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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8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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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4대사화를 마무리하며 | 異之我...또 다른 나 2008-08-2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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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화>는 말 그대로 사림이 화를 당한 사건을 일컫는다. 그렇지만 사화, 그 자체는 정치적으로 필수불가결하게 벌어진 일이며, 역사상 어느 시대에서나 일어난 정치세력간에 벌어진 다툼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화가 중요하게 다뤄지며 [조선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다분히 <승자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로마사]를 보아도 기독교를 탄압이 로마제국 후기에 큰 비중으로 다루는 것도 바로 그들이 승자였기 때문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난 개인적으로 역사를 중립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객관적인 역사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역사 공부라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사화>는 사림파가 어떤 고난과 역경을 딛고 중앙정계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보여주는 <승자들의 바로미터>일 뿐이다. 마치 기독교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종교의 전부인 것처럼 떠벌리지만 현재까지는 무슬림과 불자가 더 많다는 사실처럼 <사림파>의 승리는 당시 [조선사]에 큰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그 영향이 <절대선(善)>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또 <사화>를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양상으로만 한정하듯 정리하는 것도 큰 오류에 가깝다. 수험생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키는 일일지는 몰라도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복잡하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 공부가 재밌는 학문이라는 점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내가 보기에 <사화>는 왕권을 강화하여 세상을 편하게 하려는 세력과 신권을 강화하여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세력의 다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듯 싶다. 왜냐하면 4번의 사화를 거친 결과 왕권은 신권에게 눌려 그 힘을 더이상 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왕권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훈구세력들의 이권만 챙긴 면이 없진 않다. 그러나 훈구세력들이 사림세력들을 탄압한 근거가 왕권에 기초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연산군은 직접 왕권의 힘을 보여주었고, 중종은 반정공신들을 버릴 수 없었으며,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한 문정왕후도 자신에게 반기를 든 사림을 가만두지 않았다.

 

 여하튼 조선 초기에 정도전(신권)과 이방원(왕권)의 한판 대결은 이방원의 승리로 일단락이 되었으나 중기에 접어들어선 신권의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형국이다. <사화>는 그들이 승리하고서 세운 금자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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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4대사화-을사사화(명종 원년,1545) | 異之我...또 다른 나 2008-08-2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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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여인천하>(강수연 주연)를 즐겁게 보신 분이라면 <을사사화>의 전반부를 꿰뚫을 수 있다. 바로 중종의 이복형제인 인종과 명종, 그리고 인종의 외척인 대윤(윤임)과 명조의 외척인 소윤(윤원형)이 서로 주도권을 다툼하다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장경왕후 윤씨의 아들(인종)을 왕위에 올리기로 약조했다면서 문정왕후 윤씨의 아들(명종)은 왕위를 넘보지 말라고 윤임이 협박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다시 말해, 윤임(대윤)은 자신의 탄탄대로를 위해 문정왕후를 희생양으로 삼았고, 이를 부당하게 여긴 윤원형(소윤)이 윤임의 비리를 캐내 <정의>를 바로 잡는다는 이야기가 큰 줄기였으나 이를 곧이 곧대로 보면 을사사화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쉽게 말해, 을사사화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단순한 대결양상만으로 보면 안 된다는 말이다. 비록 을사사화가 사림파들이 화를 당한 사건이긴 하지만 앞선 사화와는 다른 이유 때문에 벌어졌다. 즉, <왕위쟁탈>을 간과할 수 없다.

 

 드라마에선 윤임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힘 세고 나쁜놈>으로 문정왕후와 윤원형은 윤임에게 핍박받아 괴로운 상황에 처한 <선량하고 착한편>으로 구도를 잡아놓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인종의 즉위보다는 명종의 즉위가 당연하다고 착각하실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인종이 뛰어나냐, 명종이 뛰어나냐를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전개상 구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문제는 문정왕후가 명종 즉위년부터 수렴청정을 했고 이 과정중에 사림파가 대거 축출된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당시 중앙정계에 나섰던 사림들은 대체로 인종의 즉위를 당연하게 여겼고, 신하된 도리로 두 명의 임금을 섬길 수 없기에 그리 행동을 취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사림들은 화를 면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을사사화는 단순히 훈구세력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사림세력을 몰아낸 사건이기보다는 왕위다툼 과정에서 불거진 복잡한 정치상황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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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가 불쾌하긴 하지만... | 2008년에 쓴 리뷰들 2008-08-21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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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후 커넥션

