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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현대인들 모두 지킬박사처럼 이.. 
축하드립니다 ㅎㅎ 
어릴때 본적있지만 그때는 이런 초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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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8 개설

2007-07 의 전체보기
누가 뭐래도 난(--)뻔뻔 | 나의 리뷰어 도전기 2007-07-2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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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이놈! 너는 네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를 알렸다?
 
= 책만 읽어서 왔겠지요(--)뻔뻔
 
- 고놈, 참 뻔뻔하고나. 그래 그럼 네 죄를 달게 받겠느냐?
 
= 그럴 수는 없습니다(--)뻔뻔
 
# 네 이노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게냐. 뻔뻔한 놈 같으니라고 어서 바른데로 고하지 못할까?
 
- 놔두어라.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탈근대>니 하며 너나들이 <민주 지옥, 친절한 염라>를 바라는 마당에 제 변론할 기회마저 빼앗을 수 있겠느냐. 저 놈이 주둥이는 고약하다만 아주 틀린 말은 지꺼리지 않는 것 같으니 어디 들어나 보자.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강압에 의한 범죄사실 인정은 무효라는 대천사장의 판결도 있었죠. 더구나 난 죄도 없는데 무슨 벌을 받는단 말입니까? 빨랑 천국으로 보내주세요(--)뻔뻔
 
- 그.러.나! 전 살아 생전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책만 읽은 죄가 명백하니 지옥에 떨어진 것이 아니겠느냐? 과거에는 무고한 사람들이 염라국에 잘못 끌려와 아무 죄도 없이 지옥 불구덩이 맛을 종종 보기도 하였으나, 요즘엔 <최첨단 자동 죄질 검사기>이 저승길에 설치되어 있어 오진률이 1000만 분의 1로 줄어들었느니라. 그럴진데도 정녕 네게 죄가 없더란 말이냐?
 
= 지구 인구가 60억에 육박하니 1/1000만은 아주 적은 수치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이야 고작해야 4500만 명이고 이 중 1/1000만에 해당하는 사람이 무려 4.5명, 반올림하면 5명이나 되지 않습니까. 법이라는 것은 단 하나라도 억울함을 느낀다면 그 공정성을 의심받고 개선이 요구되는데, 무려 다섯이라뇨. <최첨단> 운운하는 것은 '과대 포장 및 허위 조작에 따른 광고법 제 13조 4항'에 위반되는 것이오니 당장 시정조치를 요구하셔야 겠습니다.
 
- 녀석하고는, 이승에서 책만 봤다고 하더니 정말 모르는 것이 없구나. 좋다. 이제부터 네 죄를 조목조목 따져주마.
 
 너는 책을 읽고도 사회에 봉사는커녕 공헌하려는 생각조차 전혀 없으니, 이것이 첫 번째 죄요.
 아는 것이 많다고 중에 다른 이를 낮잡아 보았으니, 이것 또한 죄.
 책 좋아한다는 것을 핑계삼아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책만 읽었으니, 죽어 마땅한 죄요.
 책 꽤나 읽었다는 놈이 자신이 지은 죄조차 시인하지 못하니, 책 읽으나 마나한 죄가 그렇다.
 
= 아니, 어찌하여 이것들이 죄가 된단 말씀이십니까?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모름지기 책이라는것이 읽는 자의 소유물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고, 이것을 제 맘대로 사용하는 것이 무에 죄가 된단 말입니까. 또,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꼭 사회봉사를 많이 해야하고, 성인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어디 어느 곳에 적혀있더란 말입니까? 저는 정말 듣도 보도 못하였습니다. 억울합니다(--)뻔뻔
 
- 그렇다. 네 말이 맞다. 그러하나 책은 그저 읽기만 해서는 아무 짝에 소용없는 물건이니라. 너는 그저 <읽기>에만 미쳤을 뿐, 무엇하나 얻은 것이 없잖느냐?
 
=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책 읽기>를 통해 얻은 지식이 포개면 천국까지 닿을 것이오, 늘어 놓으면 바다를 덮을 지경인데, 얻은 게 없다니요?
 
- 그러기에 하는 소리다. 그렇게 아는 것이 많은 놈이 그래 그저 방 구석에 틀어박혀 죽을 때까지 책만 읽었다더냐. 그래 대관절 책 속에 무엇이 들어있더냐?
 
= 네, 책에는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담겨 있었사옵니다.
 
- 그래, 그 이치란 무엇이더냐?
 
= …….
 
- 왜 아무 말이 없느냐? 네가 깨우친 이치가 무엇이더냐?
 
=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살아 생전에 세상의 모든 이치에 통달한 줄 알았는데, 제가 불민하였사옵니다. 죽여 주십시오. 엉엉
 
- 너는 이미 죽어서 이곳에 오지 않았느냐? 그래 너는 아는 것이 많으니 네 죄에 합당한 죄값을 어찌 받으면 좋겠느냐?
 
= 제가 어찌 제 입으로 말씀드릴 수 있겠사옵니까. 처분만 기다릴 뿐입니다.
 
- 허허허. 네가 살아서 읽었던 책을 허투루 읽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정상참작해줄터이니 말해보거라.
 
= 그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씀 올리리다.
 
- 그래그래.
 
= 제가 스스로 내린 죄값으로 저의 죄를 용서해주시겠는지요?
 
- 내 여지껏 허언을 해본 적이 없느리라. 내 특별히 기특해서 말하는 것이니 맘변하기 전에 얼른 말해보거라.
 
= 약속하셨습니다?
 
- 고만 좀 뜸드려라. 밥 다 타겠다.
 
= <책 도령은 왜 지옥에 갔을까?>를 읽고 싶습니다(--)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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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는 던져졌다(--)뻔뻔 | 나의 리뷰어 도전기 2007-07-2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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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사르. 이 강 너머는 로마입니다. 건너시겠습니까? 건너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 나도 안다. 그래, 전령이 가져온 문서의 내용은 무엇인가?
 
- <카이사르는 들어라. 그대를 곧장 본국으로 소환할 것을 명한다. 물론 그대의 군대는 모든 무장을 해제한 뒤에 돌아와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로마는 그대를 적으로 간주할 것이다. 한시가 급하다. 속히 돌아오라.>
 
= 하하하. 원로원의 영감탱이들이 급하긴 급했군. 그래, 내가 그렇게 두려운건가?
 
- 카이사르. 이제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당신을 따를 것을 맹세합니다. 건너시겠습니까?
 
= 나는 내 이름이 역사에 길이 남길 원하지 않는다. 동시에 내 이름이 역사에 악명으로 남기고 싶지도 않다. 저 멀리 아시아의 동쪽 끝에 나와 버금가는 명장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 명장의 묘비는 거대하기가 그지 없다지. 그는 그 나라의 영토를 거침없이 넓혀 놓았다고 한다. 내가 갈리아와 브리타니아를 정복한 것과 같이 말이다.
 
= 그렇지만 후세의 사람들은 그 명장이 남긴 유산을 빼앗기고 말았다고 한다. 영토는 물론, 그가 쌓은 영광스런 명예마저 빼앗길 지경이라고 한다. 비록 내 일은 아니지만 분하지 않은가?
 
- 굉장히 분하군요. 저 역시 그런 일을 당한다면 수치심에 몸둘 바를 모를 겁니다.
 
= 그렇다. 난 그것이 두렵다. 훗날 역사는 내가 이룩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그것 뿐이다.
 
- 그렇군요. 역사를 잊는 것은 자존심을 잃는 것이고, 자존심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카이사르, 제가 당신을 기록하겠습니다. 그리고 로마시민 누구도 당신을 잊지 않게 하겠습니다.
 
= 그런가. 고맙다. 이제 나는 더이상 두려운 것이 없다. 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자~나를 기다리는 로마로!
 
.
.
.
.
.
 
- 한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 논쟁은 언제부터인지 자존심 싸움이 되고 말았어.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역사는 이제 불필요한 논쟁이 되었단다. <과거의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지.
 
- 어떻게 보면 동북아 삼국 모두가 <거짓과 왜곡 투성이>로 점철된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지만 <진실>은 하나 아니겠니. 일본의 <역사망언>, 중국의 <동북공정>이 '자국에 유리한 해석과 이해'라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 접근법은 <우리 역시 우리에게 유리한 해석과 이해>는 아닐거야. <진실>을 밝히려는 삼국의 <각국 역사의 올바른 이해와 양보>일 게다.
 
