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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 2007년에 쓴 리뷰들 2007-02-2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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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봉준

우윤 저
하늘아래 | 200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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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오농민전쟁의 지도자는 전봉준이었고, 주역은 동학도가 아니라 농민이었다. 그러므로 <동학란>이나 <동학혁명>이 아니라 <농민전쟁>이라 불러야 옳다."

 

 그동안 1894년에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농민전쟁을 이끌었던 전봉준에 대해선 자칫 연루가 되면 역적으로 몰려 화를 당할까 무서웠기 때문이오. 해방이 되고서는 종교적(대종교) 처지의 모호한 관점 때문에 전쟁의 주역이었던 농민들이 동학교도로 둔갑한 사연 때문이었다.

 

 저자인 우윤은 이 책을 통해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하나는 전봉준은 역사의 죄인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근대화의 물꼬를 튼 선구자였다. 다른 하나는 그 주체는 다름아닌 농민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전봉준의 역사적 위치를 재조명해야 하며, 갑오농민전쟁은 농민 스스로 신분 평등과 관리를 선별할 권리를 추구한 민주제도를 꿈꾼 일대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갑오농민전쟁의 주체는 농민이었다고는 하나, 이들을 하나로 묶은 정신적 주체는 <동학>이었으므로 <동학혁명>이라 불러도 무방하다고는 하나, 저자는 확고한 어조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 하면 그들을 하나로 모이게 한 것은 <동학>이 틀림없지만, 동학은 학문적 사상의 기틀로서 그당시 농민들의 울분을 해소할 수는 없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탐관오리들의 탐학과 가렴주구, 조선 말기의 정치적 불안, 또 외세(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농민들은 나라 안팎으로 수탈을 당하는데 지쳤었다. 이런 울분을 정신적 위로만으로 해결될 수 없고, 반드시 분출하여 해소하여야만 했던 당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갑오농민전쟁의 주역들은 동학사상을 갖고 있었을지라도 동학사상을 포교하기 위한 혁명이 아닌, 부패정부를 향한 반군으로서, 외세를 축출하기 위한 의병으로써 기치를 올릴 수 었었던 것이다.

 

 이는 갑오농민전쟁 이후 갑오개혁과 의병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만큼 당시 인민들이 개화사상과 구국운동을 자발적으로 펼치거나 활발히 참여했다는 점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더 나아가 1894년을 우리 민족의 민주주의 시발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 하면 근대 사회라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국민 참정권을, 사회적으로는 계층간 평등을 추구 사회이기 때문인데, 갑오농민전쟁을 치루면서 농민들이 이 모두를 원했기 때문이란다. 그 증거로는 집강소 설치와 폐정개혁의 항목을 들고 있다.

 

 비록 갑오농민전쟁은 실패로 끝났고, 결국 조선은 일제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되었지만, 우리 민족이 겨우겨우 해방을 맞고 한국전쟁이라는 불행에도 굴하지 않고, 세계가 깜짝 놀랄만큼 빠른 시일에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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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가주망, 그를 해부해본다(--)뻔뻔 | 나의 리뷰어 도전기 2007-02-1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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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은 yes24에서 분주히 활동하시는 <앙가주망>운영자를 해부해보는 시간입니다. 힘찬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짝짝짝
 
=방금 소개 받은 앙가주망입니다.
 
-네, 역시 소문대로 짧지만 강렬한 소개시군요. 그러고보니 목소리가 참 중후하신데요. 같은 남자로서 참 부럽습니다. 중후한 목소리를 간직할 수 있는 비결이라도 있으면 살짝 공개해주시죠.
 
=하하하. 과찬이신데요. 어떻게 제 목소리를 아실 수 있으시죠. 한 번도 만난 적도, 대화를 해본적도 없으실텐데...
 
-아하하^^;; 설정이거든요. 대충 알아서 꿍짝을 맞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게 다 주목받기 위한 작전이거든요. 살아남을려면 별 수 있나요. 별에 별 짓을 다 해야 선택 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제 닉네임을 적절하게 풀이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아셨죠?
 