로이 W. 스펜서 저/이순희 역
비아북 | 2008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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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는 지혜의 선악과를 따먹는 <원죄>를 저질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적혀 있다.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진위여부를 떠나서 모든 인간에게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지었다고 적여 있단다. 왜 아무 죄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가? 이와 같은 관점에서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단독으로 저지른 죄인가? 정말 그럴까? 이 책을 읽는다면 자연스레 드는 의문이다. 난 무언가 거대한 <속임수>에 빠져든 것인가?
 
 저자는 스스로를 <지구온난화 회의론자>라 불렀다. 풀이하면, <지구온난화>를 한 번쯤 의심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저자와 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지구온난화 위기론자>라고 지칭했다. 풀이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의심한다? 그렇다면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지 않다는 말인가? 아니.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재 뜨거워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걱정할 지경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단다. 무슨 근거로? 지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기후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만으로는 워낙 미미한 영향밖에 줄 수 없단다. 또 지구는 뜨거워지는 만큼 스스로 차가워지기도 한단다. 그래서 인간이 저지른 <지구온난화>가 지구멸망(사실은 인류멸망)을 부르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단다.
 
 그렇다면 인간은 아무 걱정할 것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쓰고 또 쓰면서 <온실가스>를 마음껏 배출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건 또 다른 문제(예: 대기, 토질오염, 소음공해, 열섬효과 등)를 야기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현재 인간이 내뿜는 <온실가스>가 우려할 만큼의 <지구온난화>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위기론자>들이 말하는 것만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회의론자>라고 불리는 것이다.
 
 여기서 모종의 <관계>를 살펴봐야겠다. 바로 <과학자>와 <정치가>, 그리고 <경제적 효과>와 <특정 종교계의 이익>말이다.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지구온난화 위기론자>들이 말하는 저의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논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도 순전히 지구를 구하려는 마음에서 <문명의 이기>를 사용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제적 선진국들은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살면서 <환경주의>를 앞세워서 후진국들의 경제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 사실 자기네들이 만든 <환경파괴>를 후진국에게 떠넘기는 것과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물론 떠넘기면서 선진국은 후진국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물론 자국민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정치가들이 가로챘지만서도.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에서 읽어보시길, 여하튼 <지구온난화>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뒤바꿀만한 책이다. 그런데 저자는 <지구온난화 위기론>를 여러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지만 <환경주의자>를 <비효율>적이라는 면에서 <위기론자>들과 싸잡아서 비판하였다.
 
 이 점에선 살짝 반감이 들었다. 물론 저자의 지적대로 현재 우리가 <문명의 혜택>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살거나 <원시시대>로 되돌아가서 살아갈 수는 없다. 생각해보고 말 것도 없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끔찍할 것이다. 인정한다.
 
 그러나 <전원생활> 정도를 꿈꾸는 것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아침에 새 소리를 들으며 상쾌한 햇살로 아침을 맞으며, 한낮에는 야생동물(사자나 늑대같은 맹수 말고)과 함께 하는 피크닉, 청정한 개울물을 마시며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이불삼아 잠이 드는 생활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저자는 생활의 편리함을 <전기>라는 에너지에 의지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화력발전소를 없애라는 <환경주의자>들은 모순덩어리라고 비판하였다. <문명의 혜택>과 <자연친화>를 동시에 꿈꾸지 말라는 저자의 목소리는 왠지 얄미워진다.
 
