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책 읽어주는 선생님...[책이 있는 구석방]
http://blog.yes24.com/zizi0908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異之我...또 다른 나
이 세상 어디를 싸돌아다녀봐도 가득 쌓인 책방 한 구석 만한 곳이 없더라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2월 스타지수 : 별4,865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Wish List
My Story
나의 리뷰어 도전기
이벤트 및 우수리뷰 선정
개편독서습관
독서습관캠페인
새벽/야밤 독서
이달의 필독서
異之我...또 다른 나
어떤 직업이 있나요?
마르크스를 읽다
이이화의 역사를 읽다
세더잘 교양을 읽다
동화책을 읽다
듄을 읽다
리뷰어클럽을 읽다
한빛비즈를 읽다
인간사랑을 읽다
나의 리뷰
2021년에 쓴 리뷰들
2020년에 쓴 리뷰들
2019년에 쓴 리뷰들
2018년에 쓴 리뷰들
2017년에 쓴 리뷰들
2016년에 쓴 리뷰들
2015년에 쓴 리뷰들
2014년에 쓴 리뷰들
2013년에 쓴 리뷰들
2012년에 쓴 리뷰들
2011년에 쓴 리뷰들
2010년에 쓴 리뷰들
2009년에 쓴 리뷰들
2008년에 쓴 리뷰들
2007년에 쓴 리뷰들
2006년에 쓴 리뷰들
2005년에 쓴 리뷰들
2004년에 쓴 리뷰들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어떤 직업이 있나요?
™구석방 토론회
역사 / 과학
태그
이제좀여유가생겼구만 더넓은세상을경험해야지 겁나안읽힘 검술연습 방어막 베네게세리트 아트레이데스 하코넨 백신접종 이상증세
2007 / 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최근 댓글
오랫만이세요 ~~~ 
지아님~ 이 주의 우수 리뷰 선정 축.. 
어쩌면 현대인들 모두 지킬박사처럼 이.. 
축하드립니다 ㅎㅎ 
어릴때 본적있지만 그때는 이런 초능력.. 
오늘 211 | 전체 761205
2005-07-18 개설

2007-11 의 전체보기
재회 | ™구석방 토론회 2007-11-27 16:36
http://blog.yes24.com/document/79217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구드룬 파우제방 저/최혜란 그림/함미라 역
보물창고 | 2006년 06월

구매하기

1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모였다. 물론 예전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풀피리님, 쭈양, 그리고 나...아니 다시 부르자. 혜원샘, 희진양 그리고 지아. 이렇게 셋이 모여 단출하게 다시 토론회를 시작하였다.

 

 장소도 바꾸었다. 신촌 민들레영토에서 세미나실을 빌려 매달 열었던 토론회. 그곳의 기억은 추억으로 간직하며 다시 예전만큼의 규모가 되면 그때 다시 그곳에서 열고자 하였다. 그래서 다시 모인 장소는 <부천역 근처>.

 

 사실 또 한 명을 꼬시려고 했다. 처음 만나는 자유로 불렸던 현귀샘. 다시 모이자는데 너무 소극적이어서 장소라도 집과 가까우면 나올까 싶었는데 늘 '선약이 있다', '그날은 집안일이 있다' 등등 핑계를 대며 나오지 않았다. 안 놀아~ㅡ-^

 

2

 6시로 잡은 약속은 점점 당겨져 2시가 되었다가, 1시로 결정을 하더니 정작 시간을 당긴 아가씨들(?)이 늦게 도착하였다. 나 삐침이야~

 

 

 [벌써 3년]

 

  혜원샘과 희진양을 부천역 앞에서 만나고 헤어진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그건 이 글을 다 쓰지 못한 채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얘기와 같은 뜻일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이들과 만남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기대가 크면 아쉬움도 큰 법. 난 이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바랐나 보다.

 

 [내가 바란 것]

 

  난 무척이나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살았다. 어릴 적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덕분에 늘 혼자 집을 보기 일쑤였다. 또 일곱 살 터울인 여동생이 있으나 서로 성격이나 취향이 너무나도 달라 아웅다웅 다투기 일쑤였지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조차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더구나 중학교부터 온통 남자투성이인 곳으로만 적을 두었더니 변변한 여자친구는 사귀지도 못해 보았고, 남자친구라고 해도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적인 친구>가 없으니 그야말로 혼자. 외톨이가 따로 없었다.

 

  그래도 집에는 TV라는 친구가 있어 매일매일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를 반겨주었고, 밖에는 오락실이란 공간이 있어서 동전 하나만 있어도 나랑 1~2시간 정도는 즐겁게 대화와 스킨쉽을 허락하곤 했었다.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내가 "죽어라~"를 외치며 단추(버튼)을 사정없이 두드려대면 정말로 죽는 시늉뿐만 아니라 죽어주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절친(?)을 멀리하게 된 건 <책>이라는 친구 덕분이었다. 중학시절엔 <추리소설>, 고교시절엔 <무협지>. 대학시절엔 잠시 책을 멀리했지만, 이십대 중반부터 다시 책을 잡기 시작하자 무섭게 읽어댔다. 1년에 100권 읽기에 도전하며 1년에 거의 200여 권씩 읽어대며 오늘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책을 읽고 나면 <공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책을 즐겨 읽은 사람들은 아시리라 믿는다. 나는 이런 느낌을 얻을 수 있었는데, 다른 사람은 어떨까? 그러다 찾게 된 게 <인터넷 책 카페>와 <블로거>들이었다. 이곳에는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고, 그들과 책을 통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다 만난 이들이 바로 <토론회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 혜원샘과 희진양도 시차를 두고서 차례차례 만났다.

 

  이런 내가 이들에게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이야기>였다. 애정이 듬뿍 담긴 이야기말이다. 정말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가까운 카페로]

 

  시간은 흘러 벌써 1시30분이 넘었다. 조금 늦는다는. 거의 다왔다는 문자메시지가 왔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그닥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다. 불만. 아니 삐침에 더 가깝다. 37분. 혜원샘이 부천역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나오는데도 한 눈에 알아보다니...

 

  희진양은 2시가 넘어서야 도착했으니, 그동안 부천역 앞에서 혜원샘과 나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살짝 뾰루퉁한 내 말에 혜원샘은 달래듯이 답을 해준다. 이런 걸 바란 건 아닌데...

 

  희진양까지 오고서 우리 셋은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다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을까]

 

  예전에 비하면 참 초라한 만남이었다. 한 때는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또 떠들어도 모자라 밤을 지새우지 일쑤였고, 한밤중이라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아쉬워했고, 올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였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우리 셋은 바로 이 때를 그리워하며 서로 사람들을 끌어모을 궁리들을 조심스레 꺼내 놓았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실망과 상처 때문에, 혹은 바쁜 일과 덕분에 더이상은 올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젠 더이상 바랄 수 없는 일이라는 얘기가 푸념과 함께 나왔다.

 

 [구드룬 파우제방]

 

  토론회이니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어땠어요? 이 책."

 

  "지아님이 선정한 책이니 먼저 말해보아요."

 

  "음..이 책은..."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리 오래 떠들지 못했다. 혜원샘과 나는 선생이니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지만, 희진양(지금은 선생이 되는 공부를 하는 중)은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가벼운 이야기만 즐겨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깊은 이야기는 좀처럼 나눌 수가 없었다.

 

  더구나 혜원샘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토론>을 벌이기보다는 각자 세미나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나마 한 명은 질문을 모르는 패널이 되어서...

 

  결국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이야기>를 접어야 했고, 마침맞게 희진양도 성당엘 가보아야 한다며 자리를 떳다.

 

 [다음은 있을까?]

 

  희진양이 가고나서 둘만 남은 우리는 애초에 부르려했던 '처음 만나는 자유'에게 연락을 했다. 결과는 안 나올 수 없다는 얘기. 결국 카페를 나온 혜원샘과 나는 바로 근처에 있는 <이화 주막>으로 갔다.

 

  혜원샘은 소주, 난 막걸리. 안주는 두부김치와 해물파전.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것도 불협화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술 한잔 들어가니 술술 나오는 이야기보따리.

 

  사는 이야기..돈벌이는 괜찮나? 사귀는 사람은 있나? 책 이야기..사실 이번 책은 별로 재미가 없는 책이었다. 다른 책을 선정해보자. 그럼 어떤 장르? <문학?> 이건 내가 잘 모르고, <비문학?> 이건 혜원샘이 잘 모르고..그러다 영화 이야기가 나왔지.

 

  칼 세이건의 <콘택트>. 3년 전에도 오래된 영화였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혜원샘. 주제가 뭐였죠?

 

  "여주인공이 이런 얘기를 해요. '만약 지구에만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그건 정말 큰 공간낭비일거예요' 뭐, 남자주인공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죠. 여주인공은 <과학자>, 남주인공은 <성직자> 둘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죠."

 

  "와~ 지아님, 그걸 다 기억해요?"

 

  "몇 년 전에 다운받아 영화를 봤어요."

 

  "참, 지아님의 기억력은 남다른 것 같아요. 몇 년 전 기억도 다 떠올리는 걸 보면요."

 

  "어쨌든 이 영화의 주제는 '과학적 신념이든 신학적 신념이든 결국 최종결론은 같다'는 거예요. 뭐, 제가 생각하기에는 말이죠."

 

  "그게 무슨 말이죠?"

 

  "음...여주인공은 <과학자>이기에 신의 존재를 믿진 않죠. 그러나 결국 탐사선을 타고서는 <황홀경>을 경험해요. 미지의 존재와 조우한 여주인공이 내린 결론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남주인공은 <성직자>예요. 신의 존재를 믿죠. 그래서 늘 신앙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황홀경>. 즉,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얻는 경이로운 경험이죠. 그래서 남주인공이 내린 결론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분이 계시다'는 거죠."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경험을 한다."

 

  "칼 세이건은 <과학자>와 <성직자>가 추구하는 것은 '같다'고 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들은 서로 대립하기 일쑤죠. 미국이란 현실에서는 더욱더요. 사실 요즘 미국에선 <지적설계자>라는 이론이 새롭게 등장하며 이른바 <창조과학>이라는 게 부각되고 있어요. 이게 뭐냐면 간단히 말해서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거예요."

 

  "이걸 지금 미국에선 아이들에게까지 가르치려고 하고 있지요. 과학시간에 말이죠.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단다. 우주의 모든 것을 말이지'..예를 든다면 말예요."

 

  이때쯤 혜원샘에게 전화가 왔다. 훈이형이다. 온단다. 와도 되냐고 혜원샘이 묻는데 난 상관없다고 했다. 사실 훈이형과는 껄끄러운 게 있다. 우리 둘 모두 서로 고집불통이었기 때문에 한 번 논쟁이 붙으면 서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훈이형이 왔다. 오자마자 무슨 막걸리냐며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으이그..그냥 남 쳐묵는 거 그냥 봐주면 안 되나..싶었지만 또 다투고 싶지 않아...훈이형이 질색하는 닭발안주 시키는 걸로 분을 삭였다.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나누는 데 훈이형만한 사람도 없다. 해박한 지식에, 논리정연한 말솜씨에, 지독한 고집쟁이라서 한 번 논쟁이 불 붙으면 좀처럼 심심해할 겨를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더이상은 논쟁을 걸고 싶지 않다. 잘난 척도 보기 싫다. 난 이제 지쳤다. 싸우려는 게 아닌데, 그냥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인데...서로 어깃장을 부리기 일쑤고 서로 약점을 찾아 공격하고 만다.

 

  이건 아니다. 더이상 아니다. 이젠 헤어질 때가 왔다. 정말 아쉽지만...

 

 [에필로그]

 

  그 뒤로 혜원샘과 희진양과는 몇 차례 더 만났다. 아쉽게도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도의 신변잡기를 나누거나 영화를 함께 보거나...벌써 1년도 넘은 일이 되어 버렸지만.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3) 트랙백(0)
이 메모를 | 공감 0        
역사라...여기 좀 보세요(--)뻔뻔 | 나의 리뷰어 도전기 2007-11-27 00:05
http://blog.yes24.com/document/79168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제목을 보았습니다. <조선의 왕과 신하, 부국강병을 논하다>
 
 다들 아시다시피 조선은 왕권보다 신권이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조선 초기에는 김종서 장군을 앞세워 4군6진을 개척하였고, 박위를 내세워 대마도를 정벌할 정도로 강한 나라였지요. 그런데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 여전히 왕권보다 신권이 강한 나라였지만 임란·호란을 겪고도 정신을 못차리고 세도정치로 패망을 재촉하다 일제에 나라를 통채로 넘겨주고 말지요.
 