- 자, 이이화 선생님의 <진실>은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니?
 
- 니야옹~(--)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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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나무이야기> | 2007년에 쓴 리뷰들 2007-07-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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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무열전

강판권 저
글항아리 | 200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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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재미나고 신기한 <나무이야기>와 더불어 관련된 <한자어휘>를 익히며 여기에 얽힌 <역사>를 담았다. 한마디로 <일석삼조(一石三鳥)>다. 일석삼조란 옛날에 돌팔매질을 잘하는 청년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얼마나 잘 던졌으면 돌 하나를 던져 날아가는 새를 세 마리나 잡았을까. 정말 신기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요즘엔 이 말의 의미가 확장되어 '한 가지 일을 통해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능함이나 효과'를 가리킬 때 쓰인다.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다가 관련 한자어휘(고사성어 등)를 끄집어 내어 <역사>적 이야기로 마무리하였단 말이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한다면 참 재미날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교사는 죽어나겠지만 말이다.
 
 저자의 신념은 확고하다. '미쳐야 공부를 잘하고,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했다면 날탕으로 하지 말란다.' 그러면서 자신의 예를 들어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 이유의 결과물이 바로 <나무열전>이었다. 정말 대단하다. 정말 미치지 않고서는 이런 책이 나올 수 없다.
 
 정말이지 저자의 신념에 공감한다. 모름지기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 또 저자가 <맺음말>에서 꺼낸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에도 동의를 표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편협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아니, 해왔다. 그래서 고쳐야 한다. 알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보다 깊은 공부를 하기 위해 <한자>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에, 나는 <결론>엔 동의하지만 <전제>엔 동의할 수 없다. 저자는 한자는 우리말과 달리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문자 하나하나에 깊은 뜻이 담겼고, 나무와 같이 스스로 서는 독립 문자여서 그 깊이가 <표음문자>에 비할 수 없기 때문에 <한자공부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표음문자>인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은 <깊이> 공부가 아닌 <널리 통용됨>을 공부하는 것이라 그 목적이 다르다고 설명할 텐가?
 
 아니다. 저자의 공부법은 <필요에 의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공부를 위한 공부> 즉, 미치도록 미쳐서 하는 공부를 말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런저런 변명은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저자의 의도는 <나무열전>만 읽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맺음말의 이런저런 부연설명은 <사족(蛇足)>에 가까웠다.
 
 나는 이 책을 제목이 주는 중압감 없이 읽기 시작했다. <열전>=<재미난 이야기>라는 등식으로 이해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마치 엄한 훈장님에게 일장 훈계를 한바탕 들은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그리고 생면부지(生面不知, 서로 만나 본 일이 없어 도무지 모르는 사람)의 저자가 오랜 지인처럼 다가왔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와닿는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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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정보, 거북한(?) 말씀 | 2007년에 쓴 리뷰들 2007-07-22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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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상의 완성

오하시 히로마사 저/이경덕 역
다른세상 | 200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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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 책은 일본인 법률가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협상>에 어색한 일본인들을 위해 <미국인들은 협상할 때 이렇게 한다>이라는 주제로 쓴 지침서이다.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 아쉬운 점은 특정 대상(이 책의 경우 <일본인>)을 상대로 썼기 때문에 예로 든 사례나 비유가 너무 일본적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 독자들은 책의 내용을 공감하는데 방해를 받는다.

 

 물론 이 책의 경우엔 <한국어판 서문>을 실어 독자에게 <양해>를 구한 셈이지만 읽을 때 찜찜한 것은 매양 마찬가지다. 이를 테면,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인이 이랬다면 패전하지는 않았을 텐데 따위의 일본 정서에만 어울릴만한 예를 들어 <협상의 임하는 올바른 자세>를 설명하는 것은 태평양 전쟁의 피해국인 한국인으로선 껄끄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점만 유념하고 읽으면 국제적 협상(예를 들면, FTA)자리가 많아진 요즘에 협상에 임하기 전에 꼭 한 번 읽으면 좋을 책이다. 특히 저자가 지적하듯이, 협상을 할 때엔 동양적 관점(유교적 연공서열)과는 다른 서양적 관점(합리적)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은 공감한다.

 

 그러기 위해선 전통적인 기업 윤리, 즉 일본(혹은 동북아)에서나 통할 관점은 과감히 버리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여기에도 적극 공감한다. 단, 서양인(특히 미국인)과 <협상>을 할 때에만 한정한다는 조건에서.

 

 요즘엔 국가간이나 기업간에 <협상>을 하면 대부분 서구적인 룰을 표준으로 삼지만 동북아 국가끼리 중국과 일본, 한국과 일본이 <협상>을 하면서도 꼭 서구적인 표준 <협상> 기준으로 해야 할까?

 

 저자는 세계 비즈니스의 중심이라는 미국 맨해튼에서 <협상>기술을 쌓았기 때문에 다분히 미국적인 잣대를 표준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올바른 협상 기술이고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만국 표준으로 합당할까? 아닐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아쉬운 부분은 <만국에서 통할 협상의 기술>이 아니라 <미국에서만 통할 협상의 기술>을 예로 들면서 은근히 <일본인들의 협상 기술>을 낮잡아 보고, 아울러 <한국인들의 협상 기술>까지 도매금으로 넘겨버린 점이다. 대체 남의 좋은 점을 배울 때 꼭 저자세를 취해야 바람직한 것일까?

 

 "오호! 이렇게 유용한 정보가 있었네. 이거 한 수 배웠는걸."

 "와! 이건 꼭 배워야 할 정보다. 또 다른 건 없나?"

 

 이렇게 동등한 위치에서 한 수 배우면 안 되는 걸까? 이 책의 내용은 정말 주옥 같았고, 꼭 배워야할 유용한 정보였다. 하지만 "니들은 이거 모르지? 메롱~"라고 말하는 것 같은 저자의 어투는 듣기 거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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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멸망 원인을 알아보자<1> | 역사 / 과학 2007-07-20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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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의 최후

김윤희,이욱,홍준화 공저
다른세상 | 200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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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의 최후


 현재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산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바통을 받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제국의 멸망의 바통을 받아 일제식민지시절에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대한제국의 전신은 바로 <조선>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조선의 후예임을 자처하면서도 <조선>이란 나라가 어떻게 망해갔는지, 왜 망했는지 소상히 알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저 ‘조선은 세계의 정세를 파악하지 못해서 스스로 개혁할 힘을 잃고, 일본의 침략에 의해 멸망하였다’는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조선은 무능하였다고 자학하거나, 아니면 조선은 위대한 나라였는데 일본이 못돼 처먹어서 남의 나라를 침략했기 때문에 멸망하였다고 분개하는 것이 고작이다. 정말 그럴까? 아니면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제부터 <조선의 최후>에 대해서 알아보자.


1-1. 역사학자마다 조금 다른 견해를 보이지만, 대개 조선이 500년 동안 명맥을 유지한 것 자체가 미스터리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심지어 조선은 조일전쟁(임진왜란, 1592) 당시 멸망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라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300년간이나 나라의 기틀이 흔들이지 않고 왕조가 유지될 수 있었던 점이 알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간 동안 조선은 부흥할 가망성이 없었는가? 있다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 요즈음 <조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주로 이 부분에 관심을 둔다.