 저자 역시 <지구온난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데에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죽을 것처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지구온난화>가 부각되고 누가 위기감을 조성하는가? 저자는 대담하게도 <종말론>을 들먹이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의 원죄(엘 고어<불편한 진실>가 앞장서는 듯)를 꼬집었으며 <대체연료>와 이를 이용한 기기(엘 고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라고 했다)를 팔아먹을 자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난 저자의 주장에 생각을 고쳤다. 비판할 점이 없진 않지만. 당신은 어떤가? 여전한가? 이 책을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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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4대사화-기묘사화(중종14년,1519) | 異之我...또 다른 나 2008-08-15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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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군의 폭정은 1506년 <중종반정>으로 끝을 맺고 중종이 새로 임금이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오른 자리가 아닌데도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일이 얼마나 되었나? 그래도 중종은 아주 허수아비는 아니었는지 일대 개혁을 단행한다.

 

 개혁의 주체는 몰락한 사림파의 새 기대주 <조광조>였다. 중종은 신진 사류인 조광조(당시 29세)를 파격적으로 발탁하였고, 조광조는 중종의 신임 속에서 개혁을 단행했다. 그렇지만 그의 개혁은 너무 급진적이어서 <훈구파>와 자주 마찰을 빚었고, <위훈삭제>로 훈구파를 마구 몰아붙였다. <위훈삭제>란 공이 없으면서도 공신 대우를 받는 사람을 훈적에서 삭제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조광조의 개혁은 <반정공신>들에게도 호의적이었다. <반정공신>이란 중종반정을 성공하면서 공신반열에 오른 이들이었는데, <훈구파>였다. 조선초부터 중앙정계에 진출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존재의미(정치이념,기득권유지)였던 <유교사상>을 방방곡곡 양반부터 노비까지 속속 퍼트리는 일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역할은 <사림파>의 몫이었고 이들이 정계에 진출함으로써 좀더 원할히 할 수 있었기에 <반정공신>도 조광조의 개혁을 지켜보며 꽃도 보고 님도 보면 되었다.

 

 그러나 <위훈삭제>는 반정공신으로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삭제도 삭제 나름이지 공신들 중 3/4에 해당하는 수를 삭제한다니 <훈구파>로서 <사림파>의 독주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중종 또한 조광조의 개혁이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로 염증이 난 상태였다. 물이 맑은 곳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했던가? 조광조의 개혁은 너무 순수해서 탈이 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훈구파>의 조광조 제거 계획은 <주초위왕>, 곧 왕위찬탈 음모였다. 주(走)와 초(肖)를 합치면 조(趙)가 되니 <주초위왕>은 '조씨가 왕이 된다'는 예언이며, 이는 곧 조광조가 왕이 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하였다. 예언이라는 증거는 인간이 쓴 글씨가 아니라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서 쓴 글씨이기 때문이란다. 이로써 <사림파>를 몰아낼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중종은 사건의 시말을 짐작치 못했을까? 아니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종은 조광조를 제거하여서 어떤 이득을 얻었을까? 귀찮게 잔소리하는 이가 없어졌으니 속시원했을까? 아니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남몰래 울분을 삼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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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4대사화-갑자사화(연산군10년,1504) | 異之我...또 다른 나 2008-08-15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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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오사화가 일어난지 6년 뒤, 영민했던 왕을 한순간 돌변하게 만든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폐비 윤씨>, 곧 연산군의 생모가 시기와 질투가 심하다는 이유로 사약을 받고 친정집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현재 왕위에 오른 이에게 전해진 것이 발단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폐비 윤씨는 피를 토하며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고 전한다.

 

 연산군이 효자인 것이 죄라면 죄일까? 아니면 국가를 책임진 자리에 오르면 일체의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하고 국가를 위해 분루를 삼켜야만 했을까? 억울하다. 날 낳아주신 어머니의 얼굴만 몰라도 서러울진데 거짓생모 행세를 하며 속아서 억울할 것이다. 또 어머니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지켜만 보았을 군왕, 아버지도 밉다. 또, 또 어머니를 죽이라고 주청하고 한 목소리로 상소한 신하들, 이 놈들을 용서하고 국가의 안위를 위해 참아야만 하는가? 대아를 위해 소아를 희생한다지만 임금의 어머니도 죽이는 신하를 믿고 국정을 책임지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폐비 당한 왕비의 아들이라고 반정을 일으키면 어찌하나? 순순히 물러나야 하는가? 그러고도 저들은 만고의 충신이라고 칭송을 받을테고, 나는 폭군이라고, 폐비 당한 아들이 어딜 가겠냐고 쑥덕일테지. 오냐,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 없고 말고!

