꼭 합격시켜달라고 쓴 편지를 쓰며 가슴 졸였던 일. 새교복을 맞추며 즐거워 하는 모습. 열여섯의 그녀보다 서너살이 더 많은 동급생들. 왼손으로 글을 써 필기 할 때마다 팔이 부딪혔던 짝꿍…그리고 희재언니. 드디어 만났다.

6
계속되는 책읽기. 좀처럼 작가는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려하지 않는다.
희재언니의 이름마저도 쉽게 가르쳐주지 않더니…독자가 지칠 정도의 지리한 진행…

신경숙 작가의 문체를 살펴보자.
책의 처음과 끝에서 작가는 <외딴방>은 소설과 사실의 중간쯤 되는 글이라고 말한다. 소설이면 소설이고, 사실이면 사실이지. 그 중간쯤 되는 글은 무어란 말이냐.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서사구조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서 강조했던 <갈등>.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고 설킨 그 모양. <외딴방>에선 그런 갈등이 없다.

신경숙의 자전적인 경험들을 그저 나열하는 식의, 아니, 큰오빠와 자신, 큰오빠와 셋째오빠, 큰오빠와 외사촌오빠간의 갈등…이런게 있는 듯하다.

하지만 갈등이 있으면 해소가 있어야 하는 법. <외딴방>에서는 <갈등과 해소>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다. 열여섯의 그녀가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의 제목을 가지고 선배와 티격태격했던 부분들을 보아도 이 책이 소설과 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자전적인 사실의 경험을 쓰면서도 일부는 허구적 연막을 쳐서 무언가 밝히기 싫은 것을 은폐하려는 의도로 볼 수 밖에 없다. 무어냐 그렇게 감추고 싶었던 것이…

7
읽고 또 읽고…좀처럼 신경숙은 고백하려하지 않는다.
어느덧 남은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고, 희재언니가 어느새 열아홉살의 그녀에게 자신의 방 열쇠를 맡긴다.

열아홉살의 그녀에게는 착하디 착한 희재언니가 좀처럼 하지않는 부탁을 한다. 책을 읽는 나에게 들려주던 음성도 스산한 어조를 띤다.

희재언니가 열아홉의 그녀에게 부탁한 것은 자신이 시골로 떠나고 난 빈방을 잠궈달라는 것. 열쇠를 너에게 맡길 테니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그 때 잠궈 달라.고…

열아홉의 그녀, 희재언니의 문을 바라본다. 그냥 잠그려 하다가 문을 한번 열어본다. 텅 빈 듯 썰렁한 부엌…혹시나 희재언니가 방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미치지만 열아홉의 그녀는 문을 닫고 문을 잠근다.

며칠 뒤 확인 된 희재언니의 주검.

8
이것이었나. 신경숙이 감추고 싶었던, 마음 속 쇠스랑은…어쩌면 영원히 꺼내기 싫었고,
지금도 그 우물 속에 있는 쇠스랑을 그저 세월에 묻어두고 싶었던가. 희재언니가 주고간 열쇠만큼의 죄책감 때문에…결국 꿈 속에서 희재언니의 도움으로 쇠스랑을 꺼낸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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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3시간 동안 떠든 이야기 | 나의 리뷰 2006-03-19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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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외딴방

신경숙 저
문학동네 | 200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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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감상문일 수도 있고 또는 에세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감상문과 에세이의 어느 중간쯤의 글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도저도 아닌 글자들의 나열일 지도…


2

10월 토론도서가 신경숙의 <외딴방>으로 선정되었다.

신경숙…모른다.

그녀의 작품은 최근작 <바이올렛>을 읽었을 뿐이다.

 

그나마 별 감흥 없이 읽었던, 미나리였었나 하여튼 늪 같은 저수지에

군락지를 형성했다는 것에 대한 지리한 묘사나

주인공의 처절한 인생역정과 끝내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 등등

어느것 하나 맘에 든 것이 없었던 책이었다.

 

아니 모든 것이 싫었던 건 아니다.

딱 한 구절. 300여쪽이나 되는 책에서 딱 한 구절만은 너무도 아름다웠었다.

그 구절을 어디다 적어두었는데…어디다 두었더라.

둔 곳도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 한 구절을 찾기 위해서 책을 다시 읽어야 하나…


신경숙…63년생이라니까 정확한 나이로 계산해보면 41살.