 첫째는 <개혁군주의 역량>이다. 조일전쟁이후 <광해군>과 <정조>, 그리고 <고종>이 새롭게 부각되는 실정이다. 세 군주의 공통점은 ‘국제정세’를 살펴 나라의 국력을 신장시키려 하였다는 점이다. <광해군>은 명․청 교체기에 등거리외교와 같은 ‘실리외교’를 정책으로 삼아 전쟁으로 기울어진 국력을 키우려고 있기에 <개혁군주>로 부각되었다. 그리고 <정조> 역시 청나라의 문물과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자강개혁에 힘썼다는 점에서 꼽은 것이고, <고종>은 망국군주로도 명망이 높지만 나름대로 <조선>을 살리려는 노력한 점이 속속 밝혀지는 실정이어서 <개혁군주>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만약 이들 세 군주의 개혁이 성공하였다면 <조선>이 또 어떻게 변하였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것이 없다곤 하지만…


 둘째는 <백성들의 역량>이다. 이런 관점은 우리의 주된 역사관으로는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던 점이다. 주로 <왕조사>나 <왕과 지배세력의 관점>에서 역사를 풀어보았기 때문에 나라가 멸망한 책임도, 나라가 흥한 책임도 모두 ‘왕을 비롯한 지배세력’의 몫이었다. 그러나 한 나라가 망하고, 흥하는 것에 백성, 즉 민중을 무시해야만 할까? 민심은 천심이라 하고, 왕이 된 자나 지배세력들은 민심잡기에 여념이 없었으면서도 일국의 흥망의 책임이 과연 지배층에게만 있을까? 발해의 멸망 원인 중에 피지배층이었던 흑수부 말갈족의 반란 때문이었다던데, 꼭 <발해>만의 특수한 상황이었을까? 그렇다면 <조선의 멸망>원인으로 민심의 배반은 없었나? 살펴볼 일이다.


2.조선의 멸망원인 - 첫째, <왕권만 강화하면 나라가 바로서나?>


 왕조국가의 국력은 똑똑한 임금이 강력한 왕권을 휘두를 때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왕조들은 강력한 왕권보다는 늘 신하들의 권력(신권)에 눌려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였다. 특히나 조선은 신권이 더욱 심했다. 성리학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개국된 조선은 왕도정치가 발현된 나라였으며, 이로 인한 왕권의 강화는 항상 견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조선중기이후 고지식한 사림파의 대두로 인해 왕다운 왕은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조선의 <개혁군주>들은 하나같이 <왕권강화>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왕권강화>만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할 수 없는데도 왕은 왕권강화에만, 신하들은 기득권 확보에만 열을 올렸다. 그래서 조선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본다.


2-1. 정조는 날로 약화되는 국력을 구명하고자 <왕권강화>를 시도하였다. 당시 신하들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든 말든 자기 배만 불리는 형편이었으니 정조의 <왕권강화>는 분명한 대안정책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너무 빨리 죽었다. 그 때문에 <독살설>이 난무한 것이다.


 정조는 우선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였다. 아시다시피 사도세자는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겉으로는 세자자질을 의심받아 완고한 아버지의 손에 죽은 것 같으나 이는 정권유지를 위한 정략적 살인이었으며 영조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불우한 사건이었다. 다시 말해, 영조는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 없었는데도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노론>의 결정을 거부할 수 없었고, 이 <노론>의 정략에 의해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제거되어야 했다. 한마디로 사도세자가 <노론>의 눈 밖에 났기 때문에 왕인 영조조차 자신의 아들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영조는 왕권이 약한 임금이었다. 또 정조가 영조를 이어 왕위를 이은 것도 드라마틱하다. 자신의 두 눈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서도 눈물을 흘릴 수 없었던 세손(정조)은 살아남기 위해 연극을 할 수밖에 없었고,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이 연극은 계속되었다. 이 연극에 속은 영조는 세손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사도세자가 아닌 다른 아들의 양자로 입적하여 자신의 왕위를 잇도록 하였다. 정조는 이런 모욕을 견디며 왕이 되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래서 정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론>에 반기를 들었다는 증거로 자신의 아버지는 ‘사도세자’라고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수원 화성을 지어 여기에 아버지의 능을 옮겼던 것이다. 즉 왕의 아버지다운 대우를 하여 왕의 권위를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이는 당연히 <노론(벽파)>의 원성을 샀다. 또 규장각을 설립하여 학문을 발달시키고, 인재를 발굴하였다. 그러나 인재발굴이 정조의 개인감정에 의한 ‘측근인사’ 경향이 강했다는 점(홍국영 등)에서 성급한 점이 발견된다. 또 탕평책의 일환으로 실시되던 ‘호대’를 무시한 인사등용은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하였으나 왕 스스로 원리원칙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미흡하였다. ‘호대’란 판서에 노론 출신이 뽑혔다면, 참판에는 소론을, 참의에는 남인을 등용하여 당파싸움을 방지하던 인사정책이었다.


 이렇게 개혁의 시초로 시행되던 왕권강화책을 실시하다 정조가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정조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한 죽음이었다. 어쨌든 정조의 정책은 어린 순조(11살에 등극)에게 떠넘겨졌다. 정조는 죽기 전 높은 학덕을 갖춘 김조순(김상헌의 후손(서인). 병자호란 때 척화파)의 딸과 순조를 혼인시켜 외척세력을 이용해 자신의 정책이 유지되길 바랐다. 아마도 정조는 순조가 자신을 대신해 왕권강화를 완성해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조가 끌어들인 외척세력은 60여년 세도정치의 서막을 열어준 셈이 되었다.


2-2. 순조 역시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에 의해 번번이 방해를 받았다. 즉 신하가 왕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순조는 이를 어쩌지 못하고 자신의 아들 효명세자에게 넘겼다. 즉 대리청정(임금이 세자에게 정치권력의 일부 혹은 전권을 넘겨줌)을 하였다. 그러나 효명세자 혼자서는 벅찼던지 외척(풍양 조씨)을 끌어 들이는 결과만 낳고, 대리청정 3년 만에 죽고 말았다. 이가 바로 불운의 왕세자, 익종이다.(헌종이 추대함)


2-3. 효명세자의 어린 아들, 헌종(8살)이 등극하였다. 헌종 역시 왕권 강화에 주력하였다. 정조 때부터 훈련도감을 개편(훈련도감→5군영)하여 왕의 친위대로 삼았는데, 헌종 역시 자신의 세력기반을 세우기 위해 총융청을 총위영으로 승격하여 친위대로 삼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왕권강화는 쉽지 않았고, 세도정치만 날로 심해졌을 뿐이다.


2-4. 세도정치는 왕도 자기 입맛대로 고르기에 이르렀다. 후사가 없던 헌종의 뒤를 이어 강화도령, 철종이 왕위에 올랐다. 한마디로 허수아비 왕이었다. 사실 헌종과 철종은 조카, 삼촌 사이였다. 즉 조카의 왕위를 삼촌이 잇는 쿠데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왕위계승이 세도가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단종과 세조를 기억해보라. 왕족 간 피를 불러일으킬만한 이 사건은 풍양 조씨의 재집권을 막기 위한 안동 김씨의 농간이었다. 사실, 허수아비 왕, 철종은 안동 김씨의 리모컨에만 작동하였다.


※세도정치가 욕먹는 이유

 1. 서울의 몇몇 가문이 관직 독점. (→당연히 부정부패 만연)

   영․정조 때만 해도 지방 사람도 관직을 얻었다. 그런데 세도정치 때엔 10여 개의 유력 가문 출신만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지방 수령직까지 서울 출신이 매점하였다.


 2. 부정부패에 이은 매관매직으로 관리들은 본전 생각에 자기 뱃속만 챙기려고 백성들을 주리 틀었다.


   이에 농민들은 분노하였고, 1862년 진주에서 농민항쟁이 물꼬를 트자 세도정권은 ‘대원군’에게 정권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세도가들은 제 2의 허수아비를 내세울 요량이었지만…


2-5. 대원군이란 정상적인 왕위 계승과정을 거치지 않고 종친으로 있다가 왕위에 오른 이의 생부를 일컫는 일반명사다. 조선엔 4명의 대원군이 있었는데, 선조아빠 덕흥대원군, 인조아빠 정원대원군, 철종아빠 전계대원군, 그리고 고종아빠 흥선대원군이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을 제외하고 아들이 왕위 등극 당시엔 이미 살아있지 않았다. 오직 흥선대원군만이 살아있었기에 <대원군>하면 흥선대원군을 지칭하게 된 것이다.