 

 사실 <갑자사화>는 <훈구파>가 무시하지 못할 기세로 중앙정계에 진출하는 <사림파>를 확실히 견제한 결과로 일어났다. 그렇지만 연산군의 개인감정과 임금으로서 느꼈을 고뇌를 살펴보지 않고선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곧 <훈구파>는 자신들을 위해 밀고할 내용 때문에 분노할 임금의 성격까지 치밀하게 계획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사건은 무오사화 이후로 정권을 확고히 한 유자광 등의 세력과 동조한 임사홍이 연산군에게 <폐비 윤씨>사건이 전말을 밀고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결과, 성종 때의 대신들과 사림 대부분이 제거되었고, 이로써 사림파는 <중종반정>이후에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위축되어 바야흐로 <훈구파>의 세상이 다시 도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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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4대 사화-무오사화(연산군 4년,1498) | 異之我...또 다른 나 2008-08-1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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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조선사]다. [한국사]가 아닌 [조선사]라고 구분한 즉슨, [한국사]와 [세계사]로 구분하면 너무 큰 구분법이라 구분한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한 가지 이유이고, 다른 이유는 우리 이웃인 [중국사]와 [일본사]의 경우 우리와 첨예한 갈등을 벌일 가능성이 크며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발해사]의 경우 우리는 당연히 우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 쪽과 러시아 쪽, 놀라지 마시라 일본 쪽의 의견까지 자기 주장이 맞다고 서로 논쟁을 벌이는 형편이다.

 

 이럴 경우 단지 [한국사]의 범주 안에서 [발해편]이라고 구분하면 현시점에서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없을 수도 있다. 발해가 우리 역사임에 틀림없지만 모든 역사가가 그렇게 보기 위해선 객관성과 보편성을 갖춰서 설득시키고 이해시켜야만 가능하다. 힘의 논리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단지 잠깐의 승리감에 도취될 뿐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논란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고조선사]-[고구려사]-[발해사]-[조선사]-[대한민국사]와 같이 구체적으로 시대구분을 할 것이며, 필요한 경우엔 마한, 변한, 진한을 합친 [삼한사], 또는 [남북국사]-[후삼국사]식으로 표시할 것이다. 세계사의 경우에도 [로마사]-[이탈리아사], 혹은 [프랑크사]-[나폴레옹제국사]-[프랑스사]와 같이 구분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내맘대로 시대구분할 테니 따지지 않았으면 하고 그러려니 해줬으면 한다.

 

 

 

 각설하고, 무오사화는 연산군 4년에 일어났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사화에서 제일 궁금했던 점은 훈구파가 사림파를 <어떻게> 제거했느냐가 아니라 <왜> 제거했느냐였다. 훈구파나 사림파나 고려말 신진사대부의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언제부터 갈등하게 되었고 16세기에 와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되었느냐였다.

 

 그 원인을 알고하자하면 여말선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려말에 신진사대부들은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래서 신진사대부들은 친원파를 제거하고 이들의 기득권(정권)을 빼앗는 것이 제일목표였다. 하지만 당시 신진사대부들은 역성혁명파(정도전)와 온건개혁파(정몽주,하륜)로 갈라져서 그 힘이 하나로 뭉치지 않았었다.

 

 그러나 힘의 균형은 역성혁명파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겉으로는 신흥무인세력인 이성계와 최영의 다툼에서 이성계의 승리 때문에 역성혁명파 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지만 둘 사이에서 교묘히 중립을 지키는 척하던 하륜이 역성혁명파 쪽에 붙으면서 힘의 균형이 깨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삼김시대]에 김대중과 김영삼이 경합을 벌일 때 김종필이 김영삼 쪽으로 붙으면서 힘의 균형이 깨지고 결국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실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기득권(정권)을 획득한 역성혁명파는 빠른 개각을 단행하고 결국 이성계를 왕위에 올리며 [조선왕조]를 개창했다. 이 때 역성혁명파 쪽에 찬성하여서 공신반열에 오른 세력이 바로 <훈구파>이다. 곧, 공을 세워 관직을 얻거나 승진한 신하를 말한다.