 조선이 건국될 당시에는 왕권을 견제할 만한 신권을 강조하였죠. 이른바 <왕도정치>를 추구하는 것이 [부국강병]하는데 최적화 조건이었습니다. 왕도정치라는 것이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유교에서 말하는 덕(세상 사는 도리)으로 다스리는 이상국가 거든요. 그래서 왕이 바른 길(道)을 걷게 하기 위해 신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었습니다.
 
 그 결과 조선초기에는 <왕도정치>에 입각해서 아주 바람직한 정치가 이루어졌고, 이는 [부국강병]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세조의 왕위찬탈을 시작으로 왕권은 덕(도리)을 잃었고, 중종반정 히후 본격적으로 대두한 사림파는 권력만을 탐하는 세력으로 자라나 붕당을 이루어 뻔질나게 당파를 일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신권은 임란·호란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조선패망을 재촉하는 세력으로 전락했습니다.
 
 우찌까요. 왕권과 신권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조선의 부국강병을 논한다는 것은 제 호기심을 건드립니다. 역사책에서 날 제외하지 말아줘요. 한마디로 읽고 싶다는 게지요. 간절히(--)뻔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톰과 제리 | 2007년에 쓴 리뷰들 2007-11-26 23:32
http://blog.yes24.com/document/79165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숲 사람들

콜린 M. 턴불 저/이상원 역
황소자리 | 2007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1 이 책을 읽으며 난 두 가지 사실에 지적 충격을 받았다. 난 피그미라하면 그저 흑인들 중에서 키가 작은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속담에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는데, 이 말은 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 같아 또 한 번 놀랐다. 그들의 놀라운 지혜와 체구답지 않은 몸놀림은 상상만으로는 부족할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말이다. 피그미와 마을 흑인과의 관계를 조금 들여다 보니 어릴 적 자주 보던 <톰과 제리>라는 만화영화가 떠올랐다. 몸집은 작지만 영특한 제리, 그리고 어리석은 건 아닌데 번번히 제리에게 골통을 먹는 톰의 관계가 마치 피그미와 마을 흑인처럼 연상되어 읽는 내내 즐거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마을 흑인들의 성인식인 <은쿰비>를 치를 때 흑인들은 피그미들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피그미들 중 성인식을 치를 나이의 소년들을 강제적으로 치르게 한다. 하지만 피그미들은 그저 잠깐 숲을 떠나 마을 소풍 갔다 오는 것인냥 흑인들의 잔치에 참가에 먹을 것만 축내고 돌아와 자신들만의 <성인식>을 치른다. 물론 <은쿰비>를 치르고 돌아온 피그미 소년을 성인 대접을 해주지도 않는다. 비록 자신들의 성인식이 따로 마련되지는 않았지만(이를 두고 흑인들은 피그미가 자신들에게 의존한다고 주장하지만) 숲에서 생활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으로 그들만의 성인식을 치른다.
 
 결국 피그미들은 억압받지도, 종속될 수도 없는 자유로운 종족인 것이다. 단지 평균 신장이 140cm로 작을 뿐, 그들은 마을 흑인들처럼 멍청하지도, 마을 흑인들처럼 겁쟁이도 아니다. 겁쟁이가 아닌 증거는 마을 흑인들은 코끼리나 다른 동물을 사냥할 때 함정이나 덫을 만들지만, 피그미는 창과 화살을 들고 직접 사냥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 자그마한 체구로 동물 중에 가장 덩치가 큰 코끼리를 사냥한다는 아이러니는 피그미가 용맹하다는 증거일 뿐 아니라 존중받아야 마땅할 존재라는 것을 각인 시킨다. 그러니 숲을 떠난 최초의 피그미가 백인사회에서 다름 아닌 <군대>에 복무했다는 사실도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2 또 피그미는 진정을 숲을 사랑하는 종족이었다.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는 유일한 동물이 사람이라는 말도 있는데, 피그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일 것이다. 그들은 초기 인류가 숲을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숲에서 살아 남은 후손임에 틀림없다.
 
 여기서도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난 숲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공기 맑고, 물 깨끗한 청정지역이라 사람들이 살기에 아주 좋은 곳인 줄로만 알았다. 유럽이나 북미의 전원 풍경을 보면 끝없이 펼쳐진 숲 속에 오두막집에서는 따뜻한 난로와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것만 보아왔던 나에겐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숲에선 정착생활에 필수요소인 <농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애써 개간한 농경지는 채 3년이 되지 않아 싹을 틔우지 못하게 하고, 숲이 집어 삼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숲 속에 열매가 풍부한 곳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마을 흑인들은 숲을 악마가 깃든 곳이라 하여 무서워 한다고 하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런데도 피그미들은 이런 척박한 숲에서 오랜 세월을 생존했고, 숲을 벗어나 산다는 것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는 삶. 인류는 배고픔을 그토록이나 싫어했는데, 어째서 피그미들은 그곳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피그미들이 진정으로 숲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숲은 항상 어둡다. 울창한 숲은 햇빛을 차단하고 항상 음습하고 썩은 내가 진동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피그미들은 그런 것조차 숲이 준 것이라며 좋아한단다. 우리들에게 좋은 것만 주는 숲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불편할 뿐이니 나쁜 것이 아니란다. 진정 사랑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일 것이다. 이들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배운다면 <지구온난화>나 <환경파괴>같은 말은 쏙 사라질 텐데...
 
3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는 피그미들에게서 한 가지를 더 배웠다. 그들의 교육관이다. 그들은 어른들 모두가 아이들의 부모요, 아이들 역시 모든 어른들의 자식이었다. 그래서 내 아이, 남의 아이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면 엉덩이를 때려 훈육 시킨다. 이런 사회에서 범죄가 일어날 수 있을까?
 
 요즘 우리 사회를 보고 있으면 한심한 장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청소년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훈계하는 어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되려 지나가는 어른에게 당당히 불을 빌리고, 청을 받은 어른은 아무 말없이 불을 빌려 준다. 청소년에게 담배를 파는 건 불법이다. 그런데도 청소년들은 당당히 담배를 피고, 그걸 본 어른은 적절한 훈계조차 하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내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상관하고 싶지 않고, 내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만약 피그미 사회였다면 이런 일이 만연할 수 있을까? 안타까운 현실이다.
 
4 이 책을 덮으며 책이 쓰여진 시기를 살펴 보았다. 5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 왜 이제서야 지금 우리 손에 들려 있는 것일까? 조금 더 빨리 볼 수는 없었을까? 이렇게 좋은 책이 왜??? 물론 <인류학>이란 장르가 굉장히 읽기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마가릿 미드의 말처럼 정말 수려한 문장이라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는 데 공감하였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고, 이 책을 읽는 이에게 진정한 사랑을 전해줄 것이다. 숲을 사랑하는 피그미도, 피그미를 사랑한 턴블도 말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영수증 받아가세요~ | 2007년에 쓴 리뷰들 2007-11-25 13:02
http://blog.yes24.com/document/79047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죽이는데

한경아
천케이(1000K) | 2007년 07월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가계부를 정리하다보면 항상 빵구가 나기 마련이다. 이럴때면 늘 영수증을 꼭 챙겨야지 하면서도 소액결제를 할 때면 그냥 무심코 넘어간다. 이런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영수증>은 물건을 구입하고 받은 영수증이 아니다.

 

 오래전 TV를 보다 우연히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울에 자식을 보낸 뒤 영상으로 소식을 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할아버지를 인터뷰하던 중에 나온 <도장>과 <영수증>이 아주 인상 깊었다. 할아버지 말씀인즉, 할머니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그럼 도장도 찍고, 영수증도 받았는데..."

 "그럼 할머니를 얼마큼 사랑하세요?"

 "거참...영수증 받았데도.."

 

 이 할아버지는 자신의 사랑을 확인받았다는 의미로 '섹스'를 <도장>으로, '자식'을 <영수증>으로 표현하셨다. 오래된 분이시라 '연애결혼'을 꿈도 꾸지 못하시는 분이셨겠지만, 그 분은 자신의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라 짐작한다.

 

 요즘에는 어떨까?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찍은 도장의 결과물인 영수증을 잘 챙기는가? 젊은 남녀가 서로 도장을 찍기까지 하루도 긴 시대에 꼬박꼬박 영수증을 잘 챙긴다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챙기지 못한 <영수증>으로 인해 닥쳐 올 미래는 어둡기만 할 것이다.

 

 참으로 불명예스럽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낙태공화국]이라고 할만큼 <불법낙태시술>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전통적으로 성(특히 여성의 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경향이 강하고, 사회적으로 금기하는 터부도 많아서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사회가 개인에게 문제를 전가하고, 개인은 사회 탓으로 돌릴 때 정작 상처를 받는 부류는 다름아닌 <영수증>, 특히 폐기되고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그러니까 처신을 잘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과만을 놓고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에 자칫 <공리주의>에 빠져 낙태를 옹호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인식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이들은 성을 너무 터부시하니까 성인은 물론 젊은이와 청소년이 성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음지에서 성을 즐기는 문화가 만연되었기에 [낙태문제]가 커졌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더이상 성을 축축하고 더러운 곳에 감춰서 썩은내가 진동하지 않도록 양지로 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성의 쾌락은 나쁜 것이 아니니 <청소년들에게 바람직한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교육>을 시켜서 [낙태문제]가 줄어들 수는 있을지언정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의 <도장>찍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또한 버리는 <영수증>도 여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한 솔이와 결혼 전에 애인을 낙태시킨 아버지를 증오하는 주희가 등장한다. 이야기가 더해감으로써 결국 솔이는 낙태를 결심하고, 주희는 아버지의 결정을 이해하게 된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문제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영수증>을 챙기는 순간 감당해야 하는 몫이 한 번밖에 없는 자신의 인생에서 바라는 것과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난 이들의 결정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영수증>쯤 한 두개 챙기지 않아도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홀히 다룬 <영수증>이 많아지면 한 가계에 영향을 끼치 듯, 버려지고 폐기되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한 나라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영수증 폐기>는 개인이 감당하기에도, 사회가 알아서 해결하기에도 벅찬 일이니 국가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단지 [낙태]를 불법으로 명시하는 선에서는 별효과를 얻지 못하니,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영수증>은 국가가 전담하면 어떨까 한다.

 

 말레이시아의 예를 들면, 국가에서 미혼모들을 보호해주고, 이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전액 무료로 국가가 보육한다고 들었다. 결국 개인의 감당할 부분과 사회적 문제(완벽한 가정을 추구하는 경향)까지 보완하는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영수증>만큼은 철저히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불변의 진리 아닌가? 어떠한 것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 그것은 바로 <생명>일 것이다. 그 생명을 버리는 일만큼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소중한 <영수증>을 챙겨 주세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심미안을 기르고 싶다면 읽혀라 | 2007년에 쓴 리뷰들 2007-11-22 12:57
http://blog.yes24.com/document/78810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야, 그림 속으로 들어가보자!

김기정 저/김윤주 그림
다림 | 2000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림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넓어졌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은 뒤 스쳐지나가는 그림에서도 뭔가가 보이는 듯 했다.

 

 김기정 선생님이 강조한 그림 감상법은 <상상력>과 <돋보기> 그리고 <소리>였다.

 

 <상상력>을 이용한 그림 감상법은 쉽게 표현하자면, <글자 없는 그림책>을 보듯 그림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능력이다. 이 책에선 임금이 낸 문제를 통해 아이들의 상상력을 기르도록 했는데, 임금이 낸 문제란 바로 [깊은 산 속에 절이 있다]란 구절이다. 자, 이 문제를 보고 언듯 떠오른 상상은 첩첩산중에서 얼굴을 쏙 내민 절의 지붕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1등의 그림에선 절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저 보이는 거라곤 깊고 깊은 산의 모습과 그 산등성이에 보이는 길 위에 물지게를 지고 올라가는 스님이 한 분 뿐이다. 마치 절이 어디있느냐는 물음에 '나를 따라오시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바로 이것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제 1의 비법이었다. 또 다른 방법인 <돋보기>와 <소리>도 마찬가지로 그림을 더욱 풍성하게 볼 수 있는 비법이었다. <돋보기>는 '그림의 구석구석'을 놓치지 않아야 화가가 그리고자 했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얘기고, <소리> 역시 한 폭에 담긴 그림 속 풍경과 인물들이 들려주는 것이 무슨 소리일지 상상할 수 있어야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밖에도 화가의 시선이나 위치, 그리고 실제로 본 것을 그린 것인지 상상해서 그린 것에 대한 것도 설명되어 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특징과 차이점에 대한 설명도 알차게 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그림>의 의의에 대한 설명이었다. 흔히 좋은 그림과 잘 그린 그림을 분류할 때 색감이 선명하고, 색채와 사물묘사가 실제와 비슷한 그림을 꼽곤 하였다. 그러나 그럴 경우 <사진>과 무엇이 다를까? 그림은 사진과는 다른 예술작품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꼭 실제의 모습 그대로 그려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림 속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이야기'가 담겨야 진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가 없는 그림. 한마디로 재미 없는 그림이고, 재미 있는 그림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유명한 그림들이 왜 유명할 수밖에 없고,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기존에는 그림을 작품에 대한 배경이나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만 그림을 설명하였기 때문에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은 뒤에는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예술적 감각이나 작품을 감상하는 심미안(審美眼)을 기르고자 할 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단, 한 쪽에 본문이 2단 구성으로 편집되어 읽은 이에게 질식을 느끼게 하여 너무 어린 아이들에게는 읽기 힘들 수도 있겠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폴 오스터, 너 죽었으 | ™구석방 토론회 2007-11-19 13:49
http://blog.yes24.com/document/78532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우연의 음악

폴 오스터 저/황보석 역
열린책들 | 2000년 03월

구매하기

1

-오빠, 토론회 어땠어요?

