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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속 작은 몸부림 | 2016년에 쓴 리뷰들 2016-04-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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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꽃은 많을수록 좋다

김중미 저
창비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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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나로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큰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마음은 공감하지만 따라하기에 난감을 표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톡 까놓고 얘기하자면, 내 공부방은 돈벌이 '수단'이며 나와 우리 가족의 생계와 노후를 위해 만들어진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가르친 지 11년째로 접어 들고 있기에, 그동안 가르쳤던 제자들이 찾아와 함께 어우러져 마음을 나누는 책 속 모습에 한없는 부러움을 나타냈다가도 '수업료 공짜'인 봉사활동이라는 생각에 감히 접할 수 없는 세계의 머나먼 이야기라고 애써 뒷걸음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나 역시 꿈꾸는 공부방이 있다. 3층 집을 만들어 1층은 커피숍과 같이 마을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담론의 공간'으로, 2층은 도서관 겸 공부방으로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배움터'로, 그리고 3층은 나와 내 가족이 함께 머무는 행복한 우리 집으로 만들어 아기자기하게 사는 꿈 말이다. 물론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수입에 공부방을 시작하며 꾸었던 꿈은 지금에 와선 그저 꿈 같은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허나 책 속 풍경이 마냥 꿈 같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공부방 운영도 힘들긴 마찬가지지만, 그보다 더 절절한 아이들의 이야기에 눈이 갔기 때문이다. 매정한 세상과 차가운 현실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아픈 영혼들이 참 많다는 점에 시선이 머물면서 샘 솟는 분노가 울컥 치올랐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까닭이 무어란 말인가?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어릴 적에 받은 고통으로도 모자라 어른이 되어서도 모질고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가 말이다. 이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도 거짓말이 되었나 보다.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니 씁쓸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힘차게 올곧게 자라 훌륭한 일꾼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눈물 짓기도 했고 말이다. 그 현장에 발벗고 찾아가 도움의 손길이 되어 주지 못하는 부끄러움 99%를 담은 눈물 말이다.

 

  이 책을 보니, 점점 자본주의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 요즘 들어 점점 살기 힘들어진 탓에, 그 까닭이 '자본주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주의의 생태가 다수의 희생으로 소수가 독차지하는 시스템을 합리화하는 도구라는 생각에 쉽게 반박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급이 발생하고 계층이 분화하는 사회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늘 이랬었기에,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구도 자체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그 구도에 '정당성'을 찾지 못하게 되면 그 사회는 붕괴되고 새판을 짜기 마련이었다. 왕조의 교체와 국가의 흥망성쇠는 늘 이와 같은 원인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할 것이다. 허나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앞으로도 계속 정의롭고 정당한 이념으로 자리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내 삶은 만족스러운가? 이런 질문에 난 흔쾌히 '예쓰'라고 답을 하지 못하겠다.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삶이 불행하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가난을 죄로 낙인 찍지도 않았는데도 그러하다면 정말 큰 문제가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발견하고 인식했다면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마땅한 일을 하고 있는가? 가난은 나랏님도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라며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 가난은 게으름뱅이에게 내리는 무거운 형벌이니 나태한 자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라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자본주의의 속살을 살포시 들춰보면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더 가난하며, 한 점 부끄럼 없이 정의롭게 사는 사람들에게 더 큰 가난을 선사하곤 한다.

 

  그렇다고 부자들을 모두 정직하지 못하고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 자리에 올라갔다고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난한 이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는 오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빼앗을 '것'을 잃은 부자들이 설 '곳'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말이 두 계층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둘 사이에 '공존'을 모색하는 노력이 없는 사회는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부유한 이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성공한 덕분에, 가난한 이들은 그 '노력'이 실패로 인한 결과라는 것을 승복할 수 있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일 것이다. 다른 이의 '노력'을 착취하는 나쁜 사람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고, 그 '노력'을 장려하고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나라가 진정 아름다운 나라일 것이다. 물론 이상적인 생각일 뿐이다. 현실은 늘 그렇지 못하고 세상은 늘 그런 현실을 감싸고 돌 뿐이다. 그래서 작가의 공부방이 빛이 난다. 사실 평범해야 어울릴 법한 공부방이건만, 세상이 어두우니 더욱 밝게 빛나고 있다. 밤하늘이 어두울수록 별이 더욱 빛나는 것처럼 말이다. 차가운 도시에서는 휘황찬란한 인공불빛에 그 별빛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꼭 필요한 별빛은 언제든 보일 것이다. 비록 북극성은 보이지 않을지언정 북극성을 찾는 길잡이별은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 리뷰는 yes24를 통해 책과 문화의 모든 것-땡스기브(http://cafe.naver.com/tgive)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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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뜨거운 장면을 보면서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으라고요? | 2016년에 쓴 리뷰들 2016-04-1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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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룰루의 사랑