 대원군은 고종을 앞세워 섭정에 들어갔다. 그 역시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는 최선책으로 <왕권강화>를 내세웠다. 대원군은 집권하자마자 ‘인사문제’와 ‘왕권강화’에 탁월한 정치실력을 행사하였다. 마치 ‘준비된 대원군’처럼. 그러나 당대 세도가들은 똑똑한 국왕을 원치 않았다. 여기서 조선은 망국에서 기사회생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나라를 경영하려면 국내의 문제뿐 아니라 국외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는데 조선은 왕조 내내 왕권과 신권의 기싸움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로 국력낭비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으르렁 거리던 두 세력이었는데도 대원군이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데는 세도정치가 한 몫 했다. 세도정치의 수렴청정 같은 왕권을 대신하는 관행이 60여 년간 지속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대원군은 그 자리를 대신한 것뿐이었고, 대원군의 강력한 권력행사 역시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인한 백성들의 불만 덕분에 세도가의 강한 반발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세도가에겐 원치 않은 무저항이었을 뿐, 대원군에 대한 불만은 점점 쌓여만 갔다.


 그런데도 대원군은 자신의 정치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착각하였다.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원군은 왕권강화에만 급급하였다. 다시 말해 대원군의 목표는 백성들이 잘살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조선왕조재건이었을 뿐이다. 이는 당시 시대적 과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데 미흡한 정책으로 알 수 있다.


 대원군 당시 시대적 과제란 세도정치의 폐단이었던 조세․토지제도 개혁에 따른 백성들을 위한 정책과 국제 정세를 살펴 열강들의 침략에 대비하는 것인데도 대원군은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했다.


 집권 초기에 대원군은 호포제와 사창제 개혁을 통해 양반들의 기득권을 빼앗았다. 이는 백성들도 원하는 것이었다. 호포제는 양반들에게 면제되던 군역을 백성과 똑같이 부과하는 제도이고, 사창제는 환곡의 폐단을 시정하여 양반들이 백성들에게 고리의 이익을 얻지 못하게 한 정책이었다. 이는 백성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백성들이 원하는 것은 세금감면과 안정된 생계를 유지할 토지개혁이었는데 대원군의 정책은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원군의 정책이 직접적인 망국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 개혁의 일환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국제 정세를 망각한 <쇄국정책의 고수>가 큰 문제였다.


※대원군의 쇄국 정책 고수 원인

 1. 러시아 남하에 위기감을 느낀 대원군은 프랑스에 도움을 바랐다가 실패하였다. 이 때문에 천주교와 프랑스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고, 이는 천주교 탄압과 병인양요를 불렀다.

 2. 독일 상인 오페르트에 의한 대원군 아빠묘(남연군) 도굴 사건.

 3. 미국 상선의 횡포로 인한 신미양요


 이와 같은 원인으로 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국방력 강화와 쇄국정책을 확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정책들이 대원군과 적대관계에 있던 지방 유생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다. 당시 유생들은 화이론(서양과 오랑캐는 같은 넘들)에 입각한 <위정척사론>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세계정세에 대한 무지를 나타내는 것들이고, 아울러 서양의 과학문명이나 국제 정세에도 눈을 가려버리는 못난 짓이었다. 그 증거로 열세 겹 면포방탄복 생산→여름철 군인들 고열로 코피, 학의 깃털로 만든 배(飛船)가 포탄에도 끄떡없다는 말만 믿고 생산→띄우자마자 침몰, 청의 양무운동(서양의 배워서 국력을 기르자)을 비웃고, 두 차례 양요에 승리한 것에 우쭐하며 서양의 힘을 무시하였다.


※쇄국, 그 결과

1.일본보다 덜 위협적이던 미국과의 통교를 하지 못하여 일본․중국에 비해 20년 뒤지는 결과 초래.

2.신미양요 후 미국은 중국과 통상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조선과 통교를 맺고자 적극 추진하였는데, 대원군 거부.

3.결국 일본과 최초 통교를 맺게 됨으로써 열강과의 통교로 인한 자국 손실 보상을 원하던 일본에 의해 식민지 전락.


2-6. 대한제국 황제, 고종 → 그러나 역사의 중요한 전환기를 맞아 왕권과 국권을 혼동했던 황제.

 고종은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라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이라면 자국군이든 외국군이든 적으로 삼았던 속 좁은 황제였다.

 친정을 한 후 임오군변(1882)에 의해 권력이 다시 대원군에게 넘어가자 고종과 민왕후는 권력을 다시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청에 군대파병을 요청하였다.(민왕후 주도). 그러자 3천 명의 청군이 파견되었고 대원군은 청으로 압송되었고, 구식군대는 해산(체포, 사살)되었다. 이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위해 자국민의 생명을 외국군의 수중에 넘긴 사례이다.


 어쨌든 한 번 파병된 군대는 돌아가지 않았고 내정간섭이 점점 심해졌다. 이에 반발하여 김옥균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실패하자 조선은 청의 속국이 되었다. 청의 내정간섭이 도를 넘자 고종은 은근히 반청 태도를 보이며 러시아와 접촉하려 하였다. 그 와중에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났고, 고종은 청의 군대로 자국민을 진압하라고 명령하였다. 본격적인 청군 개입은 일본군의 조선 진주를 불렀고, 청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이번엔 일본의 내정간섭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일본이 요동반도를 점령하려다 프랑스․독일․러시아에 의해 실패하는 일(삼국간섭)이 벌어졌다. 자기 왕권을 되찾을 희망을 러시아에서 찾은 고종은 러시아와 접촉을 시도하였다.(역시 민왕후가 적극 주도). 이에 발끈한 일본은 낭인들을 보내 궁궐 안에서 왕후를 시해하였고,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내뺐다.(아관파천). 1년 뒤 환궁한 고종은 1897년 2월, 대한제국 선포를 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을 건국한 고종은 시대가 요구하는 백성들의 나라가 아닌 황제의 나라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는 독립협회가 주장한 ‘헌의6조’와 황제가 칙령한 ‘대한국국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즉 입헌군주제가 아닌 전제왕권제로 복귀하려던 고종의 속셈인 것이다.


 독립협회는 대한제국 이전부터 당시 민중을 대표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고종에게 개혁을 계속 요구하였고, 독립협회는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독립협회 주최로 ‘관민공동회’를 종로에서 개최하였다. 여기에 일반 지식인, 학생, 부인, 상인, 승려, 심지어 백정까지 사회 각층 1만 영이 모여 ‘헌의6조’를 의결하였고, 이를 근거로 정부 개혁을 촉구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헌의6조

 1. 외국에 의존하지 말고 관민이 합력하여 전제황권을 공고히 할 것.

 2. 광산, 철도, 석탄, 산림 및 차관, 차병과 외국과의 조약은 각부대신과 중추원의장이 합동으로 서명하지 않으면 시행되지 못하게 할 것.

 3. 전국의 재정은 모두 탁지부에서 관할하여 정부의 타기관이나 개인회사가 간섭하지 못하게 하고 예산과 결산을 인민에게 공포할 것.

 4. 중죄인을 공판에 회부하되 피고가 자복한 후에 재판할 것.

 5. 칙임관은 황제가 정부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 임명할 것.

 6. 장정(章程, 중추원 개조안)을 실천할 것.


 헌의6조는 전제왕권 강화, 재정 일원화, 이권양여 반대, 자주외교, 의회의 설립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즉 전제황권이 외국에 의존하고 있음을, 정부의 재정이 개인회사와 황실에 의해 침해받고 있음을, 관료의 임용이 황제의 전권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비판한 이 개혁안은 황제권을 제한하고 인민의 알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대중집회에 놀란 고종은 일단 결의문을 수용하는 듯 했지만 관민공동회가 해산되자 곧바로 독립협회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에 ‘만민공동회(1898)’를 개최하여 고종의 기만적 행위를 항의하였다.(20여 일 계속). 여기에 서울 시전상인들이 동조하여 상점 문을 닫아버렸다.


 고종은 협회해산 명령을 번복하였다. 그러나 보부상 당체인 황국협회 회원을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고, 양측이 난투극을 벌이자 고종은 독립협회와 황국협회를 동시 해산시켰다. 이제 더 이상 황제권에 도전하는 세력이 없자 고종은 ‘대한국국제’를 선포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국국제

 제1조, 대한국은 세계 만국에 공인되온바 자주 독립하온 제국이니라.

 제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이전부터 오백 년 간 전래하시고 이후부터는 항만세(恒萬歲) 불변하오실 전제정치이니라.

 제3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무한하온 군권을 향유하옵시느니 공법(公法)에 이르는 바 자립 정체이니라.