 

-한마디만 한다면 이번 토론은 썩 맘에 들지 않는구나.

아서라, 사내자식이 주절주절 떠벌리는 것도 우습다. 어쩌겠누언변이 청산유수 같지 않음을 탓해야지.

! 더 이상 묻지 말아라.

 

 

2

-음그럼 언니는 어땠어요?

 

-얘얘말도 마라. 내가 하고싶은 얘기의 반도 못하고 왔다.

어차피 나와는 딴판으로 읽었을 거라는 걸 짐작 못한 건 아니지만일단 그 선정도서에서 뭘 얘기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

 

일단 내 감상부터 얘기하자면

무슨 책이 그러니그냥 한 사람의 이야기야그러다 죽어.

확실하게 죽었다고 써있지는 않지만

다가오는 불빛에 뛰어들었다면서 책이 끝나지그럼 죽었다는 거잖아. 그것두 자살의 형식을 빌어서

그게 뭐니나같으면 그렇게 우롱당하고 기만당했으면 너 죽고 나 살자란 식으로 악에 받쳐 살겠다.

 

한마디로 주인공이 무능해.

아니지 무능한 건 아니다. 번듯한 소방수라는 직업도 있었고 막대한 액수의 상속도 받았고

이혼하긴 했지만 슬하에 두살바기 딸아이도 있고

한 여자가 사랑한다고 말할 정도의 매력도 가졌고또 사람이 착해보이더라.

그 정도면 무난한 삶을 살아도 되지.

 

근데 뭐니 그 무계획성에, 그동안 억눌린 감정을 폭발 시키듯이 터트리는 만끽이라니그런 자유를 느끼는 순간이 즐겁다나 어쨌다나

나 같으면 그 돈 생기면 딸아이랑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겠다최소한 흥청망청 그 돈을 날릴 생각은 안하겠지

 

우쨌든 소설은 소설이니주인공이 그렇게 하겠다는 데 우짜겠어. 하는 꼬락서니나 지켜봐야지.

지켜봤지근데 이 우라질 놈이 뒈지잖아복수를 했어야지. 복수를

그 하인이랑 사위란 놈하고만 같이 뒈지면 끝이야?

정작 자기를 기만하고 우롱한 쨔사는 복권당첨으로 갑부가 된 플라워와 스톤이란 놈이 아니겠어.

그 자식들에게 본때를 보여줬어야지.

한 남자의 인생을 그렇게 가지고 노나. 나한테 걸렸음 뒈졌으

 

그리고 거기에 설득당해 그 막노동하는 주인공은 또 뭐야.

섬강님은 그러대주인공 나쉬는 그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통해서 무언가를 깨우쳤다고인생의 의미라나 삶의 목적이라나

 

그렇다고 치자고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똑 같은 현실에 처하면 같은 결정을 내렸을거야.

인생의 한 번쯤 힘든 노동을 통한 짜릿함을 느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나쉬란 짜식은 그런 짜릿함을 느끼기보단 남이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뉘앙스를 풍기잖아.

그리고 제대로 한 번 반항도 안해뭐니 이 남자

 

뭐 내 감상따위는 이정도만 하고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해야겠지.

근데 솔직히 뭔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되드라

이 책의 제목이 <우연의 음악>이잖니.

삶은 우연의 연속이라는 걸 뜻하는 거겠지.

실제로 소설 속의 주인공은 우연한 삶을 살아가요.

그 뒤에 뭐랬더라뭐라고뭐라고 설명을 하는데도 한 개도 못 알아 먹겠는거야

참내 가방끈 짧은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더라

또 자기네둘이서는 우연이 상징하는 것이 이거네 저거네 말들도 많더만 껴들수가 있어야지.

 

그렇다고 그런 상황이 싫었다는 건 아니다.

꼭 먹을 거 많은 잔치에 별로 내키지 않은 음식들만 즐비한 느낌이었다는 거지

남들은 참 맛있게 먹는데정작 나는 그 맛을 모르니..쩝쩝

 

 

3

사실 문학이라는 것이 정답이 없는 거거든

어떻게 보면 좋은 문학이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는무궁무진한씹으면 씹을수록 새로운 맛이 계속 나오는 거랄 수 있는 거거든

 

일례로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들 수 있겠지.

그 짧은 단편을 읽고서 느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을거야.

 

어떤 사람은 무진기행의 부재를 달자면 <타지에서의 로맨스>라더라.

주인공 윤희중과 하인숙의 사랑장면이 인상 깊었다는 뜻이겠지.

 

또 어떤 사람은 <가진 자의 뻔뻔함>이라고 하더라고

어쨌든 주인공은 마누라 잘 만나서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고향에 와서 사랑이랍시고 여자와 놀아나다가 마누라의 호출에 부리나케 떠나더라.

더구나 떠나면서 심히 부끄럽다고 뻔뻔스레 얘기하더라

 

다른 사람에겐 <무진의 안개와 자신 경험 속의 안개의 추억>이었지.

아버지와 어린 남동생의 간병하다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그 때 마침 새벽안개가 자욱한데

소설속에선 주인공이 제약회사 이사인데 고향인 무진으로 내려가면서 무진의 안개와 햇볕을 적절히 섞으면 최고의 수면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란 대목이 있는데 그 수면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상상을 했었다고

 

<우연의 음악>도 그렇게 읽으면 되겠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나쉬가 자살만 안했어도 그런대로 읽을만 했을 텐데죽긴 왜 죽어.

사랑만 하며 살아도 모자란 삶인데왠 불평불만들이 많냔 말이야.

내가 왜 이러는지 알지. 자살 예찬론자가 있잖아.

누구긴 누구야술 마시면 꼭 소주만 먹는 사람있잖아. 그것도 산.

 

인생이 80살이면 이걸 거스를 수 있는 것.

예정된 운명이 있다면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자살밖에 없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잖아.

뭐 내가 조물주를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운명은 있다고 믿는다.

고정불변의 운명이 아니라 인간이 개척할 수 있는 운명은 있다고 믿어.

 

근데 운명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 자살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 운명에 자신의 유일한 의지, 자신의 목숨만큼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걸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끊는 것.

요거요거 이런게 짭짤하다는 사람들이지.

 

내가 제일 한심하게 생각하는 부류들이지.

죽음 이후의 삶이 있든지 없든지 그건 차치하고우리가 유일하게 자기 맘대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이다.

이승에서의 삶의 기간이 정해져 있든 말든 죽는 그 순간까지 살면 되는 거야.

어떻게?자알~

삶의 가치를 보편타당하게 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어떻게 살든 자기 맘이지.

 

그런데 자살만큼은 아니야.

목숨가지고 장난하냐? 인생을 두 번 세 번 살 수 있다면 한 번쯤 자살하는 것도 해볼 만 하겠지.

 

환생하고는 또 다른 문제다.

환생은 두 번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삶의 여러 번이겠지. 환생은 시간이 불연속적이란 말이야.

인생은 롤플레잉 게임이 아니거든죽었다 다시 살아나고, 언제나 똑 같은 시작을 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자살마저도 운명이라면 할 말 없다. 그 사람은 삶이 거기까진 거니까.

근데 이 우라질 자식이 왜 다가오는 불빛속으로 뛰어드냔 말이야.

가뜩이나 우울한 내 인생에 희망찬 내용을 담지 못하고 쓸데없이 뒈지긴 왜 뒈지고 지랄이야에이 몰라몰라몰라몰라

 

-근데 언니, 그건 소설일 뿐이잖아? 그렇게 흥분하거나 맘에 안들어 할 이유가 있을까?

 

-오호라, 이젠 네가 태클을 걸겠다는 거냐.

넌 소설을 왜 읽니? 난 소설을 통해서 내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거야.

흔히 연기자가 자신이 맡은 배역을 통해서 여러가지의 삶을 살아 볼 수 있어 연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한다는 사람들도 있잖아.

 

나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두 가지 이상의 삶을 살아가는 게야.

일종의 대리만족이랄까그런거지.

 

아이, 몰라. 더 이상 얘기해봐야 입 아퍼그만 하고 술이나 마시자.

냐냐꺾어 마셔. 술값 네가 내냐. 쪼그만게 술맛은 알아가지고자 네 안주는 단무지 세 개.

아껴먹어깨물지 말고 쪽쪽 빨아옳지.

오뎅탕은 내꺼니까 숟가락 근처에도 올 생각하지마. 알찌.

, 짠~

 

 

4

-오빠, 이제 속이 후련해?

 

-응. 고맙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메모를 | 공감 1        
신경숙, 3시간 동안 떠든 이야기 | ™구석방 토론회 2007-11-19 13:46
http://blog.yes24.com/document/78532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외딴방

신경숙 저
문학동네 | 2001년 06월

구매하기

1
이 글은 감상문일 수도 있고 또는 에세이일 수도 있다.

어쩌면 감상문과 에세이의 어느 중간쯤의 글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도저도 아닌 글자들의 나열일 지도…


2
시간은 3시 47분. 종로2가에 위치한 민들레영토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훈이형.

 

“이야, 옷 멋진데. 무슨 바람이 불었냐.”

“가을이잖아요. 외로와~요.”

“외롭다고 그렇게 입고 다니냐.”

“난 가끔 이래요. 이 놈의 가을엔 미치지 않고서는 버틸 재간이 없어요.”

 

소탈하게 웃어 재끼는 훈이형…

형 알아? 그렇게 웃는 형의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

 

“쭈는 언제 온데요? 시간 다 됐는데…”

“글쎄, 연락 안 해봤는데…오겠지. 50분까지 기다렸다가 안 오면 먼저 들어가자.

벌써 55분이네.”

“우리 먼저 들어가 있죠. 알아서 오겠죠. 쭈야 제시간에 올테고,

부흐형은 늦게 오잖아요. 항상.”

“그렇지. 그럼 우리 먼저 들어갈까.”

 

훈이형과 나는 민토 입구에서 안내하는 머리엔 날개(?)달린 머리띠를 하고 방긋 웃고 있는 여직원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예약은 하셨습니까. 잠시만 기다리십쇼.

예약확인 해드리겠습니다.”

“손님 죄송한데, 지금 미리 예약하신 분들이 방을 치우고 계시거든요.

10분만 기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감사합니다.”


별수 있나. 기다려야지…그때 쭈의 얼굴이 길모퉁이에 살짝 내비친다.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는 듯 옆을 보다 뒤돌아서 잘가라는 말을 한다.

다시 돌아선 쭈와 내 눈이 마주친다. 잠시 어색한 미소…

나는 쭈와 헤어진 남자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딱 걸렸으ㅡ-)+

 

“왜 그냥 보내냐. 같이 오지.”

“으응…할 일이 있데요.”

“그으래…흠~”

“지아님, 생일선물. 한 달이 지나서야 전해주네요. 저 안읽었어요.”

“읽고 줘도 되는데…정이 없잖아. 깨끗한 책을 선물하면…”

 

[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

 

“외롭다는 놈한테 이런 책을 주면 죽으라는 거냐, 뭐냐.”

 

훈이형이 내가 할 말을 대신 해준다. 나도 맞장구친다.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한 때는 알았죠.

지금은…얼어죽을 개뿔 혼자 사는 게 뭐가 즐거워, 즐겁기는…난 법정 싫어.”

“근데 네가 들고 있는 책은 뭐냐. <일본문학의 근대와 반근대>…

네가 문학도도 아니고 이런 책을 왜 읽어.”

“왜 그래요. 나 국문학과 갈거에요.”

 

기다리던 10분이 채 안되어서 입장을 허락 받았고,

훈이형과 쭈, 나는 예약된 세미나실로 안내되었다.

쭈와 훈이형이 마주보며 앉았고, 나는 쭈 옆자리에 앉았다.