마흔한살의 여류작가이다.

 

사진을 보았다.

책 속의 그녀는 어딘지 모를 외로움 혹은 고독에 잠긴 채 무언가 고즈넉히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외딴방>에서 지내던 그 시절의 기억을 되새김하고 있는 걸까…

무엇이 그녀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하는가…

 

책 속에 해답이 있으려나…나. <외딴방>을 읽으려 한다.

 

 

3
모이면 분석하기 좋아하는 우리는 <외딴방>을 해부하기 시작한다.

종로2가에 위치한 민들레영토 세미나실에서 각자 읽은 <외딴방>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이 책을 어찌 해부할 지 논의한다.

 

제일 먼저 제목부터 칼질을 시작한다. <외딴방>이 가지는,

작가 신경숙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실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왜 제목이 <외딴방>일까…

 

서른둘의 그녀. 어느날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하계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너 작가가 되었구나. 지금 신문에서 네 사진을 보고서 전화하는 거다.”

“사진을 딱 보고서 낯이 익더라니 그게 너였더구나.

그래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얻으려는 데 쉽게 가르쳐주지 않더라.”

“근데 너의 책에선 우리들의 얘기는 없더구나. 혹시 그 시절의 우리들이 싫었니?”

 

서른둘의 그녀는 말한다.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 때 그 시절이 싫었던 것만은 아니다.

아니 잊고 싶었다고 말해야 하나…

아니 그렇지 않아.


열여섯의 그녀.

마당에서 쇠스랑을 가지고 놀다. 쇠스랑에 발을 찔린다.

찔리는 순간에, 찔리고 나서 한동안 빼내지도 못하고 있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

하지만 그녀는 찔리는 순간에도, 찔리고 나서 한동안 빼내지도 못하고 있을 때도

아프면 당연히 나와야 할 눈물과 울음이 방울과 외침으로 만들어져 나오지 않았다.

쇠스랑은 헛간에 누워서 가만히 있는 그녀를 보고 뛰어온 엄마가 빼주었다.

등짝을 때리며 왜 소리도 안지르느냐고 나무란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열여섯의 그녀. 그제서야 쇠스랑에 찔린 상처에 아픔을 느끼고 눈물과 울음을 운다.


무어냐. 쇠스랑에 찔린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찔리고 나서 그녀의 행동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그것이 왜 여고동창생의 전화 한 통에 기억이 났는가…

우리는 잠시 쇠스랑을 책에서 도려내어 한 쪽에 잘 놓아둔다.

그 도려낸 부분은 나중에 다시 확인 할 것이다.

 

열여섯의 그녀. 된장을 바른 발을 끌고 쇠스랑을 들고서 우물가로 간다.

그리고 쇠스랑을 우물에 던져버린다.

 

무어냐. 쇠스랑에 대한 복수냐.

나에게 상처를 준, 아픔을 준,

고통의 기억물인 쇠스랑이 당장 눈에서 사라지면 잊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런다고 그 사실이 은폐될까.

 

열여섯의 그녀.

세상을 안다면 알고 모른다 모를 그 나이에, 우물에 쇠스랑을 넣었다.


나중에 외사촌에게 그 사실을 조심스레 고백한다. 열아홉의 외사촌은 이렇게 말한다.

 

“왜 우물에다 쇠스랑을 넣었어?”

 

열여섯의 그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해 우물거린다.

 

“우물이 더러워지잖아. 이 담에 내려가면 꺼내야겠다.”


열여섯의 그녀.
그제야 우물속에 던져버린 쇠스랑을 꺼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우물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쇠스랑과 우물…

우리들의 분석에 의해 도려내어진 것들을 조심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쇠스랑과 우물. 사물과 장소. 아픈 기억과 마음 속 깊은 곳…

 

이 책이 신경숙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면,

열여섯의 그녀는 아픈 기억을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는 상징적 의미를

쇠스랑과 우물이라는 경험을 떠올림으로서 이 책의 주인공이자 작가 자신이

해결해야 할 숙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엔 우물 속에 감추어진 쇠스랑을 꺼내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찾아보자. 있다. 우물속에서 쇠스랑이 꺼내어지는 장면이…

그런데 작가 자신이 꺼낸게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 희재언니…그녀는 누구?

 

 

4
책읽기는 점점 속도를 더해간다.