-제 관심분야가 폭이 넓은 결과라고 말씀드려야 적절한 대답이겠군요. 그 중에서 역사관련 책을 가장 좋아하는 데요. 정통역사뿐 아니라 철학사, 과학사 등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 중 철학사 관련 책을 읽다가 앙가주망(현실참여)을 호소하던 토막을 발견했지요. 그래서 아껴두다가 앙가주망님이 담당하는 책을 신청할 때 써먹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참 대단하시군요. 그러고보니 저도 이지아님을 참 여러번 선정한 것으로 기억되네요. 뭔가 비결이라도 있는 건가요? 제가 선택하지 않고서야 베길 수 없는 특별한 뭔가를 말이죠.
 
-비결이랄게 있나요. 저도 남의 글을 읽고 점수라든지, 일종의 평가를 하는 게 직업이다보니 비슷비슷한 여러 글 중에서 몇몇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계신 캐로짱님이나 지금은 방출(?)되신 행복한 겨울님, 닉네임을 여러번 바꾸신 아프리카님(요즘 안보이신다는), 그리고 변함없이 조신(?)한 율마님, 그리고 스치듯 선정하시고 사라지시는 운영자님들에게 캐릭터를 부여한다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겠네요.
 
=호오, 캐릭터를 부여한다고요? 참, 흥미로운 부분이군요. 저는 이지아님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췄는지 참 궁금하네요.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하하..참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질문을 하시는 군요. 그렇다고 질문에 답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걸 거절할 수도 없고...<앙가주망>님은 의외로 쉬운 편이니 조금 밝혀드리죠.
 
=네? 제가 쉽다고요?
 
-닉네임은 자신의 성향이나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해주는 열쇠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님의 경우 여러번 닉네임을 바꾸셨지요. 기억하기로는 <행복극복><단세포소녀><아프리카>로 바꾸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이건 자신의 성향이나 추구하는 것이 변화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요.
 
 <행복극복>이었을 때는 <행복한 겨울>님이랑 같은 시기에 활동하실 때였는데, 이건 <행복한 겨울>님에게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합니다. 이건 겨울에 뭔가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고, <행복극복>님은 그것을 같이 공감하면서 닉네임을 그렇게 정하셨을 겁니다. 그 사연이 정확히 무엇인줄은 알 수 없지만요.
 
 마찬가지로 <단세포소녀>는 그 당시 유행했던 동명의 만화와 영화제목이었죠. 여기서 무언가 감동을 받으셨을 거에요.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일 때는 가고 싶다는 열망이 아니었을까요?
 
=참 대단하십니다. 그럼 저도 그렇게 해석이 가능한가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앙가주망>님은 단순히 그 뜻인 <현실참여>로만 해석하기에는 모자람이 보입니다. 단지 추구한다 열망한다를 넘어선 품격과 지적유희가 엿보이거든요.
 
=품격과 지적유희라...정확히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앙가주망님의 블로그에 방문하면 얼마전까지 대문에 적혀 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같은 것이 있었죠. 원문을 옮기면 이런 글이었죠.
 
 몸을 발가벗은 것은 모든 이에게 쉽게 발견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이고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고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나를 놓친 이가 나를 잡기 전에 빨리 도망치기 위함이다. 
 나의 이름은...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럼 답을 알고 계신건가요?
 
-네, 답은 크로노스. 즉 <시간>입니다. 시간은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지요. 다시말해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졌지만 미쳐 발견조차 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일단 발견하고 잘만 다루면 그에 대한 보상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놓친 시간은 다시 쓰일 수도, 다시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겁니다. 한마디로 위의 수수께끼는 시간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지요.
 
=맞습니다. 반가운데요.
 
-기뻐하시니 저역시 반갑고 흐뭇하네요. 이런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죠.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거 안 넘어갈래야 안 넘어갈 수가 없겠군요.
 
-감동하셨나요? 책 주세요.
 
=아직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번 책에 대한 말씀은 전혀 없으셨거든요. 자, 이제 말씀해주시죠.
 