한 달 만에 만난 회포도 풀겸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어떻게 잘 들 지냈냐.”

잘지냈지요. 별일있겠습니까.

 

외딴방 –신경숙

 

 

3
10월 토론도서가 신경숙의 <외딴방>으로 선정되었다.

신경숙…모른다.

그녀의 작품은 최근작 <바이올렛>을 읽었을 뿐이다.

 

그나마 별 감흥 없이 읽었던, 미나리였었나 하여튼 늪 같은 저수지에

군락지를 형성했다는 것에 대한 지리한 묘사나

주인공의 처절한 인생역정과 끝내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 등등

어느것 하나 맘에 든 것이 없었던 책이었다.

 

아니 모든 것이 싫었던 건 아니다.

딱 한 구절. 300여쪽이나 되는 책에서 딱 한 구절만은 너무도 아름다웠었다.

그 구절을 어디다 적어두었는데…어디다 두었더라.

둔 곳도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 한 구절을 찾기 위해서 책을 다시 읽어야 하나…


신경숙…63년생이라니까 정확한 나이로 계산해보면 41살.

마흔한살의 여류작가이다.

 

사진을 보았다.

책 속의 그녀는 어딘지 모를 외로움 혹은 고독에 잠긴 채 무언가 고즈넉히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외딴방>에서 지내던 그 시절의 기억을 되새김하고 있는 걸까…

무엇이 그녀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하는가…

 

책 속에 해답이 있으려나…나. <외딴방>을 읽으려 한다.

 

 

4
모이면 분석하기 좋아하는 우리는 <외딴방>을 해부하기 시작한다.

종로2가에 위치한 민들레영토 세미나실에서 각자 읽은 <외딴방>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이 책을 어찌 해부할 지 논의한다.

 

제일 먼저 제목부터 칼질을 시작한다. <외딴방>이 가지는,

작가 신경숙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실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왜 제목이 <외딴방>일까…

 

서른둘의 그녀. 어느날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하계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너 작가가 되었구나. 지금 신문에서 네 사진을 보고서 전화하는 거다.”

“사진을 딱 보고서 낯이 익더라니 그게 너였더구나.

그래서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얻으려는 데 쉽게 가르쳐주지 않더라.”

“근데 너의 책에선 우리들의 얘기는 없더구나. 혹시 그 시절의 우리들이 싫었니?”

 

서른둘의 그녀는 말한다. 아니다. 그건 아니다. 그 때 그 시절이 싫었던 것만은 아니다.

아니 잊고 싶었다고 말해야 하나…

아니 그렇지 않아.


열여섯의 그녀.

마당에서 쇠스랑을 가지고 놀다. 쇠스랑에 발을 찔린다.

찔리는 순간에, 찔리고 나서 한동안 빼내지도 못하고 있을 때 얼마나 아팠을까…

하지만 그녀는 찔리는 순간에도, 찔리고 나서 한동안 빼내지도 못하고 있을 때도

아프면 당연히 나와야 할 눈물과 울음이 방울과 외침으로 만들어져 나오지 않았다.

쇠스랑은 헛간에 누워서 가만히 있는 그녀를 보고 뛰어온 엄마가 빼주었다.

등짝을 때리며 왜 소리도 안지르느냐고 나무란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열여섯의 그녀. 그제서야 쇠스랑에 찔린 상처에 아픔을 느끼고 눈물과 울음을 운다.


무어냐. 쇠스랑에 찔린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찔리고 나서 그녀의 행동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그것이 왜 여고동창생의 전화 한 통에 기억이 났는가…

우리는 잠시 쇠스랑을 책에서 도려내어 한 쪽에 잘 놓아둔다.

그 도려낸 부분은 나중에 다시 확인 할 것이다.

 

열여섯의 그녀. 된장을 바른 발을 끌고 쇠스랑을 들고서 우물가로 간다.

그리고 쇠스랑을 우물에 던져버린다.

 

무어냐. 쇠스랑에 대한 복수냐.

나에게 상처를 준, 아픔을 준,

고통의 기억물인 쇠스랑이 당장 눈에서 사라지면 잊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런다고 그 사실이 은폐될까.

 

열여섯의 그녀.

세상을 안다면 알고 모른다면 모를 그 나이에, 우물에 쇠스랑을 넣었다.


나중에 외사촌에게 그 사실을 조심스레 고백한다. 열아홉의 외사촌은 이렇게 말한다.

 

“왜 우물에다 쇠스랑을 넣었어?”

 

열여섯의 그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해 우물거린다.

 

“우물이 더러워지잖아. 이 담에 내려가면 꺼내야겠다.”


열여섯의 그녀.
그제야 우물속에 던져버린 쇠스랑을 꺼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우물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쇠스랑과 우물…

우리들의 분석에 의해 도려내어진 것들을 조심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쇠스랑과 우물. 사물과 장소. 아픈 기억과 마음 속 깊은 곳…

 

이 책이 신경숙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면,

열여섯의 그녀는 아픈 기억을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는 상징적 의미를

쇠스랑과 우물이라는 경험을 떠올림으로서 이 책의 주인공이자 작가 자신이

해결해야 할 숙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엔 우물 속에 감추어진 쇠스랑을 꺼내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찾아보자. 있다. 우물속에서 쇠스랑이 꺼내어지는 장면이…

그런데 작가 자신이 꺼낸게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 희재언니…그녀는 누구?

 

 

5
책읽기는 점점 속도를 더해간다.

일단 희재언니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우물 속, 그러니까 작가의 마음 속 깊이 감추어진 것을 누군가의 도움으로 꺼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어찌되었든 한 사람의 내면 속을 들여다보고 어릴 적 상처마저 건드릴 정도의 인물이라면 보통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열여섯의 그녀에겐 상당한 비중을 둔 게 틀림없다. 희재언니, 희재언니…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정읍에 살던 그녀가 큰오빠를 따라서 외사촌과 함께 서울로 상경을 하고,

자리를 잡은 <외딴방>…아, 제목을 언급하고 있다.

<외딴방> 이 곳이 우물과 함께 작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비밀스런 공간일게다.

분명 공장부지 근처에 조성된 좁디좁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공간일진데, <외딴방>이란다.

바퀴벌레처럼 우글거리며 살고는 있지만

방과 방의 경계를 이루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서로 왕래가 없다는 것을 뜻 할게다.

그만큼 각박한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표변하는 말이 <외딴방>일테고…


열여섯에 그녀.

돈을 벌기 위해 나이를 속여 외사촌과 같은 공장에 취직을 한다.
법정연령 열여덟이 안되면 임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큰오빠도 동사무소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지만 세 사람 입에 풀칠하며 살기엔 그래도 버거운 살림살이.

70년대 우리네 생활상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잠깐 신경숙의 글쓰기에 대해 잠시 말해볼까.


신경숙의 글쓰기를 세간의 입들은 어찌 평할까.

어느 평론가는 그녀의 글쓰기를 아름다운 시를 읽는 기분이란다.

소설을 읽는데 한 편의 시를 읽는 기분이라고? 어디 읽어보자.

무릇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어진 것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아무리 허접한 것일지라도…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싫다고?

그렇다면 왜 싫은지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어야 훌륭한 독서쟁이라고 말 할 수 있을게다.

적어도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려면 자신만의 책읽기를 정립한 뒤여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책 한권 읽고, 읽고 나서도 아무 생각없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즉, 내가 읽어보니까 이 책은 이런 책이더라.

그렇다고 남들이 그 책이 어떻다고 논한걸 베끼는 수준이 아니라

그 책은 그 부분이 가장 맘이 들었어. 라고 자신있게 말 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않을까.

 

신경숙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분명 책을 읽고 있는데,

내가 읽고 있는 글자들이 소리가 되어 내 귀로 들린다는 말이다.

시각의 청각화…공감각적인 문체다.

신경숙의 글을 한참 읽다보면 내가 마치 주인공이 된 듯,


주인공이 서울의 길거리를 지나는 대목을 읽다보면

내가 어느새 그 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 들거나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그림을 보는 듯하다.

사진이나 영화를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신경숙이 사물이나 풍경을 묘사할 때 사진을 찍은 듯이 세세하게 설명하느냐하면 그렇지도 않기 때문이다.

한폭 한폭 흐릿한 수채화를 내 주위에 걸어놓고 감상하는 느낌이다.

신경숙은 그저 나는 걷고 있다. 여기는 서울의 어디쯤 되는 곳이다.

 내 앞에는 어떤 것이 보이며, 내 옆으로는 무엇이 지나가며, 내 머리위엔 이런게 펼쳐졌다.라고 그릴 뿐이다.

 

그런데 참 요상하지.

그 글을 읽고 있으면 난 그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이것이 신경숙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이 아닐까…신경숙을 좋아하는 이는 이런 맛을 느낀이 일것이다.

 

그런데 이런투의 글쓰기가 때로는 독이 될 때도 있다.

예컨대 지루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와 비슷하다.

지리한 묘사, 짜증나는 상황설명도 이런투라는 것이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상대가 재미없거나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하면, 닥쳐라고 말하든가,

이제 그만~이라고 끊어버리고 넘어갈 수가 있는데,

책읽기에서는 그럴수가 없잖은가.

읽던 책을 집어던지지 않는 이상 책을 띄엄띄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읽자니 짜증나고…그래서 신경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질색을 하는 것은 아닌지…

썰렁한 얘기 줄줄 나불대는 친구랑은 상대도 하기 싫은 것처럼…

 


6
책읽기는 계속된다.

열여섯의 그녀와 열아홉의 외사촌과 함께 상경하며 나누었던 서로의 꿈 이야기.

함께 취직한 공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을 꼭 붙들고 있는 모습.

우리의 꿈을 이루려면 학교에 가야한다며 노조위원장에게 외사촌과 나를 꼭 합격시켜달라고 쓴 편지를

남몰래 노조위원장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가슴 졸였던 일.

영등포여고에 합격해서 새로 교복을 맞추며 즐거워 하는 모습.

학교에서 만난 열여섯의 그녀보다 서너살이 더 많은 동급생들.

왼손으로 글을 써 수업시간에 필기 할 때마다 팔이 부딪혔던 짝꿍…

그리고 희재언니. 드디어 만났다.

 

희재언니는 내가 살던 외딴방에서 두칸 아래에 살고 있었다.

그동안 살면서도 왕래가 없었던 희재언니.

열여섯의 그녀가 희재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희재언니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던가.

 

그녀와 외사촌의 큰오빠는 정작 희재언니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못마땅히 여긴다.

다 큰 여자가 혼자살기 때문이라는 큰오빠의 설명을 열여섯의 그녀는 납득할 수 없다.

여자 혼자 살면 부도덕하고 행실이 바르지 못할 거라는 그릇된 편견.

그녀가 보기만 해도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등을 가진 큰오빠가 그녀가 보기에 행실바르고 착하기만한 희재언니를 무고하고 있다.

 

열여섯의 그녀. 희재언니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며 강하게 변호한다.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큰오빠의, 아니 남자들의 무지와 횡포를 참을 수 없었던가.

열여섯의 그녀. 큰오빠의 눈을 피해서 몰래 희재언니와 만난다.

 

 

7
계속되는 책읽기.

무얼까.

쇠스랑과 우물과 희재언니…

단서의 가닥은 일찌감치 잡혔는데, 신경숙이 감추고 싶어했던, 아니 묻어두고 싶어했던 무엇이었을까.

좀처럼 작가는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주려하지 않는다.

희재언니의 이름마저도 쉽게 가르쳐주지 않더니…왠간해선 알려줄 성 싶지않다.

독자가 지칠 정도의 지리한 진행…

 

신경숙 작가의 문체를 살펴보자.

책의 처음과 끝에서 작가는 <외딴방>은 소설과 사실의 중간쯤 되는 글이라고 말한다.

소설이면 소설이고, 사실이면 사실이지. 그 중간쯤 되는 글은 무어란 말이냐.

 

토론 참가자 중 국문학도인 섬강님의 말을 빌어보자.

소설이란 기본적으로 강한 서사구조를 가져야 한단다.

서사는 단순한 사실들의 나열 뿐인 이야기가 아니라, 기승전결을 갖춘, 한마디로 갈등이 있어야 서사로 볼 수 있단다.

 

그러고 보니 국어시간에 배운 기억이 난다.

소설의 기본요소들…주구문 인사배…

주제, 구성, 문체와 인물, 사건, 배경…각각 무엇의 3요소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꼬치꼬치 따지지말자(ㅡㅡ)

그러면서 강조했던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갈등>.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선생님이 시도때도 없이 나불거려서 잊혀지지 않는,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고 설킨 그 모양이 <갈등>이라고.