 제4조, 대한국 신민이 대황제의 향유하옵시는 군권을 침손할 행위가 있으면 그 행위의 사전과 사후를 막론하고 신민의 도리를 잃어버린 자로 인정할지니라.

 제5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국내 육해군을 통솔하옵셔서 편제(編制)를 정하옵시고 계엄․해엄을 명령하옵시니라.

 제6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법률을 제정하옵셔서 그 반포와 집행을 명령하옵시고 만국의 공공(公共)한 법률을 효 방(效倣)하사 국내 법률로 개정하옵시고 대사․특사․감형․복권을 명하옵시느니 공법에 이른바 자정율례(自定律例)이니라.

 제7조, 대한국 황제께옵서는 행정 각 부부(府部)의 관제와 문무관의 봉급을 제정 혹은 개정하옵시고 행정상 필요한 칙령을 발하옵시느니 공법에 이른바 자행치리(自行治理)이니라.

 제8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문무관의 출척(黜陟)․임면을 행하옵시고 작위․훈장 및 기타 영전(榮典)을 수여 혹은 체 탈(遞奪)하옵시느니 공법에 이른바 자선신공(自選臣工)이니라.

 제9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각 국가에 사신을 파송 주찰(駐紮)케 하옵시고 선전․강화 및 제반 약조를 체결하옵시느니 공법에 이른바 자견사신(自遣使臣)이니라.


 이는 황제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은 물론 군통수권과 기타 모든 절대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었다. 결국 대한제국의 정치․외교․군사, 경제, 재정에 이르는 모든 권한이 황제에 귀속됨을 천명한 것이었다.


 이로서 독립협회가 건의했던 ‘헌의6조’에서처럼 황제가 행사하는 모든 일을 인민이 알려고 하거나 황제의 고유권한인 행정, 사법, 입법권을 정부관료 및 중추원 의원들이 견제하려고 하면 ‘전제군권을 침해하거나 감손하는 행위는 반역행위’라고 선언한 대한국국제가 용서치 않았다.


2-7. 이렇게 <조선의 멸망 원인 - 첫째, 국왕의 왕권 강화>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살펴본 바로써 왕권 강화는 필요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일본의 메이지이신(明治維新)이 천황의 권한을 강화했던 것처럼 조선의 왕도 강력한 왕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일본의 그러한 역사가 긍정적인 측면만 가져온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왕권보다 신권이 강했던 조선으로선 신하들이 스스로 개혁할 리가 없으니 신하들이 기득권을 양보하여 왕권을 강화시키고 중국의 양무운동처럼 지도자의 구호 아래 온 백성이 발맞추었다면 조선의 운명이 조금쯤은 달라졌을 것이고,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은 멸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 본 것이다. 이외에도 원인은 많은 것이다. 다음 시간에 더 알아보자.

[출처]<조선의 최후>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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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블루(the jinny's of blue) | 2007년에 쓴 리뷰들 2007-07-1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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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구별 워커홀릭

채지형 저
삼성출판사 | 200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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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나는 감히 그 분을 <마에스트로>라고 추켜세우길 망설이지 않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다른 여행가이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세계일주>라는 장대한 여정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감히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물론 수많은 부분 중에 일면만을 표현한 것이지만) <블루(blue)>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게 있어 <빨강>은 그저 예쁘기만 한 색이고, <노랑>은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키는(그래서 난 봄철에 피는 개나리만 보면 미치고 폴짝 뛴다) 색이고, <블루>는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색이면서 가장 공포스러운 색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난 <레드>와 <엘로우>라는 표현 대신 느낌이 구체적이고 강렬한 <빨강>과 <노랑>이라고 표현하길 좋아하지만, <파랑>만큼은 꼭 <블루>라고 표현하길 좋아한다. 왜냐 하면 <파랑>이라는 말로는 나에게 주는 그 많은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행>에 대한 내 감정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난 그닥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는 하루라도 김치와 라면, 고추장, 된장맛을 맛보지 못하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 특이체질 때문일 뿐,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사진에 담은 온갖 <블루>에 빠지고픈 생각이 아주아주 간절하였다.

 

 어디라고 콕~ 집어서 말하진 않겠지만, 어디어디 호수, 바다 그리고 하늘을 뒤덮었다는 <블루>는 날 한 순간에 그곳으로 옮겨주는 램프의 요정, 지니의 색깔이었다. 내 소원이라면 무엇이라도 들어줄 것만 같은 그 곳은 정말 환상, 그 자체일 것이다.

 

 긴 말이 필요없다. 지구별이라는 외딴 섬에서 가장 멋진 곳이 어디인지 궁금하다면, 알고 싶다면 주저없이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가장 멋지다는 표현으로 몽땅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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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이 좀더 많았다면 좀 달랐을까? | 2007년에 쓴 리뷰들 2007-07-1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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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로마 황제의 발견

이바르 리스너 저/김지영,안미라 공역
살림출판사 | 200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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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 아무튼 이 책은 <로마의 황제>에 대한 <황제들의 일상사>를 <황제의 관점> 에서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주 전형적인 서양의 역사관으로 <로마역사>에 대해 서술하였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로마>의 위치는 참으로 대단하다. 로마가 멸망한지 15세기나 지났지만 여전히 <로마제국>은 그 위용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마제국을 유지한 원동력이었던 <로마군단>의 상징은 바로 <은빛 독수리>였다. 로마가 전성기였을 때는 이 제국의 독수리가 가는 곳은 항상 <승리>뿐이었고, 이 제국의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장소엔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붙여진 것이 <팍스 로마나>. 즉 '로마제국에 의해 보장된 평화시대'다.

 

 이런 로마군단의 상징은 로마가 멸망하고서도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후예인 독일군대는 물론, 러시아 왕가는 이 독수리의 힘을 두 배로 표현하기 위해 <머리 둘 달린 독수리>, 미국은 <화살과 총을 움켜 쥔 흰머리독수리>, 한 때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 나라의 경찰도 <태극문양을 움켜 쥔 독수리>를 상징으로 쓰고 있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이렇게 범지구적인 <로마>일진데 이 책은 여전히 서양의 관점(로마에 열광한 역사학자가 서양우월적인 사관으로 기독교(교황=기독교의 황제)를 옹호하는 관점)으로 <로마>를 서술하였기에 읽는 내내 데면데면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서양 역사가에 의해 쓰여졌음을 감안하고서도 말이다.

 

 그 예는 크게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 로마는 다신교를 믿는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로마 시민에 의해 운영된 나라였다. 그런데도 근현대의 서양 역사가는 자신들의 종교관(기독교)으로 로마를 평가했다. 즉 잡다한 신을 모시는 난잡하고 성문란하여 부도덕한 제국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로마제국은 군대를 앞세운 무력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기 때문에 결국 멸망했다는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하리라>는 성경 문구에 딱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둘째, 그래서 이 책에 의하면 가장 훌륭한 로마 황제는 누구?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스스로 기독교 최초의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황제라는 것이다. 또 이 책 뿐만 아니라 서양 역사가에 의해 저술된 <로마 황제> 중 가장 나쁜 황제는 <기독교도를 탄압한 황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네로>다.

 

 이 책의 표지에 저자가 예찬한 최고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아니라 오현제 중의 한 명이고 <명상록>을 저술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앞에 내세운 것은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옹호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출판사 나름대로 로마의 황제 중 최고의 황제는 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이 책을 완독한 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고민이었다.