-이것이 <앙가주망>님이랄 수 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는 말씀이시죠^^ 짧게 말씀드리죠. 정자에는 세가지 부류가 있다. 최종적으로 난자와 수정을 목적으로 하는 정자, 다른 이의 정자가 가는 길목을 막는 정자, 그리고 다른 이의 정자를 공격해 파괴하는 정자. 이 중 첫번째 정자는 쉽게 수긍이 가지만, 두번째와 세번째 정자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과연 외도, 바람, 혼외정사를 설명해주는가? 이런 것들이 이 책에 설명되어 있겠죠. 이제 줘요(--)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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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중서가 아니었다 | 2007년에 쓴 리뷰들 2007-02-1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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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쿤 / 포퍼 논쟁

스티브 풀러 저/나현영 역
생각의나무 | 200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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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쉽게도 이 책에는 쿤과 포퍼가 직접 논쟁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래서 쿤과 포퍼가 논쟁했던 이유와 과정, 그리고 결과가 궁금했던 독자들에겐 원하지 않던 후속 논쟁에 관한 이야기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들은 쿤과 포퍼가 과연 어떤 논쟁을 했는지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과학과 철학이 만나면, 정확히 말하자면 물리과학자와 사회철학자가 만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게 되는지 간접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쯤 될게다.
 
 이 책에서 쿤과 포퍼의 논쟁을 한마디로 지동설과 천동설의 충돌쯤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천동설은 오류가 많은 이론이니 지동설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고, 포퍼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지동설이 옳다고는 하나 시대적으로 천동설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지동설이 필요없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결론적으로 쿤과 포퍼는 대립적 논쟁을 벌인 것이 아니고, 과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면, 실제 그 의미가 별로 크지 않은 논쟁이 현실적으로 너무 큰 파급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진상조사, 즉 쿤이 포퍼를 눌러 쿤이 주장하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오류가 벌어졌기 때문에 이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 위해 내놓은 책이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면서도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 헷갈리는데,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한마디로 굉장히 난해하다.
 
 그래서 이 책은 논쟁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친숙한 <대중서>가 아닌 '과학사'나 '과학철학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분을 위한 <논문서>에 가깝다. 왜냐 하면 이 책은 초보자를 위한 친절한 해설대신 쿤을 하이데거가 포스트모던적으로 위대한 철학자였던 것만큼 위대해 보인다는 둥, 포퍼는 플라톤을 비판했는데, 쿤과 논쟁을 벌이면서 플라톤신봉자로 오해를 받았다는 둥, 쿤과 포퍼마저 생소한데 하이데거 철학과 플라톤 철학까지 완전히 이해해야 이해할 수 있는 복잡난해한 문장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포퍼의 제자인 파이어~뭐시기랑, 아~뭐시기의 논쟁과 비트겐슈타인, 야스퍼스, 키르케고르, 헤겔 등등등 비유적 수사법의 삼선짬뽕격인 문장으로 가득한 책이다.
 
 그래도 이 책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좀 더 설명한다면, 쿤은 이렇게 실제로 이렇게 말했단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천동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쿤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가 지동설을 발표하면서 천동설은 사라졌고, 아인슈타인이 등장하면서 뉴튼이 사라진 것처럼 주장한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전자가 후자를 밀어내어 후자를 완전히 없앤 것처럼 오해한다. 여기서 스티브 플러는 논쟁에서 이긴 뒤 쿤이 왜 두문불출했는지를 예로 들어 쿤의 주장은 이러했다고 증명했다.
 
 반면에 포퍼는 과학은 철저히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발전하는 학문이었고, 사람들이 천동설만으로도 세상을 사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던 때엔 굳이 지동설이 필요치 않았는데 무엇하러 알아내려 했겠느냐고 주장했을 뿐이란다. 이는 패러다임의 변환이 혁명적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의 욕구가 혁명적이었을 뿐으로 보아야 더 정확하다고 포퍼는 주장했다.
 
 어쨌든 이 논쟁에서 당시 사람들은 쿤의 손을 들어주었고, 오늘날엔 쿤과 포퍼의 논쟁을 다시금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맞는 말이다. 반성하지 않는 학문은 발전하지도 않고, 폐도로 빠질 위험마저 크다. 이기고 지는 것이 학문의 발전적 승패가 아니라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반성할 수 있느냐가 학문 발전의 승패를 가름하는 것이다. 마치 이 책에서 <토리적 접근>처럼 지더라도 진 것이 아니라 결국엔 승리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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