알무데나 그란데스 저/조구호 역
자음과모음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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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애소설이다. 성적 본능에 충실한 남녀 간의 애욕을 담은 이야기 말이다. 흔히 말하는 '야한 소설'이기도 한데, 그렇다고 '삼류 포르노'만큼 저속하지는 않다. 말이 나왔으니 포르노에 빗대어 소개하자면, 기승전결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벗고 흔들고 찍 싸는 삼류가 아니라 '잘만 킹' 감독의 <섹슈얼어딕션>처럼, 정말 잘 만들어진, 섹스스토리 탄탄한, 수준급 포르노도 있다. 이와 같이 알무데나 그란데스의 <룰루의 사랑> 역시 섹스스토리가 탄탄하게 짜여 있어 저속한 삼류 딱지를 붙이기에는 무엇한 소설이다. 허나 벗기는 영화가 수준 높아봐야 '야한 영화'밖에 안 된다. <애마 부인>을 스티븐 스필버그가 찍는다고 별반 달라질 건 없다는 얘기다. 단지 소재가 야하기만 할 뿐 아니라 그 안에 무언가 깊이 성찰해야만 할 '문제적 이야기꺼리'가 주어지지 않다면 그저 쓰다 남은 휴지 한 장에 불과할 뿐이란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하나하나 꼽씹어 보자. 줄거리는 이렇다. 20대 중반의 남자가 10대 중반의 소녀를 유혹한다. 우리 나라 정서로 이야기하자면, 띠동갑인 '젊은' 남녀가 성적 본능에 충실해졌다는 이야기다.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띠동갑 정도의 나이차는 그닥 금기시된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다시 우리 나라 정서에 대입을 하자면, 군을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한 젊은 남자가 2학년 혹은 3학년 여중생을 유혹해서 본능에 충실해주신다면...설정 자체가 철컹철컹이다. 뭐, 성춘향과 이몽룡도 이팔청춘에 할 짓 다 하고 절개와 지조를 지켰으니 그건 그렇다치자. 요즘엔 청소년과 초등학생들조차 첫경험을 한다는 통계조사도 있으니 그닥 새삼스러울 일이 아닌 듯 싶기도 하다. 이런 얘기에 발끈하는 나도 늙긴 늙었나보다. 암튼 다음 줄거리는 본격적으로 성적 본능에 충실해주시는 두 남녀다. 이건 뭐 '야한 소설'이니 그렇다고치더라도 점점 우리 사회가 금기시하는 '터부'를 건드리니 좀 난감하다. 결국엔 '근친상간'까지 벌이게 되니 말이다. 두 남자가 한 여자와 '플레이'하는 설정까지는...뭐...근데 두 남자 가운데 한 명이 친오빠이라는 점은...철컹철컹이 아닐까?

 

  허나 문제적으로 보이는 점은 줄거리가 보여주는 변태적인 사랑이 아니다.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가 하나 같이 '여성작가'가 쓴 성애 소설이기에 참신하다고 평했다. 뭐, 딴에는 이해가 된다. 에로적인 담론의 주체가 늘 '남성'이었기에, '남성작가'가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적이 있었기에 그러한 평가가 나올 수도 있겠구나 싶다. 허나 이 소설이 1987년에 쓰여진 것이 함정이다. 그 당시라면 이런 평가가 대단히 수준 높은 평가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엔 '양성평등'이란 구호가 낯설 정도로 '차별'이 심했던 때이니 말이다. 허나 요즘에는 시대적으로 좀 뒤떨어진 평가가 아닐까 싶다. 남자가 쓴 야한 소설과 여자가 쓴 야한 소설의 차이점이 뭘까? 강렬하고 섬세한 묘사의 차이? 변태가학적 섹스 묘사의 남성작가와 여성작가의 마음가짐 자체? 난 잘 모르겠다(")순진무구

 