 

 <로마 황제의 발견>. 아쉽게도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발견>된 황제였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를 읽기 버거운 분들이나 <한 권으로 읽는 로마사>를 원하는 분이라면 이 책만한 책이 없다. 그러나 역사에서 초급자 딱지를 땐 분들에겐 조금 실망스러운 책일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로마 황제>를 바라보기엔 지면이 너무나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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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異之我...또 다른 나 2007-07-1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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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공부하기에 앞서 <도대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서 밝히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역사공부>는 왜 하는 것이죠? 답변하기 애매하시다면 <그동안 역사는 어떻게 공부하셨습니까?>로 바꿔서 물어보지요. 답변하셨나요^^

 

 

     많은 분들이 학창시절에 <역사공부>를 하면서 <과거의 사실>을 외우는데 온갖 힘을 쏟았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저 역시 그랬고, 현재 학교로 출근하는 학생들도 대부분 이렇게 <역사공부>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우리는 '과거의 사실'을 공부하는 것이죠?>. E.H. 카는 <역사란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가 하는 끊임없는 대화>라고 역사를 정의했습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역사의 정의> 중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카의 정의마저도 <왜 역사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속시원한 답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와의 대화가 과연 우리 실생활에 무슨 도움을 주길래,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까지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거죠? 청원 두루봉 동굴이 구석기 유적이고, 부산 동삼동, 서울 암사동은 신석기 유적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우리 삶에 무슨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까? 너무 먼 예를 들어서 적절치 않다면 고려시대, 조선시대 왕조이름을 달달 외우는 것은 무슨 도움이 된답니까? 이건 그저 학창시절에나 필요한 시험 대비용으로 그칠 것 아닌가요? 아닌게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고 소외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과거의 사실>은 그대로 과거에 묻히고 맙니다. 즉 <써먹을 일이 없다>는 거죠. 이런 비효율적인 공부를 왜 강요하는 것입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역사공부>는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역사>를 배워다가 어디다 써먹나요? 답변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역사공부의 중요성>은 강조하면서, 제대로 된 <역사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의심해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대로 <역사공부>를 하기 위해선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또 학교를 졸업하고, 실용적인 역사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과연 이 물음에 답은 있을까요? 저는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역사> 이렇게 공부하자]를 써볼까 합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요? 단순히 시험문제에 나올만한 <시대구분법>과 <각국 왕조연표와 왕의 업적>을 달달 암기하는 방식만이 <역사공부>의 전부일까요? 전 이런 방법으로 <역사공부>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과거의 사실>을 암기하는 공부는 진정한 역사를 다루는 방법이 절대 될 수 없지요. 카의 정의를 인용해 보아도, <역사공부>는 <과거의 사실>의 암기 뿐만 아니라, <현재의 역사가>가 등장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암기식 역사공부는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는 것은 물론 <대화>까지 시도해야 하는데도 하지 않는 문제점을 지닌 것입니다.

 

 

     이는 학생들이 <역사공부>를 할 때 "몇 년도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라는 <과거의 사실>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왜 일어난 거지?"라고 의문을 품고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 생각하는 시간이 바로 제대로 된 <역사공부>란 것입니다.

 

 

     자, 예를 들어 봅시다. 요즘 베스트셀러가 된 김훈의 <남한산성>을 보면, 조선 인조임금이 청의 침입에 의해 남한산성에 갖힌 47일간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당시 임금에게 막대한 권한이 없었으므로 신하들에게 그 책임을 묻곤 하는데, 그럼 묻겠습니다.

 

   우리 강산을 침입하여 임금을 욕보이고, 백성들을 유린하는 청 오랑캐를 무찔러야 한다는 <주화파>의 생각이 옳을까요? 아니면 자신들의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잠시 자존심을 꺽고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척화파>의 생각이 옳을까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발표해 봅시다.

 

 

     <역사공부>도 이렇게 하면 참 재미있겠지요. 그렇다면 기존의 역사수업시간에는 어떻게 수업이 이루어지는지 예를 들어봅시다.

 

   1636년 12월 14일. 인조 14년(병자년)에 청은 용골대를 앞세워 조선을 침략했다. 이를 병자호란이라 한다. 처음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 했으나 왕자(훗날 효종)와 몇몇 신하만 피신하였을 뿐, 청의 군대가 워낙 빠르게 남하하는 바람에 피난길이 막혀 할 수 없이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농성하였다. 그러나 이미 패전의 기색은 연연하였고, 결국 47일간의 농성을 풀고 인조는 청의 칸에게 '삼배구고두'라는 <삼전도의 치욕>을 겪게 되었다.

 

   자, 이거 다 외우는 놈은 미친년이다~잉. <인조>에 땡그라미치고, <병자호란>에 밑줄 쫙! 그 결과 <삼전도의 치욕> 별표 다섯개~ 더이상 시험 문제에 나오는 거 없다. 다음 효종으로 넘어가자! 효종은 삼전도의 치욕을 갚기 위해 <북벌....

 

 

     어떤 <역사공부>방식이 마음에 드십니까? 물론 전자의 경우겠지요.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좋은 방식을 쓰지 않고, 안 좋은 후자의 방식을 사용했을까요? 여러 가지 변명을 하겠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힘든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지만 공부는 남이 시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사가, 쪽집게 과외 선생이 명강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를 한다해도 스스로 하려는 노력이 없는 학생에게는 말짱 꽝! <역사공부>는 더더군다나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배움인지라 더욱더 그랬지요.

 

 

     정리하면, <역사공부>를 잘하려면 스스로 하려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역설하기 위해 이렇게 긴 서론이 필요했던 겁니다. 자, 그럼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달아봅시다.

 

 

     저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역사공부=흐름공부>.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주절주절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건의 앞뒤를 파악하여 왜 일어나게 되었고, 누가 주체가 된 것이며,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이를 현재의 관점에서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한 해결책은 없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비로소 <역사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는 <흐름공부>야말로 진정한 <역사공부>인 겁니다. 공감하시나요?

 

 

     자, 그럼 <역사적 사건의 흐름>은 이런 식으로 파악하시면 되겠고, 이는 나중에 세세하게 짚어가며 공부해보시고, 우선 대략적인 <역사공부>를 위한 <흐름>을 파악해봅시다.

 

 

     나무를 관찰하기 위해선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또 나무가 많은 곳으로 가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산을 선택하지요. 자, <역사공부>하듯 <나무관찰의 흐름>을 파악해 봅시다.

 

   <나무는 산에 많다> - <산으로 가기 전 먼 산보듯 나무들(숲)을 보자> - <나무들(숲)로 들어갈 만만한 길을 찾아본다> - <올가갈 길과 내려올 길까지 파악했다면 이제 나무의 종류를 파악해보자> - <나무의 종류별로 그룹을 묶어 정리한 뒤 각각의 나무의 특징과 특성을 파악해본다> - <파악한 결과를 나만의 정리함에 차곡차곡 정리하자>

 

 

     대략 감을 잡으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렇다. <역사공부>를 한답시고 무턱대고 나무만 붙들고 끙끙 앓는다면 대책이 없다. <역사>를 전공하는 전문가들도 망망대해에서 일엽편주에서 달랑 낚시줄 하나를 드리운 것과 같다. 하물며 비전문가인 학생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역사교과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에겐 이마저도 망망대해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무만 붙잡고서 온 산에 심어진 나무를 일일이 이름을 붙이겠다면 할 말 없다. 나무를 보기 전에 숲부터 보면서 대략의 윤곽을 잡는 것이 순서이다.

 

 

     <역사공부>는 크게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눈다. 그 중 <역사공부>는 [역사시대]를 주로 다룬다. [선사시대]는 주로 <과학공부>에서 다룬다. (이는 정확한 구분법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대략적으로 구분한 방법이기 때문에 따지지 말자. 구분해놓은 것이 맘에 안들면 각자의 취향대로 구분하면 된다. 앞서 말했지만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날로 먹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구분된 [역사시대]는 또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된다. 이렇게 구분한 뒤엔 각 카테고리에 각각의 특징을 간단히 서술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예를 들면 [구석기시대]엔 뗀석기, 동굴생활, 수렵어로, [신석기시대]엔 간석기, 움집생활(정착생활-농경시작), 토기 다양, [청동기시대]엔 부족국가형성, 벼농사시작(잉여생산물 축적), 정복전쟁, 계급사회 도래, 청동기 제작, 고인돌 건축(강력한 왕권 증거), [철기시대]엔 고대국가 형성, 본격적인 농경문화(잉여생산물 축적, 활발한 정복전쟁, 철저한 신분제 사회) 등등

 

 

     이제는 국가별 구분을 한다. 우리 역사는 [고조선]부터 시작하여 [부여,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후에 신라병합)], [통일신라, 발해(남북국 시대)], [고려(최초민족통일국가)], [조선], [대한제국, 일제침략], [대한민국임시정부, 해방, 대한민국, 한국전쟁, 현재(2공화국~5·6공화국~문민·국민·참여정부)] 마찬가지로 각 국가별 카테고리를 만들고서 <정치면>, <경제면>, <외교면>으로 구분해놓으면 좋다.