일단 희재언니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우물 속, 그러니까 작가의 마음 속 깊이 감추어진 것을 누군가의 도움으로 꺼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어찌되었든 한 사람의 내면 속을 들여다보고 어릴 적 상처마저 건드릴 정도의 인물이라면 보통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열여섯의 그녀에겐 상당한 비중을 둔 게 틀림없다. 희재언니, 희재언니…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정읍에 살던 그녀가 큰오빠를 따라서 외사촌과 함께 서울로 상경을 하고,

자리를 잡은 <외딴방>…아, 제목을 언급하고 있다.

<외딴방> 이 곳이 우물과 함께 작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비밀스런 공간일게다.

분명 공장부지 근처에 조성된 좁디좁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공간일진데, <외딴방>이란다.

바퀴벌레처럼 우글거리며 살고는 있지만

방과 방의 경계를 이루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서로 왕래가 없다는 것을 뜻 할게다.

그만큼 각박한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표변하는 말이 <외딴방>일테고…


열여섯에 그녀.

돈을 벌기 위해 나이를 속여 외사촌과 같은 공장에 취직을 한다.
법정연령 열여덟이 안되면 임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큰오빠도 동사무소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지만 세 사람 입에 풀칠하며 살기엔 그래도 버거운 살림살이.

70년대 우리네 생활상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잠깐 신경숙의 글쓰기에 대해 잠시 말해볼까.


신경숙의 글쓰기를 세간의 입들은 어찌 평할까.

어느 평론가는 그녀의 글쓰기를 아름다운 시를 읽는 기분이란다.

소설을 읽는데 한 편의 시를 읽는 기분이라고? 어디 읽어보자.

무릇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어진 것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아무리 허접한 것일지라도…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싫다고?

그렇다면 왜 싫은지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어야 훌륭한 독서쟁이라고 말 할 수 있을게다.

적어도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려면 자신만의 책읽기를 정립한 뒤여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책 한권 읽고, 읽고 나서도 아무 생각없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즉, 내가 읽어보니까 이 책은 이런 책이더라.

그렇다고 남들이 그 책이 어떻다고 논한걸 베끼는 수준이 아니라

그 책은 그 부분이 가장 맘이 들었어. 라고 자신있게 말 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않을까.

 

신경숙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분명 책을 읽고 있는데,

내가 읽고 있는 글자들이 소리가 되어 내 귀로 들린다는 말이다.

시각의 청각화…공감각적인 문체다.

신경숙의 글을 한참 읽다보면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듯,


주인공이 서울의 길거리를 지나는 대목을 읽다보면

내가 어느새 그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거나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그림을 보는 듯하다.

사진이나 영화를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신경숙이 사물이나 풍경을 묘사할 때 사진을 찍은 듯이 세세하게 설명하느냐하면 그렇지도 않기 때문이다.

한폭 한폭 흐릿한 수채화를 내 주위에 걸어놓고 감상하는 느낌이다.

신경숙은 그저 나는 걷고 있다. 여기는 서울의 어디쯤 되는 곳이다.

 내 앞에는 어떤 것이 보이며, 내 옆으로는 무엇이 지나가며, 내 머리위엔 이런게 펼쳐졌다.라고 그릴 뿐이다.

 

그런데 참 요상하지.

그 글을 읽고 있으면 난 그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이것이 신경숙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이 아닐까…신경숙을 좋아하는 이는 이런 맛을 느낀이 일것이다.

 

그런데 이런투의 글쓰기가 때로는 독이 될 때도 있다.

예컨대 지루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와 비슷하다.

지리한 묘사, 짜증나는 상황설명도 이런투라는 것이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상대가 재미없거나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면, 닥쳐라고 말하든가,

이제 그만~이라고 끊어버리고 넘어갈 수가 있는데,

책읽기에서는 그럴수가 없잖은가.

읽던 책을 집어던지지 않는 이상 책을 띄엄띄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읽자니 짜증나고…그래서 신경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질색을 하는 것은 아닌지…

썰렁한 얘기 줄줄 나불대는 친구랑은 상대도 하기 싫은 것처럼…

 


5
책읽기는 계속된다.

열여섯의 그녀와 열아홉의 외사촌과 함께 상경하며 나누었던 서로의 꿈 이야기.

함께 취직한 공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꼭 붙들고 있는 모습.

우리의 꿈을 이루려면 학교에 가야한다며 노조위원장에게 외사촌과 나를 꼭 합격시켜달라고 쓴 편지를

남몰래 노조위원장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가슴 졸였던 일.