  소설의 내용은 들고 다니면서 짬짬이 읽기에는 낯부끄러웠다는 점을 제외하고 그닥 새로울 것이 없었다. 사드의 소설을 섭렵한 뒤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뒤통수를 치거나 눈이 번뜩일 정도의 신선함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사드의 소설들은 '죄악'을 다루고, '광기'로 얼룩진 면이 두드러지기에 긍정적 신선함 따위를 거론할 여지도 없지만, 알무데나 그란데스의 소설이 '아무데서나 그런데'로 읽히지 않은 것이...신선함과 거리가 먼...뭐랄까 식상하고 진부했다고나 할까? 1987년 책이 왜 지금 우리 나라에서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일까? 하는 의구심에 해답을 찾지 못한 찜찜함..따위가 독서를 방해했다.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구심은 [이 소설이 한국의 보수적이고 음습한 성 문화에 운율 있는 파격이나 청량제가 되길 바란다. -조구호(이 책의 번역가)]로 끝맺음에서 시작되었다. 사드를 연구하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우리 나라의 성 문화가 개방되는 것에 어떤 이로운 점이 있기에 수많은 개화(?)지식인들이 이토록 개방(?)을 외치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 개방을 한다면 어디까지 개방을 해야 속이 시원하신지 궁금하다.

 

  성 문화라는 것에 윤리, 도덕을 빼면 그냥 '본능'에 가까워질 뿐이다. 사람도 동물이니 동물적인 본능에 벗어날 수는 없지만, 본능에 앞서서 '이성'으로 행동할 수 있기에 사람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답다는 말은 수명이 비교적 짧고, '짝짓기 시기'도 따로 정해진 동물과 달리 수명이 비교적 무지하게 긴데다가 '교미'를 일년 내내 시도때도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동물적인 원초적 본능에 충실해진다면 '허리하학적'으로다가 새끼멍멍이와 다를 바가 없기에, 최소한 그런 멍멍이는 아닌, 허리 아래조차도 이성적 상식이 풍부한 '사람'을 사람답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사상과 이론에 자유로운 우리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성 문화'를 변태가학적으로 하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를 테면, 결혼을 약속한, 또는 혼인을 한 두 남녀가 공공장소에서 깊게 키스를 나누며 가슴과 엉덩이를 어루며 짓굿은 장난을 친 뒤 나 잡아 봐라~하든 말든 요즘엔 상관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친남매가, 형부와 처제가, 외갓 남자와 여자가 아무데서나 그런데...라는 것까지 개방(?)해야 하는가 말이다.

 

  딴에는 '상상과 창작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견해에서 책 속에서야, 영화 속에서야 '그럴' 수도 있겠지. 그 밑에 [함부로 따라하시면 위험할 수도 있고, 철컹철컹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달면 되지 않겠어. 라고 '합리화'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만큼 위험한 것 또한 없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 '모방 범죄'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굳이 범죄가 아닌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 뿐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터부'시 되는 성적 금기를 풀어 '개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아 정말정말 끔찍한 '무엇'을 풀어 놓자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 그지 없다. 아무리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이 불쌍하다고 하더라도 '맹수'를 도시 한복판에 풀어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 사회가 보수적이고 답답하고, 때론 꼴통스럽다는 점엔 공감한다. 특히나 성 문화에 있어서 자유분방한 것에 대한 책임과 대가를, '여성'에게만 더욱더 짊어지게 한다는 점에서도 불합리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여성해방의 시작이 여성작가가 쓴 에로소설에서 시작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답답할 정도로 음습한 우리 사회의 성 문화를 밝고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 변태가학적인 내용으로 점철한 성애소설이 가능하게 만든다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찐~한 성애 소설을 읽히는 것만으로 우리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성 도덕과 성 윤리, 성적 가치관을 갖추게 된다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성애 소설이, 에로 소설이 우리 사회에 건전한 성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지식인들이 있다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물론 마교수가 말했다시피, 감추고 금지한다고 성 문화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공감하며, 성 문화를 어둡고 음습한 곳에서 양지 바른 곳으로 인도하여 올바른 성 문화가 정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허나 그것이 변태가학적인 성애 소설을 널리 읽히는 것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알무데나 그란데스의 창작물에 대해 존중은 하나 그녀의 창작물이 건전한 성 문화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공을 할 것이라는 견해에는 공감할 수 없다. 이건 마치 청소년들에게 헐벗은 삼류 포르노를 보여주며 너희들은 아름다운 사랑을 하라고 강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그나마 교훈적인 내용이라고는 그렇게 변태가학적으로 살다가는 좋지 않는 결말이 뒤따를 거라는 거? 그따위 교훈이라면 차라리 안 보여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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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쥬신을 찾는 실마리 | 2016년에 쓴 리뷰들 2016-04-0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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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군의 나라, 카자흐스탄 (컬러판)