 

 한편 이 당시 고려왕조에 충성을 다하다가 두문동에서 온건개혁파들이 불에 타죽은 일이 벌어졌는데, 이 사건은 조선초기 사대부들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빠른 진행을 위해 다음을 설명하자면, 이렇게 잔인한 일이 벌어지자 많은 양반들과 선비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껴 관직을 버리거나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는 중앙정계에 발을 들이지 않은 사대부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이 바로 <사림파>들이다. 길재, 김종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때의 훈구파들은 15세기의 훈구파들이고 무오사화를 일으킨 주역들은 또 다른 공신들, 바로 세조의 왕위찬탈(계유정난)에 혁혁한 공적을 쌓은 공신들이다. 이들이 100여 년간 초야에 묻혀 있다가 중앙정계에 진출하려고 하던 <사림파>를 쫓아낸 일대 사건이 바로 <무오사화>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무오사화는 15세기 말 즈음해서 중앙정계에 진출하려는 <사림파>와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훈구파>가 서로 대립하는 과정에서 생긴 피비린내나는 다툼인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사림파의 거두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사림파)이 성종실록에 스승이 쓴 [조의제문]을 실은 것이었다. [조의제문]의 내용은 초한지로 유명한 항우를 세조로, 조나라 의제를 단종에 빗대어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것이다. 이는 직계 왕통을 무시한 내요이며, 세조는 연산군의 증조할아버지이니 자기 친족을 욕보인 사림이 곱게 보일리 없음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임금은 사초들이 작성한 실록의 내용을 볼 수 없는데도 연산군의 귀에 이를 일러바친 사람이 훈구대신인 유자광이었다는 점이다. 일설에 의하면 유자광이 김일손에게 술을 마시고 실수한 적이 있는데 이를 상관에게 보고하여 유자광이 혼이 났단다. 즉, 개인적인 원한이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 온 셈이다. 어쨌든 사소한 감정싸움이든 정권다툼이든 이로써 <훈구파>와 <사림파>는 생사를 건 한 판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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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시작이다 | 異之我...또 다른 나 2008-08-1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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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공부하겠다고선 수개월 동안 이렇게 방치만 하였다. 사실 그동안 펑펑 놀았다는 것이 정답이고, 변명스런 답변을 한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에 고민을 하다보니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렸다. 옛말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름 구슬이 참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을 꿰려하니 빈틈이 너무 많았고 방대한 역사(자료)에 식겁했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다시 한 번 솔직해지자면 아직도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역사관점 상으로는 E.H.카의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의 끊임없는 대화>임엔 틀림없지만, 동북아역사만 놓고 보아도 이것만으로는 한마디로 <해석불가>이기 때문이다. 분명 역사적 진실은 하나일 테지만, <독도영토주권>에 대한 역사적 견해를 보면 어느 것이 진실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독도, 자신에게 물어보고 독도가 입을 열어 <나는 누구네 땅이오>하고 말하면 속시원해지련만, 독도는 말이 없고 과거(역사)는 우리(현재)를 헷갈리게 만든다.

 

 여기서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과연 역사적 진실은 규명할 수 있는가? 없다면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최선인가? 그것으로 충분한가?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그렇다면 역사적 진실을 규명할 수 없는가? 라는 질문에도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물론 일본의 일부 견해처럼 <역사는 해석하기 나름이다>라는 주장에는 반대이다. 역사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증거>, 즉 <실증적 역사관>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생각만으로 <역사>를 이해하기란 절대부족하고, 그렇다고 <해석>에만 목을 맬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를 길게도 했는데 서론은 이쯤 해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요컨데 이렇게 역사를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사>만의 편협한 시선에서 <세계사>를 아우르는, 혹은 <세계사> 속의 <한국사>를 펼쳐보이고 싶다. <역사공부>를 계획하면서 목표로 삼은 것이 <한국통사>, 나아가 <세계통사>를 쓰고 싶었다. 그만한 실력이 되느냐고 물으신다면 <쥐뿔도 없다>고 대답하겠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다짐하고 싶다. <교과서>에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편협한 시선으로 <역사>를 재단하지 않겠다. 물론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왜곡과 오류로 점철된 역사책(사실 없지 않지만)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훌륭하다고 본다. 그러나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첫째, 우리 나라의 기나긴 역사를 꿰뚫기에 역부족이다.