영등포여고에 합격해서 새로 교복을 맞추며 즐거워 하는 모습.

학교에서 만난 열여섯의 그녀보다 서너살이 더 많은 동급생들.

왼손으로 글을 써 수업시간에 필기 할 때마다 팔이 부딪혔던 짝꿍…

그리고 희재언니. 드디어 만났다.

 

희재언니는 내가 살던 외딴방에서 두칸 아래에 살고 있었다.

그동안 살면서도 왕래가 없었던 희재언니.

열여섯의 그녀가 희재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희재언니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던가.

 

그녀와 외사촌의 큰오빠는 정작 희재언니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못마땅히 여긴다.

다 큰 여자가 혼자살기 때문이라는 큰오빠의 설명을 열여섯의 그녀는 납득할 수 없다.

여자 혼자 살면 부도덕하고 행실이 바르지 못할 거라는 그릇된 편견.

그녀가 보기만 해도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등을 가진 큰오빠가 그녀가 보기에 행실바르고 착하기만한 희재언니를 무고하고 있다.

 

열여섯의 그녀. 희재언니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며 강하게 변호한다.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큰오빠의, 아니 남자들의 무지와 횡포를 참을 수 없었던가.

열여섯의 그녀. 큰오빠의 눈을 피해서 몰래 희재언니와 만난다.

 

 

6
계속되는 책읽기.

무얼까.

쇠스랑과 우물과 희재언니…

단서의 가닥은 일찌감치 잡혔는데, 신경숙이 감추고 싶어했던, 아니 묻어두고 싶어했던 무엇이었을까.

좀처럼 작가는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려하지 않는다.

희재언니의 이름마저도 쉽게 가르쳐주지 않더니…왠간해선 알려줄 성 싶지않다.

독자가 지칠 정도의 지리한 진행…

 

신경숙 작가의 문체를 살펴보자.

책의 처음과 끝에서 작가는 <외딴방>은 소설과 사실의 중간쯤 되는 글이라고 말한다.

소설이면 소설이고, 사실이면 사실이지. 그 중간쯤 되는 글은 무어란 말이냐.

 

토론 참가자 중 국문학도인 섬강님의 말을 빌어보자.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강한 서사구조를 가져야 한단다.

서사는 단순한 사실들의 나열 뿐인 이야기가 아니라, 기승전결을 갖춘, 한마디로 갈등이 있어야 서사로 볼 수 있단다.

 

그러고 보니 국어시간에 배운 기억이 난다.

소설의 기본요소들…주구문 인사배…

주제, 구성, 문체와 인물, 사건, 배경…각각 무엇의 3요소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꼬치꼬치 따지지말자(ㅡㅡ)

그러면서 강조했던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갈등>.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선생님이 시도때도 없이 나불거려서 잊혀지지 않는,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고 설킨 그 모양이 <갈등>이라고.

정작 칡과 등나무가 얽혀있는 모습은 보도 못한 내가 알 턱이 없잖냐고 반문하고픈 걸

꾸욱 참아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심리적 갈등을 느꼈던…바로 그 <갈등>.

그것이 없는 건 소설이 아니라고 했던게 생각난다.


<삼대>라는 소설을 떠올려 보자.

교과서에 실렸던 곳을 살펴보면, 주인공과 아버지의 갈등, 아버지와 병화간의 갈등, 아버지와 며느리간의 갈등, 주인공과 병화간의 갈등…

 

<외딴방>에선 그런 갈등이 없다.

 

신경숙의 자전적인 경험들을 나열하는 식의, 어찌보면 신경숙 자신의 일기같지는 않은가.

또 어찌보면 <외딴방>에도 나름 갈등구조를 가지고 있다.

큰오빠와 자신과의 갈등, 큰오빠와 셋째오빠간의 갈등, 큰오빠와 외사촌오빠간의 갈등…이런게 있는 듯하다.

 

하지만 <갈등>이 있으면 <해소>가 있어야 하는 법.

<외딴방>에서는 그런 <갈등과 해소>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다.