정작 칡과 등나무가 얽혀있는 모습은 보도 못한 내가 알 턱이 없잖냐고 반문하고픈 걸

꾸욱 참아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심리적 갈등을 느꼈던…바로 그 <갈등>.

그것이 없는 건 소설이 아니라고 했던게 생각난다.


<삼대>라는 소설을 떠올려 보자.

교과서에 실렸던 곳을 살펴보면, 주인공과 아버지의 갈등, 아버지와 병화간의 갈등, 아버지와 며느리간의 갈등, 주인공과 병화간의 갈등…

 

<외딴방>에선 그런 갈등이 없다.

 

신경숙의 자전적인 경험들을 나열하는 식의, 어찌보면 신경숙 자신의 일기같지는 않은가.

또 어찌보면 <외딴방>에도 나름 갈등구조를 가지고 있다.

큰오빠와 자신과의 갈등, 큰오빠와 셋째오빠간의 갈등, 큰오빠와 외사촌오빠간의 갈등…이런게 있는 듯하다.

 

하지만 <갈등>이 있으면 <해소>가 있어야 하는 법.

<외딴방>에서는 그런 <갈등과 해소>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다.

그저 작가의 기억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일들을 나열하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그리고 열여섯의 그녀가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의 제목을 가지고 선배와 티격태격했던 부분들을 보아도

이 책이 소설과 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이 또한 자전적인 사실의 경험을 쓰면서도 일부는 소설적 허구라고 연막을 쳐서

무언가 밝히기 싫은 것을 은폐하려는 의도로 볼 수 밖에 없다. 무어냐 그렇게 감추고 싶었던 것이…

 

 

8
읽고 또 읽고…좀처럼 신경숙은 고백하려하지 않는다.

지리한 사실들의 나열, 아니다. 아니다.

그 사실들의 나열이 <외딴방>에선 지리하지 않았다.

 

60년대에 태어나 7,80년대에 꽃다운 나이를 살아야 했던

우리네 청춘들의 잔상을 지리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이 글을 쓰는 나역시 그 시절을 일부 겪지 않았던가.

내 어린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글에 나는 쉽게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외딴방>은 신경숙의 자전적인 소설이며,

<외딴방>을 읽지 않고서 신경숙이란 작가를 논할 수 없을만큼

신경숙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필독해야 할 책이다.

 

또 신경숙과 같은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외딴방>을 읽으며 그시절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난 이런면에서 <외딴방>이 좋았다.

그래서 두꺼운 책임에도 쉬 읽을 수 있었다.

여타의 작품들보다 지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덧 남은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을 무렵, 희재언니가 어느새 열아홉살의 그녀에게 자신의 방 열쇠를 맡긴다.

 

그간에 희재언니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의상실을 다녔고, 거기서 만난 남자와 동거를 했으며,

열쇠를 맡길 즈음에는 동거남과 헤어지는 일도 겪었다.

 

열아홉살의 그녀에게는 착하디 착한 희재언니가 그녀에게 좀처럼 하지않는 부탁을 한다.

신경숙이 쓴 글에서 우울함이 묻어난다. 책을 읽는 나에게 들려주던 음성도 스산한 어조를 띤다. 꼭 누가 죽을 것만 같은…

 

희재언니가 열아홉의 그녀에게 부탁한 것은

자신이 시골로 떠나고 난 빈방을 잠궈달라는 것.

내가 잠그고 시골로 떠나도 무방하지만 어차피 훔쳐갈 물건도 없는 빈방이니 잠그나 안잠그나 별상관 있겠느냐.고,

열쇠를 너에게 맡길 테니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그 때 잠궈 달라.고…

 

열아홉의 그녀, 희재언니의 부탁을 그러마하고 열쇠를 받아쥔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며 희재언니의 부탁을 잊지 않은 그녀. 희재언니의 문을 바라본다.

그냥 잠그려 하다가 문을 한번 열어본다. 텅 빈 듯 썰렁한 부엌…

혹시나 희재언니가 방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미치지만 열아홉의 그녀는 문을 닫고 문을 잠근다.

 

며칠 뒤 확인 된 희재언니의 주검.

 

 

9
이것이었나. 신경숙이 감추고 싶었던, 마음 속 쇠스랑은…

어쩌면 영원히 꺼내기 싫었고,

지금도 그 우물 속에 있는 쇠스랑을 그저 세월에 묻어두고 싶었던가.

희재언니가 주고간 열쇠만큼의 죄책감 때문에…

 

서른둘의 그녀는 그동안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우물 속의 쇠스랑은 꿈속인 듯, 상상인 듯 희재언니의 도움으로 마침내 건져올려진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기를…

 

이제 그녀에겐 행복한 기억만 담아내기를 바란다…

 


10
3시간이 지났다.

이번에도 하고픈 말들을 다하지 못한 채 토론회가 끝나버렸다. 후훗

다음달을 기약하며…

 

 

 

에필로그...

이번엔 쭈의 도움을 받아 글을 썼다.

뒷풀이에서 훈이형이 말한데로 요즘엔 혼자쓰는 작가는 없다는 말에 힘입어...

결론적으로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

 

우선 빡빡하게만 쓰던 내글이 조금이나마 읽기 편해졌으리라...

하지만 다시 고쳤다. 행간과 행간사이가 너무 멀어서...
쭈가 고생고생해서 편집한 건데...그래도 그 넓고 많은 행간은 내가 부담스럽다. 쭈 미얀~^^;;

 

글머리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글은 감상문과 후기의 중간쯤 되는 글일게다.

 

일단 소모임에 올리던 후기인지라

자리를 달리한 글이 새로운 형식이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두번째 이유는,

신경숙의 글을 조금 흉내 내었다. 헤헤

 

아, 고생한 쭈에게 하나더 미안스러운게 있다.

내가 뒷풀이 내용까지 글을 쓸 줄 알고서 글을 두개로 나눠서 올리라고 했는데...

뒷풀이 내용은 모두 삭제했다...

글이 터무니 없이 길 뿐더러...뒷풀이는 4시간이나 하지 않았던가..ㅋㅋ

 

아고...이제 그만 쓰련다.

조그만 바램이 있다면...내 글을 읽고서 <외딴방>을 읽고 싶은 맘에 생기길...

괜찮은 책이었다...나름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메모를 | 공감 1        
날 빼놓지마란 말이야 | ™구석방 토론회 2007-11-19 13:40
http://blog.yes24.com/document/78531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아쿠타가와 작품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진웅기 등역
범우사 | 2002년 06월

구매하기

, 항상 이런식이지. 결국 안나가면 이런 좋은 시간, 좋은 만남을 놓치게 되니 좋은 말할 때 나와라. 제대로 된 감동 포인트라도 적어주면 얼마나 좋아. 내가 이래서 아쿠타가와를 싫어하는 게야. 실컷 변죽만 울려놓고 이야기 들을만하면 뚝 잘라버리는어차피 덤불 속 이야기가 나왔으니 지아의 아쿠타가와론을 얘기하지. 어차피 내가 갔더라도 이 얘기는 했을기야.

 

저번엔 내가 아쿠타가와를 된장국에 된장 빠진 맛이라고, 밍숭밍숭하다고 얘기했는데, 정정하겠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역시 뭔가 있는 작가더군. 갠적으로 미완의 천재였다고 다시 평가 내렸음. 치밀한 작품 구성, 날카로운 직관, 애둘러 서술하지 않는 속도감과연 천재적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더군.

 

그러나 내가 싫은 점. 하나, 너무 짧아.

발단과 전개, 절정까지 치다르는 엄청난 속도에 비해 결말이 너무 빈약해. 결국 두리뭉실한 결말만 내지. 이렇다 할 똑부러진 결말 대신 의혹과 호기심만 난무해. 라쇼몽을 비롯, 덤불속 이야기, 지옥변, 코 등등등도 마찬가지.

 

, 인간의 본성을 직설 함에서 아쿠타가와의 매력이 물씬 난다는 것.

인간 본성의 미추를 떠나서, 성선설과 성악설의 근원적 언급은 회피한 채, 인간이니까 이런 행위를 할거다라는 미루어 짐작하는 듯한 그의 문체가 싫어. 즉, 자신의 경험에 비춰서, 자기가 처절히 느꼈던 무언가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 자신이 언급했던 주제에 뛰어들지 못하고 방관자적인 입장에서만 작품을 묘사했다는 것. 즉, 소설에서 강조하는 리얼리티, 그럴듯한 진실이 아니라, 있을 법한 직한 것만 작품화 했다는으아, 환희형과 훈이형, 뒤마누나와 마리의 반론이 들리는 듯하구만..ㅋㅋㅋ

 

어쨌든, 내가 본 <덤불 속 이야기>도 요런식으로 맥락을 짚어가면 되겠지.

, 작품에서 제시하는 진실은 단 두가지.

젊은 아낙이 남편이 보는 앞에서 추행을 당했다는 진실하나.

남편이 살해되었다는 또 하나의 진실

그리고 이어지는 7명의 증언앞의 4명은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기에 객관적인 서술인 반면, 뒤의 3인의 진술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도 이 작품의 특색 중 하나겠지.

 

, 진술은 이어진다. 앞의 4명은 논외로 치고, 어차피 나중의 3명의 진술의 부연설명이니

첫번째, 강도의 진술은이름이 기억 안나네( )a

남자는 내가 죽였다. 그것도 정당한 결투에 의해서 죽인 것이지. 항간에 떠도는 여자를 탐하여 비겁하게 죽였을 거라는 억측을 한마디로 일축하며 오히려 관리들의 횡포를 역설하는 말을 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젊은 아낙을 품은 것은 아내로 맞으려 했기 때문에, 바람에 나부껴 살짝 들어난 그녀의 얼굴이 너무도 아름다워 한 눈에 반해서였다. 그러나 그 치열한 결투가 끝나니 여자는 없어졌고 아쉽지만 나도 그 자리를 떠났다.

 

두번째, 아낙의 진술은

남편은 내가 죽였다. 강도에게 추행을그것도 남편이 보는 앞에서 당한 수모를 참을 수 없어서, 그리고 남편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의 날 동정하기 보단 비난의 눈빛을 하여서 남편을 죽이고 그 현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요거요거 기억이 잘 안나네. 요거틀렸음 지적해주~ㅋㅋ

 

세번째, 죽은 혼령의 진술은

나는 자살했다.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당할 수 없었고, 더구나 내 아내의 행동.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용서할 수 없었기에, 한껏 품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기에 두 년놈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결국 난 내 심장에 칼을 꽂았다. 흠맞나

 

3인의 진술을 끝으로 작품은 끝을 맺어요. 자, 결국 아쿠타가와는 수수께끼를 낸거야. 답은? 2가지의 진실뿐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 설령 어느 하나가 진실을 말한다손 쳐도 그걸 믿을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거야.

이 작품에서 아쿠타가와는 뭘 말하고 싶었을까? 진실은 하나인 데 정작 그 진실의 실체를 경험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뭐 이런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것이 바로 아쿠타가와의 약점이라고 생각해. 치열한 삶의 현장을 생생히 그려내면서 정작 작가 자신은 그 속에서 부대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어항 속의 물고기를 바라보듯 그리고 있다는 거야. 아쿠타가와를 연구했다는 사람들은 아쿠타가와의 생애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이런 작품세계를 아쿠타가와의 생애와 결부 시키곤 하지. 즉, 35세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단 한번도 자기가 얻고자 하는 투쟁심이나 삶의 의욕, 하다못해 희망조차 품어보지 못한 그의 삶의 방식이 이런 작품들을 그려낸 것은 아닌가?하고

 

뭐 꼭 그렇게까지 연관짓고 싶지는 않지만 한가지는 확실해. 나는 이런 아쿠타가와의 작품이 탐탁치 않다는거. 과연 천재적이다 싶을 정도의 그의 작품에서 묻어나는 감흥이 고작 허무내지 미완이라는 수식어가 대다수라니아쿠타가와가 자살한 건 이런 미완의 매너리즘에 빠진 때문은 아니었는지혼자 생각해본다.

 

우리 토론회도 슬슬 그런 기미가 보이고 있는 건 아닌지.

선정된 책 한 권의 진실과 섬강님의 해석, 환희님의 해석, 뒤마님의 해석, 마리님의 해석토론이 재미있었다라는 간략한 내용의 후기뿐이라면, 우리는 과연 토론회에서 무엇을 얻으려 했던건지.