김정민 저
글로벌콘텐츠 | 2016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그 실마리가 주는 원대한 상상력의 근거들이 담겨 있는 책. 믿거나 말거나 내용의 진위는 관심사밖, 자랑스런 우리 역사를 찾아가는 첫 발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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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가 있다. 인류가 갖고 있는 원초적인 두려움인, 죽음을 극복하고, 젊음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꿈' 같은 약을 말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수많은 의료연구진이 달라붙어 수 십년을 연구하고 개발한 끝에 완성에 다다랐다고 치자. 과연 이 약은 시판에 성공하고 인류는 젊음과 건강을 오래도록 유지하며 '영생'에 이르게 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구경도 못할 것이다. 그 연구에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말이다.

 

  그런 만병통치약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 실패하면 구경도 못할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성공'했는데도 왜 보질 못할까? 아니 통신이 발달한 요즘이니 구경은 할 수 있을지도...더 정확히 말하면, '가지질'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그 약은 분명 비쌀테니까 말이다.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젊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엄청나게 돈이 되는 사업 '하나'를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런 약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선 안 된다. 몇몇 소수만이 누리는 '특권'이 되어야 비로소 '소용가치'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돌아간다. 뭐, 언젠가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할 때, 또다른 '패러다임'으로 바뀐 '틀'을 지향하며 살아가겠지만, 현재까지는 그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땅한 대안도 역시 말이다. 그래서 '학문'조차 '돈'이 안 되면 연구하지 않는 풍조가 만연한 지금이다. 하물며 '사실'조차도 말이다. '진실'이 돈이 안 되면, '거짓'이라고 이름이 더럽혀지고, '진실'이 돈이 안 되면, 살짝 '왜곡'시켜서라도 돈이 되게 만드는 것이 '진리'가 되어 버렸다. 자본주의 아래에선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실' 따위엔 관심이 없다. 설령 우리 단군할아버지가 사실은 저 먼 만주벌판을 넘어 대륙 곳곳에 뻗어나가 온누리에 후손을 남겼고, 지혜를 펼쳐 위대한 문명을 일구어냈으며, 그로부터 반만년 뒤를 살아가는 우리는 '대쥬신(위대한 조선)'의 후예이며, 티벳고원을 중심으로부터 유라시아 서쪽 끝까지, 또 동쪽 끝 안데스고원까지 우리의 형제가 살고 있다는 '진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것이 '진리'이고 '진실'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곧이 곧대로는 믿기 힘든 '결론'이며, '유사성'을 근거로 하는 '사이비' 냄새가 가득하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리 '하나'를 깨치면 '열'을 안다는 신동이 있다고 하여도 '유물' 하나로 유구한 역사의 '그림'을 메꿀 수 있느냔 말이다. 더구나 우리에겐 이미 '정통한 역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역사'가 있는데, 그에 비해면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허나 그 '정통한 역사'가 늘 진실만을 말하던가? 그렇게 만든 '정통한 역사'도 처음에는 사실과 사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찾지 못해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며 짜맞추던 '것' 아니었었나. 그 과정에서 잘못된 '해석'으로 정정되고 수정되어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역사책'이지 않은가 말이다.

 