 잘난 민족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참 길고 긴 역사를 가진 나라가 우리 나라이다. 오죽하면 역사책의 시작이 <인류의 기원>일까? 전 세계에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부터 자국 역사를 나열하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여하튼 현행 교과서에서는 우리 역사를 [선사시대]-[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근대]-[현대]로 시대구분하고 있는데, 단지 이것만으로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기 힘들다. 아니 교과서만 보고서는 우리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왜> 고려를 건국했는지 다각적인 견해를 나열하지 않았다. 또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어떠한가?

 

 둘째,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사관(관점)이 뒤죽박죽이다.

 물론 역사를 단 하나의 관점으로만 이해한다면 편협한 점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관성>을 잃으면 안 된다. 무식한(!) 내 판단에 근거하면 우리 역사인식은 일제의 <식민사관>에서 출발하여, 이에 대항한 <민족사관>, 그 뒤엔 이를 절충한 <진보적 사관>, 또 다시 이를 반박한 <보수적 사관>으로 변해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민족사관>과 <진보적 사관>을 한 축으로 보고, <식민사관>과 <보수사관>이 또 다른 한 축으로 삼아서 대결양상을 띰과 동시에 전자는 <재야사학자>가, 후자는 <교수사학자>들이 또 다른 자존심 다툼을 벌이는 양상이다. 이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 현재의 <엉터리> 교과서이다. 무식한(!!) 내 견해다.

 

 셋째, 편협한 역사서술이 동북아 갈등을 부추긴다.

 우리는 우리식대로, 일본도, 중국도 자기네 입맛에 맞게 역사를 재해석하다보니 단순히 견해차이를 넘어서 민족갈등, 국경(영토)분쟁, 심화되면 국제관계 경색국면으로 치달아 어떤 이들은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전쟁을 밥 먹듯하다가 결국 엄청난 전쟁을 치른 유럽을 보면 해결법이 나온다. 그들은 <화해>를 선택했다. 유럽은 일찌감치 애꿎은 자존심 싸움은 접어두고 외교적 이해득실을 따져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정치적, 경제적 협력을 끌어내어 양국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길을 선택하였다. 궂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아실게다.

 단, 우리 역사와 영토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독도(한일간)와 이어도, 간도(한중간), 그리고 고구려를 비롯해 고조선, 발해 역사를 순순히 빼앗기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영토와 역사가 아니다. 독도나 이어도, 간도 영역과 우리 역사를 그들이 탐하는 이유는 그곳에 묻힌 엄청난 잠재력(경제적, 정치적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국이 독식할 때 그들은 배가 아프다는 표현이 바로 이같은 분쟁들이다.

 

 그러므로 내가 서술하려는 <역사>는 이를 감안해서 쓰려고 한다. 때론 엉터리 같은 서술도 나올 수 있다. 이는 나 자신이 어느 단체나 어떤 사관에 얽매이지 않은 결과이다. 때론 근거없는 억측과 비슷한 서술이 나올 수도 있다. 그건 내가 무식하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따져도 좋다. 이와 같은 논쟁을 통해 내 역사지식이 한층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욕만 하지 말아달라. 나를 자극하면 헐크같은 내 논리적 답변이 여러분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르니까. 뭐, 별로 주목받지도 못할테니 김칫국 걱정일 것이다.