 

, 그렇다고 깊이에의 강요를 요구하는 건 아니라오^^ 그냥 난 이렇게 느꼈다라는 기록을 남기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우리가 1년동안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그냥 허공 속에 남겨두는 게 아까워서100년전에 떠들어 댄 변변찮은(철저히 내 기준으로) 아쿠타가와의 단편도 남아있는 판에 우리가 나누었던 소중한 이야기들은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지한마디로 후기 제대로 쓰란 말이 하고픔. 적어도 자기가 느낀점은 있었을 거 아니오. 아~ 그 책 읽었더니 요런게 눈에 띄더라. 그 토론회 나갔더니 저 사람이 저런 이야기 하더라. 너무 무리한 부탁인가? 암튼 벙개에 못 나간 자의 넋두리요.

 

그나마 다행인 게 아직 <향수>를 논하지 않았다는 것. 그럼 조만간 벙개가 또 있겠구나하는 기다림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실로 기쁘다오^^

 

훈이형은 그루누이를 영웅에 비유했더랬지. 슈퍼맨과 스파이더맨그루누이가 그런 괴력의 소유자라는 게 아니라.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가졌다는 데, 공통분모를 두고 비교 분석하셨지.

 

 <왜 그들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버리려 하는가?>

슈퍼맨도 자신의 능력을 모두 버리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기 원했고, 스파이더맨도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느껴서 평범하길 원했고, 그루누이도 마지막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재능을 버리려 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서 나는 잘 모르겠고, 자세한 건 다음 <향수>벙개에서 훈이형에게 직접 듣자고요^^

 

반면에 나는 <향수>를 어찌 보았는가

 

그루누이는 사람들의 정과 사랑에 굶주린 절대고독에 빠진 존재이다. 그루누이는 외롭지는 않았다. 냄새라는 특별한 재능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끼리 누리던 정과 사랑이 그닥 필요치도 않았고, 그리 원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냄새를 피해 홀로 있다는 것에 만족을 느꼈고, 온갖 냄새를 자신의 상상속에서 신하로 부릴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만족을 느꼈으나, 정작 자기 자신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공포를 느낀 뒤엔 뚜렷한 목적의식이 생긴다.

 

<나, 냄새의 신. 그루누이가 너희를 지배하리라. 내 앞에 무릎 꿇게 만드리라.>

 

나는 이걸 자아실현이라고 보았는데, 자기가 얻고 싶은걸 얻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루누이는 인간세상으로의 재림을 통해서 냄새의 신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더럽고 지저분한 인간의 냄새까지 자기 몸에 뿌려대며 사람과 더 가깝게 지냈고, 최고의 향기를 얻기 위해 살인마저 저지른다. 그리고 만들어낸 최고의 유혹의 향기. 자신을 신의 경지로 끌어올린 그 향기.

 

하지만 그루누이는 그 절정의 순간에, 모든이의 환호 속에서 또다시 혼자임을 느낀다. 그루누이가 원했던 것은 나약한, 한갖 냄새 따위에 현혹되는, 존재의 지배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숨쉬며 살 수 있는 평범함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최고의 향기를 만들기 위해 죽였던 소녀에게선 냄새만이 아닌 사랑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그루누이는 자신의 온몸에 그 향수를 모두 뿌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

 

너희가 진정 원하던 것은 이 <향수>가 아니라, 나 그루누이였다는 걸 그들의 뱃속에서 느끼게 하고팠던 건 아닐까? 포만감이라는 나른함으로...

 

향수벙개 언제할끄야^^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메모를 | 공감 0        
잃어버린 생일선물 | ™구석방 토론회 2007-11-19 13:18
http://blog.yes24.com/document/78529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전날의 섬

움베르토 에코 저
열린책들 | 2001년 11월

구매하기

6시 48분. 내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린다.

"어디냐?...왜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강제화 앞에서 기다리라니깐...그래, 얼른와라."

구수한 훈이형의 목소리다. 터벅터벅 걸어가니 입주위에 난 수염만 빼고 말쑥한 차림의 훈이형이 기다리고 있더라. 한 번 찐하게 안아주고 오랜만에 한담을 나누었다. 물론 늘상하는 여자이야기도 빼놓지 않고...그나저나 풀피리님은 오느거냐고 물으니 찝찝한 표정이다. 그리고선 탐탁찮은 말을 찍 뱉는다.

"내가 꼭 전화를 해야 해. 일찍일찍 좀 나오지. 어디에요..."

당췌 귀찮다는 듯한 말투. 어딘가 수상쩍다. 친한 사람들끼리의 대화임에는 분명한데 어째 사귀다 헤어진 연인끼리의 전화같다. 아니나 달라 미주알고주알 풀피리님의 못마땅한 점이 술술 나온다.

"근데 누구누구 나오냐? 이게 다야?"

그러게 말입니다. 나오면 나온다 안나오면 안나온다. 말이라도 해주면 오죽 좋아. 이건 뭐 기분내키면 나갈거고 안내기면 안나겠다는 식이니. 벙개를 때려놓고도 사람들이 나올지 안나올지 조마조마 해서 마뜩찮다.

"글쎄요. 뒤마누나는 지금 오고 있는 중이시라하고, 성문이는 조금 늦는다고 했고, 동욱이 형도 나온다고 했으요. 현귀는 알바 끝나면 온다고 했고...그럼 대여섯명 정도 나오겠네요."

대화가 끊겼다. 벌써 7시. 종로3가역에서 이쪽으로 오신다는 풀피리님은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고 훈이형은 "이 아줌마 또 늦네"라며 툴툴거리고, "길치에요?"라고 물으니 "길치이기만 하니."라며 또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을 남긴다. 그래서 "같이 술도 많이 마신다면서요." 그렇더니 정작 자신이 술마시고플 때 부르는 사람은 따로 있단다. 이건 또 뭔소린가 싶어 머릴 굴리고 있는데...저쪽에서 검정 아니 쁘띠블랙톤의 빠숑과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녀가 우릴 아는채 한다.

이야~ 거봐요. 내가 미인이실 거라고 했잖아요.라며 입에 발린 말을 건네니 3학년 9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애띤 미소를 머금는다. 답례로 나에게 건네는 조그만 상자를 받아드니 감촉이 케익 상자이다. 서른 한살이나 되어서야 처음으로 받아보는 생일케익. 잠시 난 할말을 잃은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잠시 잠깐의 감동연출. 메트릭스 모션캡쳐같은 영상이 머리속을 스쳐가며 카메라가 내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짜릿한 느낌을 힘겹게 떨쳐내고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섰다.

번지없는 주막. 이곳 동동주가 맛있어서 자주 찾아갔는데 벌써 세번째다. 몇명이세요. 이쪽으로 오세요.라는 주인장의 안내로 전망이 트인 창가로 자리했다. 전망이 트였다고는 했지만 고작 보이는 거라고는 좁다란 골목길이 전부이고 그나마 취객들이 왔다갔다하는 게 전부였다. 자리에 앉고서 인삼동동주와 해물파전을 시키니 뒤마누나의 도착을 알리는 핸드폰이 울렸다. 부리나케 마중을 나갔다.

"어디냐...골목으로 올라가고 있으면 되냐. 그래 그럼 올라가고 있을께."

언제나 길지 않은 통화. 누나랑은 짧은 시간안에 끊기지 않는 말로 지루하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야 그나마 1분동안이라도 통화를 할 수 있다. 항상 장황한 설명문 투인 나로선 조금 힘든 통화법이다. 어디계시나 두리번거리며 내려가니 인사동 입구 언저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항상 품는 생각이지만 요즘 아줌마들 너무 예뻐.

"누나. 오늘도 예쁜데."
"얘가 왜그래. 나야 항상 예뻤지."

입에 발린 말이래도 싫지 않은 듯 툭치는 주먹이 기특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풀피리님 만날 때까지만이래도 누나 예쁘다고 말할려고. 그 뒤부턴 내가 누나 칭찬할 새가 없을것 같아서 미리 하는거야."
"그래? 그렇게 예뻐? 좋겠다. 미인 만나서."

이렇게 넷이 모였다. 졸지에 내가 막내가 되었다. 분위기 띄우기 위해 재롱잔치라도 벌여야하는 거 아냐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마침 성문이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얼른 오라고 냉큼어여어서빨리 오라는 말을 하는데 이 곳을 도통 찾을 수가 없단다. 도리가 있나 어디서 헤메고 있는가 했더니 골목하나를 못찾고 바로 앞에서 헤메고 있는 성문이를 만났다. 이래서 다섯명.

다섯명 모이니 드디어 생일케익을 꺼내들었다. 시끌벅적한 생일축하노래가 끝나고 서른하나임을 알려주는 촛불 네개를 얼른 불어서 끄고 케익을 잘랐다. 뒤마누나가 오고서 술은 동동주에서 소주로 바뀌었고, 안주도 해물파전에서 참치김치찌개로 바뀌었다. 다들 배가 고프셨는지 김치찌개에 진지를 드셨다. 마침 온 성문이도 공기밥 시켜서 뚝딱 해치웠고...

배부르겠다. 이제 얼큰히 술도 달아오르겠다. 이야기가 한창이다. 토론회이야기며, 못다한 향수이야기며, 사람이야기, 심각한 이야기, 웃긴 이야기...이야기를 하다보니 풀피리님하고는 죽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풀피리님을 뭐라부르면 좋을까하다가 누나라고 불렀더니, 자기는 누나라는 호칭을 안좋아한다나 자신이 좋아하는 호칭은 따로 있단다. 보다못한 훈이형이 이사람이 좋아하는 호칭을 알려주려는 데, 내가 대뜸 "자기"라고 불렀으매 그 호칭을 참듣기 좋아하시더라.

아참, 성문이가 내 생일선물을 챙겨주었다. 뺜쥬. 알라뷰라고 적나라하게 쓰여있는 삼각뺜쥬를 선물로 주었다. 그 난감함이란...ㅡㅡ;; 이걸 내가 입어야하는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머리에다 뒤집어썼다.

동욱이형이 왔다. 뭔 선물을 주겠다고 기대하라고 하시더니 느즈막히도 등장하셨다. 앞으론 올려면 빨랑빨랑 오시라구요. 암튼 선물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이라는 책이다. 동욱이 형다운 선물이었다.

세현이. 날_라가 왔다. 써리원 아이스케익을 사들고서...내가 서른하나여서( ")? 두번째 생일축가. 두번째 생일촛불. 젠장 감동먹었잖아ㅡㅜ

현귀가 도착했다. 이제 술잔은 가열차게 기울어진다. 술병은 도착하기가 무섭게 비워지고 러브샷도 하고...풀피리...아니 울자기가 시인이라고 했던가. 케익을 덜어먹은 조그만 접시에 묻은 하얀 생크림과 노오란 망고시럽을 가리키며 뭐같냐고 묻는다. 술에 취해 얼떨떨한 발음으로 케익아니냐고 답했더니 그거말고 이게 뭐처럼 보이느냐고 다시 묻는다. 흠...하얀 생크림에 노란망고시럽...하얀 생크림에 노오란...노른자. 터진 계란 노른자. 터진 계란 노른자처럼 보여요. 실망. 다시 잘봐요. 파도같잖아요. 여기 점점이 뿌려진 빵가루는 아이들이고...우와. 시인이다.

밤이 깊었다. 갈길이 먼 노땅들은 서둘러 집에 가기 시작했다. 먼저 뒤마누나가 서둘렀고, 훈이형과 자기가 자리를 떳다. 남은 사람은 동욱이형, 성문이, 세현이, 현귀...나. 다섯. 노래방갔다. 후아...나도 취할데로 취했다. 나를 부축하는 챙기는 귀여운 녀석들. 뽀뽀라도 해주고 싶다만 아직까진 참을 수 있다. 내가 늘상 부르는 레파토리 서너곡 부르고 땡~널부러졌다.

3차 호프. 아니 칵테일바였었나. 커다란 와인잔에 맥주가 담겨왔다. 흑맥주라나 뭐라나...여전히 난 널부러져서 애써 정신차리려고 노력했지만...이미 늦었다. 더이상 추태를 보이기 전에 집에나 가야지. 몸을 일으키니 나를 부축하는 녀석들...에그 고맙다. 주섬주섬 내 가방챙기고 현귀가 준 생일선물 손에 꼭쥐고 나가려는데 휘청거린다. 내 손에서 짐을 거두고 날 택시까지 태워주고서 보내려는 데...뭔가 허전하다. 맞다. 현귀가 준 책선물. 세현이의 말이 들려온다.

"이거 우리가 챙겼다. 나중에 주자."

덥석 빼앗듯 잡아챘다. 잘가라는 녀석들의 인사를 손인사로 대신하고...택시기사에게 말했다.

"구리시청으로 가주세요."