  사실 난 이 책이 말하는 진실이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막말로 고대사회에 우리 조상이 전 세계를 주름 잡던 분들이라고 한들 오늘날에는 '강대국'으로 떵떵거리며 살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틀 안에 살고 있는 나에게 먼 옛날에는 중국을 발 아래 두었고, 일본을 동생으로 두었다고 한들 '지금'의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나셨으면 쭈~욱 잘 나셔야지 왜 지금은 이모양 이꼴이냐고 뾰루퉁해질 수밖에 없는 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 수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학생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 나라 역사는 참 볼품없어요. 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처럼 대제국을 건설한 것도 아니고 꼴랑 삼국통일한 신라, 칭기즈칸처럼 땅을 넓힌 것도 아니고 꼴랑 만주벌판 차지한 광개토대왕, 그나마 광개토대왕 죽고 난 뒤에는 수나라, 당나라,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그리고 일본한테 침략만 당하다가 겨우겨우 막아냈다는 역사만 배우고, 끝내는 일본처럼 세계대전에 참전해 강대국으로 발돋움하지도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한 것까지는 참겠어요. 해방된 뒤에는 왜 멍청하게 합심하지 못하고 전쟁 끝에 분단하고 말았데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잠시 말문이 막힌다. 나도 학창시절에 같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절한 답도 찾아내지 못했다. 뭐라 말하겠는가? 너희는 참으로 잘난 조상을 두긴 했는데 어찌 살다보니 이꼴이 되었네. 이렇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가 말이다. 뭐, 딴에는 장동건으로 태어났는데 살다보니 박명수가 되었더라고 말해주기도 했는데...어느 것 하나 시원한 답변이 아니어서 속상했던 적도 있었더랬다.

 

  이는 '역사'라는 학문이 태어나면서부터 잘못 태어났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우리가 배우는 '역사'과목은 서양에서 발달한 학문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먼 옛날 서양은 동양에 비해 한참 아래였었다. 그러다 17~18세기 근대이후부터 역전되기 시작하더니 20세기까지 서양의 우세는 '불변'이라고 배운 것이 바로 '역사과목'에서 배우는 전부였다. 한마디로 별볼일 없던 서양이 잘난 동양을 지배하려니 뭐하나 잘난 점이라도 찾으려고 발본색원하며 발달시켰던 학문이 바로 '역사'란 과목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하나같이 '서세동점의 당연한 귀결'의 근거다. 지금도 세계사 책을 펼치면 서양의 것은 한결같이 아름다우며 동양의 것,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의 것은 그 반대에 대한 내용이 대다수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 하나 그 관점에서 벗어나기는 좀처럼 힘들듯이 보인다.

 

  이는 '역사'라는 학문을 잘못 이해했기에 벌어진 일들이다. 헤로도토스와 사마천이 쓴 역사책에서 좋은 점은 놔두고 나쁜 점만 부각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두 분께서 쓴 역사책을 볼작시면, 나와 남을 경계 긋고 나에 대한 것은 최대한 옳게, 남에 대한 것은 최대한 덜 좋게 써놓았다. 가재는 게 편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으니 이런 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 있다. 허나 현대의 역사과목은 서양의 것은 '무조건' 옳고 좋으며, 그 나머지는 '무조건' 좋게 봐줄 수는 없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세뇌시키고 있기에 봐줄 수가 없다.

 

  위대한 영웅은 죄다 '잔혹한 살인광'이다. 알렉산드로스가 그랬고, 카이사르가 그랬으며, 칭기스칸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에도 전쟁에 참전해서 수많은 목숨을 죽인 이를 영웅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그 나라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기 나라 전쟁도 아니고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해 간섭한 이를 우리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가 말이다. 하물며 오래 전 일이라고 다른 이유를 갖다붙일 일은 없지 않을까. 그렇기에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이 빛나는 것이다. 부당한 전쟁과 침략에 맞서 이 나라, 이 백성을 지켜낸 위대한 분이기 때문이다. 이 분들이 각각 수나라와 송나라, 그리고 일본으로 쳐들어가 보복전쟁을 일삼고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다면 과연 위대한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 대쥬신(고조선)의 나라에 건국이념이 '홍익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으면 한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든 나라. 우수한 청동기와 앞선 철기문화를 전파해 사람들을 편하게 살기 위해 만든 우리 나라(고조선)은 강대하지만 군림하지 않는 이를 숭상하는 그런 나라였다. 이런 조상을 둔 후손이라면 자랑할만하지 않은가. 내 어릴 적에는 이 조그만 나라가 그닥 자랑스럽지 않았지만, 이젠 자랑스럽다. 정치와 경제만 쪼금 더 잘 굴러가면 더 자랑스러울텐데...사회, 문화적으로도 쬐~끔 볼썽사나운 짓 좀 그만하고...흠흠 예술, 체육계 쪽 비리 좀 걷어내면...더 자랑스러울텐데...단군할아버지는 그러지 않았을거임.

 

이 리뷰는 글로벌콘텐츠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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