 

 그래서 우선 꿰어야 보배일 <구슬>을 만들어 보일테다. 그리고 그 구슬들을 어떻게 꿰어나가는지 지켜봐 주시면 고맙겠다. 자,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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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어떻게 된 거 아니야(--)뻔뻔 | 나의 리뷰어 도전기 2008-08-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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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 온난화>의 가장 큰 이유는 인간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인데, 아니라니요.
 
 인간 때문이 아니면 매연 내뿜는 자동차 때문인가요?
 
 인간은 그냥 자를 뿐인데 제가 알아서 죽어주는 나무 때문인가요?
 
 이 책의 저자는 <자연은 무한하다. 그러니 마음껏 써라>라는 착각 속에 빠진 듯 해요.
 
 만약 그렇다면 멸종된 동물은 인간이 마구잡아서가 아니라 제놈들이 제풀에 죽어갔다고도 할 수 있겠군요.
 
 말도 안 되요.
 
 책 좀 줘봐요. 이 사람 머릿속이 궁금해(--)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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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라. 부드럽게 때론 격하게 | 2008년에 쓴 리뷰들 2008-08-0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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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감정을 드러내는(특히 솔직하게) 사람을 아직 미숙한 사람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만큼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은 순진하거나 야만스런 사람으로 보고,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을 대단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감정은 <표현>하면 안 좋은 걸까? 우리는 다양한 교육을 통해서 감정을 표출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감정을 표출하는 순간, 무례한 사람이 되거나 몰상식한 사람 취급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서 어떻게 사람을 사귈 수 있을까? 물론 감정 중에서 좋은 감정만을 골라서 표현하면 긍정적인 효과만 나타나겠으나, 그게 사람 살면서 어디 쉬운 일인가. 결국 감정을 <잘> 표현하는 방법이 필요하고, 배울 수 있다면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방법은 간단하다.
 
 첫째, <감정을 표현하라>
 당연히 초상집에서 웃고 경삿집에서 울면 안 될 것이다. 적절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감정을 꽁꽁 감추면 안 된다. 적절히 표출해야 <감정 표현법>이 세련되기 마련이다.
 
 둘째,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라>.
 즉, 내 감정에만 충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기 십상이다. 내 감정을 표현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해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현실에서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를 늦추고 상황을 살펴볼 여유가 있다면 불가능하지도 않다. 자세한 내용은 이 책에 적혀 있으니 살펴보시길...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감정>을 서양적 관점에서 고찰한 부분은 자세한 데 반해 동양적 관점에서 고찰한 부분은 적었다는 점이다. 물론 서양인이 쓴 책이다보니 어쩔 수는 없다고치더라도 저자가 <감정>을 서술한 예들이 자신들의 내담자(저자는 심리치료사이다)를 비롯해서 문학과 영화에서 수많은 예들을 제시하고 있는데도 거의 대부분 서양의 것에서만 적용시키다보니 <감정>을 해석한 내용이 낯설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예시된 내용들이 전문적인 혹은 조금은 오래된 것들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보았는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란 영화를 보고 남녀주인공의 행동에 공감해 보았는가? 이런 것들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더욱 잘 들어올 것이고, 아닌 분이라도 큰 불편 없이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조금 어색했고 약간은 지루했던 점이었다.
 
 때론 감정을 너무 드러내서, 때론 감정을 너무 감춰서 탈이 난다. 직접적인 접촉이 점점 줄어들고 인터넷 등을 통한 온라인 상에서의 만남이 늘어가는 요즘에 감정 조절에 실패해서 더 탈이 나는 듯하다. 이를 단지 <익명성> 때문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은 말이나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얼굴표정, 몸짓, 때와 장소에 따라 복합적인 작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엔 더욱 상대방의 감정을 읽기 힘들고 그래서 더욱 표현하는 것을 꺼리는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감정>은 인류가 특별히 발달시킨 표현법 중에 하나이고 이 책에 언급한 바와 같이 어쩌면 <감정>의 작용에 의해서 오늘날 <인류>가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어떤 동물보다 풍부한 <감정>이야말로 인류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때문에 다투기도 하지만 <감정>이 있어 좋은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은가? 때론 <사랑해>라는 한 마디가 다른 백마디 말보다 더 좋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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