 

 

     그리고 나서 <역사공부>에 빠지지 않는 <전쟁사>에 대해 정리한다. 이때 특히 한반도 내에서 벌어진 전쟁뿐 아니라 동시대에 벌어진 중국과 일본, 또 세계사에 남을 전쟁들을 함께 정리해 놓으면 <세계사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된다.

 

 

     자, 이정도면 대략 역사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어 있다. 아우~저 많은 걸 언제 다 정리해? 라고 겁부터 먹을 필요가 없다. 위에 정리된 내용은 각종 참고서나 역사관련 책에 다 수록된 내용들이다. 그러므로 굳이 따로 정리할 필요가 없다. 그냥 머릿속을 정리할 겸 <서랍장>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자. 아직 <역사공부>는 시작도 하지 않은 셈이다. 미리부터 겁먹지 말도록...

 

 

     이제 <역사의 흐름>을 담을 <서랍장>을 마련했다면, 그 속에 차곡차곡 <흐름>을 담으면 된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바로 <문자>다. 인간이 <문자기록>을 남겼다면 [역사시대]에 넣으면 되고, 남기지 않았다면 [선사시대]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선 <왜?>라는 의문을 달아본다.

 

   "왜 문자가 있고 없는 것에 따라 구분했을까?"

 

     인류는 다른 동물과 달리 <언어>를 발달시켰다. 물론 손을 이용해 <도구>를 발달시킨 것도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지만, <언어>를 발달시켰다는 것은 인류의 지식 축적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언어>는 기록으로 남기기가 힘들다. 비록 <노래>라는 구전방법이 있었지만,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인류는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문자의 발명>은 인류의 생존을 넘어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또 <문자기록>은 인류의 발자취를 찾는데에도 효과적일 것이다. 만약 전염병이 돌아 한 마을, 한 국가의 사람들이 몰살당해서 발길이 끊어졌더라도 <문자기록>만 남았있다면 언제 어느 때라도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문자기록>뿐 아니라 유물이나 유적 따위도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지만 <문자기록>만큼 자세할까.

     이렇게 <문자>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우리 인간사에 커다란 차이를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정리해놓으면 아마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구분의 정리는 각자 해보도록 누누히 강조하지만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 넙죽넙죽 받아 먹을 생각뿐이라면 일찌감치 공부를 때려치도록.

 

     다음 시간엔 <역사의 흐름은 어떻게 공부하나요?>를 주제로 이야기해봅시다. 그럼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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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에 이름을 붙여주세요(--)뻔뻔 | 나의 리뷰어 도전기 2007-07-09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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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있었습니다.
마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오래 전부터 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습니다.
나무는 그 언덕 위에서 언제나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무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낮의 농부가 따가운 햇볕을 피해 잠을 청하러 오면
나무는 자신의 커다란 잎으로 햇볕을 가려주었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다가온 나그네에겐 비를 막아주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가지를 흔들어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고
눈이 내리면 앙상한 가지에 한송이 한송이 눈꽃을 피워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햇볕을 가려주면 농부는 잠에서 깨자마자 서둘러 일을 하러 가버렸고,
비를 막아주면 나그네는 그치자마자 가던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어도 마을 사람들은 무심할 뿐이었고
눈꽃을 피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도
마을 사람들은 그저 자기 앞마당에 쌓인 눈을 쓸어내기에 바빴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마을 사람들은 "메리 크리스마스~!"하며 즐거워 하였지만
마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있는 나무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나무는 그렇게 쓸쓸한 겨울을 보냈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나무는 겨우내 쌓였던 눈을 털어내고 새잎을 피웠습니다.
나무는 언제나 바라보던 그 언덕 위에서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꼬마아이가 언덕을 힘겹게 올라왔습니다.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였습니다.
나무는 자그마한 다리로 힘들게 언덕을 올라온 꼬마아이에게
따가운 봄햇살을 가려주려고 가지를 뻗었습니다.
이윽고 자신의 둥치로 다가온 꼬마아이의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주려
바람을 불러와 커다란 잎으로 부채질 해주었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땅 위로 살짝 드러난 뿌리 위에 팔베개를 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직 꼬마아이에게는 오르기 힘든 언덕이었는지 새액~새액 코골이까지 하며 단잠을 잤습니다.
나무는 아이의 단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장난꾸러기 바람에게 주의를 주었고
꽃을 피워 아이가 향기로운 꿈을 꾸도록 하였습니다.
해가 서산 너머에 걸렸을 때 아이는 행복한 꿈을 꾼 듯 기분좋은 기지개를 키며 일어났습니다.
꼬마아이는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갔습니다.
꼬마아이는 환한 미소로 뒤돌아보며 나무에게
“안녕, 내일 또 보자.”
라고 말했다.

나무는 무심코 대답하려 했습니다.
자신에게 입따위는 없다는 걸 모른채 말이지요.
나무는 그날 밤 한숨도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나무에게 인사를 한 것은 꼬마아이가 처음이었습니다.
나무는 설레임을 느꼈습니다.
나무는 어서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날이 밝고 꼬마아이는 다시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나무는 아이를 반갑게 맞이하고 꽃향기를 퍼뜨려 나비를 불렀습니다.
아이는 형형색색의 나비들을 보며 손뼉을 치면서 기뻐하였습니다.
나무는 아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흐뭇했습니다.
나무는 진정으로 기뻤습니다. 
나무는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이곳에 있었지만 지금처럼 기뻤던 적이 없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무는 아이에게 매일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는 그 모습에 기뻐했고 나무는 아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따라서 기뻐했습니다.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왔습니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동안에도 아이는 매일매일 찾아와서 나무와 같이 놀았습니다.
날이 밝으면 아이는 나무를 찾아왔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돌아갈 때면 꼭 잊지 않고 "안녕, 내일 또 보자."라고 말했습니다.
나무는 늘 그 말을 믿었고 아이도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어느 겨울날, 아이가 집에 돌아간 그 밤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은 점점 많이 내리기 시작했고 북풍마저 심술을 부렸습니다.
눈은 그렇게 밤새 내리더니 온 마을을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파란 건 하늘이고, 하얀 건 땅이라고 구분해 놓은 건가요?
그날 아침 아이는 나무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해가 서산에 걸렸는데도 아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그렇게 온 마을을 눈이 덮은 날 이후로 아이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나무는 아이가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찾아오지 않은 이후로 바람이 농을 걸고 새들이 위로해 주었지만
나무는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아이가 더욱 보고플 따름입니다.
해는 벌써 서산을 넘어가려 하는데도 아이의 모습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 날이 되었습니다.
그 밤. 온 마을이 눈에 덮인 밤.
마을 사람들은 집집마다 촛불을 켜고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축하했습니다.
모두들 기쁜 듯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행복하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나무도 아이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반갑게 인사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찾아오지 않은 그 날부터 나무는 너무나 꼬마아이가 보고 싶었습니다.
나에게 처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던 것처럼 나무도 아이에게 그렇게 인사해주고 싶었습니다.
아이의 해맑은 미소와 달콤한 웃음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나무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아이에게 인사할 수 있다면…
나무는 아이가 보고 싶었습니다.

나무는 움직였습니다.
땅에서 뿌리를 뽑아내고 꼬마아이처럼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아이가 올라오던 그 길을 따라 천천히 힘겹게 걸어 내려갔습니다.
저 아래 눈 덮인 처마아래 촛불이 비치는 창이 있는 곳에 가면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나무는 한 발 한 발 눈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처음으로 걷는 거라 잘 되지 않았습니다.
추운 날씨에 차가운 눈 위를 걷는 거라 뿌리 끝이 점점 말라갔습니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뿌리가 갈라지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한 발을 내딛는 게 점점 힘들었습니다.
결국 나무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나무는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
.
.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타너스를 좀 내버려 둘 수는 없는건가? 신호등이나 표지판을 가린다고 핑계를 대어 흉물스럽게 잘나낸 뒤의 플라타너스는 너무나 불쌍해보여. 너도 그렇지?
 
=(" )_냥~
 
-그 플라타너스에게도 이름을 붙여주면 어떨까? 그러면 조금이라도 관심을 끌어 함부로 다루지는 않을까? 넌 어떤 이름이 좋으니?
 