그저 작가의 기억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일들을 나열하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그리고 열여섯의 그녀가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의 제목을 가지고 선배와 티격태격했던 부분들을 보아도

이 책이 소설과 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이 또한 자전적인 사실의 경험을 쓰면서도 일부는 소설적 허구라고 연막을 쳐서

무언가 밝히기 싫은 것을 은폐하려는 의도로 볼 수 밖에 없다. 무어냐 그렇게 감추고 싶었던 것이…

 

 

7
읽고 또 읽고…좀처럼 신경숙은 고백하려하지 않는다.

지리한 사실들의 나열, 아니다. 아니다.

그 사실들의 나열이 <외딴방>에선 지리하지 않았다.

 

60년대에 태어나 7,80년대에 꽃다운 나이를 살아야 했던

우리네 청춘들의 잔상을 지리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이 글을 쓰는 나역시 그 시절을 일부 겪지 않았던가.

내 어린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에 나는 쉽게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외딴방>은 신경숙의 자전적인 소설이며,

<외딴방>을 읽지 않고서 신경숙이란 작가를 논할 수 없을만큼

신경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필독해야 할 책이다.

 

또 신경숙과 같은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외딴방>을 읽으며 그시절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난 이런면에서 <외딴방>이 좋았다.

그래서 두꺼운 책임에도 쉬 읽을 수 있었다.

여타의 작품들보다 지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덧 남은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을 무렵, 희재언니가 어느새 열아홉살의 그녀에게 자신의 방 열쇠를 맡긴다.

 

그간에 희재언니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의상실을 다녔고, 거기서 만난 남자와 동거를 했으며,

열쇠를 맡길 즈음에는 동거남과 헤어지는 일도 겪었다.

 

열아홉살의 그녀에게는 착하디 착한 희재언니가 그녀에게 좀처럼 하지않는 부탁을 한다.

신경숙이 쓴 글에서 우울함이 묻어난다. 책을 읽는 나에게 들려주던 음성도 스산한 어조를 띤다. 꼭 누가 죽을 것만 같은…

 

희재언니가 열아홉의 그녀에게 부탁한 것은

자신이 시골로 떠나고 난 빈방을 잠궈달라는 것.

내가 잠그고 시골로 떠나도 무방하지만 어차피 훔쳐갈 물건도 없는 빈방이니 잠그나 안잠그나 별상관 있겠느냐.고,

열쇠를 너에게 맡길 테니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그 때 잠궈 달라.고…

 

열아홉의 그녀, 희재언니의 부탁을 그러마하고 열쇠를 받아쥔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며 희재언니의 부탁을 잊지 않은 그녀. 희재언니의 문을 바라본다.

그냥 잠그려 하다가 문을 한번 열어본다. 텅 빈 듯 썰렁한 부엌…

혹시나 희재언니가 방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미치지만 열아홉의 그녀는 문을 닫고 문을 잠근다.

 

며칠 뒤 확인 된 희재언니의 주검.

 

 

8
이것이었나. 신경숙이 감추고 싶었던, 마음 속 쇠스랑은…

어쩌면 영원히 꺼내기 싫었고,

지금도 그 우물 속에 있는 쇠스랑을 그저 세월에 묻어두고 싶었던가.

희재언니가 주고간 열쇠만큼의 죄책감 때문에…

 

서른둘의 그녀는 그동안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우물 속의 쇠스랑은 꿈속인 듯, 상상인 듯 희재언니의 도움으로 마침내 건져올려진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기를…

 

이제 그녀에겐 행복한 기억만 담아내기를 바란다…

 

9
3시간이 지났다.

이번에도 하고픈 말들을 다하지 못한 채 토론회가 끝나버렸다. 후훗

다음달을 기약하며…

 

 

 

에필로그...

글머리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글은 감상문과 후기의 중간쯤 되는 글일게다.

조금 밝히자면, 신경숙의 문체를 조금 흉내내보았다^^;

 

조그만 바램이 있다면...내 글을 읽고서 <외딴방>을 읽고 싶은 맘에 생기길...

괜찮은 책이었다...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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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저/김석희 역
열림원 | 200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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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와 그의 하인인 프랑스 사람 파스파르투, 이 둘을 쫓는 형사 픽스가 펼치는 신나는 모험 이야기다. 정말 쥘 베른의 작품을 읽노라면 감탄과 찬사를 아낌없이 쏟아내고 싶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15소년 표류기╝, ╔해저2만리╝, ╔지구 속 여행╝에 이은 그의 작품 중에 4번째로 읽게 되었다. 물론 이상의 책들은 어릴 적에 이미 읽은 경험이 있었지만 아이때 읽은 감동과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느끼는 감동은 엄연히 다르다.