내가 깜박 졸았나 보다. 택시기사가 날 깨운다. 서둘러 돈계산을 하고 안전밸트 풀고 내렸다. 뭔가 허전하다. 그때 택시는 부릉하고 떠나고 뒤늦게 그 택시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번호판도 안보인다. 택시안에서 졸다가 책을 손에서 놓쳤나보다...이런 하필 현귀가 선물한 책인데. 이런 낭패가 있나...현귀에게 뭐라 말하나...에그. 벌써 새벽 3시 40분이다. 후회막급이다. 그냥 세현이에게 맡기고 올걸...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메모를 | 공감 0        
벙개, 우리 이러고 놀아요^^ | ™구석방 토론회 2007-11-19 13:15
http://blog.yes24.com/document/78529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CD]김동률 4집 - 토로(吐露)


Stone Music Entertainment | 2006년 04월

구매하기

무료한 아침이다. 새벽까지 붙잡고 있었던 컴터와의 씨름을 힘겹게 물리치고 잠을 취했건만 아침 9시에 눈을 뜨고 말았다. 그래도 못내 아쉬웠는지 이리뒹굴 저리뒹굴하며 버텨고 버틴게 10시. 간밤에 약속했던 친구와의 북한산행을 위해서 조반과 목간을 하였다. 시간은 11시. 산행을 하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약속인지라 기다리고 기다렸것만...

"지금 전화기가 꺼져있으니 소리샘으로 연결하시기 바랍니다. 소리샘으로..."

이자식 아침부터 전화가 불통이다.ㅡ-^ 산행은 물건너 간 것 같다...

12시. 연일 강행군하던 내 하나뿐인 웬수같은 동생이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모처럼만의 휴식이라지만...벌써 12시간째의 수면. 혹여나 아픈건 아닐까 살며시 방안을 들여다 보았다. 다행히 숨은 쉬는지 똥배가 덮여있음직한 곳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책이나 읽어야겠다. 근 한달째 읽고 있는 그리스신화 관련책들...아직 맘에 쏙드는 책이 없다. 차라리 내가 하나 써버려...

50여 페이지를 읽었을까...동생이 얼굴에 도그오일팩을 뒤집어쓰고 눈밑엔 다크써클을 드리우고 엉덩이를 긁적이며 책읽고 있는 날 쳐다보고 있었다...

"배고파~"

동생이 좋아하는 메뉴는 시간을 가리지않고 피자와 치킨이다. 가끔가다 감자탕이나 곱창, 닭발을 원하기도 하지만...주타켓은 피자와 치킨...그나마 둘 중 하나만 고르면 이뻐라하겠지만 푸짐하게 시켜놓고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나...항상 다 쳐묵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부린다. 내가 때돈을 벌면야 뭔들 못사주겠냐만은...소박하게 벌고 죽어라고 안쓰는 내 경제관념상 먹거리에 욕심부리는 건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못한다. 결국 한시간여의 마라톤 협상끝에 피자로 합의를 보았다.

"우리 피자 먹으면서 영화보자. 일단 배고프니깐 너구리로 입가심하고, 옵빠도 먹을꺼지."

같이 안먹으면 삐친다. 정녕코 기분맞춰 주기 위해서 먹어주는 거지. 내가 먹고 싶어서 동의한게 아니다. 난 아침에 밥 물말아 열무김치랑 맛있게 먹었었다. 네버~

"딩동~피자배달 왔습니다."
"아~씨. 20분은 걸린다고 하드만. 이렇게 일찍오면 어떻게. 나~이거참. 누가 보면 돼진줄 알잖아. 옵빠가 나가라."
"다 묵었냐. 영화보자."
문열어주고 피자받고 거스름돈 받고 문닫는 사이...다 먹었다...ㅡㅡ;;

선정된 영화는 "옹박". 태국영화인데 대충 줄거리를 말하자면 "옹박을 찾아서"란 제목이 더 어울리겠다. "옹박"이란 정확할지 모르겠으나 태국말로 "Temple(불상을 모셔놓은 사원)"내지 "불상"을 뜻하는 말인것 같다.

조그마한 마을에 모셔놓은 수호신격의 불상의 머리를 도난당하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마을사람들은 옹박에 대한 신심이 강하여 옹박이 없으면 마을에 재앙이 내릴거라며 두려워하고 마을 제사장 겸 장로는 다음 제삿날까지 꼭 옹박을 찾아와야 마을의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예언하며 아이박 팀(주인공 토니 쟈)에게 옹박을 꼭 되찾아오길 부탁한다. 그 뒤는 전형적인 액션영화의 플룻을 따라간다. 이소룡이 그랬고, 성룡, 이연걸이 그랬듯이 뻔하고 뻔한 내용이다...그러나 와우~액션은 장난이 아니었다. 타이틀 로고에 "이소룡은 죽었다. 성룡은 지쳤다. 이연걸은 약하다"고 써놓았듯...시종 강하다 못해 맞으면 진짜 아플것 같은 액션으로 가득했다. 동생과 나는 시종 "진짜 아프겠다"란 말만 되뇌이며 피자 먹던 번지르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남자들이나 좋아하겠네라며 피자맛 떨어졌다고 투덜대는 동생을 위해 두번째 영화는 "더티댄싱-하바나나이트"를 선택하였다. 난 춤을 소재로 한 영화를 좋아한다. 실제로도 춤을 좋아라하고...내 몸이 이렇다고 춤을 좋아라하지 않을거란 편견을 버려라. 설령 남이 보기에 혐오감을 느낄지언정 리듬이 있는 곳이라면 난 어느곳에서든지 그 리듬에 내 몸을 맡겨버리니깐...다만 자제할 뿐이다.

원조 더티댄싱의 주인공인 페트릭 스웨이지가 춤선생으로 깜짝출현해서 제목이 더티댄싱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배경은 혁명직전의 쿠바다. 댄스영화의 컨셉이 대부분 그렇듯 뻣뻣하고 형식적인 스탠다드한 규격에서 벗어난 자유를 찾는다라는 내용이다. 그것을 춤이라는 장르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영화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영화라고 해서 재미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뻔한 내용의 영화일지라도 흔해빠진 소재일지라도 감독이 보여주는 참신한 시각과 관객이 찾아내는 그 영화만의 매력이 있다면 그영화는 잘만든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가 그런 영화다. 댄싱히어로에서 보여준 주인공의 프론티어정신, 댄스위드미에서 보여준 진정한 라틴댄스의 맛, 플레시댄스에서 보여준 춤의 열정과 백야에서 보여준 자유의 갈망...이 모든것이 잘 어우러졌다.

영화전반을 지배하는 라틴뮤직의 끈적끈적하면서도 감미로운 리듬이 내몸의 굴곡에 따라 흐를때면 도저히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없는 영화였다. 아~춤 배우고 싶다.

영화가 주는 격렬함 때문이었을까. 끝없이 흐를것만 같았던 음악이 페이드아웃해서일까...내 동생은 벌써 잠들어버렸다. 난 컴터 앞에 앉았다. 무의식적이고 늘 하던데로 카페를 검색하니 벙개공지...^______^씨익~ 시간은 5시. 약속시간은 6시. 형~~저 가요^^



도착하니 늦게오신다던 부흐님이 벌써 도착해계시고, 언제보아도 얼~큰한 훈형도 같이 계셨다. 물론 날 마중나온 기특한 성문이도 빼놓을 수 없고...

도착하고 나서야...오늘 벙개가 훈형과 성문이의 합동생일상이라는 걸 알았다. 이런 귀뜸이나 해주시지. 선물 준비할 시간이 없잖아욧~ 일단 담번에 만날때 주기로 맘을 먹고...아 생일이 지난것이 아니란다. 6월 2일. 이날이 진짜 생일날...다들 참고하시길^^

언제나 그렇지만 만나면 항상하는 두런두런 일상얘기들...난 이게 너무 좋다. 그 뒤에 이어지는 피터지는 설전 또한 빼놓을 수 없지만...어디가서 이런 얘기들을 나누리요. 어찌 우리 주저하리요. 다시 태어난 저~들판에서...참 광야스럽지 아니한가...가사가 맞는지는 모르겠으나...우리들이 만나는 이유가 이러할진데...아직도 망설이시는가. 주저주저 뻘쭘한 분위기를 맹글까 걱정 붙들어매시고 수다에 목마른 이, 사람 정에 굶주린 이여...나와라, 만나라, 즐겨라 벙개를~
여기까지 광고성 멘트임다^^움훗

아참, 부흐님에게 선물 받았다. 이또한 벙개를 나가는 즐거움 중에 하나지만...선물의 수량 땜시 선착순이라는거...ㅋㅋ 내가 마지막 떠리선물을 받았나보다. 선물은 김동률 솔로4집. 고맙습니다(__). 선물도 받고 갈매기살에 밥한공기 뚝딱하고 소금구이를 안주삼을 즈음...블로그 얘기가 나왔드랬지.

"당췌 블로그라는 게 뭐에요? 난 카페하고 블로그가 구분이 안갈뿐더러...블러그를 이해못하겠어요."

"블러그는 지식포탈검색기능을 갖춘 일종의 개인 홈페이지라고 보면돼요."

"블러그의 유래는 미국의 위키위키에서 찾을수 있겠지. 위키위키의 주목적은 정보의 공유야. 그로 인해서 저작권 문제라든지 개인의 노력의 대가가 무시되기도 하지만 요즘 추세가 인터넷 상에서 정보의 공유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것 같아. 대신 정보의 신속함과 방대함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그걸 본뜬 것이 블러그라고 보면 될꺼야. 거기서 검색한 것중의 하나가 메탈과 락의 차이점인데 그게 뭐라고 생각하냐?"

"몰라요. 글고 보니 메탈과 락의 차이점이 모호하네. 뭐에요?"

"나도 잘은 모르는데 메탈이라는 말이 금속이라는 뜻이잖아. 그리고 메탈을 연주하려면 몇가지 악기가 꼭 사용된데, 기타, 드럼...또 뭐냐..아무튼..그러니깐 금속성이 강한...그러니깐 기계음이 강한 걸 메탈이라고 하고 기계음보다는 악기자체의 음성을 내는 것이 락이라나...여기 옆에분이 아시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옆테이블에서 조촐히 데이트를 즐기시던 남녀중 남자분이 메탈과 락의 차이점을 말씀해주셨다.

"메탈과 락의 차이점은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에 대해 대하는 감정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원래 메탈과 락은 한 장르로 보고 있죠. 음악을 들었을 때의 차이점은 없다고 보는게 옳아요. 그 둘을 구분하려면 가사를 음미해야하죠. 즉 뮤지션이 곡을 만들었을 때의 감정. 이것이 차갑고 메마른 감정이었다면 메탈이라 하고 이것이 감성을 호소한다면 락이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메탈리카나 본 조비, 퀸 등등 여러그룹을 조목조목 예로 들면서 설명해주셨는데 정작 내가 그 곡들을 구분할 수 없으니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였다...

"우와...감사합니다. 답례로 드릴건 없고 술이나 한잔 받으세요. 근데 음악하시는 분인가봐요. 어디서 많이 뵌듯도 하고...혹시 마로니에에서 공연하시지 않으셨어요?"

"마로니에는 아니고 다른데서는 해봤죠."

"역시...어딘가 낯설지가 않더라니깐...아고 즐거운 시간 방해됬겠다. 여자분 죄송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과연 우리 토론회답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어디서 이렇게 처음 보는 사람과도 허울없이 대담할 수 있을까. 그 뒤 현귀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역시나 성문이 마중을 나갔다. 곧이어 현귀가 도착하고 우리는 독수리다방을 지나 민토를 건너뛰고 무진기행에 들어갈까 하다가 2차로 예정되었던 이대뒷골목...예전엔 점집이 즐비했다는 골목으로 서둘렀다.

참참 민토를 지나서 얼마안가 우리는 허브 하나씩을 샀드랬다. 훈형과 성문이는 로즈마리, 현귀는 애플민트...나는 파인애플향기가 나는 허브...이름 까먹었다^^;;
"아저씨. 제가 허브를 키우는 족족 죽이고 마는데 어떻게해야해요."
"허브 키우는 방법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 부터 알려드릴께요. 예를 들면 가난한 아빠가 자식들에게 돈 떨어지고 쌀 떨어졌으니깐 니들은 물만 먹고 살아라라고 말할 수 없잖아요. 그거하고 또옥~같애요. 분갈이를 해줘야하는 거에요. 첨에 팔았을 때의 상태에선 물만 줘도 되는데 6개월 정도 지나면 분갈이 해서...영양분을 보충해줘야 한다는 거죠. 그것도 안해주면서 디립다 물만 쳐묵으라고 물만 주니깐 얘들이 영양실조로 죽는 거에요. 아시겠죠. 그리고 두번째 물을 적게 줘라. 물을 주지 말라는 게 아네요. 물은 화분안의 흙이 메마르면 촉촉해질 정도로 두바가지정도 주면 되요. 그리고 물받이에 물이 고여있으면 안돼는 거에요. 물받이에 물이 고여있다는 건 허브의 뿌리가 계속 물을 쳐먹고 있다는 거니깐 뿌리가 썩어요. 그리고 세번째 물을 줄때는 잎에다가 주지마세요. 허브가 물을 마시는 부분은 뿌리에요. 잎이 아니라고요. 분무기로 뿌리지 말라는 거에요. 이파리에다가 아무리 물 줘봐야 허브가 물을 마시지 못해요. 물을 줄때는 흙에다가 주는거에요. 두바가지정도 팍팍 줘요. 그렇다고 두바가지 전부 다 쳐먹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화분에 물을 주면 밑으로 물은 대부분 빠져나가니깐 빠지게 냅두고 흙이 촉촉할때까지 주라는 거에요. 아시겠죠. 자 2개에 3000원. 한개는 2000원."
우리는 누가 오래 허브 살리나 내기하고서 하나씩 샀답니다. 근데 내기 이기는 사람한테는 뭐해줄껀데? 그거 얘기 안했잖아.