=( ")/냐옹~
 
-나무에게 '냐옹'이란 이름은 좀 그렇지 않나^^* 그러저나 가로수를 관리하는 아저씨~플라타너스에게 조금쯤 관심을 가져주세요. 그리고 좀 예쁘게 가꿔주세요. 그리고 캐로짱님~ 
 
-책 읽고 싶어요~
(--)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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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가 되는 팁 몇 가지 | 나의 리뷰어 도전기 2007-07-07 16:51
http://blog.yes24.com/document/70093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yes24 리뷰어 클럽>이 어느덧 만 세 살이 되어가는 군요. 뜬금없이 아멜리 노통의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이란 책이 떠오르는 건 왠일일까요^^;;
 
 그 책을 보면 아주 귀여운 세 살이 나옵니다. 천장에 보이는 파이프를 신(神)이라 부르며, 연못 속의 잉어를 아주 무서워하고, 장마철에 하수구에 빠져 생사가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 처한 아빠를 보고서 아빠의 직업이 하수도 배관공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엉뚱한 꼬마 여자아이죠.
 
 <리뷰어>로 뽑히고 싶은 분들이 닮아야 할 성향이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리뷰어 클럽>의 운영상황을 짐작해 봅시다.
 
 1. 한 주에 세 권(시리즈일 경우나 두꺼운 책이면 변동가능)이 <리뷰어 북>으로 선정된다.
 
   - 공짜로 줄까요? <리뷰어>로 뽑히신 분들은 공짜로 받습니다만 클럽 운영자와 출판사에선 <비용>이 들게 마련입니다. 몇 분에게?
 
 2. 한 주에 적어도 60여 분을 <리뷰어>로 선정된다.
 
   - 만약 여러분이 출판사 사장님이고, 클럽 운영자라고 가정해 보세요. 어떤 <리뷰어>에게 기회를 주겠습니까? 물론 톡톡 튀는 글을 쓰는 분에게 기회를 주겠지요. 그러나 매번 같은 사람에게만(혹은 글 잘 쓰는 사람에게만) 기회를 주는 건 불공정하다?
 
 3. 그.래.서! 한 달에 <리뷰어>로 뽑힐 가능성은 최고 2번(선정된 다음 주에는 리뷰어 기회 없음)
 
   - 그런데 2번 이상 뽑히는 분들을 보았다구요. 위의 규정은 [리뷰어 신청하기]에 선정된 책들만 해당됩니다. [출판사 리뷰어]와 [미리 만나는 책], [돌발 이벤트!!]는 계산에서 제외합니다.
 
 
 위의 상황을 정리하면 <리뷰어>로 뽑히기 위해선 톡톡 튀는 글솜씨를 가지셔야 한다는 겁니다. 마치 아멜리 노통의 세 살 때 모습처럼 말이죠. 적어도 신청글이 톡톡 튀면 운영자들의 시선을 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죠.
 
 4. 성실한 <리뷰어>만이 보다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 운영자들과의 약속을 칼 같이 지키는 리뷰어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건 인지상정. 왜냐? <리뷰어 클럽>은 신용을 먹고 커왔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리뷰계의 신화로 자리매김을 한 <리뷰어 클럽>에는 톡톡 튀는 리뷰를 써주는 <리뷰어>들이 많다더라. 우리 출판사도 이번에 새 책이 나왔는데 <리뷰어 클럽>을 통해서 홍보를 한 번 해봐봐?
 
     이럴진데 공짜책만 낼름 받으시고 영수증(리뷰)을 내놓지 않는 불량 리뷰어에게 기회를 줄까요? Nonononon~o!!! Never, No!!! 오렌지 회원에겐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는답니다.
 
  4-1. 그럼 한 번 <오렌지 회원>으로 찍히면 다시는 기회가 없나요?
 
    -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선 밀린 채무(리뷰)를 청산하시면 다시 신용을 갱신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니 <리뷰어 클럽>과의 약속은 꼭 지키셔야겠죠^-^
 
  5. 저는 처음 가입했는데 어떻게 하면 <리뷰어>가 될 수 있죠?
 
    - <리뷰어 클럽>은 언제나 신규회원을 환영합니다. 인재발굴(?)차원에서 <리뷰어>를 뽑을 때 항상 신규회원의 몫을 할당하거든요. 그 몫을 챙기시면 됩니다.
 
  6. 저는 계속 신청하고 또 신청해보아도 뽑아주질 않아요? 왜 저에겐 기회를 주지 않는 거죠?
 
    - 저런 운영자분들의 레이더망에 아직 걸려들지 않는 불운을 겪고 계시군요.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마세요. <리뷰어 클럽>은 성실한 분들에겐 언제든지 기회를 주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정 불안하시면, <블로그 관리>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운영자들이 <리뷰어>를 선정할 때는 <블로그>를 참고 한답니다. 그리고 <블로그>가 아예 없으신 분들에겐 아쉽지만 기회를 주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또 하나! 진실을 담은 사연을 적어서 신청해보세요. 길지 않아도 됩니다. 짧아도 진실한 마음은 언제나 전달이 되는 법이니까요. 간절히 원하면 온 만물이 도와준다잖아요^^ 그래도 안 되더라구요. 제가 한 말 아네요. 파울로 쿄엘료에게 따지세요~^^;;
 
   7. 저는 책을 무진장 사랑합니다. 계속 리뷰어로 활동하고 싶은데, 어떤 방법들이 있죠.
 
     - 저 역시 그러고 싶습니다. 우선 정통방법으로 [리뷰어 신청하기] 게시판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한 달 최고 2번까지 선정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지요.
 
       이 경쟁을 피해서 많은 분들이 [이 책 읽고싶어요]라는 게시판을 이용한답니다. 여지껏 선정되지 않은 책을 <보고 싶어요~>라는 사연과 함께 <책 이름>을 적어주시면 되는 간단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너무 비싼 책(정가 2만원 이상)이나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는 <리뷰어 클럽>에서 선정될 가능성이 적으니 요런 책들은 피해서 신청하시면 가능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대략 1만원~1만 5천원 선의 가격대에 신간 위주의 책을 신청해주면 가능성이 높은 것 같은데...전 이 방식으론 한 번도 선정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또 새롭게 생긴 [출판사 리뷰어]게시판이 있습니다. 이 곳에선 운영자들이 <리뷰어>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 담당자]분이 직접 <리뷰어>를 선정해주기 때문에 무한한 기회가 주어지는 곳입니다. 출판사의 기획·홍보 의도를 간파하시고 신청하시면 뽑히실 기회가 아주 많습니다. 저도 애용하고 있는 곳이지요.
 
       그리고 가장 따끈따끈하게 갓 나온 게시판으론 [미리 만나는 책]이 있습니다. 이 곳은 아직 출판되기 전 상태의 책들을 <사전(事前) 리뷰>하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입니다. 이제 막 시행된 <리뷰어> 기회이기에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궁금하군요. 많은 애용만이 더 많은 기회를 준다는 사실^^ 많이 애용해보세요.
 
      마지막으로 [돌발 이벤트!!]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돌발성 이벤트인데요. 명절(설날, 추석)이나 여름(휴가철), 겨울(크리스마스)에 이벤트를 하는데요. 때에 따라서는 30명 이상의 리뷰어를 선정한 적도 있으니 기회를 노려봄직 합니다. 주의사항은 운영자인 캐로짱(carrot)이 항상 선정하는데요. 워낙 미남이셔서 잘 뽑아줍니다?? 잘 안 뽑아주던가?
 
 
 
 결론적으로 <리뷰어 클럽>에서 <리뷰어>로 뽑힐 기회는 정기적으로 주당 60명+20명(+20명+알파)로 100여 명의 <리뷰어>들이 선정되네요. 물론 중복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수치는 조금 줄어들겠지만요.
 
 이상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리뷰어 클럽 Q&A>의 성격이 강해졌는데, 앞으로 보다 많은 분들이 <리뷰어>로 뽑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 자 올려봅니다. 위의 방법들은 그저 참고만 하시고요. 이상 믿거나 말거나 <요따구로 하면 리뷰어로 뽑혔으면 좋겠다>에 이지아였습니다.
 
 책 타러 가자(--)뻔뻔~ (")o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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