이번엔 세계일주다. 물론 이전에 읽은 작품들도 여행이 주목적을 이뤘지만 이번엔 시간을 다투는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오늘날엔 교통수단이 더욱 발달하여 이보다 더욱더 빠른 여행을 할 수 있지만 19세기 당시로선 최고의 빠르기로 달렸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여행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보여주는 백과사전식의 나열은 조금 지루하지만 과거의 사람들은 어떤 사고를 가졌었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오히려 즐거웠다. 특히 소설 속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역사적 감각은 역사책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루하고 딱딱한 문장이 아닌 흥겨운 이야기 속에 담긴 역사를 토대로 역사공부를 하는 것도 역사를 잘 할 수 있는 비결 중에 하나다.

또 쥘 베른이 잊지 않는 것은 과학적 지식을 뽐내는 듯한 사건들의 나열이다. 이는 그 당시에는 공상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엔 대부분 실현된 것들이기에 더욱 호기심이 가는 부분이다. 증기기관이 발명된 19세기. 그들의 눈엔 분명 신세계가 펼쳐졌을 것이고 눈부신 과학발달이 혜택을 받은 미래가 보였을 것이다. 쥘 베른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이런 기대감이 쥘 베른의 입장에서 미래인인 내(독자)가 시선을 맞춘다는 것은 묘한 흥분을 자아낸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꿈꾼 미래가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분명 오늘날의 아이들이 읽기에 진부한 면이 있는 책이다. 또 그 당시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이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거나 부당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괜히 그런 점에 초점을 맞추어 딴죽을 걸 필요가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19세기는 19세기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왜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오늘날에 잣대로 파악하려 하는가? 과거의 잘못된(이런 가치판단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만이다. 그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미래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면 잘못 투성일게 뻔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함부로 단죄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아무튼 ╔80일간의 세계일주╝.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쥘 베른의 다른 여행들에 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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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저/김석희 역
열림원 | 200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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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와 그의 하인인 프랑스 사람 파스파르투, 이 둘을 쫓는 형사 픽스가 펼치는 신나는 모험 이야기다. 정말 쥘 베른의 작품을 읽노라면 감탄과 찬사를 아낌없이 쏟아내고 싶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15소년 표류기╝, ╔해저2만리╝, ╔지구 속 여행╝에 이은 그의 작품 중에 4번째로 읽게 되었다. 물론 이상의 책들은 어릴 적에 이미 읽은 경험이 있었지만 아이때 읽은 감동과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느끼는 감동은 엄연히 다르다.

이번엔 세계일주다. 물론 이전에 읽은 작품들도 여행이 주목적을 이뤘지만 이번엔 시간을 다투는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오늘날엔 교통수단이 더욱 발달하여 이보다 더욱더 빠른 여행을 할 수 있지만 19세기 당시로선 최고의 빠르기로 달렸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여행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보여주는 백과사전식의 나열은 조금 지루하지만 과거의 사람들은 어떤 사고를 가졌었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오히려 즐거웠다. 특히 소설 속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역사적 감각은 역사책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루하고 딱딱한 문장이 아닌 흥겨운 이야기 속에 담긴 역사를 토대로 역사공부를 하는 것도 역사를 잘 할 수 있는 비결 중에 하나다.

또 쥘 베른이 잊지 않는 것은 과학적 지식을 뽐내는 듯한 사건들의 나열이다. 이는 그 당시에는 공상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엔 대부분 실현된 것들이기에 더욱 호기심이 가는 부분이다. 증기기관이 발명된 19세기. 그들의 눈엔 분명 신세계가 펼쳐졌을 것이고 눈부신 과학발달이 혜택을 받은 미래가 보였을 것이다. 쥘 베른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이런 기대감이 쥘 베른의 입장에서 미래인인 내(독자)가 시선을 맞춘다는 것은 묘한 흥분을 자아낸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꿈꾼 미래가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분명 오늘날의 아이들이 읽기에 진부한 면이 있는 책이다. 또 그 당시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이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거나 부당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괜히 그런 점에 초점을 맞추어 딴죽을 걸 필요가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19세기는 19세기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왜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오늘날에 잣대로 파악하려 하는가? 과거의 잘못된(이런 가치판단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만이다. 그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미래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점으로 보면 잘못 투성일게 뻔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함부로 단죄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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