2차부턴 본격적이었습죠.
얼~큰을 넘어서 달~큰해지신 훈형, 이미 평소주량을 넘어스신 부흐님, 팔뚝살에 민감한 현귀, 언제나 재치발랄하지만 술만 만나면 영악쾌활해지는 성문이...자자 필름 돌아갑니다. 언제나 시작은 사소한 것부터...
"난 이렇게 확 트인 공간에서 술 마시는 것이 너무 좋아. 캬~예전엔 신촌에서 술마실때에는 별을 헤메면서 마셨었는데...오늘은 안보이네. 캬~나무에 꽃에...그리고 우리를 스쳐지나가는 섹시한 여자들...요즘 여자들 왜이리 섹시하니...사실 난 아까 저 안쪽에 있던 자리도 맘에 들었는데...왜냐구 옆자리에 여자들이 있었잖아..ㅋㅋㅋ"
누구의 발언인지는 초상권 침해의 요지가 있으므로 실명은 거론하지 않겠지만...능히 누구인지 뻔~~히 알것임. 섬○씨의 아들 ○강씨라나 뭐라나( ")a...성문이는 뭐가 그리 잼있는지 현귀 팔뚝살 가지고 즐거워라하고...현귀는 괴로워하고...ㅋㅋ 하여튼 이날의 벙개는 이런식이었다. 아직도 많다 기대하시라. 아직 찬영이가 안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중...걸인 한 명이 우리의 테이블로 찾아왔다. 맘씨 착한 우리 토론지기 부흐형은 얼른 수중에 있던 동전을 찾아 그 걸인의 손에 쥐어주었고 나는 수중에 만원짜리 지폐뿐이라 머뭇머뭇하는 사이...그 걸인은 우리 테이블을 지나 옆테이블로 옮겨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훈형...걸인을 불러세우더니...
"술한잔 하고 가세요."
하며 술 한 배를 대작하였다. 그러곤 우리들에게 적선을 해야한다고 얘기했다. 적선(積善)이 무엇이냐. 쌓을 적, 착할 선. 즉, 선을 쌓는다는 얘기다. 더이상 무슨말이 필요하리요. 이런 지인들을 곁에 두고 있으니 난 참 행운아라는 생각을 새삼 다시하게 한다. 훈형~멋져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면 우리는 만남의 장을 만든 원죄인 토론지기 부흐님에게 공치사 한마디를 꼭 한다. 뭐 항간에는 이런 말 안하면 삐친다 어쩐다 말들이 많지만은 사실이다. 사실은 사실로서 인정할 건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절대 평범하지 않은 우리네 식구들. 난 가족이라는 단어가 별로 맘에 들지는 않지만 서도...이럴때는 가족적인 분위기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가슴에 손을 얻고 진심으로 말해보아라...당신은 평범한 사람인가? 누가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사람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보기에 없다. 하나같이 특이하다. 근데 그런 사람들만 용케 모아모아서 이런 만남의 장을 마련하였다. 공치사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부흐님 원츄~

찬영이가 왔다. 역사적인 훈형과 찬영이와의 만남...
지아: "어, 찬영이 왔구나. 이게 얼마만이냐."
찬영: "네. 저도 너무 반가워요. 오랜만이죠."
성문: "ROTC 합격 축하한다."
찬영: "네. 고마워요. 형 생일이라면서요. 생일추카해요."
성문: "하하. 나만 생일이니. 이분도 생일이시란다."
찬영이와 훈형이 정식으로 대면하는 첫만남이다. 어색해하는 훈형.
훈형: "아네...반가워요. 그런데 닉넴이..."
지아: "천재찬. 본명은 이찬영인데 가운데 "찬"자를 따서 천재찬이래요. 난 재찬이가 더 좋구만. 찬영이라고 불러달라네요."
훈형: "천.재.찬....이찬영이라구."
성문: "봐요. 내말이 맞죠. 찬영이가 나보다 형같잖아요. 키도 크고..."
지아: "왜~난 찬영이가 더 앳뎌보이는데...덩치가 커서 그런가? 난 성문이가 더 연륜있어보이는 구만."
훈형: "아니다. 성문이가 더 어려보이긴 하다. 저...저기...이름이 뭐라고 했지?"
지아: "찬영이."
훈형: "맞다. 찬영이. 찬영이가 성문이보다 어려보이진 않는다."
지아: "그래요? 난 안그런데. 그럼 현귀랑 성문이는?"
흐형: "둘이 동갑 아니야? 서로 말트잖아?"
현귀: "아니에요. 내가 한살 많아요. 근데 계속 말 놓잖아요...."
훈형: "그럼...저...저기."
지아: "찬영이~"
훈형: "아..그래그래. 찬영이. 내가 사람 이름을 잘 못외워."
지아: "그럼 닉네임은 잘 외워요?"
훈형: "닉네임보다는 이름을 부르는게 낫지 않냐..."
성문: (나를 가리키며)"그럼 이름이 뭐에요?"
훈형: "지아잖아."
다들: (웃음)하하하하
훈형: "지아 아냐? 서지아잖아. 이게 누굴. 내가 지아이름도 모를까봐. 맞지~"
지아: "맞아요"(아니라고 하면 큰일날 거 같았음...^^;;)

바야흐로 5월. 누구네는 결혼을 합네. 연애를 하네. 말들도 많고... 언제부터인지 우리 토론회에 쉬이 오르내리는 주제는 "사랑"이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게 난상 토론은 시작되었다. 사랑은 무엇인가? 어디서부터가 사랑인가? 어디까지가 사랑인가? 짝사랑은 사랑이 아닌가?

성문이는 짝사랑, 외사랑은 사랑이 아닌것 같다고 그런다. 그럼 사랑의 시작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한쪽이 호감을 가지고 다가서서 이루어지는 게 연애고 사랑일진데...아직 상대방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그 기간을 짝사랑이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사랑이지 않은가. 사랑이 상호왕래의 과정이고 감정의 교류를 전제로 한 것만이 사랑이라면...짝사랑하다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사랑이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만큼 강렬한 감정표현이라면 짝사랑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이 죽고 산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아니 이게 아니고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고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그런 슬픔 느낌...그것만으로도 이미 사랑은 시작된 것이다.

현귀는 사랑은 이기심이란다. 맞다. 사랑의 기본조건이 상대방을 위한 희생일지라도 사랑의 본능은 자기만족이다.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주는 행위가 즐겁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런 느낌이 사랑이기 때문에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상대방을 위한다. 이건 명백한 이기심의 발로이다. 나에게 그런 느낌이 없다면...상대방을 위한 희생, 배려 따위는 하지 않는다.

훈형은 하룻밤의 연정은 사랑이 아니란다. 글쎄...난 그것조차 사랑이라고 본다. 이경우엔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견해이다. 남들에게 대입할 수 없는 나만의 사랑이다. 난 심한 결벽증과 대인기피증을 20여년간 겪은 사람이다. 난 내가 싫으면 내가 싫어하는 대상과의 모든 연을 끊는다. 이 말은 내가 만나고 대화하고 싸우고 다투는 모든 감정표현 일체가 사랑이란 말이다. 내가 언급했는지 모르겠으나 난 사랑해란 말을 밥먹듯 한다. 난 내 머리속에 떠오른 대상을 사랑한다고 표현한다.

이런 설명을 드리면 이해하실런지...옛말에 사랑하다란 말은 생각하다란 말과 동의어였다. 언젠가 마리와 댓글로 토론할때도 언급했지만 사랑이란 말은 순 우리말은 아니고 사량(沙量)이란 한자어에서 나온말이다. 뜻은 모래만큼 많은 양이란 뜻에서 사랑은 출발했다고 한다. 사랑을 하면 하루종일 그사람 생각만 떠오른다. 무수히 많이...그래서 난 사랑의 정의를 "그 대상의 떠올림" 즉, 생각이라고 본다. 생각하는 그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이성간의 애뜻한 감정까지 발전하기엔 너무나도 멀고 비교할 수 없이 조그마한 사랑이지만, 난 그것이 사랑이라고 본다. 그래서 하룻밤의 연정일지언정...나에겐 사랑이다. 그것이 창녀와의 사이일지라도 내가 선택한 것이라면 나에겐 사랑이다.

그러므로 내겐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다. 일체의 감정표현을 삭제한다. 어느정도냐구? 벌써 오래전 이야기지만 난 내 친동생과 1년여간 말한마디 안 한 적이 있다. 한 집구석에서 살면서...

뭐, 심각한 얘기였던거 같은데...과거의 나는 이미 죽었다. 이지아. 또다른 나의 모습이 현재 내 모습이다. 글 서두에서도 그렸던 것처럼 지금은 평범하다. 아니 평범해지려고 한다. 현재의 나는 디즈니스럽고 말 많은 수다쟁이에 보고 있으면 웃음이 터져나온다는 이지아일 뿐이다. 난 이곳에서 만난 내 소중한 인연들과 평생을 같이 하고 싶다. 내 소중한 사람들, 내가 늘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있으니...

으아..아직 끝난게 아냐. 3차는 노래방~모두들 거나하게 취해서 노래한자락씩 뽑아내고 성문이의 현란한 랩이 빛을 발하는 뜨거운 도가니탕에서의 1시간 뒤...현귀는 노래방에서 쓰러져 잤고 다들 기진맥진이 된 상태에서 헤어짐을 맞이했다. 난 찬영이와 택시를 타고 먼저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알아서 갔으리라. 집에 도착하니 새벽1시...씻는둥 마는둥 대충 물기를 닦고 침대속으로 파고들었다. 새벽4시 간만에 찾아온 속쓰림이었다. 부리나케 화장실로 뛰어갔지만 먹은 술마저 모두 소화가 되버렸는지...헛구역질만 나온다...옥~오옥~ 설마 입덧!!? 나는 내가 마신 술잔을 세어보았다. 대강 소주2병정도...절대로 이런 상태로 취할리 없는 주량이었다. 그때 스치는 장면하나...어디서 났는지 성문이가 소주병에 넣고 흔들던 조그만 티백...녹차였다. 아뿔사 2차로 간 포장마차에서는 산을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마신것이 이슬...나야 이슬파였으니 만족스러웠으나 산을 갈망하는 산파들이 만행을 저질렀으니...녹차소주칵테일을 만든거였다. 산에 녹차잎 성분이 있다나 어쨌다나...그래서 이러면 이슬이 산으로 바뀐다나...나도 취중에 그냥 무심코 넘기고 말았는데...난 소주칵테일을 마시면 그날은 제삿날이다. 난 깡으로 마셔야한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는 순수 소주...그래서 왠만한 과실주라든지 매취순 따위는 마시지도 않는데...그날 무심코 마셔버린 거였다...흑흑..한달간 고생하게 생겼다ㅡ.ㅜ 앞으론 저에게 그 어떠한 소주칵테일도 권하지 말아주세요. 그건 이지아를 두 번 죽이는 짓이랍니다...부탁이에요...





에필로그...난생 처음 허브를 샀다. 내 돈주고 산 건 아니었지만 훈형이 선물해줬다^^ 허브의 향기는 그냥은 맡을 수 없다. 허브 이파리를 건드려 주어야 그 허브만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만남 역시 마찬가지다. 온라인상으로 나마 만나고 있긴 하지만 오프라인상의 만남이 주는 감동만 할까. 난 그걸 허브의 향기에 비유하고 싶었다. 허브의 독특한 향기를 맡고 싶으신가요? 우리 토론회가 어떤 향기가 날지 궁금하신가요? 나오세요. 처음 허브향을 맡는 것처럼 독특하고 색다른...그러면서도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 될테니^-^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메모를 | 공감 0        
1 2 3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인간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